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이 말씀하신다. 나는 내 양 떼를 찾아서, 그들을 먹일 목자를 세우리라. 나 주님이 그들의 하느님이 되리라.
주님, 복된 가롤로 주교에게 심어 주신 굳센 정신을 주님의 백성에게 부어 주시어 교회가 끊임없이 새로워지고 저희도 그리스도를 닮아 그분의 참모습을 세상에 보여 주게 하소서.
2023년 11월 4일 (토) 성 가롤로 보로메오 주교 기념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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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1월 4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성 가롤로 보로메오 주교 기념일
오늘 성경구절 이미지
하느님의 은사와 소명은 철회될 수 없다. (로마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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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11장 29절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1독서
(로마서 11,1ㄴ-2ㄱ.11-12.25-29)
유다인들이 배척을 받아 세상이 화해를 얻었다면 그들이 받아들여질 때에는 죽음에서 살아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 오늘 복음
(루카 14,1.7-11)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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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이 말씀하신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루카복음
14장 1.7-11절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1
예수님께서 어느 안식일에 바리사이들의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의 집에 가시어 음식을 잡수실 때 일이다. 그들이 예수님을 지켜보고 있었다.
7
예수님께서는 초대받은 이들이 윗자리를 고르는 모습을 바라보시며 그들에게 비유를 말씀하셨다.
8
“누가 너를 혼인 잔치에 초대하거든 윗자리에 앉지 마라. 너보다 귀한 이가 초대를 받았을 경우,
9
너와 그 사람을 초대한 이가 너에게 와서, ‘이분에게 자리를 내 드리게.’ 할지도 모른다. 그러면 너는 부끄러워하며 끝자리로 물러앉게 될 것이다.
10
초대를 받거든 끝자리에 가서 앉아라. 그러면 너를 초대한 이가 너에게 와서, ‘여보게, 더 앞 자리로 올라앉게.’ 할 것이다. 그때에 너는 함께 앉아 있는 모든 사람 앞에서 영광스럽게 될 것이다.
11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3년 11월 4일 (토)
CPBC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노동준 안토니오 신부
📌 성 가롤로 보로메오 소개 00:05
📌 교황님 11월 기도지향 01:19
📌 미사시작 01:34
📌 강론시작 08:27
팔로티회 실시간 미사
홍천 팔로티회 매일미사
2023년 11월 4일 (토)
팔로티회 홍천
매일미사 : 15시
김태광 아우구스티노 신부
📌 미사시작 00:19
📌 강론시작 07:26
분당 팔로티회 매일미사
2023년 11월 4일 (토)
팔로티회 분당 (16시)
김지학 요셉 신부
📌 성체조배 0:02:58
📌 미사시작 1:02:43
📌 강론시작 1:10:07
오늘의 말씀 묵상
매일미사
김상우 바오로 신부
겸손이 무엇인지 각자에게 질문하여야 하는 이유
일상 속에서 우선순위를 잘 따져야 합니다. 다양한 선택의 기로에서 바른 선택을 하는 것은 판단력과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제1독서를 포함하는 로마서 9—11장은 이스라엘의 구원과 다른 민족들의 구원 문제를 다룹니다. 유다인 출신의 그리스도인들과, 이방인 출신의 그리스도인들이 갈등 속에서 함께 살았던 로마 교회의 상황을 반영하는 내용입니다.
하느님께서 구원의 우선순위를 구약의 백성에게 먼저 주셨지만, 그들은 예수님을 구세주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이후 이방인들이 복음을 믿으며 유다인들에게서 시작된 구원은 이방인들에게까지 확대됩니다. 그렇다고 이방계 그리스도인들도, 유다계 그리스도인들도 자만해서는 안 됩니다. 구원의 우선순위와 주도권은 늘 하느님께 있기 때문입니다.
한편 복음에서 바리사이들의 지도자 집에 초대된 예수님과 율법 교사들의 모습이 소개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맨 윗자리에 앉고 싶어 하는 바리사이들의 모습을 혼인 잔치의 비유를 들어 간접적으로 꾸짖으십니다.
이 비유의 핵심은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라는 말씀에 담겨 있습니다. 따라서 우선순위와 판단력과 겸손의 문제는 오늘 성경 말씀에서 공통으로 드러나는 특징입니다.
