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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4/02/07 (수)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4. 2.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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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와 하느님께 경배드리세. 우리를 내신 주님 앞에 무릎 꿇으세. 그분은 우리의 하느님이시네.

주님, 주님의 가족을 자애로이 지켜 주시고 천상 은총만을 바라는 저희를 끊임없이 보호해 주소서.

 

2024년 2월 7일 연중 제5주간 수요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랜선으로 초대해요!

2024년 2월 7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연중 제5주간 수요일

 

 

오늘 성경구절 이미지

주님께 네 길을 맡기고 신뢰하여라. 그분이 몸소 해 주시리라. (시편 37장 5절)

 

주님께 네 길을 맡기고 신뢰하여라. 그분이 몸소 해 주시리라. (시편 37장 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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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37장 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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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열왕기 상권 10,1-10)
    스바 여왕은 솔로몬의 모든 지혜를 지켜보았다.

  • 오늘 복음
    (마르코복음 7,14-23)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힌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4년 2월 7일 (수) 평화방송 매일미사 온라인 유튜브 실시간 스트리밍 매일미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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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 복음 (Gospel)
복음 (Gospel)

 

주님, 당신 말씀은 진리이시니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해 주소서.

 

 

마르코복음
7장 14-23절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힌다.

 

그때에 

14 
예수님께서 군중을 가까이 불러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모두 내 말을 듣고 깨달아라. 

15 
사람 밖에서 몸 안으로 들어가 그를 더럽힐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오히려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그를 더럽힌다.” 

(16)·17 
예수님께서 군중을 떠나 집에 들어가시자, 제자들이 그 비유의 뜻을 물었다. 

18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너희도 그토록 깨닫지 못하느냐? 밖에서 사람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무엇이든 그를 더럽힐 수 없다는 것을 알아듣지 못하느냐? 

19 
그것이 마음속으로 들어가지 않고 배 속으로 들어갔다가 뒷간으로 나가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모든 음식이 깨끗하다고 밝히신 것이다. 

20 
또 이어서 말씀하셨다.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 그것이 사람을 더럽힌다. 

21 
안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쁜 생각들, 불륜, 도둑질, 살인, 

22 
간음, 탐욕, 악의, 사기, 방탕, 시기, 중상, 교만, 어리석음이 나온다. 23 이런 악한 것들이 모두 안에서 나와 사람을 더럽힌다.”

 

 

매일미사 실시간 스트리밍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매일미사 평화방송

 

 

2024년 2월 7일 05:00
박우성 암브로시오 신부

 

✚ 미사시작 00:23

✚ 강론시작 07:25

 

 

 

그 외 성당 실시간 스트리밍 미사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오늘의 말씀 묵상
매일미사
최정훈 바오로 신부

 

죄가 시작되는 곳은 우리의 마음

 

“사람 밖에서 몸 안으로 들어가 그를 더럽힐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오히려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그를 더럽힌다.”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은 물질적인 영역보다 영적인 영역이 더 중요하다는 말씀입니다.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은 정결을 결정하는 기준이 장소나 사물이나 음식과 같이 외적이고 물질적인 것에 있었고, 이러한 부정한 것들에서 자신을 분리시키는 데 집착하였습니다. 그와 반대로 예수님께서는 인간을 더럽히는 것은 밖에 있지 않고, 그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에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이 말씀을 조금 더 확장해서 묵상하여 보면, 죄에 대한 책임이 어디에 있는지도 생각하여 볼 수 있습니다. 죄로 더럽혀지는 것에 대한 책임은 우리 밖이 아니라 우리 안에서 찾아야 합니다. 

외적인 조건이나 상황이나 문화가 나를 죄짓게 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상황이 나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는 사실이지만, 결정적으로 죄를 짓는 주체는 바로 나 자신입니다.

주변 여건과 상황이 우리를 직접 물들이거나 더럽히지 않습니다. 그것을 받아들이거나 거부하는 선택권은 자기 자신에게 있습니다. 밖에서 우리를 유혹할 수는 있지만, 죄가 시작되는 곳은 생각하고 판단하며 결정하는 우리의 마음입니다. 

죄를 지었을 때, 밖의 세상 또는 다른 사람을 탓하기보다 그것에 내가 어떻게 반응하였고 무엇을 선택하였는지,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야고보가 “저마다 자기 욕망에 사로잡혀 꼬임에 넘어가는 바람에 유혹을 받는 것입니다.”(야고 1,14)라고 말하였듯이 외부의 유혹은 우리 내부의 욕망과 함께일 때 그 힘을 발휘합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프란치스코회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어리석었음을 깨달은 기쁨

 

“너희는 모두 내 말을 듣고 깨달아라. 사람 밖에서 몸 안으로 들어가 그를 더럽힐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오히려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그를 더럽힌다.” 

