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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3/10/16 (월)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3. 10.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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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당신이 죄악을 헤아리신다면, 주님, 감당할 자 누구이리까? 이스라엘의 하느님, 당신은 용서하는 분이시옵니다.

주님, 주님의 넘치는 은총으로 언제나 저희와 함께하시어 저희가 끊임없이 좋은 일을 하도록 이끌어 주소서.

 

2023년 10월 16일 (월)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랜선으로 초대합니다!

2023년 10월 16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연중 제28주간 월요일

 

 

오늘 성경구절 이미지

여러분도 그들 가운데에서 부르심을 받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로마 1,6)

 

여러분도 그들 가운데에서 부르심을 받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로마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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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1장 6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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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1독서
    (로마서 1,1-7)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사도직의 은총을 받았습니다. 이는 민족들에게 믿음의 순종을 일깨우려는 것입니다.

  • 오늘 복음
    (루카 11,29-32)
    이 세대는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3년 10월 16일 (월) 평화방송 매일미사 명동성당 매일미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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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복음 (Gospel)
복음 (Gospel)

 

오늘 너희는 주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너희 마음을 무디게 하지 마라.

 

 

루카복음
11장 29-32절

 

이 세대는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그때에 

29 
군중이 점점 더 모여들자 예수님께서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이 세대는 악한 세대다.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지만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30 
요나가 니네베 사람들에게 표징이 된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이 세대 사람들에게 그러할 것이다. 

31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이 세대 사람들과 함께 되살아나 이 세대 사람들을 단죄할 것이다. 그 여왕이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려고 땅끝에서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라,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32 
심판 때에 니네베 사람들이 이 세대와 함께 다시 살아나 이 세대를 단죄할 것이다. 그들이 요나의 설교를 듣고 회개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라,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매일미사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3년 10월 16일 (월)
CPBC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김인용 도미니코 신부

 

📌 미사시작 00:22

📌 강론시작 06:24

 

 

 

팔로티회 매일미사

홍천 팔로티회 매일미사

 

2023년 10월 16일 (월)
팔로티회 홍천
매일미사 (15시)
장화기 바오로 신부

 

📌 미사시작 00:32

📌 강론시작 09:07

 

분당 팔로티회 매일미사

 

2023년 10월 16일 (월)
팔로티회 분당
성체조배 (15시)
매일미사 (16시)
김지학 요셉 신부

 

📌 성체조배 0:05:19

📌 미사시작 1:04:13

📌 강론시작 1:10:15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오늘의 말씀 묵상
매일미사
정진만 안젤로 신부

 

요나의 표징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벙어리 마귀를 쫓아내시는 기적을 보고도 하늘에서 내려오는 표징을 요구한 군중에게(11,16 참조) 응답하십니다.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를 쫓아냈다면서 당신을 비난하는 사람들의 문제를 지적하시고(11,17-23 참조), 예수님 자신과 그의 어머니를 칭송한 여인의 생각을 바로잡아 주셨습니다(11,27-28 참조). 군중이 표징을 요구한 이유는 예수님을 시험하려는 것이었습니다.

표징을 요구한 이들을 향한 예수님의 답변은 명료하였습니다. 

“이 세대는 악한 세대다.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지만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요나가 니네베 사람들에게 표징이 된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이 세대 사람들에게 그러할 것이다.” 

여기서 언급된 ‘요나의 표징’은 두 가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로, 요나가 하느님께 구원되어 요나 자신이 니네베 사람들에게 ‘표징’이 되었듯이 예수님께서도 하느님께 구원되어 이 세대의 표징이 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두 번째로는, 요나가 니네베로 가서 회개를 선포한 예언자였듯이 예수님의 회개 선포는 이 세대의 유일한 표징이라는 것입니다. 

니네베 사람들이 요나의 설교를 듣고 회개하여 구원을 받았지만(요나 1―2장 참조), 이 세대가 예수님의 설교를 듣지 않고 회개하지 않으면 마지막 날에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니네베 사람들과 대조됩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과 그분의 가르침에 집중하지 못하고, 그분을 비판하거나 그 밖의 다른 것을 기대하는 이들에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지혜의 임금인 솔로몬이나 예언자인 요나보다 더 크신 분이십니다. 우리가 믿고 바라보아야 하는 분은 오직 예수님 한 분뿐이십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조명연 마태오 신부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사람 다섯 명의 평균 모습이 바로 당신이다.

