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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3/08/16 (수)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3. 8.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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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당신의 계약을 돌아보소서! 가련한 이들의 생명을 저버리지 마소서. 일어나소서, 주님, 당신의 소송을 친히 이끄소서. 당신을 찾는 이들이 외치는 소리를 잊지 마소서.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성령의 이끄심으로 하느님을 감히 아버지라 부르오니 저희 마음에 자녀다운 효성을 심어 주시어 약속하신 유산을 이어받게 하소서.

 

2023년 8월 16일 (수)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랜선으로 초대합니다!

2023년 8월 16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연중 제19주간 수요일

 

 

마태오복음 성경 말씀 카드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다. (마태 18,20)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다. (마태 18,20) 마태오복음 성경 말씀 카드 이미지 다운로드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1독서
    (신명기 34,1-12)
    모세는 주님의 말씀대로 모압 땅에서 죽었다. 그와 같은 예언자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았다.

  • 오늘 복음
    (마태오 18,15-20)
    그가 네 말을 들으면 네가 그 형제를 얻은 것이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3년 8월 16일 (수) 평화방송 매일미사 명동성당 매일미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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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묵상 바로가기

 

 

매일미사 복음 (Gospel)
복음 (Gospel)

 

하느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을 당신과 화해하게 하시고 우리에게 화해의 말씀을 맡기셨네.

 

 

마태오 복음
18장 15-20절

 

그가 네 말을 들으면 네가 그 형제를 얻은 것이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5 
“네 형제가 너에게 죄를 짓거든, 가서 단둘이 만나 그를 타일러라. 그가 네 말을 들으면 네가 그 형제를 얻은 것이다. 

16 
그러나 그가 네 말을 듣지 않거든 한 사람이나 두 사람을 더 데리고 가거라. ‘모든 일을 둘이나 세 증인의 말로 확정 지어야 하기’때문이다. 

17 
그가 그들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거든 교회에 알려라. 교회의 말도 들으려고 하지 않거든 그를 다른 민족 사람이나 세리처럼 여겨라. 

18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19 
내가 또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 

20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

 

 

매일미사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3년 8월 16일 (수)
CPBC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임지용 베드로 신부

 

📌 미사시작 00:22

📌 강론시작 08:02

 

 

 

명동성당 매일미사

 

 

2023년 8월 16일 (수)
서울 명동대성당
매일미사 (오전 7시)
조인기 암브로시오 신부

 

📌 미사시작 04:36

📌 강론시작 13:43

 

 

 

팔로티회 매일미사

분당 팔로티회 매일미사

 

2023년 8월 16일 (수)
팔로티회 분당
성체조배 (15시)
매일미사 (16시)
야렉 카미엔스키 신부

 

📌 성체조배 0:02:05

📌 미사시작 1:01:45

📌 강론시작 1:11:24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오늘의 말씀 묵상
매일미사
정용진 요셉 신부

 

누군가 죄를 지으면 하느님께서는 그를 어떻게 하실까요?

 

벌을 내리실까요? 아니면 이미 죄지은 고통에 신음하는 그에게 더 큰 형벌을 내리시어 더욱 불행하게 하실까요? 오늘 복음을 읽어 보면 하느님께서는 그렇게 하지 않으실 것 같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죄인에게 다가가시어 그가 죄에서 벗어나 올바른 길을 걷도록 도와주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죄지은 사람을 어떻게 대하십니까? 첫째, 당신의 말씀과 영으로 그를 찾아가시고 죄인의 상처를 보듬어 낫게 하십니다. 둘째, 죄인에게 용서와 화해, 치유와 구원의 중재자들을 보내십니다. 그들은 바로 우리입니다. 오늘 복음을 이해하는 열쇠는 복음 바로 앞에 나오는 예수님 말씀입니다. 