오늘 주님께서는 우리 모두 당신 말씀을 듣고 깨달으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깨닫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이참에 생각해봤습니다. 

우리가 아는 것에는 수학이나 과학처럼 지적 능력으로 아는 것이 있고, 진리나 진실처럼 지혜로 깨달아 아는 것이 있는데 제 생각에 깨닫는다는 말은 ‘깨다’와 ‘알다’가 합친 말입니다. 

그러니까 1+1=2라는 것은 지적 능력만 있으면 되지 깨달아 알 것까지 없지만, 진리나 진실은 반드시 지혜로운 자만 깨달아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말의 참과 거짓은 지혜로운 자만 깨달아 알 수 있는데 거짓이 깨져야 참이 드러나듯 거짓을 참인 줄 알던 어리석음이 깨져야 지혜가 열리고 참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니까 깨달음은 항상 자기가 어리석었고 바보였음을 깨닫고, 그래서 거짓을 참인 줄 잘못 알고 있었음을 깨닫는 데서부터 시작되고, 마치 알이 깨지듯 거짓을 참인 줄 알던 자신이 크게 깨지는 데서부터 시작됩니다. 

그래서 생각해봅니다. 처음부터 참만 알고 거짓은 아예 알지 못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보통의 우리는 슬프게도 그렇지 못하고,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어리석음과 잘못된 앎이 있었기에 깨달음이란 새로운 앎도 나에게 있고 기쁨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것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울어야 합니까? 웃어야 합니까? 슬퍼해야 합니까? 기뻐해야 합니까? 그러나 깨달음의 기쁨을 위해 앞서 슬픈 것이 솔로몬처럼 기쁘다가 나중에 슬퍼지는 것보다 낫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처럼 젊어서는 어리석어 돈 많은 것이 행복인 줄 알다가 돈도 잃고 건강도 잃는 아픔과 슬픔을 겪게 되지만 그 덕에 늙어서 참 행복의 지혜를 깨달아 기쁘게 되는 것이 낫습니다. 

내일 독서에서 보게 되듯이 솔로몬처럼 젊어서는 지혜롭게 선과 악을 분별할 줄 알아 칭송받고 행복하다가 늘그막에 지혜의 눈이 멀어 슬프게 되는 것은 참 슬프고 더 나아가 불행합니다. 

아무튼 오늘 주님께서는 우리보고 깨달으라고 하십니다. 손이 깨끗한 것보다, 마음이 깨끗한 것이 더 낫다는 진리를 깨달으라고, 그래서 마음이 깨끗한 진실한 사람이 되고, 진실한 생활을 하라고 하십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마음의 작동원리를 알면 무슨 죄에서든 벗어날 수 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우리 안에서 나오는 것들만 우리를 더럽힐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은 오염의 원천이 내 안에 있다는 뜻입니다. 

제가 오산성당에 있을 때 성수가 계속 더러워지는 일이 있었는데 그 원인을 밖에서 찾았습니다. 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수가 항아리에서 줄어들자 그 안에 박으로 만든 바가지가 엎어져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 바가지에서 옻칠이 벗겨지며 성수를 더럽히고 있었습니다. 나를 더럽히는 것은 내 마음에서 나오는 것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사람에게서 나쁜 생각들, 불륜, 도둑질, 살인, 간음, 탐욕, 악의, 사기, 방탕, 시기, 중상, 교만, 어리석음이 나온다. 이런 악한 것들이 모두 안에서 나와 사람을 더럽힌다고 하십니다. 

사람의 마음 안에서 욕망이 시작됩니다.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욕구는 머리가 아닌 마음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악의도 그렇고 불륜을 저지르거나 남의 것을 탐내고 사람을 죽이고 싶은 마음도 그렇습니다. 위 여러 우리를 더럽히는 죄들은 ‘내가 ~을 하고 싶다’에 다 들어갑니다. 그러니 나의 마음에서 모든 죄가 나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죄에서 벗어나는 방법도 단순해집니다. 모든 죄의 원인인 마음만 바꾸면 됩니다. 마음은 어떻게 바뀔 수 있을까요? 마음의 작동원리를 알아야 합니다. 

‘무엇이든 물어보살’ 45화에 최면으로 금연을 하게 된 사례가 나옵니다. 이남현 씨는 담배를 17년 정도 피웠습니다. 지금은 도저히 담배를 끊을 수 없었는데 최면으로 금연 성공 5년 차가 됩니다. 

편안히 눈을 감고 왼쪽 손에 공이 있다고 생각하고 그 안에 담배 피울 때의 장소, 느낌, 상황들을 다 담습니다. 그리고 오른손에는 내가 가장 싫어하는 것들을 담습니다. 싫어하는 사람, 무서운 것, 혐오스러운 것들을 담습니다. 

