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당신이 죄악을 헤아리신다면, 주님, 감당할 자 누구이리까? 이스라엘의 하느님, 당신은 용서하는 분이시옵니다.
주님, 주님의 넘치는 은총으로 언제나 저희와 함께하시어 저희가 끊임없이 좋은 일을 하도록 이끌어 주소서.
2023년 10월 20일 (금)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랜선으로 초대합니다!
2023년 10월 20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연중 제28주간 금요일
오늘 성경구절 이미지
바로 그분을 두려워하여라. (루카 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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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카복음 12장 5절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1독서
(로마서 4,1-8)
아브라함이 하느님을 믿으니 하느님께서 그 믿음을 의로움으로 인정해 주셨다. - 오늘 복음
(루카 12,1-7)
하느님께서는 너희의 머리카락까지 다 세어 두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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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저희가 당신께 바라는 그대로 당신 자애를 저희에게 베푸소서.
루카복음
12장 1-7절
하느님께서는 너희의 머리카락까지 다 세어 두셨다.
그때에
1
수많은 군중이 모여들어 서로 밟힐 지경이 되었다. 예수님께서는 먼저 제자들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바리사이들의 누룩 곧 위선을 조심하여라.
2
숨겨진 것은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지기 마련이다.
3
그러므로 너희가 어두운 데에서 한 말을 사람들이 모두 밝은 데에서 들을 것이다. 너희가 골방에서 귀에 대고 속삭인 말은 지붕 위에서 선포될 것이다.
4
나의 벗인 너희에게 말한다. 육신은 죽여도 그 이상 아무것도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5
누구를 두려워해야 할지 너희에게 알려 주겠다. 육신을 죽인 다음 지옥에 던지는 권한을 가지신 분을 두려워하여라. 그렇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바로 그분을 두려워하여라.
6
참새 다섯 마리가 두 닢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그 가운데 한 마리도 하느님께서 잊지 않으신다.
7
더구나 하느님께서는 너희의 머리카락까지 다 세어 두셨다.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는 수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다.”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3년 10월 20일 (금)
CPBC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김현균 야고보 신부
📌 미사시작 00:22
📌 강론시작 06:48
팔로티회 매일미사
홍천 팔로티회 매일미사
2023년 10월 20일 (금)
팔로티회 홍천
매일미사 (15시)
장화기 바오로 신부
📌 미사시작 00:44
📌 강론시작 10:10
오늘의 말씀 묵상
매일미사
정진만 안젤로 신부
우리에게 필요한 지혜
바리사이와 율법 교사를 향한 질책과 불행 선언에 이어서 제자들을 위한 가르침이 이어집니다. 어제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께서 파견하신 이들과 율법 교사의 운명을 비교하시면서 예수님 자신과 당신을 따르는 이들이 받게 될 박해를 예고하셨습니다. 미래에 벌어질 일에 대한 예고는 제자들을 가르쳐야 하는 이유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자신들이 맞게 될 고난의 순간을 준비할 수 있도록 가르침을 주고자 하십니다.
오늘 복음의 시작은 제자들이 경계하여야 할 대상이 누구인지 알려 주고 있습니다. “바리사이들의 누룩 곧 위선을 조심하여라.”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들의 위선을 누룩에 비유하십니다. 누룩은 빵을 만드는 데 반드시 필요한 재료입니다. 그런데 밀가루 반죽이 빵이 되려면 발효라는 일종의 부패 과정을 거쳐야만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누룩을 비유로 들어 바리사이적 위선이 제자 공동체 안에서 부정적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주의를 당부하십니다. 제자들은 율법에 담긴 하느님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리사이들을 경계하여야 합니다.
제자들이 두려워하여야 하는 대상은 하느님이십니다. 제자들은 목숨을 위협하는 박해나 핍박의 상황에서 두려움에 빠질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생명을 주관하시고 심판하실 권한을 가지신 하느님을 두려워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은 두 닢 값어치의 참새 다섯 마리보다 더 귀한 존재이므로 하느님께서 보호하여 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버려서는 안 됩니다.
경계할 대상과 두려워할 대상을 아는 것은 ‘지혜’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지혜’를 하느님께 청합시다.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로서 그 이름이 하늘에 기록되어 있습니다(10,20 참조).
