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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3/08/20 (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3. 8.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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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소서, 저희 방패이신 하느님. 그리스도의 얼굴을 굽어보소서. 당신 뜨락에서 지내는 하루가 다른 천 날보다 더 좋사옵니다.

하느님,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을 위하여 보이지 않는 보화를 마련하셨으니 저희에게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일으키시어 언제나 어디서나 하느님을 오롯이 사랑하여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참행복을 누리게 하소서.

 

2023년 8월 20일 (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랜선으로 초대합니다!

2023년 8월 20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연중 제20주일

 

 

시편 성경 말씀 카드

당신 뜨락에서 지내는 하루가 다른 천 날보다 더 좋사옵니다. (시편 84,11)

 

당신 뜨락에서 지내는 하루가 다른 천 날보다 더 좋사옵니다. (시편 84,11) 시편 성경 말씀 카드 이미지 다운로드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1독서
    (이사야서 .56,1.6-7)
    나는 이방인들을 나의 거룩한 산으로 인도하리라.

  • 제2독서
    (로마서 11,13-15.29-32)
    이스라엘에 대한 하느님의 은사와 소명은 철회될 수 없습니다.

  • 오늘 복음
    (마태오 15,21-28)
    아, 여인아!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3년 8월 20일 (일) 평화방송 매일미사 명동성당 매일미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온라인 매일 미사 바로가기

 

오늘의 말씀 묵상 바로가기

 

 

매일미사 복음 (Gospel)
복음 (Gospel)

 

예수님은 하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고 백성 가운데 병자들을 모두 고쳐 주셨네.

 

 

복음
마태오 15,21-28 장 절

 

아, 여인아!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

 

그때에 예수님께서 

21 
티로와 시돈 지방으로 물러가셨다. 

22 
그런데 그 고장에서 어떤 가나안 부인이 나와, “다윗의 자손이신 주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제 딸이 호되게 마귀가 들렸습니다.” 하고 소리 질렀다. 

23 
예수님께서는 한마디도 대답하지 않으셨다. 제자들이 다가와 말하였다. “저 여자를 돌려보내십시오. 우리 뒤에서 소리 지르고 있습니다.” 

24 
그제야 예수님께서 “나는 오직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파견되었을 뿐이다.” 하고 대답하셨다. 

25 
그러나 그 여자는 예수님께 와 엎드려 절하며, “주님, 저를 도와주십시오.” 하고 청하였다. 

26 
예수님께서는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좋지 않다.” 하고 말씀하셨다. 

27 
그러자 그 여자가 “주님, 그렇습니다. 그러나 강아지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28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아, 여인아!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 네가 바라는 대로 될 것이다.” 바로 그 시간에 그 여자의 딸이 나았다.

 

 

매일미사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3년 8월 20일 (일)
CPBC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박종수 사도요한 신부

 

📌 흑석동 성당 소개 00:24

📌 미사시작 00:47

📌 강론시작 14:34

 

 

 

명동성당 매일미사

 

 

2023년 8월 20일 (일)
서울 명동대성당
매일미사 (오전 7시)
진슬기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

 

📌 미사시작 08:56

📌 강론시작 20:13

 

 

 

팔로티회 매일미사

홍천 팔로티회 매일미사

 

2023년 8월 20일 (일)
팔로티회 홍천
매일미사 (15시)
안동억 프란치스코 신부

 

📌 미사시작 00:22

📌 강론시작 09:07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오늘의 말씀 묵상
매일미사
정용진 요셉 신부

 

저희에게 믿음을 주십시오. 저희가 당신의 길을 찾도록 도와주십시오!

 

오늘 복음에서 가나안 여인은 우리에게 놀라운 믿음의 본보기를 보여 줍니다. 여인은 예수님께 도움을 청할 자격이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강한 믿음으로 자신의 딸을 살려 주십사고 끊임없이 청하여 마침내 구원을 얻습니다. 

