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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3/04/06 (목) 성목요일 미사 생중계 평화방송 명동성당

by 평화다방 2023. 4.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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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자랑하리라. 주님은 우리 구원이요 생명이며 부활이시니, 우리는 그분을 통하여 구원과 자유를 얻었네.

하느님, 성자께서는 죽음을 앞두시고 이 거룩한 만찬으로 새롭고 영원한 제사와 사랑의 잔치를 교회에 맡기셨으니 이 놀라운 신비에 참여하는 저희에게 넘치는 사랑과 생명을 주소서.

 

2023년 4월 6일 (목) 주님 만찬 성목요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랜선으로 초대합니다!

2023년 4월 6일
성목요일 미사 생중계
평화방송 명동성당

주님 만찬 성목요일

 

 

오늘 성경 말씀 카드

서로 사랑하여라. (요한 13,34)

 

서로 사랑하여라. (요한 13,34) 오늘 성경 말씀 카드 이미지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1독서
    (탈출기 12,1-8.11-14)
    파스카 만찬에 관한 규칙.

  • 제2독서
    (코린토1서 11,23-26)
    여러분은 먹고 마실 적마다 주님의 죽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 오늘 복음
    (요한 13,1-15)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3년 4월 6일 (목) 주님 만찬 성목요일 평화방송 매일미사 명동성당 매일미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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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복음 (Gospel)
복음 (Gospel)

 

주님이 말씀하신다.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복음
요한 13장 1-15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다.

 


파스카 축제가 시작되기 전,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아버지께로 건너가실 때가 온 것을 아셨다. 그분께서는 이 세상에서 사랑하신 당신의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다.


만찬 때의 일이다. 악마가 이미 시몬 이스카리옷의 아들 유다의 마음속에 예수님을 팔아넘길 생각을 불어넣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당신 손에 내주셨다는 것을, 또 당신이 하느님에게서 나왔다가 하느님께 돌아간다는 것을 아시고, 


식탁에서 일어나시어 겉옷을 벗으시고 수건을 들어 허리에 두르셨다. 


그리고 대야에 물을 부어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고, 허리에 두르신 수건으로 닦기 시작하셨다. 


그렇게 하여 예수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자 베드로가, “주님, 주님께서 제 발을 씻으시렵니까?” 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하는 일을 네가 지금은 알지 못하지만 나중에는 깨닫게 될 것이다.” 하고 대답하셨다. 


그래도 베드로가 예수님께 “제 발은 절대로 씻지 못하십니다.” 하니,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않으면 너는 나와 함께 아무런 몫도 나누어 받지 못한다.” 


그러자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주님, 제 발만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어 주십시오.” 

10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목욕을 한 이는 온몸이 깨끗하니 발만 씻으면 된다. 너희는 깨끗하다. 그러나 다 그렇지는 않다.” 

11 
예수님께서는 이미 당신을 팔아넘길 자를 알고 계셨다. 그래서 “너희가 다 깨끗한 것은 아니다.” 하고 말씀하신 것이다. 

12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신 다음, 겉옷을 입으시고 다시 식탁에 앉으셔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너희에게 한 일을 깨닫겠느냐? 

13 
너희가 나를 ‘스승님’, 또 ‘주님’ 하고 부르는데, 그렇게 하는 것이 옳다. 나는 사실 그러하다. 

14 
주님이며 스승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었으면,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 

15 
내가 너희에게 한 것처럼 너희도 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 준 것이다.

 

 

매일미사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평화방송 성목요일 미사 생중계

 

 

2023년 4월 6일 (목)
주님 만찬 성목요일 미사 20:00
평화방송 실시간 생중계
구요비 욥 주교 집전

 

 

 

명동성당 성목요일 미사 생중계

 

 

2023년 4월 6일 (목)
주님 만찬 성목요일 미사 20:00
명동성당 실시간 스트리밍
구요비 욥 주교 집전

 

 

 

팔로티회 성목요일 미사 생중계

분당 팔로티회 실시간 스트리밍 미사

 

2023년 4월 6일 (목)
주님 만찬 성목요일 미사 19:00
팔로티회 분당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오늘의 말씀 묵상
매일미사
정진만 안젤로 신부

 

우리는 아는 것을 실천할 때 행복할 수 있다.

