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릴래아 사람들아, 왜 하늘을 쳐다보며 서 있느냐? 주님은 너희가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올라가신 모습 그대로 다시 오시리라.
전능하신 하느님, 성자 그리스도의 승천으로 저희를 들어 높이셨으니 저희가 거룩한 기쁨에 가득 차 감사의 제사를 바치며 머리이신 그리스도께서 영광스럽게 올라가신 하늘 나라에 그 지체인 저희의 희망을 두게 하소서.
2023년 5월 21일 (일) 주님 승천 대축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랜선으로 초대합니다!
2023년 5월 21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주님 승천 대축일
마태오복음 성경 말씀 카드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 (마태 28,20)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1독서
(사도행전 1,1-11)
예수님께서는 사도들이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오르셨다. - 제2독서
(에페소서 1,17-23)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를 하늘에 올리시어 당신 오른쪽에 앉히셨습니다. - 오늘 복음
(마태오 .28,16-20)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온라인 매일 미사 바로가기
오늘의 말씀 묵상 바로가기
주님이 말씀하신다.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가르쳐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
마태오 복음
28장 16-20절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그때에
16
열한 제자는 갈릴래아로 떠나 예수님께서 분부하신 산으로 갔다.
17
그들은 예수님을 뵙고 엎드려 경배하였다. 그러나 더러는 의심하였다.
18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다가가 이르셨다.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20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3년 5월 21일 (일)
주님 승천 대축일
최광희 마태오 신부 집전
📌 미사시작 01:28
📌 강론시작 17:56
명동성당 매일미사
2023년 5월 21일 (일)
주님 승천 대축일
김영우 스테파노 신부 집전
📌 미사시작 10:10
📌 강론시작 23:26
팔로티회 매일미사
홍천 팔로티회 매일미사
2023년 5월 21일 (일)
주님 승천 대축일
팔로티회 홍천
매일미사 오후 3시
김태광 아우구스티노 신부 집전
📌 미사시작 05:20
📌 강론시작 16:19
분당 팔로티회 매일미사
2023년 5월 21일 (일)
주님 승천 대축일
팔로티회 분당
성체조배 오후 3시
매일미사 오후 4시
야렉 카미엔스키 신부 집전
📌 성체조배 0:00:24
📌 미사시작 0:46:35
📌 강론시작 0:59:51
오늘의 말씀 묵상
매일미사
강수원 베드로 신부
왜 하늘만 쳐다보며 서 있느냐?
그리스도의 강생과 부활과 승천은 단일한 구원 사건입니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자리를 마련하러 간다”(요한 14,2).
주님께서는 지상 사명을 다 마치시고 하늘에 올라 성부 오른편에 앉으셨고, 우리는 그분을 따라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주님의 승천으로 우리를 들어 높이셨습니다’(본기도 참조).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갈릴래아로 부르셨습니다(마태 28,10 참조). 그들이 처음 부르심을 받은 곳으로 말입니다. 주님을 버리고 숨어 버린 제자들이 그분을 만나 모든 것을 버리고 따라나섰던 그 첫 마음을 되찾도록 불러 주신 것입니다. 그 갈릴래아에서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유언처럼 하신 말씀은 ‘전권 선언’(18절), ‘세례와 가르침의 명령’(19-20ㄱ절), ‘영원한 현존 약속’(20ㄴ절)이었습니다.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세례를 베풀고, 내 명령을 지키도록 가르쳐라.’라는 주님의 말씀은 ‘지상 명령’(Great Commission)으로, 교회의 가장 고귀하고 절대적인 사명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절대적 권능’과 ‘영원한 현존’은 세상 모든 이가 하느님을 알고 또 그분에게서 희망과 영광을 누리도록 이끄는 교회의 사명(제2독서 참조)이 세상 끝 날까지 이어지도록 요구합니다.
주님께서 오르신 하늘만 바라보던 제자들에게 천사들은 “왜 하늘만 쳐다보며 서 있느냐?”라고 말합니다(제1독서 참조).
우리는 하늘만 바라보는 공허한 신앙이 아니라, 세상 한가운데서 가족과 이웃들과 함께 하느님의 자녀로 사는 축복의 삶으로 부름받았습니다. 뜨거운 마음으로 주님을 만났던 나만의 갈릴래아로 돌아가 부활하신 주님을 다시 만나고, 그분의 뒤를 따라 승천하는 삶의 여정을 새롭게 시작합시다.