옛날 이스라엘 백성은 주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흔들렸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들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땅을 정찰하러 갔던 사람들 가운데 대다수가 공포와 절망에 휩싸여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그 땅에 사는 백성은 힘세고 성읍들은 거창한 성채로 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우리보다 강합니다”(민수 13,27-32 참조).

그들에게는 두 가지 가능성이 있습니다. 주님의 약속을 믿고 약속의 땅으로 나아가는 일과, 현실적인 어려움에 낙담하여 용기를 잃고 주저앉는 일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의 불신앙을 보시고 말씀하십니다. 

“나를 업신여긴 자들은 모두 그 땅을 보지 못할 것이다”(민수 14,23). 

우리는 불신이 만연한 세상에 살면서 사람에 대한 불신, 하느님에 대한 불신이 더욱 커져 가는 것 같습니다. 많은 것이 변하는 세상입니다. 우리 자신도 변합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은총에 힘입어 우리는 우리 인생의 의미를 마지막까지 이룰 수 있다고 믿어야 합니다. 미약한 자신의 힘과 능력만을 생각하고 두려워하며 용기를 내지 못하는 대신 주님을 신뢰하며 주님의 은총에 기대어 살려고 하여야 합니다.

복음서의 가나안 여인처럼 우리는 모두 우리의 부족한 믿음을 성장시키도록 부름받은 사람들입니다. 마음을 열고 하느님의 선물을 받아들이며 살도록 초대받은 이들입니다. 가나안 여인처럼 예수님께 “저희에게 믿음을 주십시오. 저희가 당신의 길을 찾도록 도와주십시오!” 하고 애타게 청합시다.

 

 

 

오늘의 말씀 묵상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조명연 마태오 신부

 

확증 편향

 

인간은 보고 싶은 것만 봅니다. 정보를 선택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자기 생각이나 신념을 확인하려는 것입니다. 이를 ‘확증 편향’이라고 하는데, 자기 생각이나 신념과 일치하는 정보만 받아들이려는 심리를 말합니다. 이런 심리를 유튜브 같은 동영상 공유 플랫폼에서 이용합니다. 그래서 본인이 시청했던 콘텐츠와 유사한 내용의 영상을 자동으로 추천 콘텐츠로 뜨게 합니다. 이렇게 보다 보면 다른 사람 모두 아니 세상 사람 모두가 자기 생각과 신념에 일치하는 것처럼 보이게 됩니다. 
 
이렇게 보고 싶은 것만 보려 한다면, 보기 싫은 것은 당연히 보기 싫어집니다. 이 역시 확증 편향 심리에 따라, 보기 싫은 것을 봐도 쉽게 잊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인간은 선택적으로 기억하고, 선택적으로 망각합니다. 따라서 이런 불완전한 인간의 말과 행동을 무조건 맞다고 할 수 있을까요? 기억이 계속해서 왜곡되고 조작되고 있는데 말이지요. 
 
저 역시 그런 경험이 있습니다. 친한 초등학교 친구가 어렸을 때 우리 집에서 놀았던 일을 이야기해줍니다. 문제는 그 사실을 제가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친구의 설명이 너무 자세합니다. 맞습니다. 실제로 있었겠지만, 제가 단지 기억하지 못할 뿐이었습니다. 
 
왜곡되고 조작될 수 있는 기억을 상대에게 강요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이 겸손의 삶이고 지혜롭게 사는 비결입니다. 그래야 모든 사람과 함께할 수 있으며, 그들과 함께하는 주님과도 일치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방인 지방으로 가십니다. 그곳에서 가나안 부인이 예수님께 자기 딸이 호되게 마귀가 들렸다면서 도움을 청합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이 여인이 외치는 소리를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예수님께 “저 여자를 돌려보내십시오. 우리 뒤에서 소리 지르고 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이에 예수님도 “나는 오직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파견되었을 뿐이다.”라고 하면서 가나안 부인의 청을 거절하는 것처럼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계속된 청에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좋지 않다.”라는 모욕적인 말씀까지 하시지요. 
 
