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 와 하느님께 경배드리세. 우리를 내신 주님 앞에 무릎 꿇으세. 그분은 우리의 하느님이시네.
주님, 주님의 가족을 자애로이 지켜 주시고 천상 은총만을 바라는 저희를 끊임없이 보호해 주소서.
2024년 2월 9일 연중 제5주간 금요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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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2월 9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연중 제5주간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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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분이 하신 일은 모두 훌륭하다. (마르코복음 7장 37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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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코복음 7장 37절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열왕기 상권 11,29-32; 12,19)
이스라엘은 다윗 집안에 반역하였다. - 오늘 복음
(마르코복음 7,31-37)
예수님께서 귀먹은 이들은 듣게 하시고 말못하는 이들은 말하게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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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저희 마음을 열어 주시어 당신 아드님 말씀에 귀 기울이게 하소서.
마르코복음
7장 31-37절
예수님께서 귀먹은 이들은 듣게 하시고 말못하는 이들은 말하게 하셨다.
그때에
31
예수님께서 티로 지역을 떠나 시돈을 거쳐, 데카폴리스 지역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갈릴래아 호수로 돌아오셨다.
32
그러자 사람들이 귀먹고 말 더듬는 이를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 그에게 손을 얹어 주십사고 청하였다.
33
예수님께서는 그를 군중에게서 따로 데리고 나가셔서, 당신 손가락을 그의 두 귀에 넣으셨다가 침을 발라 그의 혀에 손을 대셨다.
34
그러고 나서 하늘을 우러러 한숨을 내쉬신 다음, 그에게 “에파타!” 곧 “열려라!” 하고 말씀하셨다.
35
그러자 곧바로 그의 귀가 열리고 묶인 혀가 풀려서 말을 제대로 하게 되었다.
36
예수님께서는 이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그들에게 분부하셨다. 그러나 그렇게 분부하실수록 그들은 더욱더 널리 알렸다.
37
사람들은 더할 나위 없이 놀라서 말하였다. “저분이 하신 일은 모두 훌륭하다. 귀먹은 이들은 듣게 하시고 말못하는 이들은 말하게 하시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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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2월 9일 05:00
박진수 사도요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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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묵상
매일미사
최정훈 바오로 신부
저희 마음을 열어 주시어 당신 아드님 말씀에 귀 기울이게 하소서.
오늘 전례의 모든 말씀은 주님의 말씀을 잘 듣고 따라야 함을 전합니다. 제1독서는 이스라엘 왕국이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로 갈라진 사건을 전하는데, 그 이유는 솔로몬이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기 때문입니다(11,11-13 참조).
“듣는 마음”을 청하였던 솔로몬의 마음은 점차 하느님에게서 돌아섰고, 결국 다른 신을 따르지 말라는 주님의 명령에(11,2; 신명 7,1-4 참조) 귀를 닫았습니다. “너에게 다른 신이 있어서는 안 된다. 너는 낯선 신을 경배해서는 안 된다.”(화답송)라는 하느님의 명령을 듣지 않은 결과로 이스라엘은 두 왕국으로 갈라졌습니다.
복음은 귀먹은 이를 낫게 하시려고 온 정성을 다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귀먹고 말 더듬는 이를 한마디 말씀으로 고쳐 주시지 않고, 일련의 행위를 통해서 치유하십니다.
그를 군중에서 따로 데리고 나가시고, 손가락을 그의 귀에 넣으시며, 손에 침을 발라 혀에 대시고, 하늘을 향하여 한숨을 내쉬시며, “에파타!” 하고 말씀하십니다. 이 모든 행위가 끝났을 때 비로소 병자의 입과 귀가 열립니다.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성서를 통해서, 교회 문헌과 가르침을 통해서, 전례와 기도를 통해서 말씀하실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서, 개인적이고 사회적인 사건을 통해서, 우리 안의 양심을 통해서도 끊임없이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믿음이 부족한 우리는 그 말씀을 온전하게 듣지 못합니다. 우리의 닫힌 귀를 열어 주시려고 다양한 방식과 여러 행위로 애쓰시는 주님을 믿으며, 마음을 열어 주님의 말씀을 잘 듣고 따르도록 합시다.
“주님, 저희 마음을 열어 주시어 당신 아드님 말씀에 귀 기울이게 하소서”(복음 환호송).
오늘의 말씀 묵상
프란치스코회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특별한 사랑이 필요합니까?