하나, 둘, 셋 하면 오른손에 있는 이미지를 왼손에 있는 이미지에 마구 섞어 비벼줍니다. 내가 싫어하는 이미지가 담배 속으로 다 스며들어 가는 것입니다. 그러다 이 부정적인 이미지와 섞인 담배의 이미지를 가슴속으로 깊게 밀어 넣어줍니다. 이런 과정을 여러 번 반복하면 효과가 더욱 좋다고 합니다. 

이남현 씨는 마음의 작동원리를 이용하여 금연을 한 사례입니다. 마음은 믿고 바라고 사랑하는 능력입니다. 그동안 마음이 담배가 행복한 것이라 믿고 바라고 사랑해왔습니다. 머리는 그저 마음을 따를 뿐입니다. 머리로 아무리 담배에서 벗어나려 해도 안 됩니다. 그렇다면 마음만 바꾸면 됩니다. 바로 마음이 담배가 행복이라 믿지 못하게 만들어 바라지도 사랑하지도 않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이남현 씨는 최면으로 그렇게 담배에 안 좋은 이미지를 가미함으로써 담배가 행복이 아니라 고통이라고 마음이 믿게 하였습니다. 그것을 계속 가슴에 밀어 넣은 것입니다. 그러니 담배를 만났을 때 이전보다 덜 사랑하게 되고 그러면 끊기가 쉬워집니다. 마음의 작동원리만 알면 못 할 게 없는 것입니다. 최면이어도 담배를 끊으면 좋은 거 아니겠습니까?

앤서니 라빈스의 『네 안에 잠든 거인을 깨워라』에서 이런 사례가 나옵니다. 앨라배마에서 자란 한 젊은이의 이야기입니다. 약 15년 전, 학교의 7학년(한국의 중학교 1학년) 불량배가 싸움을 걸어오더니 주먹으로 때려 그를 기절시켰습니다. 이 소년은 정신을 차린 뒤, 그 불량배를 죽이겠다며 복수를 다짐했습니다. 그는 집으로 가서 어머니가 가지고 있던 22구경 권총을 집어 들고 그 불량배를 찾아 나섰습니다. 

마침내 그 불량배가 사정권에 들어왔고, 소년이 권총을 쏘기만 하면 그 불량배는 죽음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 그는 자신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내가 지금 방아쇠를 당기면 앞으로 나는 어떻게 될까?’ 그러고는 마음속에 한 이미지가 떠올랐습니다. 몹시 고통스러워하는 자기 모습이었습니다. 

자신의 운명이 판가름 날 그 짧은 순간에 자신이 감옥에 가는 모습이 소름 끼치도록 뚜렷하게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감옥에서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그 고통은 복수를 하겠다는 기대감보다 훨씬 더 컸습니다. 결국 그는 목표물을 바꿔 나무에 총을 쐈습니다. 

이 소년이 바로 훗날 미식축구와 야구에서 뛰어난 활약을 보인 보 잭슨(Bo Jackson)입니다. 그는 자서전에서 이 장면을 묘사하면서, 절체절명의 기로에서 감옥을 연상함으로써 받는 고통이 복수한다는 명분으로 다른 소년을 죽이는 만족감보다 의심의 여지 없이 훨씬 더 강력했다고 토로했습니다. 

마음의 초점을 바꾸고 고통과 기쁨 중에서 하나를 결정함으로써 이 소년은 미래가 없을 뻔했던 삶 대신 우리 시대의 가장 위대하고 성공적인 운동선수의 삶을 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결국 마음은 내가 행복이라고 믿는 것을 희망하게 되고 그것을 사랑하여 그렇게 행동하게 됩니다. 그러니 마음을 바꾸려면 행복의 기준을 바꿔야 합니다. 행복의 기준은 정체성에서 옵니다. 

개는 네 발로 걷는 게 행복이라고 여기고 사람은 두 발로 걷는 게 행복이라고 여깁니다. 물론 두 발로 걷는 개도 있고 네발로 기는 사람도 있습니다. 

욕망은 자신이 누구냐고 믿는 정체성에서 그 정체성에 있는 자신을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 바라는 마음입니다. 욕망으로 사람이 타락하기도 하고 거룩해지기도 합니다. 피조물은 좋은 것을 욕망할 수 없습니다. 내가 창조자와 하나가 되었다고 믿을 때 죄가 아닌 사랑이 행복이라고 여기게 됩니다. 

마치 아이였다가 갑자기 부모가 된 사람처럼. 보 잭슨은 감옥에 있는 것보다 밖에 있는 것이 더 행복이라고 여겼기에 사람을 죽일 수 없었습니다. 우리가 이미 하느님의 자녀고 하늘 나라에 사는 존재라고 믿어야 하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조명연 마태오 신부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힌다.

