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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3/08/24 (목)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3. 8.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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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날이 선포하여라, 하느님의 구원을. 전하여라, 겨레들에게 그분의 영광을.

주님, 복된 바르톨로메오 사도가 오롯한 믿음으로 성자를 따르게 하셨으니 저희에게도 굳센 믿음을 주시어 그의 전구로 주님의 교회가 모든 민족들에게 구원의 성사가 되게 하소서.

 

2023년 8월 24일 (목) 성 바르톨로메오 사도 축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랜선으로 초대합니다!

2023년 8월 24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성 바르톨로메오 사도 축일

 

 

요한복음 성경 말씀 카드

와서 보시오. (요한 1,46)

 

와서 보시오. (요한 1,46) 요한복음 성경 말씀 카드 이미지 다운로드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1독서
    (요한묵시록 21,9ㄴ-14)
    그 초석들 위에는 어린양의 열두 사도 이름이 하나씩 적혀 있었습니다.

  • 오늘 복음
    (요한복음 1,45-51)
    보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3년 8월 24일 (목) 평화방송 매일미사 명동성당 매일미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온라인 매일 미사 바로가기

 

오늘의 말씀 묵상 바로가기

 

 

매일미사 복음 (Gospel)
복음 (Gospel)

 

스승님, 당신은 하느님의 아드님, 이스라엘의 임금님이십니다.

 

 

요한복음
1장 45-51절

 

보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

 

그때에 

45 
필립보가 나타나엘을 만나 말하였다. “우리는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고 예언자들도 기록한 분을 만났소. 나자렛 출신으로 요셉의 아들 예수라는 분이시오.” 

46 
나타나엘은 필립보에게, “나자렛에서 무슨 좋은 것이 나올 수 있겠소?” 하였다. 그러자 필립보가 나타나엘에게 “와서 보시오.” 하고 말하였다.

47 
예수님께서는 나타나엘이 당신 쪽으로 오는 것을 보시고 그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보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 

48 
나타나엘이 예수님께 “저를 어떻게 아십니까?” 하고 물으니, 예수님께서 그에게 “필립보가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내가 보았다.” 하고 대답하셨다. 

49 
그러자 나타나엘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스승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의 임금님이십니다.” 

50 
예수님께서 나타나엘에게 이르셨다.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해서 나를 믿느냐? 앞으로 그보다 더 큰 일을 보게 될 것이다.” 

51 
이어서 그에게 또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매일미사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3년 8월 24일 (목)
CPBC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윤상현 비오 신부

 

📌 성 바르톨로메오 소개 00:05

📌 미사시작 01:09

📌 강론시작 08:55

 

 

 

명동성당 매일미사

 

 

2023년 8월 24일 (목)
서울 명동대성당
매일미사 (오전 7시)
진슬기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

 

📌 미사시작 07:34

📌 강론시작 16:16

 

 

 

팔로티회 매일미사

홍천 팔로티회 매일미사

 

2023년 8월 24일 (목)
팔로티회 홍천
매일미사 (15시)
안동억 프란치스코 신부

 

📌 미사시작 00:30

📌 강론시작 07:46

 

분당 팔로티회 매일미사

 

2023년 8월 24일 (목)
팔로티회 분당
성체조배 (15시)
매일미사 (16시)
김지학 요셉 신부

 

📌 성체조배 0:03:56

📌 미사시작 1:03:13

📌 강론시작 1:11:23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오늘의 말씀 묵상
매일미사
정용진 요셉 신부

 

와서 보시오.

 

필립보는 친구 나타나엘을 만나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기다려 온 메시아 예수님을 찾았다고 말합니다(45절; 신명 18,18-19 참조). 한평생 성경을 탐구한 나타나엘은 메시아가 변방의 작은 마을 나자렛 같은 곳에서 나실 수가 없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자 필립보는 그를 예수님과 만나도록 초대합니다. 필립보에게는 이미 예수님을 만나 자기 인생을 바꾼 자기 체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나타나엘은 “와서 보시오.” 하는 친구의 간결한 초대에 응합니다. 사람의 속마음까지 아시는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만나러 오는 나타나엘에게서 오랫동안 메시아를 찾고 만나고자 하였던 그의 순수하고 강한 바람을 알아보십니다. 

