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이 말씀하신다. 나는 재앙이 아니라 평화를 주노라. 나를 부르면 너희 기도를 들어 주고, 사로잡힌 너희를 모든 곳에서 데려오리라.
주 하느님, 저희를 도와주시어 언제나 모든 선의 근원이신 주님을 기쁜 마음으로 섬기며 완전하고 영원한 행복을 누리게 하소서.
2023년 11월 25일 (토)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랜선으로 초대합니다!
2023년 11월 25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연중 제33주간 토요일
오늘 성경구절 이미지
예수님은 죽음을 없애시고 복음으로 생명을 환히 보여 주셨네. (티모테오2서 1,10)
성경구절 이미지 다운로드
티모테오2서 1장 10절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1독서
(마카베오기 상권 6,1-13)
예루살렘에 끼친 불행 때문에 나는 큰 실망을 안고 죽어 가네. - 오늘 복음
(루카 20,27-40)
하느님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온라인 매일 미사 바로가기
오늘의 말씀 묵상 바로가기
우리 구원자 그리스도 예수님은 죽음을 없애시고 복음으로 생명을 환히 보여 주셨네.
루카복음
20장 27-40절
하느님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그때에
27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가이 몇 사람이 예수님께 다가와 물었다.
28
“스승님, 모세는 ‘어떤 사람의 형제가 자식 없이’아내를 남기고 ‘죽으면, 그 사람이 죽은 이의 아내를 맞아들여 형제의 후사를 일으켜 주어야 한다.’고 저희를 위하여 기록해 놓았습니다.
29
그런데 일곱 형제가 있었습니다. 맏이가 아내를 맞아들였는데 자식 없이 죽었습니다.
30
그래서 둘째가,
31
그다음에는 셋째가 그 여자를 맞아들였습니다. 그렇게 일곱이 모두 자식을 남기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32
마침내 그 부인도 죽었습니다.
33
그러면 부활 때에 그 여자는 그들 가운데 누구의 아내가 되겠습니까? 일곱이 다 그 여자를 아내로 맞아들였으니 말입니다.”
34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이 세상 사람들은 장가도 들고 시집도 간다.
35
그러나 저세상에 참여하고 또 죽은 이들의 부활에 참여할 자격이 있다고 판단받는 이들은 더 이상 장가드는 일도 시집가는 일도 없을 것이다.
36
천사들과 같아져서 더 이상 죽는 일도 없다. 그들은 또한 부활에 동참하여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
37
그리고 죽은 이들이 되살아난다는 사실은, 모세도 떨기나무 대목에서 ‘주님은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라는 말로 이미 밝혀 주었다.
38
그분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사실 하느님께는 모든 사람이 살아 있는 것이다.”
39
그러자 율법 학자 몇 사람이 “스승님, 잘 말씀하셨습니다.” 하였다.
40
사람들은 감히 그분께 더 이상 묻지 못하였다.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3년 11월 25일 (토) 05:00
CPBC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윤성흠 베르노 신부
📌 미사시작 00:22
📌 강론시작 08:20
의정부 용현동성당 실시간 미사
2023년 11월 25일 (토) 10:00
의정부 용현동성당
김유철 요한 보스코 신부
📌 미사시작 1:08
📌 강론시작 10:47
남양성모성지 실시간 미사
2023년 11월 25일 (토) 11:00
남양성모성지 미사
이상각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신부
📌 미사시작 37:31
📌 강론시작 43:10
팔로티회 실시간 미사
홍천 팔로티회 매일미사
2023년 11월 25일 (토) 15:00
팔로티회 홍천
김태광 아우구스티노 신부
📌 미사시작 00:11
📌 강론시작 09:22
분당 팔로티회 매일미사
2023년 11월 25일 (토) 16:00
팔로티회 분당
김지학 요셉 신부
📌 성체조배 0:04:11
📌 미사시작 1:33:46
📌 강론시작 1:43:33
오늘의 말씀 묵상
매일미사
김상우 바오로 신부
여러분은 부활 신앙을 어떻게 받아들입니까?
오늘 복음에서 루카 복음사가는 사두가이들과 예수님의 부활 논쟁을 다룹니다. 당시 유다교에는 여러 분파가 있었는데, 사두가이들은 죽음 이후 부활을 믿지 않았지만 바리사이들은 그 나름의 부활 신앙을 고백하였습니다.
일곱 형제가 한 여자를 아내로 맞아들였지만 모두 자식 없이 죽었다면, 부활 때 그는 누구의 아내가 되냐는 것이 부활을 믿지 않는 사두가이들의 질문입니다. 이에 대하여 예수님께서 “이 세상 사람들은 장가도 들고 시집도 간다.
