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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3/11/02 (목)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3. 1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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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돌아가셨다가 다시 살아나셨듯이, 하느님은 예수님을 통하여 죽은 이들을 예수님과 함께 데려가시리라. 아담 안에서는 모든 사람이 죽었지만, 그리스도 안에서는 모든 사람이 살아나리라.

주님, 성자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시어 저희의 믿음을 깊게 하셨으니 저희의 기도를 인자로이 들으시고 저희도 세상을 떠난 주님의 종들과 더불어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리라는 굳건한 희망을 지니게 하소서.

 

2023년 11월 2일 (목) 죽은 모든 이를 기억하는 위령의 날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랜선으로 초대합니다!

2023년 11월 2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죽은 모든 이를 기억하는 위령의 날

 

 

오늘 성경구절 이미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요한 11,25)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요한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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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1장 2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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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1독서
    (욥기 19,1.23-27ㄴ)
    나는 알고 있다네, 나의 구원자께서 살아 계심을.

  • 제2독서
    (로마서 5,5-11)
    그리스도의 피로 의롭게 된 우리는 그분을 통하여 하느님의 진노에서 구원을 받게 될 것입니다.

  • 오늘 복음
    (마태오 5,1-12ㄴ)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3년 11월 2일 (목) 평화방송 매일미사 명동성당 매일미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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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묵상 바로가기

 

 

매일미사 복음 (Gospel)
복음 (Gospel)

 

주님이 말씀하신다. 내 아버지께 복을 받은 이들아 와서, 세상 창조 때부터 너희를 위하여 준비된 나라를 차지하여라.

 

 

마태오복음
5장 1-12ㄴ절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군중을 보시고 산으로 오르셨다. 그분께서 자리에 앉으시자 제자들이 그분께 다가왔다. 


예수님께서 입을 여시어 그들을 이렇게 가르치셨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4 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행복하여라, 온유한 사람들! 그들은 땅을 차지할 것이다. 


행복하여라,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그들은 흡족해질 것이다. 


행복하여라, 자비로운 사람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 

10 
행복하여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11 
사람들이 나 때문에 너희를 모욕하고 박해하며, 너희를 거슬러 거짓으로 온갖 사악한 말을 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12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매일미사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3년 11월 2일 (목)
CPBC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김연수 스테파노 신부

 

📌 죽은 모든 이를 기억하는 위령의 날 소개 00:05

📌 교황님 11월 기도지향 01:15

📌 미사시작 01:30

📌 강론시작 08:54

 

 

 

팔로티회 실시간 미사

홍천 팔로티회 매일미사

 

2023년 11월 2일 (목)
팔로티회 홍천 15시
안동억 프란치스코 신부

 

📌 미사시작 00:11

📌 강론시작 07:43

 

분당 팔로티회 매일미사

 

2023년 11월 2일 (목)
팔로티회 분당 16시
야렉 카미엔스키 신부

 

📌 성체조배 0:00:02

📌 미사시작 1:31:27

📌 강론시작 1:43:52

 

 

 

명서동성당 실시간 미사

 

 

2023년 11월 2일 (목)
명서동성당 미사 10시
구성진 율리아노 신부

 

📌 미사시작 04:59

📌 강론시작 14:44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오늘의 말씀 묵상
매일미사
김상우 바오로 신부

 

가톨릭 신앙은 무엇을 희망합니까?

 

위령의 날 첫째 미사에 참여하며 죽은 모든 이의 영혼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도록 기도합니다. 구체적으로 가톨릭 신앙은 무엇을 희망합니까?

제1독서에서 욥은 고통 속에서도 하느님에 대한 믿음과 희망, 특히 그분을 뵙게 되리라는 기대를 끝까지 버리지 않습니다. 

“내가 기어이 뵙고자 하는 분, 내 눈은 다른 이가 아니라 바로 그분을 보리라.” 

제2독서에서 바오로는 예수님을 통하여 하느님과 우리 사이에 화해가 이루어졌음을 강조합니다. 

