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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4/01/29 (월)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4. 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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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하느님, 저희를 구하소서. 민족들에게서 저희를 모아들이소서. 당신의 거룩하신 이름을 찬송하고, 당신을 찬양하여 영광으로 삼으오리다.

자비로우신 주 하느님, 저희가 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공경하며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모든 사람을 사랑하게 하소서.

 

2024년 1월 29일 연중 제4주간 월요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랜선으로 초대해요!

2024년 1월 29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연중 제4주간 월요일

 

 

오늘 성경구절 이미지

네 이름이 무엇이냐? (마르코복음 5장 9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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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코복음 5장 9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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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사무엘기 하권 15,13-14.30; 16,5-13ㄱ)
    압살롬에게서 달아납시다. 주님께서 명령하신 것이니 저주하게 내버려 두시오.

  • 오늘 복음
    (마르코복음 5,1-20)
    더러운 영아,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4년 1월 29일 (월) 평화방송 매일미사 온라인 실시간 스트리밍 매일미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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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 복음 (Gospel)
복음 (Gospel)

 

우리 가운데에 큰 예언자가 나타나셨네. 하느님이 당신 백성을 찾아오셨네.

 

 

마르코복음
5장 1-20절

 

더러운 영아,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그때에 예수님과 제자들은 


호수 건너편 게라사인들의 지방으로 갔다. 


예수님께서 배에서 내리시자마자,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이 무덤에서 나와 그분께 마주 왔다. 


그는 무덤에서 살았는데, 어느 누구도 더 이상 그를 쇠사슬로 묶어 둘 수가 없었다. 


이미 여러 번 족쇄와 쇠사슬로 묶어 두었으나, 그는 쇠사슬도 끊고 족쇄도 부수어 버려 아무도 그를 휘어잡을 수가 없었다. 


그는 밤낮으로 무덤과 산에서 소리를 지르고 돌로 제 몸을 치곤 하였다. 


그는 멀리서 예수님을 보고 달려와 그 앞에 엎드려 절하며, 


큰 소리로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 당신께서 저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하느님의 이름으로 당신께 말합니다. 저를 괴롭히지 말아 주십시오.” 하고 외쳤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더러운 영아,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하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네 이름이 무엇이냐?” 하고 물으시자, 그가 “제 이름은 군대입니다. 저희 수가 많기 때문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10 
그러고 나서 예수님께 자기들을 그 지방 밖으로 쫓아내지 말아 달라고 간곡히 청하였다. 

11 
마침 그곳 산 쪽에는 놓아기르는 많은 돼지 떼가 있었다. 

12 
그래서 더러운 영들이 예수님께, “저희를 돼지들에게 보내시어 그 속으로 들어가게 해 주십시오.” 하고 청하였다. 

13 
예수님께서 허락하시니 더러운 영들이 나와 돼지들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이천 마리쯤 되는 돼지 떼가 호수를 향해 비탈을 내리 달려, 호수에 빠져 죽고 말았다. 

14 
돼지를 치던 이들이 달아나 그 고을과 여러 촌락에 알렸다. 사람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보려고 왔다. 

15 
그들은 예수님께 와서 마귀 들렸던 사람, 곧 군대라는 마귀가 들렸던 사람이 옷을 입고 제정신으로 앉아 있는 것을 보고는 그만 겁이 났다. 

16 
그 일을 본 사람들이 마귀 들렸던 이와 돼지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그들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17 
그러자 그들은 예수님께 저희 고장에서 떠나 주십사고 청하기 시작하였다. 

18 
그리하여 예수님께서 배에 오르시자, 마귀 들렸던 이가 예수님께 같이 있게 해 주십사고 청하였다. 

19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허락하지 않으시고 그에게 말씀하셨다. “집으로 가족들에게 돌아가, 주님께서 너에게 해 주신 일과 자비를 베풀어 주신 일을 모두 알려라.” 