본당과 가정과 직장에서 우선순위를 착각하며 판단력이 부족한 경우를 때때로 겪습니다. ‘완장’ 하나 채워 주면 뭐라도 된 듯 거들먹거리며 우쭐대는 태도를 쉽사리 보게 됩니다. 오늘의 삶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에게 겸손이 무엇인지 각자에게 질문하여야 하는 이유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조명연 마태오 신부
자신을 낮추면서 살라
한때 여행을 너무 좋아해서, 여행 관련 책과 잡지를 보고 직접 찾아가는 것이 큰 즐거움이었습니다. 새로운 장소에 새로운 생각도 많이 나온다고 말하면서 여행 마니아의 모습을 자주 보였습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이렇게 말하는 저를 봅니다.
“집이 최고야! 역시 집만 한 곳이 없어.”
집은 특별하지 않습니다. 주인은 자기 집 안에 무엇이 있는지 잘 알기에 세상의 그 어떤 곳보다도 익숙하고 편함을 자기 집에서 느끼게 됩니다. 뇌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것입니다. 사실 뇌가 긴장 상태에 있으면 불편하고 불안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 순간을 이겨내기 위해 뇌 활동이 활발하게 일어납니다. 이때 창의적인 생각들을 나오게 됩니다. 예전에 저는 익숙하고 편안한 집보다 새로운 환경이 좋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완전히 반대되었습니다. 이제는 익숙하고 편안한 것이 좋습니다.
익숙하고 편한 것을 좋아하는 몸이 되었습니다. 이제까지 알고 있었던 제 몸이 아닌 것 같습니다. 아마도 나이가 들면서 몸이 약해지고, 이에 따라 낯선 공간보다 편안한 공간인 ‘집’을 좋아하게 된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글이 잘 안 써지면 낯선 장소를 찾곤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새로운 환경을 집에 만듭니다. 방 청소를 하고 서랍 정리를 해봅니다. 또 잘 쓰지 않았던 펜과 노트를 써보기도 합니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그 사람의 ‘변함’을 ‘나’ 안에서 봅니다. 내가 이렇게 변하는데 ‘남’은 안 변할까요? 당연히 변합니다. 그런데 자기만을 옳다고 생각하면서, 함부로 판단하고 단죄합니다. 그 안에서 이웃을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은 완전히 사라지고 맙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를 높이려고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대신 자신을 낮추면서 살라고 하셨습니다. 겸손의 마음을 통해서 이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랑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많은 이가 이웃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습니다. 자기를 높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혼인 잔치에 초대하거든 윗자리에 앉지 말라는 예수님 말씀을 기억하면서, 겸손의 마음을 통해서만 이웃과 함께하고 더 나아가 주님과도 함께할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을 초대한 바리사이들의 지도자는 초대했으면서도 지켜보고만 있습니다. 호의가 아닌 꼬투리를 잡으려는 의도가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이 마음을 간파하십니다. 자기를 낮추는 변화는 전혀 하지 않으면서, 남의 변함만을 보려고 하는 교만이 이제 주님을 반대하게 될 것이 뻔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변해야 합니다. 높은 자리에 올라가려는 교만이 아닌, 낮은 자리를 기쁘게 받아들이는 겸손의 삶으로의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주님도 그런 우리와 함께해 주십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반복해서 할 때 그것은 나의 것이 된다. 우수함은 행위가 아니라 습관이다.
- 윌 듀란트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님의 오늘 말씀 묵상 업데이트 준비중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프란치스코회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높여주시도록 낮추는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오늘 주님께서는 자신을 높이면 낮아지고 낮추면 높아질 것이라고 말씀하시는데 그러니 이 말씀은 자신을 낮추라는 말씀이라고 이해해야 할까요?
이에 대해 저는 자신을 높이지도 말아야지만 낮추지도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이것은 주님의 가르침에 벗어나 제가 잘못 생각하는 것일까요?
사실 우리가 하느님 앞에서 서면 높은 사람도 없고 낮은 사람도 없습니다. 하느님 앞이 아니라 우리 인간끼리 있을 때 높으니 낮으니 하는 것이지요.
