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매일미사 말씀묵상

24/02/06 (화)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4. 2. 6.
반응형

 

성인들의 영혼이 하늘에서 기뻐하네.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르고, 그분을 사랑하여 피를 흘렸으니, 그리스도와 함께 끝없이 기뻐 춤추네.

모든 성인에게 힘을 주시는 하느님, 복된 바오로 미키와 그의 동료 순교자들에게 십자가를 통하여 생명에 이르는 길을 열어 주셨으니 그들의 전구로 저희도 죽기까지 신앙을 증언하게 하소서.

 

2024년 2월 6일 성 바오로 미키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랜선으로 초대해요!

2024년 2월 6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성 바오로 미키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오늘 성경구절 이미지

내 이름이 거기에 머무를 것이다. (열왕기 상권 8장 29절)

 

내 이름이 거기에 머무를 것이다. (열왕기 상권 8장 29절)

 

성경구절 이미지 다운로드
열왕기 상권 8장 29절

240206_오늘성경구절이미지.jpg
0.26MB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열왕기 상권 8,22-23.27-30)
    주님께서 "내 이름이 거기에 머무를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으니 당신 백성 이스라엘의 간청을 들어 주십시오.

  • 오늘 복음
    (마르코복음 7,1-13)
    너희는 하느님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킨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4년 2월 6일 (화) 평화방송 매일미사 온라인 유튜브 실시간 스트리밍 매일미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온라인 매일 미사 바로가기

 

오늘의 말씀 묵상 바로가기

 

 

매일미사 오늘 복음 (Gospel)
복음 (Gospel)

 

주 하느님, 당신 법에 제 마음 기울게 하소서. 자비로이 당신 가르침을 베푸소서.

 

 

마르코복음
7장 1-13절

 

너희는 하느님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킨다.

 

그때에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 몇 사람이 예수님께 몰려왔다가, 


그분의 제자 몇 사람이 더러운 손으로, 곧 씻지 않은 손으로 음식을 먹는 것을 보았다. 


본디 바리사이뿐만 아니라 모든 유다인은 조상들의 전통을 지켜, 한 움큼의 물로 손을 씻지 않고서는 음식을 먹지 않으며, 


장터에서 돌아온 뒤에 몸을 씻지 않고서는 음식을 먹지 않는다. 이 밖에도 지켜야 할 관습이 많은데, 잔이나 단지나 놋그릇이나 침상을 씻는 일들이다. 


그래서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이 예수님께 물었다. “어째서 선생님의 제자들은 조상들의 전통을 따르지 않고, 더러운 손으로 음식을 먹습니까?”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이사야가 너희 위선자들을 두고 옳게 예언하였다.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지만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나 있다. 


그들은 사람의 규정을 교리로 가르치며 나를 헛되이 섬긴다.’ 


너희는 하느님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는 것이다.” 


또 이어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너희의 전통을 고수하려고 하느님의 계명을 잘도 저버린다. 

10 
모세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여라.’ 그리고 ‘아버지나 어머니를 욕하는 자는 사형을 받아야 한다.’고 말하였다. 

11 
그런데 너희는 누가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제가 드릴 공양은 코르반, 곧 하느님께 바치는 예물입니다.’ 하고 말하면 된다고 한다. 

12 
그러면서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더 이상 아무것도 해 드리지 못하게 한다. 

13 
너희는 이렇게 너희가 전하는 전통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폐기하는 것이다. 너희는 이런 짓들을 많이 한다.”

 

 

매일미사 실시간 스트리밍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매일미사 평화방송

 

 

2024년 2월 6일 05:00
박진수 사도요한 신부

 

✚ 성 바오로 미키와 동료 순교자들 소개 00:06

✚ 미사시작 01:09

✚ 강론시작 08:21

 

 

 

그 외 성당 실시간 스트리밍 미사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오늘의 말씀 묵상
매일미사
최정훈 바오로 신부

 

내면의 가치를 어렵지 않게 볼 줄 아는 사람

 

제1독서에서 솔로몬은 자신이 지어 봉헌한 성전에서 하느님께 기도를 올립니다. 그는 하느님께서 성전이라는 물리적인 장소에 매이지 않는 분이심을 잘 알지만, 진실한 마음으로 그분의 이름을 부르고 기도를 드리면 성전에서 하느님과 만나게 되리라는 믿음을 고백합니다. 교회 안에 하느님의 현존은 성전의 외적인 화려함과 장엄함이 아니라 그곳에서 드리는 참되고 진실한 기도에 달려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도 내면의 중요성을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종교 지도자들과 음식을 먹기 전 손을 씻는 문제로 논쟁을 벌이십니다.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은 정결법을 근거로 손을 씻는 행위가 중요하다고 주장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정결법의 진정한 의미는 몸이 아니라 마음을 깨끗하게 하는 것이라고 밝히십니다(7,20-23 참조). 

