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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3/11/22 (수)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3. 1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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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 이제 순결한 예물, 정결한 희생 제물인 용감한 동정녀가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리신 어린양을 따른다.

하느님, 복된 체칠리아를 기리며 해마다 기쁘게 지내게 하시니 교회가 전하는 그의 모범을 저희가 충실히 본받아 성자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놀라운 일들을 선포하게 하소서.

 

2023년 11월 22일 (수) 성녀 체칠리아 동정 순교자 기념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랜선으로 초대합니다!

2023년 11월 22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성녀 체칠리아 동정 순교자 기념일

 

 

오늘 성경구절 이미지

하느님께서 이미 있는 것에서 그것들을 만들지 않으셨음을 깨달아라. (마카베오기 하권 7,28)

 

하느님께서 이미 있는 것에서 그것들을 만들지 않으셨음을 깨달아라. (마카베오기 하권 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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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카베오기하권 7장 2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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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1독서
    (마카베오기 하권 7,1.20-31)
    온 세상의 창조주께서, 너희에게 목숨과 생명을 다시 주실 것이다.

  • 오늘 복음
    (루카 19,11ㄴ-28)
    그렇다면 어찌하여 내 돈을 은행에 넣지 않았더냐?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3년 11월 22일 (수) 평화방송 매일미사 명동성당 매일미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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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복음 (Gospel)
복음 (Gospel)

 

주님이 말씀하신다.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뽑아 세웠으니, 가서 열매를 맺어라. 너희 열매는 길이 남으리라.

 

 

루카복음
루카 19장 11ㄴ-28절

 

그렇다면 어찌하여 내 돈을 은행에 넣지 않았더냐?

 

그때에 

11 
예수님께서는 비유 하나를 말씀하셨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가까이 이르신 데다, 사람들이 하느님의 나라가 당장 나타나는 줄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12 
그리하여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어떤 귀족이 왕권을 받아 오려고 먼 고장으로 떠나게 되었다. 

13 
그래서 그는 종 열 사람을 불러 열 미나를 나누어 주며, ‘내가 올 때까지 벌이를 하여라.’ 하고 그들에게 일렀다. 

14 
그런데 그 나라 백성은 그를 미워하고 있었으므로 사절을 뒤따라 보내어, ‘저희는 이 사람이 저희 임금이 되는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하고 말하게 하였다. 

15 
그러나 그는 왕권을 받고 돌아와, 자기가 돈을 준 종들이 벌이를 얼마나 하였는지 알아볼 생각으로 그들을 불러오라고 분부하였다. 

16 
첫째 종이 들어와서, ‘주인님, 주인님의 한 미나로 열 미나를 벌어들였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17 
그러자 주인이 그에게 일렀다. ‘잘하였다, 착한 종아! 네가 아주 작은 일에 성실하였으니 열 고을을 다스리는 권한을 가져라.’ 

18 
그다음에 둘째 종이 와서, ‘주인님, 주인님의 한 미나로 다섯 미나를 만들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19 
주인은 그에게도 일렀다. ‘너도 다섯 고을을 다스려라.’ 

20 
그런데 다른 종은 와서 이렇게 말하였다. ‘주인님, 주인님의 한 미나가 여기에 있습니다. 저는 이것을 수건에 싸서 보관해 두었습니다. 

21 
주인님께서 냉혹하신 분이어서 가져다 놓지 않은 것을 가져가시고 뿌리지 않은 것을 거두어 가시기에, 저는 주인님이 두려웠습니다.’ 

22 
그러자 주인이 그에게 말하였다. ‘이 악한 종아, 나는 네 입에서 나온 말로 너를 심판한다. 내가 냉혹한 사람이어서 가져다 놓지 않은 것을 가져가고 뿌리지 않은 것을 거두어 가는 줄로 알고 있었다는 말이냐? 

23 
그렇다면 어찌하여 내 돈을 은행에 넣지 않았더냐? 그리하였으면 내가 돌아왔을 때 내 돈에 이자를 붙여 되찾았을 것이다.’ 

24 
그러고 나서 곁에 있는 이들에게 일렀다. ‘저자에게서 그 한 미나를 빼앗아 열 미나를 가진 이에게 주어라.’ 

