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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3/11/16 (목)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3. 11.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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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제 기도 당신 앞에 이르게 하소서. 제 울부짖음에 귀를 기울이소서.

전능하시고 자비로우신 하느님, 저희에게 해로운 것을 모두 물리쳐 주시어 저희가 평안한 몸과 마음으로 자유로이 하느님의 뜻을 따르게 하소서.

 

2023년 11월 16일 (목)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랜선으로 초대합니다!

2023년 11월 16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연중 제32주간 목요일

 

 

오늘 성경구절 이미지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 (루카 17,21)

 

 

성경구절 이미지 다운로드
루카복음 17장 2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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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말씀 한 줄 요약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3년 11월 16일 (목) 평화방송 매일미사 명동성당 매일미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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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묵상 바로가기

 

 

매일미사 복음 (Gospel)
복음 (Gospel)

 

주님이 말씀하신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으리라.

 

 

루카복음
17장 20-25절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

 

그때에 

20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들에게서 하느님의 나라가 언제 오느냐는 질문을 받으시고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하느님의 나라는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 

21 
또 ‘보라, 여기에 있다.’, 또는 ‘저기에 있다.’ 하고 사람들이 말하지도 않을 것이다. 보라,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 

22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셨다. “너희가 사람의 아들의 날을 하루라도 보려고 갈망할 때가 오겠지만 보지 못할 것이다. 

23 
사람들이 너희에게 ‘보라, 저기에 계시다.’, 또는 ‘보라, 여기에 계시다.’ 할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나서지도 말고 따라가지도 마라. 

24 
번개가 치면 하늘 이쪽 끝에서 하늘 저쪽 끝까지 비추는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자기의 날에 그러할 것이다. 

25 
그러나 그는 먼저 많은 고난을 겪고 이 세대에게 배척을 받아야 한다.”

 

 

매일미사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3년 11월 16일 (목) 05:00
CPBC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김동완 니콜라오 신부

 

📌 미사시작 00:22

📌 강론시작 08:07

 

 

 

의정부 용현동성당 실시간 미사

 

 

2023년 11월 16일 (목) 10:00
의정부 용현동성당
이충열 티토 신부

 

📌 미사시작 11:39

📌 강론시작 19:54

 

 

 

명서동성당 실시간 미사

 

 

2023년 11월 16일 (목) 10:00
명서동성당 미사
임태근 모세 신부

 

📌 미사시작 05:15

📌 강론시작 13:32

 

 

 

남양성모성지 실시간 미사

 

 

2023년 11월 16일 (목)11:00
남양성모성지 미사
이상각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신부

 

📌 미사시작 44:48

📌 강론시작 59:29

 

 

 

팔로티회 실시간 미사

홍천 팔로티회 매일미사

 

2023년 11월 16일 (목) 15:00
팔로티회 홍천
안동억 프란치스코 신부

 

📌 미사시작 00:10

📌 강론시작 09:36

 

분당 팔로티회 매일미사

 

2023년 11월 16일 (목) 16:00
팔로티회 분당
야렉 카미엔스키 신부

 

📌 성체조배 0:04:03

📌 미사시작 1:33:26

📌 강론시작 1:42:49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오늘의 말씀 묵상
매일미사
김상우 바오로 신부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

 

오늘 복음은 하느님 나라에 관하여 다룹니다. 

“보라,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 

이 말씀에서 “가운데에”라고 옮긴 그리스 말은 ‘- 안에’, ‘- 속에’, ‘누군가의 깊은 곳에’라는 뜻을 가집니다. 그래서 이 구절을 풀어 보면 ‘보라,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너희 속에, 너희 마음속 깊은 곳에 있다.’가 됩니다.

인간은 누구나 내일에 대한 불안을 안고 살아갑니다. 미래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 때문에 점집을 찾고 사주를 보거나, 사적 계시에 집착하거나, 사이비 또는 유사 종교에 빠지는 것은 실제로 고통스러운 현실을 더욱 어렵게 만듭니다. 거짓 위로에 자신을 맡기는 것은 모래 위에 성을 쌓는 격이자 불난 데 기름을 붓는 격이기 때문입니다. 