바로 “작은 이들”에 대한 사랑, 곧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잃어버리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다.”(18,14)라는 말씀입니다. ‘이 작은 이들’이란 잘못을 저지른 이들, 그래서 길을 잃고 방황하는 이들입니다. 길을 잃고 헤매는 양을 찾아가는 목자의 여정은 순탄하지 않습니다. 그 여정 가운데 다칠 수도 있고, 깊은 구덩이에 스스로 빠질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모든 신자는 형제의 목자가 되어 주도록 부름받은 이들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죄를 지어 방황하는 이들을 가리켜 “네 형제”라고 하셨습니다. 잘못을 저지른 형제를 두고 우리는 하느님께 어떻게 말씀드릴까요? “제가 그를 지키는 사람입니까? 내가 그의 후견인입니까? 그 사람의 문제는 그의 문제일 뿐입니다.”라며 카인처럼 말하면 될까요?(창세 4,9 참조) 

우리는 모두 언젠가 하느님 앞으로 갑니다. ‘나’ 혼자 가는 것이 아니라 ‘형제들’과 맺은 관계로 그분께 갈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우리가 형제들을 하느님께 되돌아오게 하는 과정을 이야기합니다. 쉽지 않은 길이지만 용기 내어 우리 형제들에게 다가갑시다. 사랑으로 다가갑시다.

 

 

 

오늘의 말씀 묵상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조명연 마태오 신부

 

70-20-10의 법칙

 

책을 좋아하고 또 책을 통해 많은 것을 얻는 저에게 있어 책은 너무나도 고마운 존재입니다. 그래서일까요? 무엇인가를 배워야 할 때, 저는 제일 먼저 책을 구매합니다. 얼마 전에는 ‘와인’에 대해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 주변에 와인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와인을 말하는데, 제가 아는 와인이라고 하면, 미사주로 사용하는 ‘마주왕’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평소에 하던 대로 제일 먼저 ‘책’을 사서 읽었습니다. 그렇다면 와인에 대한 저의 호감도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올라갔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책만 읽었을 뿐, 와인은 전혀 마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책을 통해서, ‘70-20-10’의 법칙을 본 적이 있습니다. 어떤 것을 배울 때의 방법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가장 많은 70은 70%의 경험을 말하고 있고, 20은 20%의 멘토나 동료로부터의 가르침을, 마지막 10은 10%의 책이나 수업 등 책상에서 배우는 것이라고 하더군요. 따라서 가장 중요하고 확실한 방법은 무엇입니까? 
 
70%의 경험이 제일 중요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많이 이용하는 독서나 공부는 겨우 10%에 불과했습니다. 따라서 와인에 대해 알고자 했다면 가장 먼저 와인을 마셔봐야 했습니다. 하느님 사랑도 이렇지 않을까요? 
 
하느님 사랑을 알려면 어떤 방법이 가장 효과적일까요? 가장 중요한 것은 경험이었습니다. 스스로 기도하고, 스스로 사랑을 실천하면서 하느님 사랑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또 단순히 막연히 안다고 생각하는 것도 아니고, 또 그냥 책만 열심히 읽는다고, 그리고 좋은 지도자를 만난다고 해서 하느님을 알게 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과 함께하는 방법에 관해 이야기하십니다.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마태 18,20) 
 
주님과 함께해야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를 위해 공동체에서 벗어나서는 안 된다고 하시지요. 또 죄를 지었다고 해서 이웃을 공동체에서 쫓아내서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공동체 안에서 잘못된 형제자매를 고쳐 주려고 서로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합니다. 단순히 막연하게 아는 것이 아니라, 이런 사랑의 실천을 통해서만 우리와 함께하는 주님을 제대로 알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저처럼 이론으로만 알고 마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특히 주님에 대해서는 이론을 뛰어넘어서 이웃과 함께하는 본인의 사랑 실천을 통해서만, 주님과 함께하고 주님을 잘 알게 될 것입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무엇보다 먼저 믿으십시오. 그러면 그대가 장애라고 여겼던 대목들이 실은 크고 거룩한 유익이 됨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 오리게네스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교회 공동체 개인 간의 연결이 은총의 흐름에 끼치는 영향: 커뮤니티(교회) = 카리스마(성령) + 커넥팅(연결 시스템)

 

오늘 복음 말씀은 교회의 공동체성과 교회에 맡겨진 권한에 관한 내용입니다. 예수님은 어떤 형제가 죄를 지으면 먼저 단둘이 만나서 타이르고 그래도 듣지 않으면 두 사람을 더 데리고 가라고 하십니다. 그래도 안 되면 교회에 알리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으면 그냥 무시해버리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교회를 곧 당신 자신으로 파견하십니다. 교회를 받아들이면 당신을 받아들이는 것이고 아니면 당신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입니다. 교회와 그리스도는 하나입니다. 예수님은 교회를 파견하시며 당신의 모든 권한, 곧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주셨습니다.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그런데 교회는 결코 한 사람의 힘만으로 움직여서는 안 됩니다.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

사랑은 혼자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그래서 사랑 자체이신 하느님도 성부와 성자, 그리고 두 분이 당신을 내어주실 때 선물 전달자의 역할을 해주시는 성령, 이렇게 세 분으로 되어 있습니다. 

