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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3/08/21 (월)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3. 8.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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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손수 그를 대사제로 뽑으시고, 당신의 곳간을 여시어 온갖 복을 베푸셨네.

하느님, 복된 비오 교황이 그리스도 안에서 가톨릭 신앙을 지키고 모든 것을 새롭게 하도록 천상 지혜와 사도의 용기를 주셨으니 저희에게도 자비를 베푸시어 저희가 그의 가르침과 모범을 따르고 영원한 생명의 상급을 받게 하소서.

 

2023년 8월 21일 (월) 성 비오 10세 교황 기념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랜선으로 초대합니다!

2023년 8월 21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성 비오 10세 교황 기념일

 

 

마태오복음 성경 말씀 카드

제가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무슨 선한 일을 해야 합니까? (마태 19,16)

 

제가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무슨 선한 일을 해야 합니까? (마태 19,16) 마태복음 성경 말씀 카드 이미지 다운로드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1독서
    (판관기 2,11-19)
    주님께서 판관들을 세우셨으나 이스라엘 자손들은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 오늘 복음
    (마태오 19,16-22)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너의 재산을 팔아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3년 8월 21일 (월) 평화방송 매일미사 명동성당 매일미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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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묵상 바로가기

 

 

매일미사 복음 (Gospel)
복음 (Gospel)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복음
마태오 19장 16-22절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너의 재산을 팔아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때에 

16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다가와, “스승님, 제가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무슨 선한 일을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17 
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나에게 선한 일을 묻느냐? 선하신 분은 한 분뿐이시다.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켜라.” 

18 
그가 “어떤 것들입니까?” 하고 또 묻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살인해서는 안 된다. 간음해서는 안 된다. 도둑질해서는 안 된다. 거짓 증언을 해서는 안 된다. 

19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여라.’ 그리고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20 
그 젊은이가 “그런 것들은 제가 다 지켜 왔습니다. 아직도 무엇이 부족합니까?” 하고 다시 묻자, 

21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가서 너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22 
그러나 그 젊은이는 이 말씀을 듣고 슬퍼하며 떠나갔다. 그가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매일미사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3년 8월 21일 (월)
CPBC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윤상현 비오 신부

 

📌 성 비오 10세 교황 소개 00:05

📌 미사시작 01:23

📌 강론시작 09:31

 

 

 

명동성당 매일미사

 

 

2023년 8월 21일 (월)
서울 명동대성당
매일미사 (오전 7시)
조학문 바오로 신부

 

📌 미사시작 08:23

📌 강론시작 17:24

 

 

 

팔로티회 매일미사

홍천 팔로티회 매일미사

 

2023년 8월 21일 (월)
팔로티회 홍천
매일미사 (15시)
안동억 프란치스코 신부

 

📌 미사시작 00:21

📌 강론시작 09:19

 

분당 팔로티회 매일미사

 

2023년 8월 21일 (월)
팔로티회 분당
성체조배 (15시)
매일미사 (16시)
김지학 요셉 신부

 

📌 성체조배 0:01:57

📌 미사시작 1:01:42

📌 강론시작 1:09:39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오늘의 말씀 묵상
매일미사
정용진 요셉 신부

 

예수님의 말씀 앞에서 우리의 마음가짐은 어떠합니까?

 

오늘 복음은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다가와 영원한 생명을 얻는 비결을 묻는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자신의 힘만으로는 채울 수 없는 것이 있음을 아는 사람이 주님께 가까이 옵니다. 오늘 복음은 가진 것이 많지만 자기 생명이 영원하지 않음을 알고 이를 해결하고 싶은 어떤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하느님께 다가가 무엇을 청합니까? 오늘 복음의 어떤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청합니다. 올바른 이스라엘 사람은, 다시 말하여 올바른 신앙인은 필요한 온갖 것을 하느님께 선물로 받는다는 것을 압니다. “땅”(시편 135[134],12)과 ‘율법’(119[118],111 참조), ‘축복’과 ‘약속’(히브 6, 14-15 참조), 그리고 ‘하느님 나라’(마태 25,34 참조)를 받은 사람입니다. 

