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당신의 사제들이 의로움의 옷을 입고, 당신께 충실한 이들이 환호하게 하소서.
하느님, 복된 요한 사제를 청소년의 아버지요 스승이 되게 하셨으니 저희도 똑같은 사랑의 불로 타올라 오직 주님을 섬기며 형제들의 구원을 위하여 힘쓰게 하소서.
2024년 1월 31일 성 요한 보스코 사제 기념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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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월 31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성 요한 보스코 사제 기념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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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믿지 않는 것에 놀라셨다. (마르코복음 6장 6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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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코복음 6장 6절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사무엘기 하권 24,2.9-17)
인구 조사를 하여 제가 죄를 지었습니다. 이 양들이야 무슨 잘못이 있겠습니까? - 오늘 복음
(마르코복음 6,1-6)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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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이 말씀하신다.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나는 그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른다.
마르코복음
6장 1-6절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
그때에
1
예수님께서 고향으로 가셨는데 제자들도 그분을 따라갔다.
2
안식일이 되자 예수님께서는 회당에서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많은 이가 듣고는 놀라서 이렇게 말하였다. “저 사람이 어디서 저 모든 것을 얻었을까? 저런 지혜를 어디서 받았을까? 그의 손에서 저런 기적들이 일어나다니!
3
저 사람은 목수로서 마리아의 아들이며, 야고보, 요세, 유다, 시몬과 형제간이 아닌가? 그의 누이들도 우리와 함께 여기에 살고 있지 않는가?” 그러면서 그들은 그분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4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과 친척과 집안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
5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그곳에서 몇몇 병자에게 손을 얹어서 병을 고쳐 주시는 것밖에는 아무런 기적도 일으키실 수 없었다.
6
그리고 그들이 믿지 않는 것에 놀라셨다. 예수님께서는 여러 마을을 두루 돌아다니며 가르치셨다.
매일미사 평화방송
2024년 1월 31일 05:00
신철균 파스칼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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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묵상
매일미사
김재덕 베드로 신부
모든 관계의 회복은 진실하게 듣는 데서 시작된다.
“저 사람이 어디서 저 모든 것을 얻었을까? 저런 지혜를 어디서 받았을까? 그의 손에서 저런 기적이 일어나다니!”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들으며 놀라워합니다. 그러나 이 놀라움은 예수님에 대한 믿음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복음은 나자렛 사람들의 마음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그분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은 왜 그분을 믿지 못하였을까요? 예수님에게서 나오는 하느님의 힘을 보면서도 왜 못마땅하게 여겼을까요? 그들 눈에 예수님께서는 그저 ‘목수의 아들’이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과 그분의 가족들에 대하여 그들이 알고 있는 것이, 그분을 메시아로 그리고 하느님의 아드님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게 만든 것입니다.
누군가에 대하여 가장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이 어쩌면 그 사람에 대하여 가장 모르고 있는 순간일 수 있습니다. 잘 알고 있다는 것이 선입견이 되어서, 그 사람에 대하여 더 알려고 하는 마음을 없애 버리기 때문입니다. 특히 이런 일들은 부모와 자녀, 부부와 같이 아주 가까운 사이에서 자주 일어납니다.
여러분의 모든 관계에서 ‘들음’이 중단되지 않게 하십시오. 듣는 것이 멈춘 관계는 상대방에 대한 앎 또한 멈춘 관계입니다. 하느님과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듣는 것이 멈춘 신앙생활은 그분에 대한 앎이 멈춘 신앙생활입니다.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처럼 그분을 믿지 못하는 신앙생활을 되풀이하고 있을 뿐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분명히 우리와 함께 계시지만(임마누엘), 함께 계셔도 그분께서 누구이신지 전혀 알지 못하는, 아니 오히려 그분을 알려고 하지 않는 불행한 신앙인이 되어 버립니다. 만일 신앙의 기쁨이 사라지고 있다면, 여러분의 믿음이 듣는 것을 멈춘 것은 아닌지 한번 되돌아보면 좋겠습니다. 모든 관계의 회복은 진실하게 듣는 데서 시작됩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프란치스코회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저 사람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그곳에서 몇몇 병자에게 손을 얹어서 병을 고쳐주시는 것밖에는 아무런 기적도 일으키실 수 없었다. 그리고 그들이 믿지 않는 것에 놀라셨다.”
오늘 복음은 주님께서 당신 고향에 가셨는데 믿지 않는 사람이 많아 몇몇 병자에게 밖에는 아무 기적을 일으키실 수 없었다고 하며 믿지 않는 것에 놀라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사람들이 믿지 않는 것에 놀라셨다고 하는데 저는 주님께서 기적을 일으키실 수 없었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주님도 하실 수 없는 것이 있다는 말인데 진정 주님도 하실 수 없는 것이 있습니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이렇습니다. 산천초목과 삼라만상에게는 주님께서 하실 수 없는 것이 없지만 인간에게만은 인간의 협력 없이 하실 수 없는 것이 있고, 인간의 협력 없이는 전능하신 하느님도 구원하실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협력이란 믿는 것인데 주님의 능력과 사랑을 믿지 않으면 아무리 전능하셔도 하실 수 없습니다.
적절한 비유가 될지 모르지만 아무리 명의일지라도 환자가 믿지 않으면 어떤 처방이나 진료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고, 그럴 때 그에게는 명의도 명의가 아니고 아무 치료도 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사실 의심도 기적을 불가능하게 하는데 불신은 더더욱 기적을 불가능케 합니다. 의심이나 불신은 기적의 문을 걸어 잠그게 하기 때문입니다. 의심하거나 불신하는 사람에게는 문을 잠그고 믿는 사람에게만 문을 열어주지 않습니까?
