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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3/04/12 (수)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3. 4.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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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버지께 복을 받은 이들아, 와서, 세상 창조 때부터 너희를 위하여 준비된 나라를 차지하여라. 알렐루야.

하느님, 해마다 주님의 부활을 경축하며 기뻐하게 하시니 저희가 이 세상에서 지내는 축제로 영원한 파스카의 기쁨을 누리게 하소서.

 

2023년 4월 12일 부활 팔일 축제 수요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랜선으로 초대합니다!

2023년 4월 12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부활 팔일 축제 수요일

 

 

오늘 성경 말씀 카드

그러자 그들의 눈이 열려 예수님을 알아보았다. (루카 24,31)

 

그러자 그들의 눈이 열려 예수님을 알아보았다. (루카 24,31) 성경 말씀 카드 이미지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1독서
    (사도행전 3,1-10)
    내가 가진 것을 당신에게 주겠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합니다. 일어나 걸으시오.

  • 오늘 복음
    (루카 24,13-35)
    빵을 떼실 때에 예수님을 알아보았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3년 4월 12일 (수) 평화방송 매일미사 명동성당 매일미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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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복음 (Gospel)
복음 (Gospel)

 

이날은 주님이 마련하신 날, 이날을 기뻐하며 즐거워하세.

 

 

복음
루카 24장 13-35절

 

빵을 떼실 때에 예수님을 알아보았다.

 

주간 첫날 바로 그날 예수님의 

13 
제자들 가운데 두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예순 스타디온 떨어진 엠마오라는 마을로 가고 있었다. 

14 
그들은 그동안 일어난 모든 일에 관하여 서로 이야기하였다. 

15 
그렇게 이야기하고 토론하는데, 바로 예수님께서 가까이 가시어 그들과 함께 걸으셨다. 

16 
그들은 눈이 가리어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17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걸어가면서 무슨 말을 서로 주고받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들은 침통한 표정을 한 채 멈추어 섰다. 

18 
그들 가운데 한 사람, 클레오파스라는 이가 예수님께, “예루살렘에 머물렀으면서 이 며칠 동안 그곳에서 일어난 일을 혼자만 모른다는 말입니까?” 하고 말하였다. 

19 
예수님께서 “무슨 일이냐?” 하시자 그들이 그분께 말하였다. “나자렛 사람 예수님에 관한 일입니다. 그분은 하느님과 온 백성 앞에서, 행동과 말씀에 힘이 있는 예언자셨습니다. 

20 
그런데 우리의 수석 사제들과 지도자들이 그분을 넘겨, 사형 선고를 받아 십자가에 못 박히시게 하였습니다. 

21 
우리는 그분이야말로 이스라엘을 해방하실 분이라고 기대하였습니다. 그 일이 일어난 지도 벌써 사흘째가 됩니다. 

22 
그런데 우리 가운데 몇몇 여자가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하였습니다. 그들이 새벽에 무덤으로 갔다가, 

23 
그분의 시신을 찾지 못하고 돌아와서 하는 말이, 천사들의 발현까지 보았는데 그분께서 살아 계시다고 천사들이 일러 주더랍니다. 

24 
그래서 우리 동료 몇 사람이 무덤에 가서 보니 그 여자들이 말한 그대로였고, 그분은 보지 못하였습니다.” 

25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아, 어리석은 자들아! 예언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믿는 데에 마음이 어찌 이리 굼뜨냐? 

26 
그리스도는 그러한 고난을 겪고서 자기의 영광 속에 들어가야 하는 것이 아니냐?” 

27 
그리고 이어서 모세와 모든 예언자로부터 시작하여 성경 전체에 걸쳐 당신에 관한 기록들을 그들에게 설명해 주셨다. 

28 
그들이 찾아가던 마을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 예수님께서는 더 멀리 가려고 하시는 듯하였다. 

