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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매일미사 2021년 6월 11일 (금) 예수성심대축일

by 평화다방 2021. 6.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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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 예수 성심 대축일 -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 성심 대축일과 사제 성화의 날, 2021년 6월 11일 (금) 온라인 미사와 강론입니다.

 

✠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 성심 대축일 (Solemnity of Most Sacred Heart of Jesus)과 사제 성화의 날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 성심 대축일은 예수님의 거룩한 마음을 공경하며 그 마음을 본받고자 하는 날입니다. 예수 성심이 성체성사와 아주 밀접하게 관련되어있기 때문에 예수 성심 대축일은 지극히 성체 성혈 대축일 다음 금요일에 지냅니다. 중세 때 시작하여 점차 보편화된 예수 성심에 대한 공경은 1856년 비오 9세 교황 때 교회의 전례력에 도입되었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대축일로 지내고 있습니다.

또한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권고에 따라, 한국 천주교회는 1995년부터 해마다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 성심 대축일에 ‘사제 성화의 날’을 지내고 있습니다. 사제 성화의 날은 사제들이 그리스도를 본받아 복음 선포의 직무를 더욱 훌륭히 수행하는 가운데 완전한 성덕으로 나아가고자 다짐하는 날입니다. 또한 교회의 모든 사람이 사제직의 존귀함을 깨닫고 사제들의 성화를 위하여 기도와 희생을 바치는 날이기도 합니다.

 

✠ 오늘 제1독서
호세아 예언자는 주님께서 마음이 미어지고 연민이 북받쳐 오르시어, 타오르는 분노대로 행동하지 않으신다고 합니다.

 

✠ 오늘 제2독서
바오로 사도는 에페소의 성도들이 하느님의 온갖 충만하심으로 충만하게 되기를 빕니다.

 

✠ 오늘 복음
군사들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의 옆구리를 창으로 찌르자 곧 피와 물이 흘러나왔습니다.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021년 6월 11일 (금)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021년 6월 11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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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입당송 (Entracne)
입당송 (Entracne)

 

입당송

 

주님의 마음속 계획은 대대로 이어지네. 죽음에서 목숨을 건지시고, 굶주릴 때 먹여 살리시네.

 

 

매일미사 제1독서 (First Reading)
제1독서 (First Reading)

 

제1독서
호세 11장 1절, 3-4절, 8ㅁ-9절

 

내 마음이 미어진다.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이스라엘이 아이였을 때에 나는 그를 사랑하여 나의 그 아들을 이집트에서 불러내었다. 


내가 에프라임에게 걸음마를 가르쳐 주고 내 팔로 안아 주었지만 그들은 내가 자기들의 병을 고쳐 준 줄을 알지 못하였다. 


나는 인정의 끈으로, 사랑의 줄로 그들을 끌어당겼으며 젖먹이처럼 들어 올려 볼을 비비고 몸을 굽혀 먹여 주었다. 


내 마음이 미어지고 연민이 북받쳐 오른다. 


나는 타오르는 내 분노대로 행동하지 않고 에프라임을 다시는 멸망시키지 않으리라. 나는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이다. 나는 네 가운데에 있는 ‘거룩한 이’ 분노를 터뜨리며 너에게 다가가지 않으리라.”

 

 

매일미사 화답송 (Responsorial Psalm)
화답송 (Responsorial Psalm)

 

화답송

 

너희는 기뻐하며
구원의 샘에서 물을 길으리라.

 

“보라, 내 구원의 하느님. 나는 믿기에 두려워하지 않네. 주님은 나의 힘, 나의 굳셈. 나를 구원해 주셨네.” 너희는 기뻐하며 구원의 샘에서 물을 길으리라. 너희는 기뻐하며 구원의 샘에서 물을 길으리라.

주님을 찬송하여라. 그 이름 높이 불러라. 그분 업적을 민족들에게 알리고, 높으신 그 이름을 선포하여라. 너희는 기뻐하며 구원의 샘에서 물을 길으리라.