“우리는 또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을 자랑합니다. 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제 화해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복음에 따르면, 예수님께서 참행복에 관하여 가르치시며 하느님을 뵙게 되리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십니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 

여기서 마음이 깨끗하다는 것은 다양한 의미로 풀이됩니다. 뜻, 지향, 목적이 순수하며, 하느님과 그분의 나라에 적합하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느님을 뵙게 될 것이라는 그리스도인의 희망도 물리적인 눈으로 그분을 뵙는 것만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오히려 주님의 기도 내용처럼, 하느님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기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내 뜻보다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 내 지향보다 그분의 지향이 무엇인지, 내 목표보다 하느님 나라의 목표가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하며 끊임없이 희망하고 지칠 줄 모르게 기도하여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리고 그 기도는 삶 속의 구체적 실천으로 꽃피워집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조명연 마태오 신부

 

너~ 공부 안 하면 어떻게 되는지 몰라? 

 

매일 게임만 하고 전혀 공부를 하지 않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아이 아빠는 공부하지 않고 게임만 하는 자녀의 모습에 화가 나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 공부 안 하면 어떻게 되는지 몰라?” 
 
그러자 아이도 큰 소리로 말합니다. 
 
“잘 알아. 공부 안 하면 시험 점수가 잘 나오지 않겠지. 그러면 좋은 대학에 들어갈 수 없을 것이고, 또 제대로 된 직장도 얻지 못할 거야. 연애도 못 하고 내 집을 가질 수 없겠지. 그래도 공부는 재미없어.” 
 
이 아이는 공부 안 하면 어떻게 되는지 아는 것일까요? 모르는 것일까요?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잘 안다면 공부를 안 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공부를 학창 시절에 그리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신부가 되고나서 또 신부답게 살기 위해서는 공부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신부의 무게를 느끼면서 공부를 안 할 수가 없었습니다. 
 
“알면서도 행동하지 않으면 정말로 아는 게 아니다.”라는 스티븐 코비의 말이 떠올려집니다. 진정한 앎은 행동을 반드시 따르게 하는 것입니다.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교리를 통해 또 성경 말씀을 통해 잘 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과연 진짜 앎일까요? 행동하지 않으면 입으로만 안다고 할 뿐 진짜 아는 것이 아닙니다. 행동의 중요성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 행동으로 나의 진짜 앎이 이루어지게 될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갑자기 들이닥친다고 하셨습니다. 그 시간과 그 장소를 우리가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늘 깨어 준비하라는 것이 주님의 말씀이지요. 오늘 복음 말씀도 그런 점을 볼 수 있습니다. 잘 준비한 처녀는 슬기로운 처녀로, 준비하지 않은 다섯 처녀는 어리석다고 이야기하십니다. 그 준비는 입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우리의 행동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이런 행동을 통해 주님을 제대로 알아갈 수 있게 됩니다. 
 
오늘은 우리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이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또 우리 자신의 죽음을 앞당겨 준비하는 위령의 날을 지내고 있습니다. 이 위령의 날에 언제 오실지 모르는 주님을 잘 맞이하려는 우리의 행동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묵상할 수 있습니다. 
 
단순히 입으로만 준비해야 한다고 말만 하는 모습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입이 아닌 몸으로 행동할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을 제대로 알 수 있고, 또 그 주님을 잘 맞이하는 지혜로운 신앙인이 될 수 있습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사랑은 찾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당신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 로레타 영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죽은 이를 위한 기도가 착각이라도 좋은 이유

 

오늘은 위령의 날입니다. 오늘만이 아니라 매일, 어쩌면 매 식사 후 기도를 통해서 만이라도 연옥 영혼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얼마나 우리 자신에게도 좋은 일인지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연옥이 있다는 것을 믿는 것만으로도 비록 그것이 착각일지라도 우리에게 매우 유익합니다. 

영화 ‘먼지로 돌아가다’(2022)에서 시골 노총각은 4만 원을 주고 장애가 있는 신부를 데려옵니다. 둘은 진정으로 위해주고 사랑합니다. 그러나 그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아내가 죽자 노총각은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습니다. 

그 이전에는 자기 자신을 위해 일하는 것을 견딜만 하였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 일하는 맛을 알고 난 뒤에는 더는 자기 자신만을 위해 일하는 것이 힘들어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내어주고 아내를 따라갑니다. 

