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영은 온 세상을 채우시고 만물을 살리시며 온갖 말을 다 아시네.
하느님, 오늘 이 축제의 신비로 모든 민족들과 나라에 세우신 하느님의 온 교회를 거룩하게 하시니 성령의 선물을 온 세상에 내려 주시고 복음이 처음 선포될 때 베푸신 그 큰 은혜를 이제 믿는 이들의 마음속에 가득 채워 주소서.
2023년 5월 28일 (일) 성령 강림 대축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랜선으로 초대합니다!
2023년 5월 28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성령 강림 대축일
요한복음 성경 말씀 카드
성령을 받아라. (요한 20,22)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1독서
(사도행전 2,1-11)
그들은 모두 성령으로 가득 차,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 시작하였다. - 제2독서
(코린토1서 12,3ㄷ-7.12-13)
우리는 모두 한 성령 안에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습니다. - 오늘 복음
(요한 20,19-23)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성령을 받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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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묵상 바로가기
오소서, 성령님. 믿는 이들의 마음을 성령으로 가득 채우시어 그들 안에 사랑의 불이 타오르게 하소서.
요한복음
20장 19-23절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성령을 받아라.
19
그날 곧 주간 첫날 저녁이 되자, 제자들은 유다인들이 두려워 문을 모두 잠가 놓고 있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시어 가운데에 서시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20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당신의 두 손과 옆구리를 그들에게 보여 주셨다. 제자들은 주님을 뵙고 기뻐하였다.
21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이르셨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22
이렇게 이르시고 나서 그들에게 숨을 불어넣으며 말씀하셨다. “성령을 받아라.
23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3년 5월 28일 (일) 성령 강림 대축일
이승주 대건안드레아 신부 집전
📌 성령강림대축일 소개 00:05
📌 미사시작 01:15
📌 강론시작 17:15
명동성당 매일미사
2023년 5월 28일 (일) 성령 강림 대축일
이철규 아우구스티노 신부 집전
📌 미사시작 08:35
📌 강론시작 22:02
팔로티회 매일미사
홍천 팔로티회 매일미사
2023년 5월 28일 (일) 성령 강림 대축일
팔로티회 홍천
매일미사 오후 3시
김태광 아우구스티노 신부 집전
📌 미사시작 05:26
📌 강론시작 17:55
오늘의 말씀 묵상
매일미사
강수원 베드로 신부
성령을 받아라.
성령 강림 대축일은 하느님 백성인 교회의 탄생일입니다. 오순절이 되자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성령께서 불의 혀 모양으로 사도들에게 내리셨습니다(제1독서 참조). 사도들이 여러 언어로 복음을 선포하고 많은 민족들이 그것을 각자의 언어로 알아들은 이적은, 죄와 교만으로 흩어졌던 인류가(‘바벨탑’ 이야기 참조) 성령 안에서 다시 하나 됨을 뜻합니다.
사도들처럼 우리도 성령을 통하여 고유한 은사와 직분과 활동을 나누어 받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 한 몸을 이루며 하느님의 자녀로 부름받았습니다(제2독서 참조).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주간 첫날 저녁”, 곧 마리아 막달레나에게 발현하신 그날 저녁에(요한 20,1.19 참조) 제자들을 찾아오셨습니다. “너희를 고아로 버려두지 않고 …… 다시 오겠다.”(14,18) 하신 약속을 지키신 것입니다.
막달레나가 전한 부활 소식마저 무력해질 만큼 큰 두려움에 휩싸인 제자들에게, 주님께서 건네신 첫 말씀은 “평화가 너희와 함께!”였습니다. 그것도 두 번이나 말입니다. 살아 계신 주님을 만난 그들은, 십자가의 죽음을 앞두시고도 “내 평화를 준다.”(14,27; 16,33 참조)라고 하신 ‘주님의 평화’의 참의미를 그제야 알아듣습니다.
걱정과 두려움은 우리의 내적 평화와 믿음마저 집어삼키지만, 주님께서 주시는 평화의 성령께서는 빛나는 천상 광채로 우리의 두려움과 어둠을 몰아내십니다.
혹여 걱정과 불신으로 어두운 다락방에 웅크리고 있다면, 오늘 내 마음 한가운데 서시어 “성령을 받아라.” 하시는 부활하신 주님께 문을 활짝 열어 드립시다. ‘파라클레토스’(보호자)이신 성령께서 오시어 여러분을 지키시고, 기쁨과 평화를 안겨 주실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조명연 마태오 신부
머리핀 하나를 줍더라도 사랑으로 행한다면 한 영혼을 회개시킬 수 있다.
