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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4/01/26 (금)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4. 1.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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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하여라, 겨레들에게 주님의 영광을, 모든 민족들에게 그분의 기적을. 주님은 위대하시고 드높이 찬양받으실 분이시다.

하느님, 복된 티모테오와 티토에게 사도의 지혜와 용기를 주셨으니 그들의 전구를 들으시어 저희가 현세에서 정의와 사랑을 실천하며 살다가 마침내 천상 고향에 이르게 하소서.

 

2024년 1월 26일 성 티모테오와 성 티토 주교 기념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랜선으로 초대해요!

2024년 1월 26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성 티모테오와
성 티토 주교 기념일

 

 

오늘 성경구절 이미지

나는 그대 안에 있는 진실한 믿음을 기억합니다. (티모테오 2서 1장 5절)

 

나는 그대 안에 있는 진실한 믿음을 기억합니다. (티모테오 2서 1장 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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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모테오 2서 1장 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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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티모테오 2서 1,1-8)
    나는 그대 안에 있는 진실한 믿음을 기억합니다.

  • 오늘 복음
    (루카복음 10,1-9)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4년 1월 26일 (금) 평화방송 매일미사 명동성당 매일미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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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 복음 (Gospel)
복음 (Gospel)

 

주님이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게 하셨다.

 

 

루카복음
10장 1-9절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때에 


주님께서는 다른 제자 일흔두 명을 지명하시어, 몸소 가시려는 모든 고을과 고장으로 당신에 앞서 둘씩 보내시며,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가거라.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 


돈주머니도 여행 보따리도 신발도 지니지 말고, 길에서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마라.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먼저 ‘이 집에 평화를 빕니다.’ 하고 말하여라. 


그 집에 평화를 받을 사람이 있으면 너희의 평화가 그 사람 위에 머무르고,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되돌아올 것이다. 


같은 집에 머무르면서 주는 것을 먹고 마셔라. 일꾼이 품삯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이 집 저 집으로 옮겨 다니지 마라. 


어떤 고을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받아들이면 차려 주는 음식을 먹어라. 


그곳 병자들을 고쳐 주며, ‘하느님의 나라가 여러분에게 가까이 왔습니다.’ 하고 말하여라.”

 

 

매일미사 실시간 스트리밍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매일미사 평화방송

 

 

2024년 1월 26일 05:00
김민회 시몬 신부

 

✚ 성 티모테오와 성 티토 소개 00:06

✚ 미사시작 00:59

✚ 강론시작 07:57

 

 

 

그 외 성당 실시간 스트리밍 미사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오늘의 말씀 묵상
매일미사
김재덕 베드로 신부

 

성령께서 함께 계심을 믿으십시오.

 

“돈주머니도 여행 보따리도 신발도 지니지 말고, 길에서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마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무소유’를 요구하십니다. 길을 떠나는 이들에게 꼭 필요한 것처럼 느껴지는 것들까지도 지니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왜 이렇게까지 말씀하시는 것일까요? 왜냐하면 제자들은 이미 가진 것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곳 병자들을 고쳐 주며, ‘하느님의 나라가 여러분에게 가까이 왔습니다.’ 하고 말하여라.” 

병자들을 고쳐 주시고,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시는 것은 공생활 가운데 예수님께서 하셨던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은, 제자들이 앞으로 하게 될 모든 일 안에서 성령께서 그들과 함께 계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예수님께서는 ‘성령 이외에 다른 어떤 것도 가지지 마라.’라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를 가지고 있으면 우리 마음은 그 하나를 향하게 됩니다. 그러나 두 개, 세 개, …… 가진 것이 점점 늘어나면, 우리 마음도 갈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믿음에서 우리가 가져야 할 것은 명확합니다. 

바로 우리와 함께 계시는 성령 하느님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복잡한 마음, 갈라진 마음, 갈등을 겪고 있는 마음 안에 놓여 있다면, 여러분의 마음이 너무 많은 것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까닭에 나는 그대에게 상기시킵니다. 내 안수로 그대가 받은 하느님의 은사를 다시 불태우십시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비겁함의 영을 주신 것이 아니라, 힘과 사랑과 절제의 영을 주셨습니다.” 

우리도 이미 세례와 견진 성사를 통하여 티모테오처럼 성령을 받았습니다. 성령께서 반드시 여러분과 함께 계심을 믿으십시오. 성령의 인도와 함께 가족과 이웃들에게 평화와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는,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서 보내신 일꾼이 되는 오늘 하루를 보내면 좋겠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프란치스코회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인연에 대하여

 

"나 바오로가 같은 믿음에 따라 나의 착실한 아들이 된 티토에게 인사합니다." 

한 주일 사이에 저는 두 부류의 제자를 만났습니다. 둘 다 제 제자이지만 한 제자들은 수도원을 떠났고, 다른 제자는 이번에 사제품을 받은 새 사제입니다. 

