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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3/08/19 (토)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3. 8.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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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당신의 계약을 돌아보소서! 가련한 이들의 생명을 저버리지 마소서. 일어나소서, 주님, 당신의 소송을 친히 이끄소서. 당신을 찾는 이들이 외치는 소리를 잊지 마소서.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성령의 이끄심으로 하느님을 감히 아버지라 부르오니 저희 마음에 자녀다운 효성을 심어 주시어 약속하신 유산을 이어받게 하소서.

 

2023년 8월 19일 (토)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랜선으로 초대합니다!

2023년 8월 19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연중 제19주간 토요일

 

 

여호수아기 성경 말씀 카드

누구를 섬길 것인지 오늘 선택하여라  (여호 24,15)

 

누구를 섬길 것인지 오늘 선택하여라  (여호 24,15) 여호수아기 성경 말씀 카드 이미지 다운로드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1독서
    (여호수아기 24,14-29)
    누구를 섬길 것인지 오늘 선택하여라.

  • 오늘 복음
    (마태오 19,13-15)
    어린이들이 나에게 오는 것을 막지 마라. 사실 하늘 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3년 8월 19일 (토) 평화방송 매일미사 명동성당 매일미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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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복음 (Gospel)
복음 (Gospel)

 

하늘과 땅의 주님이신 아버지, 찬미받으소서. 아버지는 하늘 나라의 신비를 철부지들에게 드러내 보이셨나이다.

 

 

마태오 복음
19장 13-15절

 

어린이들이 나에게 오는 것을 막지 마라. 사실 하늘 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

 

13 
그때에 사람들이 어린이들을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 그들에게 손을 얹고 기도해 달라고 하였다. 그러자 제자들이 사람들을 꾸짖었다. 

14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이르셨다. “어린이들을 그냥 놓아두어라. 나에게 오는 것을 막지 마라. 사실 하늘 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 

15 
그리고 그들에게 손을 얹어 주시고 나서 그곳을 떠나셨다.

 

 

매일미사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3년 8월 19일 (토)
CPBC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임지용 베드로 신부

 

📌 미사시작 00:22

📌 강론시작 09:09

 

 

 

명동성당 매일미사

 

 

2023년 8월 19일 (토)
서울 명동대성당
매일미사 (오전 7시)
이철규 아우구스티노 신부

 

📌 미사시작 07:41

📌 강론시작 18:02

 

 

 

팔로티회 매일미사

홍천 팔로티회 매일미사

 

2023년 8월 19일 (토)
팔로티회 홍천
매일미사 (15시)
김태광 아우구스티노 신부

 

📌 미사시작 10:36

📌 강론시작 26:23

 

분당 팔로티회 매일미사

 

2023년 8월 19일 (토)
팔로티회 분당
성체조배 (15시)
매일미사 (16시)
김지학 요셉 신부

 

📌 성체조배 0:16:39

📌 미사시작 1:16:47

📌 강론시작 1:26:02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오늘의 말씀 묵상
매일미사
정용진 요셉 신부

 

우리는 무엇으로 살고자 합니까? 

 

시편의 어느 저자는 밤하늘을 수놓은 은하수와 달을 보며 사람을 돌보아 주시는 하느님을 찬미합니다. 

“우러러 당신의 하늘을 바라봅니다. 당신 손가락의 작품들을, 당신께서 굳건히 세우신 달과 별들을 바라보나이다. 인간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기억해 주십니까? 사람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돌보아 주십니까?”(시편 8,4-5) 

하느님의 위대하심을 찬미합니다. 작고 보잘것없는 인간을 돌보아 주시는 그분의 사랑에 감사드리며 겸손한 마음가짐으로 “아기와 젖먹이들”(시편 8,3)에게서 나오는 찬미를 그분께 드립니다. 

오늘 복음은 짧지만 마태오 복음서에서 되풀이되는 가장 중요한 말씀 가운데 하나입니다. ‘교회 헌장’이라고 불리는 마태오 복음 18장의 서두에도 이와 같은 말씀이 나오는데, “제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18,1) 하늘 나라에서 누가 가장 큰 사람인지 묻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어린이 하나를 불러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18,2-3 참조).

