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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3/05/30 (화)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3. 5.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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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내 버팀목 되어 주셨네. 내가 그분 마음에 들었기에, 넓은 들로 이끄시어 나를 구하셨네.

주님, 이 세상을 정의와 평화로 이끌어 주시고 교회가 자유로이 주님을 섬길 수 있게 하소서.

 

2023년 5월 30일 (화)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랜선으로 초대합니다!

2023년 5월 30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연중 제8주간 화요일

 

 

시편 성경 말씀 카드

내 앞에 모여라. (시편 50,5)

 

내 앞에 모여라. (시편 50,5) 시편 성경 말씀 카드 이미지 다운로드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1독서
    (집회서 35,1-15)
    계명에 충실한 것이 구원의 제사를 바치는 것이다.

  • 오늘 복음
    (마르코 10,28-31)
    현세에서 박해도 받겠지만 복을 백 배나 받을 것이고 내세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받을 것이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3년 5월 30일 (화) 평화방송 매일미사 명동성당 매일미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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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복음 (Gospel)
복음 (Gospel)

 

하늘과 땅의 주님이신 아버지, 찬미받으소서. 아버지는 하늘 나라의 신비를 철부지들에게 드러내 보이셨나이다.

 

 

마르코 복음
10장 28-31절

 

현세에서 박해도 받겠지만 복을 백 배나 받을 것이고 내세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받을 것이다.

 

28 
그때에 베드로가 나서서 예수님께 말하였다. “보시다시피 저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스승님을 따랐습니다.” 

29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나 때문에, 또 복음 때문에 집이나 형제나 자매, 어머니나 아버지, 자녀나 토지를 버린 사람은 

30 
현세에서 박해도 받겠지만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녀와 토지를 백 배나 받을 것이고, 내세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받을 것이다. 

31 
그런데 첫째가 꼴찌 되고 꼴찌가 첫째 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매일미사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3년 5월 30일 (화)
이경수 프란치스코 신부 집전

 

📌 미사시작 00:22

📌 강론시작 07:07

 

 

 

명동성당 매일미사

 

 

2023년 5월 30일 (화)
진슬기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 집전

 

📌 미사시작 08:13

📌 강론시작 17:15

 

 

 

팔로티회 매일미사

홍천 팔로티회 매일미사

 

2023년 5월 30일 (화)
팔로티회 홍천
매일미사 오후 3시
장화기 바오로 신부 집전

 

📌 미사시작 02:28

📌 강론시작 11:44

 

분당 팔로티회 매일미사

 

2023년 5월 30일 (화)
팔로티회 분당
성체조배 오후 3시
매일미사 오후 4시
김지학 요셉 신부 집전

 

📌 성체조배 0:00:16

📌 미사시작 1:00:43

📌 강론시작 1:08:12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오늘의 말씀 묵상
매일미사
강수원 베드로 신부

 

무엇을 ‘버린다’는 것.

 

부자 청년이 재산을 포기하지 못하여 주님을 떠나가자, 베드로가 주님께 말합니다. 

“저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스승님을 따랐습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보상을 약속하시며, 현세에서는 그들이 버린 집과 가족과 토지의 “백 배”를, 내세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사실 “백 배”라는 수치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루카 복음서의 병행 구절은 “여러 곱절”(루카 18,30)을, 오늘 제1독서는 “일곱 배”의 보상을 말합니다. 백 배(완전 수 10의 제곱수)든 일곱 배(완전 수 7)든 주님의 보상은 선하고 완전합니다. 

신약 성경에서 “백 배”라는 표현은, 좋은 땅에 떨어진 씨앗이 맺는 “백 배”의 열매(마태 13,8.23; 마르 4,8.20; 루카 8,8 참조)와, 주님을 위하여 가족과 재산을 포기한 이에게 주시는 “백 배”의 보상(마태 19,29; 마르 10,30 참조)을 말할 때만 쓰입니다. 

“백 배”는 하느님 나라와 관련된 종말론적 개념으로, 현세의 모든 것을 넘어서는 기쁨, 곧 이 세상에 살면서도 이미 하느님 나라의 생명과 축복을 누리는 충만함을 나타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보상 목록에서 “아버지”가 빠진 것은, 주님을 따르고자 세상 것을 희생하는 사람은 이미 “아버지”의 충만한 은총 속에서 살기 때문입니다.

제1독서에는 “제물”, “제사”, “바치다” 같은 낱말이 두드러지게 많이 나옵니다. 주님과 복음을 위하여 무엇을 ‘버린다’는 것은 하느님께 ‘봉헌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끊어 버림으로써 그치지 않고, 부모 형제와 재화를 하느님께 기쁘게 봉헌하며 따르는 주님의 제자가 됩시다.

 

 

 

오늘의 말씀 묵상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조명연 마태오 신부

 

1년 전으로 돌아간다면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

 

책을 읽다가, ‘1년 전으로 돌아간다면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라는 제목의 글을 보았습니다. 
 

1. 생각보다 사람들은 네게 관심이 없어. 그러니 네가 하고 싶은 대로, 좋아하는 걸 선택해. 
 