하느님 앞에 가서 ‘하느님, 제가 저 인간보다 높지요? 제가 저 인간보다 낫지요?’하고 얘기하면 어떨지 상상해봅시다.
어떤 자식이 부모에게 와서 내가 형보다 높고 낫다고 주장하면 어떤 부모가 그런 자식을 좋게 보고 그래 네가 높고 낫다고 하겠습니까?
그것은 사랑 앞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랑하는 사이에 높으니 낮으니 하지 않습니다. 미숙한 사랑이나 불완전한 사람의 경우, 내 사랑이 더 크니 네 사랑이 작으니 해도 네가 높다거나 내가 높다고는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런 경우는 있지요. 사랑하기에 나를 낮추는 경우 말입니다. 너처럼 낮아지고 너보다 더 낮추기도 합니다. 엄마는 아이처럼 낮추고 아이보다도 더 낮추는데 하느님은 엄마보다도 더 낮추시지요. 하느님의 이 사랑의 낮춤을 필리피서는 이렇게 찬미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하느님과 같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이처럼 여느 사람처럼 나타나 당신을 낮추시어 십자가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이처럼 하느님에서 사람으로 낮추시는 사랑인데, 이것은 우리 인간이 개로 자신을 낮추는 것 이상으로 자신을 낮추는 사랑입니다.
이런 사랑을 본받으라고 프란치스코는 형제들에게 이렇게 권고합니다.
“하느님의 겸손을 보십시오. 그리고 그분 앞에 여러분의 마음을 쏟으십시오. 그분이 여러분을 높여주시도록 여러분도 겸손해지십시오. 그러므로 여러분에게 당신 자신 전부를 바치시는 분께서 여러분 전부를 받으실 수 있도록 여러분의 것 그 아무것도 여러분에게 남겨 두지 마십시오.”
그런데 낮추지 않고 오히려 자신을 높이고, 더 나아가 다른 사람 위에 군림하려고 들 때 하느님께서는 그런 자를 내치시고 낮추십니다.
이것을 마리아의 찬가는 이렇게 노래하지요.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오며 나를 구하신 하느님께 내 마음 기뻐 뛰노나니, 당신 종의 비천함을 돌보심이로다. 당신 팔의 큰 힘을 떨치시어 교만한 자들을 흩으시고, 권세 있는 자를 자리에서 내치시고 미천한 이를 끌어올리셨습니다.”
마리아처럼 그리고 프란치스코의 권고처럼 높여주시도록 낮추는 나를 꿈을 꿔 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감출 것도 숨길 것도 없는 자연의 자연스러운 모습입니다. 마침내 더 낮은 땅으로 떨어져 내리는 단풍의 단순한 삶과 마주합니다. 또 더 낮은 곳으로 흐르는 넉넉한 물의 흐름이 그 어떤 것보다 자유롭습니다. 자연의 순리와는 사뭇 다른 부실하고 허약한 우리내면을 만납니다.
우리의 힘이 아닌 하느님의 은총으로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 삶입니다. 진리의 힘은 자신을 낮추는 겸손의 힘으로 드러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나무의 뿌리가 나무를 키우고 나무를 살게합니다. 하느님을 만나는 자리는 윗자리가 아니라 자신을 낮추는 끝자리입니다. 낮춘다는 것은 위에서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모상들과 함께 어우러져 소통한다는 것입니다.
어우러져야 어울릴 수 있는 참된 기쁨입니다. 진리로 향하는 방식은 자신을 낮추는 실천의 방식입니다. 하느님께서도 한 없이 자신을 낮추어 사람이 되십니다. 소통과 사랑은 일방적인 것이 아닙니다. 서로 사랑하고 서로 소통하는 끝자리들의 행복입니다. 반갑고 빛나는 행복이 쏟아지는 그곳이 윗자리가 아닌 낮아지고 낮추는 끝자리에 있음을 절실히 깨닫습니다.
끝자리가 우리가 잃어버린 소중한 마음을 되찾아줍니다. 하느님의 잔치 하느님의 나라는 자신을 낮추는 뿌리의 잔치 뿌리의 나라입니다. 나무를 지탱하는 것은 뿌리이며 우리들 마음임을 기억하는 새아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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