“예수님께서는 그를 군중에게서 따로 데리고 나가셔서, 당신 손가락을 그의 두 귀에 넣으셨다가 침을 발라 그의 혀에 손을 대셨다. 그러고 나서 하늘을 우러러 한숨을 내쉬신 다음, 그에게 “에파타!” 곧 “열려라!” 하고 말씀하셨다.”
오늘 주님께서는 그 유명한 에파타 기적을 행하십니다. 잘 아시다시피 이 ‘에파타’를 우리가 세례 때도 재현합니다.
세례로 이제부터는 주님의 말씀을 잘 듣는 귀가 열리고, 주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입이 열리라는 뜻이겠습니다.
그런데 오늘 주님의 행위가 다른 때와 같지 않습니다. 다른 때는 주님의 행위가 이렇게 은밀하지 않은데 오늘은 주님께서 귀와 입에 장애가 있는 사람을 따로 데리고 나가십니다.
그리고 다른 때는 그저 말씀 한마디로 치유해주시는데 오늘은 여러 행위와 직접 손을 대시며 치유해주십니다. 어떻게 보면 과장된 제스츄어의 연출 같기도 합니다.
왜 이렇게 하신 걸까요? 다른 사람들보다 더 사랑하신 것일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더 사랑하신 것이 아니라 특별한 사랑을 하신 것이고, 그에게 필요한 사랑을 하신 것입니다.
어쩌면 그는 쉽게 열리는 사람이 아니었나 봅니다. 꼭 이렇게 해야만 열리는 사람이었을 수 있습니다.
마음의 문이 굳게 닫힌 사람. 귀와 입만 닫힌 사람이 아니라 그로 인해 마음의 문까지 굳게 닫힌 사람일 것입니다.
사실 귀와 입의 장애는 능력의 주님께서 말씀 한마디로 고치실 수 있고 그런 예는 성경에 수도 없이 많지 않습니까?
창세기에서는 말씀 한마디로 모든 것을 창조하셨고, 백인대장은 한 말씀만 하시면 종이 나을 거라는 믿음을 고백하고, 그래서 주님께서는 그의 종을 찾아가지 않으시고 한 말씀으로 치유하셨잖습니까?
그러나 오랜 장애로 그의 마음은 정말 굳게 닫혀있었고, 그래서 이 마음의 장애는 능력이 아니라 사랑으로 치유하셔야 했을 겁니다.
내가 너를 정말로 사랑한다. 너만 미워한 것이 아니다. 너만 미워해서 너의 귀와 입을 닫히게 한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 너만 고통을 많이 당했다고 생각하니 지금 이렇게 너만 특별히 사랑할게.
이런 주님의 특별한 사랑과 말을 행위에 담아 그에게 말씀하셨을 것이고, 이런 특별한 사랑이 그의 마음에 닿아 귀와 눈과 함께 마음도 열렸을 겁니다.
그런데 이런 특별한 사랑이 우리에게도 필요합니까? 이런 특별한 사랑이 아직도 우리에게 필요합니까?
아직도 필요하다면 우리의 마음이 아직도 완고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아직도 그렇다면 곧 사순 시기가 다가오는데 마음이 아직 사순 시기인 우리는 이런 말씀을 자주 듣게 될 것입니다.
주님의 목소리를 오늘 듣게 되거든, 너희 마음을 무디게 가지지 말라!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예수님은 누구에게 귀를 열어주시는가?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귀먹고 말 더듬는 사람을 고쳐 주십니다. 사람들은 그의 머리에 손을 얹어 고쳐 주시라고 청했지만, 예수님은 다른 방식을 쓰십니다. 곧, 그 사람을 군중 밖으로 데려 내오신 다음 당신 손가락을 그의 두 귀에 넣으셨다가 침을 발라 그의 혀에 손을 대시고 숨을 내쉬신 다음 “에파타!”라고 하십니다. 이 모든 일은 ‘성령’을 주시는 상징적 행위입니다.
예수님은 씨 뿌리는 농부의 비유를 말씀하시고 ‘들을 귀’가 있는 이들은 알아들으라고 하십니다. 들을 귀란 성령으로 말씀의 정신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그런데 왜 어떤 사람에게는 그런 은총을 주시고 어떤 사람에게는 주지 않으실까요?
