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 큰 표징이 나타났네. 태양을 입고 발밑에 달을 두고, 머리에 열두 개 별로 된 관을 쓴 여인이 나타났네.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티 없이 깨끗하신 동정녀이시며 성자의 어머니이신 마리아를 하늘로 부르시어 그 육신과 영혼이 천상 영광을 누리게 하셨으니 저희도 언제나 하느님을 그리워하며 그 영광을 함께 누리게 하소서.
2023년 8월 15일 (화) 성모 승천 대축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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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8월 15일
성모승천대축일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성모 승천 대축일
루카복음 성경 말씀 카드
그분의 자비는 대대로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에게 미칩니다. (루카 1,50)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1독서
(묵시 11,19ㄱ; 12,1-6ㄱㄷ.10ㄱㄴㄷ)
태양을 입고 발밑에 달을 둔 여인. - 제2독서
(1코린 15,20-27ㄱ)
맏물은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다음은 그리스도께 속한 이들입니다. - 오늘 복음
(루카 1,39-56)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하시고,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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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 마리아 하늘로 오르시니 천사들의 무리가 기뻐하네.
루카 복음
1장 39-56절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하시고,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습니다.
39
그 무렵 마리아는 길을 떠나, 서둘러 유다 산악 지방에 있는 한 고을로 갔다.
40
그리고 즈카르야의 집에 들어가 엘리사벳에게 인사하였다.
41
엘리사벳이 마리아의 인사말을 들을 때 그의 태 안에서 아기가 뛰놀았다. 엘리사벳은 성령으로 가득 차
42
큰 소리로 외쳤다.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
43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저에게 오시다니 어찌 된 일입니까?
44
보십시오, 당신의 인사말 소리가 제 귀에 들리자 저의 태 안에서 아기가 즐거워 뛰놀았습니다.
45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
46
그러자 마리아가 말하였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47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
48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과연 모든 세대가 나를 행복하다 하리니
49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이름은 거룩하고
50
그분의 자비는 대대로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에게 미칩니다.
51
그분께서는 당신 팔로 권능을 떨치시어 마음속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습니다.
52
통치자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으며
53
굶주린 이들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유한 자들을 빈손으로 내치셨습니다.
54
당신의 자비를 기억하시어 당신 종 이스라엘을 거두어 주셨으니
55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대로 그 자비가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영원히 미칠 것입니다.”
56
마리아는 석 달가량 엘리사벳과 함께 지내다가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3년 8월 15일 (화)
CPBC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이재화 사도 요한 신부
📌 미사시작 00:22
📌 강론시작 16:30
명동성당 매일미사
2023년 8월 15일 (화)
서울 명동대성당
매일미사 (오전 7시)
전두병 요아킴 신부
📌 미사시작 07:26
📌 강론시작 19:22
팔로티회 매일미사
홍천 팔로티회 매일미사
2023년 8월 15일 (화)
팔로티회 홍천
매일미사 (15시)
장화기 바오로 신부
📌 미사시작 2:57:34
📌 강론시작 3:12:22
분당 팔로티회 매일미사
2023년 8월 15일 (화)
팔로티회 분당
성체조배 (15시)
매일미사 (16시)
김지학 요셉 신부
📌 성체조배 0:01:13
📌 미사시작 1:29:00
📌 강론시작 1:40:57
오늘의 말씀 묵상
매일미사
정용진 요셉 신부
마리아는 길을 떠나, 서둘러
오늘 복음은 “마리아는 길을 떠나, 서둘러” 엘리사벳의 집으로 갔다는 말로 시작합니다. 세상일 가운데 우리가 가장 서둘러야 하는 일은 하느님의 일입니다. 성모님께서는 하느님의 아드님을 태 안에 모시고 그분과 함께 가십니다.
즈카르야와 엘리사벳과 세례자 요한은 그분들을 오랫동안 기다려 왔습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구세주의 오심을 희망으로 기다려 온 이스라엘의 모든 의인을 대표하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 엘리사벳의 눈을 열어 주시어 성모 마리아께서 참된 계약의 궤, 하느님의 어머니이심을 알아보게 하십니다(43절 참조). 성령께서는 엘리사벳의 태 안에 있는 세례자 요한의 마음도 열어 주십니다.
“당신의 인사말 소리가 제 귀에 들리자 저의 태 안에서 아기가 즐거워 뛰놀았습니다.”
