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너희를 데려오셨으니, 주님의 가르침을 언제나 되뇌어라. 알렐루야.
하느님, 언제나 새로운 자녀들로 교회를 자라나게 하시니 하느님의 종들이 신앙으로 받은 성사를 삶으로 실천하게 하소서.
2023년 4월 10일 부활 팔일 축제 월요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랜선으로 초대합니다!
2023년 4월 10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부활 팔일 축제 월요일
오늘 성경 말씀 카드
주님의 가르침을 언제나 되뇌어라. (탈출 13,9)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1독서
(사도행전 2,14.22-33)
이 예수님을 하느님께서 다시 살리셨고 우리는 모두 그 증인입니다. - 오늘 복음
(마태오 28,8-15)
내 형제들에게 갈릴래아로 가라고 전하여라. 그들은 거기에서 나를 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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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은 주님이 마련하신 날, 이날을 기뻐하며 즐거워하세.
복음
마태오 28장 8-15절
내 형제들에게 갈릴래아로 가라고 전하여라. 그들은 거기에서 나를 보게 될 것이다.
그때에
8
여자들은 두려워하면서도 크게 기뻐하며 서둘러 무덤을 떠나, 제자들에게 소식을 전하러 달려갔다.
9
그런데 갑자기 예수님께서 마주 오시면서 그 여자들에게 “평안하냐?” 하고 말씀하셨다. 그들은 다가가 엎드려 그분의 발을 붙잡고 절하였다.
10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두려워하지 마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래아로 가라고 전하여라. 그들은 거기에서 나를 보게 될 것이다.”
11
여자들이 돌아가는 동안에 경비병 몇 사람이 도성 안으로 가서, 일어난 일을 모두 수석 사제들에게 알렸다.
12
수석 사제들은 원로들과 함께 모여 의논한 끝에 군사들에게 많은 돈을 주면서
13
말하였다. “‘예수의 제자들이 밤중에 와서 우리가 잠든 사이에 시체를 훔쳐 갔다.’ 하여라.
14
이 소식이 총독의 귀에 들어가더라도, 우리가 그를 설득하여 너희가 걱정할 필요가 없게 해 주겠다.”
15
경비병들은 돈을 받고 시킨 대로 하였다. 그리하여 이 말이 오늘날까지도 유다인들 사이에 퍼져 있다.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3년 4월 10일 (월)
우석제 도미니코 신부 집전
📌 미사시작 00:22
📌 강론시작 11:24
명동성당 매일미사
2023년 4월 10일 (월)
조학문 바오로 신부 집전
📌 미사시작 09:57
📌 강론시작 22:50
팔로티회 매일미사
홍천 팔로티회 매일미사
2023년 4월 10일 (월)
팔로티회 홍천
매일미사 오후 3시
안동억 프란치스코 신부 집전
📌 미사시작 00:22
📌 강론시작 11:35
분당 팔로티회 매일미사
2023년 4월 10일 (월)
팔로티회 분당
성체조배 오후 3시
매일미사 오후 4시
야렉 카미엔스키 신부 집전
오늘의 말씀 묵상
매일미사
정진만 안젤로 신부
예수님의 빈 무덤
오늘 복음은 마태오 복음서가 전하는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마지막 사건들을 보여 줍니다. 마태오 복음 28장 16절에서 시작될 마지막 이야기의 배경은 갈릴래아입니다. ‘소식을 전하다’는 뜻의 그리스 말 동사 ‘아팡겔로’는 세 번 사용되어(28,8.10.11 참조) 오늘 복음을 연결시켜 줍니다.
부활 팔일 축제 월요일의 복음은 예수님의 무덤에 있었던 두 무리, 곧 여인들과 경비병들을 대조하려는 목적으로 구성된 듯합니다. 여인들은 주님의 부활로 이룬 승리와 희망의 소식을 전하러 제자들에게 달려갔지만, 경비병들은 수석 사제들에게 실패와 절망의 소식을 전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뒤 수석 사제들은 제자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사실로 주장할 것을 우려하였고(27,64 참조), 이 우려가 현실이 된 것입니다.