그러나 저세상에 참여하고 또 죽은 이들의 부활에 참여할 자격이 있다고 판단받는 이들은 더 이상 장가드는 일도 시집가는 일도 없을 것이다.”라고 답하십니다. 부활을 믿던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이 예수님의 대답에 맞장구를 칩니다.
인간의 경험이나 언어로는 하느님 나라를 완벽하게 설명하거나 이해하기가 턱없이 부족합니다.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하느님 나라를 설명하실 때, 다양한 비유를 쓰시는 이유입니다.
마찬가지로 부활 신앙은 머리로 이해하거나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 마음으로 믿어 고백하는 것입니다. 창조주 하느님과 비교할 때 피조물 인간은 상대적으로 어린아이 수준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선으로 구성된 2차원에서 입체적인 3차원을 이해할 수 없고, 3차원에서 시공간을 초월하는 4차원을 이해할 수 없듯이, 우리의 이성과 지식은 명확한 한계를 지니고 있음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것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과 올바르게 소통하며 삼위일체 하느님에 대한 신앙 여정을 내딛는 첫걸음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부활 신앙을 어떻게 받아들입니까?
오늘의 말씀 묵상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조명연 마태오 신부
하느님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세계적인 글로벌 유통 대기업과의 경쟁에서 이긴 토종 대형 마트가 있습니다. 이 대형 마트는 ‘노브랜드’를 가지고 있는데, 이는 질 좋은 물건을 합리적인 가격으로 팔기 위해 브랜드를 붙이지 않겠다는 의미로 이름을 붙인 자체 브랜드입니다. 그런데 노브랜드가 햄버거 사업을 처음 시작할 때 내세운 광고 모델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검은 피부의 모델을 쓴 것입니다. 온라인에서는 다음과 같은 댓글이 등장했습니다.
‘검은 피부 모델이라니, 한국에서 만들어진 브랜드라며 외국인을 모델로 쓰는 것이 올바른 일인가?’
소비자들의 직관적인 추측에서 보았을 때, 검은 피부를 가지고 있으니 외국인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모델은 한국인이었습니다. 나이지리아 출신의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한국말만 쓰고 또 한국에서만 살았던 완벽한 한국인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반박 댓글이 올라왔습니다.
‘한국인이 검은 피부일 리 없다고 생각하는 당신은 편협한 사람이군요.’
편협한 생각을 가지고 당연히 함께해야 할 사람을 내쳤던 적이 얼마나 많습니까? 함께해야 할 이유가 너무 많은데, 함께하지 못할 이유 몇 가지를 내세워 절대로 함께할 수 없다고 단언하는 모습도 또 얼마나 많습니까?
편협한 생각은 결코 하느님의 생각이 될 수 없습니다. 하느님의 생각은 우리의 생각을 훨씬 뛰어넘으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하느님의 뜻을 따라 하느님과 함께해야 합니다.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가이파 몇 사람의 질문이 이어집니다. 당시 율법에 의하면 어떤 형제가 자식 없이 죽게 되면, 다른 형제가 죽은 형제의 아내를 맞아들여 형제의 후사를 일으켜 주어야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일곱 형제가 있었는데, 맏이가 아내를 맞아들였지만 자식 없이 죽었고 그래서 그 아래의 형제가 차례로 형수를 맞아들였지만 자식 없이 모두 죽게 되었다는 상황을 이야기하면서, 부활할 때 이 여자는 누구의 아내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들은 하느님의 관점이 아닌, 세상의 관점으로만 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를 지상 생활의 연장선 정도로만 보고 있기에, 부활 자체를 인정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런 편협한 생각이 하느님이신 예수님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우리 생각을 훨씬 뛰어넘는 하느님이십니다. 그래서 완전히 새로운 모습을 바뀌는 삶, 그것이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초대받은 하느님 나라의 모습이었습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많은 사람은 실수 때문에 실패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실패하는 이유는 시도하는 걸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 조지 포먼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 전삼용 요셉 신부님의 오늘 말씀 묵상 업데이트 준비중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프란치스코회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정 떼기
“죽은 이들의 부활에 참여할 자격이 있다고 판단받는 이들은 천사들과 같아져서 더 이상 죽는 일도 없다. 그들은 또한 부활에 동참하여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
오늘 주님께서 부활한 사람은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고 하시는데 제가 자주 하는 말이지만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은 사실 말이 되지 않는 말입니다. 이 세상 그 누가 하느님의 자녀 아닌 사람이 있습니까?
