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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3/08/23 (수)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3. 8.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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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소서, 저희 방패이신 하느님. 그리스도의 얼굴을 굽어보소서. 당신 뜨락에서 지내는 하루가 다른 천 날보다 더 좋사옵니다.

하느님,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을 위하여 보이지 않는 보화를 마련하셨으니 저희에게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일으키시어 언제나 어디서나 하느님을 오롯이 사랑하여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참행복을 누리게 하소서.

 

2023년 8월 23일 (수)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랜선으로 초대합니다!

2023년 8월 23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연중 제20주간 수요일

 

 

히브리서 성경 말씀 카드

하느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으며 마음의 생각과 속셈을 가려낸다. (히브 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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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1독서
    (판관기 9,6-15)
    주님께서 여러분의 임금이신데도 “임금이 우리를 다스려야 하겠습니다.” 하고 말하였소.

  • 오늘 복음
    (마태오 20,1-16)
    내가 후하다고 해서 시기하는 것이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3년 8월 23일 (수) 평화방송 매일미사 명동성당 매일미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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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복음 (Gospel)
복음 (Gospel)

 

하느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으며 마음의 생각과 속셈을 가려낸다.

 

 

마태오 복음
20장 1-16절

 

내가 후하다고 해서 시기하는 것이오?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런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하늘 나라는 자기 포도밭에서 일할 일꾼들을 사려고 이른 아침에 집을 나선 밭 임자와 같다. 


그는 일꾼들과 하루 한 데나리온으로 합의하고 그들을 자기 포도밭으로 보냈다. 


그가 또 아홉 시쯤에 나가 보니 다른 이들이 하는 일 없이 장터에 서 있었다. 


그래서 그들에게, ‘당신들도 포도밭으로 가시오. 정당한 삯을 주겠소.’ 하고 말하자, 


그들이 갔다. 그는 다시 열두 시와 오후 세 시쯤에도 나가서 그와 같이 하였다. 


그리고 오후 다섯 시쯤에도 나가 보니 또 다른 이들이 서 있었다. 그래서 그들에게 ‘당신들은 왜 온종일 하는 일 없이 여기 서 있소?’ 하고 물으니, 


그들이 ‘아무도 우리를 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그는 ‘당신들도 포도밭으로 가시오.’ 하고 말하였다. 


저녁때가 되자 포도밭 주인은 자기 관리인에게 말하였다. ‘일꾼들을 불러 맨 나중에 온 이들부터 시작하여 맨 먼저 온 이들에게까지 품삯을 내주시오.’ 


그리하여 오후 다섯 시쯤부터 일한 이들이 와서 한 데나리온씩 받았다. 

10 
그래서 맨 먼저 온 이들은 차례가 되자 자기들은 더 받으려니 생각하였는데, 그들도 한 데나리온씩만 받았다. 

11 
그것을 받아 들고 그들은 밭 임자에게 투덜거리면서, 

12 
‘맨 나중에 온 저자들은 한 시간만 일했는데도, 뙤약볕 아래에서 온종일 고생한 우리와 똑같이 대우하시는군요.’ 하고 말하였다. 

13 
그러자 그는 그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말하였다. ‘친구여, 내가 당신에게 불의를 저지르는 것이 아니오. 당신은 나와 한 데나리온으로 합의하지 않았소? 

14 
당신 품삯이나 받아서 돌아가시오. 나는 맨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당신에게처럼 품삯을 주고 싶소. 

15 
내 것을 가지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없다는 말이오? 아니면, 내가 후하다고 해서 시기하는 것이오?’ 

16 
이처럼 꼴찌가 첫째 되고 첫째가 꼴찌 될 것이다.”

 

 

매일미사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3년 8월 23일 (수)
CPBC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이상진 아모스 신부

 

📌 미사시작 00:22

📌 강론시작 07:57

 

 

 

명동성당 매일미사

 

 

2023년 8월 23일 (수)
서울 명동대성당
매일미사 (오전 7시)
조인기 암브로시오 신부

 

📌 미사시작 07:39

📌 강론시작 16:35

 

 

 

팔로티회 매일미사

홍천 팔로티회 매일미사

 

2023년 8월 23일 (수)
팔로티회 홍천
매일미사 (15시)
안동억 프란치스코 신부

 

📌 미사시작 00:21

📌 강론시작 07:28

 

분당 팔로티회 매일미사

 

2023년 8월 23일 (수)
팔로티회 분당
성체조배 (15시)
매일미사 (16시)
김지학 요셉 신부

 

