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저를 버리지 마소서. 저의 하느님, 저를 멀리하지 마소서. 주님, 제 구원의 힘이시여, 어서 저를 도우소서.
전능하시고 자비로우신 하느님, 은총을 베푸시어 저희가 하느님을 합당히 섬기고 영원한 행복을 바라보며 거침없이 달려가게 하소서.
2023년 11월 5일 (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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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1월 5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연중 제31주일
오늘 성경구절 이미지
너희는 모두 형제다. (마태 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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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오복음 23장 8절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1독서
(말라키 예언서 1,14ㄴ-2,2ㄴ.8-10)
너희는 길에서 벗어나 너희의 법으로 많은 이를 넘어지게 하였다. - 제2독서
(테살로니카1서 2,7ㄴ-9.13)
우리는 하느님의 복음을 여러분과 함께 나눌 뿐만 아니라 여러분을 위하여 우리 자신까지 바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 오늘 복음
(마태오 23,1-12)
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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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묵상 바로가기
너희 아버지는 하늘에 계신 한 분뿐이시고 너희 선생님은 그리스도 한 분뿐이시다.
마태오복음
23장 1-12절
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는다.
1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과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모세의 자리에 앉아 있다.
3
그러니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는 것은 다 실행하고 지켜라. 그러나 그들의 행실은 따라 하지 마라. 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는다.
4
또 그들은 무겁고 힘겨운 짐을 묶어 다른 사람들 어깨에 올려놓고, 자기들은 그것을 나르는 일에 손가락 하나 까딱하려고 하지 않는다.
5
그들이 하는 일이란 모두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성구갑을 넓게 만들고 옷자락 술을 길게 늘인다.
6
잔칫집에서는 윗자리를, 회당에서는 높은 자리를 좋아하고,
7
장터에서 인사받기를, 사람들에게 스승이라고 불리기를 좋아한다.
8
그러나 너희는 스승이라고 불리지 않도록 하여라. 너희의 스승님은 한 분뿐이시고 너희는 모두 형제다.
9
또 이 세상 누구도 아버지라고 부르지 마라. 너희의 아버지는 오직 한 분, 하늘에 계신 그분뿐이시다.
10
그리고 너희는 선생이라고 불리지 않도록 하여라. 너희의 선생님은 그리스도 한 분뿐이시다.
11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높은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12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3년 11월 5일 (일) 05:00
CPBC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현요안 요한 신부
📌 제주 금악성당 소개 00:22
📌 미사시작 01:02
📌 강론시작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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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1월 5일 (일) 15:00
팔로티회 홍천
김태광 아우구스티노 신부
📌 미사시작 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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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 용현동성당 실시간 미사
2023년 11월 5일 (일) 10:00
의정부 용현동성당
이충열 티토 신부
📌 미사시작 12:59
📌 강론시작 26:37
명서동성당 실시간 미사
2023년 11월 5일 (일) 10:30
명서동성당 미사
구성진 율리아노 신부
📌 미사시작 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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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스튜디오 실시간 미사
2023년 11월 5일 (일)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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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근 대건안드레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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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1월 5일 (일)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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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호 베드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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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묵상
매일미사
김상우 바오로 신부
구약성경 핵심의 비밀
제1독서 말라키 예언서는 구약 성경과 신약 성경을 연결하는 책입니다.
구약의 마지막 예언자인 말라키는 하느님의 길, 모세의 율법, 시나이 계약에 충실하지 않던 이스라엘의 잘못을 꾸짖으며 구세주를 애타게 기다립니다.
모세의 율법을 지켜야 비로소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과 맺으신 계약, 곧 옛 계약과 참된 구원의 길 안에 머무를 수 있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제2독서는 테살로니카 교회에 보낸 바오로의 첫째 편지입니다.
바오로는 자신이 선포한 복음을 사람의 말이 아닌 하느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던 공동체 신자들 덕분에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하느님의 복음은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시라는 구원의 기쁜 소식, 곧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로 완성된 새 계약의 신비를 다룹니다.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참된 스승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군중에게 던지십니다. ‘스승’이라 불리기 좋아하던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을 빗대어,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높은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라고 가르치십니다.
이로써 구약 성경의 핵심인 모세의 율법을 완성하는 참스승은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시라는 구원의 진리가 밝혀집니다.
