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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3/11/24 (금)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3. 1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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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어떠한 것도 자랑하지 않으리라. 십자가의 말씀이 구원받은 우리에게는 하느님의 힘이다.

만물의 기원이시며 아버지이신 하느님, 복된 안드레아와 동료 순교자들이 피를 흘리기까지 성자의 십자가를 충실히 따르게 하셨으니 그들의 전구를 들으시어 저희가 하느님의 사랑을 형제들에게 전하며 하느님의 참된 자녀로 살아가게 하소서.

 

2023년 11월 24일 (금) 성 안드레아 둥락 사제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랜선으로 초대합니다!

2023년 11월 24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성 안드레아 둥락 사제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오늘 성경구절 이미지

나의 집은 기도의 집이 될 것이다. (루카 19,46)

 

나의 집은 기도의 집이 될 것이다. (루카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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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카복음 19장 46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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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1독서
    (마카베오기 상권 4,36-37.52-59)
    그들은 제단 봉헌을 경축하였는데, 기쁜 마음으로 번제물을 바쳤다.

  • 오늘 복음
    (루카 19,45-48)
    너희는 하느님의 집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어 버렸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3년 11월 24일 (금) 평화방송 매일미사 명동성당 매일미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온라인 매일 미사 바로가기

 

오늘의 말씀 묵상 바로가기

 

 

매일미사 복음 (Gospel)
복음 (Gospel)

 

주님이 말씀하신다.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나는 그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른다.

 

 

루카복음
19장 45-48절

 

너희는 하느님의 집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어 버렸다.

 

그때에 

45 
예수님께서 성전에 들어가시어 물건을 파는 이들을 쫓아내기 시작하시며, 

46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의 집은 기도의 집이 될 것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너희는 이곳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어 버렸다.” 

47 
예수님께서는 날마다 성전에서 가르치셨다.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과 백성의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없앨 방법을 찾았다. 

48 
그러나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 방도를 찾지 못하였다. 온 백성이 그분의 말씀을 듣느라고 곁을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매일미사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3년 11월 25일 (토) 05:00
CPBC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나종진 스테파노 신부

 

📌 성 안드레아 둥락과 동료 소개 00:05

📌 미사시작 01:08

📌 강론시작 08:39

 

 

 

의정부 용현동성당 실시간 미사

 

 

2023년 11월 24일 (금) 10:00
의정부 용현동성당
김유철 요한 보스코 신부

 

📌 미사시작 15:06

📌 강론시작 23:01

 

 

 

남양성모성지 실시간 미사

 

 

2023년 11월 24일 (금) 11:00
남양성모성지 미사
이상각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신부

 

📌 미사시작 27:50

📌 강론시작 37:11

 

 

 

팔로티회 실시간 미사

홍천 팔로티회 매일미사

 

2023년 11월 24일 (금) 15:00
팔로티회 홍천
안동억 프란치스코 신부

 

📌 미사시작 00:24

📌 강론시작 08:31

 

분당 팔로티회 매일미사

 

2023년 11월 24일 (금) 16:00
팔로티회 분당
김지학 요셉 신부

 

📌 성체조배 0:01:38

📌 미사시작 1:30:53

📌 강론시작 1:38:16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오늘의 말씀 묵상
매일미사
김상우 바오로 신부

 

나에게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어떤 의미입니까?

 

베트남 교회 역사는 1533년 포르투갈 선교사들과 함께 시작됩니다. 베트남은 한국보다 200년가량 일찍 신앙을 접하였는데, 오랜 교회 역사를 가진 만큼 고통과 아픔도 깊습니다. 베트남 왕실은 그리스도교 신앙을 거부할 것을 강요하며 신자들에게 십자고상을 밟고 지나가게 하였습니다.

하느님께서 침묵하고 계신 것처럼 느껴지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한 고통과 절망의 한가운데에서 인간은 그분의 존재를 의심하기도 합니다. 당신 정의는 어디에 있으며 당신 사랑은 왜 침묵뿐이냐며 울부짖기도 합니다. 내가 생각하는 정의와, 내가 바라는 사랑과, 내 기도가 실현되지 않는 어둠의 심연에서 믿음은 위기에 놓이게 됩니다. 