📌 성체조배 0:03:33

📌 미사시작 1:02:30

📌 강론시작 1:11:36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오늘의 말씀 묵상
매일미사
정용진 요셉 신부

 

적게 일하는 행복을 부러워하지 맙시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이가 구원받고, 행복하며 기뻐하는 세상을 바라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보상이나 공로의 종교에 익숙합니다. 계명을 잘 지키는 이는 복을 받고, 그러지 않는 이는 벌을 받는다는 생각에 익숙합니다.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길은 그분의 계명을 철저하게 지키는 열심과, 그 과정에서 오는 많은 고난을 감수함으로써(“뙤약볕 아래에서 온종일 고생한”) 가능하다고 여깁니다. 과연 이것이 하느님의 의로움입니까?

오늘 복음은 하느님 방식의 의로움이 어떤 것인지 이야기하여 줍니다. 포도 수확철이 되면 대개 보름 안에 포도를 다 따야 해서 많은 일꾼이 필요합니다. 복음서에서 포도밭 주인은 이른 새벽부터 일찍 광장에 나가 일꾼을 모읍니다. 주인은 네 차례나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그들에게 합당한 대가를 약속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람의 생각보다 훨씬 더 사람들의 안위를 걱정하십니다. 그런데 이른 아침부터 포도밭에 와서 일한 사람은, 자기처럼 많이 일한 사람은 많은 보상을 많이 받고 적게 일한 사람은 (자기보다 더) 적게 받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정말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까? 먼저 일하며 수고한 우리는 한눈팔지 않고 인생의 모든 순간을 하느님의 계명에 따라 살았다고 자신할 수 있습니까? 이른바 ‘죄인들’ 또는 “맨 나중에 온 저자들”에 대하여 차마 말 못 하는 시기와 질투, 부러움을 안고 살지는 않습니까?

포도밭 주인의 정의를 따라가 봅시다. 하느님의 생각은 모든 이가 행복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정말 새로운 행복이고 참된 기쁨이라는 것을 깨닫는다면, 먼저 부름받은 우리가 먼저 행복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 무척 기쁘고 감사할 것입니다. 

이것은 밭에 묻힌 보물을 먼저 발견한 사람의 기쁨과도 같습니다. 적게 일하는 행복을 부러워하지 맙시다. 포도밭 주인처럼 부지런히 형제들을 찾아갑시다. 우리 주인의 방식으로 그들을 대합시다.

 

 

 

오늘의 말씀 묵상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조명연 마태오 신부

 

자기의 판단이 무조건 맞다고 말하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날 수 있어야 해

 

교통사고 영상을 10명의 실험 참가자에게 보여준 후, “추돌사고에서 자동차의 속도는 얼마였던 것 같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사람들은 대략 50km/h 정도였던 것 같다고 대답했습니다. 
 
이번에는 같은 영상을 또 다른 실험 참가자 10명에게 보여주고는 “운전자가 사망한 이 추돌사고에서 자동차의 속도는 얼마였던 것 같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대략 60km/h 정도였던 것 같다고 대답했습니다. 즉, 운전자가 사망했다는 정보를 들은 사람들은 자신이 본 영상 속의 차량 속도를 더 높은 것으로 관찰한 것입니다. 
 
자신이 가진 지식, 정보를 통해 관찰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를 다르게 표현하면 우리 인간은 보고 싶은 것만 본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렇게 우리의 판단은 객관적이지 않습니다. 실제로 가족에게 더 긍정적인 마음으로 다가가고 있으며, 부정적인 선입견이 있으면 아무리 올바른 행동을 해도 믿으려 들지 않습니다. 
 
자기의 판단이 무조건 맞다고 말하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경우를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나는 맞고 상대방이 틀렸다고 믿고 있는데, 다른 모든 이는 내가 틀렸고 상대방이 맞았다고 말합니다. 이때 자신이 틀렸음을 인정하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억울하고 저렇게 모를 수 있냐면서 화를 내지요. 그러나 우리는 틀릴 수 있으며, 그래야 사람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나만 맞다는 이기심 가득한 고집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게 하였음을 묵상했으면 합니다. 
 
