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매일미사 말씀묵상

23/05/29 (월)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3. 5. 29.
반응형

 

성인들의 영혼이 하늘에서 기뻐하네.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르고, 그분을 사랑하여 피를 흘렸으니, 그리스도와 함께 끝없이 기뻐 춤추네.

온 인류를 창조하시고 구원하시는 하느님, 복된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이 그리스도의 신비를 영광스럽게 고백하도록 부르셨으니 그들의 모범과 전구로 저희도 몸과 마음을 다하여 복음의 명령에 언제나 충실하게 하소서.

 

2023년 5월 29일 (월)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랜선으로 초대합니다!

2023년 5월 29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야고보서 성경 말씀 카드

시련을 견디어 내는 사람은 행복하다. (야고 1,12)

 

시련을 견디어 내는 사람은 행복하다. (야고 1,12) 야고보서 성경 말씀 카드 다운로드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1독서
    (마카베오기 하권 6,18.21.24-31)
    나는 거룩한 법을 위하여 어떻게 죽음을 맞이하는지 그 모범을 남기려고 합니다.

  • 오늘 복음
    (요한 12,24-26)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3년 5월 29일 (월) 평화방송 매일미사 명동성당 매일미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온라인 매일 미사 바로가기

 

오늘의 말씀 묵상 바로가기

 

 

매일미사 복음 (Gospel)
복음 (Gospel)

 

시련을 견디어 내는 사람은 행복하다. 시험을 통과하면 생명의 화관을 받으리라.

 

 

요한복음
12장 24-26절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25 
자기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목숨을 간직할 것이다. 

26 
누구든지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라야 한다. 내가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사람도 함께 있을 것이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면 아버지께서 그를 존중해 주실 것이다.”

 

 

매일미사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3년 5월 29일 (월)
박재찬 안셀모 신부 집전
교회의 어머니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미사

 

📌 동정 마리아 기념일 소개 00:05

📌 미사시작 01:08

📌 강론시작 07:57

 

 

 

명동성당 매일미사

 

 

2023년 5월 29일 (월)
전두병 요아킴 신부 집전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미사

 

📌 미사시작 05:51

📌 강론시작 16:04

 

 

 

팔로티회 매일미사

홍천 팔로티회 매일미사

 

2023년 5월 29일 (월)
팔로티회 홍천
매일미사 오후 3시
김태광 아우구스티노 신부 집전

 

📌 미사시작 04:01

📌 강론시작 16:33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오늘의 말씀 묵상
매일미사
강수원 베드로 신부

 

오늘 이 밀알 하나가 죽어 영원을 맺으리니, 내 기꺼이 땅에 떨어져 죽으리라.

 

마지막 파스카를 지내시던 주님께서는 “사람의 아들이 영광스럽게 될 때(십자가 죽음)가 왔다.”(12,23)라고 하시며, ‘밀알의 비유’를 들려주셨습니다. 비유 속 ‘밀알의 죽음’은 주님의 죽음을, ‘많은 열매’는 인간의 구원을 가리킵니다. 

그렇다면 “누구든지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라야 한다.” 하신 말씀은, 십자가를 지고 죽음을 향하시는 당신을 따라 우리도 죽음과 순교를 택하라는 뜻입니다. 생명의 주인께서 죽음을 권하실 리가 결코 없지요. 다만 주님께서는 우리가 ‘자기 목숨’과 ‘영원한 생명’ 사이에서 늘 올바른 선택을 하기 바라십니다.

셈족 말로 ‘미워하다’의 개념은 ‘덜 사랑하다’라는 뜻입니다. 자기 목숨을 미워하라는 주님의 말씀은, 하느님과 그리스도에게서 우리를 멀어지게 만드는 온갖 걱정과 집착, 탐욕과 불신을 멀리하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이러한 ‘밀알의 죽음’을 순간순간 기꺼이 선택하는 이야말로 당신을 섬기는 사람이며, “아버지께서 그를 존중해 주실 것”이라고 하십니다. 이는 아버지께서 그 사람을 들어 높이시고, 아들에게 주신 영광과 영원한 생명을 그에게도 주신다는 약속입니다.

