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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3/05/31 (수)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3. 5.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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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을 경외하는 이들아, 모두 와서 들어라. 주님이 나에게 하신 일을 들려주리라.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성자를 잉태하신 동정 마리아께서 엘리사벳을 방문하도록 이끄셨으니 저희도 성령께서 이끄시는 대로 따라 살며 마리아와 함께 언제나 하느님을 찬양하게 하소서.

 

2023년 5월 31일 (수)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방문 축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랜선으로 초대합니다!

2023년 5월 31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방문 축일

 

 

스바니야서 성경 말씀 카드

주님께서 네 한가운데 계신다. (스바니야서 3,15)

 

주님께서 네 한가운데 계신다. (스바니야서 3,15) 스바니야서 성경 말씀 카드 이미지 다운로드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3년 5월 31일 (수) 평화방송 매일미사 명동성당 매일미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온라인 매일 미사 바로가기

 

오늘의 말씀 묵상 바로가기

 

 

매일미사 복음 (Gospel)
복음 (Gospel)

 

동정 마리아님, 주님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믿으셨으니 복되시나이다.

 

 

루카 복음
루카 1장 39-56절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저에게 오시다니 어찌 된 일입니까?

 

39 
그 무렵 마리아는 길을 떠나, 서둘러 유다 산악 지방에 있는 한 고을로 갔다. 

40 
그리고 즈카르야의 집에 들어가 엘리사벳에게 인사하였다. 

41 
엘리사벳이 마리아의 인사말을 들을 때 그의 태 안에서 아기가 뛰놀았다. 엘리사벳은 성령으로 가득 차 

42 
큰 소리로 외쳤다.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 

43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저에게 오시다니 어찌 된 일입니까? 

44 
보십시오, 당신의 인사말 소리가 제 귀에 들리자 저의 태 안에서 아기가 즐거워 뛰놀았습니다. 

45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 

46 
그러자 마리아가 말하였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47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 

48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과연 모든 세대가 나를 행복하다 하리니 

49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이름은 거룩하고 

50 
그분의 자비는 대대로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에게 미칩니다. 

51 
그분께서는 당신 팔로 권능을 떨치시어 마음속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습니다. 

52 
통치자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으며 

53 
굶주린 이들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유한 자들을 빈손으로 내치셨습니다. 

54 
당신의 자비를 기억하시어 당신 종 이스라엘을 거두어 주셨으니 

55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대로 그 자비가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영원히 미칠 것입니다.” 

56 
마리아는 석 달가량 엘리사벳과 함께 지내다가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매일미사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3년 5월 31일 (수)
김익호 욥 신부 집전

 

📌 동정 마리아 방문축일 소개 00:05

📌 미사시작 01:08

📌 강론시작 08:23

 

 

 

명동성당 매일미사

 

 

2023년 5월 31일 (수)
조인기 암브로시오 신부 집전

 

📌 미사시작 07:44

📌 강론시작 16:07

 

 

 

팔로티회 매일미사

홍천 팔로티회 매일미사

 

2023년 5월 31일 (수)
팔로티회 홍천
매일미사 오후 3시
안동억 프란치스코 신부 집전

 

📌 미사시작 00:18

📌 강론시작 07:53

 

분당 팔로티회 매일미사

 

2023년 5월 31일 (수)
팔로티회 분당
성체조배 오후 3시
매일미사 오후 4시
김지학 요셉 신부 집전

 

📌 성체조배 0:01:48

📌 미사시작 1:02:45

📌 강론시작 1:10:59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오늘의 말씀 묵상
매일미사
강수원 베드로 신부

 

전적인 믿음과 즉각적인 응답

 

오늘은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방문 축일입니다. 마리아는 시골 나자렛 목수의, 엘리사벳은 유다 산골 사제의 아내였습니다. 창조부터 이어진 하느님의 구원 경륜을 완성하시는 예수님과 요한을 태중에 모신 이 여인들이 그토록 작고 가난한 이들이었다는 사실에서 하느님의 영광은 더욱 빛이 납니다.