29 
그러자 그들은 “저희와 함께 묵으십시오. 저녁때가 되어 가고 날도 이미 저물었습니다.” 하며 그분을 붙들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들과 함께 묵으시려고 그 집에 들어가셨다. 

30 
그들과 함께 식탁에 앉으셨을 때, 예수님께서는 빵을 들고 찬미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그들에게 나누어 주셨다. 

31 
그러자 그들의 눈이 열려 예수님을 알아보았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그들에게서 사라지셨다. 

32 
그들은 서로 말하였다.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나 성경을 풀이해 주실 때 속에서 우리 마음이 타오르지 않았던가!” 

33 
그들이 곧바로 일어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보니 열한 제자와 동료들이 모여, 

34 
“정녕 주님께서 되살아나시어 시몬에게 나타나셨다.” 하고 말하고 있었다. 

35 
그들도 길에서 겪은 일과 빵을 떼실 때에 그분을 알아보게 된 일을 이야기해 주었다.

 

 

매일미사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3년 4월 12일 (수)
신희섭 암브로시오 신부 집전

 

📌 미사시작 00:22

📌 강론시작 09:52

 

 

 

명동성당 매일미사

 

 

2023년 4월 12일 (수)
조인기 암브로시오 신부 집전

 

📌 미사시작 05:33

📌 강론시작 15:59

 

 

 

팔로티회 매일미사

 

 

2023년 4월 12일 (수)
팔로티회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오늘의 말씀 묵상
매일미사
정진만 안젤로 신부

 

예수님을 볼 수 있는 ‘믿음의 눈’

 

오늘 복음은 루카가 전하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발현에 관한 첫 번째 이야기로 엠마오로 가는 제자에게 나타나신 그리스도를 선포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정체는 ‘점차적으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엠마오로 가는 길 위에서 두 제자에게 다가가시지만, 이들은 눈이 가리어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합니다(24,16 참조). 제자들의 눈을 가리신 분은 다름 아닌 하느님이십니다. ‘눈이 가리어지다’는 수동태 표현은 부활 이야기의 긴장감을 고조시키려고 복음서 저자가 사용한 문학적 도구로 볼 수 있습니다.

그날 저녁 제자들은 어느 집에서 예수님을 알아보게 됩니다(24,31 참조). 하느님께서 제자들의 눈을 가리시어 부활하신 예수님과의 만남을 방해하셨다면, 이제 그분께서 그 만남을 허락하십니다. 그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볼 수 있었던 것은 육신의 눈이 아닌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불신하는 제자들을 믿는 이로 변화시키신 분은 부활하신 예수님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좌절과 실의에 빠져 당신의 죽음과 부활을 믿지 못하는 제자들을 가르치셨습니다(24,26-27 참조). 이로써 그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볼 수 있는 ‘믿음의 눈’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두 제자의 모습은 우리가 걸어가는 신앙의 여정을 보여 줍니다. 처음에는 믿음의 눈을 뜨지 못하여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머지않아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의 가려진 눈을 열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조명연 마태오 신부

 

믿음의 눈으로만 주님을 제대로 볼 수 있다.

 

송도에 살면서 좋은 점 하나는 대중교통을 쉽게 이용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성당에서 나와 20분만 걸어가면 전철역이 있어서 어디든 시간 맞춰 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지난번에 서울로 강의 갈 때 지하철을 이용했습니다. 저녁 8시부터 시작되는 강의라서, 30분 전에 도착할 생각으로 2시간 전인 저녁 5시 30분에 출발했습니다. 직접 운전하지 않으니 2시간 동안 좋아하는 책이나 열심히 읽어야겠다고 마음먹고 기분 좋게 성당을 떠났습니다. 
 