오늘의 말씀 묵상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조명연 마태오 신부
지금 행복하지 않은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행복할 가능성은 없다.
올해 11월 16일이 202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있는 날입니다. 이제 한 달도 남지 않은 시간, 초조하고 불안한 마음을 접고 대신 주님 안에서 평화와 위로의 마음을 갖기를 기도합니다. 수능을 생각하다 보니, 요즘에도 이런 말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학창 시절 때 이런 말을 선생님께 많이 들었습니다.
‘사당오락’ 네 시간을 자면서 공부하면 합격하고, 다섯 시간을 자면서 공부하면 불합격한다는 말입니다. 참, 이런 말도 있었다. ‘한 시간 더 공부하면 마누라(남편) 얼굴이 바뀐다.’, ‘공부 안 하면 거지 된다.’, ‘이 교실에 앉은 애 중 태반은 남의 들러리로 살 게다.’
실제로 많은 학생이 잠을 줄여가면서 또 하고 싶은 것도 꾹 참으면서 열심히 공부합니다. 그런데도 계속해서 “열심히 공부해라.”라는 말을 듣게 되지요. 힘든 시간을 보내고 대학교에 들어갑니다. 이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이제는 취업 공부에 진입하게 됩니다. 취업에 성공한 뒤에도 끝이 아니지요. 이제 직장에 들어가 승진 시험 속에 빠지게 된다고 합니다. 보이지 않는 행복의 실체 안에서 행복과는 더 멀어지는 것만 같다고 말하는 많은 젊은이를 봅니다. 행복은 언제 올까요?
지금 행복하지 않은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행복할 가능성은 없습니다. “행복은 체험이다.”라는 말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행복을 많이 겪어본 사람만이 더 자주, 더 쉽게 행복을 겪게 된다는 것입니다.
미래의 행복을 위해 스펙을 쌓고, 미래의 행복을 위해 종잣돈을 모으고, 미래의 행복을 위해 적금을 붓고, 미래의 행복을 위해 재테크에 뛰어들며, 미래의 행복을 위해 대출을 받아 집을 사고, 미래의 행복을 위해 불합리한 일과 고된 노동을 참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행복을 찾기 위해 지금 전혀 노력하지 않고, 또 지금 행복을 체험하지 못한 사람이 과연 그런 준비를 했다고 미래에 행복할 수 있겠습니까? 막연한 미래가 아닌 확실하고 구체적인 미래를 살펴볼 수 있어야 지금 행복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육신은 죽여도 그 이상 아무것도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고 말씀하십니다. 대신 육신이 죽은 다음 지옥에 던지는 권한을 가지신 분을 두려워하라고 하시지요. 바로 하느님께 희망을 두고, 하느님의 사랑 안에 굳은 믿음을 두고 있는 사람만이 두려움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행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 세상 안에서 두려움을 갖습니다. 그러나 그 두려움의 대상은 하느님보다 결코 클 수 없습니다. 하느님의 전지전능을 뛰어넘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하느님 사랑 안에서 누릴 수 있는 지금의 행복을 만들어 가면서, 하느님과 함께 할 미래를 꿈꾸면서 살아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머리카락 숫자까지도 다 세어 두실 정도로 사랑 그 자체이신 분이십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낙관적인 사람은 고난에서 기회를 보고 비관적인 사람은 기회에서 고난을 본다.
- 윈스턴 처칠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누군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 공포 아니면 축복?
하느님께서 항상 우리를 보고 계신다고 믿는 것이 나에게 공포일까요, 축복일까요? 예수님은 오늘 복음에서 바리사이들의 위선을 조심하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말하는 위선은 거짓말입니다. 자기 속을 그대로 보여줄 수 없는 사람들이 죄인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그것을 모조리 아는 분이 계심을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죄지은 후의 아담을 부르시는 하느님께서 이미 그들이 죄지은 사실을 알고 계심을 믿었더라면 그들은 솔직히 자신들의 잘못을 주님의 자비에 맡겨야만 했을 것이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날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난 네가 지난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1997)는 줄거리는 몰라도 제목은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공포영화입니다. 내용보다 그냥 제목 자체가 공포입니다.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이야기는 4명의 고등학교 친구가 7월 4일과 다가오는 독립기념일을 축하하면서 시작됩니다. 축하 행사를 마치고 구불구불한 해안 도로를 따라 운전하던 중 우연히 보행자를 들이받았습니다. 당황하고 반향을 두려워한 그룹은 시체를 바다에 버리고 다시는 사건에 관해 이야기하지 않기로 약속합니다.