‘즐거워 뛰놀다’로 옮긴 말은 구약 성경에서 되찾은 계약의 궤를 보고 환호하며 다윗 임금이 뛰며 춤추는 것을 표현하고자 쓰인 말입니다(2사무 6,16 참조). 세례자 요한은 참된 계약의 궤 앞에서 다윗 임금처럼 뛰며 그분을 뵙는 기쁨을 표현합니다.
성모님께서는 하느님을 자신 안에 가두지 않으시고 그 넘치는 은총을 모든 이에게 나누어 주십니다. 이러한 이유로 예전부터 교회는 성모님을 가리켜 “즐거움의 샘”이라고 하였습니다. 성모님을 통하여 구세주께서 우리 가운데 현존하시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늘에 오르신 성모 마리아를 바라봅시다.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벅찬 희망과 기쁨으로 가득한 미래를 열어 주셨습니다. 성모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의 아들 예수님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법을 가르쳐 주시고 그분께 나아가는 길을 알려 주십니다.
성모님께서는 우리의 십자가가 무겁게 느껴지는 순간에도 한결같이 당신의 아드님을 따르는 모범을 보여 주시며, 분명히 우리가 참된 집, 영원한 우리의 본향으로 나아간다고 말씀하십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조명연 마태오 신부
지금 여러분은 어디쯤 오셨습니까?
신학생 때, 동아리 MT로 전라도에 갔던 적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광주신학교 신학생들을 만나서 모임을 하고, 저녁에 술자리를 함께했지요. 이 자리에서 안주로 ‘홍어’라는 것을 처음 접했습니다. 심한 암모니아 냄새와 함께 코가 뻥 뚫리는 체험을 했지요. 이 이상한 음식을 왜 먹나 싶었습니다. 몸에 좋다고는 하지만, 이렇게 고통을 느끼면서까지 먹어야 하냐고 물었지요. 하지만 그곳 신학생들은 계속 먹다 보면 없어서 못 먹을 지경이 된다면서 너무 좋아했습니다.
30년 전에 시작했던 홍어와의 만남이 지금은 어떨까요? 여전히 고통스러운 기피 음식일까요? 아닙니다. 이제 홍어가 나오면 입맛이 돋고 술맛도 더 좋아지는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고통이었지만, 지금은 기쁨이고 행복입니다. 왜 그럴까요? 홍어의 맛을 알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믿고 따른다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일 것 같습니다. 미사를 처음부터 기쁨과 행복으로 체험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군대에 있을 때, 성당 가면 맛있는 간식 준다고 꼬셔서 함께 미사에 갔던 동료가 제게 이렇게 말하더군요.
“성당의 미사는 너무 힘들어. 계속해서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하니, 편안히 잠잘 수 있어야 말이지. 그런 면에서 불교가 최고야.”
그러나 주님을 따르는 기쁨은 이 고통을 넘어서야 했습니다. 진짜 맛을 느끼는 상태까지 와야만 했습니다. 지금 여러분은 어디쯤 오셨습니까?
오늘 우리는 성모 승천 대축일을 지냅니다. 주님의 어머니이신 동정 마리아께서 지상 생애를 마치신 다음 하늘로 불려 올라가신 것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상당히 부러울 수밖에 없는 하느님의 영광이 가득한 성모님의 승천이지요. 죽음을 건너뛰고 하늘로 오른다는 것이 얼마나 커다란 은총이며 영광입니까? 그러나 이 영광은 단순히 예수님의 어머니이시기 때문에 얻은 것도, 또 운이 좋아서 얻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잉태 순간부터 예수님의 죽음 때까지 성모님께서는 계속된 고통을 당신의 가슴으로 안으셔야만 했습니다. 그 고통의 크기는 결코 작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 잉태 소식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아직 결혼하지 않은 성모님께는 돌에 맞아 죽을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낳을 장소가 없어서 허름한 마구간을 선택했던 것도 큰 고통이었을 것입니다. 또 산후조리도 못 한 채 이집트로 피신까지도 가야 했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성전에서 잃어버리기도 했고, 세상에 나간 아들이 미쳤다는 말도 듣습니다. 이것도 부족했는지 이제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는 모습까지도 직접 봐야만 했습니다.
이 모든 고통과 시련을 넘어섰기에 하느님을 제대로 알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요? 그리고 이 모든 것에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이 성모승천이라는 영광으로 이끌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작은 고통과 시련에도 크게 넘어져서 주님으로부터 더 멀리 벗어나는 것이 아닐까요?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만약 인생이 하나의 긴 문장이라면 거기에는 반드시 쉼표가 필요하다.