오늘 복음에는 “사람들이 어린이들을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 그들을 축복하여 달라는 청원이 나옵니다. 이때 제자들은 도리어 그들을 꾸짖습니다. 여기서 ‘꾸짖다’로 쓰인 말은 예수님께서 마귀를 쫓아내실 때 나온 표현입니다(마르 1,25 참조). 이것은 역설적으로 제자들의 마음속에서 쫓아내야 할 것이 있다는 뜻처럼 들립니다. 제자들의 마음이 여전히 굳게 닫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을 하느님 아버지께 받은 선물로 인식하고 그분께 온전히 의지하지 못한 채 스스로 어른 행세만 하려고 하면 우리는 그분의 자녀가 되지 못하고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구원을 얻지 못합니다. 자녀는 무엇으로 삽니까? 그들은 부모를 향한 전적인 믿음과 온전한 의탁으로 그리고 부모에게서 받는 한없는 사랑으로 삽니다. 우리는 무엇으로 살고자 합니까?

 

 

 

오늘의 말씀 묵상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조명연 마태오 신부

 

내가 처음 살아 보는 거잖아. 나 67살이 처음이야.

 

배우 윤여정 씨가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나와 나이에 대한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내가 처음 살아 보는 거잖아. 나 67살이 처음이야.” 
 
윤여정 씨의 말처럼, 누구에게나 지금 자기 나이는 처음입니다. 그래서 낯설고 지금의 상황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지금 나이를 생각하지 않고 과거의 나이만 떠올린다는 것입니다. “내가 왕년에는 말이야….”라고 시작하는 말로 과거에만 머물려고 합니다. 그리고 이 과거의 나이를 통해 다른 이를 판단하고 때로는 잘못되었다면서 단죄합니다. 이 모든 것이 지금 자기 나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모습입니다. 
 
처음 살아 보는 자기 나이, 이 나이를 기쁘게 받아들이려면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찾아야 합니다. 하지만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나이가 들어 힘이 없다고, 나이가 들어 정신도 예전 같지 않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나이 들면 어쩔 수 없다면 지금 나이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포기합니다. 그래서 과거의 나이만 바라보는 것입니다. 
 
많은 어른이 이렇게 과거의 나이만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절대로 과거의 나이를 바라보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오히려 더 나이 먹기만을 바라는 사람이 있지요. 과거에 하지 못한 것보다는 지금 할 수 있는 일들을 계속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이 누구일까요? 바로 어린이입니다. 어린이는 과거의 나이를 바라보지 않습니다. 바로 지금의 나이만을 바라보며 미래를 꿈꾸고 있을 뿐입니다. 
 
이런 어린이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늘 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 
 
하늘 나라가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라면, 우리는 열심히 어린이처럼 살아야 합니다. 외모를 어린이처럼 꾸미면 될까요? 아니면 말투를 어린이처럼 하라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어린이와 같은 마음으로 살라는 것입니다. 과거에 대한 미련을 간직하지 않으며 지금의 삶에 최선을 다하는 어린이처럼, 하느님께서 주시는 사랑을 순수한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어린이처럼, 이것저것 재면서 자신의 욕심과 이기심을 드러내지 않는 어린이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을 잘 살아야 함을 깨닫습니다. 따라서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찾아야 합니다. 이를 찾는 사람만이 미래에 할 수 있는 것도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선 주님께서 주신 처음 살아 보는 지금의 나이를 기쁘게 받아들였으면 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삶이 주님의 훌륭한 선물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나이를 떠나 지금의 ‘나’를 더 사랑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어린이와 같은 사람에 더 가까워질 수 있습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은 우리가 가진 것이 아닌, 우리가 함께하는 사람이다.

- 스티브 레더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님의 오늘 말씀 묵상 업데이트 준비중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프란치스코회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사랑의 타성과 사랑의 갱신

 

“누구를 섬길 것인지 오늘 선택하여라.” 

오늘 독서는 여호수아기의 마지막 장입니다. 어제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에 얼마나 좋은 것을 많이 베풀어 주셨는지 장황하게 얘기한 여호수아는 이제 자기 삶과 역할을 마감하면서 이스라엘의 하느님을 섬길 것인지 다른 신을 섬길 것인지 선택하라고, 그것도 오늘 이스라엘 백성에게 선택하라고 촉구합니다. 