이런 모욕에 화를 내고 집으로 돌아갔을까요? 아니었습니다. “강아지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습니다.”라고 말하면서 겸손과 지혜를 보여줍니다. 상대방의 모욕으로 틀렸다면서 거부하고 포기하며 화를 내는 것이 아닌, 인정과 지지를 통해 굳은 믿음을 보여준 것입니다. 이 믿음에 주님께서는 “아, 여인아!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 네가 바라는 대로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보고 싶은 것 이상의 것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자기 뜻대로 대답하지 않았다고 해서 포기하고 화내는 것이 아닌, 굳은 믿음을 통해 함께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지금 우리 모두에게 이를 원하십니다. 그래야 주님과 진정으로 함께하며 주님 안에서 커다란 사랑과 은총을 받게 됩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삶의 목적은 믿고, 소망하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 인디라 간디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내가 칼자루를 쥐고 기도하지는 않는가?

 

오늘 복음은 마귀 들린 딸을 고치고 싶은 가나안 여인의 믿음을 보여줍니다. 믿음은 하느님의 자비를 신뢰하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느님의 자비를 믿지 않고 나무 뒤로 숨었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자기 자신을 믿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믿음이란 자기 자신에 대한 신뢰를 버리고 그 신뢰를 하느님께 돌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녀가 자존심도 버렸는지 시험하기 위해 자녀에게 줄 빵을 개에게 줄 수 없다고 하십니다. 여인은 강아지도 주인 밥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는다며 자비를 간청하고 이에 예수님은 그녀의 믿음을 칭찬하시고 그녀가 원하는 청을 들어주십니다. 
 
어쩌면 우리는 무언가 청하면서 칼자루는 내가 쥐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는 자녀가 아니라 강도가 되는 행위입니다. 역사적으로 사도세자는 영조를 죽이고 왕위를 차지하고픈 마음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역모죄로 뒤주에서 죽임을 당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신하들도 아무 이유 없이 100여 명이나 죽이는 미쳐버린 아들을 살려두거나 왕위를 내어줄 수는 없는 일이었습니다. 

영화 ‘역린’(2014)은 아버지 사도세자가 어떤 죽임을 당해야 했는지 똑똑히 지켜본 정조가 어떻게 자신의 왕위를 굳혀나가는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정조의 편은 거의 없었습니다. 이제 갓 왕이 된 정조는 할아버지 영조가 환갑이 넘어 결혼한 젊은 할머니 정순왕후와 온 나라 군대의 80%를 쥐고 있는 구선복 장군에게 죽을 날만 기다리는 신세였습니다. 구선복 장군은 사도세자가 뒤주에서 죽을 때 사도세자에게 얼굴에 침을 뱉고 밖에서 음식을 쩝쩝거리며 정조의 아버지를 놀렸던 인물입니다. 그리고 정순왕후와 노론의 반란 세력들은 어떤 방식으로 정조를 죽일 것인지 그 방법만 논의하면 되었습니다. 

정조 이산은 아버지 사도세자와는 다르게 칼자루를 모든 이들에게 쥐여주는 것을 선택하였습니다. 영화에서는 자신을 시해하려고 어렸을 때 내시로 들어온 살수 상책이 나옵니다. 정조는 상책에게도 자기 목을 내어줍니다. 자신을 죽이려고 한 그를 풀어줍니다. 결국 상책은 정조를 대신하여 죽습니다. 누구도 자신을 그렇게 믿어주지 않았는데 임금만이 자신을 믿어주었기 때문입니다. 선비는 자신을 알아주는 이를 위해 목숨을 바친다는 말이 있습니다. 

