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저와 다투는 자와 다투시고, 저와 싸우는 자와 싸워 주소서. 둥근 방패 긴 방패 잡으시고 일어나 저를 도와주소서. 주님, 제 구원의 힘이시여.
전능하신 하느님, 저희가 나약하여 힘겨워하는 모습을 굽어보시고 외아드님의 수난으로 다시 생기를 얻게 하소서.
2023년 4월 3일 성주간 월요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랜선으로 초대합니다!
2023년 4월 3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성주간 월요일
오늘 성경 말씀 카드
주님인 내가 의로움으로 너를 부르고 네 손을 붙잡아 주었다. (이사 42,6)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1독서
(이사야서 42,1-7)
그는 외치지도 않으며 그 소리가 거리에서 들리게 하지도 않으리라. - 오늘 복음
(요한 12,1-11)
이 여자를 그냥 놔두어라. 그리하여 내 장례 날을 위하여 이 기름을 간직하게 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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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임금님, 경배하나이다. 당신만이 저희 잘못을 용서하시나이다.
복음
요한 12장 1-11절
이 여자를 그냥 놔두어라. 그리하여 내 장례 날을 위하여 이 기름을 간직하게 하여라.
1
예수님께서는 파스카 축제 엿새 전에 베타니아로 가셨다. 그곳에는 예수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일으키신 라자로가 살고 있었다.
2
거기에서 예수님을 위한 잔치가 베풀어졌는데, 마르타는 시중을 들고 라자로는 예수님과 더불어 식탁에 앉은 이들 가운데 끼여 있었다.
3
그런데 마리아가 비싼 순 나르드 향유 한 리트라를 가져와서,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그 발을 닦아 드렸다. 그러자 온 집 안에 향유 냄새가 가득하였다.
4
제자들 가운데 하나로서 나중에 예수님을 팔아넘길 유다 이스카리옷이 말하였다.
5
“어찌하여 저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지 않는가?”
6
그가 이렇게 말한 것은, 가난한 이들에게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도둑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돈주머니를 맡고 있으면서 거기에 든 돈을 가로채곤 하였다.
7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이 여자를 그냥 놔두어라. 그리하여 내 장례 날을 위하여 이 기름을 간직하게 하여라.
8
사실 가난한 이들은 늘 너희 곁에 있지만, 나는 늘 너희 곁에 있지는 않을 것이다.”
9
예수님께서 그곳에 계시다는 것을 알고 많은 유다인들의 무리가 몰려왔다. 예수님 때문만이 아니라, 그분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일으키신 라자로도 보려는 것이었다.
10
그리하여 수석 사제들은 라자로도 죽이기로 결의하였다.
11
라자로 때문에 많은 유다인이 떨어져 나가 예수님을 믿었기 때문이다.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3년 4월 3일 (월)
전진 도미니코 신부 집전
📌 미사시작 00:37
📌 강론시작 07:13
명동성당 매일미사
2023년 4월 3일 (월)
조학문 바오로 신부 집전
📌 미사시작 10:01
📌 강론시작 18:05
팔로티회 매일미사
홍천 팔로티회 매일미사
2023년 4월 3일 (월)
팔로티회 홍천
매일미사 오후 3시
김태광 아우구스티노 신부 집전
📌 미사시작 00:21
📌 강론시작 08:38
분당 팔로티회 매일미사
2023년 4월 3일 (월)
팔로티회 분당
성체조배 오후 3시
매일미사 오후 4시
김지학 요셉 신부 집전
📌 성체조배 0:10:03
📌 미사시작 2:16:56
📌 강론시작 2:23:43
오늘의 말씀 묵상
매일미사
정진만 안젤로 신부
신앙의 모범 찾기
오늘 복음은 파스카 축제 엿새 전 베타니아에서 일어난 사건을 소개합니다. 예수님께서 축제를 앞두고 예루살렘 가까이 올라가셨다는 이야기와 함께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라자로에 대한 언급은 다가올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예시합니다.
복음은 마리아의 행동을 바라보는 유다와 예수님의 반응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마리아는 나르드 향유 한 리트라(약 320그램)를 가져와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닦아 드렸습니다. 삼백 일의 품삯에 상응하는 삼백 데나리온의 값어치를 지닌 향유였습니다. 값비싼 향유를 부어 드린 행위는 마리아가 예수님께 드린 최고의 사랑을 표현합니다.
