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누구를 믿는지 잘 알고 있으며, 내가 맡은 것을 의로운 심판관이 마지막 날까지 지켜 주시리라고 확신하노라.
하느님, 복된 바오로 사도를 통하여 온 세상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셨으니 오늘 그의 회심을 경축하는 저희가 그의 모범을 따라 진리의 증인이 되고 언제나 어디서나 복음을 전하게 하소서.
2024년 1월 25일 성 바오로 사도의 회심 축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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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월 25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성 바오로 사도의 회심 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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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뜨십시오. (사도행전 22장 1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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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22장 13절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사도행전 22,3-16)
일어나 예수님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며 세례를 받고 죄를 용서받으십시오.. - 오늘 복음
(마르코복음16,15-18)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복음을 선포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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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이 말씀하신다.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뽑아 세웠으니, 가서 열매를 맺어라. 너희 열매는 길이 남으리라.
마르코복음
16장 15-18절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복음을 선포하여라.
그때에 예수님께서 열한 제자에게 나타나시어
15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16
믿고 세례를 받는 이는 구원을 받고 믿지 않는 자는 단죄를 받을 것이다.
17
믿는 이들에게는 이러한 표징들이 따를 것이다. 곧 내 이름으로 마귀들을 쫓아내고 새로운 언어들을 말하며,
18
손으로 뱀을 집어 들고 독을 마셔도 아무런 해도 입지 않으며, 또 병자들에게 손을 얹으면 병이 나을 것이다.”
매일미사 평화방송
2024년 1월 25일 05:00
박배원 베드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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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묵상
매일미사
김재덕 베드로 신부
우리의 믿음은 들음 안에서 태어난다.
“사울아, 사울아, 왜 나를 박해하느냐? …… 나는 네가 박해하는 나자렛 사람 예수다.”
바오로는 예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이 한 번의 들음이 바오로의 삶을 완전히 바꾸어 놓습니다. 필리피서는 바오로 안에서 어떤 내적인 변화가 일어났는지 다음과 같이 잘 보여 줍니다.
“그러나 나에게 이롭던 것들을,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두 해로운 것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나의 주 그리스도 예수님을 아는 지식의 지고한 가치 때문에, 다른 모든 것을 해로운 것으로 여깁니다.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든 것을 잃었지만 그것들을 쓰레기로 여깁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얻고 그분 안에 있으려는 것입니다”(3,7-9).
예수님을 얻고 싶은 마음, 예수님 안에 있고 싶은 마음, 바오로에게 일어난 가장 큰 변화는 바로 예수님에 대한 진짜 믿음이 생긴 것입니다.
참된 회심은 ‘들음’으로 이루어집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기 시작할 때, 우리의 믿음은 영적인 힘을 되찾게 됩니다. 바오로에게 일어난 영적인 변화가 우리 안에서도 그대로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예수님을 얻으려는 열망, 예수님 안에 있으려는 열망과 함께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서 이루어지게 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것을 중단하지 마십시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오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이루어집니다.”(10,17)라는 로마서의 말씀처럼, 우리의 믿음은 들음 안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러므로 듣는 것이 중단된 신앙생활은 하느님께 돌아가는 ‘회심’을 잃어버린 것과 같습니다. 영적인 기쁨도 사라져 버리게 되고, 하느님에 대한 믿음도 그 힘을 잃어 가게 됩니다. 하느님보다 다른 것들이 더 중요해지기 시작하고, 마침내 구원을 가져다주는 신앙생활이 짐처럼 느껴지게 될 것입니다.
말씀을 듣는 신앙생활은 “믿는 이들에게” 일어나게 될 영적인 표징들을(마르 16,17-18 참조) 체험하게 이끌어 줍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프란치스코회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바닥 영성
“갑자기 하늘에서 큰 빛이 번쩍이며 내 둘레를 비추었습니다. 나는 바닥에 엎어졌습니다.”
바닥 영성
바오로의 회심은 바닥으로 엎어짐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서 있다가 바닥으로 엎어지는 것, 높은 곳에 있다가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 이것이 회심의 시작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경우가 아니더라도 기고만장한 사람은 바닥까지 떨어지지 않으면 좀처럼 회개하지 않습니다.
