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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3/10/18 (수)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3. 10.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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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아름다운가, 산 위에 서서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의 저 발! 평화를 선포하고 기쁜 소식을 전하며 구원을 선포하네.

주 하느님, 복된 루카를 뽑으시어 가난한 사람들을 사랑하시는 주님의 신비를 설교와 기록으로 세상에 알리게 하셨으니 주님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부르는 저희가 언제나 한마음 한뜻이 되고 모든 민족들이 주님의 구원을 보게 하소서.

 

2023년 10월 18일 (수) 성 루카 복음사가 축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랜선으로 초대합니다!

2023년 10월 18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성 루카 복음사가 축일

 

 

오늘 성경구절 이미지

주님께서는 내 곁에 계시면서 나를 굳세게 해 주셨습니다. (티모테오2서 4,17)

 

주님께서는 내 곁에 계시면서 나를 굳세게 해 주셨습니다. (티모테오2서 4,17)

 

성경구절 이미지 다운로드
티모테오2서 4장 17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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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1독서
    (2티모 4,10-17ㄴ)
    루카만 나와 함께 있습니다.

  • 오늘 복음
    (루카 10,1-9)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3년 10월 18일 (수) 평화방송 매일미사 명동성당 매일미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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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복음 (Gospel)
복음 (Gospel)

 

주님이 말씀하신다.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뽑아 세웠으니, 가서 열매를 맺어라. 너희 열매는 길이 남으리라.

 

 

루카복음
10장 1-9절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때에 


주님께서는 다른 제자 일흔두 명을 지명하시어, 몸소 가시려는 모든 고을과 고장으로 당신에 앞서 둘씩 보내시며,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가거라.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 


돈주머니도 여행 보따리도 신발도 지니지 말고, 길에서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마라.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먼저 ‘이 집에 평화를 빕니다.’ 하고 말하여라. 


그 집에 평화를 받을 사람이 있으면 너희의 평화가 그 사람 위에 머무르고,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되돌아올 것이다. 


같은 집에 머무르면서 주는 것을 먹고 마셔라. 일꾼이 품삯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이 집 저 집으로 옮겨 다니지 마라. 


어떤 고을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받아들이면 차려 주는 음식을 먹어라. 


그곳 병자들을 고쳐 주며, ‘하느님의 나라가 여러분에게 가까이 왔습니다.’ 하고 말하여라.”

 

 

매일미사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3년 10월 18일 (수)
CPBC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배수판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

 

📌 성 루카 소개 00:05

📌 미사시작 01:15

📌 강론시작 08:50

 

 

 

팔로티회 매일미사

홍천 팔로티회 매일미사

 

2023년 10월 18일 (수)
팔로티회 홍천
매일미사 (15시)
장화기 바오로 신부

 

📌 미사시작 00:11

📌 강론시작 12:13

 

분당 팔로티회 매일미사

 

2023년 10월 18일 (수)
팔로티회 분당
성체조배 (15시)
매일미사 (16시)
야렉 카미엔스키 신부

 

📌 성체조배 0:02:28

📌 미사시작 1:01:33

📌 강론시작 1:12:05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오늘의 말씀 묵상
매일미사
정진만 안젤로 신부

 

복음을 선포하는 예수님의 사도

 

성 루카 복음사가 축일에 선포되는 복음은 다른 제자 일흔두 명의 선발과 파견, 그들을 위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다루고 있습니다. 루카 복음서 저자는 앞서 9장 1-6절에서 열두 제자의 파견을 다루었는데, 여기에서 되풀이하면서 이 두 이야기는 짝을 이루고 있습니다. 특별히 파견받는 이들을 향한 가르침에서 많은 공통 요소가 발견됩니다.

예수님께 선발된 일흔두 명은 ‘사도’로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사도’를 뜻하는 그리스 말 ‘아포스톨로스’가 직접 사용되지는 않았지만, ‘보내다’ 또는 ‘파견하다’로 옮긴 그리스 말 동사 ‘아포스텔로’는 일흔두 명을 ‘사도’로 볼 수 있는 이유가 됩니다(10,3 참조). 루카 복음 9장 13절에서 사도의 대상이 ‘열둘’에 한정되었다면, 여기에서는 ‘일흔둘’로 확대되었습니다.