무엇보다도 그와 우리는 하느님께 “생명”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 어느 것도 우리의 착한 행실의 대가가 아닙니다. 모든 것이 그분의 선물입니다. 그가 계명을 다 지켜 왔다고 하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너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오늘 복음의 어떤 사람은 이름이 없습니다. 이것은 그 “어떤 사람”이 바로 ‘우리 모두’라는 것을 표현하고자 복음사가가 고른 말입니다. 이상적인 신자는 하느님께서 주신 좋은 것을 형제들과 함께 나누는 사람입니다. 

복음에서 부자 청년은 슬퍼하며 예수님을 떠나갔습니다. 예수님의 현존과 그분의 말씀이 효과를 내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자신에게 안락하고 안전한 삶을 보장하여 주는 재물을 포기할 수 없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부를 선택하는 대신 슬퍼하며 떠나간 사람, 그는 앞으로 더 슬프고 힘들 것입니다. 진정 우리를 부요하게 하시려는 예수님의 말씀 앞에서 우리의 마음가짐은 어떠합니까?

 

 

 

오늘의 말씀 묵상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조명연 마태오 신부

 

세상을 잘 사는 기준

 

어렸을 때, 담벼락에는 커다랗게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 있는 것을 자주 볼 수 있었습니다. 
 
“낙서 금지” 
 
워낙 종이나 펜이 귀했기 때문에 담벼락은 어린이들에게 좋은 종이고 그 위에 돌을 연필 삼아 낙서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낙서 금지’라는 글이 가장 큰 낙서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런 경우가 생각보다 많지요. “떠들지 마.”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릅니다. 어쩌면 본인이 더 시끄럽지 않을까요? 또 이런 말도 있지요. “남자는 다 늑대야. 절대로 믿지 마.”라면서 자기만 믿으라고 남자 친구가 이야기한다고 합니다. 본인도 남자면서 말이지요. 
 
이런 역설들 사이에서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정답인 것처럼 보이지만 또 정답이 아닌 곳에서 사는 것입니다. ‘3+2=6’이라는 수식은 참일까요? 거짓일까요? 당연히 거짓입니다. 그렇다면 “‘3+2=6’은 거짓이다.”라는 문장은 참일까요? 거짓일까요? 이 경우는 참입니다. ‘거짓이다’라는 문장 하나가 들어가 ‘3+2=6’이라는 수식이 거짓인데도 참이 됩니다. 
 
복잡하고 다양한 세상 안에서 또 많은 역설을 품고 있는 세상 안에서 혼란을 느끼고 방향을 잡지 못하는 것이 당연할 듯싶습니다. 그래서 그 방향을 제대로 잡기 위한 기준이 필요합니다. 바로 주님이십니다. 
 
주님의 뜻이 바로 세상을 잘 사는 기준이 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분명 멋지고 행복한 삶,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살 수 있게 됩니다. 
 
어떤 사람이 예수님을 찾아와, “스승님, 제가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무슨 선한 일을 해야 합니까?”라고 묻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계명만 잘 지키면 된다고 하시지요. 그런데 그는 여기서 더 필요한 것이 없는지를 다시 묻습니다. 이에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눠주고, 당신을 따르라고 하십니다. 
 
계명을 모두 지켜왔다고 예수님께 자신 있게 말하는 것을 보면 그는 정말로 올바르게 사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르기란 쉽지 않았나 봅니다. 슬퍼하면서 주님을 떠나고 말지요. 그는 자기의 관점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는 법을 떠올렸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 정도면 충분하다.’라고 생각했겠지요. 하지만 주님께서 원하시는 기준에 도달하기에는 아직도 멀었습니다. 즉, 세상 것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순수한 마음으로 주님을 따를 수 있어야 했습니다. 
 