“보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 

이스라엘이라는 말뜻에 대한 몇 가지 풀이 가운데 하나는 이스라엘을 “하느님을 보는 이”로 풀이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참된 이스라엘 사람인 나타나엘은 그 말뜻처럼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다른 이름인 ‘야곱’이 인생을 바꾼 결정적 사건, 곧 그의 꿈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야곱의 꿈 이야기와 오늘 예수님의 말씀은 거의 같습니다. 다만 야곱이 본 “층계”(창세 28,12)가 예수님의 말씀 속에서 “사람의 아들”로 바뀌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사람이 하느님과 만나고 통하게 하시는 층계(사다리)라는 말씀입니다. 

야곱의 말처럼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하느님의 집으로 이끄시는 하늘의 문이십니다(창세 28,17 참조). 나타나엘은 동료 필립보의 인도로 예수님과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 만남으로 인생이 바뀝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말씀처럼 그 안에 거짓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나타나엘처럼 거짓 없는 마음, 나누이지 않는 순수한 마음으로 예수님께 나아갑시다.

 

 

 

오늘의 말씀 묵상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조명연 마태오 신부

 

불행의 시작은 비교다.

 

불행의 시작은 비교라고 말합니다. 다른 사람, 다른 물건, 다른 조건과 계속해서 비교할 때, 그간의 행복은 비교라는 창문 사이로 바람처럼 빠져나갑니다. 그래서 비교를 줄이면 행복해집니다. 생각해 보면 비교할 것도 아닌데, 비교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았습니까? 
 
세상에서 가장 돈 많은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요? 딱 한 명입니다. 그렇다면 세상의 최고 권력자는 몇 명일까요? 역시 딱 한 명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은? 역시 딱 한 명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도 딱 한 명뿐입니다. 이들과 나를 비교하면 어떨까요? 
 
어마어마한 최고와 비교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는 것을 금세 깨닫게 됩니다. 도저히 다가갈 수 없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비교를 오히려 하지 않게 됩니다. 그냥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되지요. 이렇게 비교의 대상을 줄여 나가는 방법이 필요합니다. 
 
사실 비교할 때는 나 역시 그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부모 때문에, 가족 때문에, 환경 때문에, 운이 없어서, 기회가 없어서…. 등의 이유를 대면서, 이것만 아니라면 자기도 남처럼 살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렇게 지금의 ‘나’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계속 비교하며 좌절 속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의 ‘나’를 인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특히 하느님께서 이 ‘나’를 만드셨고 늘 함께해주심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지금의 상태로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음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떠올려 보면 행복의 이유는 너무나도 많습니다. 
 
예수님께서 나타나엘을 향해 “보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에 “저를 어떻게 아십니까?”라고 여쭙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내가 보았다.”라고 대답하십니다. 
 
‘이스라엘 사람’은 ‘하느님을 보는 이’를 의미하고, ‘무화과나무’는 메시아적 평화의 충만함을 상징합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이미 나타나엘을 잘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하느님께 마음을 여는 하느님의 사람이었고, 또 그 안에서 평화를 간직하는 사람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당신을 잘 아는 예수님께 나타나엘은 신앙고백을 하게 됩니다. 
 
“스승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의 임금님이십니다.” 
 
‘나’를 똑바로 바라볼 수 있도록 해주신 주님이기에 이런 고백이 가능했습니다. 
 
우리 각자를 주님께서는 너무나 잘 알고 계십니다. 그런데 우리의 모습을 보고 주님께서는 어떤 말씀을 하실까요? 과연 칭찬의 말이 쏟아질까요? 세속적인 마음으로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으로는 주님을 알아볼 수도 또 함께할 수도 없습니다. 주님의 뜻에 집중하면서 주님께서 주시는 평화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때 주님을 향해 우리도 멋진 신앙고백을 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나는 모든 것을 갖고자 했지만, 결국 아무것도 갖지 못했다.

- 기 드 모파상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아이 때 이것만 하지 못하게 한다면 크면서 냉담하는 일은 절대 없습니다.

 

오늘은 성 바르톨로메오 사도 축일입니다. 바르톨로메오는 예수님께 이런 칭찬을 들은 사람입니다. 

“보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는 말씀은 하느님 나라 백성이란 뜻도 됩니다. 하느님 나라에는 믿음이 없으면 들어가지 못합니다. 오늘 예수님은 거짓이 없는 사람만이 쉽게 믿을 수 있다고 이렇게 예언하십니다.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해서 나를 믿느냐? 앞으로 그보다 더 큰 일을 보게 될 것이다.”