예수님에게서 파견된 제자들, 곧 사도들이 예수님의 뒤를 따르는 이들(예를 들면, 군중)과 구별되는 근거는 예수님께서 부여하신 권한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권한’ 또는 ‘권위’를 뜻하는 그리스 말 ‘엑수시아’를 찾아볼 수는 없지만, 루카 복음 10장 19절에서 언급된 예수님의 말씀을 근거로 일흔두 명의 사도에게 권한이 부여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사도들은 예수님께 권한을 받아 그분께서 보여 주신 것처럼 병자를 고쳐 주며 복음을 선포할 것입니다.

오늘 교회가 기념하는 성 루카 복음사가는 예수님의 ‘사도’였습니다. 주님께서는 당신께서 보여 주신 신비를 설교와 기록을 통하여 세상에 알리도록 루카를 선택하셨습니다(본기도 참조). 우리도 예수님의 ‘사도’라는 사실을 잊지 않고, 복음의 기쁜 소식을 선포하며 사도로서 정체성을 확고하게 세워 나갑시다.

 

 

 

오늘의 말씀 묵상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조명연 마태오 신부

 

뒷담화만 하지 않아도 성인이 된다.

 

어느 신부님께서 신자들과 함께 있다가 갑자기 방귀를 ‘뽕’ 꾸고 말았습니다. 신자들 앞에서 소리가 났다는 민망함이 있었지만, 그래도 방귀 뀌지 않는 사람이 없으니 ‘이해해 주겠지’라는 마음으로 웃으면서 “죄송합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어이없는 소문을 들었답니다. ‘우리 신부님께서 신자들과 함께 있는 자리에서 바지에 똥 쌌다.’라는 소문입니다. 
 
사실 소문의 속도는 엄청나게 빠릅니다. 그리고 그 소문은 계속해서 살이 붙어서 사실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하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말’에 특히 신경을 써야 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도 ‘뒷담화만 하지 않아도 성인이 됩니다.’라고 말씀하셨지요. 가장 재미있는 말이 ‘뒷담화’라고 하지만, 재미를 떠나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하느님 마음에 드는 ‘성인’의 길에 가까워질 수 있습니다. 
 
주님의 기쁜 소식인 ‘복음’을 세상에 전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기쁜 소식을 어떻게 전하고 있었을까요? 분명히 엄청나게 빠른 전파 속도를 가지고 있는 ‘말’인데, 우리는 다른 부정적인 말에 대해서는 소문의 속도에 더하고 있지만 정작 주님의 기쁜 소식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요? 과거의 우리 신앙 선조들은 자기 목숨까지 내어놓으면서도 주님의 기쁜 소식을 전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런데 신앙의 자유가 있는 지금을 사는 우리는 어떠했을까요? 
 
예수님께서 다른 제자 일흔두 명을 지명하셔서 모든 고을과 고장으로 둘씩 보내십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주님의 기쁜 소식을 전할 일꾼이 부족합니다. 왜냐하면 이 소식은 우리 구원과 연결되어 있어서 빨리 퍼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소식을 전하는 일꾼으로 살고 있을까요? 아니면 이 소식이 아닌 다른 소식을 전하는 주님의 반대자로 사는 것일까요? 
 
오늘 우리가 축일로 지내는 루카 복음사가는 이 기쁜 소식을 전하기 위해 루카 복음서와 사도행전을 기록합니다. 특히 예수님의 어린 시절을 성모님과 함께 상세하게 묘사함으로써 더 가까이 그리고 생생하게 주님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해주었습니다. 
 
우리도 그러한 삶을 살아야 함을 깨닫게 합니다. 복음을 기쁘게 받아들이고, 용감하게 세상에 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세상에 그리스도의 향기가 넘쳐나게 하는 주님의 훌륭한 일꾼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처음에는 우리가 습관을 만들지만, 그 다음에는 습관이 우리를 만든다.

- 존 드라이든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거절과 실패를 이기는 힘은 어디서 오는가?

 

오늘은 성 루카 복음사가 축일입니다. 당연히 복음도 복음을 전하도록 예수님께서 일흔두 제자를 파견하는 내용입니다.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그 집에 평화를 빈다고 인사하라고 하십니다. 

저도 소공동체 반장님들을 파견합니다. 그런데 그들이 겪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바로 거절당하는 아픔입니다. 문을 열어주지도 않고 전화를 안 받고 심지어는 안 다닌다고 했는데 왜 괴롭히느냐고 소리를 지르기도 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거절당할 때 오는 아픔을 이겨내는 힘입니다. 이 힘의 출처를 알지 못하면 선교를 계속 이어 나갈 수 없습니다. 