대학에 들어가 공부하던 쥴리는 1년 후 집으로 돌아와 ‘난 네가 지난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라는 소름 끼치는 쪽지를 받습니다. 그리고 복수를 하려는 것처럼 보이는 갈고리를 휘두르는 한 인물이 친구들을 표적으로 삼는 사건이 시작됩니다. 이 과정에서 헬렌과 배리는 갈고리를 휘두르는 신비한 살인자의 손에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합니다.
쥴리는 겁에 질려 자신들이 때린 남자가 물에 빠졌을 때 죽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의심하기 시작합니다. 미스터리를 더 깊이 파헤쳐가면서 쥴리는 그들이 때린 남자의 이름이 데이비드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쥴리는 그날 밤까지 일어난 사건을 종합하려고 노력하면서 다른 누군가가 그 사고에 연루되었을지도 모른다고 의심하기 시작합니다.
절정은 살인자가 데이비드가 아니라 오히려 딸, 수지의 죽음에 대한 복수로 데이비드를 죽인 후 우연히 위 네 명에게 사고를 당하고 수장당할 뻔한 수지의 아버지 벤 월리스였던 것입니다.
그는 자기를 차로 치고도 수장시키려 했던 이들에 대해 복수하려 했던 것입니다. 이 영화의 핵심은 이것입니다.
‘누군가 우리가 한 일을 알고 있다면 솔직해질 수밖에 없다.’
아무도 우리가 한 일을 알지 못하면 우리는 서로 멀어지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 끔찍한 기억이 그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다시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누군가 이 일을 알고 있는 것이 드러난다면 우리는 그 닥쳐올 징벌로부터 피하기 위해 힘을 합쳐야 합니다. 솔직히 의견을 나누고 다른 이들에게 도움을 청하기 위해서라도 이전보다 훨씬 솔직해집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감추인 것은 드러나게 마련이라고 하십니다.
또한 하느님께서 우리 머리카락까지 다 세어놓으셨다고 하십니다. 그러니 거짓말할 필요가 없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만큼 아신다는 말은 사랑한다는 뜻이니 더욱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분께서 우리를 다 아시고 계신다는 믿음은 나를 솔직하게 그분의 자비에 맡기게 만듭니다. 이것은 축복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 성당 사서 헌금하라고 어머니께서 주신 50원으로 오락실에 갈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는 신앙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제가 성당 안 가고 오락실 간 것을 이미 아시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주보를 가져오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주보를 가지고 오락실에 가서 주보를 가져다드렸습니다.
그래도 어머니는 다 알고 계셨습니다. 거짓말하는 것이 제일 싫다고 솔직하여지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헌금은 안 하고 동전을 헌금함에 넣는 척만 하고 그것으로 오락실에 갔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알고 계셨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들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꼼짝없이 성당 주일 학교에 다녀야 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께서 다 아시고 계시다는 사실은 공포가 아니라 축복임을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하느님은 우리를 다 알고 계십니다. 그만큼 사랑하십니다. 그러니 그분 앞에서 거짓이 없도록 합시다. 위선은 우리가 정말 그러한 존재로 알게 만들어서 회개할 기회를 주지 않습니다. 잠시라도 어떠한 존재가 나의 모든 것을 알고 계신다고 믿어봅시다. 그러면 두렵겠지만, 그냥 숨기고 살며 하느님과 이웃과의 단절을 체험하는 것보다는 훨씬 더 나를 솔직함과 회개, 구원의 삶으로 이끌어 줄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프란치스코회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우리는, 나는, 귀한 존재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는 수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에게 너희는 귀하다고 하십니다. 이것은 우리도 귀하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귀하다는 의미는 무엇이고, 어찌 제자들 곧 우리가 귀한지 생각해봅니다.
귀하다는 의미를 생각해보니 대략 세 가지였습니다.
