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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4/02/11 (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4. 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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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 이 몸 보호할 반석 되시고, 저를 구원할 성채 되소서. 당신은 저의 바위, 저의 성채이시니, 당신 이름 위하여 저를 이끌어 주소서.

하느님, 바르고 진실한 마음 안에 머무르시겠다고 하셨으니 저희에게 풍성한 은총을 내리시어 하느님의 마땅한 거처가 되게 하소서.

 

2024년 2월 11일 연중 제6주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랜선으로 초대해요!

2024년 2월 11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연중 제6주일

 

 

오늘 성경구절 이미지

아침에 당신 자애로 저희를 채워 주소서. (시편 90장 1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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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린토1서 10장 3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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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레위기 13,1-2.44-46)
    부정한 사람은 진영 밖에 혼자 살아야 한다.

  • 제 2독서
    (코린토 1서 10,31-33 / 11,1)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처럼 여러분도 나를 본받는 사람이 되십시오.

  • 오늘 복음
    (마르코복음 1,40-45)
    그는 나병이 가시고 깨끗하게 되었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4년 2월 11일 (일) 평화방송 매일미사 온라인 유튜브 실시간 스트리밍 매일미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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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 복음 (Gospel)
복음 (Gospel)

 

우리 가운데에 큰 예언자가 나타나셨네. 하느님이 당신 백성을 찾아오셨네.

 

 

마르코복음
1장 40-45절

 

그는 나병이 가시고 깨끗하게 되었다.

 

그때에 

40 
어떤 나병 환자가 예수님께 와서 도움을 청하였다. 그가 무릎을 꿇고 이렇게 말하였다. “스승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41 
예수님께서 가엾은 마음이 드셔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말씀하셨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42 
그러자 바로 나병이 가시고 그가 깨끗하게 되었다. 

43 
예수님께서는 그를 곧 돌려보내시며 단단히 이르셨다. 

44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누구에게든 아무 말도 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다만 사제에게 가서 네 몸을 보이고, 네가 깨끗해진 것과 관련하여 모세가 명령한 예물을 바쳐, 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여라.” 

45 
그러나 그는 떠나가서 이 이야기를 널리 알리고 퍼뜨리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더 이상 드러나게 고을로 들어가지 못하시고, 바깥 외딴곳에 머무르셨다. 그래도 사람들은 사방에서 그분께 모여들었다.

 

 

매일미사 실시간 스트리밍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매일미사 평화방송

 

 

2024년 2월 11일 05:00
김평만 유스티노 신부

 

✚ 미사시작 00:23

✚ 강론시작 13:47

 

 

 

가톨릭 스튜디오 주일미사

 

 

2024년 2월 11일 11:00
원당동성당 이병근 대건안드레아 신부

 

✚ 미사시작 03:00

✚ 강론시작 19:23

 

 

 

성필립보생태마을 주일미사

 

 

2024년 2월 11일 17:00
다볼사이버성당 정경민 세례자요한 신부

 

✚ 미사시작 01:10

✚ 강론시작 13:56

 

 

 

그 외 성당 실시간 스트리밍 미사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오늘의 말씀 묵상
매일미사
최정훈 바오로 신부

 

마음으로 함께 하는 사람들

 

이스라엘에서 나병에 걸린 사람은 부정한 사람으로 여겨져 다른 사람들과 접촉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습니다(레위 13장 참조). 그래서 그들은 “부정한 사람이오.” 하고 외쳐서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게 다가오지 못하게 하여야 하였습니다. 

그렇게 나병 환자들은 예루살렘과 다른 성곽 도시에 들어가지 못하고, 따로 떨어진 곳에서 살아야 하였습니다. 그들은 사회 공동체에서 배제되었고, 이러한 배제는 그들의 마음에 큰 상처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몸뿐만이 아니라 마음도 아픈 이들이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나병 환자를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시어 그를 깨끗하게 하여 주십니다. 주님의 자비는 나병 환자의 몸뿐만 아니라 그의 마음까지도 어루만져 주십니다. 