집착에서 벗어날 수 없는 우리는 여전히 주님을 제대로 따를 수 없는 처지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뜻이 담긴 주님의 기준을 늘 기억하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그때 모든 집착에서 벗어나면서 주님과 함께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마음을 자극하는 단 하나의 사랑의 명약, 그것은 진심에서 나오는 배려이다.

- 메난드로스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엄마와 아빠의 서로 다른 역할의 차이

 

‘금쪽같은 내 새끼 92화 강압적인 아빠와 숨 막히는 3남매’에 나온 사연입니다. 이번 가족은 재혼 가족인데, 가족 구성은 5남매와 뱃속에 1명으로, 이미 자녀가 셋인 상황에서 재혼 후 2명을 더 낳았고, 1명을 임신 중인 상황이었습니다. 20살 1호 금쪽이, 19살 2호 금쪽이, 17살 3호 금쪽이 3남매는 하고 싶은 것도, 즐기고 싶은 것도 많습니다. 반면에 아빠는 출산을 앞둔 엄마를 위해 6살 4호 금쪽이, 4살 5호 금쪽이들을 돌봐주고 엄마를 돕길 원하면서 갈등이 시작됩니다. 

방송 내내 아빠는 강압적인 태도와 구시대적인 사고방식으로 자녀들을 억압했습니다. 아빠가 퇴근할 때 집에 자녀들이 없으면, 바로 전화로 소집 명령이 떨어집니다. 밖에 나가서 자유롭게 놀지도 못하는 자녀들은, 대화할 때 역시 아빠의 눈을 못 마주치고 시선을 회피합니다. 아빠와 대화할 때 자녀들의 눈빛이 참 슬퍼 보입니다. 자녀들이 아빠와 반대의 목소리를 낸다면 이야기는 이내 극단적인 예시로 향합니다. 김치, 쌀 같이 식량이 떨어져 봐야 알겠냐느니, 돈이 없어서 고생해야 하느니 하는 극단적인 예를 들며 아이들을 압박합니다. 

아빠는 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힘겹게 살아야 했습니다. 아버지가 태어난 지 50일 만에 돌아가셨기 때문입니다. 가난은 물론이요, 학교에서는 따돌림을 당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자녀들에게 금전적으로 자유롭게만 해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여겼습니다. 그것이 자신의 결핍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는 아이들의 더 큰 문제는 어머니 역할의 부재라고 생각합니다. 재혼했기 때문에 이미 다 성장한 아이들에게 어머니는 어머니로서의 어떤 역할도 하지 못합니다. 아버지가 훈육을 책임지기는 하지만, 어머니는 자기가 낳은 아이들이 아니기 때문에 미안한 마음에 아무것도 하지 못합니다. 그러면 아이들은 욕구는 다른데 행동만 바르게 해야 하는 힘든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한 부자는 예수님께 다가와 “스승님, 제가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무슨 선한 일을 해야 합니까?”하고 묻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선한 일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듯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어찌하여 나에게 선한 일을 묻느냐? 선하신 분은 한 분뿐이시다.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켜라.”

그는 계명들을 다 지킨다고 말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번에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가서 너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당신을 따름은 계명을 지키는 것보다 ‘욕구’에 더 관련된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탐욕은 욕망입니다. 당신은 욕망을 없애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며 탐욕과 함께 갈 수 없습니다. 오늘 복음은 이렇게 끝마칩니다. 

