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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3/04/14 (금)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3. 4.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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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당신 백성을 안전하게 이끄시고, 그 적들을 바다에 빠뜨리셨네. 알렐루야.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성자의 파스카 신비로 인류와 화해의 새 계약을 맺으셨으니 저희가 믿음으로 거행하는 신비를 삶으로 드러내게 하소서.

 

2023년 4월 14일 부활 팔일 축제 금요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랜선으로 초대합니다!

2023년 4월 14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부활 팔일 축제 금요일

 

 

오늘 성경 말씀 카드

어느덧 아침이 될 무렵, 예수님께서 물가에 서 계셨다. "무얼 좀 잡았느냐?" (요한 21,4-5)

 

어느덧 아침이 될 무렵, 예수님께서 물가에 서 계셨다. 무얼 좀 잡았느냐? (요한 21,4-5) 요한복음 성경 말씀 카드 이미지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1독서
    (사도행전 4,1-12)
    예수님 말고는 다른 누구에게도 구원이 없습니다.

  • 오늘 복음
    (요한 21,1-14)
    예수님께서는 다가가셔서 빵을 들어 그들에게 주시고 고기도 주셨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3년 4월 14일 (금) 평화방송 매일미사 명동성당 매일미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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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복음 (Gospel)
복음 (Gospel)

 

이날은 주님이 마련하신 날, 이날을 기뻐하며 즐거워하세.

 

 

복음
요한 21 1-14절

 

예수님께서는 다가가셔서 빵을 들어 그들에게 주시고 고기도 주셨다.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티베리아스 호숫가에서 다시 제자들에게 당신 자신을 드러내셨는데, 이렇게 드러내셨다. 


시몬 베드로와 ‘쌍둥이’라고 불리는 토마스, 갈릴래아 카나 출신 나타나엘과 제베대오의 아들들, 그리고 그분의 다른 두 제자가 함께 있었다. 


시몬 베드로가 그들에게 “나는 고기 잡으러 가네.” 하고 말하자, 그들이 “우리도 함께 가겠소.” 하였다. 그들이 밖으로 나가 배를 탔지만 그날 밤에는 아무것도 잡지 못하였다. 


어느덧 아침이 될 무렵, 예수님께서 물가에 서 계셨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분이 예수님이신 줄을 알지 못하였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얘들아, 무얼 좀 잡았느냐?” 하시자, 그들이 대답하였다. “못 잡았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그물을 배 오른쪽에 던져라. 그러면 고기가 잡힐 것이다.” 그래서 제자들이 그물을 던졌더니, 고기가 너무 많이 걸려 그물을 끌어 올릴 수가 없었다.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그 제자가 베드로에게 “주님이십니다.” 하고 말하였다. 주님이시라는 말을 듣자, 옷을 벗고 있던 베드로는 겉옷을 두르고 호수로 뛰어들었다. 


다른 제자들은 그 작은 배로 고기가 든 그물을 끌고 왔다. 그들은 뭍에서 백 미터쯤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던 것이다. 


그들이 뭍에 내려서 보니, 숯불이 있고 그 위에 물고기가 놓여 있고 빵도 있었다. 

10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방금 잡은 고기를 몇 마리 가져오너라.” 

11 
그러자 시몬 베드로가 배에 올라 그물을 뭍으로 끌어 올렸다. 그 안에는 큰 고기가 백쉰세 마리나 가득 들어 있었다. 고기가 그토록 많은데도 그물이 찢어지지 않았다. 

12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와서 아침을 먹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제자들 가운데에는 “누구십니까?” 하고 감히 묻는 사람이 없었다. 그분이 주님이시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13 
예수님께서는 다가가셔서 빵을 들어 그들에게 주시고 고기도 그렇게 주셨다. 

14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신 뒤에 세 번째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다.

 

 

매일미사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3년 4월 14일 (금)
박희전 루케치오 신부 집전

 

📌 미사시작 00:22

📌 강론시작 09:58

 

 

 

명동성당 매일미사

 

 

2023년 4월 14일 (금)
전두병 요아킴 신부 집전

 

📌 미사시작 08:46

📌 강론시작 19:54

 

 

 

팔로티회 매일미사

홍천 팔로티회 매일미사

 

2023년 4월 14일 (금)
팔로티회 홍천
매일미사 오후 3시
안동억 프란치스코 신부 집전

 

📌 미사시작 00:03

📌 강론시작 09:06

 

분당 팔로티회 매일미사

 

2023년 4월 14일 (금)
팔로티회 분당
매일미사 오후 4시
김지학 요셉 신부 집전

 

📌 미사시작 02:42

📌 강론시작 14:36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오늘의 말씀 묵상
매일미사
정진만 안젤로 신부

 

그물을 배 오른쪽에 던져라.