- 백영옥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성모님은 당신께서 승천하실 것을 아셨을까?
오늘은 성모님께서 하늘로 승천하신 날을 기념합니다. 예수님이야 하느님이시기 때문에 다시 아버지께 당연히 승천하시어야 할 것입니다. 성모님은 예수님 덕분으로 하늘로 오르신 최초의 인간이 되셨습니다. 성모님께서 하늘로 오르신 이유는 ‘믿으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엘리사벳은 성모님을 만나 이렇게 말합니다.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
그런데 무엇을 믿으셨을까요? 성모님은 승천하신 것을 믿으셨을까요? 이것이 궁금해집니다. 열심히 신앙생활 하다 보면 우리도 승천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승천할 것을 믿어야 승천할 수 있을까요?
요즘 디즈니 플러스에서 ‘무빙’이라는 드라마를 합니다. 초능력을 지녔던 전직 국정원 부모들이 자신들의 초능력을 물려받은 자녀들을 낳아 그들을 보호하기 위해 벌어지는 사건들을 다루었습니다.
여기서 고3 김봉석은 하늘을 나는 능력을 지녔습니다. 그리고 상처가 나지 않는 재생능력을 지닌 장희수를 좋아하게 됩니다. 김봉석은 기분이 좋아지면 하늘로 뜨게 되는데 엄마는 그런 능력이 발각되면 위험해질 것을 알아서 봉석이 날지 못하게 합니다. 무거운 것들을 차고 들고 넣고 다니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체육관에서 농구대가 빠져 희수가 다치게 되었을 때 무거운 것을 차고 있는 봉석은 날아서 그녀를 구해줄 수 없었습니다. 대신 다른 능력을 지닌 반장 이강훈이 그녀를 도와줍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여자가 반장은 좋아하게 될까 봐 겁이 난 봉석은 자신도 나는 법을 제어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그러면 아빠처럼 아이가 다치게 될까 봐 걱정하고 야단칩니다.
오늘 성모님은 하늘을 나셨습니다. 이는 이 세상의 누구도 그분의 믿음을 잡아끌지 못했음을 의미합니다. 믿음의 바탕은 지혜입니다. 지혜는 우리를 믿음으로 초대합니다. 믿음도 하나의 선택이고 결정입니다. 믿기로 선택하고 결정하는 것입니다. 결혼은 생각하면 쉽겠습니다. 믿으니까 선택하고 결혼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선택을 위해서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지식만 가지고는 속기 십상입니다. 결혼하기 전에 자꾸 만나보면서 내가 가진 지식으로 믿어도 될 사람인지 아닌지 판단하게 됩니다. 자녀에게 지식이 아닌 지혜를 주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성모님께서 믿으신 것은 무엇일까요? 가브리엘 천사가 성모님께 나타나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루카 3,28)라고 말해줍니다. 은총은 아담의 죄로 끊겼고 그래서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실 수 없다는 믿음이 팽배하였습니다. 하느님께서 함께 계시면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을 리가 없었습니다. 그러자 천사는 “두려워하지 마라, 마리아야. 너는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루카 3,30)라고 말해줍니다. 더 말이 안 됩니다. 다른 수많은 여인이 있는데 왜 자신만이 특별히 하느님의 총애를 받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전해주는 말은 더 황당합니다.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그분께서는 큰 인물이 되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드님이라 불리실 것이다.”(루카 1,31-32)
만약 성모님께서 겸손하셨다면 “농담이 지나치십니다!”라고 말씀하셔야 하셨을까요? 성모님은 감히 인간이 하느님의 어머니가 된다는 말에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라고 하십니다.
겸손은 자신을 낮추는 것입니다. 더 겸손하여지려면 더 낮추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더 올라가야 합니다. 이것이 지혜입니다. 지혜는 우리가 더 가졌다고 믿어야 진짜 가지게 된다는 것을 일깨워줍니다. 지식이 아껴야 잘 산다고 말한다면, 지혜는 더 가졌다고 믿으면 결국엔 가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식을 지혜로 만드는 진리입니다.