코로나가 시작되면서 많은 본당이 성사 생활을 하는 신자수가 상당히 줄어들었습니다. 다시 나오시는 분들은 대부분 다른 사람들과의 커넥팅이 잘 된 이들입니다. 어떤 단체에 속해서 활동하던 분들은 대부분 다시 나오지만, 혼자 미사만 다니던 분들은 상당수가 계속 냉담해하고 있습니다. 성사로 구원을 받는다는 것과 공동체에 속해야 하는 이유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에 한 자매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새언니가 마귀에 들렸다는 것입니다. 코로나가 풀리면서 성당에 나가려고 해도 성당 생각만 하면 머리가 아프고 성당 가까이 가면 몸이 굳어 식은땀이 난다는 것입니다. 억지로 성당에 데리고 나왔지만, 새언니는 전혀 더운 날씨가 아니었는데도 식은땀을 비 오듯 흘렸다고 합니다. 어찌어찌 고해성사를 보게 하고 성체를 영하게 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몸이 움직이지 않았고 앞으로 나아갈 때도 성당 모든 신자가 알아볼 정도로 몸이 마구 흔들렸습니다. 성체 한 번 영하게 하는데 그런 고생을 하면서 시누이도 진이 다 빠져버렸습니다. 

이때 성모님께서 깨달음을 주셨다고 합니다. 자기 혼자 새언니를 도우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혼자 안되면 공동체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레지오 하시는 분들에게 말해서 언니를 레지오에 입단하게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몇 주 사이에 악령의 지배로부터 완전히 벗어났다는 것입니다. 이것으로 우리는 왜 예수님께서 혼자 안 되면 공동체의 도움을 청하라고 했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저의 출신 본당의 본당신부님께서도 이와 같은 일을 겪으셨었습니다. 미국에서 교포 사목하실 때인데 어떤 분이 악령에 시달린다고 신자들이 찾아온 것입니다. 신부님은 겁이 났습니다. 자신은 마귀를 쫓아낼 자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끌려가다시피 해서 도착해보니 마귀는 당당히 신부님을 노려보며 신부님의 죄를 상세하게 말하더라는 것입니다. 창피해서 더 듣고 있을 수 없었지만, 또 오기가 생겨서 싸워보기로 합니다. 그러나 개인의 힘이 아닌 공동체의 힘을 빌려보기로 한 것입니다. 신자들에게 빙 둘러앉게 만들어 묵주기도를 함께 바쳤습니다. 처음엔 비웃었지만, 한 단씩 늘어나며 악령도 힘들어하는 기색을 보였습니다. 식은땀을 흘리고 소리를 지르다가 5단에 다다르자 마귀가 큰 소리를 지르며 그 사람을 놓아주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능력을 교회에게 주셨습니다. 그러니 그 능력이 발휘되기 위해서는 공동체의 힘이 필요합니다. 공동체는 마치 그물과 같습니다. 공동체가 서로 연결되어 있지 않다면 그만큼 많은 물고기를 놓칩니다. 

지금 소공동체 시스템 안에서는 소외되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세포처럼 어디엔가 다 속해 있게 만들어야 교회의 힘이 강해집니다. 우리 각자는 세포와 같고 그 세포들이 다 몸에 연결되어 있을 때 그 몸이 큰 힘을 발휘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소공동체 시스템의 개혁이 필요합니다. 모든 사람이 연결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그래야 그 역량으로 많은 물고기를 잡을 수 있게 됩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프란치스코회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내게 잘못한 사람에게 어떻게 해야할까

 

나에게 잘못한 사람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제 생각에 나를 위한 것과 그를 위한 것이 있을 것인데 먼저 나를 위해서는. 내게 잘못한 그의 잘못 때문에 흥분하거나 성내지 않고, 아무런 일이 없었던 듯 아무 소리 하지 않고 평상심을 유지하며, 그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용서해준 다음 내 마음에 그 일과 관련해 아무것도 남기지 않아 무심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기가 쉽습니까? 그래서 이렇게 할 수만 있다면 이것으로도 훌륭하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주님께서는 여기에 만족하지 말라고, 그를 위한 것도 하라고, 곧 그에 대한 사랑의 차원에서 세 가지를 하라고 하십니다. 