비록 지금은 하느님께서 침묵하시며 나의 부르짖음에 귀 기울이지 않으시는 것처럼 보이지만,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를 짊어지시고 저주받은 자의 모습으로 죽음을 받아들이셨음을 기억하여야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그저 이천여 년 전 과거의 일회적 사건이나 나의 오늘과 아무 상관 없는 사건에 그치지 않기 때문입니다. 십자가 사건은 모든 미사 가운데, 그리고 우리의 현재 안에서 새로운 의미를 찾습니다.

하느님께서 침묵하시고 내 기도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느껴지는 순간에도 우리는 어떻게 믿음을 간직합니까? 고통받는 나에게, 무의미함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방황하는 나에게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어떤 의미입니까? 

성 안드레아 둥락 사제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미사에 참례하면서 나와 하느님과 맺는 관계, 나와 예수님과 맺는 관계에 대하여 깊이 묵상하는 시간을 가져 봅시다.

 

 

오늘의 말씀 묵상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조명연 마태오 신부

 

성전은 거룩하신 하느님을 만나는 장소.

 

운전 중에 라디오를 통해 “지금 엄청난 화재가 났습니다.”라는 뉴스 속보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대부분 이런 반응일 것입니다. 
 
“아이고, 큰 사건이 또 났네. 빨리 화재가 진압되어서 희생이 없어야 할 텐데….” 
 
그런데 잠시 뒤에 조금 구체적인 소식을 듣게 됩니다. “이 화재는 인천 연수구에 있는 송도 신도시에서 일어났습니다.” 이 말에 저는 “아니, 우리 동네잖아? 잘하면 화재 난 것을 볼 수도 있겠는데?”라고 말할 것 같습니다. 바로 그때 뉴스 진행자의 놀라운 목소리를 듣게 됩니다. 
 
“인천 송도신도시에 있는 성김대건 성당에서 불이 났습니다.” 
 
이때 저는 어떻게 할까요? 그냥 남의 집에 불난 것처럼 생각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맙소사, 우리 성당이잖아?”라면서 속도를 높여 성당으로 빨리 갈 것입니다. 
 
대부분 어떤 사건에 대해 구경꾼 신드롬(방관자 효과)을 보인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사건이 나의 일이라고 생각되는 순간, 비로소 구경꾼 신드롬에서 빠져나오게 되지요.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십시오. 그 십자가가 여러분에게 어떤 의미입니까? 단순히 과거에 있었던 사건으로만 보면서, 자기와 상관없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 누구도 제외되지 않도록, 심지어 모든 시간 속에 있는 사람을 위해서 십자가를 짊어지셨고 그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다. 모든 시간 속에 있는 사람 중에는 구경꾼 신드롬에 빠져있었던 바로 ‘나’도 있습니다. 즉, 주님께서는 ‘나 때문에’ 돌아가셨습니다. 
 
이제 십자가가 다르게 보이지 않습니까? 나와 너무 깊은 연관이 있는 십자가입니다. 주님의 사랑이 뜨겁게 다가올 수 있습니다. 그분의 사랑이 얼마나 크고 끝이 없는지는 ‘나의 주님’이라고 가슴 깊이 고백할 때 가능했습니다. 
 
이렇게 주님을 나와 연관 깊은 분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세속적인 부분으로만 연결하려고 합니다. 과거의 이스라엘 사람도 그러했습니다. 성전에 있으면서 하느님을 바라보지 않았지요. 그래서 성전을 세속적인 물건들이 파는 곳, 장사하는 곳, 심지어 하느님께서 가장 아끼는 약자를 오히려 소외시키는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고 있었습니다. 
 
성전은 하느님의 거룩함이 드러나는 곳이고, 이 성전에서 우리 역시 거룩해지기 위해 기도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 거룩함이 자신과 상관없다고 생각하면서 하느님께서 원하지 않는 모습으로 변질된 것이었습니다. 
 
거룩하신 하느님을 만나는 장소 그것도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내가 만나는 장소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그때 성전은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곳임을 느끼게 됩니다. 주님의 십자가가 나와 연관 있을 때 가장 큰 사랑을 발견할 수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나 자신을 온전히 이해하고, 화해했으며, 자신에게 만족할 수 있는 사람만이 깊은 기쁨을 누릴 수 있다.

- 한스 큉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 전삼용 요셉 신부님의 오늘 말씀 묵상 업데이트 준비중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프란치스코회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주님 저도 깨끗하게 해 주소서

 

“너희는 이곳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어버렸다.” 