그러면 오늘의 신앙인에게 ‘모세의 율법’에 해당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에게 ‘복음’을 믿으며 고백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합니까? 예수님을 우리 삶의 ‘참스승’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이 세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스스로 찾아가고 내면화하는 과정을 통하여 우리의 신앙 여정은 삼위일체 하느님께 더욱더 가까워지리라고 기대합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조명연 마태오 신부
낮은 자존감과 무력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낮은 자존감과 무력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연세대학교 심리학과 이동귀 교수는 ‘완벽주의’에서 온다고 말합니다. 사회가 요구하는 완벽한 기준에 도달하지 못하는 자신을 인정하지 못해서 벌어지는 현상이라고 합니다. 남들은 이 기준에 도달했는데, 자신은 그렇지 못하고 또 앞으로도 도달할 수 없다는 생각에 자존감은 떨어지고 이에 따라 무력감에 힘든 시간을 겪는다는 것입니다.
사회가 요구하는 기준이라고 생각하지만, 결국 자기가 요구하는 기준이 됩니다. 외모를 중시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데 모두가 연예인처럼 멋지고 예쁠 수 있을까요? 학벌을 중시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모두가 상위 1% 안에 들 수 있을까요? 또 자산은 어떻습니까? 100억 이상을 가져야 괜찮고 그 이하는 실패하는 삶일까요?
자신의 높은 기준 때문에 스스로에게 엄격하고 박하게 평가합니다. 그런데 자기에게만 이런 평가를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자기보다 못하다고 생각될 때, 그 사람에게도 자기만의 잘못된 기준을 내세워서 판단합니다. 예수님을 향해 날카로운 각을 세웠던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의 모습에서 우리의 잘못된 모습이 중첩되어 보입니다.
따라서 생각 자체를 바꿔야 했습니다. 잘못된 기준으로 함부로 판단하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 주님의 뜻에 맞춰서 열심히 사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하느님 나라의 영광을 얻을 수 있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 백성의 지도자들과 교사들의 위선을 꾸짖으십니다. 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기준을 내세워서 사람들을 율법의 노예로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스스로 행동하지는 않습니다. 자기는 옳고, 남은 모두 틀렸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런 생각이 예수님을 향해서도 그대로 전해집니다. 예수님께서 놀라운 기적을 행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표징만을 요구하면서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만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들은 율법을 자기들 삶의 특권을 위하여 이용하고 있을 뿐입니다.
우리를 향해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마태 23,12)라고 말씀하십니다. 섬기는 삶을 살라고 하십니다. 상대방이 틀렸다고 생각하면 섬길 수가 없겠지요. 우리 모두 하느님의 사랑받는 자녀임을 기억하면서, 상대방에게서 하느님의 또다른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 겸손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제 생각 자체를 바꾸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세상의 관점보다는 주님의 관점을 찾고, 세상의 것보다 주님의 것을 따를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과 함께하며 참 기쁨의 삶을 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더욱더 사랑하는 것밖에는 사랑의 치료법이 없다.
- H.D. 도로우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불가능에 도전하는 이는 위선적일 수 없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의 위선을 질책하십니다. 그들은 말은 하고 행동은 하지 않습니다. 다른 이들에게 가르치기는 잘하고 인사받기 좋아하지만, 정작 자신들은 가르치는 것을 실천하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으면서 그렇게 보이려는 것을 ‘위선’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그들만이 아니라 우리는 다른 이들의 시선에서 자유로운가요?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이는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고 자기 몸을 무화과잎으로 가리기 시작한 이후로 변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죄는 교만에서 시작되고 교만은 우리를 위선자로 만들기에 이 죄에서 벗어나려면 솔직해지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솔직해지면 다른 이들이 나를 무시함으로 겸손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인천에 사시는 한 할머니가 병원장 사모님으로서 잘 나갈 때 의료사고가 터져서 병원문을 닫을 수 있는 상황에 부닥쳤습니다. 그때 가장 두려웠던 것은 망하는 것 자체가 아니라 친구들에게 비웃음당하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그동안 돈이 있다고 많이 자랑했었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우리는 타인의 시선을 위해 살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소위 이러저러하게 보이려 살아가는 것입니다. 세상 시선의 노예가 되어가는지도 모르고.