 

주님 만찬 성목요일 미사에서는 성찬례 안에 제정된 그리스도의 파스카를 가르치는 바오로 사도의 말씀(1코린 11,23-26 참조)과 함께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강조됩니다(『미사 독서 목록 지침』, 99항 참조). 네 복음서 가운데 요한 복음서만이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는 장면을 전해 줍니다. 복음의 내용은 강론 뒤에 하는 발 씻김 예식에서 구체적으로 행해집니다.

제자들의 발 씻김은 파스카 축제가 시작되기 전 만찬 때 일어난 일입니다(13,1-2 참조). 당시 전통적 관습에 따르면 발을 씻어 주는 행위는 종에게 맡겨진 일이었습니다(1사무 25,41 참조). 스승이시요 주님이신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완전히 비우시고 스스로 낮추시어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심으로써 그들에 대한 헌신적 사랑을 보여 주셨습니다. 세상을 향한 지극한 사랑 때문에(13,1 참조) 겸허하게 종의 신분을 취하시는 예수님께서는 사랑이신 하느님을 드러내 보여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신 뒤에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이며 스승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었으면,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 내가 너희에게 한 것처럼 너희도 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 준 것이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신 행위는 제자들이 추구해야 하는 삶의 기준과 방향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스승이 보여 준 자기 헌신과 자기 비움의 모습은 제자들 서로의 관계에서도 이어져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제자들의 발 씻김은 과거의 사건이지만, 현재의 의미를 지닙니다. 예수님께서 모범의 표양을 보여 주셨고, 당신을 따르는 제자들과 우리에게 과제로 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말씀처럼, 우리는 아는 것을 실천할 때 행복할 수 있습니다(13,17 참조).

 

 

 

오늘의 말씀 묵상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조명연 마태오 신부

 

잘 아는 사람이 로또에 당첨되었다면 어떻게 바라볼 것 같습니까?

 

엄청난 행운아라고 하면서 부러워할까요? 지금 내가 힘드니까 도와달라고 부탁할까요? 진심으로 축하의 인사를 하겠습니까? 그의 행운에 배 아파하는 것이 아닐까요? 
 
로또 당첨은 814만 5,060분의 1의 확률이라고 하지요. 불가능한 확률을 뚫고서 당첨된 것은 분명히 엄청난 행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보다 더 힘든 확률을 극복한 사람은 어떨까요? 더 엄청난 행운아가 분명합니다. 
 
바로 우리 각자가 그 엄청난 행운아입니다. 한 아기가 이 세상에 태어날 때, 남자가 가진 1억 개의 정자 중 단 하나의 정자만이 난자를 만나게 됩니다. 즉, 우리 각자는 1억분의 1의 확률을 뚫고서 세상에 태어난 것입니다. 로또 당첨보다도 어려운 확률을 극복해서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여러분의 부모가 만날 확률을 따져보면 더 낮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또 여러분의 할아버지 할머니가 만날 확률까지 더해보면, 지금 우리의 존재는 거의 기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는 지금 사제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제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생각해 보면 이 역시 기적입니다. 이렇게 부족한 제가 주님의 일을 하며 살 수 있다는 것, 주님의 큰 사랑 없이는 불가능한 일임을 깨닫습니다. 자기 삶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많아 보입니다. 그러나 따져보면 기적만이 계속 주어지는 삶이었음이 분명합니다. 자기 삶의 기적을 제대로 보지 못하니 과거에 예수님을 반대했던 이스라엘 사람들처럼 계속해서 표징만을 요구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요? 
 
