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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3/05/25 (목)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3. 5.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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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신을 가지고 은총의 어좌로 나아가자. 자비를 얻고 도움의 은총을 구하자.

주님, 주님의 성령을 보내시어 저희를 영신의 선물로 가득 채워 주시고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새 마음으로 주님의 뜻에 따라 살게 하소서.

 

2023년 5월 25일 (목)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랜선으로 초대합니다!

2023년 5월 25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부활 제7주간 목요일

 

 

요한복음 성경 말씀 카드

아버지가 제 안에 계시고 제가 아버지 안에 있듯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하소서. (요한 17,21)

 

아버지가 제 안에 계시고 제가 아버지 안에 있듯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하소서. (요한 17,21) 요한복음 성경 말씀 카드 이미지 다운로드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1독서
    (사도행전 22,30; 23,6-11)
    너는 로마에서도 증언해야 한다.

  • 오늘 복음
    (요한 17,20-26)
    이들이 완전히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3년 5월 25일 (목) 평화방송 매일미사 명동성당 매일미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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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묵상 바로가기

 

 

매일미사 복음 (Gospel)
복음 (Gospel)

 

주님이 말씀하신다. 아버지, 아버지가 제 안에 계시고 제가 아버지 안에 있듯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하소서. 아버지가 저를 보내셨다는 것을 세상이 믿게 하소서.

 

 

요한복음
17장 20-26절

 

이들이 완전히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그때에 예수님께서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어 기도하셨다. “거룩하신 아버지, 

20 
저는 이들만이 아니라 이들의 말을 듣고 저를 믿는 이들을 위해서도 빕니다. 

21 
그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아버지, 아버지께서 제 안에 계시고 제가 아버지 안에 있듯이, 그들도 우리 안에 있게 해 주십시오. 그리하여 아버지께서 저를 보내셨다는 것을 세상이 믿게 하십시오. 

22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영광을 저도 그들에게 주었습니다. 우리가 하나인 것처럼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23 
저는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는 제 안에 계십니다. 이는 그들이 완전히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버지께서 저를 보내시고, 또 저를 사랑하셨듯이 그들도 사랑하셨다는 것을 세상이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24 
아버지,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이들도 제가 있는 곳에 저와 함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세상 창조 이전부터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시어 저에게 주신 영광을 그들도 보게 되기를 바랍니다. 

25 
의로우신 아버지, 세상은 아버지를 알지 못하였지만 저는 아버지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도 아버지께서 저를 보내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26 
저는 그들에게 아버지의 이름을 알려 주었고 앞으로도 알려 주겠습니다.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신 그 사랑이 그들 안에 있고 저도 그들 안에 있게 하려는 것입니다.”

 

 

매일미사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3년 5월 25일 (목)
유명일 사무엘 신부 집전

 

📌 미사시작 00:22

📌 강론시작 07:29

 

 

 

명동성당 매일미사

 

 

2023년 5월 25일 (목)
진슬기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 집전

 

📌 미사시작 09:22

📌 강론시작 18:01

 

 

 

팔로티회 매일미사

홍천 팔로티회 매일미사

 

2023년 5월 25일 (목)
팔로티회 홍천
매일미사 오후 3시
안동억 프란치스코 신부 집전

 

📌 미사시작 00:04

📌 강론시작 07:00

 

분당 팔로티회 매일미사

 

2023년 5월 25일 (목)
팔로티회 분당
성체조배 오후 3시
매일미사 오후 4시
김지학 요셉 신부 집전

 

📌 성체조배 0:01:47

📌 미사시작 1:01:15

📌 강론시작 1:09:43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오늘의 말씀 묵상
매일미사
강수원 베드로 신부

 

사랑 안에 머물도록 인도하는 믿음.