“그러나 그 젊은이는 이 말씀을 듣고 슬퍼하며 떠나갔다. 그가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리사이들은 모든 율법을 다 지켜도 기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 아버지만 만나려 하기 때문입니다. 육아도 어머니와 아버지, 둘의 합작품입니다. 아버지는 행동을 잘하게 만드는 분인데, 먼저 어머니에게 욕망을 제어하는 법을 배우지 못하면 이렇게 행동은 잘하지만 기쁘지 못한 삶을 살게 됩니다. 
엄마는 욕구를 죽여줘야 하고 아빠는 행동을 바꿔줘야 합니다. 엄마가 욕구를 죽여주는 방식은 자녀를 위한 피 흘림입니다. 아빠의 피 흘림만으로 자녀의 욕구가 줄어들 수 없습니다. 결국 아빠는 행동에 관여하고 엄마는 욕구에 관여하기 때문입니다. 그 역할이 서로 다릅니다. 그래서 둘이 합쳐져야 완전해집니다. 

‘아빠는 훈육하면 안 돼’ VS ‘아이 문제는 훈육 못 한 엄마 탓!’, 양육 방식 차이로 인한 부부 갈등 ‘요즘 육아 금쪽같은 내새끼 64회’엔 토할 때까지 먹는 예비 초1 남자 금쪽이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여기서는 행동에 대한 단호한 훈육을 엄마가 하고 아빠는 감싸주는 역할만을 합니다. 하지만 아이는 엄마에게서 포근함을 얻어 욕망을 절제하고 싶고 아빠에게서 삶의 방식을 배우고 싶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바뀌니 욕망도 절제되지 못하고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도 모르게 됩니다. 엄마 아빠의 역할은 명확해야 합니다. 

아빠가 행동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면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몰라서 아빠를 그리워합니다. 아빠의 훈육이란 다름 아닌 ‘모범’입니다. 아이의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무기력이 진짜 내가 원하는 것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인간은 생존 욕구에서 나오는 것들 외에 스스로 의미 있는 것을 원할 수 없습니다. 어차피 누군가가 나에게 원하는 것을 원하고 행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아기가 부모를 만나지 않는다면 두 발로 서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원하는 능력도 그것을 할 수 있는 이에게서 받는 것입니다. 따라서 아버지는 나의 목적지입니다. 계명이 우리 목적인 것과 같습니다. 아버지처럼 완전하여지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아버지처럼 완전해지려는 노력과 함께 그리스도를 거쳐야 합니다. 욕구를 버릴 수 있어야 아버지처럼 완전해지려는 목적으로 가며 순간순간 기쁨을 느낍니다. 베드로는 물 위를 걷는 기쁨을 느끼려면 어때야 할까요? 먼저 배를 버린 것에서 오는 공허감을 이겨야 합니다. 욕망이 없어야 합니다. 가차 없이 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어머니를 만났다는 증거이고, 그리스도처럼 따라 하면서 조금씩 나아갈 때 비록 물에 빠지기는 해도 나아지는 기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것이 아버지도 만났다는 증거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프란치스코회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완벽한 사람과 완전한 사람의 차이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가서 너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오늘 부자 청년 얘기의 시작은 부자 청년의 질문이랄까 요청에서 시작됩니다. 영원한 생명을 어떻게 하면 얻을 수 있을까 그 비법을 알려달라는 것 말입니다. 

사실 이런 젊은이는 꽤 괜찮은 젊은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 살면서 영원한 생명에 대해 관심이 있다는 면에서 그렇고, 어떤 선한 일을 해야 하는지 묻는 면에서 그렇고, 계명을 어려서부터 다 지켜왔다는 면에서도 그렇고, 꽤 괜찮은 젊은이이고 어떻게 보면 완벽한 젊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젊은이는 계명을 다 준수했는데 아직 부족한 것이 뭐 있냐고, 더 해야 할 것이 있느냐고, 어떻게 보면 의기양양하게 질문하는데 주님께서는 아직 부족한 것이 있다고 하십니다. 

계명을 다 준수했다고 해서 완전한 사람은 아니라고 답하시는데 그것에 제게는 완벽하다고 완전한 것은 아니라는 말로 들립니다. 그래서 완벽한 사람과 완전한 사람의 차이를 생각게 하는데 결론적으로 볼 때 주님의 말씀은, 계명의 완벽한 준수가 완전한 사람의 필요충분조건은 아니라는 말씀이겠습니다. 