교회는 오늘 우리가 봉헌하는 주님 만찬 미사로 ‘파스카 성삼일’을 시작합니다. 예수님께서 잡히시던 날 밤에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 만찬을 하시면서 빵과 포도주의 형상으로 당신의 몸과 피를 하느님 아버지께 봉헌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성체성사를 이 땅에 새롭게 세워주셨습니다. 그래서 지금을 사는 우리도 미사 안에서 커다란 은총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 역시 커다란 기적입니다. 혹시 배반한 사람을 위해 자기 목숨을 내어 줄 수 있습니까? 자기를 죽이려는 사람을 향해 오히려 커다란 선물을 줄 수 있을까요? 불가능해 보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렇게 하셨습니다. 한 제자가 자기를 팔아넘기고, 가장 믿었던 제자는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하고, 끝까지 따르겠다는 제자들은 모두 뿔뿔이 흩어질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호산나’를 외치며 열렬히 환호하던 이스라엘 군중이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라고 적의 담긴 말을 외칠 것도 알고 계셨습니다. 그런데도 최후 만찬을 통해 성체성사라는 선물을 주신 것입니다. 불가능한 일이 이루어졌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주님의 사랑 안에서 은총에 은총을 계속 더해 받고 있습니다. 따라서 주님의 사랑 안에 머무르며, 주님께 계속 나아가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엄청난 행운아입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그곳을 빠져가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곳을 거쳐 가는 것이다.

- 로버트 프로스트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발씻김과 성찬례는 하나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믿지 않는 이들과 구분되는 특징 하나가 있다면 무엇이라 대답해야 할까요? 

바로 ‘사랑’입니다. “어? 예수님 안 믿는 사람들도 사랑할 줄 아는데요?”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러면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위해 피를 흘리신 유일한 이유가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일을 완성하러 오신 것입니다. 

자녀가 부모의 사랑이 아니면 부모를 사랑할 수 없고 형제를 사랑할 수 없는 것처럼, 하느님의 사랑이 아니면 하느님을 사랑할 수 없고 이웃도 사랑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 사랑을 가능하게 해 주는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일까요? 성찬례입니다. 말씀으로는 목욕을 하는 것처럼 어느 정도 사랑을 위한 준비를 시킬 수 있지만, 자아와 삼구를 완전히 씻지는 못합니다. 자아와 삼구는 하느님의 피가 아니면 씻겨지지 않습니다. 아이들에게서 부모의 피 흘림이 아니면 그것이 씻겨지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유튜브에서 보면 앞이 안 보이는 아빠가 아기를 혼자 키우는 내용이 나옵니다. 아이도 선천 백내장으로 눈이 보이지 않습니다. 아빠는 혼자 젖동냥해가며 아기를 키웠고 그것이 ‘세상에 이런 일이’에 방영되었습니다. 덕분에 후원금이 들어와 아기를 수술할 수 있었습니다. 아기는 왼쪽 눈은 잃었지만, 오른쪽 눈은 0.2라는 시력을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16년이 지난 뒤 아들은 고등학생이 되었고 공부도 잘하여 많은 상을 받았습니다. 제작진은 아들에게 16년 전에 아버지가 자신을 키우기 위해 고생했던 영상을 보여주었습니다. 아들은 앞이 보이지 않는 눈으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립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손을 꼭 잡습니다. 마치 나무토막에 불이 붙으면 그 안에 있는 물과 진액이 빠져나오는 것처럼 아버지의 피는 아들의 자아를 눈물로 빠져나오게 한 것입니다. 아들은 아버지의 손을 잡고 바다를 거닐며 바다의 색깔과 파도의 색깔을 설명해줍니다. 

먼저 부모를 사랑하지 못하면 형제를 사랑할 수 없습니다. 형제는 부모의 마음을 아프지 않게 하려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위 이야기에서 아이는 형제가 없습니다. 

저는 90cm밖에 크지 못한 ‘대성이’의 예를 들고 싶습니다. 대성이는 선천성 왜소증을 앓고 있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이지만, 다섯 살짜리 동생에게 장난감을 빼앗깁니다. 하지만 동생을 용서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그림 그리기를 합니다. 제작진이 어떻게 참을 수 있느냐고 묻습니다. 대성이는 대답합니다. 