25 
─ 그러자 그들이 주인에게 말하였다. ‘주인님, 저이는 열 미나나 가지고 있습니다.’─ 

26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가진 자는 더 받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27 
그리고 내가 저희들의 임금이 되는 것을 바라지 않은 그 원수들을 이리 끌어다가, 내 앞에서 처형하여라.’” 

28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하시고 앞장서서 예루살렘으로 오르는 길을 걸어가셨다.

 

 

매일미사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3년 11월 22일 (수) 05:00
CPBC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윤성흠 베르노 신부

 

📌 성녀 체칠리아 소개 00:05

📌 미사시작 01:11

📌 강론시작 09:51

 

 

 

의정부 용현동성당 실시간 미사

 

 

2023년 11월 22일 (수) 10:00
의정부 용현동성당
김유철 요한 보스코 신부

 

📌 미사시작 15:06

📌 강론시작 25:48

 

 

 

남양성모성지 실시간 미사

 

 

2023년 11월 22일 (수) 11:00
남양성모성지 미사
이상각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신부

 

📌 미사시작 43:06

📌 강론시작 54:47

 

 

 

팔로티회 실시간 미사

홍천 팔로티회 매일미사

 

2023년 11월 22일 (수) 15:00
팔로티회 홍천
장화기 바오로 신부

 

📌 미사시작 00:37

📌 강론시작 11:59

 

분당 팔로티회 매일미사

 

2023년 11월 22일 (수) 16:00
팔로티회 분당
김지학 요셉 신부

 

📌 성체조배 0:02:23

📌 미사시작 1:31:39

📌 강론시작 1:42:05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오늘의 말씀 묵상
매일미사
김상우 바오로 신부

 

미나의 비유

 

루카 복음사가는 예수님의 다시 오심과 연결하여 ‘미나의 비유’를 설명합니다. 하느님 나라가 올 때, 예수님께서 메시아로서 행하실 ‘심판’을 예고하기 때문입니다. 

당시 유다인들처럼 제자들도 하느님 나라가 갑자기 닥쳐오리라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복음서 저자는 기대나 조급함을 경계하며,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기 전까지 하느님 나라를 실현하고자 완수하여야 할 사명이 제자들에게 맡겨졌음을 비유를 들어 이야기합니다.

이 비유에서 왕권을 받아 오려고 길을 떠나는 주인은 열 명의 종에게 한 미나씩 나누어 줍니다. 유다 화폐 단위 미나는 백 데나리온이며, 한 미나는 당시 일꾼이 백 일 동안 일하여야 모을 수 있는 돈입니다. 

한편 돌아온 주인은 종들에게 나누어 준 미나를 어떻게 관리하였는지 묻습니다. 첫째 종은 열 배로, 둘째 종은 다섯 배로 늘렸습니다. 그러자 주인은 작은 일에 충실하였던 종들에게 각각 고을을 맡깁니다. 

그러나 다른 종은 “저는 이것을 수건에 싸서 보관해 두었습니다. 주인님께서 냉혹하신 분이어서 가져다 놓지 않은 것을 가져가시고 뿌리지 않은 것을 거두어 가시기에, 저는 주인님이 두려웠습니다.”라고 답합니다. 그러자 주인은 게으르고 악의에 찬 종의 말대로 그에게 혹독한 판결을 내립니다.

물론 이 비유에서 마지막 종에 대한 주인의 처우가 조금 부당하거나 불공평하게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인의 결정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알아보지 못한 불충한 유다인들에게 내려질 심판을 빗대어 설명하는 것으로 파악됩니다.

이 비유 이야기로 우리 그리스도인은 하느님을 ‘냉혹한 심판자’로만 여기는 것은 아닌지 돌아봅시다.

 

 

 

오늘의 말씀 묵상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조명연 마태오 신부

 

하느님의 일은 사랑의 실천이다.

 

1947년, 재키 로빈슨은 미국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초의 흑인 선수가 되었습니다. 그를 발탁한 구단주가 로빈슨에게 말했습니다. 
 
“너는 사람들에게 많은 조롱과 수모를 당할 거야.” 
 