포도밭 일꾼의 품삯에 대한 비유 말씀을 전해주십니다. 얼핏 보면 포도밭 주인의 처사가 불합리해 보입니다. 이른 아침부터 일한 사람이나 아홉 시, 열두 시, 오후 세 시 심지어 오후 다섯 시쯤부터 일한 사람 모두 같은 품삯을 주기 때문입니다. 이 모습을 보고서 포도밭 주인의 처사가 틀렸다고 말하는 사람이 대부분일 것입니다. 하지만 모두가 틀렸다고 말할까요? 아닙니다. 오후에 나와 잠깐 일을 하고서 똑같은 품삯을 받은 사람은 어떨까요? 주인이 틀렸다면서 자신이 받은 품삯을 돌려줄까요? 아닙니다. 그는 틀렸다는 생각보다는 감사하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주님의 사랑은 세상의 관점으로는 틀렸다고 말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그 사랑을 받아들이고 함께하는 이는 틀렸다고 하지 않습니다. 대신 “감사합니다”라고 말합니다. 주님의 처사에 대해 이렇게 우리는 세상의 관점으로 맞고 틀렸다고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주님은 우리가 판단할 수 없는 너무나 크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대신 감사할 수 있는 이유를 찾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 감사 속에 있어야 늘 기쁘고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문제를 바르게 파악하면 절반은 해결된 것이다.

- 찰스 F. 케터링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목표를 이룬 이들이 하게 되는 것들

 

오늘 복음은 하늘 나라에서 어떤 사람들이 더 사랑을 받고 어떤 사람들이 덜 사랑 받는지에 관한 내용입니다.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사람들은 주님의 포도밭에서 일을 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품삯은 한 데나리온, 곧 구원이라는 같은 은총입니다. 그런데 같은 은총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높고 낮음이 결정됩니다. 어떤 이들은 자신들은 더 받아야 한다고 여기고 어떤 이들은 그것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결국 하늘 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은 겸손한 사람일 수밖에 없습니다.
 
어차피 들어가는 하늘 나라라면 첫째를 노려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구원의 값인 한 데나리온에 어떻게 만족하고 감사할 수 있을지 생각해야 합니다. 한 데나리온은 그리스도의 피 값입니다. 그것에 충분한 감사를 하지 못하는 이유는 다른 것을 바라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다른 것을 바랄 때 이것에 대한 감사가 적어집니다. 우리의 바람이 오로지 구원, 하나로 모아질 때 하늘에서 그만큼 앞자리를 차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가정 먼저 하루 종일 일한 종들의 문제점은 무엇이었을까요? 그들은 아주 오랜 시간 자신들이 구원을 당연히 받을 만하다고 여긴 이들입니다. 일찌감치 구원의 길로 들어선 이들입니다. 그런 이들의 문제점은 더는 목표가 없어졌다는 데 있습니다. 저는 십일조를 내고 한 가지 죄로라도 끊임없이 고해성사를 할 수 있다면 구원을 확신해도 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열심한 신자들 대부분은 그런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들에게 더는 목표가 없습니다. 이루는 한 데나리온을 받을 것이 확실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늦게서야 부름을 받고 일하러 온 종들은 ‘이렇게 적게 일했는데도 과연 한 데나리온을 다 주실까?’라며 불안해합니다. 그래서 한 시간을 일해도 하루 종일 일한 사람보다 열심히 합니다. 결국 그들이 하루 종일 일한 사람들보다 더 인정받게 됩니다. 결국 오늘 복음의 핵심은 하늘 나라에 들어가더라도 끝까지 정진을 멈추지 않는 사람이 더 높은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지금 축구계에서는 호날두, 네이마르, 벤제마 등 유명 선수들이 사우디 리그로 발을 옮기고 있습니다. 그곳에서 제공하는 엄청난 연봉 때문입니다. 메시도 호날두 연봉의 두 배에 달하는 연봉 6,000억에 러브콜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연봉 700억에 미국을 택했습니다. 그에게 축구를 잘하는 능력이 곧 돈과 직결되지는 않습니다. 어떤 이들은 자기 능력을 돈으로 바꾸려고 하지만, 어떤 이들은 의미를 추구합니다. 그리고 메시는 현재 매우 행복해 보입니다. 메시 덕분으로 미국 리그가 세계적 조명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메시는 미국으로 건너가 꼴찌팀 인터 마이애미를 일곱 경기만에 전승으로 창단 이래 최초 우승으로 이끌었습니다. 그는 몇 번의 은퇴를 번복하며 자신을 끝까지 믿어주고 축구의 길로 들어서게 한 할머니께, 그리고 성호경을 그으며 하느님께 쉬지 않고 가고 있습니다. 그가 돈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끊임없이 나아가고 있는 것이 행복할까요, 아니면 돈을 바라고 안주하는 삶이 행복할까요? 