위업을 이루신 주님을 찬양하여라. 그분이 하신 일 온 세상에 알려라. 시온 사람들아, 기뻐하며 외쳐라.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 너희 가운데 계신 분은 위대하시다. 너희는 기뻐하며 구원의 샘에서 물을 길으리라.

 

 

매일미사 제2독서 (Second Reading)
제2독서 (Second Reading)

 

제2독서
에페 3장 8-12절, 14-19절

 

인간의 지각을 뛰어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게 해 주시기를 빕니다.

 

형제 여러분, 하느님께서는 


모든 성도들 가운데에서 가장 보잘것없는 나에게 은총을 주시어, 그리스도의 헤아릴 수 없는 풍요를 다른 민족들에게 전하고, 


과거의 모든 시대에 만물을 창조하신 하느님 안에 감추어져 있던 그 신비의 계획이 어떠한 것인지 모든 사람에게 밝혀 주게 하셨습니다. 

10 
그리하여 이제는 하늘에 있는 권세와 권력들에게도 교회를 통하여 하느님의 매우 다양한 지혜가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11 
이는 하느님께서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이루신 영원한 계획에 따른 것입니다. 

12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에 대한 믿음으로, 확신을 가지고 하느님께 담대히 나아갈 수 있습니다. 

14 
이 때문에, 나는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15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종족이 아버지에게서 이름을 받습니다. 

16 
아버지께서 당신의 풍성한 영광에 따라 성령을 통하여 여러분의 내적 인간이 당신 힘으로 굳세어지게 하시고, 

17 
여러분의 믿음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의 마음 안에 사시게 하시며, 여러분이 사랑에 뿌리를 내리고 그것을 기초로 삼게 하시기를 빕니다. 

18 
그리하여 여러분이 모든 성도와 함께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한지 깨닫는 능력을 지니고, 

19 
인간의 지각을 뛰어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게 해 주시기를 빕니다. 이렇게 하여 여러분이 하느님의 온갖 충만하심으로 충만하게 되기를 빕니다.

 

 

매일미사 복음환호송 (Gospel Acclamation)
복음 환호송 (Gospel Acclamation)

 

복음환호송

 

알렐루야.

 

주님이 말씀하신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알렐루야.

 

 

매일미사 복음 (Gospel)
복음 (Gospel)

 

복음
요한 19장 31-37절

 

예수님의
옆구리에서 피와 물이
흘러나왔다.

 

31
그날은 준비일이었고 이튿날 안식일은 큰 축일이었으므로, 유다인들은 안식일에 시신이 십자가에 매달려 있지 않게 하려고, 십자가에 못 박힌 이들의 다리를 부러뜨리고 시신을 치우게 하라고 빌라도에게 요청하였다. 

32 
그리하여 군사들이 가서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첫째 사람과 또 다른 사람의 다리를 부러뜨렸다. 

33 
예수님께 가서는 이미 숨지신 것을 보고 다리를 부러뜨리는 대신, 

34 
군사 하나가 창으로 그분의 옆구리를 찔렀다. 그러자 곧 피와 물이 흘러나왔다. 

35 
이는 직접 본 사람이 증언하는 것이므로 그의 증언은 참되다. 그리고 그는 여러분이 믿도록 자기가 진실을 말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36 
그의 뼈가 하나도 부러지지 않을 것이다.” 하신 성경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이런 일들이 일어난 것이다. 

37 
또 다른 성경 구절은 “그들은 자기들이 찌른 이를 바라볼 것이다.” 하고 말한다.

 

 

매일미사 영성체송 (Communion Antiphon)
영성체송 (Communion Antiphon)

 

영성체송

 

주님이 말씀하신다. 목마른 사람은 다 나에게 와서 마셔라. 나를 믿는 사람은 그 속에서 생명의 물이 강물처럼 흘러나오리라.