우리의 정결함은 손을 씻는 행위가 아니라 하느님과 나만이 아는 우리의 마음 상태에 따라 결정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내면을 가볍게 여기면서 외적인 행위에만 집중하는 위선적인 종교 지도자들을 향하여 ‘하느님을 입술로 공경하지 말고 마음으로 섬기라.’는 이사야 예언자의 말씀으로 꾸짖으십니다.

이처럼 신앙생활은 내면에서 이루어지는 ‘내적 생활’이기에 우리가 단순히 외적으로 계명을 지키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참된 신앙생활을 하려면 계명이 담고 있는 정신을 잘 알아야 하며, 그 정신에 따라 마음을 다하여 이를 지켜야 합니다. 신앙이 깊은 사람이란 이처럼 내면의 가치를 어렵지 않게 볼 줄 아는 사람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프란치스코회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우리가 많이 하는 짓들

 

예전에 제가 본당에 잠깐 있을 때 옆 교회 전도사가 저를 찾아온 적이 있습니다. 결혼을 앞둔 분이었는데 기도할 때마다 그 여자분 생각이 나서 너무 괴로웠고, 그래서 일생 독신으로 사는 신부에게 무슨 비법이 있나 배우려고 온 것입니다. 

그런데 온 김에 하나는 따지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왜 천주교 신부는 그렇게 술을 많이 먹느냐? 성경에 술 먹지 말라고 하지 않았느냐? 

그래서 제가 성경에 하느님께서 흥겨운 술을 주셨다고 하지 않았느냐? 예수님도 먹보요 술꾼으로 비난받으실 정도로 드시지 않았느냐? 이렇게 반박했지요. 

둘 다 아전인수인 셈입니다. 아전인수(我田引水)가 무엇입니까? 저기 논에 물 대는 것이 아닙니까? 

물을 끌어다 자기 논에 대듯이 우리 인간은 권위 있는 말을 서로 끌어다 자기주장을 합리화 또는 정당화하는 데 쓰지요. 

술을 왜 안 먹어야 합니까? 사랑 때문에 안 먹어야 하는 거지요. 술을 왜 먹어야 합니까? 사랑 때문에 먹어야 하는 거지요. 

며칠 전 연세가 지긋한 할아버지, 할머니가 저희 저녁 식당에 오셨습니다. 지금 저희 <여기 밥상> 식당이 공유식당을 시작하였습니다. 

점심은 삼천 원짜리 식당을 그대로 하고 저녁은 이주민 일자리 창출 차원에서 이주민 자매가 제값을 받는 장사를 하고 그래서 술도 팔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할아버지 할머니가 옆 사람들에게 피해가 갈 정도로 시끄럽고 음식에 대한 불평도 막 늘어놓는 것입니다. 

이처럼 개신교가 한국에 처음 들어왔을 때 그대 한국 사람들이 술을 먹고 많이 싸우는 것을 보고 아예 술을 못 먹게 하였는데 그것이 한국 개신교의 전통이 되어버린 것이지요. 

손을 씻는 정결례도 이스라엘의 전통일 뿐입니다. 요즘 청결을 강조하는 것이 너무 지나치다고 저는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아이들이 흙 가지고 놀지도 못하게 하고 돌아오면 꼭 손을 씻게 하는데 적당히 균들과 함께 살아야 싸워 면역력이 생길 텐데 너무 지나쳐 오히려 아이들의 면역력이 약하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여기에 영성적 의미도 있지요. 씻어야 할 더러운 손은 먼지가 묻은 손이 아니라 뇌물을 받아먹은 손이요 피를 묻힌 손이지요. 

사랑에 어긋나는 더러운 손은 놔두고, 제 건강을 챙기기 위해 손을 씻는 정결례는 오늘 복음의 사람들처럼 마찬가지로 주님의 질책을 받을 것입니다. 

“너희는 이런 짓들을 많이 한다.”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의 기준은 사랑입니다. 예를 들어, 남을 해치는 뒷담화나 험담은 하지 말아야 할 짓입니다. 힘들어하는 이웃에게 위로와 격려와 힘을 주는 해야 할 것들입니다. 우리가 하는 많은 짓은 어떤 짓들인지 돌아보는 오늘 우리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교회 안에도 암세포가 있고 면역세포도 있다.