 

부활 팔일 축제 금요일에 선포되는 복음은 요한 복음서에서 소개되는 부활하신 예수님의 발현 이야기입니다. 요한 복음 21장은 후대의 편집 과정에서 추가된 것으로 추정되며, 오늘 복음은 그 첫 번째 장면을 다룹니다. 20장에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발현하신 장소가 예루살렘이었다면, 21장의 배경은 갈릴래아입니다.

예루살렘에서 갈릴래아로 돌아온 제자들은 다시 어업에 종사한 듯 보입니다. 그들은 밤새 고기를 잡으려고 하였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하였습니다. 암담한 상황에 놓인 제자들에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나타나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20장의 이야기에 비추어 보면, 그들은 이미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는데도 그분을 알아보지 못한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는 모습은 부활 발현 이야기를 전하는 여러 복음서 전승에서 발견되는 공통 요소입니다.

제자들은 처음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였지만, 나중에 그분을 알아보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그물을 배 오른쪽에 던져라.” 하고 지시하셨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그물을 던졌더니 끌어 올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양의 물고기가 잡혔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믿을 수 없는 사건을 통하여 제자들에게 당신 자신을 드러내신 것입니다.

제자들이 보인 불완전한 믿음에서, 부활의 신비 체험 안으로 깊이 들어가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시어 함께 계시지만, 아직 어둠 속에서 빛을 보지 못하는 우리를 당신과의 친교로 초대하십니다. 

“와서 아침을 먹어라.”

 

 

 

오늘의 말씀 묵상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조명연 마태오 신부

 

주님을 초대할 수 있는 용기와 지혜가 필요한 시간

 

깔끔한 것을 좋아하십니까? 아니면 지저분한 것을 좋아하십니까? 또 정리 정돈이 잘 된 것이 좋습니까? 아니면 혼란스러운 것이 좋습니까? 
 
예전에 어떤 목욕탕을 갔던 기억이 납니다. 철분 성분이 가득해서 ‘홍염천’이라고 불리는 곳으로, 피부병에 좋다는 이야기가 많은 곳이었습니다. 평소에는 사람이 가득하다는데, 이른 아침에서 가서인지 한산했습니다. ‘홍염천’이라 불리는 붉은 탕 안에 들어가 몸을 담갔습니다. 저 말고도 몇 분이 그 안에서 몸을 담그고 계셨는데, 잠시 뒤 한 분이 일어났는데 깜짝 놀랐습니다. 글쎄 온몸에 피부병처럼 보이는 종기가 가득한 것입니다. 피부병 환자와 같은 탕 안에 있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곳이 피부병에 좋다는 말이 떠올리면서, 멀쩡한 제가 들어간 것이 오히려 잘못이었구나 싶더군요. 
 
우리는 깨끗하고 깔끔한 것, 정리 정돈이 잘되어 있는 것을 기본적으로 좋아합니다. 그래서 주님께도 깔끔하게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렇게 깔끔하지 않으신 것 같습니다. 침을 뱉어 진흙을 개어 눈에 바르시지를 않나, 직접 손을 얹어 주시지를 않나, 손가락을 양 귀에 넣고 침을 뱉어 그의 혀에 손을 대신 적도 있습니다. 
 
깨끗하고 깔끔하지 않습니다. 말씀 한마디로 그냥 고쳐주시면 얼마나 깨끗하고 깔끔합니까? 심지어 당신 죽음도 깔끔하지 않았습니다. 피땀 흘리며 수난하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는 가장 비참한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주님은 깨끗하고 깔끔하지 않으십니다. 대신 사랑에만 집중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착각에 빠져서 주님의 응답을 함부로 판단합니다. 깔끔하게 자기가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불평불만하고, 그 응답이 잘못되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주님은 늘 사랑이 우선이었고, 사랑의 실현이었음을 시간이 지난 뒤에 비로소 깨닫게 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 이후, 제자들은 모든 것을 포기한 듯이 일상으로 돌아가서 고기를 잡으러 나갑니다. 아무것도 잡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부활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 비로소 고기를 많이 잡을 수 있었습니다. 주님이 안 계실 때는 아무것도 잡을 수 없었지만, 주님과 함께하면서는 전혀 다른 결과를 가져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몸소 숯불을 피워 물고기를 굽고 빵도 준비해놓은 장면에서 더 크게 사랑을 체험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뜻을 외면한 채 일상으로 돌아갔는데도 아무 말 없이 배고픈 자신들을 위해 식사까지 마련하시니 말입니다. 
 
이처럼 주님께서는 우리가 실수하거나 잘못해도 늘 먼저 사랑으로 다가오십니다. 그뿐 아니라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먼저 마련해 주십니다. 따라서 언제나 주님의 사랑에 집중하면서 함께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지금의 결과에 실망하고 좌절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도 주님을 초대할 수 있는 용기와 지혜가 필요합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헌신이야말로 사랑의 연습이다. 헌신으로 사랑은 자란다.