저의 예상은 완전히 어긋났습니다. 전철 안에서 완전히 녹초가 된 것입니다. 마침 그 시간이 퇴근 시간이라서 사람이 너무 많은 것입니다. 강의 때 나눠줄 선물이 있어서 등에 커다란 가방을 메고 있었는데, 많은 사람 틈에 끼어서 너무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예전에 지하철 안에 성범죄 단속을 위해 CCTV를 시범적으로 설치했는데, 녹화된 영상에는 하나의 틈도 없이 빽빽하게 사람들의 머리만 찍혀 있어서 무용지물이었다는 이야기가 생각났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매일 출퇴근을 지하철로 하는 사람은 얼마나 힘들까 싶더군요. 직접 체험하니 비로소 알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해 보지 않은 것을 두고 쉽게 말하곤 합니다. 그러나 쉽게 판단해서 말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나름대로 가지고 있는 남의 아픔을 나의 경험만을 내세워 말한다고 해결될까요? 그의 경험은 자기의 경험과 완전히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 사람과 나는 전혀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 차이의 간격을 줄이는 방법은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경험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내 생각만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생각도 인정하고 믿어주는 것입니다.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를 복음에서 만납니다. 그들은 몇몇 여자로부터 예수님 부활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믿지 않고 서로 예수님의 부활이 진짜인지 아닌지 토론만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믿음이 없는 상태에서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볼 수 없었음을 오늘 복음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있었던 제자였음에도 말이지요. 
 
저녁때가 되어 예수님과 함께 식탁에 앉아서, 주님께서 빵을 떼실 때야 비로소 눈이 열려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보았습니다. 그들의 경험을 다시금 기억할 수 있었겠지요. 빵의 기적을 일으키셨을 때, 주님과 함께하며 들었던 모든 말씀을 기억하면서 그들은 다시금 믿음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믿음의 눈으로만 주님을 제대로 볼 수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자기만을 믿는 삶은 주님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게 합니다. 주님의 사랑을 기억하면서 주님께 대한 굳은 믿음을 갖춘 사람만이 언제 어디서나 우리와 함께하시는 주님을 볼 수 있게 됩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사랑받고 싶다면 사랑하라. 그리고 사랑스럽게 행동하라.

- 벤자민 프랭클린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성경 말씀으로 부활 체험하는 법

 

오늘 복음은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는 내용입니다. 단순하게 복음을 분석해보면 처음엔 예수님께서 성경 말씀을 통해 당신께서 돌아가셨다가 부활하셔야 함을 이해시켜 주시는 장면과 그들이 예수님을 맞아들여 그들에게 빵을 떼어 나누어주실 때 예수님을 알아보는 두 부분으로 나뉩니다. 미사에서의 말씀의 전례와 성찬의 전례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말씀의 전례를 통해 가슴 뜨겁게 말씀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 방법이란 특별히 구약의 내용들이 모두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상징하는 것임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교회가 특별히 강론 때 성경 말씀을 통해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 너무도 당연함을 이해시켜야 합니다. 

그러면 그리스도를 맞아들일 준비가 되는데, 여기서는 교회를 맞아들이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성경을 알려주셔서 예수님을 맞아들여 음식을 대접했듯이, 신자들은 성경을 이해시켜 주는 교회에게 가진 것을 내어줄 줄 알아야 합니다. 다시 선악과를 봉헌하는 신자들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성체성사 안에서 그리스도를 알아볼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이 부활 체험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는 것은 마치 예수님께서 발을 씻어주시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몸까지 씻어달라고 했을 때 예수님은 이미 몸은 씻은 것이라고 하십니다. 왜 그럴까요? 말씀으로 이미 깨끗해졌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한 말로 이미 깨끗하게 되었다”(요한 15,3)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말씀만으로는 발까지 씻기지 않습니다. 성령이 필요합니다. 그 성령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적어도 말씀으로 어느 정도는 깨끗해져야 발을 씻어주실 분을 만날 수 있습니다. 

만약 자살하기 직전인 사람이 바로 성경 말씀을 배우거나 성당에 다니는 일이 가능할까요? 어떤 열매도 단숨에 맺히지 않습니다. 씨가 뿌려지는 순간부터 그에 합당한 정화 과정이 필요합니다. 