엘아자르가 율법으로 금한 돼지고기 먹기를 거부한 일도(제1독서 참조), 복자 윤지충이 신주를 불사르고 모친상을 천주교식으로 치른 일도, 당시로서는 십자가를 짊어지는 죽음의 길이었습니다. 

죽음 앞에 선 그 두려움과 고통을 어찌 ‘밀알 하나’라는 말 한마디에 쉬이 담을까 싶습니다만, ‘오늘 이 밀알 하나가 죽어 영원을 맺으리니, 내 기꺼이 땅에 떨어져 죽으리라.’ 하고 다짐하고 또 다짐하였을 그들의 열망이 아직 믿음이 부족한 나의 것이 되기를 주님께 간절히 청합니다. 마음속 묵은 밀알을 곱게 빻아서 주님께 봉헌된 빵으로 살아갑시다.

 

 

 

오늘의 말씀 묵상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조명연 마태오 신부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큰 바위에 걸려 넘어지는 사람은 없어도 작은 돌멩이에 넘어지는 사람은 많다.’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큰 공감이 가는 속담이 아닐까 싶습니다. 실제로 우리는 작은 돌멩이라고 할 수 있는 일상의 작은 일에 자주 넘어집니다. 
 
고민으로 힘들어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신의 고민이 너무 힘들어서 친한 친구에게 이야기했지요. 그랬더니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뭘 그런 걸 신경 쓰고 그래? 남들도 다 겪는 거야.” 
 
자신은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하는 고민인데, 상대방은 별것 아닌 것으로 생각할 때가 많지 않습니까? 사실 이런 고민 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고민은 대부분 크지 않습니다. 작은 일상의 고통과 시련이 잠 못 이루게 하는 고민이 됩니다. 
 
큰 바위에 걸려 넘어지지 않는 것처럼, 큰 고민은 정작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예 어떻게 할 수 없으니 포기하거나 다른 방향을 곧바로 찾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작은 돌멩이처럼 보이는 작은 고민은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작은 고민에 쉽게 넘어지고 맙니다. 또 워낙 작은 것이기에 꼬리에 꼬리를 물게 됩니다. 계속된 넘어짐에 정신은 피폐해지고 몸도 망가집니다. 
 
작은 돌멩이에도 쉽게 넘어질 수밖에 없는 나약한 ‘나’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이 우리에게 너무나 필요합니다. 주님의 전지전능하심과 우리를 향한 큰 사랑 아래에서 작은 돌멩이인 고통과 시련을 가뿐하게 건널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을 기념합니다. 이들은 1791년 신해박해 때부터 1888년 병인박해 때까지 순교한 분들입니다. 그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배교하지 않았습니다. 배교만 해도 살 수 있는데도 주님을 배반하지 않습니다. 이 세상 삶보다도 하느님 나라에서의 영원한 생명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주님의 커다란 사랑을 굳게 믿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듯이, 우리나라에 정말로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지금은 종교의 자유가 있기에, 과거처럼 주님을 배신할 일이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도 주님을 증거해야 하는 순간이 계속 주어집니다. 사랑을 실천하지 못할 때, 쉽게 판단하고 단죄할 때, 나의 욕심과 이기심만을 내세울 때가 바로 주님의 뜻을 따르지 않는 것으로 주님을 배반하는 것이 됩니다. 계속된 작은 돌멩이에 걸려 넘어져 주님께 멀어지게 됩니다. 
 
나약하고 부족한 ‘나’임을 기억하면서, 주님만을 바라보고 그 안에서 지혜와 용기를 얻어야 합니다. 과거 우리 순교자들이 보여 주셨던 모습처럼 말입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인생에서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첫 번째 단계는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결정하는 것이다.

- 벤 스타인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님의 오늘 말씀 묵상 업데이트 준비중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프란치스코회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같이 가는 길.

 

오늘은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축일인데 윤지충 바오로 순교자는 우리나라 첫 순교자였고,,그래서 오늘 축일의 대표 순교자가 되었으며 이분에 대해서는 이전 강론에서 나눔을 하였기에 오늘은 다른 순교자들에 관해 나누고자 하는데 그중에서도 유항검 아우구스티노 성인과 그 가족들에 관해 나누고자 합니다. 