“네 친척 엘리사벳을 보아라.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1,36-37). 

아이를 낳지 못하는 늙은 엘리사벳이 잉태하였다는 소식은 마리아에게 커다란 확신과 기쁨이 되었습니다. 마리아는 하느님의 뜻을 잉태한 서로의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은 열망으로 100-150킬로미터나 떨어진(걸어서 닷새나 걸리는) 엘리사벳의 집으로 “서둘러” 갔습니다. 곧바로 행동으로 옮기는 이러한 태도는 하느님 말씀에 대한 마리아의 전적인 믿음과 즉각적인 응답을 잘 보여 줍니다. 

마리아와 태 안에 계신 주님의 방문으로 모든 이가 성령을 가득히 받고 기쁨에 넘칩니다. 엘리사벳은 “성령으로 가득 차” 마리아와 주님을 찬미하고, 천사의 예언대로(1,15 참조) 요한도 “어머니 태중에서부터 성령으로” 가득해집니다. 그리고 주님을 태 안에 모신 마리아는 하느님을 한껏 찬송하고 용약하며 ‘성모의 노래’(마니피캇)를 바칩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도, 스바니야 예언자는 주 하느님을 한가운데에 모신 시온의 환성과 기쁨을, 그리고 바로 그 시온 때문에 기뻐하며 즐거워하시는 하느님의 모습을 예언하면서, 우리를 하느님 안에서 기쁨 가득하고, 또 그분께 기쁨이 되어 드리는 축복의 삶으로 초대합니다.

엘리사벳을 방문하신 성모님처럼 내 안에 새겨진 하느님의 뜻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 안에서 이루어지는 하느님의 뜻도 바라볼 줄 아는 혜안을 청합시다. 사랑하는 가족들과 이웃들 안에도 머무르고 계시는 하느님을 알아보고 함께 기뻐하고 격려하는 이 시대의 ‘마리아’로 살아갑시다.

 

 

 

오늘의 말씀 묵상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조명연 마태오 신부

 

믿음을 갖춘 사람은 절대로 좌절하지 않는다.

 

새벽에 일어나 기도와 묵상을 한 뒤에 책 좀 읽으면 창밖이 환합니다. 그러면서 오늘 날씨를 예측해봅니다. “맑겠구나.”라고 예측할 때는 구름 한 점 보이지 않고 저 멀리 해 뜨는 것이 선명히 보입니다. 그날도 이렇게 맑은 날씨를 예측했습니다. 너무나 맑고 깨끗한 하늘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의 예측과 달리 오후부터 우중충해지더니 결국 저녁이 되면서 빗방울이 떨어집니다. “맑겠구나”라는 저의 예상이 완전히 어긋나는 날이었습니다. 
 
우리 삶도 이렇게 될 때가 있지 않습니까? “맑겠구나.”라면서 모든 것이 원만히 진행되겠다고 생각했는데, 비바람과 같은 고통과 시련이 갑자기 찾아올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하지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비바람이 1년 365일 계속되지 않는 것처럼, 우리 삶도 비바람, 폭풍과 같은 시련의 시간이 오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삶이 올 것입니다. 
 
이 사실을 늘 기억하며 살아야 합니다. 또 비바람, 폭풍 불 것을 걱정할 것이 아니라, 기쁨과 행복을 주는 맑고 쾌청한 삶이 올 것이라는 희망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특히 주님께서는 희망을 주시는 분이 아닙니까? 따라서 주님께 대한 굳은 믿음만 있다면 포기도 절망도 하지 않고 기쁘게 지금을 살 수 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노래가 있습니다. 그 가사는 이렇습니다. 
 

사노라면 언젠가는 맑은 날도 오겠지.

흐린 날도 날이 새도 해가 뜨지 않더냐. 
 
새파랗게 젊다는 게 한밑천인데,

쩨쩨하게 굴지 말고 가슴을 쫙 펴라. 
 
내일은 해가 뜬다. 내일은 해가 뜬다. 
 