트랜스포머 주인공으로 유명한 샤이아 라보프는 얼마 전에 가톨릭 신앙을 받아들이고 독실한 신앙인이 되었습니다. 그는 일찍 배우로 명성을 얻었습니다. 하지만 권총을 장전해놓고 언제든 자살할 준비가 되어있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누구도 그를 응원해주는 이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는 마약 중독자였고 어린 자신에게 총구를 겨누기도 하였습니다. 부모가 이혼하여 홀어머니 곁에서 자랐어도 그는 그 누구도 신뢰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판단을 믿었고 유명해지기는 하였어도 할리우드의 골칫거리가 되었습니다. 자신이 항상 옳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도 아버지처럼 알코올 중독자가 되어 폭행과 시비로 경찰서를 들락거렸고 결국엔 삶의 의미를 잃었습니다. 그는 항상 자신이 옳다고 여겼습니다. 그리고 자기 생각과 계획이 틀렸다고 믿는 순간 가야 할 길은 죽음뿐이었습니다. 

이것을 바꿔준 계기가 있는데 알코올 중독 치료사로부터 받은 테이프였습니다. 거기에는 우리가 잘 아는 ‘새옹지마’의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이 이야기가 그의 삶을 완전히 바꿔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삶은 언제나 죽음과 부활로 이뤄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날 여자친구가 짐을 싸고 있었습니다. 평소 같았으면 소리를 지르고 옷을 찢고 폭력까지 행사하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상하게 마음이 차분해졌습니다. 그리고 차로 어디까지 바래다주면 되겠느냐고 묻기까지 하였습니다. 이야기 하나로 자신이 그렇게 바뀌는 것이 신기하였습니다. 그 이야기가 자신이 옳다고 믿는 교만을 꺾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신앙을 받아들여 바티칸에서 하는 교육도 받고 독실한 가톨릭 신자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스토리의 힘입니다. 예수님은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성경 말씀을 설명하시는 것은 말씀으로 그들의 생각을 꺾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기 생각을 따르지 않고 말씀이 전해진 대상을 따르게 됩니다. 그것이 교회가 되고 그러면 부활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으로 부활이 있다고 믿어야 선행의 십자가를 질 수 있는 사람이 되며 조금씩 더 강도 높은 부활을 체험하게 됩니다. 

지금은 성경 말씀이 우리 생각을 변화시키는 놀라운 해석이 아닌 문자적, 윤리적 해석에 머물고 있습니다. 누군가를 위해 나 자신을 내어주는 삶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많은 경우 성경 고부가 십자가를 지게 하지 못합니다. 

지식적인 것만으로는 주님을 만나지 못합니다. 겸손해지는 성경 공부가 되어야 합니다. 부활이 있어서 현재를 참아낼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이웃을 용서하고 손님을 그리스도처럼 대하게 할 수 있는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그때 말슴이 부활을 체험하게 합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프란치스코회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마음의 굼뜸

 

“아, 어리석은 자들아! 예언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믿는 데에 마음이 어찌 이리 굼뜨냐? 그리스도는 그러한 고난을 겪고서 자기의 영광속에 들어가야 하는 것이 아니냐?” 

굼뜨다는 것은 느리다는 뜻이 있습니다. 보통 동작이 굼뜨다고 하는데 오늘 주님께서는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의 마음이 굼뜨다고 하고, 마음 중에서도 믿는데 마음이 굼뜨다고 합니다. 

제자들이 어떻게 그리고 얼마나 마음이 굼뜬지 오늘 복음은 아주 자세하게 묘사합니다. 

몇몇 여자가 깜짝 놀랄 일을 전했는데 죽은 예수의 시신이 없어졌고, 천사들의 말에 따르면 그것은 부활하셨기 때문이라는 거였으며, 여자들의 말뿐 아니라 몇몇 제자들도 가봤는데 그들도 못 본 겁니다. 

