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매일미사 말씀묵상

24/01/23 (화)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4. 1. 23.
반응형

 

주님께 노래하여라, 새로운 노래. 주님께 노래하여라, 온 세상아. 존귀와 위엄이 그분 앞에 있고, 권능과 영화가 그분 성소에 있네.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저희를 자애로이 이끄시어 사랑하시는 성자의 이름으로 저희가 옳은 일에 힘쓰게 하소서.

 

2024년 1월 23일 연중 제3주간 화요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랜선으로 초대해요!

2024년 1월 23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연중 제3주간 화요일

 

 

오늘 성경구절 이미지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마르코복음 3장 35절)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마르코복음 3장 35절) 성경말씀카드 마르코복음 성경구절이미지

 

성경구절 이미지 다운로드
마르코복음 3장 35절

240123_오늘성경구절이미지.jpg
0.37MB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사무엘기 하권 .6,12ㄴ-15.17-19)
    다윗과 온 이스라엘 집안은 함성을 올리며 주님의 궤를 모시고 올라갔다.

  • 오늘 복음
    (마르코복음 3,31-35)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4년 1월 23일 (화) 평화방송 매일미사 명동성당 매일미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온라인 매일 미사 바로가기

 

오늘의 말씀 묵상 바로가기

 

 

매일미사 오늘 복음 (Gospel)
복음 (Gospel)

 

하늘과 땅의 주님이신 아버지, 찬미받으소서. 아버지는 하늘 나라의 신비를 철부지들에게 드러내 보이셨나이다.

 

 

마르코복음
3장 31-35절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31 
그때에 예수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왔다. 그들은 밖에 서서 사람을 보내어 예수님을 불렀다. 

32 
그분 둘레에는 군중이 앉아 있었는데, 사람들이 예수님께 “보십시오, 스승님의 어머님과 형제들과 누이들이 밖에서 스승님을 찾고 계십니다.” 하고 말하였다. 

33 
그러자예수님께서그들에게, “누가내어머니고내형제들이냐?” 하고반문하셨다. 

34 
그리고 당신 주위에 앉은 사람들을 둘러보시며 이르셨다.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35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매일미사 실시간 스트리밍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매일미사 평화방송

 

 

2024년 1월 23일 05:00
김민회 시몬 신부

 

✚ 미사시작 00:23

✚ 강론시작 06:27

 

 

 

그 외 성당 실시간 스트리밍 미사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오늘의 말씀 묵상
매일미사
김재덕 베드로 신부

 

예수님과 가장 특별한 관계를 맺는 길

 

혈연관계는 이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관계입니다. 아무런 조건 없이 내주게 만들고, 무엇보다도 먼저 사랑하게 하여 줍니다. 혈연관계보다 앞서는 관계는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삶이 혈연관계와 똑같은 관계를 맺게 하여 준다고 말씀하십니다.

많은 이의 신앙이 혈연관계 앞에서 무너집니다. 자녀들을 대하는 몇몇 부모들의 모습을 보면, 하느님의 뜻이 그 관계 안에서 절대로 앞설 수 없는 듯 보입니다. 자녀의 행복이 신앙보다 더 앞서고, 자녀의 성적이 하느님의 뜻보다 먼저입니다. 

자녀들에게는 하느님과 특별한 관계를 맺는 신앙의 길을 가르치지 않으면서, 그런 자녀를 위하여 열심히 기도합니다. 좋은 대학, 좋은 직장, 더 좋은 삶의 환경을 얻을 수만 있다면, 모든 것을 바쳐서라도 하느님께 기도할 마음을 가진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면서 생각합니다. ‘목표한 대학에 들어가면 신앙생활을 할 것이다.’ ‘그 직장에 취업하게 되면 신앙생활을 할 것이다.’ 

냉정하게 생각하여 봅시다, 하느님을 왜 믿어야 하는지. 믿음을 지키고자 때로는 소중한 것을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을 하나도 배우지 않은 자녀가, 과연 자신이 바라는 것을 다 얻은 뒤에 하느님께 돌아올 수 있을까요? 돌아올 수야 있겠지만, 그리 쉽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에게 신앙을 가르쳐 주십시오. 여러분의 자녀들이 예수님과 “형제요 누이”의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십시오. 여러분의 자녀들이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 안에 담긴 하느님의 뜻을 실천할 수 있는 사람들이 되도록 듣는 마음을 가르쳐 주십시오. 

이 길은 예수님과 가장 특별한 관계를 맺는 길입니다. 구원과 영원한 생명을 정말로 믿는다면, 여러분의 자녀들이 무엇보다도 먼저 꼭 배워야 할 것은 바로 신앙이 아닐까요?

 

 

 

오늘의 말씀 묵상
프란치스코회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하느님 앞에서

 

“다윗은 아마포 에폿을 입고, 온 힘을 다하여 주님 앞에서 춤을 추었다. 그러고 나서 다윗은 주님 앞에 번제물과 친교 제물을 바쳤다. 번제물과 친교 제물을 다 바친 다음 만군의 주님의 이름으로 백성에게 축복하였다.” 

다윗의 기도. 

오늘 다윗은 온 힘을 다해 주님 앞에서 춤을 춥니다. 이것이 실은 춤 추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하는 것입니다. 주님 앞에서 하는 것은 다 기도입니다. 

주님 안에서 자면 잠도 기도입니다. 주님 앞에서 화내면 화도 기도입니다. 주님 앞에서 싸우면 싸움도 기도입니다. 주님 앞에서 원망하면 원망도 기도입니다. 