영화 ‘라라랜드’에서 남자친구는 여자친구를 위해 오디션 기회를 한 번 더 얻어옵니다. 그러자 여자는 말합니다. 

“또 안 되면 어떡해? 이번에도 거절당하면 난 죽을 거야. 수백 번의 오디션을 봤지만, 아무도 나에게 관심을 주지 않았어. 내가 연기를 해도 그들은 방해하고 비웃었어. 나 말고도 더 예쁘고 실력 있는 애들이 널려있고 아마도 난 그냥 충분하지 않은 거야. 그런 사람들이 있잖아? 무언가 하고 싶어서 매일 꿈을 꾸지만, 결국 헛된 꿈이었단 걸 깨닫는 사람들. 나도 그런 사람 중 한 명인 거야.”

남자는 여자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고 다음 날 데리러 나오겠다고 떠납니다. 여자의 거절당하고 싶지 않은 마음은 남자의 응원하는 마음에 무너집니다. 그러나 이 도전이 언제까지 이어질까요? 바로 그 남자를 사랑할 때까지만입니다. 

누구도 혼자 힘으로는 거절당함의 고통을 계속 이겨낼 수는 없습니다. 그 거절당하는 고통을 상쇄해 줄 사랑하는 대상이 있어야 합니다. 
『거절당하기 연습』이란 책을 쓴 지아 장이 있습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의 거절과 실패로 실의에 빠져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그 두려움을 극복해보기 위해 100일 동안 거절당하는 연습을 해 보기로 합니다. 경비원에게 100달러 빌리기, 햄버거 리필 요구하기, 하루 동안만 취직시켜 달라고 하기, 도넛으로 오륜기 만들어달라고 하기 등을 시도했습니다. 대부분은 거절당하는 게 당연했습니다. 

그런데 만약 이것들을 동영상으로 올리고 공유하지 않았다면 100일 동안 거절당하는 연습을 지속할 수 있었을까요? 그럴 수 없습니다. 이것이 자신의 동영상을 보는 이들을 기쁘게 해 준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지속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빌 포트’는 끈기와 인내로 장애인임에도 지금까지 깨지지 않는 판매실적을 올렸습니다. 그가 다시 일어날 때 기뻐해 준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어머니입니다. 어머니는 그에게 샌드위치 위에다도 끈기와 인내라는 글을 케첩으로 써줄 정도였습니다. 그는 실패하는 고통을 다시 일어설 때 어머니를 기쁘게 한다는 믿음으로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중국의 알리바바의 마윈 회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공부도 못하고 얼굴도 못나서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특별히 그가 존경하는 인물은 포레스트 검프입니다. 비록 영화의 주인공이지만, 불구의 몸으로도 절대로 쓰러지지 않는 그의 모습을 존경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마윈은 넘어져도 다시 일어서며 자신이 포레스트 검프와 비슷해지고 있다는 느낌으로 다시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기쁘고 하고 그 일이 그와 닮게 만든다면 그 기쁨이 다시 일어서게 하는 것입니다. 

성 프란치스코는 가장 큰 행복이 복음을 전하다 거절당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것이 십자가의 그리스도와 가장 닮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이와 닮는 방법이 실패해도 다시 일어서는 모습이라면 그 실패는 성공으로 가는 길이 됩니다. 그리스도를 사랑합시다. 그러면 거절당하고 실패할 때 다시 일어설 기회가 생긴 것에 묘한 기쁨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프란치스코회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지금 평화의 복음선포가 절실하다.

 

여러 번 제가 말씀드린 바이지만 오늘 우리가 들은 루카 복음은 일흔두 제자 파견 얘기이고 열두 사도를 파견한 얘기와 같으면서도 다릅니다. 

파견된다는 면이나 아무것도 가지지 말고 가라는 것은 같지만 일흔두 제자 파견 얘기에는 “가거라”는 명령어와 인사하지 말라는 말과 평화를 선포하라는 말이 더 있습니다. 그 이유는 분명합니다. 이방인을 위한 복음 선포이기 때문입니다. 

동족에게 가는 것보다 더 멀리 가야 하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복음에 대한 거부감이 있는 이방인에게 가야 하기에 단호히 명하시는 걸 겁니다. 

가는 길에 인사하지 말라는 것도 먼 길 가야 하고 이방인에게 가야 하는데 이별 인사하지 말고 한가롭게 동네 사람들과 노닥거리지 말라는 것일 겁니다. 