그렇다면 이 제자들은 왜 이렇게 믿는 데 마음이 굼뜬 것입니까? 그리고 이들만 이렇게 믿는 데 마음이 굼뜬 것입니까? 

그렇지 않지요. 사실 우리도 믿는 데 굼뜨고 특히 절망의 상황에서 희망을 믿는 것이나 죽음에서 부활을 믿는 것은 쉽지 않아 굼뜨게 마련이지요. 

그러고 보면 우리 인간은 대체로 실망이나 절망은 빠르지만 그 절망에서 희망을 되찾거나 부활을 믿는 것은 굼뜹니다. 왜 그럴까요? 

제 생각에 그것은 얕은 희망, 곧 기대 때문입니다.,우리는 깊은 희망을 가지려 하지 않고 얕은 희망인 기대를 가집니다. 

오늘 복음에서 제자들은 이렇게 얘기합니다. 

“우리는 그분이야말로 이스라엘을 해방하실 분이라고 기대하였습니다.” 

그런데 기대란 대부분 손 안 대고 코를 풀려는 것과 같습니다. 그저 어려움 없이 좋은 것을 손에 넣게 되기를 기대하고 고통이라는 대가 없이 열매를 맺게 되기를 기대하며, 제자들처럼 수난 없이 영광만 있기를 기대하고, 심지어 그 좋은 것을 남이 공짜로 주기를 기대하기까지 합니다. 

이렇게 공짜로 좋은 것을 얻으려는 마음을 가지고서는 절망의 마음이 쉽게 희망의 마음으로 돌아서기 어렵고, 그래서 부활이나 희망의 상황을 믿는 데 굼뜨게 되지요. 

사실 큰 희망이랄까 위대한 희망은 겨울을 이겨낸 이 봄의 꽃들처럼 온갖 역경과 절망을 이겨내고 피는 겁니다. 

그러니 좋은 것을 쉽게 얻으리라고 기대하고 희망하던 사람이, 다시 말해서 그런 기대와 희망이 습관이 된 사람이 절망과 죽음을 이겨내야 하는 희망과 부활의 믿음을 갖기란 혹독한 추위를 각오하지 않고 봄꽃을 피우려는 것처럼 쉽지 않지요. 

그래서 아무리 예언자들이 예언을 하고, 주님께서 당신의 수난과 부활을 예고를 하고, 천사들이 부활을 알려줘도 믿는 데 마음이 굼뜰 수밖에 없습니다. 

수난 없이 영광만을 찾는 사람에게 수난을 거쳐야만 갖게 되는 부활의 영광을 믿는 것은 굼뜬 정도가 아니라 어쩌면 아예 꿈도 꿀 수 없는 것이 아닌지 묵상하는 오늘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길에서 겪은 일과 빵을 떼실 때에 그분을 알아보게 된 일을 이야기해 주었다.

 

다시 돌아갈 힘을 얻는 엠마오의 부활입니다. 무료한 일상을 다시 활기있게 하는 부활의 체험입니다. 예수님의 부활로 무엇 하나 새롭지 않은 것이 없음을 깨닫습니다. 부활은 고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헤어진 예수님을 말씀과 식사로 다시 만납니다. 말씀과 식사는 막혀있던 제자들의 일상을 부활의 일상으로 새롭게 바꾸어 놓았습니다. 부활을 중심으로 우리의 일상이 부활의 삶이 되었습니다. 

부활의 삶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하는 동행이며 오늘입니다. 오늘의 부활은 뜨겁게 타오르는 말씀이며 우리를 살게하는 성찬의 식사입니다. 말씀과 빵의 식탁에서 다시 만나는 예수님의 따뜻한 부활입니다. 

부활은 일상을 새롭게 만나는 가장 큰 기쁨입니다. 우리의 새로워진 일상이 예수님의 부활이며 우리의 부활입니다. 기쁜 오늘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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