 

이탈리아 국영 텔레비전에서의 흥미로운 조사가 있습니다. 이탈리아에서는 자동차가 신호에 걸릴 때, 외국인 노동자가 서 있는 차의 앞 유리를 재빨리 닦습니다. 그때 운전자는 그들에게 동전 몇 닢을 건네곤 합니다. 그렇다면 동전이 가장 많이 걷히는 도시는 잘 사는 도시 밀라노인지 아니면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많은 나폴리인가라는 비교 실험을 한 것입니다. 어디일까요? 당연히 부유한 도시인 밀라노 사람들이 더 어려운 사람을 도울 것 같지만, 실제로는 나폴리였다고 합니다. 
 
새 성전을 지은 신부님께서는 본당에서 부유한 사람들이 많은 봉헌을 해서 성전을 지을 수 있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실제로 봉헌금을 살펴보니 돈 많은 사람의 봉헌이 아니었다고 하더군요. 오히려 넉넉하지 않은 사람들의 봉헌들이 모여서 이 아름다운 성전을 지을 수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가난해서, 또 여유가 없어서 봉헌하지 못한다는 것은 핑계였습니다. 예전에 만났던 한 자매님도 기억납니다. 성소국장으로 있을 때였는데 어떤 자매님께서 저를 찾아와서 신학생을 위해 써달라면서 후원금을 주셨습니다. 알고 보니 이분은 생활 보호 대상자였습니다. 신학생들을 후원하고 싶다는 마음은 가득했지만, 여유가 없어서 기도로만 대신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교통사고를 당하신 것입니다. 꽤 많이 받은 합의금으로 살림에 보탬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주님께서 원하실 것이 무엇인지를 기도한 뒤에 성소자를 위해 써달라며 모두 가지고 와서 봉헌하셨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멋진 모습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여유가 있고 없음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마음’을 품고 있느냐가 중요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겉으로 드러나는 부분만을 중요하게 여기면서 마음을 깨끗하게 만들려고 하지 않습니다. 깨끗한 마음으로만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데, 우리는 자기 마음이 아닌 다른 사람의 시선만을 신경 쓰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 그것이 사람을 더럽힌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즉, 그 마음의 상태에 따라 사람을 깨끗하게도 하고 더럽게도 만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은 율법의 준수만을 생각합니다. 율법을 잘 지킴으로 깨끗함을 유지할 수 있고, 그래야만 자기들이 하느님께 사랑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과연 그들의 생각이 맞았을까요? 그들의 생각에 예수님께서는 “이 위선자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자기의 마음은 전혀 보지 않으면서 겉으로만 올바르게 보이려고만 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부족함과 나약함을 잘 아십니다. 그래서 죄로 가득한 마음 역시 받아주십니다. 그러나 회개하지 않고,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는 위선의 마음은 절대로 받아주시지 않습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사람은 그 입의 대답으로 말미암아 기쁨을 얻나니 때에 맞는 말이 얼마나 아름다운고.

- 잠언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 그것이 사람을 더럽힌다.

 

마음이 만들어내는 마음의 계절을 걸어가는 우리들 삶입니다. 마음에 필요한 것은 말씀이며 참된 반성입니다. 마음의 참맛은 매순간 마음을 고쳐먹는 우리의 맑은 마음입니다. 또한 가장 추하고 가장 더러운 것이 우리들 마음입니다. 삶의 여정을 더럽히는 것은 우리들 마음입니다. 

그 사람의 마음에서 나온 것이 그 사람을 더럽힙니다. 그래서 깨끗한 마음이 깨끗한 삶으로 드러납니다. 마음을 바꾸어 주시는 마음의 하느님이십니다. 마음이 바뀌면 이 모든 것은 삶의 깨달음으로 바뀝니다. 

지저분한 마음도 거절하지 않으시는 하느님이십니다. 악착같이 감추어도 하느님 앞에서는 감출 수 없는 것이 마음입니다. 마음을 봉헌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깨끗한 기쁨은 깨끗한 마음에서 비롯됩니다. 깨끗해지는 마음이 참된 신앙입니다. 오히려 마음 안에서 하느님을 만납니다. 

한줄기 희망의 등불은 다름아닌 하느님을 향한 우리들 마음입니다. 마음에서 희망을 만나고 기쁨을 만나는 가장 좋은 날 되십시오. 하느님께서는 마음을 사랑하시고 마음 속 생각들을 바로잡아 선하게 맑고 깨끗하게 바꾸어 주십니다. 

사람을 더럽히는 마음이 아니라 우리 주위를 소중하고 맑게 살게하는 맑은 사람의 마음이길 기도드립니다. 하느님 나라는 우리들 마음에 있음을 절실히 깨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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