우리가 하느님께 대한 믿음이 없는 이유는 믿음의 에너지를 거짓말에 소비해버리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을 믿지 못하게 만드는 거짓말은 바로 내 안의 뱀이 합니다. 에덴동산에서 뱀은 하와를 하느님처럼 만들어서 하느님을 믿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 방식은 하와 자신이 주님이 되고 창조자가 되고 심판관이 되게 하는 데 있었습니다. 뱀은 자신이 하느님이라 믿게 만들어서 하느님을 대체합니다. 믿을 필요가 없게 합니다. 

피노키오를 생각해봅시다. 피노키오에게 늑대가 다가와 서커스에서 공연할 것을 제안합니다. 그는 사실 구경거리가 되어 남에게 이용당하면서도 자신의 힘으로 무엇이 되었다고 착각합니다. 서커스를 무대에 오르지만, 실제로는 스스로 제페토 아버지를 대체하는 것입니다. 그가 필요 없게 만드는 것입니다. 여기에 늑대의 역할이 우리 안의 자아입니다. 

늑대는 또한 피노키오를 어른 놀이하는 섬으로 데려갑니다. 그곳에서는 어른들처럼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고 파티를 즐깁니다. 스스로 어른이 될 수 있다고 믿게 하는 늑대에 속아서 아버지가 필요 없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아버지처럼 되어가지 못하고 당나귀가 되어갑니다. 우리 안에서 자아는 우리 스스로 하느님처럼 될 수 있다고 여기게 만들어 정작 우리를 당신처럼 만들려는 하느님을 필요 없는 존재로 만드는 것입니다. 

에덴동산에서 뱀은 선악과를 바치지 않고 자신이 따먹어 주인님이 되고 육체적 욕망으로 행복을 추구하려 하며 스스로 창조자가 되게 했고 하느님과 이웃을 판단하며 스스로 심판관이 되도록 부추겼습니다. 그러니 이미 창조자나 주님, 심판관이 있음을 믿을 에너지를 다 써버린 것입니다. 자아에게 속으면 그래서 하느님을 믿게 어렵게 되는 것입니다. 

뱀은 이 거짓말들에 지속적으로 속게 만들기 위해 거짓말이라는 도구를 사용하게 하였습니다. 무화과 잎으로 자기 몸을 가리게 한 것입니다. 그 껍데기가 벗겨지지 않는 한 자신 스스로 주님이 되고 창조자가 되고 심판자가 되려고 했던 잘못을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솔직해지면 어떨까요? 금방 자신이 주님일 수 없고 창조자일 수 없으며 심판관일 수 없음을 알게 됩니다. 아무리 나의 것이라 우겨도 죽으면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합니다. 내 사람이라고 해도 헤어짐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결혼을 해도 그 사람의 마음을 잃을까 두렵습니다. 

결국 우리는 나의 것은 아무것도 가질 수 없는 존재입니다. 또한 솔직해지면 자녀도 내 창조물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눈도 다시 넣어줄 수 없고 생명도 다시 넣어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솔직해지면 누구도 나에게 재판관의 권위를 부여하지 않았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판단을 참 심판관이신 주님께 맡길 수밖에 없게 됩니다. 

이렇듯 참믿음은 거짓말을 하지 않으면 저절로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왜 믿어지지 않느냐고 하기 전에 먼저 내가 뱀을 보호하기 위해 거짓말을 하지 않는가부터 생각해야 합니다. 

거짓말을 하면 마치 복권을 사지 않고 당첨만 되려고 하는 사람과 같습니다. 공부를 하지 않고 시험만 잘 보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아이에게 거짓말을 절대로 하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면 아이가 자라며 냉담하게 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르톨로메오 사도가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교훈인 것 같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프란치스코회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두 갈래 관상

 

오늘 복음을 보면 나타나엘 두고 재미난 말들이 오갑니다. 필립보 사도는 나타나엘에게 주님을 “와서 보라”고 하고, 주님께서도 당신에게 오는 나타나엘을 “보라”고 하십니다. 

“보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 

그러니 우리도 이 축일을 지내며 주님의 초대대로 먼저 나타나엘을 보고, 또 나타나엘을 따라가 주님을 보는 ‘두 갈래 관상’을 하면 좋을 것입니다. 

왜냐면 본래 관상이란 것이, 하느님 관상 한 갈래만 있는 것이 아니고, 하느님 관상을 제대로 했다면 우리 눈이 하느님의 눈이 되기에 하느님의 눈으로 나도 보고 이웃도 보고 자연도 보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나타나엘을 따라 주님 관상을 먼저 해보겠습니다. 오늘 나타나엘은 주님을 보러 갑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선뜻 내켰던 것은 아니었지만 필립보를 믿었기 때문인지 권유를 받아들여 일단 가봅니다. 