교회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요? 영화 ‘스포트라이트’(2015)는 미국 가톨릭교회가 오랫동안 성직자들의 아동 성추행을 은폐해 온 사실을 신문기자들이 밝혀내는 내용입니다. 우리로서는 매우 자존심 상하는 영화입니다. 그러나 이 영화는 실화를 기반으로 했고 실제로 이 사건을 통해 미국 가톨릭교회가 상당한 물적 정신적 타격을 받은 것이 사실입니다.
왜 교회는 솔직하지 못했을까요? 하느님을 완전히 믿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내가 세상의 시선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은 세상의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아무리 노력해봐야 자기 힘으로는 모두를 속일 수 없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나뭇잎으로 가리던 서로의 부끄러움에서 해방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하느님께서 만들어주신 가죽옷을 입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 가죽옷이 바로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를 입는다는 말은 세상과 다른 새로운 존재로 태어남을 의미합니다. 이 지상 시스템 안에 속해서는 세상 시선에 절대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보고 물 위로 뛰어내렸습니다. 그래야 배에 타고 있을 때보다 자유로워집니다. 같은 배에 타고 있으면 아무래도 나의 모든 말과 행동이 주위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기에 그들의 반응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그러나 물 위로 뛰어내리면 이제 물 위를 제대로 걷지 못하지만, 그리도 예수님을 닮아가는 자신에게만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타인을 신경 쓸 겨를이 없습니다. 이렇듯 그리스도 덕분으로 새롭고 불가능한 일에 도전할 때 이 지상 사람들과 다른 위치에서 살게 됩니다. 그러면 그들의 판단은 신경 쓸 필요가 없어집니다.
위 병원장 사모님도 십자가의 길을 하다가 제4처 성모님께서 예수님을 만나실 때, 예수님께서 “사랑한다”라는 말을 해주셨고 그 이후로 모든 자존심을 내려놓게 되었습니다. 창피해서 나가지 못하던 본당에 나가 먼저 화장실 청소를 하였습니다. 병원장 사모님이 성당 화장실 변기를 매일 닦으면서도 기쁠 수 있었습니다. 병원이 망해도, 친구들이 비웃어도 상관없었습니다. 그런 것과 무관한 존재가 될 하느님 사랑을 입었기 때문입니다.
타인의 시선에서 해방되는 유일한 방법은 이렇듯 하느님 사랑을 믿고 불가능에 도전하는 일입니다. 마더 데레사는 아무 능력이 없는 작은 수녀로서 모든 가난한 이들을 먹이고 입히겠다는 꿈을 꾸었습니다. 그러자 모든 비웃음에 무관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동전 몇 개만 가지고 담대히 커다란 가난한 이들을 위한 병원을 짓겠다고 기자회견을 하였습니다. 결국 수녀님의 말대로 병원이 지어지는 것을 본 세상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습니다.
불가능한 일에 도전하여 세상 비웃음에 맞서봅시다. 버락 오바마는 학교에서 장차 무엇이 되고 싶냐고 물을 때 항상 대통령이 되겠다고 말했습니다. 흑인 아이가 대통령이 될 거라고 말하면 대부분 비웃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들의 무시에 반응하지 않았습니다. 이미 믿음으로 물 위를 걷는 다른 존재가 되어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겐 성체성사가 있습니다. 우리를 다른 존재로 만들어주는 가죽옷입니다. 하느님께는 불가능이 없습니다. 세상의 시선에 지배받는 노예 생활로 생을 마감할 것인지, 아니면 불가능에 도전하며 세상을 이길 것인지는 우리 선택에 달려있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프란치스코회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길의 길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는 것은 다 실행하고 지켜라. 그러나 그들의 행실은 따라 하지 마라. 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는다.”
오늘 독서와 복음의 가르침을 요약하면 이런 뜻이 되겠습니다.
백성의 지도라는 사람들이 모세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만 모세처럼 주님의 길은 따라가지는 않고 제멋대로 가고, 주님의 법을 지키지 않고 제 좋을 대로 하니 그들의 가르침은 따르되 그들의 길은 따라가지 말아야 한다.
먼저 그들의 길을 따라가지 않음에 대해 보겠습니다.
길.
길이란 무엇입니까?
어디서부터 어디로 가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외 없이 어딘가로 가는 존재들인데, 목적하는 그곳을 가기 위해선 어떤 길을 가야 할지 잘 선택해야 합니다.
그런데 길잡이가 되어야 할 지도자들이 길을 잘못 인도하곤 합니다. 이런 지도자들에 대해 오늘 말라키 예언서의 주님은 이렇게 꾸짖습니다.