“사제에게 가서 네 몸을 보이고, 네가 깨끗해진 것과 관련하여 모세가 명령한 예물을 바쳐라.” 

예수님의 이 말씀은 사제에게 치유 사실을 인정받고, 다시 공동체로 돌아가라는(레위 14,2-32 참조) 의미입니다. 이 말씀은 ‘이제는 더 이상 너를 배척하는 자들이 없으니 공동체로 돌아가도 된다.’는 뜻으로 나병 환자의 마음에 난 상처를 낫게 하는 따뜻한 위로로 들립니다. 

몸의 병은 마음과 깊이 연결되어 있고, 오랜 병고로 고통받은 이들은 마음도 함께 약해져 있기에 병자들의 마음도 치유되도록 함께 기도하여야 합니다.

거동이 불편한 병자와 장애인들이 루르드 성모 발현 성지를 순례하도록 함께하여 주는 단체(UNITALSI)가 있습니다. 이들은 지붕을 떼고 중풍 병자를 내려 준 사람들의 마음으로(마르 2,4 참조) 병자들의 루르드 순례에 함께하는 이들입니다. 

이 단체에서 활동하는 이들은 순례를 통하여 병자들의 내면이 치유되는 수많은 체험을 합니다. 병자들은 순례 가운데 자신과 함께하며 도움을 주는 사람들을 통해서 자신이 혼자가 아님을 깨닫고, 공동체의 사랑을 느끼면서 마음의 상처가 낫는 기적을 체험한다고 합니다. 

병고에 시달리는 이들이 주님의 사랑과 공동체의 사랑 안에서 몸과 마음이 건강하게 치유되도록 주님의 자비를 청합시다.

 

 

 

오늘의 말씀 묵상
프란치스코회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세 번째 주인공들

 

오늘 복음은 나병 환자가 주님께 와서 치유를 청해 치유 받는 얘기입니다. 그러니 오늘 얘기의 주인공은 나병 환자와 주님 둘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먼저 나병 환자를 보겠습니다. 오늘 복음의 나병 환자는 대단한 사람이고, 오늘 얘기의 주인공이 되기에 충분한 사람입니다. 

우선 그의 신앙 고백이 우리의 모범입니다. 그는 주님 능력에 대한 믿음이 확고합니다. 

“스승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고백은 주님 능력에 대한 믿음만 고백한 것이 아닙니다. 그는 주님께서 깨끗하게 하실 수 있는 분일 뿐 아니라 하시고자 하는 의향도 있으신 분이라고 믿은 것입니다. 

그런 선의가 없으신 분, 사랑이 없으신 분이라고 믿었다면 주님께 나왔겠습니까? 애초에 주님께 나아오지 않았겠지요. 

오늘 독서에서 볼 수 있듯이 당시 이스라엘에서는 나병 환자가 사람들 가운데 나타날 수 없었습니다. 

“악성 피부병에 걸린 병자는 옷을 찢어 입고 머리를 푼다. 그리고 콧수염을 가리고 ‘부정한 사람이오.’, ‘부정한 사람이오.’ 하고 외친다. 그는 부정한 사람이므로, 진영 밖에 자리를 잡고 혼자 살아야 한다.” 

이렇게 격리된 삶을 살아야 하고 그것을 어기고 사람들 가운데 나타나면 사람들은 돌을 던져 죽일 수도 있었던 그런 사회 상황에서 그는 마치 겁이 없는 사람인 양 주님 앞에 나아옵니다. 

그렇습니다. 그는 사람들 앞에 나아온 것이 아니라 주님 앞에 나아온 것입니다. 사람들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오직 주님만 바라보고 직진한 겁니다. 

베드로 사도가 물 위를 걸을 때 주님만 보고 걸었을 때는 두려움이 없었고, 물에 빠지지도 않았던 것과 같습니다. 