 

 

신령성체 (An Act of Spiritual Communion)
신령성체 (An Act of Spiritual Communion)

 

매일미사 신령성체 영적영성체 기도문
신령성체 (영적영성체) 기도문 : An Act of Spiritual Communion

 

신령성체 (영적 영성체) 기도
An Act of Spiritual Communion

 

지극히 거룩 성사 안에
참으로 계시는 우리 주 예수님,
지금 성체 안의
당신을 영할 수는 없사오나
지극한 사랑으로 간절히 바라오니,
거룩하신 당신 어머니의
티없으신 성심을 통해
영적으로 저의 마음에 오소서.
오셔서 영원토록 사시옵소서.
당신은 제 안에 계시고,
저는 또 당신 안에서
이제와 또한
영원히 살게 하소서.
아멘.

 

 

신령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여러분이 모든 성도와 함께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한지 깨닫는 능력을 지니고, 인간의 지각을 뛰어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게 해 주시기를” 빕니다. 우리를 위하여 피와 물을 쏟으신 예수 성심의 한없는 사랑을 깨달읍시다.

주님, 이 큰 사랑의 성사로 저희에게 거룩한 사랑의 불을 놓으시어 저희가 언제나 성자를 사랑하며 형제들 가운데서 그분을 알아보게 하소서.

 

 

매일미사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팔로티회 매일미사

 

 

2021년 6월 11일 (금) 15시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1년 6월 11일 (금)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 Reflections)

 

매일미사
박형순 바오로 신부

 

어떤 하느님의 모습이 진짜일까요?

 

구약 성경은 우리에게 무서운 하느님을 소개하기를 주저하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백성들이 말을 듣지 않는다며 그들에게 수시로 벌을 내리시고 심판하십니다. 금송아지를 보고 ‘이분이야말로 우리를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신 하느님이시다.’라고 외치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분노하시고 그들을 죽음에 이르게도 하십니다(탈출 32,25-29 참조). 

또한 그분께서는 광야에서 불평을 늘어놓는 백성에게 불 뱀을 보내시어 많은 이스라엘 백성이 죽게도 만드십니다(민수 21,4-9 참조). 

하느님께서는 거룩하시지만 질투하시는 하느님이기도 하셨습니다(탈출 20,5; 34,14 참조). 그리고 하느님 분노의 절정은 왕국의 멸망으로 구체화됩니다. 우리가 전능하신 분, 천지를 창조하신 분으로 고백하는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인간적인 감정을 표현하시는 분이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처럼 구약의 역사 안에서 자비와 분노의 감정을 모두 표현하셨습니다. 

그럼 어떤 하느님의 모습이 진짜일까요? 하느님의 진짜 모습은 예수님을 통해서 나타납니다. 당신의 사랑하시는 외아드님을 보내시고, 그분을 죽음에 이르게 하십니다. 인간에 대한 사랑, 인간에 대한 연민, 인간에 대한 강력한 구원 의지로 당신의 외아드님을 인간의 손에 맡기십니다. 아울러 예수님 자신도 아버지와 함께 그 사랑을 삶으로 드러내셨습니다. 

구약에서 하느님의 분노와 심판이 이스라엘 백성의 멸망에서 절정에 이르렀다면, 신약에서 분노와 심판은 사랑으로 변합니다. 그리고 그 사랑의 절정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에서 완성됩니다. 예수님의 옆구리에서 흘러나온 피와 물, 그것은 아버지와 예수님의 사랑 그 자체입니다. 

오늘도 주님께서는 계속해서 당신을 바치시며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 위에서 피와 물을 쏟으십니다. 그분의 크신 사랑이, 우리의 언어로 담기에는 너무나도 크신 사랑이, 우리의 몸과 마음에 전해지는 따뜻한 축일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분노와 연민에 대하여

 

"내 마음이 미어지고 연민이 북받쳐 오른다. 나는 타오르는 내 분노대로 행동하지 않고 에프라임을 다시는 멸망시키지 않으리라. 나는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이다." 

