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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4/02/01 (목)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4. 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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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하느님, 저희를 구하소서. 민족들에게서 저희를 모아들이소서. 당신의 거룩하신 이름을 찬송하고, 당신을 찬양하여 영광으로 삼으오리다.

자비로우신 주 하느님, 저희가 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공경하며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모든 사람을 사랑하게 하소서.

 

2024년 2월 1일 연중 제4주간 목요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랜선으로 초대해요!

2024년 2월 1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연중 제4주간 목요일

 

 

오늘 성경구절 이미지

길을 떠날 때에 아무것도 가져가지 말라. (마르코복음 6장 8절)

 

길을 떠날 때에 아무것도 가져가지 말라. (마르코복음 6장 8절) 성경말씀카드 마르코복음 성경구절 이미지 다운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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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코복음 6장 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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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열왕기 상권 2,1-4.10-12)
    나는 이제 세상 모든 사람이 가는 길을 간다. 솔로몬아, 너는 사나이답게 힘을 내어라.

  • 오늘 복음
    (마르코 복음 6,7-13)
    예수님께서 그들을 파견하기 시작하셨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4년 2월 1일 (목) 평화방송 매일미사 온라인 실시간 스트리밍 매일미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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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 복음 (Gospel)
복음 (Gospel)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마르코복음
6장 7-13절

 

예수님께서 그들을 파견하기 시작하셨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부르시어 더러운 영들에 대한 권한을 주시고, 둘씩 짝지어 파견하기 시작하셨다. 


그러면서 길을 떠날 때에 지팡이 외에는 아무것도, 빵도 여행 보따리도 전대에 돈도 가져가지 말라고 명령하시고, 


신발은 신되 옷도 두 벌은 껴입지 말라고 이르셨다. 

10 
그리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어디에서나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그 고장을 떠날 때까지 그 집에 머물러라. 

11 
또한 어느 곳이든 너희를 받아들이지 않고 너희 말도 듣지 않으면, 그곳을 떠날 때에 그들에게 보이는 증거로 너희 발밑의 먼지를 털어 버려라.” 

12 
그리하여 제자들은 떠나가서, 회개하라고 선포하였다. 

13 
그리고 많은 마귀를 쫓아내고 많은 병자에게 기름을 부어 병을 고쳐 주었다.

 

 

매일미사 실시간 스트리밍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매일미사 평화방송

 

 

2024년 2월 1일 05:00
김훈겸 요한보스코 신부

 

✚ 교황님 2월 기도지향 00:23

✚ 미사시작 00:38

✚ 강론시작 07:05

 

 

 

그 외 성당 실시간 스트리밍 미사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오늘의 말씀 묵상
매일미사
최정훈 바오로 신부

 

지팡이 외에는 아무것도 가져가지 말라.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복음을 선포하려고 여행을 떠나는 열두 제자에게 여장을 꾸릴 때의 규칙을 일러 주십니다. 온갖 위험과 어려움이 예견되는 여행에 “지팡이 외에는 아무것도, 빵도 여행 보따리도 전대에 돈도 가져가지 말라”고 하시고, “신발은 신되 옷도 두 벌은 껴입지 말라”고 이르신 까닭은 제자들이 이 길에서 하느님만을 전적으로 신뢰하기를 바라셨기 때문입니다. 

기댈 수 있는 유일한 분은 하느님뿐이심을 기억하고 인간적인 모든 보장과 안전을 포기한 제자들은 하느님의 놀라운 섭리를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하느님의 다스림을 체험한 이들만이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1,15)라는 복음을 누구보다 힘 있게 선포할 수 있습니다.

마르코 복음서에서 “길”은 보통 ‘제자 직분의 길’을 의미한다는 것을 고려할 때, 예수님께서 “길을 떠날 때” 주신 규정은 곧 ‘제자로서 살아갈 때’ 요구되는 지침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그리스도의 제자인 우리 모두에게 청빈의 삶을 권고합니다. 청빈은 하느님에 대한 신뢰와 의탁의 표현입니다. 이 신뢰는 세상의 것에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고, 주님의 뜻을 담대히 따를 수 있게 합니다.