사실 오늘 나병 환자에게는 병의 치유보다 두려움의 치유가 더 중요하고 값진 것이었을 겁니다. 육신의 치유보다 마음과 정신의 치유가 더 값진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에게도 제가 질문을 던지겠습니다. 여러분은 육신의 병, 마음의 병, 정신병, 영혼의 병 곧 마귀 병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또는 선택의 순서를 정하라면 무엇을 선택하고 어떤 순서로 선택하시겠습니까? 

육신의 병을 선택할 것이고, 그다음이 마음의 병이요, 정신병과 마귀 병이 그다음일 것입니다. 그런데 나병 환자가 이렇게 겁이 없이 나아올 수 있게 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주님께 대한 그의 믿음이지만 그의 믿음은 주님께서 주신 믿음이 아니겠습니까? 

우리말에 믿음직한 사람이니 믿음이 가는 사람이니 믿음을 주는 사람이니 하는 말이 있는데 주님이야말로 믿음을 주는 분이십니다. 

병자에 대한 구약의 그 차별과 격리와 단절의 법과 관습을 타파하시는 구별과 차별이 없는 주님의 사랑 곧 선인에게나 악인에게나 똑같이 비와 빛을 주신다는 하느님 사랑에 대한 주님의 파격적 가르침과 실천이 믿음을 주신 겁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 세 번째 주인공이 있습니다. 그들은 숨은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데 주님과 같이 있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나병 환자가 주님께 나아올 때 막지 않았을 뿐 아니라 나병 환자를 피하거나 불평하지 않았고 아마 환대했을 겁니다. 

오늘 병자의 날인데 우리도 주님과 함께 있는 사람들이라면 병자들이 주님께 나아오는 것을 막지 않을 뿐 아니라 복음에서 많이 볼 수 있듯 병자들을 주님께 인도하는 사람들이 되어야겠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은총 때문에 지옥문도 열렸다 .

 

오늘 복음에서 나병 환자는 믿음으로 치유를 받습니다. 무슨 믿음일까요? 주님은 자비로우시고 능력자시라는 믿음입니다. 거기다가 하나의 믿음이 더 있습니다. 바로 자신이 그런 은총을 청할 ‘자격’이 있다는 믿음입니다. 

가나안 여인은 예수님께 강아지 취급을 당하면서도 강아지도 주인 자녀들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는다며 자신이 은총을 청할 자격이 있음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이 모든 것을 고려하여 그녀의 믿음을 칭찬하여 주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치유된 나병 환자는 처신을 잘못합니다. 예수님께서 함구령을 내리셨음에도 이야기를 널리 퍼뜨리고 다니십니다. 나병 환자를 치유해주셨다는 소문은 많은 나병 환자들을 불러 모으게 될 것이고 또한 예수님도 부정하게 되셨을 것이기에 비난의 대상도 되실 수 있으십니다. 

어쨌든 이러한 불순종은 예수님께서 더는 드러나게 고을로 들어가지 못하시게 만듭니다. 이 말은 치유를 입은 나병 환자가 오히려 그 받은 은총으로 예수님과 멀어지는 계기가 될 수도 있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은총은 언제나 은총이 아닙니다. 누구에게는 지옥에 이르는 문이 되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은총을 거부할 때 지옥이 생깁니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시기 전에는 저승에 선인과 악인이 함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음으로 은총의 피를 흘리신 후 그곳에 남아 있는 이들은 지옥을 살게 됩니다. 천국도 그렇지만 지옥의 문도 예수님께서 주시는 은총 때문에 열립니다. 가톨릭교회교리서는 이렇게 가르칩니다. 