어제는 새 사제가 저의 공동체에 와서 첫 미사와 식사를 같이했는데 이 형제가 끝까지 사제가 되어준 것이 너무도 흐뭇하고 기뻤습니다. 

자기의 행복과 구원을 위해 수도자가 되고 사제가 된 것이지만 마치 저를 위해 사제가 되어준 것 같았다는 말입니다. 아마 부모님들의 마음들이 이런 저의 마음과 똑같을 겁니다. 

이에 비해 지난주 만난 제자들은 진한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전날 회식 때 기쁘게 즐겁고 대화 나누고 다음 날 미사를 드리는데 그중 몇이 미사를 따라 하지 못할 정도로 그간 신앙생활을 소홀히 한 것입니다. 

코로나로 인해 그런 것이겠지, 미사에 안 나가도 나름대로 신앙생활 열심히 하겠지, 이런 식으로 그들을 이해하려고 하고 저 자신에게는 위로하려고 해도 여간 아쉽고 씁쓰레한 것이 아니었고 배신감과 허탈감 같은 것도 있었습니다. 

수도원 있을 때 제가 가르친 것이 이것밖에 되지 않았나! 내가 가르치고 물려준 것이 고작 이것이었나! 이런 것이었지요. 

수도원을 나가서도 연을 끊지 않고 저를 찾아 준 것은 너무도 고맙지만 저와의 관계가 인간적인 신뢰와 사랑의 관계에 그치지 않고 오늘 우리가 축일로 지내는 디모테오와 티토와 바오로 관계처럼 한 믿음의 관계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바람 때문에 진한 아쉬움이 남았던 겁니다. 

저의 바람은 인연(因緣)이 인연(人緣)으로 그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우리가 인연 차원에서 잘 산다는 것은 나쁜 인연은 끊어버리고 좋은 인연은 끊지 않고 이어가는 것일 겁니다. 

그런데 좋은 인연이라는 것이 그저 인간적인 인연에 그친다면 이렇게 인간적으로 좋은 관계를 좋은 관계라 하기엔 부족하지요. 

부자지간과 모녀지간도 마찬가지지요. 부자지간과 모녀지간의 인연은 계속 유지되는데 자식들이 언제부턴가 부모와 같은 믿음의 생활을 하지 않는다면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 부모들이 신앙의 부모들은 되지 못한 것이지요. 

이런 면에서 어제 회심한 바오로가 오늘 두 성인에게 같은 믿음의 아비가 된 것은 바오로에게는 여간 큰 행복이 아니고 우리에게는 여간 큰 모범과 도전이 아닙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들을 믿음의 아들이라고 말하는데,그가 이들에게 믿음의 아비가 된 것은 거저 된 것이 아닙니다. 

오늘 바오로 사도는 아들 디모테오에게 이런 편지를 보냅니다. 

"그리스도 예수님의 사도가 된 나 바울로가 아들 디모테오에게 편지를 씁니다. 나는 기도할 때마다 끊임없이 그대를 생각하면서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나는 그대에게 상기시킵니다. 내 안수로 그대가 받은 하느님의 은사를 다시 불태우십시오." 

바오로가 이렇게 아들을 위해 기도하고, 서간을 통해서 받은 은사를 상기시키고, 그 은사를 다시 불태우라고 격려하였기에 오늘 축일로 지내는 두 아들이 같은 믿음의 아들이 된 것입니다. 

제가 사제가 됨으로써 육신의 아비는 되지 못했지만 저를 아비처럼 생각하는 아들과 딸들이 많이 있는데 이들이 부디 인간적인 사랑과 인연으로 그치지 말고 저와 같은 믿음의 자녀로 성장하고 살아가길 기도하는 오늘입니다. 여러분의 자녀들과 대자 대녀들과의 관계도 오늘 바오로 사도와 두 아들과의 관계와 같기를 기도합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복음을 전하면 어째서 죄에서도 벗어날까?

 

오늘은 성 티모테오와 성 티토 주교 기념일입니다. 바오로 사도가 주교로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편지를 쓴 분들입니다. 오늘 복음은 우리가 많이 보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파견할 때 내용입니다. 특별히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라는 말씀은 큰 울림을 줍니다. “수확할 것이 많다. 근데 일꾼은 적다. 너는 뭐하고 있니? 빨리 일해라.” 하시는 것 같습니다. 

오늘은 그리스도께서 파견하시는 일꾼으로 살아가는 것만이 죄에서도 벗어나게 되는 유일한 길임을 묵상해보겠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과 죄에서 벗어나는 것, 에덴동산에서 동물에게 이름을 지어주는 것과 선악과를 먹지 않게 되는 것과는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주님의 일을 하는 것에서 즐거움을 느낀다면 그래도 선악과가 탐스러워 보였을까요? 어쩌면 주님의 일꾼이 되는 것에서 즐거움을 찾지 못했기에 뱀의 유혹에 넘어간 것은 아닐까요? 