 

오늘 복음은 매우 어렵게 느껴집니다. 절마다 ‘이들’과 ‘그들’이라는 말이 혼재하고, 주어가 바뀐 채 ‘하나가 되다.’(21.22.23절)와 ‘누가 누구 안에 있다.’(21.23.26절) 같은 표현이 거듭되며, 때로 앞뒤 문장의 인과 관계도 잘 와 닿지 않아 이해하려고 애쓰다 보면 피로감마저 듭니다. 그러나 이 기도는 주님께서 우리를 포함한 ‘모든 믿는 이’를 위하여 성부께 드리신 마지막 간청이기에, 쉽게 놓을 수 없습니다.

고별 담화와 고별 기도(요한 13―17장 참조)를 읽다 보면, ‘세상’은 제자들과 맞서는 불신과 폭력의 주체요 어둠의 세력으로 보이지만, 놀랍게도 주님의 기도의 끝은 바로 그 세상을 향합니다. 그분의 온 생애는 아버지께서 당신을 보내셨음을 “세상이 믿게”, 그리고 아버지께서 당신을 사랑하셨듯이 모든 믿는 이를 사랑하셨음을 “세상이 알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아버지와 아들의 영원한 사랑과 일치의 관계를 모든 이에게로 넓히십니다. 주님께서 그토록 간절히 청하시는 ‘믿는 이의 하나 됨’은 결국 온 세상이 아버지와 아들을 알고 삼위의 사랑 안으로 들어가도록 인도하는 표징입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주님을 알지 못하는 사두가이들과 바리사이들은 논쟁과 다툼으로 분열되지만, 바오로는 사랑하는 주님을 만나 증언하고 순교할 로마로 갈 수 있는 용기와 위로를 얻습니다.

많은 걱정과 시련 가운데서도 우리가 사랑하는 가족과 이웃들과 일치와 평화를 나눌 수 있다면, 그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가능한 일입니다. 주님을 믿고 고백하며 살아가는 나의 일상은 그들을 모두 하느님께로 인도하는 가장 강력한 표징이 될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조명연 마태오 신부

 

‘사랑해’는 행복 옆에 있지만, ‘사랑해줘’는 행복에서 멀다.

 

엄마가 자녀를 위해 자녀가 좋아하는 음식을 열심히 만들고 있습니다. 왜 음식을 만들까요? 자녀를 사랑하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자녀에게 사랑받기 위한 것일까요? 남편이 아내에게 쉬라고 하면서 혼자 청소기를 돌려 청소하고, 밀린 설거지도 모두 깨끗하게 합니다. 이 행동은 아내를 사랑하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아내에게 사랑받기 위한 것일까요? 당연히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이런 것입니다. 즉, 사랑받는 것에 목적이 있지 않고, 사랑하는 것이 본래의 사랑이었습니다. 나의 사랑으로 상대방이 기뻐하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것입니다. 그런데 사랑받는 것에 집중하는 순간, 집착을 하게 되면서 입으로는 ‘사랑’을 말해도 사랑 같지 않은 모습으로 변하게 됩니다. 내가 이렇게 사랑을 줬는데, 내게 사랑을 주지 않느냐면서 화를 내게 됩니다. 자기 기준으로 받는 사랑의 양을 평가하면, 상대방의 사랑은 늘 작게만 보일 것입니다. 타인의 모습에 실망하고 자기 기대에 못 미친다면서 또 왜 노력하지 않냐면서 사랑과 정반대인 미움이 등장하게 됩니다. 
 
사랑받고자 하는 마음이 들면, ‘이것은 사랑이 아니구나.’를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는 나의 사랑이 아니라 나의 욕심일 뿐입니다. 사랑은 받는 것에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주고자 하는데서 환하게 그 모습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어느 책에서 사랑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었습니다. 
 
“‘사랑해’는 행복 옆에 있지만, ‘사랑해줘’는 행복에서 멀다.” 
 
주님의 사랑은 당연히 주는 사랑이었습니다. 자신의 모든 것, 우리가 가장 소중하다고 말하는 생명까지도 주는 사랑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사랑을 본받기는커녕 가짜 사랑인 받는 사랑만 강조했던 것이 아닐까요? 
 
예수님께서 이렇게 기도하십니다. 
 