윤지충 바오로 순교자가 첫 순교자가 되었지만 호남 지역에 가톨릭을 널리 알린 분은 유항검 복자이고, 그래서 유항검 복자를 호남의 사도라고 우리는 부르지요. 

그리고 오늘 우리가 기념하는 124분의 순교자 가운데는 유항검 복자 말고도 그분의 아들 유중철과 유문석 조카 유중석과 며느리 이순이가 복자로 시복되었고, 비록 시복되지는 않았지만, 동생 유관검과 부인 신희까지 가족이 모두 순교하였으며 그래서 유항검 성인의 생가는 파가저택이 되었지요. 

파가저택이란 큰 죄를 지어 죽은 가문을 아주 없애버리고, 멸문의 본보기로 삼고자 그 집마저 없애는 것을 말하는데 집을 허물고 그 집터를 아예 연못으로 만들었던 것이지요. 

그리고 우리가 또 기념해야 할 것은 유항검 순교자의 아들 유중철과 며느리 이순이가 동정 부부로 4년여를 살다가 순교했다는 사실입니다. 

이순이 순교자가 옥중 서한에서 적었듯이 그 4년여 동안 열 차례나 동정을 깰 뻔했지만 끝까지 동정 서약을 지키고 부부가 같이 순교까지 했으니 동정 순교 성인의 대표로 불리는 아네스 성인과 같이 우리가 공경해야겠지요. 

그리고 또 참으로 대단한 것은, 그 가문이 모두 순교했다는 사실, 곧 아무도 배교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흔히 얘기하지요. 

가깝고 쉬운 길은 혼자서도 갈 수 있고 혼자 가는 것이 쉽지만 멀고도 험한 길은 같이 가야 감히 떠날 수 있고 그 길을 끝낼 수 있지요. 

하느님께로 가는 길은 그 어떤 길보다 어려운 길이니 우리 또한 하느님께로 가는 여정에서 이 집안 신앙에서 교훈을 얻고 본보기 삼는 오늘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누구든지 나를 섬기면 아버지께서 그를 존중해 주실 것이다.

 

섬김이 존중을 안고 갑니다. 섬김과 존중 사이에 참된 사랑이 있습니다. 섬기는 삶이 바로 존중의 삶입니다. 섬기는 삶은 열매를 맺는 밀알이 되고 존중의 삶은 하느님과 함께하는 뜨거운 삶이 됩니다. 주님을 섬기지 않고서는 주님을 따를 수 없습니다. 

주님을 따른다는 것은 기꺼이 자아를 주님께 내어드린다는 것입니다. 죽어가면서 태어나고 내어드리면서 하느님과 하나가 됩니다. 그 어떤 것도 하느님께 한 번도 내어준 적이 없는 우리들 삶입니다. 

내어드리는 삶이 신앙인의 삶입니다. 삶은 순교로 성장되고 순교는 삶을 거룩함으로 바꾸어 놓습니다. 순교로 이루어진 순간들이 우리들 삶입니다. 순교로 완성되는 사랑의 기쁨들입니다. 진정 살아 있음이 어디를 향해 가야할 지를 아는 이 땅의 진정한 순교자들이 있었습니다. 

순교 같은 삶이 섬김의 삶입니다. 쓸데없이 커져버린 우리 자아를 머리 숙여 하느님께 봉헌합니다. 영혼의 길을 만납니다. 빛 속에서 비로소 하느님의 사람임을 깨닫게 됩니다. 다시금 십자가의 죽음 밖에는 길이 없음을 알게 됩니다. 낮아지고 높아지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우리의 사명입니다. 

사람의 길이 다름아닌 사랑이며 사랑은 바로 순교임을 섬김과 존중의 복음을 통해 배웁니다. 이 땅에 사랑을 깨닫고 사랑을 실천한 순교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에게서 가장 뜨겁고 가장 치열한 사랑을 배웁니다. 하느님 사랑이 오늘을 통해 우리에게 전달됩니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