“죽을죄를 뉘우치지 않고 하느님의 자비로우신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은 채 죽는 것은 곧 영원히 하느님과 헤어져 있겠다고 우리 자신이 자유로이 선택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지옥’이라는 말은 이처럼 하느님과 또 복된 이들과 이루는 친교를 결정적으로 ‘스스로 거부한’ 상태를 일컫는다.”(1033항)

지옥이란 구원의 은총을 스스로 거부한 이들이 가는 곳입니다. 이스카리옷 유다처럼 천국의 은총을 맛보았으면서도 스스로 거부한 이들은 지옥을 체험할 수밖에 없습니다. 

19살에 177억 복권에 당첨된 마이크 캐롤이란 영국 사람이 있습니다. 이전 그의 인생은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부모의 이혼과 새 아버지의 폭력으로 모든 면에서 비뚤어지는 아이로 성장하였습니다.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하면 자존감이 아닌 열등감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열등감은 자격이 없다는 스스로의 믿음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돈을 얻게 되니 자기 열등감을 그것으로 올리려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방탕한 생활로 4년 만에 다 탕진하고 청소부와 공장 노동자를 하며 간신히 살아갑니다. 

물론 그 이전에도 그런 삶을 살기는 했지만, 훨씬 고통스러울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돈의 맛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미 받은 모든 것들이 은총입니다. 그 은총에 합당하게 응답하지 못할 때 더 큰 은총은 오히려 더 큰 고통의 원인이 됩니다. 

신화에 따르면, 포세이돈은 크레타의 미노스 왕에게 크고 흰 황소를 주었는데, 그 황소는 다시 신에게 제물로 바쳐져야 했습니다. 미노스 왕은 그 황소를 이용해 왕이 되었음에도 신에게 다른 황소를 바쳤습니다. 

분노한 포세이돈은 그 황소가 왕비와 사랑에 빠지게 만들이 사람을 잡아먹는 미노타우로스가 태어나게 하였습니다. 미노스는 어쩔 수 없이 미노타우로스를 미로에 가두고 산 사람을 계속 제물로 바쳐야 하게 되었습니다. 모두가 지옥을 살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받은 은총이 저주가 되지 않게 하려면 그것들에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는 이미 은총을 받았습니다. 이미 에덴동산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은총에 감사할 줄 몰랐습니다. 그래서 땅의 소출의 십분의 일은 감사히 주님께 바쳐야 했지만, 바치지 않아 생명나무를 먹지 못하고 쫓겨납니다. 생명나무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아브라함은 전리품의 십분의 일을 멜키체덱에게 바칩니다. 멜키체덱은 아브라함에게 축복해 주기 위해 빵과 포도주를 가져 나왔습니다. 이것이 미사의 상징입니다.

미사는 은총 중의 은총인 생명나무, 곧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시간입니다. 그러나 이미 받은 은총으로 우리 자격이나 높이려 십분의 일도 봉헌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성체성사가 오히려 지옥으로 가는 문이 될 수도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축복으로 받은 외아들 이사악까지 감사히 바치려고 했음을 잊지 맙시다.

 

 

 

오늘의 말씀 묵상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조명연 마태오 신부

 

모든 것을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1989년 조지아 대학교의 에이브러햄 테서가 이끄는 사회심리학 연구팀은 11세에서 14세 청소년이 있는 가족들에게 텔레비전 채널 선택이나 숙제하는 시간 등과 관련된 모든 의견대립을 기록하게 했습니다. 조사 결과, 부모와 의견대립이 많은 청소년이 더 행복하고, 사회적으로 잘 적응하며, 학교생활을 더 잘한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조건이 하나 있었습니다. 부모가 자녀와의 의견대립에 대해 열린 관점으로 대화를 풀어갈 때 가능했습니다. 
 
종종 서로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며 어떤 간섭도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부모는 아이가 사춘기를 심하게 겪는다면서 전혀 대화하지 않고 그냥 기도만 하고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또 친한 친구와 의견 차이로 인해서 심하게 싸웠고 역시 기도만 하면서 이 친구와 예전 관계로 다시 돌아가길 바란다고 하십니다. 과연 기적처럼 그런 일이 생길까요? 가장 필요한 것은 서로 의견이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하는 열린 관점입니다. 
 