주님께서는 성전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쫓아내시며 나무라시는데 왜 장사꾼의 소굴이 아니라 강도의 소굴로 만들어버렸다고 하실까요? 강도란 남의 것을 빼앗아 자기 것으로 만드는 사람을 일컫지 않습니까? 

그것은 이런 뜻입니다. 성전은 하느님의 성전이지 나의 성전이 아닙니다. 그리고 성전에는 하느님이 계셔야지 하느님이 안 계시면 성전이 아닙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 계시고 하느님을 만나는 기도가 이루어져야 할 성전에 하느님은 안 계시고 인간들이 주인행세하고 기도하지 않고 장사나 하면 그것이 하느님의 집을 내 것으로 만드는 강도질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의 성전은 어떻습니까? 건물 성전뿐 아니라 나와 너 모두 성령께서 머무시는 성전이라고 바오로 사도 말씀하셨는데 나의 성전은 어떻습니까? 

그런데 나의 성전이라고 하지만 나도 나의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것이고 내 안에 하느님께서 계실 때 성전이지 나로 가득하다면 성전이 아니지요. 

그러므로 나를 하느님의 것이 아니라 내 것이라고 소유권을 주장하고, 내 안에 하느님이 아니 계시고 나만 있다면 나는 성전이 아닐 것이고, 그래서 내 안에 하느님과의 일치인 기도는 없고 나 혼자 덩그러니 있다면 그리고 사랑은 없고 욕심만 있으며 기도는 하지 않고 근심 걱정만 한다면 그때 나는 기도하는 사람이 아니라 강도가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에 들어가시어 물건을 파는 이들을 쫓아내기 시작하셨다.” 

이런 나라면 성전을 정화하신 주님께서 나도 정화하시지 않을까요? 그때 나의 성전도 주님께서 정화하시게 해야 할까요? 주님께서 정화하실 필요가 없도록 내가 스스로 정화해야 할까요? 

물론 주님께서 정화하실 필요가 없도록 스스로 정화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그런데 나 스스로 말끔히 정화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요? 주님께서 정화해주시도록 나를 주님께 맡겨드리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요? 

이렇게 나를 주님께 맡겨드리면 주님은 내 안에서 나를 억지로 몰아내는 조폭이 아니라 은혜로운 청소대행업자십니다. 

그런데 다시 말하지만, 주님께서 정화하실 필요가 없도록 내가 스스로 정화하는 것이 물론 더 좋습니다. 그러나 내가 나를 바늘로 잘 찌르지 못하잖아요? 급체하여 사관을 터야 하는 그런 경우 말입니다. 그래서 ‘주님, 저도 깨끗하게 해 주소서!’ 하고 기도하는 오늘 우리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너희는 이곳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어 버렸다.

 

신앙의 정체성은 기도로 드러나고 기도는 우리 삶의 중심을 잡아줍니다. 중심은 중심을 지킬 때 더욱 빛나는 법입니다. 지름길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기도하는 중심이 필요한 우리들 삶입니다. 신앙의 열매는 중심이 빚어내는 은총의 열매입니다. 중심을 놓치면 소중한 관계도 잃게 됩니다. 

소중한 관계는 기도로 피어나고 사랑으로 공동체를 이룹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공동체를 바라보십니다. 중심이 공동체를 이끌면서 중심이 길이 되어 앞으로 나아갑니다. 삶의 중심인 여기 이곳에 주님의 성전 기도하는 성전이 있습니다. 성전이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바로 우리의 예수님이십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모든 여정에 한결같이 우리의 성전이 되어주십니다. 성전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드는 것은 쉬지 않고 멈추지 못하는 우리의 욕심입니다. 하느님의 뜻은 세상의 욕심과 함께 갈 수는 없습니다. 하느님의 성전을 지키시는 분은 하느님 자신입니다. 하느님의 성전을 더럽히고 어지럽히는 우리의 현실입니다. 

성전은 언제나 우리의 현실을 비추는 빛입니다. 주님을 만나기 위해 먼저 우리의 진심을 만나고 성찰해야 할 우리들 마음입니다. 빛나야 할 우리의 성전이 부끄러운 성전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하느님의 성전은 먼저 우리의 마음부터 바꾸어 놓습니다. 기도하는 성전 하느님께서 중심이 되시는 성전은 우리의 삶으로 이어집니다. 삶과 성전은 함께 걸어가는 구원의 동반자입니다. 순교를 통해 사랑의 공동체를 드러낸 소중한 순교자들을 기억합니다. 기도와 사랑을 따르는 오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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