베르테르 효과라고 있습니다. 유명인이나 사랑하는 사람이 죽으면 자신도 죽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예를 들어 2005년 이은주 씨가 사망한 한 달 후는 하루 평균 23명이 자살하던 것이 41명으로 늘었습니다. 

2007년 정다빈 씨가 사망한 후 전달 평균 21명에서 45명으로 늘었고 최진실 씨 동생 최진영 씨가 자살하기 이전 38명에서 이후 51명이 되었습니다. 

최진실 씨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루 평균 32명에서 59명으로 껑충 뛰었습니다. 이를 한 달, 혹은 그 이후의 파급효과로 따지자면 유명 연예인이 자살하면 수백 명이 뒤따라간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요? 돌아가신 분을 위해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또 연옥을 믿지 않으니 무조건 하늘나라로 간다고 믿고 자기들도 따라가고 싶은 것입니다. 이것이 유일하게 그들을 사랑하는 사람이 그 사랑을 증명할 수 있는 길입니다. 

그러나 연옥을 믿는다면 이 세상에서도 연옥에 있는 사람을 위해 일을 할 수 있고 기도를 할 수 있습니다. 여전히 살아있는 것처럼 통교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을 버릴 필요가 없고 따라간다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습니다. 연옥이 있다면 지옥도 믿기 때문입니다. 자살도 살인이기에 마지막에 그 대죄를 짓는다면 구원받을 확률은 매우 희박하다 할 수 있습니다.

긍정적 착각이 있습니다. 버락 오바마는 흑인이었음에도 어렸을 때부터 꿈이 대통령이었습니다. 모두가 비웃었지만, 그는 어렸을 때부터 대통령이 된 세상에서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할 수 있다고 믿어야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실험에서 한 여성에게 농구 자유투를 해 보라고 했습니다. 여성이 열 번을 던졌지만, 열 번 중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실험 진행자는 믿으면 된다고 말해주고 믿는다는 뜻에서 눈을 가리고 해 보라고 했습니다. 주위에 사람들이 몰려들고 여자가 공을 던지자 환호성을 올립니다. 그 사람들은 처음부터 관중이 아니라 그렇게 하도록 교육받은 사람들입니다. 

공은 들어가지 않았지만, 눈을 가리고 공을 던지는 여자에게 믿음을 주기 위해 그렇게 소리를 지른 것입니다. 여자는 진짜 공이 들어간 줄 알고 자신을 믿게 됩니다. 이제 눈가리개를 하지 않고 공을 던집니다. 열 번 던져서 네 번을 성공시켰습니다.

연옥 영혼을 위해 기도해줄 때도 이런 효과가 있습니다. 내가 지옥에 갈 것이라 여기며 연옥 영혼을 위해 기도할 수는 없습니다. 적어도 나도 내가 기도해주는 이처럼 연옥이나 천국에 갈 것이라 믿게 됩니다. 그러면 그곳에 가기에 합당하게 자기 삶을 변화시킵니다. 죄를 덜 짓게 되고 하느님을 더 믿게 됩니다. 

연옥 영혼을 위해 기도하고 진짜 연옥이 있다면 가장 좋을 것입니다. 그럴 리는 없지만, 만약 연옥이 없더라도 자녀들과 함께 연옥 영혼을 위해 식후 기도라도 하면 자녀들은 적어도 연옥을 목적지로 여기며 살아가게 됩니다.

천국과 지옥과 연옥의 교리가 연옥 영혼을 위해 기도하며 자기 안에 완전히 박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이들이 착해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렇게 좋은데도 연옥 영혼을 위해 기도하지 않는다는 것은 보석을 알아보지 못하고 돌 버리듯 버리는 어리석음과 같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프란치스코회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기도로서 위로하는 우리

 

“내가 기어이 뵙고자 하는 분, 내 눈은 다른 이가 아니라 바로 그분을 보리라.”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심으로써, 하느님께서는 우리에 대한 당신의 사랑을 증명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분을 통하여 하느님의 진노에서 구원받게 되리라는 것은 더욱 분명합니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위의 세 말씀으로 나눔을 하려고 하는데 위의 세 말씀을 연결하여 결론과도 같이 정리하면 이렇게 되겠습니다. 