ㅡ 1. 고귀하다.
그러니까 미천하지 않다.
ㅡ 2. 가치 있다.
그러니까 하찮지 않다.
ㅡ 3. 희귀하다.
그러니까 흔하지 않고 희소가치가 있다.
우리가 생각할 때 우리는 하느님 앞에서 참 미천합니다. 프란치스코가 하느님을 지극히 높으신 분이라고 부르듯 하느님은 하늘에 계시고 지극히 높으신 데 비해 우리는 땅에 살고 미천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그래서 프란치스코는 밤새도록 이렇게 기도하기도 했지요.
‘당신은 누구시오며 벌레만도 못한 저는 누구이옵니까?’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느님 앞에서 그렇게 자신을 느끼게 되고 또 그래야 합니다. 그렇지만 하느님은 우리를 그렇게 여기지 않으시고 고귀하게 여기시며, 그래서 하늘에서 이 땅에까지 내려오셔서 눈높이를 맞추는 사랑을 해주십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 되심으로 우리를 당신 신성에 참여케 하십니다. 신적인 사랑을 하면 우리도 이런 사랑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자주 자기를 비하하고 잘났다고 생각하는 다른 사람과 비교하여 열등감도 느끼며 자기를 사랑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자기가 고귀하지 않기에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사랑하지 않기에 고귀한 줄 모르고 비하하고 열등감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사랑하시고 그래서 고귀하게 여기시는 하느님은 또 우리를 무가치하게, 하찮게 여기지 않으십니다.
가치란 값어치의 뜻이기도 하지요. 그러니 무가치란 값어치가 없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참새는 다섯 마리가 두 닢에 팔릴 만큼 값어치가 없지만 사람은 그렇게 값어치 없는 존재가 아니라고 주님 말씀하십니다.
사람은 값을 매겨 사고팔 수 있는 물건이나 참새나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존재라고 하십니다.
세 번째로 하느님께 우리 인간은 흔한 존재가 아닙니다. 아무리 인간이 많아도 한 사람 한 사람은 고유하고, 그러기에 우리는 흔하거나 도매금으로 팔릴 수 없는 존재로 하느님은 우리 하나하나를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목자와 양의 비유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목자는 자기 양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 밖으로 데리고 나간다.”
그리고 오늘 복음에서는 당신 제자들을 당신의 벗이라고 하시며 “나의 벗인 너희에게 말한다.”고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은 우리를 ‘너 인간아’하고 부르시기도 하지만 우리 이름을 하나하나 다 기억하시고 부르시며 당신 사랑의 파트너요 벗으로 말을 건네십니다.
우리는, 나는, 하느님 사랑의 파트너요 대화의 파트너입니다. 그러니 귀한 존재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는 수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다.
황금들판의 가능성이 소중한 수확의 결실로 되돌아옵니다. 두려움을 벗고 소중함을 되찾게 하시는 소중함의 주님이십니다. 두려움 속에서는 결코 우리자신을 찾을 수 없습니다. 소중함과 두려움은 다릅니다. 두려움을 치유하시는 소중함의 주님이십니다.
소중함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기적의 첫걸음입니다. 우리의 소중함을 지켜주시며 소중한 것과 함께하시는 주님을 만납니다. 소중함은 소중함을 알아보고 소중함을 끌어안습니다. 소중함에서 멋지고 맑은 삶이 시작됩니다. 하느님의 계획은 더 귀하고 소중한 마음에서 구체화됩니다.
소중함이 가장 좋은 가능성입니다. 가능성이 우리 존재의 복음입니다. 두려움을 이겨내기 위해 주님께서 주신 소중함이 있습니다. 소중함이 자유로움이며 소중함이 우리를 이끌고 지켜주시는 주님을 향한 믿음입니다. 주님과 우리 사이에는 소중함이 있고 그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영원한 생명이 있습니다.
소중함이 사랑이고 끌어안음이 또한 소중한 관계입니다. 우리 존재를 하느님 안에서 새롭게 만나는 오늘입니다. 가장 큰 용기는 두려움을 이기는 소중한 사랑입니다. 더 소중하고 더 귀한 것은 사랑 안에 사는 우리들의 가치입니다. 더 귀한 날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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