정조가 설득해야 할 가장 큰 인물은 구선복 장군이었습니다. 구선복 장군은 자기 아버지를 능멸한 철천지원수였습니다. 그는 정순왕후의 명을 받고 나를 전복시키기 위해 군대를 이동시키고 있었습니다. 정조는 구선복 장군이 아직 진군 중일 때 그들 안으로 들어가 많은 군사가 보는 앞에서 자신의 칼을 구 장군에게 던집니다. 모든 군인 앞에서 임금이 장군에게 칼을 던지며 목을 치라고 할 때 왕은 자신의 모든 자존심을 내려놓은 것입니다. 정조는 말합니다. 

“임금의 보검이다. 이 칼로 나를 베겠나, 아니면 나의 칼이 될 텐가?”

구선복은 부하들이 많이 보는 가운데 자신을 무력화한 임금을 칼로 칠 수는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일단은 임금 편에 서기로 합니다. 설득의 전문가인, 다카시마 유키히로는 “설득은 20%의 기술과 80%의 인간적 매력으로 승부하는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설득은 상대로부터 은총을 얻어내는 일입니다. 자칫 칼자루를 내가 쥐고 설득하려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상대를 신뢰하지 않는 것이고 강도에게 순순히 은총을 내어줄 사람은 없습니다. 믿을 수 없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오타니 쇼헤이는 일본 야구 선수로서 투수와 타자를 겸하며 메이저리그에서 매년 역사를 갱신하는 인물입니다. 그에겐 철칙이 있습니다. 떨어진 담배꽁초나 쓰레기를 남이 버린 운이라고 생각하고 줍는 것입니다. 그리고 팬들에게 사랑받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고 여겨 어린이들에게도 친절하게 다 사인을 해 줍니다. 하늘의 운을 믿는 사람으로서 하늘을 신뢰한다는 표현이 바로 쓰레기를 줍는 일입니다. 하늘이 이렇게 무장해제 한 사람에게 축복을 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를 봉헌하지 않으며 칼자루를 자신들이 쥐기를 원했습니다. 하느님은 그런 사람에게 이용당하지 않습니다. 오늘 복음의 가나안 여인이나 가진 재산을 다 봉헌하며 자신의 안위를 모조로 주님께 맡기는 가난한 과부의 헌금처럼 우리 신뢰를 나 자신이 아닌 주님께 돌릴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모든 것을 얻게 될 것입니다. 성모님은 하느님께 모든 것을 얻어내셨습니다. 하느님의 아드님을 모시게 된 것입니다. 은총의 사람이 되기 위해 이러한 겸손함이 곧 믿음이고 그 믿음만이 은총의 그릇이 됨을 우리는 배워야 합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프란치스코회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우리는 하느님의 초대장들

 

오늘 저의 나눔은 어쩌면 오늘 주제와 조금 동떨어진 것일 수도 있습니다만 사랑의 등급이랄까, 성숙한 사랑과 미성숙한 사랑의 차이랄까, 이런 것들과 관련한 얘기를 나누는 것에서부터 오늘 나눔을 시작할까 합니다. 

성숙한 사람, 행복한 사람은 성숙한 사랑을 하는 사람이고, 미성숙한 사람, 불행한 사람은 미성숙한 사랑을 하는 사람이라고 단정적으로 얘기해도 결코 지나친 말이 아닐 것입니다. 