반대로 성당에 아무리 오래 있어도 주님 앞에 있지 않으면 기도가 아닙니다. 성무일도를 아무리 정성 드려 바쳐도 주님 앞에서 하지 않으면 기도가 아닙니다. 묵상을 아무리 잘해도 주님 앞에서 하지 않으면 기도가 아니라 명상일 뿐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느님 앞에 있는 것이고 하느님 현전(現前) 의식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기도의 모범입니다. 이어지는 독서에서 다윗의 아내 미칼이 다윗을 맹비난합니다. 

“오늘 이스라엘 임금님이 건달패 가운데 하나가 알몸을 드러내듯이, 자기 신하들과 여종들이 보는 앞에서 벗고 나서니 참 볼 만 하더군요!” 

그러나 다윗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아버지 대신 나를 이스라엘의 영도자로 세우셨소. 바로 그 주님 앞에서 내가 흥겨워한 것이오. 나는 이보다 더 자신을 낮추고, 내가 보기에도 천하게 될 것이오.” 

무엇을 하든 현전 의식을 가지고 주님 앞에서 하면 그것이 기도임을, 다윗에게서 배우고 다윗처럼 기도하기 시작하는 오늘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님의 오늘 말씀 묵상 업데이트 준비중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조명연 마태오 신부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속았다”라고 말하는 어느 자매님이 있었습니다. 연애한 지 석 달 만에 서로 ‘내 남자, 내 여자’라고 생각했고, 곧바로 결혼까지 했습니다. 만날 때마다 마치 구름 위를 나는 것 같은 황홀감이 있었지만, 결혼과 동시에 하나씩 깨졌습니다. ‘내 사랑’이 아니라 ‘내 원수’가 되고 만 것입니다. 누군가 ‘결혼은 현실이다’라고 말했던 것이 기억나면서, 이상과 현실은 완전히 다름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많은 부분에서 공통점이 있기에, 나와 딱 맞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습니다. 달라도 너무 다른 것입니다. 치약 짜는 것도, 빨래를 벗어두는 것도, 청소하는 것도 모두 달랐고, 그 다름을 인정하지 못해서 계속해서 싸웠습니다. 
 
연애할 때의 그 감정이 이렇게 쉽게 사라졌을까요? 사랑이란 신기루 같은 것일까요? 사실 사랑에만 빠져 있는 것도 큰 문제입니다. 학창 시절에 공부 잘하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친구에게 사랑하는 여자 친구가 생긴 것입니다. 성적이 어떻게 되었을까요? 성적이 뚝뚝 떨어졌습니다. 사랑보다 더 중요한 것이 없으니, 공부가 되지 않는 것이었지요. 
 
사랑은 다른 것을 보지 못하게 합니다. 그래서 연애할 때는 다른 곳에 신경 쓰기가 쉽지 않다고 합니다. 오로지 상대방에게 맞춰서 사랑할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결혼 후, 이제는 불타는 사랑이 아니라 현실적인 사랑이 되어야 합니다. 즉, 나만을 바라보는 사랑이 아니라, 가정을 만드는 사랑이 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사회생활도 잘해야 하고, 배우자의 가족과 친구들에게도 신경 써야 합니다. 이 밖에도 신경 써야 하는 것이 많아집니다. 따라서 사랑이 식은 것도 또 없어진 것이 아니라, 사랑이 익어갈 뿐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찾아왔습니다. 혈연에 따른 가족이니 그 사랑이 더 지극해야 할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혈연을 뛰어넘는 사랑을 말씀하십니다. 하느님 나라 안에서 모두가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이 사랑의 삶을 살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누가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냐?”라고 반하시면서, 믿음을 가지고 당신 주위에 있는 사람을 둘러보시며 이르시지요.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주님을 따른다는 것은 이제까지 다른 사랑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혈연관계처럼 가까운 사람에게만 행하는 사랑이 아니라, 모든 이를 향한 사랑을 실천할 때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됩니다. 그리고 이로써 하느님 안에서 진정한 하나의 공동체가 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과연 하느님 안에서 한 형제로 새로운 사랑을 실천하고 있는지를 묵상했으면 합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인생을 사랑하는 것과 탐욕을 부리는 것은 한 끗 차이이다.

- 마야 안젤루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누가 내 어머니이고 내 형제들이냐?

 

어리석은 삶의 관계를 꾸짖는 하느님의 뜻이 있습니다. 하느님의 뜻은 가장 가까운 관계를 비춥니다. 모든 길의 시작에는 하느님의 뜻이 있습니다. 하느님의 뜻은 우리를 위한 구원입니다. 길을 이끌고 가는 것은 언제나 하느님의 뜻입니다. 

뜻을 같이 하는 것이 신앙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가장 좋은 뜻을 주셨습니다. 마음 없이 실행 없이 이루어지는 뜻은 않습니다. 뜻을 기억하는 것이 실행의 본질입니다. 함께하는 가족에게도 뜻과 실행이 사라지면 어리석은 집착의 벽과 마주하게 됩니다. 

실행이 줄어질수록 뜻과는 멀어집니다. 비틀린 관계를 바로잡는 뜻과 실행으로 우리는 하느님께로 돌아섭니다. 하느님께서 중심이 되지않고서는 이미 함께하시는 하느님께 맡겨드릴 수 없습니다. 가족의 중심에 있어야 할 뜻과 실행입니다. 

자기중심이 아니라 하느님 중심입니다. 뜻이 사라지면 실행도 사라집니다. 실행이 늘어나면 중심도 하느님 뜻으로 가득찹니다. 신앙의 한가운데로 밀어주는 중심이 있습니다. 하느님의 뜻은 여전히 살아있습니다. 하느님의 뜻이 오늘을 이끌고 갑니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