20 
그래서 그는 물러가,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해 주신 모든 일을 데카폴리스 지방에 선포하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사람들이 모두 놀랐다.

 

 

매일미사 실시간 스트리밍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매일미사 평화방송

 

 

2024년 1월 29일 05:00
김훈겸 요한보스코 신부

 

✚ 미사시작 00:23

✚ 강론시작 08:22

 

 

 

그 외 성당 실시간 스트리밍 미사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오늘의 말씀 묵상
매일미사
김재덕 베드로 신부

 

그분과 함께하는 기쁨이 없다면 먼저 찾아가야 할 곳

 

“돼지는 굽은 갈라졌지만 새김질을 하지 않으므로 너희에게 부정한 것이다. 너희는 이런 짐승의 고기를 먹어서도 안 되고, 그 주검에 몸이 닿아서도 안 된다”(신명 14,8). 

이 말씀처럼 율법은 돼지를 부정한 동물로 규정합니다. 특히 마카베오기 하권은 돼지고기 때문에 순교를 선택하는 사람들을 보여 줍니다(6,18-7,42 참조).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돼지가 얼마나 불결하게 인식되었는지 잘 보여 주는 본보기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을 만난 “군대”라는 더러운 영은 예수님 앞에서 돼지 떼 속으로 들어가기를 청합니다. 

“저희를 돼지들에게 보내시어 그 속으로 들어가게 해 주십시오.” 

그리고 마귀 들린 돼지들은 비탈을 내리 달려, 호수에 빠져 죽습니다. 악은 이처럼 예수님 앞에서 더 더러운 것을 선택하게 만듭니다. 더 악하고, 더 부정하며 하느님께서 계시지 않는 어둠을 더 선택하는 것이 바로 악의 방식입니다. 돼지들이 죽게 된 것처럼, 악이 이끄는 종착지는 바로 죽음입니다.

더러운 영이 예수님께 한 말을 눈여겨봅시다.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 당신께서 저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하느님의 이름으로 당신께 말합니다. 저를 괴롭히지 말아 주십시오.” 

악은 예수님과 아무 상관없이 살고 싶은 마음을 우리 안에 심어 놓습니다. 한번 우리 안에서 허락된 이 마음은 우리의 생각을 점점 지배하기 시작하고, 우리를 더욱 악한 곳으로 이끕니다. 예수님과 함께하는 순간이 가장 괴로운 순간이 되게 합니다. 그래서 기도도 사라져 버리게 만들고, 우리의 믿음도 힘을 잃어버리게 합니다.

고해성사는 오늘 복음이 고백하는 예수님을 만나게 하여 주는 은총의 성사입니다. 마귀 들렸던 사람이 예수님을 선포하는 이로 새롭게 변화되었듯, 고해성사는 우리가 다시 예수님을 바라보게 하고, 우리를 빛으로 나아가는 삶으로 이끌어 주는 힘이 있습니다. 우리 영혼이 하느님과 함께하는 기쁨을 잃어버렸다면 무엇보다도 먼저 가야 할 곳은 바로 고해소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프란치스코회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다윗의 기도

 

"주님께서 다윗을 저주하라고 하시어 저자가 저주하는 것이라면, 어느 누가 ‘어찌하여 네가 그런 짓을 하느냐?’ 하고 말할 수 있겠소? 주님께서 그에게 명령하신 것이니 저주하게 내버려 두시오." 

우리는 하느님께 청하든 흠숭을 드리건 찬미를 드리건 우리가 뭘 하는 것쯤으로 기도를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런 것이라면 기도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기도 합니다. 기도가 하느님과의 대화라면 우리가 더 잘해야 할 것은 잘 듣는 것, 곧 경청이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 나는 일체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어른과 대화할 때 어른이 말씀하시면 말은 물론 하던 모든 동작 멈추고 공손히 듣듯이 말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그런 멈춤과 경청이 부족합니다. 가끔 젊은 사람들과 대화하다 보면 자기들끼리 그러하듯 제 앞에서도 휴대전화로 뭘 하는데 그때 저로서는 무척 당황스럽지요. 