“‘하실 수 있으면’이 무슨 말이냐? 믿는 이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마르 9,23)
『더 해빙』의 홍주연 작가는 사업 실패로 돈에 대한 트라우마가 심했던 아버지 밑에서 컸습니다. 아버지는 자린고비셨습니다. 그래서인지 아버지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 굴비였습니다. 아버지가 췌장암에 걸렸다고 하여 홍주연 작가가 마지막에 굴비라도 실컷 드시고 가시라고 열 마리 보내드렸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것도 아껴 드시다 다섯 마리를 남기고 돌아가셨습니다. 병원도 굳이 6인실을 선택하여 죽을 때까지 돈을 아끼셨습니다. 그러나 홍주연 작가는 ‘그렇게 돈을 아끼면서도 왜 아버지는 평생 가난하셨을까?’를 궁금해하였습니다.
얼마 전에 어떤 누군가에게 행복해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분은 상처가 많으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난 행복하면 안 돼요.”
이것을 누가 정해줬을까요? 내가 행복할 수 있는 존재라고 믿어야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부활도 마찬가지고 승천도 마찬가지입니다.
홍주연 작가는 왜 아버지가 아끼면서 가난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알기 위해 어렸을 때부터 비범하였고 지금은 전 세계 재벌들의 컨설팅을 해주고 있는 이서윤 선생을 만납니다. 그녀는 수십만 명의 부자들을 연구하여 ‘해빙’(Having)이라는 용어를 만들어 낸 인물입니다.
그녀는 홍주연 작가에게 돈을 많이 벌고 싶다면 기쁘게 쓰라고 말해줍니다. 돈을 낭비하라는 말이 아니라, 돈을 쓰면서 기쁜 마음이 들 때만 쓰라는 것입니다. 꼭 필요했던 것, 혹은 누군가를 도와줄 때는 돈을 쓸 때 마음이 기쁩니다. 그렇게 무언가를 기쁘게 내어줄 수 있다면 그 사람은 그 원천으로 향하게 됩니다. 원천으로 향할수록 더 많이 받게 됩니다. 원천은 그것이 솟아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돈을 저축하는 것이 아니라 기쁘게 쓰는 것이 부자가 되는 길이라는 말은 주님의 뜻대로 돈을 쓰면 주님께서 다 채워주신다는 믿음이 깔려있습니다. 너무 아낀다는 말은 행복을 스스로 거부하는 것입니다. 대부분 자신이 아니라 다른 이를 기쁘게 해주기 위해 돈을 쓸 때 기쁩니다. 그리고 그렇게 사랑을 실천하는 이에게 주님께서도 아끼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삶 안에서 언제든 이런 부활과 승천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저는 성모님께서 예수님께서 승천하셨으니 당연히 당신도 승천하실 것을 믿으셨다고 확신합니다. 베드로가 예수님께서 물 위를 걸으시니 자신도 걸을 수 있음을 믿었던 것과 같습니다. 성모님은 당신이 원하시는 것을 예수님께서 다 해주실 것을 믿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당신처럼 할 수 있음을 믿으라고 인간이 되셔서 모든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성모님은 예수님의 승천을 보시며 당신도 승천하실 것도 믿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믿는 대로 되었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프란치스코회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땅에서 하늘을 살기
오늘 축일의 복음은 마리아와 엘리사벳이 만났을 때 엘리사벳이 마리아에게 덕담하자 이에 마리아가 하느님을 찬미하는 내용입니다.
엘리사벳의 덕담은 이것입니다.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
여기서 엘리사벳은 마리아가 여인 가운데 가장 복되다고 하는데, 마리아가 여인 가운데 가장 복된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제 생각에 이 세상에서는 마리아만큼 불행한 여인이 없는데 어째서 마리아가 여인 가운데서 가장 복되다고 하는 겁니까?
마리아가 가장 행복한 이유는 이 세상에서가 아니라 저세상에서고, 오늘 우리가 축일로 지내듯 저세상으로 바로 올라갔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마리아가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였기 때문이고, 아들의 Passio(수난)를 Compassio(동병상련)했기 때문이며, 아들의 수난에 동병상련했기에 아들을 따라 하늘로 올려졌기 때문입니다.
사실 마리아의 축일은 오늘 축일뿐 아니라 모두 아들을 따르는 축일이지만 가장 대표적인 축일이 십자가 현양 축일과 성모 통고 축일이고, 그리고 예수 승천 축일과 성모 승천 축일입니다.
사실 두 분뿐 아니라 아들과 엄마의 관계가 대개 그렇습니다. 어렸을 때 아들이 가는 곳은 엄마가 가는 곳이다가 나이를 먹으면 그것이 바뀌어 아들이 가는 곳이 엄마가 가는 곳이 됩니다.