이러한 마리아의 행위에 유다는 부정적입니다. 그는 마리아가 값비싼 향유를 낭비한다고 여기며 가난한 이들을 위하여 쓰지 않는다고 비판하지만, 사실 물질에 대한 탐욕이 있었고 정직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마리아의 행위에 의미와 정당성을 부여하십니다.
“이 여자를 그냥 놔두어라. 그리하여 내 장례 날을 위하여 이 기름을 간직하게 하여라.”
이 말씀은 향유를 붓는 행위를 예수님의 죽음을 예고하는 상징적 행위로 설명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당신의 죽음이 가까이 왔음을 알고 계셨습니다. 이는 수석 사제들이 예수님과 함께 라자로를 죽이기로 결의함으로써 확인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마리아와 유다의 모습은 대조적입니다. 마리아가 헌신적 봉헌의 표양을 보여 주었다면, 유다는 탐욕에 빠진 배반자였습니다. 우리는 마리아의 모습에서 신앙의 모범을 찾아야 합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조명연 마태오 신부
언어 박탈 실험
‘언어 박탈 실험’이 과거에 있었습니다. 7세기경 이집트의 파라오 프삼티크 황제는 어떤 언어에도 노출되지 않은 아기가 내뱉는 말이 최초의 언어일 것이라면서, 갓난아기 둘을 산속 오두막에 가두어 키운 것입니다. 모든 언어로부터 고립된 채 자란 아기가 처음 내뱉은 말은 ‘베코스’였다고 합니다. 이는 당시 프리기아어로 ‘빵’을 뜻합니다. 그래서 프삼티크 황제는 프리기아어가 최초의 언어라고 발표했습니다.
솔직히 말이 안 되는 실험이었습니다. 사회로부터 완전히 분리된 아기를 전혀 존중하지 않은 끔찍한 실험이었지요. 그리고 두 아기라는 표본만으로 최초의 언어가 프리기아어라고 주장하는 것도 너무 근거 없습니다. 그로부터 거의 500년 뒤, 신성로마제국 황제 프리드리히 2세 역시 비슷한 실험을 했습니다. 단, 이번에는 아주 많은 갓난아기를 한 방에 가둬서 키웠지요. 마찬가지로 모든 언어와도 접촉하지 못하게 하면서, 보모와 간호사들이 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으로 아기들을 돌보게 했습니다. 황제는 아기들의 첫 언어가 구약성경이 쓰인 히브리어일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그러나 이 아이들은 모두 죽고 말았습니다. 사람은 사회로부터 분리되면 살 수 없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사실 첫 번째 언어를 찾는 것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보다 함께 사는 방법을 찾는 방법이 더 중요했습니다. 함께 잘 사는 것이 하느님 창조 사업에 부합한 모습이며, 생명을 지키면서 하느님의 뜻을 세상에 펼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세상을 보면, ‘함께’ 보다 ‘나’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세상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끔찍한 말과 행동을 하는 사람도 늘어납니다. 함께해야 사랑할 수 있으며, 이 사랑의 세상이 될 때 하느님께서 보시니 참 좋은 세상이 될 수 있습니다.
마리아가 비싼 순 나르드 향유 한 리트라를 가져와서,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그 발을 닦아 드립니다. 최고 존경의 표시입니다. 예수님 사랑에 감사하면서 존경과 사랑을 담아서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주님과 함께하고자 하는 마음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예수님을 팔아넘길 유다 이스카리옷입니다. 그는 “어찌하여 저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300일치 노동자 품삯으로 현재 약 3,000만 원의 가치)에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지 않는가?”라면서 자기 혼자 옳은 것처럼 말합니다. 그런데 유다는 예수님을 은전 30냥에 팝니다. 이 액수는 당시 노예의 가격으로, 노동자 120일치 품삯에 해당합니다. 예수님을 노예 취급하고 있으니, 이런 말을 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자기의 생각만을 옳다고 생각했기에 주님을 팔아넘기는 큰 죄를 범하게 되었습니다. 주님과 ‘함께’하는 마음을 잃어버리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과 과연 ‘함께’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을까요? 주님께 사랑과 존경을 드리는 마음을 가지고 있을까요? 주님과 함께해야 진정한 기쁨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자신의 생각을 바꾸고 세상을 바꿔라.