오늘 호세아서는 분노와 연민에 대한 얘기를 하는데 오늘 예수 성심 대축일에 이 호세아 말씀을 독서로 뽑은 것은 예수님의 마음이 이 호세아서가 얘기하는 것과 같다는 뜻이겠지요? 

그래서 오늘 저는 분노와 연민에 대해 성찰하려고 하는데 우리는 보통 언제 분노를 하게 되는지 먼저 보고자 합니다. 

일반적으로 분노라고 하지만 분노는 의노와 분노로 나뉘지요. 주님의 성전 정화의 경우처럼 의노가 불의에 대한 분노라면 분노는 정의에 어긋나기에 분노하는 것이 아니고, 사랑에 어긋나기에 분노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며, 내 원하는 대로 되지 않거나 내게 상처를 주거나 내 맘에 들지 않거나 할 때 생기는 자기중심적이고 부정적인 감정입니다. 

그렇다면 죄지은 사람에 대한 분노는 어떤 것일까요? 우리는 종종 나와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의 죄를 보고 분노하지 않습니까? 나와 아무 상관이 없으니 죄를 짓건 말건 무관심할 수도 있는 것인데 분노한다는 것은 그래도 관심 있는 표시이니 사랑이라 할 수 있지 않나요? 

그렇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아무 상관 없는 사람의 죄를 보고 분노한다는 것은 실제로  아무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고 보편적 인류 사랑의 발로, 곧 같은 인간인데 어찌 그럴 수 있느냐는 보편적 인류 사랑의 발로일 겁니다. 

그리고 그렇기에 개인적으로 아무 상관 없는 사람의 죄에 대한 분노는  사랑일 뿐 아니라 인류의 공통적인 적인 죄에 대한 의노일 것입니다. 인류 공동체를 깨는, 특히 하느님의 자녀라면 하느님 나라의 공동체를 깨는 죄에 대해 공분하게 되는데 그런 공분과 의노 말입니다. 

그러니 이 죄에 대한 공분과 의노에는 내가 빠지지 않습니다. 나도 같은 죄를 지을 수 있고, 짓고 있다는 겸손의 분노여야 하고 그래야 공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는 죄를 짓지 않는데 너는 왜 그러냐는 식이라면 바리사이처럼 교만하고 위선적인 분노일 뿐이고 공분이 아니지요. 

그래서 프란치스코는 권고 11번에서 이렇게 얘기합니다. 

"하느님의 종은 죄 외에는 아무것도 못마땅해 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누가 어떻게 죄를 짓든 하느님의 종이 이 때문에 사랑이 아닌 다른 이유로 흥분하거나 분개한다면, 스스로 과오를 쌓는 것입니다. 어떤 일로 말미암아 분개하거나 흥분하지 않는 하느님의 종이 진정 소유 없이 사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프란치스코는 여기서 더 나아갑니다.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너희 원수를 사랑하고 너희를 미워하는 사람들에게 잘해 주고 너희를 박해하고 중상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따라서 자기 원수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가 당하는 해로 말미암아 괴로워하지 않고, 오히려 그의 영혼의 죄로 말미암아 하느님의 사랑 때문에 가슴 태우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에게 행동으로 사랑을 보여 줍니다." 

죄에 대해서는 공분해야 하지만 죄인에 대해서는 연민해야 한다고 하고,  특히 나에 대해 죄를 지었을 때 가슴 아파해야 한다고 얘기하는 겁니다. 

그렇지요. 나도 죄를 지을 수 있다고 나에 대해 겸손하고 사람은 죄를 지을 수 있다고 너에 대해 관대하다면 이것이 진정한 사랑이고, 이 사랑에서 연민은 나오는 것이며, 사랑이 크면 클수록 연민을 넘어서 가슴이 아플 거이고, 이 사랑보다 더 커지면 예수 성심처럼 가슴이 상처를 입을 것이고 십자가 주님의 가슴에서 피와 물이 나오듯이 피눈물이 나올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예수님 마음 : 다 주고도 미안한 마음

 

오늘은 ‘예수 성심 대축일’이기도 하고 ‘사제 성화의 날’이기도 합니다. 오늘 복음은 십자가의 예수님을 창으로 찔렀을 때 ‘피와 물’이 나왔다는 내용입니다. 피와 물은 성사를 상징합니다. 아담의 갈비뼈와도 같습니다. 