다 하느님의 자녀인데 그런데도 오늘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에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성숙한 하느님 자녀 또는 완성의 하느님 자녀라는 의미 말입니다.
사실 세례가 이런 의미입니다. 자기가 본래 하느님 자녀라는 것을 모르고 이 세상의 자녀로 살거나 하느님의 자녀답게 살지 않던 사람이 이제 자기 신원을 알게 되고 하느님의 자녀답게 살기로 새롭게 마음먹는 것이 세례가 아닙니까?
그런데 그렇게 마음먹고 일평생 살았지만 이 세상 사는 동안 하느님과 세상 사이를 왔다 갔다 했는데 이제 죽어 다시 태어날 때는 진짜 새로운 하느님 자녀로 태어난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또한 이런 의미이기도 합니다. 지금까지 육신 아버지의 자녀로도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오로지 하느님의 자식으로 사는 것입니다.
프란치스코의 경우, 아버지 베드로 베르나르도네의 아들이었다가 회개한 후 주교님 앞에서 옷까지 홀딱 벗어 돌려드리며 상속권을 포기할 때 이제부터 나는 하늘의 아버지를 자유롭게 아버지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선언했지요.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은 부자지간의 인연을 비롯하여 과거의 모든 인간적인 인연으로부터 훌훌 벗어난다는 의미입니다.
더 이상 누구의 아들딸이 아니고, 더 이상 누구의 엄마 아버지가 아니고, 더 이상 누구의 아내 남편이 아닙니다.
오늘 천사와 같이 된다는 표현도 있는데 천사처럼 더 이상 죽지 않을 뿐 아니라 천사처럼 더 이상 ‘누구의 누구’가 아니라 오로지 하느님의 자녀라는 말입니다.
제가 이것을 확실히 깨닫고 실감하게 된 계기는 어머니의 죽음이었습니다. 그전까지는 머리로만 그렇게 생각했다는 뜻이지요.
제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저는 어머니를 이제 제 어머니가 아니라 하느님의 딸로 놔드려야겠다고 마음먹었는데 헤어지기 섭섭하여 간신히 작별의 손을 놓듯 여간 슬프고 힘든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그래야지만 어머니께서 하느님께 훌훌 떠나실 것이기에 그리했습니다.
그런데 신앙인이 아니어도 그런 말 있지 않습니까? ‘정 떼기’라는. 옛날 정이 많고 사랑이 많은 사람이 죽게 되면 갑자기 전과 달리 모진 짓을 하면 그것은 정 떼기 위해서 그러는 것이라고 했지요.
늙어갈수록, 아니 죽어갈수록 우리도 정 떼기를 해야겠습니다. 하느님의 완전한 자녀가 되기 위해서..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하느님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자연의 섭리 앞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집니다. 시간은 다시 되돌릴 수 없습니다. 현재는 과거를 내려놓으며 오늘이 되고 미래는 현재를 내려놓으며 우리의 어리석음을 허뭅니다. 내려놓고 오늘을 다시 사는 법을 배웁니다. 산 이들의 하느님께서 우리를 행복으로 이끌어 주십니다. 살아계신 하느님이 아니었다면 소중함도 영원함도 있을 수 없습니다.
살아계신 하느님이 계시기에 성장하고 성숙하는 인격의 기쁨도 있는 것입니다. 살아계신 하느님께서는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든 의미가 되어 주십니다. 삶의 이유와 삶의 의미에 목마른 우리들에게 행복할 자격이 있음을 당신의 부활로 친히 가르쳐주십니다. 산 이들의 하느님께서 오늘이라는 기적을 일구어 내십니다.
우리의 영혼과 육신을 만드신 하느님께 우리의 삶을 맡깁니다. 우리 존재의 본질을 부활에 참여할 자격으로 바꾸어 주시는 하느님이십니다. 존재의 날들이 우리를 건져 내시는 하느님 자녀들의 살아있는 날들이 됩니다.
하느님 자녀라는 가장 큰 자격이 있기에 십자가도 주어지고 부활도 주어지는 것입니다. 자격이 부활의 동참으로 이어지고 더듬거리며 찾아가는 아름다운 행복이 됩니다. 산 이들의 하느님과 함께 만들어가는 행복한 오늘 되십시오..
'매일미사 말씀묵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23/11/28 (화)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0) | 2023.11.28 |
---|---|
23/11/27 (월)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0) | 2023.11.27 |
23/11/26 (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0) | 2023.11.26 |
23/11/24 (금)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0) | 2023.11.24 |
23/11/23 (목)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0) | 2023.11.23 |
23/11/22 (수)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0) | 2023.11.22 |
23/11/21 (화)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0) | 2023.11.21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