교회가 주님께서 이르신 복음 선포의 사명을 자유롭고 두려움 없이 수행하려면 불필요한 것들에서 가벼워져야 합니다. 움켜쥔 것이 많을수록 그 무게는 교회의 자유를 짓누르고, 그것을 지키고 싶은 마음은 두려움을 더욱 키울 것입니다. 

교회의 이익과 안전을 보장할 듯한 헛된 것들을 내려놓을 때 비로소 주님께서 마련하신 더 좋은 것들을 얻을 것입니다. 세상 것에 대하여 깃털처럼 한없이 가벼워진 교회, 그래서 주님의 숨이 부는 대로 자유롭게 길을 떠날 수 있는 교회가 되기를 주님께 청합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프란치스코회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모두가 가는 길

 

“나는 이제 세상 모든 사람이 가는 길을 간다.” 

모든 사람이 가는 길. 

오늘 독서와 복음은 여러 길 얘기입니다. 복음은 복음을 선포하라고 주님께서 제자들을 파견하시는 내용입니다. 그러니까 이 길은 복음 선포의 길입니다. 

열왕기는 두 가지 길을 얘기합니다. 모두가 가는 길과 주님의 길입니다. 그런데 모두가 가는 길이란 뭘까요? 모두가 가는 길을 다윗도 간다고 하는데 그 뜻이 뭘까요? 

그것은 다윗 자기도 예외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왕일 뿐 아니라 대단한 왕이요 더 나아가 기름 부음을 받은 자였어도 모두가 가는 길은 자기도 예외가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말입니다. 

그런데 진시황은 세상의 모든 권력을 소유하게 되자 자기만은 모두가 가는 길에서 예외가 되고자 했지요. 

그래서 불로장생을 꿈꾸었고 그래서 불로초를 찾았는데 모두가 가는 길과 다른 길로 가려 했던 이 진시황과 달리 다윗은 모두가 가는 길 곧 죽음과 관련해서는 진정 아무 예외와 특권 의식이 없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모두가 가는 이 길을 잘 가고 있고 잘 갈 것 같습니까? 예외나 특권 의식은 없고 그래서 안 가려고 하진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마지못해 가고 기꺼이 가지 못한다면 잘 가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두가 가는 길을 나도 간다는 마음만으로는 부족할 것입니다. 우리의 길은 모두가 가는 길일 뿐 아니라 향해 가는 길이요 따라가는 길, 곧 아버지께 가는 길이고 주님을 따라가는 길이어야 할 것입니다. 

모두가 가야 할 운명의 길이 아니라 순명의 길이고, 매우 인격적인 길이고 사랑의 길입니다. 모두가 가는 길이니 묵묵히 혼자 가거나 그들을 따라 터벅터벅 가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따라가고 주님과 함께 즐거이 가는 길입니다. 

저는 오늘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나는 하느님 안에 있고 삶과 죽음도 하느님 안에 있다. 하느님 안에 나는 주 예수님과 함께 있고 내 안에는 성령께서 함께 계신다. 

그러니 모두가 가는 길을 저도 가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있는 하느님 안에 저도 있는 것입니다. Deus Meus, Omnia (나의 하느님, 모든 것이시요!)라고 프란치스코가 기도했듯이 모든 것이신 분이 하느님이시니 말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님의 오늘 말씀 묵상 업데이트 준비중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조명연 마태오 신부

 

예수님께서 그들을 파견하기 시작하셨다.

 

흥미로운 조사 결과를 본 적이 있습니다. 독일과 이탈리아의 교통사고에 대한 조사였습니다. 독일에서 교통사고가 나면 대형 사고이지만, 이탈리아의 도로에서 사고가 나면 그냥 사소한 교통사고라는 것입니다. 그 이유에 대해 어디에 중심을 두고 있느냐를 말하고 있었습니다. 독일은 원칙을 중심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규칙을 어기면 큰 사고로 이어졌습니다. 그에 반해 이탈리아는 원칙을 존중하지만, 사람을 중심으로 여유 있게 사회가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탈리아는 극심한 혼란 한가운데서도 사람 안전을 위한 일종의 거리를 둘 줄 알기에 그들은 혼란의 순간에 상황을 꿰뚫어 보고 지혜롭고 올바른 결정을 내릴 줄 안다고 합니다. 
 