한편 믿음과 신앙은 정확하게 계량하거나 측정할 수 없어, 이를 향한 여정도 그저 막연하고 모호하게 느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구체적 표징이나 확실한 ‘계시’ 또는 강렬한 은사에 목말라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 목마름을 악용하면서 인류 역사 안에서 이단과 사이비가 끊이지 않았으며 지금도 여전히 우리에게 유혹의 손길을 뻗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믿음과 희망을 두어야 할 곳은 하느님 한 분뿐이십니다. 예수님께서 복음을 통하여 하느님 나라가 우리 한가운데에 있다고 명확히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세례성사 때 우리 안에 뿌려진 하느님 나라의 씨앗은 지금 이 순간도 자라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하느님의 뜻을 찾고 예수님의 가르침에 충실하며 이웃 사랑을 실천할 때, 눈에 보이지 않는 이 씨앗은 어느새 싹을 틔우고 훌쩍 자라 있을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조명연 마태오 신부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

 

하느님은 어떤 경우에도 주저하지도 동요하지도 않고 늘 침착함을 유지하십니다. 우리는 욕지거리를 들으면 침착을 쉽게 잃게 됩니다. 그래서 있지도 않은 일을 부풀려 말하기도 합니다. 이런 우리와 달리 하느님께서는 늘 침묵 속에서 침착함을 가지고 계십니다. 
 
상대의 화에 화로 마주하려 하고, 상대의 부정적인 말에 마찬가지로 부정적인 말로 상대하는 우리입니다. 이것이 당연한 것처럼, 그래야 세상 안에서 잘 사는 것처럼 또 약자가 아닌 강자가 되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래서일까요? 침묵하시며 우리를 바라보고만 계시는 하느님을 잘 이해하지 못하며,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참 많은 것 같습니다. 
 
‘하느님이 정말 계시는 것일까요?’ 
 
도대체 화를 내지 않는 저의 친구가 있습니다. 화를 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침착함을 유지하면서 가만히 있습니다. 그래서 이 친구에게 물어보았습니다. 
 
“너는 화 안 나?” 
 
친구는 자기도 사람인데 어떻게 화가 안 날 수 있냐면서, 대신 이것을 꼭 기억하려고 노력한다고 말해주었습니다.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자.” 
 
하느님께서도 우리 입장에서 생각 중이십니다. 그래서 도저히 용서받을 수 없을 것 같은 죄를 지어도 가만히 침묵하셨던 것입니다. 하느님의 이 모습을 따라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겸손을 계속해서 말씀하셨듯이, 그 시작은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느님을 닮은 삶입니다. 
 
이렇게 하느님을 닮은 삶을 사는 사람은 어디에 사는 것일까요? 그곳이 어떤 곳인지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보라,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 
 
하느님 나라는 분명히 사랑이 가득한 곳입니다. 그래서 사랑이 가득한 곳이 바로 하느님 나라의 시작점이 될 것입니다. 문제는 사랑이 아닌 다른 것을 쫓고 있다는 것입니다. 나의 욕심과 이기심을 가득히 안고서 조금이라도 손해 보지 않으려는 마음을 가지면서, 점차 하느님 나라에서 멀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을 향해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해 주십니다. 
 
“너희가 사람의 아들의 날을 하루라도 보려고 갈망할 때가 오겠지만 보지 못할 것이다.” 
 
하느님께서 침묵 속에서 침착함을 잃지 않는 것처럼, 우리도 이웃의 입장에 서서 사랑의 마음을 잃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우리 가운데 있는 하느님 나라 안에 살 수 있습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위로는 위로하는 자의 의도가 아니라, 위로받는 자의 마음으로부터 생겨난다.