죄는 행복해 보이니 짓게 됩니다. 만약 남편이 뭐 외도를 했다. 그래서 또 여자분이 굉장히 힘들어서 암에 걸리셔서 돌아가시는 분이 계셔요. 그런 분을 볼 때는 남자도 문제가 있지만 암 걸리는 나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남편이 그렇게 바람피우는 일이 행복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내가 더 고통스러울 수 있거든요. 어떤 분은 남편이 그렇게 하는 것이 처음에는 아주 미워 보였다가 나중에는 성체조배를 1년 동안 하고 났더니, 남편이 불쌍해 보이더래요. 죄짓는 게 더 이상 행복으로 보이지 않게 만드신 거죠. 

우리의 선택은 항상 뭐가 더 행복인가에 대한 우리의 시선에 달려있습니다. 뱀이라고 하는 것은 내 안에서 죄를 더 행복하게 보이게 만드는 거예요. 그러니까 “나를 유혹하지 마! 나는 죄를 끊을래. 나는 유혹을 안 받을래. 나는 사탄에게서 벗어날래.” 하더라도 더 큰 행복으로 보이는 무언가를 찾지 못하면 절대 거기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더 큰 기쁜 맛이 있어야 합니다. 

초신자의 시선이라고 하는 유튜브 채널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자매가 심한 우울증에 걸렸어요. 엄마랑 둘이 사는데 뭔가 대인관계가 안 되는 거죠. 친구들한테 왕따당하는 기분을 느끼고 점점 더 학교에 안 나가고 싶어지고 집에만 머물고 성적 떨어지고 대학도 들어갈 수 없게 되고 심지어 혼자 계신 어머니가 암에 걸리신 거예요. 그러니까 고통을 더 이상 감내를 할 수 없는 거죠. 개신교에 다니긴 했는데 기도들 했대요. 울기도 하고. 그런데 이 현실로 돌아오면 또 똑같은 거예요. 

내가 정말 외로울 때 내 그 불안함과 외로움을 위로해줄 수 있는 유일한 거는 내 나 자신밖에 없거든요. 그러니까 나 자신에게 정말 고마운 거죠. 고마우면 나 자신의 말을 따라주게 되는데 자아는 뱀이잖아요. 그러니까 뱀이 원하는 게 뭐겠어요. 나의 멸망인 거죠. 자기처럼 땅으로 끌어 내리기를 원하는 거죠. 안에서 자꾸 어떤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냐면 “죽어. 살면 뭐 해?” 

정말 죽는 게 전혀 두렵지 않았대요. 그만큼 삶이 힘들었던 거죠. 근데 이게 뭐예요? 유혹인 거잖아요. 뛰어내리는 게 더 맛있어 보이는 거예요. 그런데 갑자기 바닥이 뱀이 우글거리는 땅이 쑥 꺼지면서 지옥이 보이는 거죠. 그냥 바닥이었으면 바로 뛰어내렸을 텐데 죽음이 끝이 아닌 영원한 고통의 시작임을 보고서는 이 지상에 다시 천국으로 느껴졌대요. 알고 봤더니 어머니가 딸을 위해 매일 기도를 했다고 합니다. 딸은 이제 이전의 자신이 아니라 남을 구하려는 어머니와 같은 삶이 더 큰 행복임을 볼 수 있게 되었고 그렇게 살아간다고 합니다. 

우리를 죄에서 벗어나게 만드는 방법은 죄가 덜 행복하게 보이게 만들고 사실은 더 고통스럽게 보이게 만드는 행복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서 얻는 평화와 행복이 훨씬 크게 보이게 만드는 것이 우리를 죄에서 벗어나게 하는 거죠. 

내가 그분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지 못하면 그 행복도 맛볼 수 없고 그러면 그 행복을 잃게 만드는 죄의 고통도 제대로 볼 수 없게 됩니다. 죄를 피하려고만 하지 말고 그 죄를 고통 중의 고통으로 느끼게 만드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 일이란 나에게 은혜를 주신 분의 밭에서 그분을 기쁘게 해 드리기 위해 추수꾼이 되는 일입니다. 

이소라 씨하고 얼마 전에 신동엽 씨하고 23년 만에 만났습니다. 이소라 씨가 유튜브를 하나 개설을 한 거죠. 전에 한 6~7년 사귀었잖아요. 지금 신동엽 씨는 결혼도 했고 애들도 있는데, 지금 이소라 씨가 어떤 유혹의 뭐 대상이 될 수도 있는 거죠. 그런데 지금은 이전 이야기들을 그냥 재미있게 할 수 있어요. 왜냐하면, 신동엽 씨 나름대로 해야 할 일 안에서 상대가 유혹의 대상이 아닌 일 안에 속한 대상들입니다. 