 

20세기에 가장 전설적인 연설가이자 작가인 짐 론(Jim Rohn)은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사람 다섯 명의 평균 모습이 바로 당신이다.” 
 
인간은 놀라울 정도로 환경에 빨리 적응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래서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간직하면서 지금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신학교에 들어간 뒤, 여러 친구를 사귀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신학교 들어가기 전에는 그렇게 기도 시간을 즐거워하지는 않았음을 인정합니다. 하지만 동료 신학생들과 함께 신학교 생활하면서 어느 순간에 기도 시간이 즐거워졌고,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을 자주 보면서 저 역시 그런 모습을 갖게 되었습니다. 
 
사람은 환경에 빨리 적응하기에 내 옆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가가 중요했습니다. 그리고 자기는 다른 이에게 어떤 사람으로 옆에 있는지도 떠올려 볼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만약 주님을 믿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신앙생활 자체를 멀리하는 사람이 주변에 많다면 어떨까요? 자신도 신앙생활에서 멀리 떠날 확률이 커집니다. 그렇다면 자신의 ‘열심’을 주변 사람에게 보여 준다면 어떨까요? 저의 ‘열심’을 보고서 함께 신앙생활 하는 경우가 늘어납니다. 
 
예수님께서 군중을 향해서 “이 세대는 악한 세대다.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지만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사실 예수님께서 아무런 표징을 보여 주지 않았던 것이 아닙니다. 분명히 기적을 통해 하느님의 표징을 보여 주었지만, 그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계속 표징을 요구하지요. 시선을 사로잡는 표징만을 요구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요나 예언자의 표징을 이야기하시지요. 니네베 사람들이 요나 예언자 말을 믿고서 모두 회개했던 것처럼, 믿음을 갖고 회개하는 것이 가장 큰 표징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방인들도 하느님의 말씀을 굳게 믿고 회개했던 것은 굳게 믿고 회개의 모범을 보여 준 누군가가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들이 모여 모두가 하느님 뜻에 맞게 믿고 회개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 직접 말씀을 듣고, 놀라운 표징도 직접 보았던 사람들은 믿지 않습니다. 그 불신앙 역시 주변 사람에게 전달되어서 모두가 믿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지금 내 곁에는 어떤 사람이 있나요? 또 나는 내 주변 사람에게 어떤 사람으로 서 있습니까? 과연 주님의 뜻을 따르는 데 최선을 다할 수 있는 믿음의 관계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구원의 은총을 얻을 수 있습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나를 알면 알수록 멀리 나아갈 수 있습니다.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 파웅로 코엘료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성체를 바라볼 자격 : 역행자 되기

 

오늘 복음은 믿기 위해 표징만을 요구하는 악한 세대에 대한 질타가 이어집니다. 지금 우리에게 표징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성사’입니다. 성사는 인간을 믿게 하기 위한 하느님의 피 흘리심입니다. 그런데 이 표징을 이해하게 만드는 힘은 ‘말씀’에 있습니다. 이 때문에 성체성사 전에 말씀의 전례가 있는 것입니다. 말씀이 죽으면 성사를 알아볼 수 없게 됩니다. 그러면서도 자꾸 표징만을 요구한다면 이는 악한 세대일 수밖에 없습니다. 

개신교는 세례성사만을 제외하고는 나머지 성사를 포기하였습니다. 그리고 말씀에만 집중합니다. 코로나 이전에 개신교는 주일 예배 참석률이 80%가 넘었습니다. 천주교는 주일 미사 참례율이 20%에 불과했습니다. 지금은 더 낮아졌을 것입니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할까요? 