제일 미성숙한 사람, 제일 불행한 사람은 자신도 사랑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했지만 실은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다음으로 미성숙하고 불행한 사람은 자신만 사랑하는 사람이고, 그다음은 자기 가족만 사랑하는 사람이고, 그다음은 자기 민족만 사랑하는 사람이고, 성숙하고 행복한 사람은 모든 인간을 차별 없이 사랑하는 사람이고, 더 성숙하고 더 행복한 사람은 모든 피조물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사랑에는 순서가 있습니다. 자기부터 사랑해야 하고, 자기부터 사랑하는 것이 순서로 맞습니다. 자기만 사랑하는 사람은 가족 사랑도 이웃 사랑도 못하지만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이라야 가족과 이웃을 사랑할 수 있고, 뒤집어 얘기하면 자기를 사랑치 않는 사람은 가족과 이웃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왜냐면 자기를 사랑할 때 사랑의 토대가 놓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이 바로 하느님 사랑 체험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하고 계속 느끼는 사람이라야 자기를 진정 사랑할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어렸을 때 부모 특히 엄마의 사랑을 충분히 받은 사람이 자기를 사랑하고 이웃도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엄마의 사랑을 제때 받지 못한 사람에게 애정결핍이란 것이 있고, 애정결핍이 있을 때 자기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지 못하고 이웃도 사랑하지 못하며, 반대로 엄마의 사랑으로 충만하여 애정결핍이 없을 때 자존감과 함께 진정한 자기애가 가능하게 되고 이웃 사랑도 가능하게 되지요. 

그런데 엄마의 사랑보다도 더 자존감과 자기 긍정과 자기 사랑의 근본이 되는 것이 바로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이것은 하느님 사랑 체험이 근본적으로 없을 때 우리는 자기가 버림받은 존재, 없어도 되는 존재, 잉여 인간이라는 자기 비하감이 드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아무튼, 우리가 성숙하고 행복한 사람이라면 자기 사랑에서부터 가족 사랑과 이웃 사랑과 인류 사랑으로 사랑이 점차 확장되기 마련인데 자기 사랑의 근본이요 이 모든 사랑의 근본이 바로 하느님 사랑입니다. 

그런데 하느님의 사랑은 모든 민족을 다 당신 사랑 안으로 초대하는 사랑인데 모든 민족을 당신 사랑 안으로 초대하기 위한 도구로, 초대장으로 먼저 뽑으신 족속이 이스라엘 족속이라는 것이 오늘 가르침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이스라엘 족속이 바로 우리이고 나입니다. 우리가 먼저 하느님의 사랑을 받아 하느님 자녀가 된 것은 다른 사람을 그리고 모든 민족을 하느님 사랑 안으로 초대하라는 뜻이지요. 

그렇습니다. 우리는 먼저 초대장을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이사야서 말씀처럼 하느님의 집 곧 우리 교회가 “모든 민족들을 위한 기도의 집”으로 불릴 수 있도록 가서, 모든 민족을 초대하는 초대장들이 되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아, 여인아!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 네가 바라는 대로 될 것이다.

 

무엇 하나 새롭지 않은 일상이란 없습니다. 믿음은 일상을 비추며 일상은 믿음이라는 식탁을 더 환하게 드러냅니다. 믿음과 일상은 서로 다투지 않습니다. 믿음은 우리의 일상을 보살핍니다. 보살핌이 바로 믿음입니다. 적대적인 태도로는 믿음과 일상은 함께 갈 수 없습니다. 믿음의 일상이 그대로 모여 주님을 향하는 큰믿음이 됩니다. 

믿음은 낮추는 겸손으로 무르익어 갑니다. 때론 믿음도 아픈 것입니다. 아픈 관계처럼 우리의 울음을 주님 앞에 쏟아냅니다. 믿음이 우리의 관계를 우리의 일상을 지켜내고 있음을 깨닫습니다. 믿음 없는 일상 일상 없는 믿음은 있을 수 없습니다. 넘어졌다 일어나기를 반복하는 믿음입니다. 함께 서로 단단해지는 우리의 믿음과 일상입니다. 

아파하는 이들을 위해 기도드립니다. 믿음이 있기에 해방이 있고 구원이 있습니다. 믿음이신 주님 안에서 믿음으로 다시 살아가는 믿음의 소중한 일상입니다. 우리 일상을 새롭게 보게 하시는 주님을 찬미합니다. 주님께서 바라는 대로 도와주십니다. 믿음의 관계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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