옛날 같으면 정 급한 일이 있으면 죄송하다고 말씀드리고, 밖에 나가 용무 보고 돌아와서는 다시 경청하지 않습니까? 

아무튼 하느님과의 대화인 기도를 할 때 중요한 것은 경청인데 오늘 다윗은 그 경청에 있어서 우리의 모범입니다. 

그는 시므이의 저주를 하느님 말씀으로 듣습니다. 인간의 말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으로 듣고, 인간을 통하여 하시는 하느님 말씀으로 듣습니다. 

그래서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피하지 않고 맞듯 저주를 피하지 않고 고스란히 다 받을 수 있었고 하느님의 말씀으로 공손히 받들 수 있었습니다. 

사실 우리에게 경청의 자세가 되어 있다면 우리는 우리를 둘러싸고 일어나는 모든 일들에서 하느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들을 수 있습니다. 

비근한 예로 모든 자연 재앙에서 우리는 하느님의 경고를 듣고, 니네베의 왕과 백성들이 단식하고 회개했듯이 지금껏 하던 모든 것을 멈추고 바꿀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사람의 행위에서도 하느님의 경고를 들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시므이의 말 안에서 아들 압살롬의 반역과 관련한 하느님의 음성도 듣는데 이 또한 너무도 놀랍고 대단합니다. 

그래서 그 반역은 아들이 지은 죄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아들을 통해 내리신 벌입니다. 아들의 죄가 아니라 자기가 지은 죄의 벌이요, 하느님께서 가장 치명적인 방법으로 내리신 벌입니다. 그랬을 겁니다. 간음죄 때문에 태어나자마자 아들이 죽은 것도 치명적인 벌이었는데 아들이 반역한 것은 틀림없이 그보다 훨씬 더 치명적인 벌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의 죄를 자기가 받아야 할 벌로 받아들이고, 벌도 인간이 주는 벌이 아니라 하느님이 주시는 벌로 받아들이는 태도는 공손한 기도 자세일 뿐 아니라 벌을 잘 받아들일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인간이 한 짓이라면 도저히 받아들일 수도 없고 용서할 수도 없지만 하느님께서 나의 죄 때문에 내리신 벌이라면 받아들이기 훨씬 수월하겠지요? 그래서 벌을 내리신 하느님께서 선도 내려주실 것을 기대할 수도 있게 되고, 그래서 이런 바람과 믿음으로 다윗은 이렇게까지도 얘기합니다. 

“행여 주님께서 나의 불행을 보시고, 오늘 내리시는 저주를 선으로 갚아 주실지 누가 알겠소?” 

벌을 주시는 하느님은 선을 은총을 주실 거라고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에게는 하느님이 벌도 사랑으로 주시고 선도 은총으로 주시는 분입니다. 이러했기에 다윗은 성인이고, 지혜롭고, 행복한 사람이었는데 그래서 배울 것이 많은 사람이고 우리의 모범입니다. 

어제는 아무리 해도 제목만 올라가고 강론 내용이 올라가지 않아  몇 분에게만 이메일로 보내드렸는데 그것이 어제 강론 댓글에 올라와 있네요. 원하시는 분은 그것을 읽으시면 되겠습니다. 가끔 이런 일이 있는데 저도 왜 그런지 모릅니다. 잘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님의 오늘 말씀 묵상 업데이트 준비중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조명연 마태오 신부

 

더러운 영아,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요즘에는 듣기 힘들지만, 예전에는 늦은 밤에 들려오는 소리가 있었습니다. 바로 “찹쌀떡~~ 메밀묵”입니다. 간단한 리듬이 담긴 이 소리를 아마 많은 분들이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추운 겨울, 사람이 많이 오가는 전철역 근처에서 ‘찹쌀떡, 메밀묵’을 외치며 파시는 분들이 종종 있다고 합니다. 
 