만약 어떤 아이가 ‘나는 이미 자녀인데 뭐!’라며 더 좋은 자녀가 되기를 노력하지 않는다면 그 아이는 이제 집에서 하게 되는 것이 무엇일까요? ‘불평’입니다. 자녀인데 왜 부모로서 의무를 다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인간의 마음이 그렇습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자녀가 되어가는 과정에 있습니다. 예수님도 아버지의 마음에 드시기 위해 영원으로부터 노력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물며 우리가 정진을 멈추어야 하겠습니까? 

제가 신학교 때 들은 말 중에 “사제가 되려고 하지 마라!”였습니다. 사제가 되고 나면 더는 할 게 없어서 이제 누리려고만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술이나, 여자, 돈이나 비싼 차, 돈 많이 드는 운동이나 여행 등에 빠진다는 것입니다. 내심 ‘내가 사제인데 이 정도는 해야 하지 않나?’라는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목표를 달성했는데 생각보다 보상이 적다고 생각하여 스스로 그 보상을 채우려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수 신부님은 사제가 되려고 하지 말고 ‘성인 사제가 돼라!’라고 가르치셨습니다. 

부부도 마찬가지입니다. 결혼이 목적이라면 결혼하기까지 고생한 것을 누리려고만 합니다. 하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즐겁지 않습니다. 그러니 불만이 생기고 그 탓을 상대에게 하거나 아니면 밖에서 그 보상을 찾으려 합니다. 혹은 배우자보다는 자녀에게서 만족을 얻으려 합니다. 그것이 자녀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이용하는 것이 되기도 합니다. 목적이 없는 삶은 편한 것 같지만 여러모로 우리 삶을 피폐하게 합니다. 겉으로 보기는 편해 보여도 사실 더 고통스러운 것이 정진하지 않는 삶입니다. 

요한복음에서 요한은 성자께서 아버지와 함께 계신다거나(“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는데”: 요한 1,1.2) 아버지와 가까이 계신다고 말할 때(“아버지와 가장 가까우신 외아드님”: 요한 1,18)라고 말할 때 전치사 ‘프로스’(pros)를 쓰거나 ‘에이스’(eis)를 씁니다. 이것은 사실 ‘함께’나 ‘가까이’로 번역하기 어려운 단어들입니다. 이는 움직이는 사물이 어디를 향하고 있음을 말할 때 사용하는 전치사들입니다. 

요한은 결코 아드님과 아버지를 이미 고정되어버린 관계로 여기지 않습니다. 계속 움직이는 역동적인 관계로 보는 것입니다. 영원히 멈추지 않고 서로를 향하는 분으로 그리스도를 표현합니다. 하물며 우리가 마치 당연히 구원된 사람들처럼 이제 누리려고만 해서는 되겠습니까? 이 지상의 삶에서, 그리고 영원한 삶에서 우리는 하느님을 더 사랑하는 방향으로 영원히 노력해야 합니다. 이것이 뒤처지지 않는 방법입니다. 목표를 이룬 이들이 하게 되는 것들은 불만과 죄뿐입니다. 그러니 하느님께 나아가는 데 멈추지 않는 목표를 세웁시다.

 

 

 

오늘의 말씀 묵상
프란치스코회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가시나무의 교훈

 

오늘 독서 판관기는 판관 시대에서 왕정 시대로 넘어가는 시점에서 어떤 사람이 임금이 되려고 하는지에 대해 얘기하고 있습니다. 

이방인들이 왕을 세웠다는 얘기를 듣고 동요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제는 판관 대신 임금이 이스라엘을 다스리기를 원하는 백성들에게, 임금은 보통 훌륭한 사람은 되려고 하지 않고 가시나무처럼 못된 자, 그러니까 남을 풍요롭게 하지 않고 가시처럼 콕콕 찌르는 자가 외려 임금이 되려고 한다는 것을 가시나무를 예로 얘기하고 있지요. 

저는 이 가시나무를 보면서 작정하고 한 말씀 드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우리 대통령에 대해서 한 말씀 드리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정치적인 소견을 표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말할 필요가 없겠지요. 인간이 인간을 적대시하지 않고 원수까지 사랑하라는 것이 복음의 가르침이니 제가 남북 간에 화해와 일치를 촉구하는 것은 복음의 가르침과 일치하고, 화해와 일치를 위해 기도하라는 우리 교회의 일관된 가르침과도 일치하지요. 

그런데 우리 대통령은 북한을 주적으로 천명하고 대결 정책을 펴고 있음에 저는 지난번에 이미 이것이 비 복음적이라고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 광복절 기념사에서는 더 극우적이고 분열적이며 냉전적인 사고를 여과 없이 드러내며 분열을 조장하였습니다. 