아기 예수의 데레사 성녀의 말씀 중에 “머리핀 하나를 줍더라도 사랑으로 행한다면 한 영혼을 회개시킬 수 있다.”라고 하셨습니다. 머리핀 하나 줍기가 어려운 일일까요? 그렇게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랑을 담는다는 것은 꽤 어려워 보입니다.
길에 떨어져 있는 쓰레기를 줍는 분을 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이 지나가는 길이고, 환경미화원이 있다는 생각 때문인 것 같습니다. 특히 자기 집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으니 모른 척 지나가곤 합니다. 그런데 우리 성당 안에서는 종종 떨어진 쓰레기를 줍는 분을 보게 됩니다. ‘우리’ 성당이라는 생각에 사랑을 담아 쓰레기를 줍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당이 늘 깨끗합니다. 이것으로 끝일까요? 우리 성당을 처음 찾으신 분께서 제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신부님, 성당이 너무 깨끗해서 좋아요. 기도에 더 집중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이분은 오랜 냉담을 하다가 성당을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기도하려고 성당에 들어갔는데, 너무 깨끗해서 마음도 깨끗해지는 것 같다고 하십니다. 쓰레기를 주우신 누군가로 인해서 한 영혼이 회개하실 수 있었습니다. 쓰레기 하나 줍는 것에 사랑을 담으면 많은 이가 회개할 수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렇다면 쓰레기 하나가 아니라 두 개를 줍는다면 어떨까요? 더 많은 사람이 회개할 수 있지 않을까요?
사랑을 담은 우리의 행동이 일상 안에서 펼쳐질 수 있어야 합니다. 이 행동 역시 세상 끝까지 가서 기쁜 소식을 전하라는 주님 말씀을 실천하는 것이 됩니다. 단순히 “예수 믿으세요.”라고 길에 나가 선교하는 것보다 더 큰 효과를 볼 것입니다. 그런데 사랑을 담기가 참 어렵습니다. 나의 편함만을 또 나의 이득만을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기준만을 내세우니 사랑은 항상 받는 것에만 집중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 이후, 제자들은 유다인들이 무서워서 집에 모여 문을 모두 닫아걸고 있습니다. 사실 그들이 지금 해야 할 일은 다락방에 숨는 것이 아니지요. 세상에 나가 주님의 기쁜 소식을 전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나’라는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해서 다락방에 있을 뿐이었습니다.
바로 그 순간 예수님께서 나타나셔서 평화를 빌어주십니다. 그리고 용기를 주시는 협조자인 성령을 받으라고 말씀하시지요. 이 성령을 받은 제자들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변화될 수 있었습니다. 협조자 성령을 통해 용기 있게 세상에 나가 주님의 기쁜 소식을 사랑을 담아 전하는 데 최선을 다하게 됩니다.
우리 역시 세례로 성령을 받았습니다. 성령을 받음으로 우리는 세상에 파견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나의 말과 행동에 늘 사랑을 담을 수 있습니다. 한 영혼이 아닌, 모든 영혼이 주님의 사랑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지라도, 내가 변하면 모든 것이 변한다.
- 오노레 드 발자크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용서는 성령 강림의 증거.
전삼용 요셉 신부님의 오늘 말씀 묵상 업데이트 준비중입니다오늘은 성령 강림 대축일입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성령을 받아라”(요한 20,22)라고 하시고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요한 20,23)라고도 하십니다. 우리가 죄를 용서할 수 있는 이유는 성령께서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 권한을 주시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요한 20,21)라며 교회를 파견하십니다. 이 말씀대로라면 교회가 죄를 용서해 주고 있다면 성령을 받았다는 말이 됩니다. 그런데 마르틴 루터는 “신부도 사람인데 어떻게 사람이 사람의 죄를 용서할 수 있는가?”라고 말하며 ‘고해성사’를 포기하는 편을 선택하였습니다.
코리 텐 붐의 부모는 나치로부터 유대인을 보호하기 위해 유대인들을 집에 숨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나치는 그들의 집을 급습하고 온 가족을 체포했습니다. 코리와 언니는 결국 독일의 강제 수용소로 보내졌습니다. 강제 수용소의 상황은 가혹했고 언니는 12월에 사망했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코리 텐 붐은 네덜란드로 돌아와 강제 수용소 생존자들을 위한 재활 센터를 세우고, 몇 년 동안 자기 경험과 그리스도교 신앙을 나누기 위해 대중 연설자로 전 세계를 여행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언니의 죽음과 연결된 한 독일 간수가 자신에게 다가왔습니다. 그 순간 그녀는 “하느님, 저 인간만은 용서할 수가 없습니다”라고 부르짖었습니다.