내일 해가 뜨지 않더라도, 분명히 가까운 시간 내에 해가 뜹니다. 가슴을 쫙 펴고 힘차게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 희망을 놓지 않았던 분을 잘 알고 있습니다. 바로 성모님이십니다. 성모님께서는 예수님 잉태 소식에도 하느님께 대한 굳은 믿음을 가지고, “그대로 제게 이루어지길 바랍니다.”라고 하시면서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였습니다. 이는 사촌 언니인 엘리사벳 성녀를 방문하면서 하셨던 말씀을 통해도 그 믿음 안에서 이루어지는 희망을 볼 수 있습니다. 이를 마리아의 노래를 통해서 하느님께 감사기도를 드리면서 보여주십니다. 
 
우리의 믿음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오늘이 되셨으면 합니다. 믿음을 갖춘 사람은 절대로 좌절하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일을 바라보면서 그 안에서 감사의 기도를 바치게 됩니다. 기쁨의 노래를 힘차게 부를 수 있습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기적이란 지금 이 순간 평화와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이다.

- 틱닛한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이웃에게 좋은 사람이 되는 법.

 

오늘 성모님은 엘리사벳을 방문하십니다. 엘리사벳은 성모님께서 인사하실 때 성령으로 가득 찹니다. 성모님의 인사말과 함께 성령께서 엘리사벳에게 가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모님은 엘리사벳에게 성령님을 주시러 가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우리가 이웃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선물은 성령님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성모님은 성령님을 주실 수 있으셨을까요? 우리 안에도 예수님께서 계시고 성모님 안에도 예수님께서 계셨습니다. 무슨 차이가 있는 것일까요?

도로시 데이(Dorothy Day)는 1897년 11월 8일 뉴욕 브루클린에서 태어났습니다. 데이는 명목상 종교적인 성공회 가정에서 자랐지만 어린 시절에는 무신론자였습니다. 데이는 저널리스트로 일하기 위해 뉴욕으로 이사했고 여성의 참정권을 위해 항의하고 노동 분쟁에 대해 보도했으며 그녀는 국가의 위험인물로 간주되어 감옥에 갇히기도 하였습니다. 

그녀의 삶은 틀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분방한 보헤미안적 생애였습니다. 전통을 벗어나 관습적인 사회적 기대에 대한 무시, 사회적 투쟁에 대한 참여로 특징지어졌습니다. 하지만 내면의 영적 공허함을 느꼈습니다. 

1926년 딸 테레사(Tamar Teresa)의 탄생은 데이에게 변화를 일으켰습니다. 자신이 딸을 사랑하는 것처럼 하느님도 자신을 사랑할 것이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그녀는 아이에 대한 크나큰 사랑으로 하느님에 대한 믿음을 가지게 되었고, 딸이 가톨릭교회에서 세례를 받도록 했습니다. 

이는 확고한 무신론자인 남편 포스터 배터햄과의 이별을 의미했습니다. 데이는 배터햄을 사랑했지만, 배터햄은 데이를 떠났습니다. 데이의 신앙은 그녀가 자신의 사회적 행동주의와 가톨릭 신앙을 결합할 방법을 찾도록 이끌었습니다. 이러한 열망은 1933년 가톨릭 노동자 운동(Catholic Worker Movement)을 설립했습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음식, 의복이나 쉼터를 제공하는 환대의 집입니다.

데이의 가톨릭 노동자 운동은 자발적 빈곤, 비폭력, 노숙자에 대한 환대를 강조하면서 당시로서는 급진적이었습니다. 그녀는 내부 분쟁과 외부 비판을 포함한 많은 도전에도 불구하고 남은 생애 동안 운동에 전념했습니다. 그녀의 작업은 또한 전쟁 반대를 포함하여 평화 운동으로 인해 여러 번 체포되었습니다.