실제로 관중들은 로빈슨이 경기장에 나타나면 인종차별과 관련한 폭언과 욕설을 퍼부었고,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극심한 슬럼프에 빠졌습니다. 그날도 관중의 욕설을 들으며 대기석으로 돌아온 로빈슨은 야구를 포기하고 싶은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그때 주장이 슬그머니 다가와 그의 어깨를 감싸 주었습니다. 
 
그것이 전부였습니다. 그 어떤 말도 없었지요. 그러나 로빈슨은 갑자기 힘이 솟아오름을 느꼈습니다. ‘아, 나를 지켜보는 사람이 있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훗날 전설적인 선수가 된 로빈슨은 그날을 이렇게 회고했습니다. 
 
“그 간단한 몸짓이 나를 살렸습니다.” 
 
많은 행동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거창하고 훌륭한 말도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아무 말 없이 상대를 안아주는 것만으로도, 어깨를 감싸주는 것만으로 세상의 그 어떤 위로보다 더 큰 위로를 전달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사랑의 힘입니다. 
 
주님께서 계속해서 강조하셨던 사랑이 바로 이런 것입니다. 대단하게 보이는 사랑도 아니고, 특별히 눈에 띄는 사랑도 아니었습니다. 간단한 몸짓 하나에도 자신의 따뜻한 마음을 담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주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 될 수 있었습니다. 
 
미나의 비유 말씀을 전해주십니다. 똑같은 미나를 받았지만, 종마다 벌어들인 미나의 양은 달랐습니다. 누구는 열 개로, 누구는 다섯 개로, 그런데 누구는 어떤 노력도 하지 않고 처음에 받은 미나 하나만 가지고 주인 앞에 섭니다. 하느님께 받은 선물이 열매를 맺도록 부지런히 일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일은 바로 사랑의 실천이었습니다. 사랑을 세상에 널리 전달할 수 있는 우리의 노력입니다. 그런데 누구는 하느님께 받은 모든 능력을 동원해서 열 배, 다섯 배로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있는 반면에, 어떤 이는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습니다. 이 사람을 통해서는 하느님의 사랑이 전달될 수 없었고, 동시에 하느님의 영광도 나타나지 않게 됩니다. 이렇게 하느님의 일을 소홀히 하는 사람에게 심판이 내린다고 하십니다. 
 
대단한 사랑에만 집중할 필요가 없습니다. 자그마한 사랑이라도 실천하는 데 최선을 다해야 했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런 우리를 칭찬하십니다. 더 많은 힘과 능력을 주시면서, 하느님의 일을 기쁘게 할 수 있도록 하십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마음속에 행복한 기대를 안고 보낸 시간이 성공을 이룬 시간보다 더 즐거운 법이다.

- 올리버 골드 스미스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헬 조선? 어차피 살 거면 국뽕이 낫지 않을까?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탈렌트의 비유’와 비슷한 ‘미나의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탈렌트의 비유에서는 주인이 세 종에게 각자 다른 양의 탈렌트를 맡기고 간 것으로 나오지만, 여기서는 종 열 명에게 각 한 미나씩 맡기고 떠났습니다. 그리고 떠나는 이유도 추가되었는데, 바로 자신이 왕이 되기 위해서입니다. 

여기서 주인이 모진 분이라 여긴 사람은 자신의 주인이 왕이 되는 것을 원치 않은 다른 사람들과 비슷하게 대합니다. 가진 것을 빼앗아 한 미나로 열 미나를 번 종에게 줍니다. 그리고 자신이 왕이 되는 것을 반대한 이들을 처형합니다. 

우선 탈렌트의 비유와 같은 내용은 자신이 가진 재능을 땅에 묻어놓고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이들은 ‘감사’하지 않는 이들이라는 것입니다. 감사하지 않으면 불만이 커져 피해의식으로 더 요구하기만 하지 갚아드리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재능을 썩힙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 자신이 받은 미나에 감사해서 주인께 더 많은 것을 돌려드리려고 노력하는 종들은 자기 주인이 ‘왕’이 되는 것을 긍정하는 이들입니다. 