그때 하느님께서 코리 텐 붐의 마음에 “코리야 용서하거라. 용서하라는 것은 나의 명령이다. 내 명령에 순종하겠느냐, 하지 않겠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코리는 하느님의 명령에 순종하기 위해 억지로 원수에게 손을 내밀었습니다. 그 순간 하나님께서 그를 진심으로 용서할 수 있는 마음을 그녀에게 부어주셨습니다. 그녀는 성령의 힘을 느끼며 진심으로 용서할 수 있었고 그 간수는 독실한 신앙인이 되었다고 합니다.
용서는 사랑처럼 성령의 열매입니다. 성령을 받아야만 용서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일가족을 무참히 살해한 연쇄 살인마 유영철을 용서하고 양자로 삼은 고정원 씨는 유영철의 다른 피해자들에게 미쳤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어떻게 저런 인간을 용서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고정원 씨는 기도의 힘으로 용서했습니다. 기도는 성령을 받는 시간입니다. 그는 밤새워 기도했더니 다음 날 5분 정도 미운 마음이 사라지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용서가 인간의 힘으로 된 것이 아님을 알고는 더 많이 기도하며 결국 용서에 다다른 것입니다. 이렇게 진정한 용서를 한 사람은 용서가 자신 안에서 성령께서 하는 일임을 알게 됩니다.
초대 교회 때부터 교회가 죄의 용서를 베풀었다는 뜻은 그들 안에 용서의 권한이 있음을 목숨 걸고 증명한 사건이었습니다. 예수님도 당신이 하느님처럼 용서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는 이유로 박해받고 돌아가셨습니다.
한 번은 네 명이 중풍 병자를 들것에 옮겨와 예수님으로부터 병의 치유를 청한 적이 있습니다(마태 9,1-8; 마르 2,1-12; 루카 5,17-26). 예수님께서 중풍 병자를 보시며, “얘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하고 말씀하실 때, 율법 학자들은 ‘사람이 어떻게 죄를 용서할 수 있는가?’라고 생각합니다. 수많은 기적을 행하신 예수님께도 죄의 용서 권한이 있음을 믿기 어려웠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하고 말하는 것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고 말하는 것 가운데에서 어느 쪽이 더 쉬우냐?”(마태 9,5)라고 하시며 병의 치유와 죄의 용서를 같은 성령께서 이루심을 보여주십니다. 예수님은 병을 고쳐 주심을 통하여 병을 치유할 수 있는 권한을 주시면 또한 죄를 용서하는 권한도 주실 수 있는 분임을 보여주셨습니다.
제자들은 죄 용서의 권한을 받고 바로 나가서 그 권한을 행사할 수는 없었습니다. 생각만으로는 용기가 생기지 않았습니다. 유다인들이 두려웠습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내리시자 모두 뛰쳐나가 복음을 전할 용기가 생겼습니다. 제1독서에서 오늘 제자들이 모인 가운데 성령이 불꽃 모양으로 제자들 가운데 내렸다고 합니다. 성령은 불꽃처럼 뜨겁게 인간의 능력으로는 할 수 없는 것을 하게 만드는 힘이십니다.
교회 전체가 2천 년 동안 죄의 용서 권한을 행사해 오는 이유는 그 권한이 성령으로 교회 안에 있음을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가톨릭교회교리서』는 교회가 “성령을 인식하는 장소”(688)라고 정의합니다. 성녀 데레사는 돌아가시기 직전 “저는 다만 교회의 딸입니다”라고 몇 번이고 외쳤습니다. 죄를 용서하라는 하늘 나라 열쇠를 지닌 유일한 가톨릭교회를 떠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프란치스코회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바뀐다면 무엇이?
오늘은 성령 강림 대축일입니다.
주님을 믿지 못하던 제자들이 성령 강림으로 믿게 되었고 믿게 되자 하느님 능력에 의해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는데 가장 큰 변화는 불신이 믿음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불신이란 다른 가능성에 대한 불신입니다. 내가 알고, 내가 생각하고, 내가 믿는 것 이외의 다른 가능성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니 불신이란 자기를 지극히 믿는 것이고, 자기만을 믿기에 타자는 하느님조차도 믿을 수 없고 자기가 강하기에 자기를 강요하지 남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습니다.