그런데 고향 사람들은 왜 주님을 믿지 못했습니까? 그리고 왜 주님을 못마땅해했습니까? 그것은 주님을 자기들과 똑같이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자기들과 똑같이 한 인간인데 그런 능력이 있다는 것을 믿을 수 없었고, 자기들과 똑같은 인간인데 자기들에게는 그런 능력이 없고 주님께는 있다는 사실이 화나고 시기 질투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들과 똑같은 인간인데 어디서 그런 능력이 왔을까 그런 것이나 따지고 있습니다.
“저 사람이 어디서 저 모든 것을 얻었을까? 저런 지혜를 어디서 받았을까?”
저 사람입니다. 저분이 아니고, 스승도 아니고, 주님도 아니고 저 사람입니다. 주님을 저 사람이라고 하고, 주님께 인간적인 것을 들이대면 주님도 저 사람일 뿐 아무것도 내게 하실 수 없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님의 오늘 말씀 묵상 업데이트 준비중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조명연 마태오 신부
왜 예수님을 못마땅하게 여겼을까요?
예전에 갑곶성지에 살 때는 식복사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식사 준비를 비롯한 주방 일, 빨래, 청소 등을 모두 저 스스로 해야만 했습니다. 주방 일이나 빨래는 할 만했고, 또 재미있었습니다. 하지만 청소는 정말 힘들었습니다. 자매님들이 이런 말씀 종종 하시지요.
“치워도 티가 나지 않고, 치우지 않으면 금방 표시가 난다.”
저 역시 청소를 아무리 열심히 해도 청소한 것 같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청소하지 않으면 어떨까요? 실제로 바빠서 청소하지 않으면 어느 순간부터 먼지가 방 안에서 굴러다니는 것을 볼 정도로 지저분해집니다.
사랑도 그렇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랑을 실천한다고 해서 티가 팍팍 나는 것이 아닙니다. 누가 알아주지도 않고 오히려 이 사랑을 어리숙함으로 평가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사랑을 실천하지 않으면 티가 많이 납니다. 사람들의 평가도 곧바로 나오지요. 이기적이고 욕심이 너무 많다면서 각종 비판이 쏟아집니다. 이 비판을 받는 사람은 억울합니다. 왜 자신이 실천한 사랑은 알아주지 않느냐고 합니다.
사랑의 실천은 앞서도 말했듯이 눈에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행하는 사랑은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소홀히 보지 않는 분이 계십니다. 바로 주님이십니다. 우리의 모든 사랑을 보고 계시고, 당신께서 갚아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티가 나지 않는다고 쓸데없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청소도 티가 나지 않아도 반드시 해야 하는 것처럼, 사랑도 티가 나지 않는다고 포기할 것은 아닙니다. 사랑하지 않으면 내 영혼이 엉망진창으로 바뀌고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도 머물지 못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랑을 말씀하셨고, 당신 몸으로 사랑을 직접 실천해서 우리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를 못마땅하게 여깁니다. 특히 그래도 예수님을 잘 안다고 할 수 있는 고향 사람들이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것이 나쁜 것이 아니지요. 또 병자를 고쳐 주시고 마귀를 쫓아내신 것 역시 나쁜 것이 아닙니다. 그 모두가 사랑을 보여 주시고, 또 실천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왜 이렇게 예수님을 못마땅하게 여겼을까요?
예수님의 사랑을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에 집중한 것이 아니라 자기들이 더 낫다는 교만함이 더 컸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복음은 우리에게 이렇게 전해줍니다.
“몇몇 병자에게 손을 얹어서 병을 고쳐 주시는 것밖에는 아무런 기적도 일으키실 수 없었다.”
예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곳에서만 은총이 가득히 흘러넘치게 됩니다.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예수님의 은총도 얻을 수 없습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슬픔은 혼자서 간직할 수 있다. 그러나 기쁨이 충분한 가치를 얻으려면 기쁨을 누군가와 나누어 가져야 한다.
- 마크 트웨인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
우리 삶 안으로 들어오신 하느님을 잊고살 때가 많습니다. 하느님을 잊고 살기에 존경과 사랑도 없는 곳에서 살아내야 할 용기와 믿음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생각이 달라져야 편견에서 빠져나올 수 있습니다.
없는 것도 만들어내는 것이 우리들 편견입니다. 편견은 기세등등한 반목과 질시로 이어집니다. 무지를 깨는 것이 참으로 어렵습니다. 넘어서야 할 우리들 마음입니다. 편견과 선입견은 또 다른 목마름과 족쇄로 이어집니다.
어느 쪽으로 치우친다는 것은 정확하게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올바른 세상을 향한 사랑의 실천으로 오늘을 여시는 주님이십니다. 편견에서 벗어나야 예수님을 따르고 예수님 안에 머물 수 있습니다.
어김없이 아침을 여시는 분도 주님이십니다. 마음이 바뀌어야 우리의 삶도 바뀔 수 있습니다.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마음이 편견을 치유하는 존중과 사랑의 길임을 믿습니다.
우리가 버린 기도의 마음을 되찾는 서로를 향한 감사의 날 되시길 기도드립니다. 못마땅하게 여기는 편견이 아니라 서로를 향한 참된 감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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