- 노먼 빈센트 필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부모에게 아끼는 자녀가 형제에게 아끼지 않을까?
영화 ‘라이언 킹’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무파사는 프라이드 랜드의 왕으로, 아들 심바와 함께 평화롭게 지내고 있습니다. 어린 심바는 세상을 발견하며 성장하고 있고, 아버지 무파사는 그에게 왕의 역할과 책임에 대해 가르칩니다. 하지만, 무파사의 동생 스카는 왕위를 탐내며 음모를 꾸미게 됩니다. 스카는 하이에나들과 결탁하여 무파사를 살해하고, 심바를 쫓아내어 왕위를 차지합니다. 심바는 삼촌 스카가 아버지를 살해한 것을 알지 못하고 삼촌 스카의 말대로 자신 때문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생각하여 프라이드 랜드를 떠납니다. 스카는 심바까지 죽이려고 했지만 실패합니다.
심바는 목숨을 건진 덕분에 멀리 떨어진 곳에서 새로운 친구 품바와 티몬을 만나게 됩니다. 그들과 함께 성장하며, ‘하쿠나 마타타’라는 철학에 따라 걱정 없이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나 성장한 심바는 운명적으로 그의 과거와 마주하게 되고 어린 시절의 친구 나라를 만납니다. 나라는 프라이드 랜드의 현재 상황을 알려주며, 심바에게 왕의 자리에 서야 한다고 호소합니다. 스카가 하이에나와 결탁하여 프라이드 랜드가 황폐해졌기 때문에 모두가 고통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심바는 처음에는 자신의 과거를 회피하려 하지만, 무파사의 영혼과의 만남을 통해 용기를 얻게 됩니다. 아버지의 뜻을 물려받기로 한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죄책감과 삼촌, 그리고 하이에나들과 대결을 해야 합니다. 결국 심바는 나라, 품바, 티몬과 함께 프라이드 랜드로 돌아와 스카와 전투를 벌입니다. 스카는 패배하고, 심바는 왕의 자리에 다시 오르게 됩니다. 영화는 새로운 왕실의 탄생과 함께 평화롭게 회복된 프라이드 랜드를 보여주며 끝납니다.
심바가 프라이드 랜드의 형제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 아버지의 뜻에 자신을 바치는 것입니다. 자신이 아버지를 죽였다는 부끄러움도 무릅써야 하고 목숨까지 내어놓아야 합니다. 하지만 결국 아버지께 대한 효성이 자기 친구들에게 행복을 주는 길이었습니다. 만약 아버지의 뜻에 자기를 바치지 않았다면 그의 친구는 품바와 티몬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형제를 사랑하게 되는 길은 부모를 먼저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면 그 대상에게 자신을 봉헌합니다. 부모의 뜻에 자신을 봉헌하지 않는 사람은 그 부모의 형제들도 사랑할 수 없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베타니아의 마리아는 예수님께 300데나리온이나 되는 향유를 발라 드립니다. 2~3천만 원 상당의 상당히 고가인 향유입니다. 이것을 본 유다 이스카리옷이 말합니다.
“어찌하여 저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지 않는가?”
예수님께 아끼는 자가 이웃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을까요? 이 때문에 요한은 이렇게 주석을 답니다.
“그가 이렇게 말한 것은, 가난한 이들에게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도둑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돈주머니를 맡고 있으면서 거기에 든 돈을 가로채곤 하였다.”
예수님께서는 당신께 봉헌하는 의미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 여자를 그냥 놔두어라. 그리하여 내 장례 날을 위하여 이 기름을 간직하게 하여라.”
성경에서는 베타니아의 마리아와 막달라의 마리아가 다른 인물처럼 나오지만, 하.사.시.에는 동일 인물로 나옵니다. 곧 마지막까지 예수님의 무덤을 지키다 예수님의 부활을 처음으로 목격한 여인이 된 것입니다. 봉헌이 곧 사랑입니다. 얼마만큼 줄 수 있느냐가 그 대상에 대한 사랑의 정도로 여겨질 수밖에 없습니다.