-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이것을 거부하면 상대를 투명 인간으로 만드는 것

 

오늘 복음에서 제자들은 세 번째 예수님을 만납니다. 오늘 복음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부활하신 예수님 만나는 가장 완전한 방법은 겸손함입니다. 구조는 마치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과 같습니다.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이 성경 말씀을 이해하게 되어 빵을 떼어 나누어 주실 때 예수님을 알아보게 된 것처럼, 오늘 복음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써 음식을 준비하고 기다리시는 예수님을 알아보게 됩니다. 요한은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말씀을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말씀에 순종하는 겸손함이 더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뜻이 있습니다. 그 뜻을 버리고 순종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면 하느님을 스스로 밀쳐내는 것과 같습니다. 순종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는 기쁨을 얻기 위한 필수 불가결한 가장 완전한 도구이자 방법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 뜻’으로 살아가는 것이 어떤 고통인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서 더 높은 뜻을 원한다면 그 뜻을 따름으로 해서 주님께서 계심이 확실해집니다. 

선한 목자 교회 유기성 목사님의 하느님을 만난 이야기는 오늘 복음과 매우 흡사합니다. 유기성 목사가 군종 훈련을 받다가 다리에 상처를 입었습니다. 수술해도 장애자가 된다는 의사의 말은 청천벽력과 같았습니다. 

이때 유 목사가 찾았던 것은 하느님 아버지가 아닌 육신의 아버지였습니다. 하느님보다 육신의 아버지가 자신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당시 병원에서는 외부로 연락할 길이 없었고, 덕분에 유 목사는 하느님을 찾게 되었습니다. 

그는 혼자 있는 방에서 크게 하느님 아버지를 세 번 불렀습니다. 눈물이 솟구쳐 올라왔습니다. 그가 목사이지만 실제로는 육신의 아버지를 더 믿고 있어서 하느님께 죄송했던 것입니다. ‘이런 믿음으로 목사를 할 수 있나!’를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점점 자신이 지었던 죄들이 생각났습니다. 다섯 시간 동안 울며 자기 죄를 크게 뉘우치었습니다. 

그러자 점점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이제 장애를 받아들일 마음이 생겼습니다. 처음 하느님을 부를 때는 그분이 함께 계셔주신 것이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뉘우치고 나니 하느님께서 함께 계심이 믿어졌습니다. 그는 이제 장애가 없게 해 달라고 기도하지 않고 자신의 다리를 주님께 바치기로 합니다. 

유기성 목사는 처음에 하느님을 부르면서도 하느님을 자기 뜻대로 해 달라고 청하였습니다. 이때는 하느님께서 함께 계심이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자기 뜻이 너무 강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그 자체가 ‘뜻’입니다. 나의 뜻이 있다면 나의 뜻과 반대되는 누군가가 옆에 있다는 것은 참을 수 없는 일이 됩니다. 따라서 스스로 하느님을 거부하게 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제자들은 오른쪽에 그물을 던지라는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의 목소리에 순종합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자신들의 뜻으로 밤새 고기를 잡았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겸손해져 있었습니다. 특별히 베드로는 예수님께 목숨까지 바친다고 해놓고 배신한 경험 때문에 자신을 믿지 않고 있었습니다. 내 뜻이 아니라 누구의 뜻이라도 따르고 싶어질 만큼 자기의 뜻을 믿지 않을 때, 그때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저도 신학교에 들어가라고 주님께서 불러주시는 것은 알았으나 거부하며 갈등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만약 주님이나 성모님, 성인이 나타나 주시면 사제가 되기로 결심하겠다고 기도드렸습니다. 지금도 긴가민가하지만, 술을 마시고 밤에 성당에 올라갔을 때 성모님이 나타나신 것 같아서 무릎을 꿇고 무서워서 한참을 있었습니다. 그러다 내려가면서 ‘성모님이 나타나셨을 리가 없어!’라고 결론 내렸습니다. 그 이유는 성모님이었다면 내가 결혼을 못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뜻’입니다. 내 뜻을 버리고 순종할 마음이 없으면 나타나도 알아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당신을 드러내실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순종했을 때 신학교에서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성체 안에서 만났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참 기쁨을 누리려면 이제 그분께서 기뻐하시는 일만 하기로 결심하기만 하면 됩니다. 그분의 뜻을 찾을 때 그분은 분명 당신을 드러내십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프란치스코회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처음부터 다시 시작

 

예수님의 말씀대로 갈릴래아로 온 제자들은 하릴없이 그물을 칩니다. 