가톨릭 노동자 운동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성장했으며 오늘날까지 미국과 해외의 200개 이상의 공동체가 사회 정의 문제와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데 전념하고 있습니다. 도로시 데이는 삶의 공로를 인정받아 2000년 로마 가톨릭교회에서 시성 절차를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오늘의 가장 큰 도전은 어떻게 마음의 혁명, 우리 각자로부터 시작되어야 하는 혁명을 가져오는가?”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가장 큰 혁명은 결국 내적인 변화에서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그녀는 자신 안에 성체로 현존하시는 그리스도께서 계심을 알았고 그것이 그녀에겐 가장 큰 혁명이었습니다. 이러한 혁명을 거친 뒤에야 이웃에게 그 하느님께서 주실 수 있는 좋은 것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됩니다.

그녀는 같은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녀는 “우리는 모두 오랜 외로움을 알고 있었고, 유일한 해결책은 사랑이며, 사랑은 공동체와 함께 온다는 것을 배웠습니다”라고 말합니다. 혼자 무엇을 할 수 없는 이유는 외롭기 때문입니다. 우리 안에 하느님이 계심을 안다면 사랑의 공동체가 형성됩니다. 오늘 성모님께서도 그렇게 엘리사벳을 방문하신 것입니다. 그녀는 말합니다. 

“나는 진정으로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만큼만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자신 안에 하느님을 품은 사람은 그 하느님께서 이웃 사랑을 통해서만 자신 안에서 깨어나실 수 있음을 알았습니다.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성체를 영해도 죽은 예수님을 모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녀는 또 말합니다.

“우리가 하고 싶은 것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의도하신 대로 사람들이 스스로 먹고, 입고, 거처하는 일이 좀 더 간단해지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풍랑이 일 때 예수님께서 배에서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함께 계시는데도 그분에게서 성령의 힘이 나올 것을 믿지 못하고 자기 힘으로 풍랑을 이겨보려고 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을 만날 때 내 힘으로 사람들에게 잘해보려 합니다. 그러나 잘되지 않습니다. 나에게서 좋은 능력이 생겨나지 않습니다. 그들이 풍랑을 가라앉힐 수 있었던 방법은 자신들 안에 계신 분이 하느님임을 인식했을 때입니다. 그때야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풍랑을 가라앉히십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우리 안에 하느님이 계심을 인식해야 합니다. 성체를 영하더라도 내 안에 하느님께서 함께 계심을 인식하지 않으면 성령께서 활동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우리 안에 누가 계신지 인식할 때 우리는 이웃에게 좋은 것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언제나 이웃에게 힘든 사람이 되거나 이웃 때문에 내가 힘들어집니다. 성령을 베푸는 사람이 됩시다. 마음의 혁명을 먼저 이룹시다..

 

 

 

오늘의 말씀 묵상
프란치스코회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방문으로 완전해지는 사랑 

 

“궁핍한 성도들과 함께 나누고 손님 접대에 힘쓰십시오. 여러분을 박해하는 자들을 축복하십시오. 저주하지 말고 축복해 주십시오. 기뻐하는 이들과 함께 기뻐하고 우는 이들과 함께 우십시오.” 

오늘은 성모 마리아의 엘리사벳 방문 축일인데 교회 전례는 스바니아서 말씀을 보통 첫째 독서로 쓰지만 로마서의 말씀도 오늘 독서로 쓸 수 있도록 배정했습니다. 

이 말씀을 독서로 쓸 수 있게 한 뜻은 기뻐하는 이들과 함께 기뻐하고, 우는 이들과 함께 울라는 말씀 때문일 것이라고 저는 추측하는데 그것은 성모 마리아가 엘리사벳을 방문한 이유가 엘리사벳의 기쁨을 함께 나누기 위해서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 생각이 잘못됐다고 생각지 않는데 제 생각에 최고로 기쁠 때 생각나는 사람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고, 마찬가지로 최고로 슬플 때 생각나는 사람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같은 맥락에서 누가 기뻐할 때 같이해주는 사람이 그를 진정 사랑하는 사람이고, 슬픔을 같이해주는 사람이 그를 진정 사랑하는 사람일 뿐 아니라 기쁨을 같이해주는 것보다 어쩌면 더 사랑하는 사람일 것입니다. 