저는 오늘 여호수아의 촉구를 들으면서 ‘오늘 선택’하라는 말이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그런데 선택하라는 것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진정 선택의 자유가 있는 것입니까? 말로만 선택이지 실제로는 어찌해야 할지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닐까요? 

사실 그런 면이 있고 또 그래야 우리 인간 입장에서는 마땅하지만 하느님께서는 분명 우리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셨고 그 자유의지로 당신을 선택할 수도 있고 떠날 수도 있게 해주셨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종처럼 비굴하게 하느님을 섬기지 않고 자유가 있는 존재로서 사랑으로 섬기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이로써 우리는 귀인이 되게 하시고 당신은 귀인의 사랑을 받고자 하심입니다. 

우리도 사랑을 받는다면 종의 사랑보다 귀인의 사랑을 받길 원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선택하라고 촉구하는 것은 여호수아입니다. 그래서 이것의 의미는 다릅니다. 

제 생각에 이것은 너희가 다시 선택하라는 말이고, 부모와 조상의 선택에 떠밀려서 하느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너희의 선택으로 새롭게 다시 섬기기 시작하라는 것일 겁니다. 

예를 들어 부모의 선택으로 신자가 되거나 부모의 권유로 수도원에 들어온 경우 자녀들이 성인이 되어 성당을 멀리하거나 수도원 성소의 갈등을 겪게 되는데 저는 이것이 오히려 잘 된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가운데 하나입니다. 

복음의 비유에서처럼 ‘예’라고 하고는 포도밭에 가지 않은 아들보다 ‘싫다’라고 했지만 뉘우치고 포도밭에 가는 아들이 더 낫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부모의 선택, 조상의 선택이 아니라 자기의 선택이어야 하고, 그것은 자기의 자유로운 사랑으로 섬기는 것이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오늘’이라는 말을 강조합니다. 과거 조상들이 어떠했어도 오늘 네가 새로이 결정하고 선택하라는 것이고, 또 나의 결정으로 하느님을 섬겨왔더라도 오늘 다시 선택하라는 것입니다. 

이 경우, 오늘 선택하라는 것의 의미는 사랑의 타성을 깨는 의미이고 사랑을 갱신하는 의미입니다. 이는 한번 결혼했으니 사랑 없이도 남편과 아내로 그냥 사는 것이 아니라 아내와 남편을 매일 다시 선택하고 새롭게 사랑하기로 마음을 먹음으로써 타성적으로 사랑하지 않고 오늘 다시 사랑하기 시작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뭐든지 갱신하지 않으면 타성에 젖기 쉽기에 세례를 갱신하고, 서약을 갱신하고, 혼인을 갱신하라는 일깨움을 여호수아로부터 받는 오늘 우리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사실 하늘 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

 

이른 아침 맑은 이슬을 봅니다. 하늘 나라로 가는 길이 오히려 어린이들과 같이 낮아지는 땅에 있음을 뜨겁게 깨닫습니다. 어린이들의 즐겁게 노는 모습은 언제나 아름답습니다. 각양각색의 작은 힘이 모여야 큰 힘이 됩니다. 한마음 한마음이 모두 소중합니다. 어린이들의 친구가 되시는 주님이십니다. 

어린이들 마음 안에 하늘 나라가 있습니다. 경쟁과 차별 비교가 없는 모두가 평등하고 소중하고 편안하고 자유롭고 다정한 모두의 친구가 되시는 예수님의 사랑법입니다. 전인적인 인격 형성을 위한 인간 교육은 언제나 주님을 향하는 데 있습니다. 어린이들은 자신들의 마음을 숨기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돕는 마음은 언제나 순진한 마음입니다. 

단순한 행복을 놓치고 사는 제자신입니다. 삶의 전부를 거는 것도 단순한 사랑입니다. 사는 재미를 잃고 살아갑니다. 예수님께로 갈 수 있는 모든 길은 동네 놀이터에서 다시 시작됩니다. 즐겁게 사는 법을 즐겁게 노는 법을 다시 배우라고 어린이들이 우리의 스승이 됩니다. 감추는 법이 아니라 나누는 법을 즐겁게 뛰노는 법을 오늘 다시 만나는 우리의 하늘 나라입니다. 즐겁게 기도하고 즐겁게 맡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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