- 이세운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하느님 나라는 부모의 굳은살

 

오늘 복음은 비유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하느님의 나라’를 설명하십니다. 하느님 나라는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고 하시며, 그 나라를 위해 당신은 먼저 많은 고난을 겪고 이 세대에게 배척당해야 한다고 하십니다. 당신의 피가 하늘 나라를 만들기 때문입니다. 

영화 ‘언포기버블’(The Unforgivable)은 2021년에 발표된 드라마 영화로, 산드라 블록이 주연을 맡았습니다. 줄거리는 블록이 연기한 루스 슬레이터가 20년의 징역을 마치고 감옥에서 풀려나는 데에 초점을 맞춥니다. 

그녀의 죄는 워싱턴주 스노호미시에 있는 집에서 자신과 다섯 살 된 여동생 케이티를 쫓아내려던 보안관을 살해한 것이었습니다. 이 비극적인 사건은 루스가 그들의 어린 시절 집에서 케이티를 키우고 있을 때, 아버지가 사망하고 어머니가 출산 중 사망한 후에 발생했습니다.

풀려난 후, 루스는 과거를 용서하지 못하는 사회와 마주합니다. 어떤 직장에서도 그녀를 믿어주지 않고, 그녀를 좋아한다고 쫓아다니던 남자도 그녀가 경찰관 살인자라는 말을 듣자 그녀를 멀리합니다. 심지어 보안관의 두 아들은 그녀 동생을 납치에 그녀의 눈앞에서 동생을 죽이려 합니다. 

그런데 루스는 보안관이 사실 자신들에게 잘해주었고 그런 사고가 일어난 것은 정말 잘못했으며 그렇게 해봐야 돌아가신 아버지가 좋아할 일이 없다고 설득합니다. 루스의 진심어린 사과에 보안관의 두 아들은 그녀들을 놓아줍니다. 

루스의 여동생 케이티는 그날의 사건들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케이티의 양부모는 루스가 보내오는 편지를 하나도 케이티에게 주지 않았습니다. 지금 잘살고 있는데 굳이 살인자 언니를 만나게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케이티는 자신이 누구였는지, 어렸을 때 자기를 보호해준 어떤 흐릿한 기억의 여인이 누구였는지 궁금했습니다. 루스는 그럴 의도가 아니었지만, 사실 그날 보안관에게 총을 쏜 것이 자신이 아닌 케이티였음을 밝힙니다. 그녀는 고작 다섯 살밖에 되지 않았었기에 케이티를 보호해주기 위해 대신 감옥을 살고 살인자로 낙인찍혀 견뎌왔던 것입니다. 

이 사실을 알고는 케이티는 언니를 끌어안으며 행복한 눈물을 흘립니다. 루스의 피가 케이티에게 하늘 나라를 만들어준 것입니다. 사람은 다 불안합니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릅니다. 생존의 문제입니다. 그런데 누군가가 생명과 같은 피를 자신을 위해 흘려주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그 불안이 가라앉습니다. 그 평화가 하늘 나라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일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누리는 의로움과 평화와 기쁨입니다”(로마 14,17)라고 말합니다. 성령은 하느님의 피와 같습니다. 루스는 케이티를 위해 피를 흘렸습니다. 그래서 케이티를 의롭게 했습니다. 케이티는 자기 잘못도 모른 채 살아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언니가 자기 대신 모든 죄를 뒤집어썼음을 알았을 때야 비로소 참 행복을 느낍니다. 누군가 자기를 위해 피를 흘릴 만큼 자기를 사랑하고 있었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태국 광고 중에 ‘어머니의 볶음밥’이란 제목의 광고가 나왔었습니다. 아이가 집을 나와 배가 고파 어쩔 줄을 모를 때 길거리 음식 장사하는 아주머니는 돈이 없어서 입맛만 다시는 아이에게 맛있는 달걀 볶음밥을 해줍니다. 아주머니는 아이가 양파를 싫어하는 줄 어떻게 알고 그것을 빼고 해줍니다. 