부모에게 아끼는 자녀는 당연히 형제들에게도 아낄 수밖에 없습니다. 형제는 부모에 대한 사랑 때문에 사랑하는 것입니다. 부모를 사랑하지 않으면 형제의 의미도 사라집니다. 따라서 부모에게 아끼지 않는 자녀가 형제간에도 아끼지 않습니다. 결국 그리스도께 봉헌함이 이웃에 대한 사랑의 시작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스카리옷 유다처럼 예수님께까지 질투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부모에게 아끼는 사람은 형제에게도 아낍니다. 하느님께 아끼는 사람은 그분의 모든 피조물에도 아낄 수밖에 없고 그래서 어떤 피조물에게도 좋은 일을 하지 못하고 어떤 피조물에게도 사랑받지 못합니다. 하느님께 아끼는 사람은 누구에게도 사랑받을 수 없는 길로 가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세상 모든 것을 사랑하기 위해 세상 모든 것을 창조하신 하느님께 아끼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프란치스코회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성주간에는
오늘 복음에서 마리아가 그 비싼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발라주자 유다는 그 돈으로 가난한 사람을 위해 쓰면 더 값어치 있을 텐데 주님께서는 왜 그 짓을 막지 않고 내버려 두냐는 말을 합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도 유다의 말이 맞고, 주님도 그렇게 하기를 바라실 겁니다.
사랑의 주님, 평소에 누구보다도 가난한 이들을 사랑하는 주님, 가난한 이에게 해준 것이 바로 당신께 해준 거라고 하신 주님이 아닙니까?
그런데도 주님께서는 마리아의 행위를 질책하지 않고 두둔하십니다. 그것은 당신이 그것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마리아를 위해서입니다.,그것은 당신에게 그것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마리아를 위해서입니다.
당신의 죽음을 앞둔 시점에서 마리아가 맘껏 사랑을 표하라는 허용입니다. 마리아가 사랑을 할 수 있도록 그의 사랑을 귀히 여기고 받아주신 겁니다. 상대의 사랑을 귀히 여기고 받아주는 것,,그것이 사랑이라는 것을 누누이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상대를 사랑하지 않으면 상대의 사랑을 하찮게 여기거나 귀찮게 여길 것이고 아예 거부하고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하여간 지금 주님은 죽음을 앞둔 시점이고, 그래서 지금은 당신을 하게 내버려 두시며 당신이 돌아가시고 난 뒤에는 가난한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이 여자를 그냥 놔두어라. 그리하여 내 장례 날을 위하여 이 기름을 간직하게 하여라. 사실 가난한 이들은 늘 너희 곁에 있지만, 나는 늘 너희 곁에 있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도 성주간에는 이웃 사랑도 좋지만, 주님 사랑에 집중하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죽음을 이기신 다음에는 이웃 사랑을 열심히 하면 되겠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그 발을 닦아 드렸다.
마음의 가치를 만나는 아름다운 시간입니다. 간절한 향유처럼 간절한 마음이 있습니다. 간절한 마음은 가장 중요한 것을 간직하는 사랑의 마음입니다. 마리아의 향유가 유다 이스카리옷의 욕심을 일깨워 줍니다. 목숨을 내어놓으시는 예수님의 발을 향유로 닦아드리는 마리아의 마음이 성주간의 마음입니다.
영원할 거라 믿었던 것들이 실은 영원한 것들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잠깐 피었다 떨어지는 봄꽃처럼 우리의 시간은 참으로 빠릅니다. 예수님으로부터 시작되는 영원한 마음의 시작입니다. 영원한 사랑에 동참하듯 우리 마음의 사랑을 이제 꺼내어 예수님의 발을 닦아드려야 할 시간과 사람은 바로 우리자신입니다.
마음을 씻어주는 것은 마음이고 향기를 더욱 향기롭게 하는 것 또한 마음입니다. 씻어야 찾을 수 있고 씻어 주어야 흠뻑 젖을 수 있는 마음의 이치입니다. 소중히 간직해야 할 마음의 길 그 길을 사랑이라 부릅니다. 사랑도 마음인지라 씻어주고 닦아주어야 더욱 향기롭습니다.
십자가의 길을 걸으려 하시는 예수님의 발을 닦아드리는 마리아의 사랑은 이미 부활의 향기로운 마음입니다. 사랑은 마음을 만나는 마음의 일치입니다. 마음의 길을 예수님과 함께 걸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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