광복절에 빈 인륜적 범죄를 국가적으로 저지르고도 사과하지 않고 보상치 않는 일본에 대해서는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파트너라고 하면서 자기를 반대하는 우리 국민에게는 반국가적인 세력이라고, 통일과 종전을 얘기하면 공산 전체주의라고 매도하였습니다. 

동족을 적으로 몬 데 이어 우리 국민까지 적으로 몬 것인데 우리가 일본 압제에서 해방된 것이 이렇게 사분오열되기 위해서입니까? 그래서 통합을 얘기해야 할 광복절에 분열의 기념사를 한 것입니까? 

한 마디로 이번 광복절 기념사는 오늘 가시나무의 으름장과 같습니다. 

“너희가 진실로 나에게 기름을 부어 나를 너희 임금으로 세우려 한다면 와서 내 그늘 아래에 몸을 피하여라. 그러지 않으면 이 가시나무에서 불이 터져 나가 레바논의 향백나무들을 삼켜 버리리라.” 

자기를 반대하면 국가를 반대하는 것이라니! 이런 반국가적인 세력은 없어져야 한다니! 이런 제왕적인 사고를 가진 분이 지금 우리 대통령입니다. 

가시나무와 같은 대통령은 안 되고, 자기의 잘못을 볼 줄 모르고 반성할 줄 모르는 대통령은 안 됩니다. 

대통령의 인기가 높고 국회 의석을 180석 차지하자 자기 잘못을 보지도 반성하지도 않은 것 때문에 전 정권이 권력을 잃었는데 지금 우리의 대통령과 권력자들은 전 정부보다 더 지지받지 못하면서도 모든 탓을 전 정부에게 돌리기에 잘못을 볼 줄도 반성할 줄도 모릅니다. 

그럼으로써 무능에다가 무책임하기까지 하고 권력에 취해 교만하기까지 합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 교회를 위해 우리 교황을 위해 기도하듯 우리나라를 위해 우리 대통령을 위해 기도하며 여러분도 이 기도에 초대합니다. 우리나라를 이끌어갈 우리 대통령이잖아요? 

우리 국민을 향해 내부적으로 하는 잘못은 우리 안에서 어떻게든지 해결합니다. 그런데 외부적으로 그리고 외교적으로 잘못하면 우리나라가 정말 위태로워집니다. 이런 면에서 지금 우리는 전례 없는 위험한 길을 가고 그래서 기도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오늘 가시나무 얘기를 교훈 삼아 현재와 미래의 우리 대통령들을 뽑고 판단하고 죽비를 내리쳐야 할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내가 후하다고 해서 시기하는 것이오?

 

소중한 사람들과 이 길을 함께 걸어가는 것이 함으로 중요한 우리들의 지혜이며 참된 행복입니다. 그러나 너무나 빨리 변심하여 돌아서는 우리들 삶입니다. 함께 일하는 누군가를 위해 기도도 바쳐본 적이 없는 우리들 마음입니다. 멀쩡한 시간들을 우리의 시샘으로 죽이고 사라지게 만듭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부르셨다는 것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됩니다. 얻은 것도 우리가 잃은 것도 모두 내 것이 아닌 주님의 것이었습니다. 가까이 있지만 주님께 너무 멀리있는 우리들 삶입니다. 

우리의 미숙한 지혜 앞에서 참된 평화는 이기심을 내려놓는 사람으로 초대합니다. 따스한 사람의 피가 흐르는 사람의 모습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행복은 원망이 아닙니다. 

행복은 저마다에게 주시는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감사라는 포도밭에 우리를 불러주실 때의 그 마음을 기억합시다. 욕심을 내려놓으면 지쳐있는 이웃들이 보입니다.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주님의 마음입니다. 저마다의 삶에 가장 필요한 때에 후하게 베푸시는 주님의 사랑이며 은총입니다. 

행복은 물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매일 살아가는 우리의 생활에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의 마음을 선택한 사람들이 아닌 하느님의 넉넉한 행복을 선택한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틀을 고집하면 할수록 괴로운 우리들입니다. 

행복과 기쁨을 가져다 주시는 주님을 믿고 주님과 함께 오늘을 살아갑니다. 시기와 질투 미웅과 원망을 내려놓으니 행복한 오늘을 만납니다. 모든 사람이 행복하기를 바라시는 주님이십니다. 참된 행복에는 이와 같이 조건이 없습니다. 더 없는 행복 주님과 함께 땀 흘리는 오늘의 가장 큰 행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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