수석 사제들은 제자들이 주장하는 예수님의 부활을 사실로 인정하는 것보다 자신들이 의도했던 계획이 실패로 돌아간 것처럼 꾸밀 때 손실을 최소화할 것이라고 생각하여, 경비병들을 돈으로 매수하기에 이릅니다. 수석 사제들의 지시를 받아 무덤을 지키고, 그들에게 보고를 하며 뇌물도 받은 사실은 그 경비병들이 수석 사제 아래 속한 성전 경비병임을 알려 줍니다(27,65 참조).
빈 무덤이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이들에게는 부활을 설명하는 징표가 될 수 있다면, 반대로 부활을 믿지 않는 이들에게는 세상 속에서 떠도는 의미 없는 소문이 될 수도 있습니다. 마태오 복음사가는 오늘 복음을 마무리하면서 후자의 가능성, 곧 현재를 향한 부정적 전망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조명연 마태오 신부
초코파이를 쳐다보지 않는 이유
어렸을 때 좋아하던 간식 중 하나는 초코파이였습니다. 너무 맛있는 초코파이가 금세 사라지는 것이 아쉬워서 아주 조금씩 떼어먹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쳐다보지도 않을 정도로 싫어합니다. 왜냐하면 군대에서 있었던 경험 때문이었습니다.
신병 훈련소를 퇴소하고서 자대에 배치되었습니다. 군기가 바짝 들어있는 제게 한 고참이 다가와서 함께 PX라고 하는 군대 마트에 가자고 했습니다. 그리고 초코파이 두 상자를 사주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하나도 남기지 말고 다 먹으라고 했습니다. 너무 좋아하는 간식이라 충분히 먹을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한 6개쯤 먹었을까요? 도저히 먹을 수가 없어서 “이제 그만 먹겠습니다. 충분히 먹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인상을 쓰면서 “고참이 특별히 사주는 것인데 안 먹어? 이거 군기가 완전히 빠졌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 고참이 무서워서 두 상자를 다 먹었습니다. 그 뒤에 어떻게 되었을까요? 초코파이를 쳐다보지도 않습니다.
초코파이 한두 개는 분명히 큰 기쁨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이상은 공포였습니다. 너무 많은 것은 오히려 공포를 가져다줄 뿐입니다. 그런데 많은 것도 기쁨이 될 수 있는 것도 있습니다. 저는 책을 좋아합니다. 한두 권의 책은 기쁨입니다. 그렇다면 그 이상의 책은 공포일까요? 아닙니다. 그 이상의 책도 기쁨입니다.
많은 이가 기쁨을 찾습니다. 문제는 이 기쁨이 순간의 만족일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나의 욕심과 이기심을 채우는 기쁨은 결코 계속된 기쁨을 가져다주지 않습니다. 어느 순간 ‘공포’가 될 뿐입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기쁨은 사라지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주님을 알아가면 알수록 더 커지는 기쁨입니다. 절대로 주님을 많이 알고, 또 주님을 많이 만난다고 해서 ‘공포’를 가져다주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참 기쁨을 주시는 주님이 아닌, 순간의 만족에서 공포까지 주는 세상의 것만을 따르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을까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여자들은 예수님으로부터 “두려워하지 마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래아로 가라고 전하여라. 그들은 거기에서 나를 보게 될 것이다.”(마태 28,10)라는 말을 듣게 됩니다.
주님께서 되살아나셨다는 소식에 여자들은 두려워하였지요. 그러나 그 두려움을 넘어선 기쁨이 더 컸을 것입니다. 주님께 대한 사랑이 너무나도 컸기 때문입니다. 이에 반해 주님의 부활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니 모른 척하는 사람들이지요. 경비병 몇 사람들과 이 사실을 더 적극적으로 은폐하려는 수석 사제들입니다. 이들은 기쁨이 아닌 두려움이 커졌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을 때는 원하는 대로 되었다며 기뻐했겠지요. 하지만 그 기쁨은 공포가 되고 말았습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기쁨에 머물 수 있어야 합니다. 굳은 믿음과 사랑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세상의 어떤 것도 그대의 정직과 성실만큼 그대를 돕는 것은 없다.