“저를 믿는 이들을 위해서도 빕니다. 그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요한 17,20) 
 
당신을 믿는 우리 신자 공동체가 ‘하나’ 되길 기도하십니다. 그 ‘하나 됨’은 사랑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하나를 이룰 수 있을까요? 주님께서 보여 주신 사랑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주님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자기 자신을 몽땅 예수님께 맡길 수 있는 사랑 안에서 우리는 진정으로 ‘하나’를 이룰 수가 있습니다. 사랑의 공동체가 되는 것입니다. 
 
주님을 믿는 사람은 받는 사랑만을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그보다는 주는 사랑에서 주님과 하나 됨을 이룰 수 있게 됩니다. 이렇게 주는 사랑인 진짜 사랑을 실천하는 공동체를 이루기를 간절하게 바라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내 삶에 욕심을 내 보자. 나에게 관심을 갖고, 나를 공부하고, 내 욕심에 솔직해져 보자. 내 삶을 내 식대로 만들어 가자.

- 최서영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일치의 핵심 전략: 같은 영광을 누리게 하라.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들의 말을 듣고 저를 믿는 이들을 위해서도 빕니다. 그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라시며 당신을 믿는 이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해 달라고 청하십니다. 그 방법은 당신이 주시는 영광을 통해서입니다. 

성령께서 영광 자체이십니다.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영광을 저도 그들에게 주었습니다. 우리가 하나인 것처럼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라고 하십니다. 영광은 부모가 자녀에게 주는 살과 피처럼 자녀의 지위를 높여주어 영광스럽게 합니다. 그러면 그 자녀들은 부모의 같은 영광 안에서 하나가 됩니다. 

아무리 친구가 잘해 주어도 형제만 못한 이유가 부모의 같은 영광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으로 세상 사람들은 부모가 서로 사랑하여 자녀에게 사랑을 주었음을 알고 믿게 됩니다. 자녀가 서로 사랑하는 것은 부모를 영광스럽게 하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부모가 서로 사랑하지 않으면 영광이 자녀에게 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녀는 부모가 준 영광을 거부하지 않기 위해 형제간에 서로 하나가 되어야만 합니다. 이 영광이 일치의 힘입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인빅터스’는 1995년 남아공 럭비 월드컵을 둘러싼 실화를 바탕으로 한 2009년 영화입니다. 영화의 시작 부분에서 넬슨 만델라는 아파르트헤이트(백인들이 흑인들을 차별하기 위해 만든 정책) 종식 후 흑인 최초로 남아공 대통령으로 새로 선출됩니다. 

그러나 나라는 여전히 인종에 따라 깊게 분열되어 있습니다. 아파르트헤이트 기간 27년을 감옥에서 보낸 만델라는 국가의 상처를 치유하는 데 도움이 되는 상징적인 화해 행위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만델라는 국가 통합의 수단으로 럭비로 눈을 돌립니다. 

당시 남아공 럭비팀인 스프링복스(Springboks)는 주로 백인이었고 많은 흑인 남아프리카인에게 아파르트헤이트의 상징으로 여겨졌습니다. 스프링복스가 경기할 때 남아프리카 공화국 흑인들은 자신들의 백인 팀은 스프링복스가 아니라 오히려 영국이나 뉴질랜드, 프랑스 같은 다른 팀을 응원하였습니다. 게다가 스프링복스는 강한 팀이 아니며 남아공이 주최하는 다가오는 럭비 월드컵에서 탈락할 가능성에 직면해 있었습니다. 

만델라는 럭비 코치이자 주장인 프랑수아(Francois Pienaar)를 개인적으로 만납니다. 그리고 자신이 감옥에서 어떻게 견뎌낼 수 있었는지를 보여줍니다.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영적 자극’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며 분열이 아니라 일치를 위해 싸우라고 격려합니다. 

겨우 10%가 넘는 남아공 백인이 아니라 남아공 모든 시민을 위해 뛰라고 격려합니다. 프랑수와는 처음엔 매우 거북해하는 팀원들을 설득하여 흑인 아이들에게 럭비를 가르치도록 했습니다. 