알고 보니 돈이 없을 줄 알고 엄마가 여기저기 다니며 아이가 오면 밥을 그렇게 한 끼 해주라고 돈을 주고 간 것입니다. 아이는 눈물을 흘리며 음식을 먹습니다. 이것이 하늘 나라입니다. 나를 사랑해주는 이가 있다는 사실을 믿게 되는 것. 

저도 부모님을 통해 하늘 나라를 느낀 것은 부모님의 손과 발에 박힌 굳은살을 보고서였습니다. 그 굳은살은 내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를 때, 심지어 엄마가 나의 친엄마인지도 의심이 들 때 하늘 나라의 행복을 선사했습니다. 

사람은 다 불안합니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 불안을 없앨 수 있는 유일한 물질은 ‘피’입니다. 누군가가 나를 위해 죽어줄 사람이 있다는 것은 생존에 대한 걱정을 덜어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사랑을 하도록 파견받았습니다. 그러나 먼저 내 안에 하늘 나라를 간직해야 합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의 살과 피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프란치스코회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우리 가운데 있다 .

 

“하느님의 나라는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 또 ‘보라, 여기에 있다.’, 또는 ‘저기에 있다.’ 하고 사람들이 말하지도 않을 것이다. 보라,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 

하느님 나라가 언제 오느냐의 질문에 주님께서 언제 얘기는 하지 않고, 하느님 나라는 너희 가운데 곧 우리 가운데 있다고 대답하십니다. 

우리 가운데 있다! 

하느님은 아니 계신 곳이 없이 어디든지 계신다고 우리 교회는 말하지요. 그러니 하느님 나라는 여기에 있다고 하는 곳에 있지 않고, 저기에 있다고 하는 그곳에 있지 않습니다. 

나에게는 내가 있는 곳에 있고, 우리에게는 우리가 있는 곳 곧 우리 가운데 있습니다. 그러니 이리저리 우왕좌왕하지 말고 줏대 없이 이 사람 저 사람을 쫓아 가지 말 것입니다. 

내가 있는 지금 여기에 하느님 나라가 있다는 확신과 줏대를 가지고 있고, 우리의 사랑만 있으면 그 가운데 하느님 나라가 있다는 확신만 가지고 있으면 그때 하느님 나라는 우리에게 오고 거기서 하느님 나라를 만날 수 있겠습니다. 

아! 그렇다면 하느님 나라는 내게 달려 있고 우리에게 달린 것이네요!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보라,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

 

하느님의 나라는 입과 머리로 알아듣는 나라가 아닙니다. 묵묵히 기도하는 마음 안에 존재하는 나라입니다. 모든 일의 시작은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비롯됩니다. 하느님께로 향한 열린 마음이 하느님 나라의 시작입니다. 바르게 보는 일이 하느님을 신뢰하는 하느님 나라의 생활입니다. 

마음이 없는 생활이 없고 생활이 없는 마음이란 없습니다. 마음을 키우는 생활의 복음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나라는 우리 한가운데 우리의 마음 안에서 빚어지고 만들어지는 나라입니다. 우리 마음의 믿음과 정성으로 나누어지고 베풀어지는 마음의 잔치입니다. 그 마음을 잃지 않게 도와주시는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하고 보듬고 아껴주어야 할 하느님의 나라 하느님의 사람입니다. 더 이상 물러 설 곳도 없는 하느님의 나라이며 하느님을 닮은 우리의 마음입니다. 마음을 열면 닫힌 사랑과 용서도 열립니다. 하느님 나라를 위해 사랑을 위해 그 어떤 희생도 감내한 사랑의 마음을 만나는 시간입니다. 

사랑의 마음을 가져야 할 하느님 나라의 우리들입니다. 끈기와 인내심을 갖고 하느님께로 나아가는 각별한 오늘의 마음입니다. 마음 쓰는 곳에 마음 가는 곳에 간절한 하느님의 나라가 있습니다. 마음의 눈을 뜨는 은총의 시간 삶의 본질을 꿰뚫는 복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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