- 벤자민 프랭클린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부활은 믿지 못하는 것일까, 믿고 싶지 않은 것일까?
오늘 복음에서는 예수님의 시신이 사라졌다고 말하는 막달라 마리아의 말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이 무덤에 와서 그 사실을 확인하고 믿었다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부활하셨음을 믿은 것인지 시체가 사라졌음을 믿은 것인지는 나와 있지 않습니다. 다만 없던 믿음이 생겼다는 것은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은 왜 세상 사람들이 부활을 믿지 못하는지 그 이유를 잘 표현해줍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그리스도에 대한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분에 대한 누군가의 증언을 확인하기 위해 노력할 줄 알았습니다. 그러니까 어떤 새로운 믿음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많은 이들이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믿음이 없는 이유는 근거가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관심’이 부족해서입니다.
믿음은 과학적으로 증명될 수 없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믿음이 요구되는 것이 아니라 지식이 요구됩니다. 믿음의 대상은 믿을 수도 있고 안 믿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어떤 사람들은 부활을 믿고, 어떤 사람들은 믿지 않는다면 그것은 근거의 문제가 아니라 관심의 문제인 것입니다.
왜 세상 사람들은 부활에 관심이 없을까요? 만약 그것을 믿어버리면 자기 이전의 믿음이 깨지기 때문입니다. 돈이 행복인 줄 알고 살았는데 부활이 있다면 복음을 전하는 게 행복이 됩니다. 그러면 이전에 믿어온 것을 포기해야 합니다. 이것이 싫은 것입니다.
영화 ‘적과의 동침’ 줄거리입니다. 부자인 남편 마틴과 살고 있는 로라. 그러나 남편 마틴은 극도의 결벽증에 심한 의처증까지 있어 아내를 감시하고 폭력을 행사합니다. 허구한 날 맞아가던 로라는 견디지 못하고 이혼을 하려고 해도 절대로 해줄 수 없다는 그에게 질려 어느 날 밤, 마틴과 항해에 나선 로라는 폭풍을 이용해서 탈출에 성공합니다.
마틴은 수영을 못하는 로라가 물에 빠져 죽은 것으로 받아들이고 장례식까지 치릅니다. 마틴은 자신이 완벽한 남자이고 아내에게 잘해준다고 착각했기에 아내가 자신에서 탈출했다는 사실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수영을 전혀 할 줄 모르는 아내가 오랜 기간 수영 강습을 받았음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인정하기는 싫지만, 아내가 변기에 버린 결혼반지까지 찾습니다.
어쩌면 그는 아내가 자신을 배신하지 않고 정말 죽었기를 원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결국 아내가 숨어 사는 곳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것에 분개한 그는 아내를 죽이려 합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자신의 믿음이 거짓된 것이었음을 밝혀지는 게 두려운 것입니다. 아내가 살아있는 것은 자신이 틀렸음을 증명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지 않는 이들은 그 부활 때문에 자신의 믿음이 틀렸음을 인정하기 싫은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복음의 베드로와 요한은 근거만 있다면 자기 생각이 틀렸음을 인정할 준비가 되어있었습니다. 그래서 한 여자의 말을 듣고 확인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저도 처음엔 돈과 명예와 여자가 행복이라 여겼습니다. 만약 사제가 되는 것이 더 큰 행복이라면 제 생각이 틀린 것입니다. 하.사.시.는 결혼하지 않고 사제로 사는 게 더 행복이라고 저에게 소개시켜 주었습니다. 저는 행복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관심이 있으면 믿어지기 마련입니다. 성당에서 많은 봉사를 하였습니다. 거의 사제의 삶처럼 매일 성당에서 살다시피 하였습니다. 그런데 행복하였습니다. 조금씩 믿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자 사제가 되는 삶이 행복이라고 믿을 결심을 하였고 그렇게 모험을 감행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살게 되었고 믿게 되었습니다.