대중의 인식을 바꾸기 위해 만델라는 스프링복스가 특히 불우한 흑인 지역 사회에서 전국적으로 지역 사회 봉사 활동을 수행하도록 권장합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스프링복스의 노력은 성과를 거두고 서서히 남아프리카 흑인의 지원을 받기 시작합니다. 만델라도 흑인들의 반대를 무릎 쓰고 인정차별의 상징이 되어버린 스프링복스의 운동복을 입고 응원하러 나옵니다. 그리고 불가능한 일이 일어납니다. 

세계 럭비 대회에서 강력한 우승 후보인 뉴질랜드를 꺾고 우승을 차지한 것입니다. 그러자 흑인과 백인 할 것 없이 서로 부둥켜안고 즐거움에 취합니다. 정말 오랜만에 흑인과 백인이 하나가 된 것입니다. 기자가 코치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곳 6만 5천 관중이 하나 되어서 응원했습니다.”

그곳 대부분의 관중은 백인이었습니다. 프랑수와는 대답합니다. 

“6만 5천 관중만 응원한 것이 아니라 4천 3백만 명의 온 국민이 응원해주었습니다.”

넬슨 만델라는 빈곤과 불황, 증오심으로 물든 조국에 스포츠로 영광을 심어주었습니다. 그 영광을 받으려면 백인들은 흑인 대통령인 넬슨 만델라의 영향력이 컸음을 받아들여야 했고, 흑인들은 백인 대표팀이 자신들의 팀임을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그렇게 하나의 영광은 오랜 분열의 간극을 좁혔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로부터 받은 영광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 영광으로 세상 사람들이 위대하다고 할 수 있는 업적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교회가 자랑스럽게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자녀들이 서로 싸우면 부모에게서 받은 영광을 함께 누리기를 거부하는 것이 됩니다. 부모가 준 사랑과 희생에 감사하다면 그 영광 안에 머물기 위해 형제를 사랑해야만 합니다. 

김수환 추기경님이 살아계셨을 때 가톨릭교회는 매우 영광스러운 종교였습니다. 그래서 누구나 가톨릭교회에 들어오고 싶어 하였습니다. 지금은 조금 약해진 느낌입니다. 많은 분열의 원인이 교회 안에 들어왔습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주시는 성령의 능력으로 영광스러운, 자랑스러운 교회 만들어가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하나 되는 길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프란치스코회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모두가 하나되는 

 

“저는 이들만이 아니라 이들의 말을 듣고 저를 믿는 이들을 위해서도 빕니다. 그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아버지, 아버지께서 제 안에 계시고 제가 아버지 안에 있듯이, 그들도 우리 안에 있게 해 주십시오.” 

오늘 복음은 대사제의 기도 끝부분입니다. 제자들을 두고 아버지께로 가시며 제자들을 위해 기도하신 주님께서 이제는 제자들의 말을 듣고 그리스도인이 되는 이들을 위해서 기도하시는데 제가 보기에 삼중도로 치면 최고의 경지에 이들이 도달케 되기를 기도하십니다. 

먼저 삼중도의 2단계라고 할 수 있는 조명의 단계에 도달케 되기를 기도하십니다. 하느님의 조명을 받아 모르던 것을 알게 되는 단계라고 할까요? 주님께서는 이렇게 기도하십니다. 

“아버지께서 저를 보내시고, 또 저를 사랑하셨듯,그들도 사랑하셨다는 것을 세상이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아는 것, 나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임마누엘 주님을 보내셨다는 것을 아는 것, 이것이 참으로 신앙의 높은 단계이고 이렇게 될 때 참으로 행복이 시작됩니다. 

나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다는 것, 나는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모르기에 불행한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 내가 지금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안다는 것은 얼마나 큰 행복입니까? 그것도 인간의 사랑이 아니라 하느님 사랑을 안다는 것은 더 큰 행복이겠지요. 

그러나 제 생각에 이것은 아직 관념적입니다. 햇빛으로 치면 이것은 해가 떠 있다는 것을 아는 수준입니다. 아직 그 햇빛을 받고 그 햇볕을 쬐는 수준은 아닙니다. 