저는 개신교가 천주교보다 믿기 쉬운 이유는 성사보다 말씀에 집중하기 때문일 것이라 추측합니다. 물론 더 큰 이유는 시스템의 차이에 있습니다. 개신교는 소외된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천주교는 누가 나오는지, 안 나오는지 단체에 들지 않았다면 관심을 받지 못합니다. 소속감이 약하다는 것입니다. 이 시스템적인 문제가 가장 큽니다. 그다음이 말씀보다 성사에 집중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남방 여왕의 예를 드십니다.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이 세대 사람들과 함께 되살아나 이 세대 사람들을 단죄할 것이다. 그 여왕이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려고 땅끝에서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라,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남방 여왕은 에티오피아 여왕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그 먼 곳에서 솔로몬의 지혜에 대한 소식을 듣고 그 지혜를 배우러 예루살렘까지 올라온 것입니다. 만약 지혜를 배우려는 노력이 부족하면 ‘회개’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회개한 사람만이 눈이 열려 성사에서 표징을 알아볼 수 있게 됩니다. 회개도 하지 않으면서 표징만 찾는 이들은 악한 이들입니다. 그래서 또 이런 예도 말씀하십니다. 

“심판 때에 니네베 사람들이 이 세대와 함께 다시 살아나 이 세대를 단죄할 것이다. 그들이 요나의 설교를 듣고 회개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라,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말씀 설교를 통해 얻는 지혜는 회개에 이르게 합니다. 회개 먼저 하고 성사로 나아와야 합니다. 말씀이 죽으면 성체도 죽습니다. 그래서 성체를 왜 영하지 않으면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없는지 이해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미사 때 사실 성사보다 말씀에 집중해야 합니다. 그래야 성사가 보이고 냉담하거나 신자들이 성체성사가 없는 타 종교로 가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혜를 얻어 회개했다는 증거는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요? 바로 자기 자신을 미워한다는 것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자기를 미워하여 십자가에 못 박고 싶지 않으면 아직 회개한 것이 아닙니다. 세상의 모든 좋은 책이나 영화, 연설 등은 다 이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2022년에 가장 많이 팔린 책이 있다면 자청(일명 ‘자수성가한 청년’)의 『역행자』입니다. 젊은 청년 자청은 엄청난 인플루언서입니다. 그가 유튜브에 책 소개만 하면 알 팔리던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절판된 책이 다시 서점에 꽂힙니다. 

학교에서는 맨날 꼴찌만 하고 게임만 즐기며 집에만 틀어박혀 있던 청년이 어떻게 10년 월 몇억씩 벌어들이는 영향력 있는 사람으로 바뀌었을까요? 사람을 알기 위해 책을 읽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체험을 이 책에 7단계로 썼습니다. 이 책의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1단계: 

자의식 해체 – 내 안에 할 수 없다고 말하는 동물적 생존본능인 자의식을 믿지 않게 됨; 이는 우리로서 ‘회개’에 해당하고 이를 위해 이미 영향력 있는 사람들의 지혜를 배우기 위해 책을 읽는 과정이 필수적임.


2단계: 

정체성 만들기 –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믿음; 이는 ‘세례’와 같음.


3단계: 

유전자 오작동 극복 – 정체성을 방해하는 자아의 방해와 싸워야 함; 이는 ‘견진’과 같음.
 

4단계: 

뇌 자동화 – 자기 자신과 싸우는 견진 과정의 연속으로 예를 들면 “2년간 2시간씩 읽고 글쓰기 하라” 등의 규칙을 세움; 이는 영혼의 성 2궁방에 해당하듯, 규칙적인 기도 생활을 정하는 것과 같음. 

5단계: 

역행자의 지식 – 세상에 좋은 영향을 미치기 위해 주는 사람이 되라는 것. 이를 위해 타이탄의 도구들을 모으라 조언함; 이는 견진에서 자기를 이기는 과정을 위해 ‘묵상기도’를 하라는 것과 같음. 


6단계: 

경제적 자유를 얻는 구체적 루트 – 자기와 싸워 고생하는 이유는 이웃을 행복하게 해 주기 위함. 의미 없는 싸움은 의미 없음; 자기와의 싸움이 결국 이웃사랑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가르침과 같음.


7단계: 

역행자의 쳇바퀴 – 자기를 극복하고 실력을 키워 이웃에게 좋은 영향력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이 과정을 끊임없이 반복해야 한다는 것; 우리로서는 ‘회개-세례-견진-성체’의 과정을 계속 되풀이해야 한다는 것과 같음. 