하느님께서 아담의 갈비뼈로 하와를 만드셨듯이, 아버지께서 그리스도의 피와 물로 자녀인 교회를 창조하셨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심장에서 나온 피와 물은 온유하고 겸손하신 부모님의 마음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유튜브 동영상 ‘하늘 같은 든든함, 아버지’를 보면 ‘예수님의 마음이 이런 아버지들의 마음과 같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어린 자녀들을 둔 아버지들에게 자녀에 대해 질문하는 설문지를 작성하게 합니다. 자녀의 사진은 얼마나 가지고 있고 자녀에게 사랑한다는 말은 몇 번이나 하고, 자는 모습을 지켜본 적은 있느냐는 등의 질문입니다. 

아버지들은 입에 미소를 머금고 설문지에 답합니다. 그러다 질문이 이젠 자신의 아버지에 대해 얼마나 아느냐는 것으로 바뀝니다. 같은 질문인데 자녀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으면서도 아버지에 대해서는 너무 무심했다는 미안함에 사로잡힙니다. 

이때 미리 녹화해 놓았던 그들 아버지의 목소리가 나옵니다. 아버지들은 하나같이 말씀하십니다. 

“항상 미안하죠. 항상 미안해요. 잘해주지 못한 것 때문에. 그게 부모 마음 아닐까요?” 

“너에게 해 준 게 얼만데!”라는 마음은 분명 참사랑에서 나온 내어줌이 아닌 이기적인 마음에서 비롯된 행위입니다. 미안해하는 부모님에게 관심을 두지 못했던 것에 대한 또 미안함을 느끼는 자녀. 이것이 예수님의 마음과 교회의 마음일 것입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왜 다 주면서도 미안해할까요? 그 이유는 그들도 당신들의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것을 기억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예수님도 아버지께로부터 받은 것을 주시는 것입니다. 먼저 받지 못한다면 내어줄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하도 많이 받은 것에 대해 덜 내어준 것 같아서 미안한 것입니다. 

따라서 부모님 마음, 예수님 마음은 이미 받은 것에 대한 감사에서 시작됩니다. 나에게 모든 것을 주신 분께 감사할 수 있을 때 예수님 마음을 닮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신 제자들에게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은 거저 받은 것입니다. 이것을 알 때 예수님 마음을 닮은 사제, 부모가 될 수 있습니다. 

‘OBS TV’의 ‘멜로다큐 가족’, ‘미안하다, 보고 싶구나’에서 한 아버지가 나옵니다. 딸 둘과 늦둥이 쌍둥이 아들 둘이 있었는데 그만 한 아들이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다 목숨을 잃었습니다. 

아버지는 조그마한 카센터를 운영하는데 출근 전 새벽 4시에 일어나 평택에서 매일 새벽 충주에 있는 아들의 산소에 음식을 싸서 옵니다. 음식을 차려놓고 “그때 잘 해 줬어야 했는데 미안하다.”라며 웁니다. 그러며 그는 말합니다. 

“아들 묘가 없었다면 못 살았을 겁니다.” 

남은 한 명의 아들은 아버지가 집에 들어오면 숨었다고 합니다. 워낙 무서웠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무서웠던 아버지가 사실은 다 주지 못해 아쉬워하는 그런 사랑 가득한 분이었던 것입니다. 

아버지는 왜 그리 아들에게 다 주지 못한 것을 후회할까요? 아마 잘은 모르지만, 본인도 잘 느끼지 못할 수 있지만, 그의 부모로부터 받았던 것에 비해 자신은 덜 주고 있다는 죄송함 때문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저도 사제로서 예수님 마음을 닮고 싶습니다. 그런데 그런 과정에서 부모님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머니는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그래도 너희를 굶긴 적은 없었다.” 