나는 이렇게 하고 싶으니까 이렇게 하라고 오히려 요구합니다. 자기가 너무 강하여 성령께서도 뚫고 들어가시기 힘들 정도입니다.
따라서 성령께서 내게 오심은 자기라는 껍질이 깨지고 성벽이 뚫리는 것이고 성벽을 사이에 두고 아군과 적군이 싸우듯 자기와 성령의 공방입니다.
그러니 자기가 깨지는 때가 곧 성령이 임하시는 때입니다. 자기가 깨지는 때가 뚫리는 때이기에 온갖 소통이 이뤄집니다.
먼저 성령께서 들어오시고 하느님의 능력이 들어오고 하느님의 말씀이 들어오고 하느님의 사랑이 들어오고 하느님의 용서가 들어옵니다.
그리고 성령으로 인하여 다른 존재들이 내 안으로 들어옵니다.
다른 존재들이 내 눈에 들어오고 다른 사람의 말이 내 귀에 들어오고 다른 사람의 마음이 내 마음에 닿고 돌 같이 차던 마음이 따듯하게 반응합니다.
전에 내 안으로 들어오려는 것은 침입이었으며 침입을 막느라 늘 전쟁이었고 평화를 깨뜨리는 침입자를 용서할 수 없었는데 이제는 다 괜찮습니다.
모든 것이 용서가 되고 어떤 상황에서도 평화롭습니다. 전에는 도둑이 있어서 울타리가 있었는데 이제는 울타리가 없어서 도둑이 없습니다.
그리고 성령으로 인하여 예수가 그리스도이시듯 성령으로 인하여 모든 것이 다 그리스도입니다. 전에 담을 쌓고 살았던 이웃이 그리스도입니다.
전에 상처를 주었던 친구가 그리스도가 되고. 맨 날 싫은 소리만 하는 직장 상사가 그리스도입니다. 등 돌리고 자던 남편이 이젠 엠마오의 그리스도처럼 동반자입니다.
그리고 나의 입도 바뀝니다. 노상 잔소리만 퍼붓던 입이 칭찬도 하고, 독설을 토해내던 입이 성령의 언어를 쏟아냅니다.
갑자기 변하면 죽을 때가 된 거라는 우리말이 있는데 맞는 말입니다. 이렇게 모든 것이 한꺼번에 바뀌고 갑자기 바뀌면 그렇게 죽지 않으려던 내가 죽은 것인데 그것이 실은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겁니다.
그런데 내가 죽어도 좋으니 성령께서 내게 오시길 바라는 나입니까? 이 성령 강림 대축일에 모든 것이 다 바뀌지는 않더라도 한두 가지만이라도 바뀌길 원하는 나입니까? 그리고 바뀐다면 무엇이?.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성령을 받아라.
사랑의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삶의 소중함을 되찾아 주시는 성령이십니다. 흩어진 마음을 하나로 모아 주시듯 서로의 언어까지 하나의 사랑으로 알아듣게 하시는 소통의 성령이십니다. 가슴을 열고 방향을 틀어 우리의 마음과 시간까지 하느님께 내어주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성령에 힘입지 않고서는 아무도 예수님을 우리의 주님이시다. 고백할 수 없습니다. 여러가지 은사로 교회를 다양하고 풍요롭게 하여주십니다. 공동선을 위하여 우리 안에서 구체적으로 활동하십니다. 성령 안에서 세례를 받아 새롭게 태어났고 주님과 한 몸이 되었습니다.
매 순간 성령을 받아 마시며 살아가는 생명의 자녀들입니다. 성령께서는 두려움에 갇힌 우리들에게 평화를 주십니다. 십자가의 구원을 기쁨으로 따르고 믿게 하십니다. 숨을 불어넣어 주시듯 성령께서는 말씀과 용서로 당신의 사랑을 실현하십니다.
가득하신 사랑 새로워진 교회 가장 좋은 지혜 같은 신앙 고백 안에서 뜨겁게 살게 하십니다. 모든 상처와 모든 단절을 사랑으로 치유하시며 사랑이 우리의 신앙이 되게 하십니다. 모든 시작은 성령 안에서 모든 공동체 또한 성령을 통하여 은사와 열매를 맺습니다.
가장 좋으신 성령을 오늘 받습니다. 성령의 이끄심에 모든 것을 맡기는 성령 강림 대축일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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