부모는 자녀들의 왕입니다. 왜냐하면 자녀들이 부모에게 받은 것에 감사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감사하면 재능을 계발하여 성공에 이르고, 이것이 곧 나에게 은혜를 베푼 이를 나의 왕으로 삼는 방법이란 뜻입니다. 

‘우와한 비디오’에 ‘흰 가루를 뒤집어쓴 채 자신의 몸을 토치로 지지는 의문의 남자’가 나왔습니다. 이분은 ‘베이비파우더’로 자기 온몸을 바르고 토치로 지집니다. 밤에도 부탄가스 토치로 자기를 괴롭히는 벌레들을 퇴치하는 일로 잠을 설칩니다. 그러다가 잠이 듭니다. 혼잣말도 하고 거의 조현병 수준입니다. 

그분 지인의 말로는 어렸을 때 회사에서 머리에 구타당한 적이 있는데 그것으로 계속 약을 먹었다고 합니다. 20년 동안 결혼도 하고 자녀도 낳고 잘 살았는데 그동안 마음의 의지가 되었던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그러한 증상이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어머니는 이분에게 자신을 지켜주던 왕이었습니다. 어머니에게 감사한 것이 남아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망가질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더는 감사할 존재가 남아있지 않게 되자 무너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감사할 대상이 있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요? 

나를 존재하게 해 준 분에게 감사해야 합니다. 그러면 그분으로부터 받은 한 미나, 곧 생명이 허물어지지 않습니다. 나에게 생명을 주신 분을 위해 그렇게 내버려 두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와한 비디오에 ‘가슴이 웅장해지는 애국가 만병통치약 썰’도 있습니다. 33년 동안 몸담아온 교직에서 갑자기 교직에서 허전한 마음에 우울증과 대인기피증, 알코올 중독에 걸려버린 한 분이 어느 날 TV에 나오는 애국가를 듣고 그것을 부르기 시작하면서 모든 게 고쳐졌다는 것입니다. 

애국가를 새벽부터 부르면 나라에 대한 사랑의 마음이 생기고, 그러면 가족에 대한 사랑, 그리고 나에 대한 사랑의 마음이 생겨 몸을 건강하게 지키게 되는데 어떻게 애국가를 부르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자녀가 부모에게 감사하는 것과 같고 우리가 주님을 왕으로 찬미드리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이 우리를 살립니다. 이분의 말씀을 들어봅시다. 

“애국가 가사 내용이 나라 사랑, 더 좁게는 가족 사랑, 더 좁게는 개인, 나 자신의 사랑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내 몸이 튼튼하고 건강해야지만 가족도 지키고 나라도 지킨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렇게 애국가를 부르게 되었습니다.”

헬 조선이라고 하며 불평해봐야 무슨 이익이 있을까요? 역사상 지금만큼 살기 좋은 때는 없었습니다. 감사하면 감사하는 대상이 왕이 됩니다. 왕은 감사하는 존재를 뱀에게 넘어가지 않도록 보호해줍니다. 그러나 감사를 잃으면 그분이 왕이 되는 것을 거부하여 결국 뱀에게 사로잡힙니다. 뱀과 하나가 되면 그동안 받던 모든 것을 잃고 지옥과 같은 삶, 더 나아가서는 빠져나올 수 없는 지옥으로 떨어집니다. 

우리가 감사할 하느님이 계신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를 바치라고 했던 것은 이처럼 큰 은총입니다. 그런데도 십일조를 감사히 봉헌하지 않는 것은 어쩌면 우리에게 생명과 시간과 모든 것을 주신 그분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뱀의 꾀임에 속는 것일 수 있습니다. 선악과를 봉헌함이 주님을 주인이실 뿐 아니라 왕으로 인정하는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프란치스코회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관상적 기도가 등대가 되어

 

마카베오서는 어제 이스라엘의 위대한 어른 엘아자르의 얘기를 전한 다음, 오늘 위대한 엄마의 얘기를 전하는데 일곱 아들을 한 번에 다 잃으면서도 이스라엘의 신앙과 자존심을 지키라고 가르치고 독려하는 어머니 얘기입니다. 

이런 어머니 얘기가 우리에게는 비현실적인 얘기라고, 교훈을 주기 위해 지어낸 얘기일 뿐 있을 수 없는 얘기라고 치부할 수도 있는데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분들에게 저는 안중근 의사의 어머니를 예로 들어 그렇지 않다고 강변합니다. 