바닥이란 실패로 치면 한두 번의 실패가 아니라 거듭된 실패요, 내려가다가 더 이상 내려갈 수 없는 곳까지 내려감을 뜻합니다.
그런데 바닥까지 내려감은 더 이상 내려갈 것은 없고, 이제 잘만 하면 올라가는 것만 남은 것이기도 합니다.
그렇긴 하지만 모두가 올라가는 것은 아닙니다. 포기한 곧 주저앉아버린 사람은 올라가지 않고, 빛 곧 희망을 본 사람만 올라가려고 할 것입니다.
그래서 회개의 두 번째 단계는 빛을 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빛을 보기 전에 그리고 빛을 보기 위해서 먼저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뒤집기입니다. 주저앉은 상태로 계속 있는 것도 안 되지만 엎어진 상태로 계속 있는 것도 안 됩니다.
엎어진 상태로 계속 있지 않고 뒤집어야 하늘을 보고, 바닥에서 빛을 보게 되는데 오늘 바오로 사도도 엎어지며 큰 빛을 봅니다.
아니 실은 큰 빛을 보기 전에 큰 빛에 의해 쓰러지고 그런 다음 큰 빛에 의해 일어서고 올라갈 것입니다.
여기서 큰 빛이란 하느님한테 한 대 크게 얻어맞는 것입니다. 아니, 내가 지금 바닥에 엎어진 것이 실은 내 실수나 인간의 딴지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느님한테 한 대 세게 얻어맞은 것임을 크게 깨닫는 겁니다.
갑자기 큰 빛을 보게 되면 일시적으로 눈이 부시고 멀게 되듯 큰 빛은 먼저 우리 눈을 멀게도 하지만 보게도 하는 것입니다.
작은 빛은 세상 것을 보게 하지만 큰 빛은 세상 것을 보는 눈을 멀게 한 다음 하늘을 보게 합니다.
그러니까 순서에 따라 회개의 단계를 정리하면
ㅡ 엎어져 바닥까지 내려가기
ㅡ 바닥에서 뒤집기
ㅡ 바닥에서 희미하게 하늘을 보기
ㅡ 엎어진 것도, 눈이 먼 것도 큰 빛에 의한 것임을 크게 깨닫기(바오로 경우, 눈에서 비늘이 떨어짐)
ㅡ 이제 큰 빛과 새로운 눈으로 하늘을 바라보고 땅에서 살기
이런 회개의 상태를 오늘 독서는 하나니아의 입을 통해 전합니다.
“우리 조상들의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선택하시어, 그분의 뜻을 깨닫고 의로우신 분을 뵙고 또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를 듣게 하셨습니다. 당신이 보고 들은 것을 모든 사람에게 전하는 그분의 증인이 되라는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간절히 기도하면 하느님 뜻을 알 수 있나요?
로버트 기요사키의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 2』에 빌과 애드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떤 마을 촌장이 물을 공급해주는 사람과 계약을 원한다는 공고를 냈습니다. 딱 2명 하고만.
에드가 먼저 땄고, 신이 나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열심히 일하며 두 개의 양동이로 호수에서 물을 날랐습니다. 빌은 한동안 마을을 떠나 모습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에드는 경쟁자가 없어서 더욱 신나게 양동이로 물을 나르며 돈을 벌었습니다.
여러 달이 지난 후 빌은 양동이 두 개 대신 사업 계획을 짜고, 투자가 네 명을 모으고, 일을 할 사장을 구했습니다. 그리고 또 여러 달이 지나고 건설 팀과 함께 마을로 돌아왔습니다.
일 년 동안 빌의 팀은 아주 두꺼운 강철 송수관을 건설해서 마을과 호수를 연결했습니다. 빌은 일을 하건 안 하건 매일 많은 돈을 얻었습니다. 에드는 평생 일만 했습니다. 이야기 끝. 열심히 산다고 다 좋은 걸까요? 더 큰 뜻 안에 머무는 게 더 중요합니다.