주인의 밭에서 추수할 곡물에 마음을 빼앗길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 것들이 유혹이나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추수하여 주인을 기쁘게 할 대상으로 보이게 됩니다. 주님의 일꾼이 되면 이 세상 것들이 주님을 기쁘게 해 드릴 일거리이지 유혹 거리로 보이지 않게 되어 죄도 안 짓고 좋은 일을 하며 살 수 있게 됩니다.

이렇게 되려면 주님께서 시키신 일을 하는 것이 최고의 행복이 될 수 있을 만큼 주님을 사랑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일이 죄에서 벗어나 영원한 생명으로 나아가는 유일한 길입니다. 주님을 사랑하게 되면 모든 영혼은 이제 추수해야 할 곡식들로 보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조명연 마태오 신부

 

우리는 세상에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나요?

 

2023년 10월 초, 미국의 자선가 찰스 프렌시스 척 피니가 92세의 나이로 샌프란시스코의 작은 임대 아파트에서 숨을 거뒀습니다. 그는 생전에 자신에게 아주 엄격했습니다. 10달러짜리 플라스틱 시계를 차고 다녔으며, 그의 옷은 기성복으로 헤질 때까지 입고 다녔습니다. 호텔은 항상 저렴한 곳을 찾았고, 옷도 호텔방에서 직접 빨아 입었습니다. 비행기는 이코노믹석만 고집했습니다. 
 
가난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는 평생 80억 달러, 우리 돈으로 약 10조 8,000억 원을 여러 곳에 기부할 정도로 부자였습니다. 그러나 그 모두를 익명으로 했습니다. 모든 사업에 성공했지만, 그 성공을 자기의 편안하고 안락함을 위해 쓰지 않았습니다. 소비와 사치를 누려도 누가 뭐라 하지 않을 정도의 위치였지만, 검소한 생활을 하면서 사랑을 실천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누구도 한 번에 구두 두 켤레를 신을 수 없어요. 필요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줘 그들이 스스로 일어서게 하는 것만큼 세상에 가치 있는 일은 없습니다.” 
 
척 피니는 전 재산을 남김없이 세상에 기부했고, 이로써 그의 재단은 2020년에 해산했습니다. 이런 그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 각자의 삶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합니다. 우리는 세상에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나요? 
 
주님의 일은 자기 혼자만 잘 사게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보다 모두 잘살게 하는 것, 단 한 명의 예외 없이 구원의 길로 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기만 잘 되면 그만이라는 생각으로 살아갑니다. 다른 이가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고, 그가 힘든 삶을 사는 것은 잘못했기 때문이라고 쉽게 단정합니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라고 말씀하시면서 주님의 일을 하는 사람이 많아져야 한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 일꾼의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세상에 제자들을 파견하시면서 보여 주십니다. 즉, 돈주머니도 여행 보따리도 신발도 지니지 말고, 길에서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섬김을 받는 삶이 아닌, 섬기는 삶을 살아야 주님의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기쁜 소식을 세상에 전하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척 피니의 모습을 기억하면서, 세상에 가치 있는 삶을 사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세상 안에서 화려하고 넉넉한 삶을 살 수는 없겠지만, 예수님의 참 평화를 선물로 받을 수 있게 됩니다. 하느님 나라에 당당하게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시간은 모든 상처의 약이다.

- 윌리엄 셰익스피어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먼저 수확의 들판을 보여주십니다. 수확의 들판을 뛰어다닐 때가 가장 행복한 때입니다. 일꾼의 행복은 살아내야 할 수확의 들판과 함께합니다. 소중한 일꾼을 영적으로 살찌우는 수확의 들판입니다. 그래서 일꾼은 기도로 태어나고 사람의 길은 수확의 길로 이어집니다. 

수확은 일꾼을 만들고 수확의 들판은 일꾼들의 삶을 알려줍니다. 참된 일꾼이 많아질수록 밝아지고 풍요로워지는 하느님의 들판입니다. 수확의 기쁨과 알찬 보람을 만지는 사람은 언제나 주님의 일꾼들입니다. 

일꾼들의 마음은 수확의 들판에 가 있습니다. 기도 또한 우리의 마음이 가 있는 곳에서 이루어지는 은총의 수확입니다. 일꾼들의 호흡과 일꾼들의 땀방울이 기도의 결실임을 우리는 압니다. 기

도로 결합되어 있는 일꾼들의 삶이며 기도로 강렬하여지는 수확의 들판입니다. 기도로 시작하는 오늘의 행복입니다. 행복의 수확은 기도의 힘입니다. 기도의 힘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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