2. 네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 많은 사람이 너에게서 떠나갈 거야. 네가 아끼는 사람들에게 꼭 먼저 연락해. 
 
3.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는 게 아니라, 결국 내가 다 이겨내는 거더라. 너무 시간을 믿지마. 
 
4. 마음껏 표현해. 네가 혼자 생각하는 걸 상대도 알고 있을거라 착각하지마. 
 
5. 어른스러워지는 거, 단단해지는 거 그거 어렵더라. 그러니 건강 꼭 챙겨. 마음도, 몸도. 
 

여러분은 이 다섯 가지 중에서, 1년 뒤 자신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습니까? 사실 모두 필요한 말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그렇게 복잡한 것이 아닙니다. 어쩌면 간단한 진리이고 또 이미 알고 있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를 너무 쉽게 잊어버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긴 주님 말씀만으로도 우리는 세상을 충분히 잘 살 수 있지만, 이 말씀도 너무 쉽게 잊어버립니다. 
 
올바른 삶을 사는 데 집중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 삶을 살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특히 우리는 모두 하느님 자녀입니다. 그래서 하느님 뜻을 따르면서 후회를 남기지 말아야 합니다. 하지만 하느님 뜻에 맡기기보다, 계속해서 과거에 연연하고 미래를 걱정만 하면서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합니다. 세상의 일을 해야 하기에 하느님 뜻을 따를 수 없다면서 뒤돌아 떠나기도 합니다. 큰 후회를 남길 일입니다. 
 
오늘 복음의 앞부분은 부자 청년이 재물에 대한 애착을 버리지 못하고 예수님을 따르지 않는 장면이 나옵니다. 재물에 대한 애착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의 심성을 보시고 예수님께서는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마르 10,25)라고 말씀하시지요. 예수님께서는 재물 때문에 하느님 나라로 가지 못하는 사람을 향한 안타까움을 표시하신 것입니다. 이에 베드로는 “보시다시피 저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스승님을 따랐습니다.”(마르 10,28)라고 말합니다. 
 
“그래도 저희처럼 모든 것을 버리고 따르는 사람도 있지 않습니까?”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단순히 따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듯이 “누구든지 나 때문에, 또 복음 때문에 집이나 형제나 자매, 어머니나 아버지, 자녀나 토지를 버린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받을 것이다.”(마르 10,29.30)라고 말씀해주십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많은 포기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쩌면 세상의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위해서면 당연히 그래야 할 것 같은데, 왜 이렇게 주저하게 될까요? 아직도 멀었나 봅니다. 계속해서 주님을 바라보며, 주님의 뜻을 따라야 합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과거나 미래가 아닌 지금, 저기가 아닌 여기. 남이 아닌 나에게 깨어있는 것이 자유로워지는 길입니다.

- 법륜 스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현세에서 무엇이든 100배로 불리는 법.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당신과 복음 때문에 집과 부모, 형제와 토지를 버린 사람은 현세에서 그 모든 것의 100배를 받고 내세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누릴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그렇다면 이 세상에서 이런 것들의 100배를 누리는 사람이 천국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릴 사람이란 뜻입니다. 

저는 분명 돈 걱정도 없고 가족도 수천, 수만 명이 된 것 같고 잘 집도 많아서 이 말대로라면 천국을 약속받은 사람처럼 기뻐 뛸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다 그렇냐는 게 문제입니다. 세상에서 보면 악한 사람들이 더 부유하게 살고 선한 사람들은 더 가난한 모습을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식대로라면 부자들만 구원받는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예수님은 다른 곳에서 오히려 부자들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오늘 복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주님과 복음을 위해 내어놓은 만큼 복을 받는다는 것일까요, 아니면 그냥 상징적인 의미일까요? 저는 현세에서도 분명 그 보상을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에는 아무리 돈이 많아도 부족하다고 여기는 사람이 있고 아무리 가난해도 부유하다고 여기는 사람도 있습니다. 

주위 친구와 가족들이 많아도 외롭다고 느끼는 사람이 있고 혼자 살더라도 진짜 자신이 만나는 모든 사람이 가족처럼 보이는 사람도 있습니다. 땅이 아무리 많아도 가시방석에서 자는 것과 같은 사람이 있고 아무 곳에서도 집처럼 잘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결국 오늘 복음은 본인만이 알 수 있는 구원받은 표징입니다. 하느님은 분명 약속을 지키십니다. 가난해도 부족함 없이 감사하며 사는 사람이라면 구원받은 표징이고 부유하더라도 외롭고 불만족하게 살면 구원받지 못한 표입니다.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구약성경의 룻기에서 발견됩니다. 룻은 모압 땅에서 온 타국인 여인이었습니다. 불행하게도 룻의 남편, 처남, 시아버지가 모두 죽고 룻과 동서와 시어머니 나오미도 과부가 되었습니다.

나오미가 고향인 베들레헴으로 돌아가기로 했을 때 처음에는 며느리들에게 새 남편을 찾고 안락한 삶을 영위할 가능성이 더 높은 모압에 머물 것을 권했습니다. 그러나 룻은 나오미와 함께 살기 위해 고국에서 재혼할 기회를 포기했습니다. 