원칙이 중요할까요? 아니면 사람이 중요할까요? 당연히 사람이 중요합니다. 원칙도 역시 사람을 위해 존재할 뿐입니다. 그러나 원칙이 사람보다 위에 설 때가 많습니다. 원칙을 지켜야 사람을 편하게 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원칙이 중심에 설 때 오히려 사람이 소외됩니다. 
 
예수님 시대의 종교 지도자들은 원칙 중심이었습니다. 자기 원칙에 의하면, 안식일에 병자를 고쳐 주는 것은 있어서 안 될 일이었습니다. 그 병자의 고통은 전혀 보지 않으면서 원칙을 왜 지키지 않느냐며 그래서 예수님을 제거할 대상을 보지 않았습니까? 
 
사람이 중심이 되는 세상이 되길 예수님께서는 원하십니다. 원칙이나 자기 사상보다 더 우위에 두어야 하는 것은 사람이었습니다. 이 사람이 중심이 되는 삶이 바로 사랑의 삶입니다.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부르신 뒤 둘씩 짝지어 파견하십니다. 제자들은 회개하라고 선포하였고, 많은 마귀를 쫓아내고 병자들을 고쳐 주었습니다. 이 모두는 사람을 위한 행동이었습니다. 하느님 나라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는 회개해야 했고, 마귀에 의해 힘들어하는 사람을 위해 마귀를 쫓아냅니다. 또 병에 의해서 힘들어하는 사람에게 기름을 부어 병을 고쳐 주면서 사람의 어려움을 없애주었습니다. 
 
이를 위해 그 어떤 것에도 신경 쓰지 못하게 합니다. 길을 떠날 때 지팡이 외에 아무것도, 빵도 여행 보따리도 전대에 돈도 가져가지 말라고 하셨으며, 신발은 신되 옷도 두 벌은 껴입지 말라고 이르십니다. 오로지 사람에게만 집중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 중심으로 전교 활동을 해야 하고, 이것을 하느님 아버지께서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답답할 때가 참 많습니다. 특히 사람 중심이 되지 못하고, 원칙과 사상을 내세워서 오히려 사람을 힘들게 하는 경우가 그것입니다. 입으로는 사랑을 말하지만, 자기 욕심과 이기심을 내세우는 삶 안에서 예수님의 사람 중심의 사랑을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요?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당신이 타인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으면 그들도 당신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 래리 킹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예수님께서 그들을 둘씩 짝지어 파견하기 시작하셨다.

 

생명은 생명으로 아름답고 고귀합니다. 남을 위한 삶이 곧 자기를 위한 삶임을 배웁니다. 파견은 선교이며 선교는 모든 사람들에게 봉사하는 사랑입니다. 봉사의 바람은 불어오는 것이 아니라 파견을 통하여 일으켜 지는 믿음입니다. 선교는 그래서 기다림이 필요하고 열정이 필요한 기도의 여정입니다. 

가장 좋으신 하느님의 이끄심에 내어맡기는 믿음이 중요합니다. 진정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내어맡기는 믿음은 평범한 삶을 성화시켜 그 삶 자체를 예수님의 삶을 닮는 복음이 되게합니다. 제자들을 파견하시며 예수님께서 바라시는 것은 삶의 현장 속으로 들어가 가까워지는 인식의 전환이며 삶의 실천입니다. 

실천은 진정한 나눔이며 진정한 배려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뜨거운 마음으로 끊임없이 물음을 던지는 파견의 여정이며 사명의 확장입니다. 파견은 한정된 지역에 안주하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이들이 복음에 공감할 수 있는 삶을 위한 삶의 파견이 중요합니다.

우리 시대에 필요한 파견의 안목과 바람직한 파견을 위한 소통과 지원이 필요합니다. 파견을 통하여 정말로 소중한 것이 하느님 나라를 위한 사랑과 봉사임을 삶의 치열한 현장에서 다시 듣게 됩니다. 삶의 현장에서 복음을 나누는 기쁜 날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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