“너희는 길에서 벗어나 너희의 법으로 많은 이를 넘어지게 하였다. 너희는 나의 길을 지키지 않고 법을 공평하게 적용하지 않았다.”
주님의 길로 인도해야 할 지도자들이 주님의 길이 아니라 자기의 길 또는 다른 길로 인도해 많은 이를 넘어지게 했다는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지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의 길을 가면 진리의 길을 가는 것이고, 그래서 생명의 길로 가는 것이며 그것은 하느님 나라로 가는 길인데 구약에서는 거짓 예언자들이, 신약에서는 율법 학자와 바리사이들이 주님의 길을 거부하고 자기들의 법과 길로 잘못 인도한다는 것이지요.
다시 말해서 하느님께 인도해야 하는데 자기의 길로 다시 말해서 자기에게로 인도하고, 하느님을 사랑하게 해야 하는데 자기를 사랑하게 하고, 주님 뜻을 따르게 해야 하는데 자기 뜻을 따르게 합니다.
이런 지도자들이 많기에 클라라는 유언에서 프란치스코 때문에 이렇게 감사합니다.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우리에게 길이 되어 주셨고, 그분을 참으로 사랑하고 본받은 이셨던 우리 사부 프란치스코께서 말과 모범으로 이 길을 우리에게 보여주셨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저나 프란치스칸들은 클라라처럼 프란치스코 때문에 감사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감사와 함께 클라라처럼 이 길의 길을 놓치지 말고 꼭 붙잡아야 합니다.
저는 프란치스코를 ‘길의 길’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더 정확히 얘기하면 ‘길로 인도하는 길’이 맞겠습니다.
프란치스코는 큰길로 인도하는 작은길이요. 하느님께로 가는 큰길이신 주님께 인도하는 작은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사실은 이 작은길을 잘 선택해야 합니다.
우리는 언제나 작은길에서부터 출발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생길에서 제일 처음 부모부터 잘 만나야 하고 친구를 잘 만나야 하듯이 이 작은 길들을 잘 선택해야 합니다.
그리고 내 걷는 길이 뒷사람에게 이정표가 될 수 있다는 말이 있듯이, 우리 또한 이웃에게는 큰길로 연결되는 작은 길들이 돼주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프란치스코가 ‘길의 길’이라면 이제부터 우리도 ‘길의 길의 길’이 되도록 해야겠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하느님의 간절하신 뜻은 우리가 섬기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가장 아름다운 실행은 섬기는 사랑의 참된 실행입니다. 섬기면서 알게 되고 깨닫게 되는 진정한 사랑의 나눔입니다. 섬기는 것이 참된 사랑입니다. 섬기는 참된 사랑을 예수님께서 직접 보여주셨습니다. 섬기는 것이 살리는 것입니다.
섬기는 것이 복음의 본질적인 질서입니다. 공동체의 질서는 이와 같이 섬기는 사람들을 통하여 성장하며 일치를 이룹니다. 섬기는 것은 성실함과 충실함과 함께 걸어갑니다. 섬기는 삶이 우리들 삶의 진정한 신앙고백입니다. 섬기는 길이 구원의 길입니다. 섬기는 것이 참된 행복입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섬기는 자리에서 시작됩니다. 이웃을 섬기는 것은 섬겨야 할 하느님과의 만남이며 하느님을 섬기는 것과 같습니다. 자기자신을 다스리는 사람이 섬기는 사람이며 자신의 사명에 충실한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섬김의 잔을 마시는 성체성사가 되셨습니다.
섬김에 허기지고 섬김에 목마른 우리들에게 예수님께서 우리모두를 섬기시기 위해 밥이 되시고 빵이 되십니다. 섬기는 것은 생명의 원리이며 사랑의 놀라운 하느님의 방식입니다. 세상에서 느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사랑은 서로를 끝까지 섬기는 사랑입니다.
섬기는 사랑으로 초대받은 우리를 세상 사람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부릅니다. 하느님의 자녀들은 섬김으로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실행합니다. 우리 앞에 있는 사람이 섬겨야 할 가장 소중한 사람입니다. 하느님을 닮은 가장 충실한 사랑은 섬기는 사랑뿐입니다. 섬기는 존중으로 하느님 나라를 만나는 기쁜 주일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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