첫째 그의 잘못을 교정해주라고 하십니다. 내게 저지른 잘못 때문에 내 마음이 아픈 것이 아니라 그런 잘못이 그에게 있다는 것이 안타깝고 마음 아프기 때문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프란치스코는 권고에서 이렇게 얘기합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 원수를 사랑하고 너희를 미워하는 사람들에게 잘해주고 너희를 박해하고 중상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따라서 자기 원수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가 당하는 해(害)로 말미암아 괴로워하지 않고, 오히려 그의 영혼의 죄로 말미암아 하느님의 사랑 때문에 가슴 태우는 사람입니다.” 

이렇게 권고한 다음 프란치스코는 “행동으로 사랑을 보여줍니다.”라고 하는데 그 행동이 제가 생각하기에 오늘 주님께서 말씀하신 교정 행위입니다. 그에게 그런 잘못이 뿌리 깊게 있는 것이 마음 아파 교정해주는 겁니다. 

내 눈에 있는 들보도 문제지만 그의 눈에 티가 있다는 것도 문제이고 마음 아픕니다.,그래서 비록 그의 눈에 있는 티를 빼내 줄 자격이 없지만 그래도 그의 눈에 티가 있는 것이 마음 아파 빼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 혼자 하는 것이 역부족이거나 효력이 없다면 다른 사람을 데리고 가서라도, 그것도 부족하다면 공동체 전체에 호소해서라도 고쳐주라고 하십니다. 

다음은 풀어주는 것입니다.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여기서 풀어주는 것은 용서의 의미 곧 내게서 그를 풀어주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를 죄에서 풀어주는 것 또는 죄의 종살이에서 그를 풀어주는 것일 겁니다. 그러니까 충고를 통해서는 죄악에서 그를 풀어주고, 용서를 통해서는 내게서 그를 풀어주는 것입니다. 

다음은 기도해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육신의 병이 나면 기도해주는데 마음이나 정신의 병으로 인해 잘못하면 기도해주기보다 욕하고, 미워하고, 분노하고, 험담하고 내게 잘못할 경우엔 저주까지 퍼붓습니다. 

그런데 그러지 말라는 것입니다. 육신의 병이 든 사람보다 더 사랑하라는 말씀일 것입니다. 사실 육신의 병이 들거나 장애가 있으면 행복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마음이나 정신이나 영혼이 병이 들면 아무리 육신이 건강해도 행복할 수 없고 그래서 더 불행하고 더 불쌍하며 그래서 우리의 사랑과 기도가 더 필요합니다. 

이렇게 얘기하지만 참 이렇게 하기 어렵습니다.,그러니 그를 위해서도 기도해야겠지만 이럴 수 있는 내가 되도록 나를 위해서도 기도하고 기도 부탁도 해야겠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그가 네 말을 들으면 네가 그 형제를 얻은 것이다.

 

공동체적 정신과 공동체적 삶이 절실히 필요한 우리시대의 삶입니다. 공동체의 실현은 나눔의 실현이기도 합니다. 나눔의 실현은 하느님의 자비를 믿는 사랑의 진심어린 관계입니다. 믿음과 신뢰를 회복하는 첫시작은 언제나 우리의 대화에 있습니다. 결과만큼 중요한 것은 공동체와의 화해를 위한 우리의 노력이며 그 과정입니다. 

모든 건강한 대화의 과정은 걱정과 의심을 없애주는 소통의 결실입니다. 그래서 대화는 독선과 아집을 내려놓고 서로 평등한 입장에서 만나 서로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대화가 빠져버린 공동체는 아픈 공동체입니다. 공동체의 위기는 또한 신앙의 위기이기도 합니다. 

공동체의 건설은 꿈이 아니고 실현 가능한 우리의 생활입니다. 이를 뒷바침 하는 예수님의 가르침이 있습니다. 공동체로 돌아가서 공동체로 살아가는 기도의 삶이 우리들의 건강한 복음의 삶입니다. 정신적 삶을 이끌어가는 것은 복음의 지혜입니다. 신앙 공동체의 제 자리를 찾는 길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귀 기울여 듣는 경청에서 시작됩니다. 말씀과 공동체 기도와 행복은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의 삶입니다. 서로의 삶을 행복하게 하는 신앙공동체이길 기도드립니다. 대화와 경청 기도와 생활로 공동체는 활기를 찾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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