성녀 마르가리타 마리아 알라코크는 어릴 때부터 성체에 대한 신심이 남달리 뛰어났습니다. 그래서 남들보다 빠르게 9세에 첫영성체를 합니다. 첫영성체 한 후 마르가리타는 열병에 걸려 4년 동안 침상에 누워 지냈습니다. 그러다 성모 마리아에게 만약 완쾌되면 꼭 수도자로 하느님에게 자신을 봉헌하겠다는 서원을 합니다. 신기하게도 그 순간에 병이 치유되어 완쾌되었습니다.
성녀는 자라면서 자신이 한 서원을 잊었습니다. 세속의 삶에 빠져들 때쯤 예수 그리스도의 환시를 목격합니다. 그녀는 단순한 환각으로 치부해버렸습니다. 그만큼 세속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다시 한번 그녀 앞에 나타나 과거 그녀가 자신을 하느님에게 봉헌하겠다는 서원을 한 것을 상기시키십니다. 그녀에게 자신에게 한 서원을 잊어버린 것을 책망하였습니다. 이 같은 체험을 한 마르가리타 마리아 알라코크는 성모 마리아 방문 수녀회 소속 수녀원에 입회하여 수도 서원을 한 후 수녀가 됩니다. 당시 그녀의 나이 24세 때의 일이었다.
수녀가 된 지 3년째 되던 해인 1673년 12월 27일, 그녀는 다시 한번 그리스도의 계시를 받습니다.
어느 날 기도에 몰두하고 있던 그녀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나타나 위에는 십자가가 있고 주위에는 가시관이 둘러있는, 사랑의 불꽃으로 타오르는 자신의 성심을 보여주면서 “보라! 사람들을 이렇듯 사랑하였고, 그들에게 이렇듯 많은 은혜를 베풀었건만 이 무한한 사랑에 대해 오직 배은망덕만 당하는 이 성심을! 내 성심은 망각과 무관심 그리고 무례를 견디고 때로는 특별한 사랑의 유대로써 내 성심과 밀접히 결합된 이들로부터 이 모든 능욕을 당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성체 성혈 대축일로부터 일주일이 지난 후 금요일을 예수 성심을 공경하는 축일(예수 성심 대축일)로 정하고, 그날 영성체하는 것은 물론 제대 위에 성체를 현시함으로써 예수 성심이 받은 불경을 배상하기 위하여 엄숙히 보상하도록 명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 성심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공경하도록 권하는 모든 사람에게 자신의 사랑을 부어줄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또한 그녀는 매주 목요일 밤마다 한 시간 동안 겟세마니 동산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겪었던 고통의 시간을 묵상하라는 계시를 받았습니다. 그리하여 오늘날 모든 가톨릭 신자는 첫 번째 목요일 밤마다 한 시간 동안 본당에서 성시간을 갖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계시가 바로 다 믿어지고 받아들여졌을까요? 처음엔 아무도 안 믿었습니다. 특별히 함께 사는 수녀들이 더 안 믿었습니다. 그러한 고통은 아무도 모를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녀를 훈련하셨습니다. 은총을 받으면 약속을 꼭 지키도록. 그래서 끝까지 참고 견뎠고 죽음 직전까지 가며 원장 수녀를 믿게 합니다. 나중에 고해 사제였던 클라우디오 드 라 콜롬비에르 신부의 지지를 받았는데, 그는 마르가리타 마리아 수녀가 정말로 하느님의 계시를 받았다고 보았습니다. 이 둘은 다 성인, 성녀가 됩니다.
우리도 주님 목소리를 듣고 주님을 뵈옵고 싶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을 입으로 발설하게 되면 세상 모든 이들을 적으로 만나야 합니다. 이것을 견뎌낼 수 없다면 그분은 우리 귀를 열어주지 않으실 것입니다.
마르가리타 성녀에게 예수님은 “너의 모든 것을 바쳐라.”, 또 “내가 좋아하는 것을 너도 좋아하고 그 외에는 아무 판단도 희망도 의지도 가지지 말아라.”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누구에게 귀를 열어주실까요? 곧 들을 귀를 주실까요? 바로 혀까지 봉헌할 사람에게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조명연 마태오 신부
예수님께서 귀먹은 이들은 듣게 하시고 말못하는 이들은 말하게 하셨다.
이제까지 했던 선택 중에 가장 잘한 것을 제게 꼽으라고 한다면, 자신 있게 사제가 된 것을 말합니다. 사제 서품을 받기 전, 신학생 때 다른 길을 가고 싶다는 마음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꽤 시간이 지나 중년의 나이에 들어서는 이 사제의 길이야말로 가장 커다란 축복임을 깨닫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돈, 명예에서 벗어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요즘 학창 시절 때의 친구들을 만나면, 세상일이 너무 힘들다고 합니다. 힘들다면서도 이 세상을 벗어나지 못하니 계속해서 힘들다는 말만 하고 있습니다.