열두 사도 파견과 비교해서 더 중요한 차이점은 평화를 빌어주라는 것입니다. 이방인에게 평화를 빌어주는 것은 우리가 일본에 가서 평화를 빌어주는 것과 같고, 프란치스코처럼 전쟁 가운데 있는 적국에 가서 평화를 빌어주는 것과 같습니다. 

실제로 프란치스코 시대 그리스도교 국가들은 예루살렘을 탈환하기 위해 십자군을 일으키고 이슬람과 전쟁을 하고 있었는데 프란치스코는 그 와중에 평화를 가지고 술탄을 찾아가 복음을 전하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처럼 이방인에게 복음을 선포하는 것은 방법도 평화로워야 하고 목표도 평화여야 합니다. 우리는 요즘 이러한 복음 선포가 왜 중요한지 절감합니다. 

지금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에 전쟁이 확전 일로에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스라엘은 강경파들이 연정을 펴고 있고, 하마스도 강경파 이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들의 생각에는 평화가 없고 오직 전쟁에서 승리밖에 없습니다. 위기 상황을 조장하고 그러니 자기들을 지지하라고 국민을 압박하며, 군수 사업을 일으키고 군비 경쟁을 합니다. 

그러니 이런 강경파와 군수업자들이 득세하지 못하도록 평화의 복음이 사람들 가운데 전파되어야 하고 이것은 우리나라에서도 그래야 합니다. 

사실 우리는 중동 전쟁을 걱정할 여유가 없습니다. 지금 우리나라가 위험합니다. 

이 정부는 힘들게 체결한 9, 19 군사합의를 깨겠다는 사람을 국방장관으로 임명하고 K-무기 수출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도록 

언론을 통해 여론을 조성하며 9, 19 군사합의의 파기를 반대하는 여론 조사가 높게 나오자 발표하지 않고 조사 자체를 중단합니다. 

이 정부는 북한이 장사정포를 발사하면 그것을 요격하기 위해 이스라엘의 아이언돔과 같은 요격 체계를 갖추면 된다고 하며 

그런 방어 체계 구축에 애쓰는데 물론 그런 노력도 해야겠지만 그 이전에 평화 체계를 구축하는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이지요. 

사실 이스라엘이 자랑하던 아이언돔이 수천 발의 미사일을 동시에 발사한 이번 하마스의 공격에 무력화되지 않았습니까? 

아무튼 지금의 우리에게는 어떤 복음 선포보다도 평화를 평화롭게 전하는 복음 선포가 중요하게 되었으며, 우리는 이 복음을 전하는 또 다른 루카 복음사가이고 일흔두 제자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출렁이는 가을 들판이 추수로 비워져 갑니다. 비움과 채움을 묵상합니다. 오늘 만나는 루카 복음은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사람들 속에서 말씀을 구하고 갈등 안에서 기쁨을 찾습니다. 만남과 떠남이 있고 떠남은 오히려 더 큰 만남으로 이어집니다. 감동 없는 우리 마음을 뜨거운 사랑으로 다시 초대합니다. 

하느님의 사랑이 있기에 우리는 아름답습니다. 사랑을 따라 가다보면 어느새 우리도 사랑이 되어 있습니다. 사랑이 깊을수록 기쁨도 벅찹니다. 하느님께서는 루카 복음사가를 믿듯 우리를 믿어주십니다. 가장 뜨겁고 가장 아름다운 믿음은 하느님의 사람이 되어가는 믿음입니다. 

하느님과 함께 사는 행복을 보여줍니다. 즉석 만남이 아니라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만남이 됩니다. 부자와 라자로가 그렇고 마르타와 마리아가 다시 서로를 받아들이고 큰 아들과 작은 아들이 아버지를 다시 만납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움을 안고 언젠가 돌아올 자식을 기다려주십니다. 돌아온 그 자체로 잔치를 베푸시는 넉넉하신 아버지 하느님을 만납니다. 성 루카 복음사가는 오늘이라는 단어를 통하여 지나가는 헛된 시간이 아니라 가장 소중한 만남의 진가를 오늘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하느님 안에 살고 있는 순수한 기쁨 영원한 사랑을 만납니다. 최선을 다해 하느님 사랑을 전한 성 루카 복음사가께 감사드립니다. 복음의 빛은 우리모두를 기쁨으로 초대합니다. 자연스레 하느님을 생각하며 우리가 누군지를 알게 합니다. 사랑은 사랑의 일꾼을 필요로 합니다. 가장 좋은 하느님 사랑을 만나는 오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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