넉넉한 집안에서 자랐다면 이 말이 큰 의미가 없을 수도 있겠지만, 저희는 김치도 없이 맨밥을 물 말아 먹은 적도 있고 며칠 동안 계속 라면만 먹어야 했던 때도 있었습니다. 어머니께서 우리 앞에서 하실 수 있는 유일하게 마음이 편한 말씀이신 것이고 평생 이것을 위해 살아오셨음을 느끼게 하는 말씀입니다. 물론 언제나 미안해하시기도 합니다. 

만약 제가 매일 강론을 쓰며 신자들에게 양식을 제공하지 않으면 저는 자녀를 잃어 더는 무언가 줄 수 없는 위 아버지처럼 마음이 찢어질 듯 아플 것입니다. 어쩌면 저는 그런 후회를 하지 않기 위해 이렇게 매일 강론을 쓰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하늘나라에서 적어도 어머니께서 하신 이 말은 하고 싶습니다. 그런 말도 할 수 없다면 매우 후회될 것입니다. 

전에 ‘판타스틱 듀오 2’에서 가수 ‘바다’ 씨는 인순이 씨와 함께 아버지에 관한 노래를 부르며 한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모두 가톨릭 신자입니다. 

특별히 바다 씨는 S.E.S.로 데뷔해서도 1년은 추워도 찬물로만 샤워했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자신을 힘들게 키운 부모님께 대한 죄송함 때문이었습니다. 

자신을 가르치기 위해 밤무대를 전전해야 했던 아버지, 학비가 없어 이리저리 뛰어다녀야 했던 어머니가 아직도 찬물로 샤워하는데 자신만 따듯한 물로 샤워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부모님께 따듯한 물이 나오는 보금자리를 마련해 드리고서야 자신도 따듯한 물로 샤워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받은 것만큼 다 주지 않으면 편안할 수 없는 마음, 사랑을 받은 사람의 마음은 이런 것 같습니다. 부모로부터 사랑을 받았기에 그 사랑만큼 내가 내어주지 못하면 후회막급일 것입니다. 하물며 하느님으로부터 아드님의 생명을 받은 우리들이야 어떻겠습니까? 우리의 생명을 이웃에게 내어주지 않고서는 하늘나라에 가서도 잠이 오지 않을 것입니다. 

후회하지 않기 위해 가진 것을 다 내어놓고도 그래도 받은 것에 비해 너무 조금 내어놓은 것에 대한 미안함. 이것이 예수님 마음이 아닌가 싶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주님의 마음과 내 마음이 진정으로 하나 될 때

 

강론 원고를 프린트하려는데 인쇄가 되지 않습니다. 컴퓨터를 껐다가 다시 켜보기도 했지만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이유를 찾다가 너무 간단한 이유를 찾았습니다. 잉크가 떨어진 것입니다. 이 간단한 이유부터 점검했어야 했는데, 이 점은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프린터나 컴퓨터 본체에 문제가 있을 것이라 짐작했던 것입니다. 
 
아무튼 원인을 찾았습니다. 하지만 문제의 원인을 알았음에도 인쇄되지 않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습니다. 여분의 잉크를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정기적으로 점검하고 필요한 부품도 시간이 지나면 갈아줘야 합니다. 프린터만이 아닙니다. 자동차도 그렇고 그 밖의 많은 가전제품이 그렇습니다. 아~ 가장 중요한 한 가지가 더 있습니다. 바로 우리 인간입니다. 
 
우리 각자도 정기적으로 점검해야 합니다. 단순히 병원에 가서 종합검진을 받으라는 것이 아닙니다(종합검진도 중요합니다). 영적인 점검이 필요합니다. 나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면서 주님과의 연결이 끊어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내면이 황폐해졌는지도 모르고 계속 앞으로만 달리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요? 황폐해질수록 주님과 함께 할 힘이 없어집니다. 
 