십계명 중에서 사람들에게 나쁜 짓 하지 말고, 부모를 공경하고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하라는 계명을 지키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말씀인데 그러면 완전한 사람의 요건은 무엇이겠습니까? 

우선 완벽과 완전은 기준부터 다릅니다. 청년의 완벽은 계명의 준수이고 주님의 완전은 사랑의 실천이며, 청년의 영원한 생명은 이 세상의 부귀영화이고, 주님의 영원한 생명은 저세상 곧 하늘나라의 영원한 생명입니다. 

그래서 첫째 요건은 포기입니다. 하늘나라를 위해서 이 세상 것들을 다 포기할 수 있어야 완전합니다. 이 세상에서 필요한 것을 완벽하게 다 갖추고 영원히 사는 것이 아니라 하늘나라를 위해서 가진 모든 것을 완전히 포기할 수 있는 것이 완전함입니다. 

두 번째 요건은 나눔입니다. 가진 것을 다 팔아 이웃 그것도 가난한 이웃과 나눠야 완전합니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하라는 계명을 다 지켰느냐는 질문에 부자 청년이 어려서부터 잘 지켰다고 자신 있게 대답했는데 실은 나쁜 짓 하지 않았다는 면에서는 완벽했는지 몰라도 가진 것을 다 나누는 면에서는 부족함이 있었음이 드러난 겁니다. 나쁜 짓 하지 않은 것도 사랑이지만, 그것은 최소한의 사랑이지 완전한 사람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세 번째 요건 따름입니다. 주님을 따라 하늘나라에 가야지 완전한 사람이지 하늘나라에 가고 싶지 않고 그래서 주님을 따라가기도 싫다면, 이것이 완전한 사람에게 있어 가장 결정적인 결격 사유입니다. 

이러니 완전한 사람 되는 것, 부자 청년이 그랬던 것처럼 그리 만만하게 생각하고 의기양양할 것이 아닙니다. 내가 아무리 완벽해도 이 면에서 완전하지 않다는, 부족하다는 생각과 자세를 늘 지녀야 할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가서 너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우리가 애착하는 그것이 우리의 발목을 잡는 족쇄가 되어 있음을 깨닫습니다. 우리가 의지해 온 그것마저 내려놓는 것입니다. 나누지 않고서는 깊어지지 않고 깊어지지 않고서는 우리가 가야 할 곳을 알지 못합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생활의 방식은 언제나 나눔입니다. 나눔은 소유라는 모순의 함정에서 빠져나오게 하는 깨어있는 자유입니다. 신앙의 진리는 머리로 이해하거나 지식으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나누는 실천에 있습니다. 많은 재산으로 너무 일찍 근심하는 부자 젊은이에게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가르쳐주십니다. 자기 것이라 믿어 왔던 어리석은 욕망을 부수십니다. 

나누어지지 않는 소유에 대한 집착은 죽음을 낳습니다. 우리모두 잠시 머물고 빠르게 흘러가는 삶의 순례자들일 뿐입니다. 욕심으로 가득찬 복음의 돌연변이는 되지 않아야 합니다. 소유가 아닌 집착이 아닌 진실한 나눔이 영원한 생명의 문(門)을 엽니다. 공동 운명체에 새생명의 숨결을 불어넣는 나눔의 기쁨입니다. 

서로 어울려 살아야 할 우리들 삶입니다. 욕망의 굴레에 갇힌 우리들에게 집착을 떠나고 나눔을 따르는 길을 가르쳐주십니다. 누구나 빈손으로 떠나야 할 가난한 존재임을 다시 깨닫습니다. 맑은 삶 맑은 나눔 맑은 실천 맑은 복음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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