그분은 사형을 앞둔 아들에게 수의를 지어주며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기보다는 다음 생에는 천부의 아들 곧 하느님의 아들로 태어나라는 편지를 보내시지요. 

그런데 안 의사의 어머니 조 마리아나 오늘 일곱 아들의 어머니나 공통점은 하느님께 믿음과 희망을 둔다는 점입니다. 

“특별히 그 어머니는 오래 기억될 놀라운 사람이었다. 그는 일곱 아들이 단 하루에 죽어 가는 것을 지켜보면서도 주님께 희망을 두고 있었기 때문에 용감하게 견디어 냈다.” 

하느님께 완전한 희망을 두면 이 세상에 살면서도 진정 이 세상의 어떤 미련도 애착도 없음은 물론 이 세상의 죽음에 대해 아무런 두려움도 없습니다. 

그리고 미련이나 두려움이 없는 대신 확신이 있습니다. 자식을 신앙 때문에 죽게 하는 것이 더 큰 사랑이라는 확신도 말입니다. 

자식이 이 세상에서 건강과 부귀영화를 누리게 되기를 바라는 것도 어미의 사랑이지만 그것은 현세적이고 거의 본능적인 사랑인 데 반해 저세상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되기를 바라는 것은 어미의 더 큰 사랑이요 어미의 본능적 사랑을 초월하는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제 성모 자헌 축일 강론에서도 아들을 위해 자신을 바치는 것은 다른 엄마들도 하는 것이지만 인류 구원을 위해 바치는 것은 다른 엄마들과 차원이 다른 성모님의 봉헌이라는 점을 말씀드린 바 있는데 같은 맥락입니다. 

제가 잘못 알고 있는지 모르지만 제 생각에 우리 인간에게 ‘미래 본능’이라는 것은 없고, 본능에는 ‘미래희망’ 같은 것이 없고 철저히 현세적입니다. 

제 생각에 본능이란 눈이 멀었기에 본능이 발동하면 미래나 방향 같은 것이 없고, 철저하게 그 순간의 자기 본능을 따라갈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사랑도 본능에 이끌리지 않고 늘 주님을 향하고 주님께 희망을 두도록 우리의 사랑이 어디를 향하는지 관찰하고 감시도 해야 할 것입니다. 

제 생각에 이것이 우리의 기도 가운데서도 관상적 기도일 것입니다. 관상적 기도가 우리의 본능적 사랑의 등대가 되어 우리의 사랑이 하느님 사랑에 희망을 두고 그 사랑에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게 되기를 또한 희망하는 오늘 우리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어찌하여 내 돈을 은행에 넣지 않았더냐?

 

처음부터 다시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사랑을 실천하는 법부터 다시 익히는 사랑의 시간입니다. 삶이 무엇인지 묻는 우리들에게 사랑의 실천을 가르쳐주십니다.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에서 벗어나 나누고자 하는 사랑으로 나아가는 것이 참된 정의의 실천입니다. 자아를 떠나본 적이 없는 우리들 삶입니다. 

정의의 실천은 우리자신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그래서 용기가 필요한 실천입니다. 피할 수 없고 피해갈 수 없는 하느님과의 만남입니다. 덮어버릴 수 없고 없애버릴 수 없는 우리 인생의 참모습입니다. 두려움에 갇힌 우리의 실천을 깨우시는 주님이십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살고 싶은 삶을 살아가길 간절히 바라십니다.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것이 축복의 삶이며 정의의 삶입니다. 많이 아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마음을 다해 우리가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충분하시지만 늘 우리의 실천은 빈곤합니다. 우리는 두려움을 먹고 사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사랑을 먹고 사는 자녀들입니다. 하늘에 맡기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사랑을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실천하기를 싫어하는 이기적인 우리들 마음입니다. 함께 나누어야 할 행복입니다. 함께 실천해야 할 사랑입니다. 실천을 외롭게 하는 사람은 우리의 사랑을 외롭게 하는 사람입니다. 하느님께서 주신 사랑을 풍요롭게 하는 실천의 날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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