오늘의 말씀 묵상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조명연 마태오 신부
지금 자리에서 자기가 하는 일을 사랑하고 기뻐하십니까?
어느 연구기관에서 미국의 백만장자들을 면담하면서, 그렇게 많은 재산을 모을 수 있는 일을 선택한 동기가 무엇인지를 물었습니다. 이들이 이렇게 백만장자가 된 이유를 자신의 전공을 살리기 위해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실행한 결과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백만장자 대답의 1위는 아주 뜻밖이었습니다. 글쎄 ‘우연한 기회에’(29%) 이라는 답변이었습니다. 2위는 27%는 시행착오에 의해서, 3위는 예전 직업과의 관련성 때문에(12%), 4위는 이전 고용주가 놓친 기회 때문(7%)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결국 어떻게 하다 보니까 그렇게 되었다는 말이며, 어쩌다 한 일로 돈을 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공통점을 하나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자기 일을 사랑하고 즐겼다는 것입니다. 일을 사랑하고 즐기는 사람이 소위 성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여러분의 모습을 떠올려 보십시오. 과연 지금 자리에서 자기가 하는 일을 사랑하고 기뻐하십니까?
삶 안에서 사랑이 가득하면 기쁨도 저절로 생깁니다. 가족을 사랑하면 집에 들어가는 것이 기쁘고, 직장에서의 일을 사랑하면 직장 출근이 기쁩니다. 주님을 사랑하면 어떨까요? 성당 가는 것이 기쁩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던 사랑은 단순히 자기만 사랑하라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삶 전체 안에서 사랑을 키워 기쁨의 삶을 살라는 것이었습니다. 행복은 사랑 안에서 결정된다는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 사랑을 이 세상일을 모두 마치고 승천하신 날을 기념하는 주님 승천 대축일에 우리는 더 크게 느낄 수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사십 일 동안 제자들과 만나시며, 그들이 부활의 증인으로서 전할 하느님 나라의 신비와 복음의 기쁨을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승천하시기 전, 마지막으로 제자들을 만나십니다. 제자들은 예수님 뵙고 엎드려 경배합니다. 하느님께 경배드리는 모습입니다. 성당 안에서 모든 신자가 성체 앞에 무릎을 꿇거나 고개를 깊이 숙여 인사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다가가셔서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마태 28,16-20)라고 명령하십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이 말씀을 따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따르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20)라면서 용기를 북돋아 주셨습니다. 그만큼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이제 하느님 나라에서 주님을 직접 만날 그날을 기대하면서, 사랑으로 주님의 말씀을 따르면서 열심히 살아야 할 것입니다. 분명히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도 함께하시는 주님이시기에 용기를 내어 살 수 있습니다. 기쁨의 시간을 계속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사랑이 없는 곳에 사랑의 옷을 입히고 사랑의 신발을 신기도록 할 것입니다.
- 십자가의 요한 성인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승천하는 삶만이 사랑인 이유.
오늘은 주님 승천 대축일입니다. 주님 부활과 승천은 그 사실성을 증명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 안에서 예수님께서 모범을 보여주신 것으로 이해하면 그럴 수밖에 없음을 이해하게 됩니다. 승천하는 삶이 아니면 사랑이 불가능하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사랑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오늘 복음에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마태 28,19-20)하고 명령하십니다.
서로 사랑하라는 말은 먼저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고 하느님 자녀가 되어 이웃들도 가르침과 세례로 그렇게 만들라는 뜻입니다. 이것을 사제직이라고 합니다. 나지안조의 성 그레고리오는 사제란 “하느님이 될 것이고 다른 이를 하느님이 되게 하는 것”(CCC, 1589)라고 정의합니다.
자신이 하느님이라고 믿게 만드는 것이 ‘은총’입니다. 그리고 ‘하느님은 어떤 모습일까?’를 상상할 때 알게 되는 그리스도의 모습이 ‘진리’입니다. 어떤 자녀도 이 은총과 진리를 통해 태어나지 않는 자녀는 없습니다. 부모가 주는 양식을 먹으며 그 부모의 자녀임을 믿게 되고 그러면 그 부모가 알려주는 진리를 닮게 됩니다.