이것을 보면 나타나엘이 꽉 막힌 사람은 아닙니다. 우리는 종종 답답한 사람을 일컬어 ‘꽉 막혔다’라고 하는데 필립보의 말을 듣고 마음의 문을 꽉 닫은 것이 아니라 필립보의 말을 믿고 마음의 문을 조금 연 것입니다. 그리고 가서 주님을 직접 뵈니 마음의 문이 활짝 열리게 되고 주님을 완전히 믿게 됩니다. 

이토록 믿음은 개방인데 필립보에 대한 작은 믿음이 물꼬가 되고 마중물이 되어, 주님께 대한 큰 믿음이 나타나엘 안으로 들어와 자리 잡게 된 겁니다. 그렇기에 ‘가 봐’, ‘일단 가 봐’라는 말이 중요하고, 이 말에 힘이 있습니다. 

일 단계는 일단 가서 보는 것이고, 이 단계 곧 보고 나면 달라집니다. 말로만 듣고는 긴가민가했는데 확신이 가는 겁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도 첫 제자들에게 “와서 보라”고 하셨고, 가서 본 안드레아와 오늘 필립보도 주님과 똑같은 말로 다른 제자들을 주님께 초대하고 인도합니다. 

아무튼, 믿음이란 자기가 아는 것에 갇히지 않고 내 작은 지식으로는 모르는 더 큰 신비에 자신을 여는 것인데, 나타나엘은 이 신비에 열려 있었고, 그래서 마침내 주님을 직접 뵙는 관상가입니다. 

이런 나타나엘을 보시고 주님께서는 나타나엘을 당신처럼 보라고 초대하십니다. 주님처럼 보면 누구든지 그 사람의 진면목 또는 참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참모습을 못 보고 자기식대로 보는 것을 편견이라고 한다면 진면목, 참모습을 보는 것이 관상입니다.ㅈ사기꾼이라면 사기꾼이라는 진면목을 관상은 보는 것이고, 나타나엘처럼 거짓이 없으면 그 진면목을 보는 것 이것이 관상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관상쟁이도 봅니다. 그러나 우리는 관상쟁이를 넘어 관상가가 되어야 합니다. 관상쟁이도 무당도 점쟁이도 그가 어떤 사람인지는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사람을 하느님께로 인도하지 못합니다. 관상쟁이나 무당이나 점쟁이는 하늘과 하늘의 하느님을 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나타나엘에게 하늘이 열려 있는 것을 네가 보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시는데 바로 이것입니다. 관상가는 하느님을 보고 하느님의 눈으로 사람을 보며 그 사람을 하느님께로 인도하는 사람인데 오늘 우리도 참 관상가이신 주님의 인도를 받아 나타나엘처럼 관상가가 되어야 하고, 그래서 다른 사람까지도 하느님께로 인도하는 관상가가 되어야겠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보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

 

만남은 소중한 것입니다. 만남의 소중함을 다시 배우는 시간입니다. 좋은 만남은 우리자신을 깨어있게 하며 거짓 없는 사람으로 우리를 살게합니다. 살아가면서 좋은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우리 삶에 가장 큰 행복입니다. 

거짓이 없는 사람이 진실한 사람이며 참 사람입니다. 참 사람이 큰 사람 보다 더 좋고 더 아름답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소중한 것들을 볼 수 있는 사랑의 마음을 나누십니다. 하늘의 마음이 오르내리며 사람의 마음을 씻어주십니다. 

사람이 되는 길이 예수님의 길임을 깨닫습니다. 만남의 길이 사람이 되는 길입니다. 길이 아닌 길로 가다 참으로 많이 헤매였습니다. 헤매였던 그만큼 소중한 것을 얻었습니다. 예수님의 가장 큰 사랑은 건물이 아닌 사람을 아끼고 성장시키고 열매맺는 사람의 일이었습니다. 

참 사람의 음성으로 참 사람의 마음을 나누십니다. 당신께로 오는 바르톨로메오를 기쁘게 맞이하십니다. 사람을 위한 복음이며 사람을 위한 진리입니다. 사람을 안다는 것은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은 또한 거짓을 멀리 한다는 것입니다. 거짓 없는 바른 마음이 기도입니다. 진실한 기도로 만남을 아름답게 하는 우리가 먼저 좋은 사람이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복음으로 사람을 얻으시는 사랑의 기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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