세상이 말하는 대부분의 지혜가 이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결국 이웃사랑으로 이어질 수 있기 위해 성사를 알아볼 수 있는 표징을 얻으려면 자의식, 곧 자아를 해체해야만 하는 이유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기를 미워할 줄 알게 되었다면 이미 회개를 한 것이고 그만이 표징을 볼 줄 아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픈 한 발’이란 삽화가 있습니다. 엄마 늑대가 수십 발의 화살을 맞고 피를 흘리며 한 발을 맞고 쓰러져 있는 새끼 늑대를 슬픈 눈으로 바라보는 그림입니다. 만약 새끼 늑대가 자기 아픈 것만을 생각한다면 자기를 보호해주기 위해 맞은 엄마의 수십 발의 화살의 아픔은 느낄 수 없을 것입니다. 

자기를 버리지 않으면 나를 위해 흘린 피의 의미, 곧 표징을 알아볼 수 없습니다. 그 표징을 알아볼 수 없다면 나도 엄마와 같은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이 되지 못합니다. 

자기를 미워하고 잊고 버리는 것으로부터 표징을 알아볼 수 있는 눈을 얻습니다. 이 과정을 거치지도 않고 표징만 요구하니 악하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성체를 이해하기 위해 말씀이 지혜로 충만해져야 성체에서 떠나지 않는 신자들이 더 많이 탄생하게 되고 그러면 냉담하는 신자가 줄어들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프란치스코회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다 주셨는데 더 내어놓으라는 악

 

“이 세대는 악한 세대다.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지만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주님께서는 당신 세대가 악하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그 세대만 악한 것이 아님을 우리는 압니다. 그 세대가 악하다면 우리 세대도 분명 악할 겁니다. 

그런데 악하다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이웃에게 악한 짓을 하는 것입니까? 그런 면에서도 악한 것 분명하지만 오늘 주님 말씀의 맥락은 다릅니다. 

하늘을 향해 악한 것입니다. 하늘의 표징은 보지 못하고 하늘에게 표징을 요구하는 악입니다. 비유하자면 형제에 대한 패악질보다 더한 부모에 대한 패악질입니다. 

낳아 주신 부모에게 당신 누군지 모른다고 하는 패악질이요, 키워주신 부모에게 해 준 것이 무엇이냐고 하는 패악질이요, 다 주었는데 더 내놓으라고 하는 패악질이고, 다 보여주었는데 더 보여달라고 하는 패악질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느님께 하는 패악질도 이것을 똑 닮았습니다. 

이런 우리에게 하느님께서 보여주실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실 것은 또 무엇이겠습니까? 더 보여주실 것이 이젠 더 없는데 뭘 더 보여주시겠습니까? 

하늘의 표징을 요구하는 우리에게 회개를 요구하실 것이고, 굳이 보여주신다면 회개의 기적을 당신이 보여주실 겁니다. 

요나가 고래뱃속에서 삼 주야를 있었던 것처럼 당신도 죽었다가 삼일만에 다시 살아나시는 회개의 기적을. 

아무튼, 다 주셨는데 더 내놓으라고 패악질하는 나는 아닌지 돌아보는 오늘 우리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보라,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지나가는 풍경에 마음 빼앗기지 않습니다. 모든 표징의 시작은 우리자신의 절박한 회개에서 비롯됩니다. 이와 같이 참된 회개는 모든 장벽을 허물어 버리는 기쁜 소식이 됩니다. 참된 회개는 본연의 자리를 지키는 힘이 있습니다. 흔들리는 마음에 필요한 것은 예수님이며 예수님을 만나는 회개입니다. 

회개할 줄 아는 사람이 복음을 실천하는 사람입니다. 복음을 실천하는 사람은 결코 요나보다 더 큰 이를 결코 외면하지 않습니다. 회개는 표징을 낳고 표징은 겸손을 낳고 겸손은 행복을 낳습니다. 행복은 여기에서 희망을 갖는 것이며 회개를 믿는 것입니다. 요나보다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기에 인생은 살 만 합니다. 

오늘은 더욱 아름다운 날입니다. 회개는 삶을 새롭게 창조하는 기적을 만듭니다. 악습을 없애고 선한 일을 실천하는 것이 이미 영원한 생명 속에 살고 있는 우리들의 올바른 삶의 자세입니다. 예수님께서 실천으로 보여주신 아름다우신 삶이 우리 인생의 참된 깨우침이 됩니다. 따뜻한 구원의 시작은 회개이며 한없이 영원한 사랑의 선물은 우리자신의 따뜻한 회개입니다. 회개의 근원이신 예수님께 돌아가는 새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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