율법만으로는 사랑할 수 없습니다. 모세를 통해 주어진 율법은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인데, 사랑은 하느님만이 하실 수 있으십니다. 어쨌건 사제직은 중간에서 남편에게 받아 자녀의 지위를 높여주는 어머니의 모습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과 농사를 짓는 한 농부가 그해에는 워낙 농사가 잘되어 먹음직스러운 사과들이 많이 열렸습니다. 그는 용기를 내어 자기 사과 중 가장 좋은 것들을 임금님께 드리려고 궁궐로 찾아갔습니다. 그러나 문지기들은 의복도 입지 않고 임금님을 만나려는 농부를 들여보내 주지 않았습니다.
물론 그는 나름대로 가장 좋은 옷을 골라 입고 왔습니다. 그러나 궁궐을 출입하는 귀족들의 옷에는 비길 바가 못 되었던 것입니다. 농부가 실망하며 돌아서는데 마침 밖에서 궁궐로 돌아오던 왕비가 이것을 목격합니다.
왕비는 마차에서 내려 슬픈 표정의 농부에게 자초지종을 듣습니다. 그러고는 잠시 기다리라고 하며 그에게서 사과를 받아서 궁궐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가장 좋은 옷을 차려입고 금쟁반에 사과를 담아 임금님 옆에서 직접 깎아 드렸습니다. 임금은 사랑스러운 왕비가 깎아 주는 사과를 맛보고 매우 흡족해하였습니다.
왕비는 그제야 그 사과는 밖에서 기다리는 한 가난한 농부가 임금을 위해 가져온 것이라고 말해주었습니다. 그러자 임금은 당장 그 농부를 불러들이라고 하여 그에게 좋은 의복과 상을 주며 언제라도 수확한 것을 자신에게 직접 가져와도 된다고 허락하였습니다. 오늘은 예수님께서 ‘왕비’와 같은 역할을 하기 위해 하늘로 승천하신 날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라고 하십니다.
반면 자기 것을 내어주는 것이 사랑이라고 여기면 어떨까요?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없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이용하게 됩니다. 어떤 어머니가 아들을 너무도 사랑해서 평생 가진 것을 다 팔아가며 아들을 가르쳤습니다. 아들이 결혼하여 어머니를 모시는데 어머니는 아들에게 더 잘해 주기 위해 아들에게 잘못 하는 것 같은 며느리를 못살게 굽니다. 며느리는 자살하고 아들은 어머니를 더는 안 보겠다며 떠나갑니다.
어머니는 “내가 평생 너만을 위해 살았는데, 네가 나에게 이럴 수 있니?”라며 서운해합니다. 어머니는 과연 사랑한 것일까요? 아닙니다. 모든 피조물은 어쩔 수 없이 모기입니다. 내가 무언가 내어준다 생각해도 그것을 통해 나의 부족한 것을 채우려 할 뿐입니다. 이는 상대를 행복하게 하기보다는 부담스럽게 합니다. 사랑은 하느님으로부터 은총과 진리를 받아 전해 주는 일입니다. 진정한 사제직만이 사랑입니다. 이것이 바로 ‘승천하는 삶’입니다.
교리서는 “십자가가 승천의 시작”(662)이라고 말합니다. 마치 성모 마리아께서 엘리사벳을 방문하시는 일은 죽음을 각오하는 것인 것과 같습니다. 성모 마리아는 엘리사벳에게 다가가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당신 안에 잉태하신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러자 성모님을 통해 성령이 엘리사벳과 그 태중의 아기에게 가득 찹니다. 성령을 중개하는 일이 사랑입니다. 곧 은총과 진리를 받아 전하기 위해 끊임없이 나의 뜻을 죽이고 하느님의 뜻을 향하는 승천하는 삶만이 사랑인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프란치스코회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사랑하는 이가 있는 그곳이.
저의 장례 미사 강론은 요즘 대체로 ‘고인이 먼저 가신 그곳으로 우리도 따라가자.’입니다. 고인을 사랑한다면 말입니다. 이것은 주님 승천 대축일의 본 기도와 감사송의 내용 그대로지요.
“성자 그리스도의 승천으로 저희를 들어 높이셨으니 머리이신 그리스도께서 영광스럽게 올라가신 하늘나라에 그 지체인 저희의 희망을 두게 하소서.”
“주 예수님께서 저희 머리요 으뜸으로 앞서가심은 비천한 인간의 신분을 떠나시려 함이 아니라
당신 지체인 저희도 희망을 안고 뒤따르게 하심이옵니다.”
주님께서 먼저 올라가신 하느님 나라가 제자인 우리가 언젠가 따라가야 할 곳이고 그때까지 우리의 희망을 둬야 할 곳이라는 것이 승천 대축일의 의미이고 장례 미사 때 우리가 기념하는 의미이지요.