길거리 음식인데도 많은 사람이 거부감없이 이를 구매하신다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단순히 찹쌀떡, 메밀묵을 좋아해서일까요? 아닙니다. 그들이 말하는 ‘찹쌀떡, 메밀묵’이라는 고유 장단이 더 큰 영향을 미친 것이라고 합니다. 외국인에게 이 장단에 맞춰서 “찹쌀떡, 메밀묵”을 외쳐보라고 하면 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6글자밖에 되지 않지만, 우리만의 고유 장단이기에 따라 하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주님을 따르는 것도 고유함이 있습니다. 바로 ‘사랑’입니다. 이 사랑 안에 머무는 이는 사랑 실천하는 것을 어려워하지 않습니다. 받는 것보다 주는 것에 더 행복해하며 남의 행복에서 더 큰 기쁨을 누리기도 합니다. 사랑이라는 주님의 고유함이 자기의 것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 실천에 주저하는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사랑 실천하는 것이 손해 보는 것 같고, 사람들에게 바보 멍청이 소리를 들을 것만 같습니다. 무엇보다 자기 욕심과 이기심 채우는 것이 먼저라서 다른 사람의 행복에 오히려 배 아파합니다. 
 
사랑이라는 주님의 고유함을 간직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고유한 사랑을 실천하면서 행복의 길로 나아가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하느님 나라 안에서 영원한 생명이라는 큰 선물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무덤에서 나온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을 예수님께서 만났습니다. 그 더러운 영을 아무도 휘어잡을 수가 없었지요. 그 안에는 군대라고 불릴 정도로 그 수가 많았지요. 이 마귀를 쫓아내시지요. 그런데 그 더러운 영들이 사람들이 산에서 놓아기르는 많은 돼지 떼에 들어간 것입니다. 마귀들이 들어갔던 돼지 떼가 호수를 향해 비탈을 내리 달려 호수에 빠져 죽고 말았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통해서 더러운 영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사람은 누구입니까? 더러운 영에 들렸던 사람입니다. 한 사람이 이제 자유롭게 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모두가 기뻐하고 축하할 일입니다. 하지만 고장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자기 고장에서 떠나 주십사고 청합니다. 자기들의 손해를 생각했고, 앞으로도 그런 일이 또 생겨 손해를 볼까 두려웠던 것입니다. 이 안에 사랑은 없습니다. 
 
사랑이라는 고유함을 잊어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사랑이 없는 사람은 주님과 함께하지 못하고 쫓아낼 수밖에 없습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다정함이란 진통제이자 치료제, 비타민이자 영양제이다.

- 정재승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더러운 영아,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제정신으로 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실감합니다. 우리가 사는 곳에도 어김없이 기도와 은총이 필요합니다. 더러운 영은 주님 앞에서 그 정체가 드러납니다. 주님의 빛 앞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게됩니다. 더러운 영에게 이름도 인격도 빼앗긴 사람에게서 더러운 영을 추방시키시며 그 사람의 고귀함을 되찾아주십니다. 

사람을 완성하시는 사람의 아들 주님이십니다. 그동안 하느님 없이 사람이 되는 줄 착각했습니다. 우리 존재가 하느님 사랑의 선물이라는 것을 모르고 삽니다. 더러운 영이 돌아갈 집은 파멸과 패배뿐입니다. 하느님 중심으로 뛰어들어야 할 우리들 삶입니다. 

사랑 그 자체로 돌아가야 할 우리들 마음입니다. 버려지고 죽어가는 사랑이 아니라 과분하신 하느님 사랑과 함께 다시 시작하는 사랑의 삶입니다. 온전한 사랑이 온전한 정신입니다. 

우리의 허물어진 영혼을 바로 세우시는 주님의 사랑입니다. 하느님의 질서를 깨뜨리는 모든 죄악과 교만이 이곳에서 치유되길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서로의 안부를 묻고 따뜻한 마음을 나누는 온전한 인격의 기쁜 날 되시길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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