삼중도의 최고 단계는 일치의 단계입니다. 하느님 사랑 안으로 들어가고 사랑 안에서 하나가 되는 단계입니다. 

하늘에 떠 있던 하느님의 사랑이 해의 빛과 볕이 내려오듯 임마누엘 주님을 통해 이 땅에까지 내려와 머무시는데 우리도 그 사랑 안으로 들어가 그 안에 머무는 것입니다. 

오늘 주님께서 비는 것은 바로 이 부분입니다. 지금까지 세상은 당신도 미워하고 그 제자들도 미워하는데 제자들의 말을 듣고 하느님 사랑을 알게 된 사람들도 이제 삼위일체의 하느님 사랑 안으로 같이 들어와 머물게 되는 것이고, 그렇게 됨으로써 하느님 사랑 안에서 하느님과 하나 되고 모두 하나 되는 겁니다. 

오늘 주님의 기도 안에서 중요한 것은, 모두 하나 되게 해달라는 부분입니다. 

“그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이 말씀은 끼리끼리만 하나 되는 것이 아닙니다. 좋아하는 사람끼리 또는 사랑하는 사람끼리 하나 되는 것, 하느님 사랑 안에서가 아니라 자기들끼리 하나 되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또한 하느님 사랑 안에서 하나 되더라도 자기들만 하느님 사랑 안으로 들어와 하나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마치 열 명이 밖에 있었는데 그중 두 명만 손잡고 집 안으로 들어가 하나의 가정을 꾸리는 것과 같습니다. 둘은 하나가 되지만 결국 여덟은 배제가 되는 것이지요. 

우리 공동체 안에서 이런 일이 참으로 많습니다. 부러 왕따를 시키지 않아도 이렇게 배제를 하고, 그래서 결국 공동체가 하나 되지 못합니다. 

누구하고는 하나 되고 싶지만 누구하고는 하나 되기 싫은 사람이 있다는 얘깁니다. 쉬운 예로 누구하고는 단짝이 되고 싶지만, 누구하고는 짝도 되기 싫은 겁니다. 그런데 누구를 배제하지 않는 사랑일 때 하느님 사랑 안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같이 가자고 초대하는데도 상대가 거절해 혼자 가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내가 배제하여 혼자 들어가면 하느님 사랑 안에 들어갈 수 없음을 가르침 받는 오늘 우리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저는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는 제 안에 계십니다.

 

모든 생명이 하느님을 이야기합니다. 우리를 위한 하느님의 사랑이 시작되었습니다. 그 뜨겁고 좋은 하느님 사랑을 우리가 알게 되었습니다. 그 거룩하신 하느님의 이름을 우리가 알게 되었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으로 가능한 사랑의 기쁨들입니다. 그 사랑은 하느님과 함께하는 사랑입니다. 

하느님 사랑을 그 누구도 이길 수 없습니다. 사랑은 누군가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는 마음에서 비롯됩니다. 예수님께서 정성들여 가르친 것은 기도이며 사랑입니다. 우리의 모든 사랑은 하느님 사랑을 중심으로 펼쳐집니다. 

모든 사람을 위한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우리가 줄 수 있는 것 또한 사랑뿐입니다. 사랑의 시작은 다름아닌 예수님의 사랑에 협력하는 것입니다. 사랑에 협력하는 삶은 예수님과 함께 기도하며 사랑을 행하는 것입니다. 

사랑의 원천이신 아버지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사랑으로 우리에게 보내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을 알려 주셨기에 우리 안에도 하느님께서 계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느님 안에 사는 삶을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하느님과 함께 사랑의 새날을 맞이합니다. 

사랑은 서로 안에 있는 가장 좋으신 하느님을 만나는 기쁨의 선물입니다. 사랑으로 알게 되는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가장 좋은 친밀한 관계 안에서 주고 받고 보내고 받아들이는 하느님과 하나되는 나날들입니다. 그 하나되는 일치안에 우리가 있습니다. 그 사랑으로 사랑의 오늘을 사는 사랑의 날 되시길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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