반대의 경우를 생각해보면 알 수 있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거나, 미워하거나 경쟁하는 사람에게 기쁜 일이 생기면 결코, 기쁘지 않거나 더 나아가 시기심이 생기지 않습니까? 

아무튼, 성모 마리아는 엘리사벳이 아이를 갖게 된 것을 함께 기뻐해 주기 위해 엘리사벳을 방문하신 것이 틀림없는데, 이때 성모 마리아가 정작 자신의 잉태를 기뻐하셨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복음을 보면 마리아의 잉태 사실을 알리려고 천사가 마리아를 방문했을 때 두려워하지 말라고 마리아께 얘기한 것을 보면 성모 마리아는 기쁨보다는 두려움이 컸던 것이 틀림없는데, 그런데도 엘리사벳의 기쁨을 함께하기 위해서 성모님은 엘리사벳을 방문하신 겁니다. 

그러니 성모님의 엘리사벳 방문은 방문이 아니라 축복이고, 인간적인 사랑이 아니라 그것을 초월하는 신적 사랑입니다. 

둘에게 오신 하느님의 방문을, 둘에게 베푸신 하느님의 사랑을, 둘을 통해 인류에게 주어질 하느님의 구원을 서로에게 확인하고, 두려움 가운데서도 기쁨을 함께하려는 그 초월적 사랑 말입니다. 

그런데 오늘 성모님의 엘리사벳 방문을 제가 이렇게 의미 새기게 된 것은 어제 한 분이 세상을 떠난 것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그분은 제가 알 때부터 이미 암이 발병한 상태였고, 이러저러한 이유로 안타까워 그때 이후로 기도해 드린 분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병문안을 자주 가지 못했고, 재발해 이제 어렵겠다는 얘기 또 위독하다는 얘기를 듣고 난 뒤에도 방문해야지 생각만 하고 방문하지 못했는데 그만 돌아가시고 말았고, 가장 힘들었을 때 손을 잡아드리지 못한 것이 너무 마음에 걸립니다. 

아무튼, 성모님의 엘리사벳 방문 축일에, 기뻐하는 사람과 같이 기뻐해 주는 사람, 슬퍼하고 아파하는 사람은 더더욱 같이 슬퍼하고 아파하는 사람, 더 나아가 방문으로 그 사랑을 완전하게 하는 사람이 되기로 다짐하면 좋겠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저에게 오시다니 어찌된 일입니까?

 

길을 떠난 사람만이 만날 수 있는 가득찬 행복입니다. 잊지 못하는 마음이 만남이 됩니다. 찾아가는 여정이 우리들 삶입니다. 믿음이 믿음을 찾아갑니다. 믿음을 깨우고 믿음을 성장시키고 믿음이 되어가는 믿음의 여정이 있습니다. 성령으로 믿음을 얻은 날 믿음으로 바라보니 믿음은 살아있는 우리들 삶이었습니다. 

믿음은 숨길 수 없습니다. 서로를 위해 기도드립니다. 믿음 안에 살고 있는 우리들입니다. 믿음 하나로 우리의 삶을 지켜나갈 수 있는 믿음의 은총입니다. 행복은 서로를 바라보는 믿음에서 비롯됩니다. 소통이 열리듯 마음이 열리고 시작이 열립니다. 우리 삶에서 우리가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됩니다. 

주님을 닮아간다는 것은 믿음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믿음과 사람이 한 몸이 되어갑니다. 나의 뜻을 벗어나면 다시 주님의 뜻을 만나게 되는 믿음의 선물입니다. 믿음은 믿음을 찾아 떠나는 주님의 여정입니다. 그래서 믿음은 목적지가 너무나 분명한 영혼의 아름다운 여정입니다. 그때 그때마다 성령께서 알려주시고 이끌어 주십니다. 믿음으로 가득찬 오늘 이 하루가 믿음으로 서로를 바라보고 믿음으로 기도하는 믿음의 날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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