오늘은 바오로 사도의 회심 축일입니다. 그는 교회를 박해하면서 하느님 뜻을 굳건히 따르고 있다고 확신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왜 나를 박해하느냐?”라고 하십니다. 그는 왜 하느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하느님을 박해하고 있었을까요? 하느님 뜻을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느님 뜻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끈질기게 기도하면 알 수 있을까요? 물론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오로 사도가 기도하지 않는 사람이었을까요? 성경을 읽으면 하느님 뜻을 알 수 있다고도 말합니다.
그러나 바오로가 성경을 읽지 않는 사람이었을까요? 어떤 이들은 마음의 평화가 하느님 뜻을 따르는 증거라고 말합니다. 물론 그렇습니다. 그러나 바오로 사도도 자신이 하느님의 뜻을 따른다는 확신으로 그것에 대해서는 마음이 편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보다 더 확실히 하느님 뜻을 아는 방법이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당신 뜻 안에 머물라고 남겨놓은 흔적들입니다.
해리포터는 학대하는 이모, 삼촌, 사촌 더즐리 가족과 함께 사는 평범한 소년으로 인생을 시작합니다. 그는 자신의 마법적 유산을 전혀 알지 못합니다. 열한 번째 생일에 해리는 호그와트 마법학교의 사냥터지기인 루베우스 해그리드로부터 자신이 마법사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해그리드는 해리에게 능숙하고 존경받는 마법사였던 그의 부모, 릴리와 제임스 포터에 대해 알려줍니다. 그들은 해리가 아직 아기였을 때 어둠의 마법사 볼드모트에 의해 살해당했습니다. 해리는 이마에 번개 모양의 흉터만 남기고 이 공격에서 살아남았는데, 이는 그를 마법사 세계에서 유명하게 만든 사건이었습니다.
호그와트에서 해리는 호그와트에서 수년 동안 부모를 죽인 볼드모트의 도전과 위험에 직면합니다. 이때 그를 돕는 이들이 나타납니다. 그들은 모두 해리 포터의 부모를 사랑하는 이들이었습니다. 특별히 해리를 싫어하는 듯한 세베루스라는 인물도 있습니다.
사실 그는 해리의 어머니를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볼드모트의 하수인이기는 했지만, 그 사랑이 너무 커서 그녀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였고 또 그녀 대신 그녀의 아들인 해피 포터를 지켜주는 이중 첩자였습니다. 그는 볼드모트에게 죽임을 당하면서도 해피 포터를 위하는 따듯함을 보여줍니다. 해피 포터는 이들의 희생으로 결국 볼드모트를 물리칩니다.
만약 아이가 늑대와 살면서 열심히 살면 어떻게 될까요? 훌륭한 늑대가 됩니다. 훨씬 중요한 것은 내가 어디에 속해있느냐입니다. 공동체에 내가 살아갈 올바른 뜻이 녹아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남겨놓은 당신 뜻을 알게 만드신 유물은 바로 ‘교회’입니다. 교회에서 순교하라고 해서 순교하면 하느님 뜻입니다. 교회에서 순교하지 말라고 해서 순교하지 않으면 그것도 하느님 뜻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교회를 박해함으로써 하느님 뜻에서 멀어졌던 것입니다.
교회가 곧 그리스도이고 교회 안에 있으면 하느님 뜻 안에 있습니다. 교회 밖에 있으면서 아무리 발버둥 쳐도 하느님 뜻을 이어갈 수 없습니다. 해리포터의 부모가 남겨놓은 유산들, 곧 부모의 친구들과 부모를 사랑했던 이들, 그리고 그 부모를 따르는 이들 속에 있으며 결국 부모의 뜻을 실현하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여기에서는 책도 믿을 수 없고 친구도 믿을 수 없고 행복도 믿을 수 없습니다. 바로 자기 부모를 사랑하는 이들의 공동체만이 그의 길을 밝혀줄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교회를 박해하는 바오로 사도에게 왜 당신을 박해하느냐고 했던 것을 기억합시다.
오늘의 말씀 묵상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조명연 마태오 신부
우리는 어떤 마음으로 주님을 만나고 있나요?
우리말에서 감정을 표현하는 말은 긍정적인 감정이 더 많을까요? 아니면 부정적인 감정이 더 많을까요? 7:3의 비율로 부정적인 감정어가 더 많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만 그런 것이 아니라 거의 모든 문화권에서 비슷하게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하더군요.