맹자는 자신의 책 ‘맹자’에서 군자삼락, 즉 군자의 세 가지 즐거움을 말합니다.
“군자에게는 세 가지 즐거움이 있으니 천하의 왕 노릇은 포함되지 않는다. 부모 형제가 모두 살아 계시고 무탈한 것이 첫 번째 즐거움이고, 하늘을 우러러 부끄럽지 않고 사람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것이 두 번째 즐거움이다. 그리고 천하의 영재를 얻어 이들을 교육하는 것이 세 번째 즐거움이다. 천하의 왕 노릇은 그 안에 포함되지 않는다.”
저는 이 군자삼락을 거의 가진 것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부모님 모두 돌아가셨지만, 우리 신앙 안에서는 죽음이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세상으로 건너가신 것이니 주님 안에서 무탈하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 안에 살지만, 세상 것을 추구하지 않아 그래도 100%는 아니지만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미사 강론과 강의를 통해 교육하고 있으니 이 역시 큰 즐거움입니다. 계속해서 이 군자삼락에 집중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진짜 기쁨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세상의 성공과 권세를 쥐는 것이 즐거움이 아닙니다. 하루하루 충실한 삶 안에서만 진짜 행복이 나오게 됩니다.
주님께서 강조하셨던 행복도 세상의 성공과 권세에 있지 않았습니다. 주님과 어떤 사람이 함께했었는지를 떠올려 보십시오. 당시에 힘을 가지고 있었던 종교 지도자나 권력을 가진 사람이었습니까? 아닙니다. 오히려 소외되고 힘든 삶을 살고 있었던 병자나 마귀 들린 사람이었습니다. 또 사람들에게 손가락질받는 세리나 창녀와 같은 죄인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주님과 함께하는 사람이 행복하다고 하십니다.
그 행복을 느낄 수 있도록 하시는 주님을 오늘 복음에서 봅니다. 예수님께서는 귀먹고 말 더듬는 이를 고쳐주실 때, 당신의 전지전능하심을 이용해서 말씀만으로도 충분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으시지요. 당신 손가락을 그의 두 귀에 넣으셨다가 침을 발라 그의 혀에 손을 대십니다. 부모가 어린아이에게 보이는 사랑처럼 하십니다. 그만큼 사랑한다는 것을 이 귀먹고 말 더듬는 이가 느끼도록 해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에파타!”, 곧 “열려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단순히 치유를 위한 말씀이 아닐 것입니다. 그보다는 마음을 열고 주님의 사랑을 받아들이라는 것이지요. 우리는 주님의 사랑을 받아들이고 있나요? 진정한 행복의 길을 가고 있습니까?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기쁨을 주는 사람만이 더 많은 기쁨을 줄 수 있다.
- 알렉산더 듀마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열려라!
설 연휴가 시작되었습니다. 상처를 치유하고 새 힘을 솟게하시는 주님의 열린 날이며 열린 말씀입니다. 열린 말씀은 가슴을 나누는 열린 대화로 이어집니다. 주님과 함께 열리면 삶의 모든 순간은 사랑스럽지 않은 순간이 없습니다. 열리는 만큼 우리들의 인격적인 관계는 복음처럼 깊어갈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막혀있는 부분을 열어주십니다. 주님께 열리는 것이 주님께 내어주는 것입니다. 열려서 나누는 우리들의 의견과 주장을 예수님께서는 끝까지 귀기울여 들어주십니다. 소통과 교감을 이루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자신이 열려야 합니다. 열린다는 것은 상대방의 비판과 반대를 우리가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열리는 길이 건강하게 화합하는 관계의 첫시작입니다. 판단과 평가를 잠시 내려놓고 우리가 먼저 듣는 것입니다. 열려야 들을 수 있고 열려야 보듬을 수 있습니다. 소통과 공감을 가로막고 있는 크나큰 장벽의 장본인은 좀체 열리지 않는 우리자신입니다. 열리는 것이 진정한 감사이며 기쁨이며 기도입니다. 새로워지는 것은 열리는 것입니다. 새롭게 기쁘게 활짝 열리는 기도의 날 은총의 날 되십시오. 열리면 알게되는 삶의 선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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