그런데 베드로 사도가 “나는 고기를 잡으러 가네.”하고 말하는데 이 말이 제게는 매우 허탈하게 들리고 ‘나는 고기나 잡으러 가네.’로 들리면서 ‘그래 고작 고기나 잡으러 갈릴래아로 가라고 주님이 하신 건가?’하는 생각도 들고 ‘주님은 왜 늘 이런 식인가?’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프란치스코에게 아시시로 돌아가라고 하시고, 거기로 가면 프란치스코가 뭘 해야 할지 당신의 뜻과 당신의 계획을 알려주겠다고 하셨는데 알려주시지 않아 한 동안 방황하게 하셨지요. 

아브라함에게도 그 늙은 나이에 살던 곳을 떠나라고 하시고, 떠나면 잘 되게 해주겠다고 약속하시지만 그게 언제 어떻게 이루어질지 모른 채 한동안 기다리게 하셨지요. 

오늘도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갈릴래아로 가라 하셨지만 왜 가야 하는지, 가서 뭘 해야 하는지 알려주지 않은 채 가라고 하시니 제자들은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 옛날 하던 일이나 하러 갑니다. 

그렇다면 프란치스코에게 아시시와 제자들에게 갈릴래아는 어떤 곳입니까? 왜 그리로 돌아가게 하신 것입니까? 우선 살던 곳과 떠났던 곳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떠났습니까? 

자기의 성취와 성공을 꿈꾸고 떠난 거지요. 그러니 떠났던 곳으로 다시 돌아감은 성공의 차원에서 보면 실패요, 욕망이나 계획의 차원에서 보면 포기와 좌절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사실 너무도 당연한 것이 하느님의 뜻과 계획을 따르기 위해서는 일단 자기의 뜻과 계획, 그것도 욕망에서 비롯된 자기의 뜻과 계획은 좌절이 되고 실패로 돌아가야만 하겠지요. 

그래서 저도 이제는 거의 습관처럼 된 것이 있는데 제 뜻대로 되지 않았을 때 그것이 하느님의 뜻이라는 알아챔입니다. 

일이든 사람과의 관계든 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예전에는 내가 뭘 잘못해서 이렇게 됐나 저를 자책하고 반성하고, 또는 다른 누가 잘못하거나 방해해서 이렇게 됐다고 탓을 돌렸지만 이제는 내 뜻의 실패가 바로 하느님의 뜻이라고 받아들이는 겁니다. 

그러면 하느님의 뜻은 나의 뜻을 꺾는 것뿐입니까?,우리 인간은 누가 자기의 뜻을 꺾지 않으면 그 못된 고집을 꺾겠다고 하며 어떻게 해서라도 뜻을 꺾으려고 하는데 주님께서도 그런 것입니까? 

물론 그런 것이 아니지요. 욕망과 나쁜 계획을 좌절시키는 것도 하느님의 뜻이지만 더 중요한 하느님의 뜻은 새롭게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번 부활 판공성사 때도 수없이 얘기했지만 고백성사란 과거 죄를 고백하고 용서받는 것이기도 하지만 더 중요한 뜻은 옛 죄에 머물지 않고 새로 시작하는 것입니다. 

과거의 잘못을 중지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습니다. 그것은 가던 차가 중지하고 움직이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잘못된 곳으로 가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야 할 곳으로 가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고, 그러므로 중지만으로 충분치 않고 새롭게 출발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이 갈릴래아로 돌아감은 <처음부터 다시 시작>의 의미임을 성찰하는 오늘이고 우리도 무엇은 중지하고 무엇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지 성찰하는 오늘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방금 잡은 고기를 몇 마리 가져오너라.

 

무슨 일이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일어난 것입니까.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방향과 우리의 방향은 사뭇 다릅니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가장 뜨거운 부활의 고백이 시작됩니다. 아무 것도 잡지 못했다는 진실한 고백이 울려 퍼집니다. 죽을힘으로 삶을 살지만 매번 허탕만 치는 우리들 삶의 아픈 진풍경입니다. 

삶의 방향을 예수님께 돌립니다. 모든 것을 내어주시는 주님을 다시 만납니다. 오늘의 빵과 오늘의 구운 생선을 우리들에게 건네어 주십니다. 가장 소중한 시간을 되찾아 주십니다. 우리의 일상과 같은 부활을 빠알간 숯불처럼 따사로이 체험합니다. 

멀리 갔던 마음이 되돌아옵니다. 눈앞에 펼쳐지는 백쉰세 마리나 되는 가득한 일상을 만납니다. 주시고 건네시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방금 만난 사랑의 주님이십니다. 숯불이 이미 피워져 있고 그 위에 물고기가 놓여 있고 빵도 있습니다. 아침을 차려 주시는 주님이십니다. 

"와서 아침을 먹어라." (요한 21, 12) 

아침을 맞이하는 행복으로 사소한 것이 더 이상 사소하지 않음을 깨닫습니다. 아침을 여시는 부활의 아침입니다. 오늘이 부활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아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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