“형이니까요!”

자신을 동생의 형으로 만들어준 이가 부모입니다. 대성이는 아빠, 엄마가 자기를 위해 얼마나 고생하는지 잘 압니다. 그래서 아버지 폐지와 폐품을 줍는 것을 고사리손으로 도우려고 합니다. 미안해하는 아버지를 오히려 어쩔 수 없는 거니까 자신은 괜찮다며 위로합니다. 자아가 부모의 피로 죽은 것입니다. 부모를 사랑하는 아이가 어떻게 형제를 미워할 수 있을까요? 그렇게 사랑을 받은 동생은 형이 수술을 할 때 눈물을 흘립니다. 동생도 철이 없는 게 아니었던 것입니다. 

요한복음에는 성찬례가 나오지 않습니다. 대신 발씻김에 관한 내용이 나옵니다. 요한은 이미 성찬례에 관한 내용이 공관복음에 기록되어 있음을 알았을 것입니다. 대신 그 성찬례의 의미를 더욱 깊이 새기는 발씻김 예식을 넣음으로써 발씻김을 통해 성찬례의 의미를 더욱 깊이 이해하게 한 것입니다. 

성찬례의 목적이 하나 있다고 한다면 무엇일까요? 바로 ‘사랑’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게 해서 형제들을 서로 사랑하게 하기 위한 목적입니다. 우리가 성찬례 없이 사랑이 가능했다면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시어 우리에게 살과 피를 내어주실 필요가 없으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성찬례가 어떻게 우리를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으로 이끌까요? 바로 오늘 복음의 발씻김을 통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 모든 것들을 사랑하기 위한 목적으로 성찬례에 참여하나요? 성찬례를 통해 사랑을 방해하는 자아와 세속-육신-마귀의 욕망이 눈물로 빠져나오나요? 

유다는 예수님을 한 번 배반했습니다. 베드로는 세 번 배반했습니다. 둘 다를 위해 예수님은 피를 흘리셨습니다. 베드로는 유다를 더는 미워할 수 없습니다. 자신도 하느님의 자녀가 되기 위해 예수님께서 피를 흘리셔야 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그리스도의 피 흘림을 통해서만 이웃 사랑이 가능한 것입니다. 한 부모의 피 흘림이 한 형제를 만들 듯이, 하느님의 피 흘림은 모든 피조물을 형제로 만듭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프란치스코회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끝이 없는 사랑

 

오늘 복음을 어제 미리 읽고 오늘 강론 주제를 “끝까지 사랑하셨다.”로 잡았습니다. 

“그분께서는 이 세상에서 사랑하신 당신의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다.” 

사실 이 주제는 올해뿐 아니라 여러 차례 반복되는 주제인데 오늘 새벽 일어나자마자 탁 떠오른 생각이 ‘치유될 때까지’, ‘회개할 때까지’ ‘구원받을 때까지’라는 생각이었습니다. 

늘 저의 기도에는 임종을 앞둔 분, 수술을 앞둔 분을 위한 기도도 있는데 어제는 어떤 분이 수술을 준비하고 있다는 전화를 받고 걱정하고 기도하다 잠이 들었기에 일어나자마자 그분 생각이 났던 겁니다. 

그러면서 옛날 어떤 기업 광고 문구, ‘고객이 감동할 때까지’인지 ‘고객이 오케이 할 때까지’인지 모르지만, 그 광고 문구가 생각나면서 주님께서는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이 육신이 치유되고, 죄를 회개하고, 더 나아가 영혼이 구원받을 때까지 사랑하실 거라는 생각이 든 것입니다. 

예전 저의 강론에서 ‘끝까지 사랑하시는’ 주님의 사랑은 주로 제자들이 배신해도 포기하지 않으시는 사랑이었습니다. 