예수님과 마리아도 그랬을 겁니다. 그러다가 예루살렘 성전 방문을 기점으로 바뀌기 시작했을 겁니다. 어린 예수가 부모를 따르지 않고 성전에 홀로 남은 사건 말입니다.
왜 부모를 따르지 않았느냐고 어머니 마리아가 나무라자 당돌하게도 아들 예수가 오히려 어머니 마리아를 나무라는데, 그것은 당신이 아버지 집에 있어야 하는 것을 모르셨냐는 거였고, 이것을 마리아는 마음속에 깊이 그리고 오래 간직하였다는 거였지요.
이것이 인간적으로는 사춘기 현상 곧 부모로부터의 독립 현상이라고 할 수 있지만 신앙적으로는 이제 아들이 더 이상 인간 부모의 아들이 아니라 하느님의 아들이 되는 사건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아무튼, 이때부터 마리아는 예수의 어머니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어머니가 되고, 아들 예수가 그리스도로서 가는 길을 끝까지 따릅니다.
그리스도의 길이란 타볼산에서 내려와 해골산으로 오른 십자가 길이고, 이 세상을 떠나 저세상으로 옮아가는 나그넷길이요 승천의 길입니다.
오늘 감사송은 마리아가 이 길을 충실히 간 우리의 모범이라고 찬미합니다.
“동정 마리아께서는 완성될 주님 교회의 시작이며 모상으로서, 나그넷길에 있는 주님의 백성에게 희망과 위안을 보증해 주셨나이다.”
우리가 이 축일을 성대하게 지내는 이유는 우리가 가야 할 곳을 마리아가 우리에게 선명히 보여주셨기 때문이라는 얘기이겠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마리아처럼 나그넷길을 잘 가 ‘직 천당’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그것이 오늘 본기도에 잘 나와 있습니다.
“티 없이 깨끗하신 동정녀이시며 성자의 어머니이신 마리아를 하늘로 부르시어 그 육신과 영혼이 천상 영광을 누리게 하셨으니 저희도 언제나 하느님을 그리워하며 그 영광을 함께 누리게 하소서.”
그리워하는 것, 하느님과 하느님 나라를 늘 그리워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자주 얘기하듯 ‘땅에서 하늘을 사는’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입니다.
승천의 일상 승천의 여정인 가장 좋은 사랑입니다. 새로운 이 모든 것이 시작될 때는 언제나 아픔과 두려움이 있지만 새로운 모든 것이 완성될 때는 승천처럼 진정한 기쁨과 영광으로 우리를 가득채웁니다. 평범하고 소박한 뜻이 하느님을 만나면 이와 같이 가장 위대하고 가장 아름다운 사랑의 가르침이 됩니다.
하느님을 낳으시고 하느님을 길러주신 하느님의 어머니께서 오늘 하늘나라로 승천하십니다. 고맙고 존귀하며 고맙고 소중하신 우리의 어머니의 여정입니다. 우리보다 더 기뻐하시고 우리보다 더 애태우시는 우리보다 더 안타까이 슬퍼하시는 우리 어머니의 삶입니다. 화려함만 승천이 아닙니다. 비천함도 가난함도 승천의 놀라운 선물들입니다.
우리 인생의 여정 끝에서 우리를 맞이하여 주시는 하느님이 계십니다. 사랑이 있는 곳에 사랑의 결실이 있습니다. 승천은 사랑의 가장 아름다운 결실입니다. 올리시는 분도 내리시는 분도 하느님이십니다. 끝내 우리모두는 비천함을 지나 하느님의 기쁨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사랑의 땅은 사랑의 하늘로 이어집니다. 하느님께서 만들어 가시는 삶입니다.
문을 열어주시지 않고서는 들어갈 수 없고 이끌어주시지 않고서는 오를 수 없는 승천의 여정입니다. 사랑한 모든 시간이 신비이며 은총이었습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 승천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으로 사랑을 완성하는 우리들이길 기도드립니다. 은총 가득하신 고마우신 사랑의 마무리는 승천입니다. 끝내 만나게 되는 믿음과 사랑의 진정한 승리입니다.
믿음은 미끄러지는 것이 아니라 한걸음 한걸음씩 오르는 것입니다. 사랑은 가장 소중하고 중요한 것을 향하는 우리의 일상입니다. 우리 일상의 소중한 승천을 위해 기도드립니다. 성모 승천의 발걸음을 기억하는 소중한 대축일 되십시오. 모든 이야기의 끝은 사랑이며 하느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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