오늘은 예수 성심 대축일입니다. 즉, 예수님의 거룩한 마음을 더욱 공경하며 묵상하는 날입니다. 그 거룩한 마음은 바로 겸손과 사랑의 마음이었습니다. 그 겸손과 사랑으로 인해 우리 모두가 빠짐없이 구원받을 수 있게 되었으며, 주님의 나라에 초대되는 영광을 얻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우리 자신이 주님의 초대에 제대로 응답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스스로를 제때 점검하지 못해서 황폐해진 내면으로 주님께 나아갈 힘이 없기 때문입니다. 욕심은 이제 버리고 꾸준한 노력을 통해 주님을 닮아야 하겠습니다. 주님의 마음과 내 마음이 진정으로 하나 될 때, 큰 기쁨의 삶을 살 수 있게 됩니다. 
 
예수 성심 대축일인 오늘이지만, 동시에 우리는 ‘사제 성화의 날’을 지냅니다. 사제 생활이 그렇게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제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날을 정한 것입니다. 
 
사제들의 인간적인 부족함을 보지 않았으면 합니다. 대신 그들 안에서 활동하시는 주님의 뜨거운 사랑을 보셨으면 합니다. 이 사랑을 보게 될 때, 사제들을 위해 기도할 수 있고 또 사제들도 교우들을 위해 기도할 수 있게 됩니다. 이렇게 서로를 위해 기도하고 함께 하는 모습이 바로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이며, 하느님 나라를 향한 우리의 힘찬 발걸음이 될 것입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최고의 스승은 지식이 뛰어난 사람이 아니다. 자신이 배울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학생들 스스로 믿게 하는 자이다.

- 노먼 커즌스 (Norman Cousins)

 

 

보편성보다는 다양성을

 

미 항공우주국에서 우주선에 탈 우주인을 위한 최고의 비행용 시트를 설치해야만 했습니다. 이를 위해 수천 명의 체형을 연구해서 표준 시트를 만들었습니다. 수천 명의 체형을 연구해서 만든 것이기 때문에, 모든 우주인에게 최고의 만족도를 가져올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정반대였습니다. 이 표준 항공 시트에 맞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보편적이라는 말로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런데 자연만 봐도 다양함이 얼마나 넘쳐나는지 모릅니다. 매년 같은 꽃이 피어나는 것 같지만, 전혀 다른 모습으로 피어나는 꽃입니다. 그렇다면 사람은 어떻습니까? 
 
모두 다 그렇다는 보편성을 내세워서는 안 됩니다. 나는 나대로, 너는 너대로 살아가는 다양성을 인정할 수 있을 때 서로가 서로를 지지하는 행복한 사회가 될 수 있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서로의 마음이 한마음이 되는 바탕은 십자가

 

"피와 물이 흘러나왔다." (요한 19, 34)

우리가 아프면 예수님께서도 아프시다. 우리의 마음을 알아주시는 예수 성심이시다. 예수 성심께 마음을 연다. 따르고 닮아야 할 마음이 있다. 

예수 성심은 십자가의 마음이다. 모든 것을 품어주시는 십자가의 마음이다. 사라지지 않는 거룩한 마음이시다. 예수 성심은 우리 몸과 마음의 의지처가 되신다. 정신적 공허함을 당신 마음으로 채워주신다. 서로의 마음이 한마음이 된다. 말씀과 마음은 이렇듯 하나이다. 

마음으로 사는 법을 배운다. 예수 성심은 우리의 일상을 비추어주신다. 마음이 어두우면 모든 것이 어둡다. 마음이 빛이다. 마음이 고요하면 모든 것이 고요하다. 마음은 십자가를 먹고산다. 

마음을 성장시키는 십자가이다. 기다려주시는 예수 성심은 사제들을 성화시킨다. 마음을 살리시는 예수 성심이시여 한마음이 되게하여 주소서. 주고받아 한마음이 되는 성심(聖心)이시다. 성심의 바탕은 십자가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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