베들레헴에 도착한 룻은 나오미의 죽은 남편의 부유한 친척인 보아스의 밭에서 보리를 줍기 시작했습니다. 나오미는 보아스가 친족 구속자, 즉 곤경에 처하거나 위험하거나 도움이 필요한 친척을 대신하여 행동할 특권이나 책임이 있는 친척임을 인식했습니다. 

나오미는 룻을 인도하여 보아스에게 접근하여 그녀와 결혼하고 가계를 이어감으로써 이 임무를 수행하도록 요청했습니다. 이것은 위험했습니다. 룻은 그녀의 미래를 보아스의 손에 맡기고 있었고, 그는 그녀를 거절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먼저 거부할 권리가 있는 더 가까운 친척과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당시의 법률 내에서 그렇게 했음을 먼저 확인하면서 영광스럽고 동의했습니다. 보아스는 룻과 결혼하여 오벳이라는 아들을 낳았는데, 오벳은 다윗 왕의 할아버지가 되어 룻을 예수 그리스도의 혈통에 두었습니다(마태복음 1:5).

사랑은 신기하게도 받으면 주어야 한다는 양심을 발동시킵니다. 나오미는 잠시 자기 가족이 되었던 이방 며느리가 자신에게 그렇게 충실한 것을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없었습니다. 사랑은 보답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기 아들보다 훨씬 부유한 집안에 시집을 보낼 계획을 세운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께 드리는 것을 도로 받을 수 있는 이유는 사람은 받은 것은 돌려주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우리 양심 안에 넣어진 정의의 저울입니다. 사랑은 이 양심을 작동하는데 하느님은 사랑 자체이십니다. 사랑을 보상받으려고 하는 것은 아닐지라도, 사랑은 반드시 보답받습니다. 사랑의 본성이 보답하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프란치스코회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버리면 얻는다.

 

“누구든지 나 때문에, 또 복음 때문에 집이나 형제나 자매, 어머니나 아버지, 자녀나 토지를 버린 사람은 현세에서 박해도 받겠지만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녀와 토지를 백 배나 받을 것이고,
내세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받을 것이다.” 

오늘 복음의 말씀은 진정 주님 말씀이 맞을까요? 주님께서 진정 현세에서 백 배의 보상을 약속하셨을까요? 

현세에서 박해받고 내세에서 영원한 생명을 보상받을 거라는 말씀은 맞는 말이지만 현세에서 백 배 보상은 약속하지 않은 것이 아닐까요? 진정 그렇게 약속하셨다면 그 뜻은 어떤 것일까요? 

모 유명한 목사님께서 삼박자 축복, 곧 하느님을 믿으면 부와 건강과 명예 세 가지를 이 세상에서 주실 거라고 한 말과 같은 뜻일까요? 

이런 뜻의 말씀을 주님께서 하셨을 리 없을 겁니다. 그렇다면 주님께서는 어떤 뜻으로 이 말씀을 하신 걸까요? 버리면 얻는다는 말씀, 버리는 자가 얻는다는 말씀, 그것을 말씀하신 것일 겁니다. 

제가 한 여자와 결혼하지 않으니 제가 여기 국밥집을 하는 데 많은 봉사자가 있고, 제가 한 어머니를 포기하니 많은 분이 제 어머니 되어주시고, 제가 세상의 많은 분을 어머니로 모실 수 있으며 제가 제 소유를 포기하고 주님 사업을 하니 많은 분이 많은 성금을 보내주시는 것과 같은 뜻일 겁니다. 

버리면 얻는다는 말씀은 버리면 하느님께서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물론 오늘 주님 말씀대로 당신 때문에 그리고 복음 때문에 버려야지 하느님께서 주십니다. 진작에 믿지 못했다면 오늘부터 이것을 믿고 살아갑시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내세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받을 것이다.

 

버리지 못해 불행한 우리들 삶입니다. 버려야 얻게되는 행복입니다. 버리지 못하고 따르지 못하는 사람은 언제나 제자신임을 깨닫습니다. 버리지 않기에 자아에 갇혀있는 모습입니다. 제대로 버려야 주님을 제대로 모실 수 있습니다. 

버리는 것은 비우는 입니다. 다 버리고 갈 우리들 인생입니다. 버리지 않고서는 하느님께 돌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들의 처음과 끝에는 버리는 새로운 시작이 있습니다. 

버려야 되찾게 되는 믿음입니다. 버리는 것은 하느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맡겨야 끝까지 따를 수 있는 부르심의 시간입니다. 모든 것을 버리니 뜨거워질 수 있는 사랑의 관계입니다. 우리에게는 버림이 있고 주님께는 자유가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버려야 보게되고 버려야 얻게되는 영원한 생명입니다. 삶과 죽음과 내세 사이에는 버리고 비우고 맡기는 따름이 있을 뿐입니다. 우리의 버림을 반성하는 우리의 일상 생활의 믿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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