미국의 어느 소도시에 있는 은행에 강도가 들어왔습니다. 권총을 든 강도는 창구 여직원에게 총을 겨누며, “천만 원 내놔!”라고 고함을 지릅니다. 이런 상황에서 보통은 천만 원을 내주거나, 아니면 몰래 비상벨을 눌렀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직원은 강도를 바라보며, “천만 원은 왜요?”라고 이야기를 건넨 것입니다. 그 말에서 강도는 따뜻함을 느꼈습니다. 강도는 총을 내려놓고 지금 자기가 얼마나 힘든지를 이야기했고, 직원은 은행에서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찾아주었다고 합니다. 
 
“천만 원 내놔!”라는 말에서 대화의 가능성이 있어 보입니까? 가능성이 전혀 없어 보이는 말이지만, 이 말에서도 대화할 수 있었습니다. 강도하고도 이렇게 대화가 되는데, 왜 다른 사람과 대화가 되지 않겠습니까? 사람과의 대화가 가능해야 주님과도 대화할 수 있지 않을까요? 
 
나병은 무서운 병으로, 공동체는 나병에 걸린 사람을 멀리하고 부정한 사람으로 여깁니다. 공동체에서 벗어나 혼자 살아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사람 곁에 갈 수 없기에 치료받을 수 있는 길도 없습니다. 이렇다고 해서 주님께서 이 나병 환자를 내쳤을까요? 아닙니다. 당신께 다가오는 사람을 절대 내치지 않습니다. 그러나 다가온 사람의 자세가 중요했습니다. 그는 무릎을 꿇고 “스승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라고 행동하고 말했습니다. 
 
바로 무릎을 꿇는 겸손한 자세만이 주님과 대화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그를 낫게 하셔서 다시 공동체 안에서 살 수 있게 하셨습니다. 우리의 모습은 어떠했을까요? 혹시 이런 겸손한 모습보다는 맡긴 것을 찾는 사람처럼 ‘이거 해 달라, 저거 해 달라’라며 주님께 명령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요? 
 
제2독서의 바오로 사도는 ‘모든 것을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할 것임을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자기를 내려놓는 겸손, 그래야 주님과도 또 사람과도 대화를 나눌 수 있습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인생에 실패는 없다. 다른 방식으로 얻은 교훈이 있을 뿐.

- 트롸일라 타프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하느님의 영광은 아픈 우리를 통하여 드러납니다. 치유는 하느님 사랑을 만나는 가장 특별한 일입니다. 치유하여 주실 때를 놓치지 않으시는 사랑의 하느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필요한 일이 무엇인지를 너무나 정확히 아십니다. 

우리를 위한 가장 좋은 일을 아픔이 있는 치유가 필요한 우리에게서 시작하십니다. 우리의 불행을 치유하시는 기쁜 일을 주님께서 직접 시작하십니다. 우리자신을 더럽히고 우리자신을 찌르는 것은 우리자신입니다. 

하느님이 없으시면 깨끗함도 죄의 용서도 병을 낫게 하는 치유도 진정한 사랑의 빛이 될 수 없습니다. 묶인 매듭이 풀리듯 우리의 삶도 풀립니다. 죄에 갇혀 있던 우리를 깨끗이 풀어주십니다. 

다시 깨끗하게 하시어 다시 존엄함의 옷을 우리에게 입혀 주십니다. 우리의 아픔을 깨끗이 치유하여 주시는 주님을 만납니다. 우리의 죄까지 당신의 깨끗하신 사랑으로 지워주십니다. 하느님 사랑과 함께 아픈 이들의 빠른 쾌유와 깨끗한 치유를 위해 기도드립니다. 

하느님께 하시는 모든 일들이 우리를 위한 구원임을 믿습니다. 이 구원이 아픈 이들을 위한 보살핌이라는 것을 압니다. 보살핌을 실천하는 은총의 주일이며 세계 병자의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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