그런데 이 의미는 진작 알았던 바이지만, 전엔 이 의미가 관념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뒤 관념이 실제로 바뀌기 시작했지요. 아니, 막연하고 흐릿하던 것이 점차 또렷하게 되고,,멀리 있다고 생각되던 것이 아주 가까이 다가오기 시작한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저의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하늘로 가시는 바람에 제가 가야 할 곳이 어디인지 확실히 또렷해졌고,,그 후 제가 사랑하고 저를 사랑해주던 분들이 떠나가자 더욱 굳어졌습니다.
우리는 살아서건 죽어서건 사랑하는 사람을 따라갑니다. 그러므로 따라가지 않는다면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긴 하지만 오늘 두 번째 독서와 본 기도는 주님께서 올라가신 하늘로 우리가 따라가야 할 더 거역할 수 없는 근본적인 이유를 얘기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여러 차례 그리스도 신비체론을 얘기했지요. 그것은 주님과 우리가 한 몸이라는 것입니다.,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고 주님은 그 몸의 머리이며 우리는 그 지체들이라는 얘기 말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이 신비체론은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이기도 합니다. 요한복음 15장에서 주님은 당신은 포도나무이고 우리는 그 가지라고 말씀하셨지요. 그러므로 ‘나는 나다’라며 잘리거나 떨어져 나가는 가지만 아니면 됩니다.
아이는 껌딱지처럼 붙어 엄마에게서 떨어지지 않고, 자기가 갈 곳이 따로 있지 않고 엄마가 가는 곳이 자기가 갈 곳이듯 우리에겐 떼려야 뗄 수 없는 한 몸이라는 강한 일체감이 있어야겠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우리 스스로 하늘로 오르려고 애쓸 필요가 없고 그러므로 우리 스스로 하늘로 오를 수 있는 힘이 없어도 됩니다.
달나라에 갈 인공위성을 쏘아 올리기 위해서는 엄청난 에너지를 가진 발사체가 있어야 하지만 우리가 하늘로 오르기 위해서는 그런 힘을 지닌 발사체가 없어도 됩니다. 하늘로 오르시는 주님께서 우리의 위성이요 발사체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하늘로 오르시는 하느님을 뵙는 오늘입니다. 하늘 아래 살고 있는 우리들 삶입니다. 하늘로 가는 길이 믿음의 길입니다. 믿음으로 우리 자신과 하느님을 보게 됩니다. 하늘이 사람을 만들고 사람은 하느님을 원하는 사람이 됩니다. 주님의 승천은 하늘로 돌아가야 할 우리들의 고귀한 삶임을 주님께서 미리 보여주십니다.
고귀한 삶은 두려워하지 않고 주님과 함께 성장하는 삶입니다. 앞장서 오르시는 주님의 뜨거운 사랑입니다. 그 사랑을 뒤따릅니다. 승천의 이야기는 우리 삶의 이야기입니다. 인격은 성찰로 품격을 높이고 신앙은 실천으로 하늘을 드러냅니다.
하늘은 우리의 인격을 빼앗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인격을 우리의 믿음을 들어높입니다.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자유롭게 하늘을 향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권한은 사람을 사람이게 제자를 제자이게 만드는 권한입니다. 하늘과 같이 사랑하게 됩니다. 하늘이 있고 하늘로 오르시는 주님의 사랑이 있습니다.
흙으로 돌아가듯 하늘로 돌아가야 할 우리들 삶입니다. 태어남과 죽음 사이에서 하늘로 오르는 하느님을 닮은 인격이 있고 영원한 생명이 있습니다. 아름답고 빛나는 승천 고귀한 사랑을 믿습니다.
고귀한 인격은 언제나 하늘을 품고 하늘을 향합니다. 하늘과 땅 하느님과 사람은 서로를 향할 때 더욱 빛납니다. 성숙한 마음으로 서로를 위하고 서로를 빛내는 거룩한 주일 승천 주일 되십시오.
'매일미사 말씀묵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23/05/24 (수)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0) | 2023.05.24 |
---|---|
23/05/23 (화)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0) | 2023.05.23 |
23/05/22 (월)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0) | 2023.05.22 |
23/05/20 (토)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0) | 2023.05.20 |
23/05/19 (금)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0) | 2023.05.19 |
23/05/18 (목)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0) | 2023.05.18 |
23/05/17 (수)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0) | 2023.05.17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