 

오늘 복음에서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이 예수님께 몰려와서 왜 손을 안 씻고 음식을 먹느냐고 따집니다. 사실 손을 씻는 법은 율법에 나오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조상들로부터 병들지 말라고 지켜온 전통인 거죠. 

예수님께서 너희들은 어떻게 하느님의 전화 전통은 따르지 않고 인간들의 전통을 강요하냐고 하면서 그들은 사람의 규정을 교리로 가르치며 당신을 헛되이 섬긴다, 결국 너희는 하느님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는 것이다, 그러니까 하느님 나라 백성에 속하지 않는다고 하십니다. 

이런 일은 어디에서나 지금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 몸 안에서도 일어납니다. 암세포는 그냥 병이 들었을 때 그때만 생기는 건 줄 알았더니, 항상 생겨난다고 합니다. 대신 그렇게 생기는 것들을 없애주는 면역세포도 있습니다. 

면역세포는 세포가 몸 안에서 지켜야 하는 전통을 따르지 않는 세포를 없애는 역할을 합니다. 몸도 면역세포가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몸이 전체가 인제 죽게 됩니다. 몸을 사랑한다면 자꾸 생겨나는 암세포를 죽이는 면역세포의 힘을 강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교회를 생각하면 어떨까요? 마찬가지입니다. 교회 전체가 무너지지 않으려면 교회 전통적 가르침에 어긋나는 것들을 없애는 면역세포의 역할이 강화되어야 합니다. 제가 대학 들어갔을 때 가톨릭 학생회에 들어갔습니다. 가톨릭 학생회는 데모 서클 중에 최전선을 담당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들어가기 싫었지만, 어쩔 수 없이 들어가니 또 어쩔 수 없이 화염병을 나르는 일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폭력적으로 나라에 저항하라고 예수님께서 가르치지는 않으셨을 것입니다. 다만 교회의 전통이 세상의 전통이 스며드는 것을 좌시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허물어진 것입니다. 

처음엔 스파이가 들어오고 그 스파이가 다른 전통의 가르침을 물들입니다. 그것들이 걷잡을 수 없게 되면 어느 체계건 무너집니다. 가톨릭교회는 안 그럴까요?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인간이 하느님이 된다고 할 수 있다고 말할 때 대부분이 교만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가톨릭교회 교리서에 있는 내용입니다. 

예전엔 성모님을 하느님의 어머니까지 되실 수 있다는 것을 반대했던 콘스탄티노플 대주교인 네스토리우스를 파문했습니다. 암세포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 반대의 상황입니다. 지옥 이야기하면 극단적 이원론자라고 합니다. 하느님은 빛이시고 우리는 어둠입니다. 빛이 세상에 왔다는 요한 사도도 극단적 이원론자가 됩니다. 

교회의 전통적인 가르침을 말할 때 오히려 거부당하는 일이 더 많아졌습니다. 삼구(세속-육신-마귀)와 싸워야 한다는 것은 김대건 신부님이 신자들에게 마지막으로 하신 당부입니다. 

그러나 성직자, 수도자면서 삼구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 하면 조선시대 사람이냐, 중세 시대 사람이냐고 합니다. 이제는 교리서에 나오거나 전통적인 가르침을 말하는 것도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암세포가 될 것인지, 면역세포가 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합니다. 물론 교회에서 더 많은 사람이 올바른 전통적인 가르침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렇더라도 반드시 암세포와 대결하는 면역세포의 역할이 있어야 합니다. 교회 전통을 지키는 이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주신 가장 중요한 선물이 교회입니다. 그런데도 어떤 이들은 교회 밖에 구원이 있다고 당연하게 말합니다. 

그렇다면 당신 살과 피를 먹고 마시지 않으면 구원이 없다는 예수님의 말씀은 어떻게 되는 건가요? 세상 전통으로 교회의 전통을 무시하면 안 됩니다. 

우선은 교회의 성체로만 구원이 이뤄지고 나머지는 피의 세례, 열망의 세례, 혹은 계약에 관한 신학으로 나아가야지, 처음부터 교회를 부정하는 말들이 받아들여져서는 안 됩니다. 교회의 공식 가르침은 교회밖에는 구원이 없다는 것입니다. 

십일조도 마찬가지입니다. 십일조는 개신교가 아니라 오히려 가톨릭의 전통적 가르침이었습니다. 지금은 이런 이야기를 하면 개신교 신자로 오해받습니다. 주님이라면 아마도 암세포를 무찌르는 면역세포의 역할을 하는 이들을 더 사랑할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조명연 마태오 신부

 

사랑의 미켈란젤로 효과

 

미켈란젤로는 다비드상을 조각할 때, 바위 안에 천사가 갇혀 있음을 느끼고 그를 자유롭게 해주고 싶은 마음으로 작업했다고 말합니다. 
 