부정적인 감정을 사용하는 것은 우리 마음 상태에 영향을 미칩니다. 그래서 누군가의 비판은 두고두고 생각나는데, 어떤 이의 칭찬에 대해서는 쉽게 잊어버리지 않습니까? 또 나를 향한 화가 난 얼굴은 지워지지 않지만, 나를 향한 미소 짓는 얼굴은 쉽게 잊어버립니다. 액수가 똑같아도 이익의 기쁨보다 손실의 고통을 더 크게 느끼는 우리입니다.
부정적 편향은 지금의 삶에 만족하기가 힘듭니다. 그래서 긍정적 편향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문제는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심리 법칙인 ‘4의 법칙’이 있습니다. 이는 나쁜 일 한 가지의 강한 영향력을 상쇄하려면 좋은 일 4가지가 필요하다는 의미입니다. 누군가와 다투었다면 다정한 대화를 네 번은 해야 관계가 회복된다는 말입니다.
이 법칙을 생각하면, 누군가에게 아픔과 상처를 주는 말이나 행동을 했으면 몇 번이나 상대에게 용서를 청하고 또 잘해야 할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최하 네 번은 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보통 사람은 할 만큼 했다는 마음을 갖고서 관계 회복을 아예 포기하면서 거리 두는 관계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계속 용서해 주십니다. 절대 포기하지 않는 사랑으로 우리에게 늘 최고의 선물을 주려고 하십니다. 거리 두는 관계로는 그 사람하고만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과 그리고 무엇보다도 주님과의 관계도 안 좋아집니다. 힘든 삶의 연속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은 성 바오로 사도의 회심 축일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처음에 예수님을 박해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스테파노 부제가 순교할 때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반대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부정적 편향을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놀라운 말씀을 하셔도, 깜짝 놀랄만한 기적을 행하셔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를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그가 다마스쿠스로 가던 길에 직접 나타나셔서 그를 사도로 부르십니다.
이런 체험이 바오로를 변화시켰습니다. 부정적 편향에서 벗어나, 이제 긍정적 편향으로 예수님을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과연 어떤 마음으로 주님을 만나고 있나요? 주님과는 거리 두는 관계가 아니라, 친근하고 밀접한 관계가 되어야 합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누군가 내 마음을 이해해 주는 것보다 더 큰 위안은 없다.
- 조지 산타야나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너희는 온 세상에 복음을 선포하여라.
주객전도의 삶을 바로잡는 것이 회심입니다. 회심의 삶은 틀린 것을 자꾸 옳다고 우겨대지 않습니다. 우리의 손으로 우리의 눈을 찌르는 이 어리석음과 이 아픔을 멈추는 것이 회심입니다. 참된 근원은 시대가 지나도 바뀌지 않습니다.
회심이란 근원을 찾고 근원을 만나기에 우리를 바른 길로 이끕니다.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잃으며 길을 찾고 있습니다. 회심도 없고 기도도 없다면 우리의 삶은 너무도 비참할 것입니다. 지극하신 하느님의 뜻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지극하신 마음이 바로 지극한 회심입니다. 다시 시작하는 마음이 그래서 중요합니다. 우리가 살아가고 걸어가야 할 삶의 진정한 길을 만나는 것이 회심의 여정입니다. 회심의 빛은 복음의 빛입니다. 하느님의 밝은 빛으로 신앙의 근원을 만났던 성 바오로 사도의 회심입니다.
회심은 지금의 현실을 힘있게 헤쳐나갈 수 있는 가장 좋으신 하느님의 은총입니다. 은총은 인생의 진실과 생활의 참모습을 보여줍니다. 새롭게 태어나는 회심의 삶으로 성 바오로를 사도가 되게하십니다.
참된 회심은 겸손을 낳고 겸손은 배려로 이어지며 배려는 뜨거운 열정으로 행복을 나눕니다. 다시 행복해진 성 바오로의 삶이며 하느님께서 모든 것이 되신 새로운 삶으로 자신을 기꺼이 하느님께 내어드립니다.
회심의 본질은 하느님께 내어드리는 삶임을 기억합니다. 모든 순간들을 하느님께 내어드리는 회심 축일 되시길 기도드립니다. 참된 회심이 복음 선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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