ㅡ 나는 반드시 보리라! 

ㅡ 구원을 받게 되리라! 

ㅡ 나는 꼭 행복하리라! 

우리도 이래야 합니다. 죽어서라도 꼭 주님을 보고야 말리라 마음먹어야 합니다. 

왜 그렇게 꼭 봐야 합니까? 그것은 오늘 욥기에 의하면 그분이 먼지에서 일어서는 분, 곧 부활의 주님이시고 오늘 로마서에 의하면 “우리가 아직 나약하던 시절, 정해진 때에, 불경한 자들을 위하여 돌아가신” 분, 곧 우리를 죽도록 사랑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욥처럼 사는 동안 고생고생하였는데 고생만 하고 주님마저 못 뵈면 너무 억울하기 때문이고, 이렇게 고생했으니 주님 뵙는 것을 상으로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도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하는데 사랑과 부활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우리가 고통을 사랑으로 보상받지 못하고, 고생을 부활로 보상받지 못한다면 어떻게 살고 왜 삽니까? 

사랑과 부활의 주님이 안 계신다고 믿고 그래서 고통을 사랑으로, 고생을 부활로 보상받지 못한다고 그리 믿는 사람은 그래서 더 이상 삶을 살아갈 이유를 찾지 못하고 자살을 해버리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랑과 부활과 구원의 하느님 때문에 

ㅡ 성인들의 통공을 믿고 

ㅡ 육신의 부활을 믿고, 

ㅡ 영원한 사람을 믿는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우리만 행복하면 되겠습니까? 앞서 봤듯이 우리가 믿는 것을 믿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런 사람이 없도록, 우리의 행복 안에 그들의 불행을 품고 그들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불쌍하고 불행한 모든 영혼을 품지 못한다면 가까운 이들의 영혼이라도 우리는 품고 기도해야 합니다. 

위령이란 불쌍하고 불행한 영혼을, 살아있는 영혼이건 죽은 영혼이건 기도로서 위로하는 것임을 다시 한번 마음에 새기며 그들을 위해서 적어도 위령 성월인 11월 한 달만이라도 아니 오늘만이라도 기도해야겠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

 

아름답던 단풍도 낙엽이 됩니다. 모든 자연의 이치이며 순리입니다. 죽음을 잊고 살기에 삶의 소중한 매 순간들을 놓치며 살아갑니다. 태어남이 있으면 반드시 죽음이 있습니다. 늦고 빠름의 차이만 있을뿐 하느님께서 주신 공평한 죽음은 어느 누구에게나 똑같이 적용됩니다. 
이 모든 것을 창조하신 하느님 안에서 죽음은 끝이 아닙니다. 죽음을 위로하는 기억과 기도는 서로의 마음을 이어줍니다. 기억과 기도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가장 아름다운 사랑입니다. 연옥 영혼들을 위해 기도하며 우리자신을 보게됩니다. 사랑은 기도로 실천으로 실현되어야 할 하느님의 나라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일을 하지 못하기에 사랑이 아픈 것입니다. 아프면 묶이게 되고 묶이면 서로에게 따스할 수 없습니다. 삶과 죽음이 하느님 안에서 사랑으로 조화를 이룹니다. 영원히 존재할 수 없는 우리들 삶입니다. 삶과 죽음을 하느님께 봉헌하는 위령의 날입니다. 하

느님께로 갈 수 밖에 없는 우리들 삶을 봉헌합니다. 삶과 죽음 기억과 기도 사랑과 봉헌 하느님과 나 이 모든 것은 만남으로 하나가 됩니다. 죽은 모든 이를 위해 우리가 제일 먼저 해야할 것은 기도입니다. 

기도로 나눌 줄 아는 사랑과 낮추는 마음으로 우리 모두의 죽음을 기억합시다.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간절한 기도를 기억합시다. 우리가 누구이며 누구여야 하는 지를 깨닫는 위령의 날 새아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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