부활에 대한 믿음은 영원한 생명에 관심이 있다면 누구나 믿을 수 있습니다. 그 부활의 삶으로 초대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누군가에게 사랑을 위해 목숨과 같은 것을 내어주었을 때 부활의 기쁨으로 돌아오는 경우를 많이 경험합니다. 그 경험을 되풀이하다 보면 사랑은 죽음과 같고 열매는 부활과 같음을 믿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게 자신의 목숨까지 바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에 관한 것에서는 관심만 있으면, 믿으려고 하는 마음만 있으면 믿어집니다. 그리고 믿어지면 삶이 바뀝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프란치스코회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부활의 회개
오늘 복음을 보면 주님 부활에 기뻐하며 두려워하는 여인들, 그래서 그것을 주님의 제자들에게 알리는 여인들과 주님 부활에 당황하고 그것이 알려지는 것이 두려워 은폐하려는 유대 지도자들이 대조되는데 제 생각에 마태오 복음은 이것을 의도적으로 대조하는 것 같습니다.
오늘 복음에 유대 지도자들이 주님 부활에 당황하고 그것이 알려질까 두려워했다는 표현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런 표현이 없어도 이들의 은폐하려는 시도 자체가 그들의 당황스러움과 두려움을 말해주는 것이겠지요.
아무튼, 주님의 부활 사건은 두 가지 두려움을 안겨줍니다. 하나는 기쁨을 동반하는 두려움이고, 다른 하나는 당황스러움을 동반하는 두려움입니다.
하나는 하느님 체험에서 비롯된 경외감의 두려움이고, 다른 하나는 하느님 체험과는 전혀 무관한 두려움이요, 자기들의 행위와 의도가 좌절된 데서 비롯된 두려움입니다.
유대 지도자들은 예수의 시신이 사라진 것을 알게 됐을 때라도 하느님의 놀라운 개입이요 섭리로 받아들였으면 좋을 텐데 자기들의 죄와 좌절을 볼 뿐 하느님 보는 데는 실패하였습니다. 이것은 유대 지도자들 뿐 아니라 아담과 하와에게서도 볼 수 있는 그러니까 인간의 보편적인 현상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자기들의 죄가 드러나는 것이 두려워 하느님으로부터 숨고 옷으로 자기들의 치부를 감추려고 하였지요.
자기들의 행위가 잘못된 것이요 죄임이 드러났을 때 그것을 숨기지 않고 직면하였다면 하느님과 단절되지 않았을 텐데 숨기고 감추려 했기에 하느님과는 단절되고 두려움만 안게 되었지요.
우리는 하느님과 단절되는 것을 두려워해야 하는데 자기 죄와 실패가 드러나는 것이 더 두렵고, 그것을 직면하는 것을 더 두려워하다가 하느님과 단절됩니다.
잘못이 드러나고 알게 되었을 때 바로 돌아서는 것, 그것도 하느님께로 바로 돌아서는 것, 그것이 그나마 우리의 현명함이요 부활의 회개임을 오늘 지도자들의 어리석음을 통해서 배우는 오늘 우리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그들은 거기에서 나를 보게 될 것이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첫 마음의 갈릴래아를 말씀하십니다. 비로소 사랑을 알게 되는 사랑의 울림 사랑의 갈릴래아입니다. 모든 변화의 역사에는 예수님이 계셨습니다. 모든 사랑의 여정에는 예수님이 계셨습니다. 상처를 두려워하지 않는 더 이상 감출 수 없는 주님의 사랑을 뜨겁게 만납니다.
집중과 중심 사이에 지켜야 할 사랑의 약속이 있습니다. 부활의 사랑은 우리 현실을 다시금 따사로이 비춥니다. 부활은 우리를 보기위해 다시 오시는 예수님의 강력한 사랑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으로 버려진 첫마음을 첫마음이 시작된 곳에서 다시 찾습니다.
예수님을 향한 뜨거운 마음이 중요합니다. 첫 마음을 다시 만나는 눈물겨운 갈릴래아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과 우리의 마음이 모두 전해져 오는 거기에서 다시 시작하는 기쁜 부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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