이는 ‘탕자의 비유’에서 작은아들이 싫다고 떠나가도 아버지가 작은아들에 대한 사랑을 포기하지 않은 것처럼 제자들을 포기하지 않는 주님 사랑, 거기에 초점을 둔 것이었지요. 

그러나 올해는 아버지가 아니라 아들, 주님이 아니라 제자들의 상태에 초점을 둔 것입니다. 

회사의 노력이 기준이 아니라 고객의 감동이 기준인 것처럼 아버지의 끝없는 사랑은 작은아들이 돌아올 때까지이고, 주님의 끝없는 사랑도 도망갔던 제자들이 돌아와 참 제자가 될 때까지입니다. 

그런데 전에 제가 주님의 끝없는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 사랑에 초점을 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우리의 사랑, 아니 저의 사랑이 자주 포기하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나의 사랑이 사랑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 나의 사랑이 무시될 때, 나의 사랑이 부담스럽다고 할 때, 더욱이 나의 사랑을 배신으로 응답하고, 흔히 얘기하듯 배은망덕할 때 그에 대한 나의 사랑을 포기할까, 그래서 그를 위한 기도를 이젠 그만둘까 하는 생각이 수없이 드는 저이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저는 ‘그래서는 안 되지’ 하고 계속 기도하고 있는데 그것이 실은 그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내 사랑이 실패하지 않기 위해서 그러니까 포기하지 않는 사랑이 되기 위해서가 더 큰 이유이니, 저의 사랑은 진정 그를 사랑하기 때문이 아니라고 함이 정직합니다. 

사실 그에 대한 저의 사랑은 이미 정나미가 떨어졌거나 적어도 전보다 현저하게 식어버린 것입니다. 

이런 저의 사랑에 비하여 주님의 사랑은 진정 우리를 위한 것입니다. 우리가 회개할 때까지, 우리가 구원받을 때까지, 그러니까 우리가 당신께 돌아와 당신 사랑에 머물 때까지 끝까지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이 당신 사랑의 표시로 성체성사를 세워주시고, 이 성사를 통해 당신 사랑을 기억하고 당신 사랑에 머물라고 초대하십니다.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이 사랑을 사랑으로 알아드리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오늘도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이는 너희를 위한 내 몸이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이 잔은 내 피로 맺는 새 계약이다. 너희는 이 잔을 마실 때마다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성금요일과 성토요일에는 강론을 올리지 않습니다. 부활 대축일에 다시 뵙겠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내가 너희의 발을 씻었으면,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입니다. 사랑은 서로를 깨끗이 합니다. 더러운 데를 씻어주는 진정한 사랑입니다. 삶의 질서는 이와 같이 참된 사랑의 실천입니다. 사랑으로 시작하는 발 씻김의 십자가는 우릴 다시 새롭게 하시는 주님의 참된 사랑입니다. 

우리의 더러운 죄를 완전히 닦아주시는 예수님께서 친히 몸을 숙여 우리의 발을 씻어 주고 수건으로 닦아 주십니다. 옷을 벗듯 자아를 버려야 씻어줄 수 있습니다. 발 씻김이라는 주님의 가장 깨끗한 소식을 듣게 됩니다. 

주님 만찬과 발 씻김과 십자가는 가장 공평하고 가장 깨끗하고 가장 순수하신 사랑입니다. 이 사랑으로 우리를 치유하시고 우리를 해방하십니다. 우리 또한 조건 없이 서로의 허물을 씻어 주어야 합니다. 

사랑이 무엇인지를 아직 모르는 우리들에게 사랑을 보여주시는 사랑의 주님 앞에 우리의 더러운 발을 맡깁니다. 가장 눈부신 사랑의 시간입니다. 씻고 나니 모든 것이 새롭습니다. 서로의 더러운 곳을 씻어주는 거기가 주님의 만찬 미사임을 깨닫습니다. 사랑은 씻어 주고 닦아 주는 대야의 물처럼 비워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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