“나는 대리석 속에 갇힌 천사를 보았고, 그가 차가운 돌 속에서 풀려날 때까지 돌을 깎았다.” 
 
미켈란젤로는 원석을 다듬어 아름다운 조각상을 만들었습니다. 그 누구도 원석만을 보고서는 “여기에 아름다운 다비드상이 있군.”, “여기에 천사가 갇혀 있군.”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미켈란젤로는 달랐습니다. 그는 원석 너머에 있는 것을 바라보았기에 지금까지 많은 이의 사랑을 받는 작품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원석 너머에 있는 것을 바라보는 것이 바로 ‘사랑’이 아닐까요? 실제로 우리는 사랑을 통해 더 좋은 사람이 되어 갑니다. 부모의 사랑을 통해서 자녀가 더 좋은 사람이 되어 가고, 누군가의 사랑에 큰 힘을 얻어 훌륭한 사람이 되었다는 사례는 너무나도 많습니다. 실제로 이렇게 더 좋은 사람이 되어 가게 만드는 사랑을 향해 ‘사랑의 미켈란젤로 효과’라고 말합니다. 
 
다른 사람 안에 있는 천사를 보고 있습니까? 그리고 그 안에서 천사가 나올 때까지 계속해서 노력하고 있습니까? 문제는 겉으로 드러나는 원석만을 바라보고서 ‘쓸데없는 돌이네.’라며 단정을 지어 버리는 우리의 모습입니다. 그 사람 안에 천사가 있는데, 사랑을 통해 그 안의 천사를 꺼낼 수 있지만 그런 노력을 전혀 하지 않습니다.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이 예수님께 몰려와서 씻지 않은 손으로 음식을 먹는 제자들을 꾸짖고 있습니다. 분명 조상들의 전통에 맞지 않는 행동이고, 또 비판받을 만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오히려 그들을 두고 위선자라며 꾸짖습니다. 
 
“너희는 하느님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는 것이다.”(마르 7,8)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은 정결 예식이 합당한가 그렇지 않은가 또는 서원을 채우고자 성전에 예물을 바치는 것이 의무인가 아닌가 하는 것에 더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이런 관심은 그저 사람의 전통일 따름입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야 하느님의 계명을 철저하게 지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계명은 오로지 사랑 안에 있습니다. 사랑으로 바라보고 사랑으로 판단한다면 그 사람 안에 있는 하느님의 또 다른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 사랑은 특별한 곳에서만 실천하는 것이 아닙니다. 일상의 작은 관심과 반응을 통해 사랑을 볼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웃의 몸과 성장을 응원하면서 이웃 안에서 활동하시는 하느님을 봐야 합니다. 그래야 하느님의 계명인 사랑을 실천하면서 하느님의 뜻에 함께할 수 있게 됩니다. 진짜 행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20대에는 욕망의 지배를 받고, 30대는 이해타산, 40대는 분별력, 그리고 그 나이를 지나면 지혜로운 경험에 의한 지배를 받는다.

- 그라시안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너희는 하느님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는 것이다.

 

쉼없이 흐르는 교회의 역사를 봅니다. 하느님의 계명은 우리를 보호하고 가르치는 하느님의 생명과 직결됩니다. 계명은 생명이지 지식이 아닙니다. 계명을 지키지 않고서는 바른 삶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하느님의 계명은 신앙의 참된 정체성입니다. 참된 정체성은 신앙 공동체의 질서이기도 합니다. 악을 멈추고 적극적인 신앙인의 삶으로 우리를 이끕니다. 

계명은 신앙인의 생활을 중심으로 펼쳐집니다. 그래서 얽매임이 아니라 풍요로운 삶을 살도록하는 하느님의 자유와 해방입니다. 이 시대의 위기를 치유하는 것은 하느님의 계명이지 사람의 전통이 아닙니다. 현시대에 맞지않는 시대착오적인 전통은 오히려 결속과 화합을 방해합니다. 목적이 정당한 것도 중요하지만 수단에서도 역시 타당성이 있어야 합니다. 

교회의 역사는 전체를 보아야 하는 계명의 역사입니다. 자신들의 이익만을 위해 전통만 따지는 풍조는 극복되어야 합니다. 전통을 치유하는 하느님의 계명은 오늘도 생명처럼 힘차게 흐르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계명은 신앙인들의 인격을 통해 하느님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우리자신이 아닌 하느님을 드러내시는 생명의 기쁜 날 되십시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