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계약의 중개자이신 그리스도 돌아가시어, 부르심을 받은 이들이 약속된 영원한 유산을 받도록 빌어 주시네.
주님, 주님의 자비를 바라는 저희를 자애로이 보호하시어 더러운 죄를 깨끗이 씻어 주시고 한결같이 거룩하게 살아 영원한 상속을 받게 하소서.
2023년 3월 30일 (목)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랜선으로 초대합니다!
2023년 3월 30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사순 제5주간 목요일
오늘 성경 말씀 카드
내 말을 지키는 이는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않을 것이다. (요한 8,51)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1독서
(창세기 17,3-9)
너는 많은 민족들의 아버지가 될 것이다. - 오늘 복음
(요한 8,51-59)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날을 보리라고 즐거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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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너희는 주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너희 마음을 무디게 하지 마라.
복음
요한 8장 51-59절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날을 보리라고 즐거워하였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유다인들에게 말씀하셨다.
51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내 말을 지키는 이는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않을 것이다.”
52
유다인들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이제 우리는 당신이 마귀 들렸다는 것을 알았소. 아브라함도 죽고 예언자들도 그러하였는데, 당신은 ‘내 말을 지키는 이는 영원히 죽음을 맛보지 않을 것이다.’ 하고 말하고 있소.
53
우리 조상 아브라함도 죽었는데 당신이 그분보다 훌륭하다는 말이오? 예언자들도 죽었소. 그런데 당신은 누구로 자처하는 것이오?”
54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나 자신을 영광스럽게 한다면 나의 영광은 아무것도 아니다. 나를 영광스럽게 하시는 분은 내 아버지시다. 너희가 ‘그분은 우리의 하느님이시다.’ 하고 말하는 바로 그분이시다.
55
너희는 그분을 알지 못하지만 나는 그분을 안다. 내가 그분을 알지 못한다고 말하면 나도 너희와 같은 거짓말쟁이가 될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분을 알고 또 그분의 말씀을 지킨다.
56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날을 보리라고 즐거워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보고 기뻐하였다.”
57
유다인들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당신은 아직 쉰 살도 되지 않았는데 아브라함을 보았다는 말이오?”
58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아브라함이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다.”
59
그러자 그들은 돌을 들어 예수님께 던지려고 하였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몸을 숨겨 성전 밖으로 나가셨다.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3년 3월 30일 (목)
김여욱 프란치스코 신부 집전
📌 미사시작 00:22
📌 강론시작 06:45
명동성당 매일미사
2023년 3월 30일 (목)
진슬기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 집전
📌 미사시작 07:54
📌 강론시작 15:28
팔로티회 매일미사
홍천 팔로티회 매일미사
2023년 3월 30일 (목)
팔로티회 홍천
매일미사 오후 3시
안동억 프란치스코 신부 집전
📌 미사시작 01:17
📌 강론시작 07:58
분당 팔로티회 매일미사
2023년 3월 30일 (목)
팔로티회 분당
매일미사 오후 4시
김지학 요셉 신부 집전
📌 미사시작 03:56
📌 강론시작 10:32
오늘의 말씀 묵상
매일미사
허규 베네딕토 신부
내 말을 지키는 이는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않을 것이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과 아브라함을 비교하면서 영원한 생명에 대하여 말합니다. 아브라함이 언제 태어나고 죽었는지 지금으로서는 그 시기를 명확하게 알기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유다인들에게 아브라함은 하느님과 계약을 맺어 그분의 축복을 백성에게 내려 준 가장 위대한 선조입니다.
“나는 나와 너 사이에, 그리고 네 뒤에 오는 후손들 사이에 대대로 내 계약을 영원한 계약으로 세워, 너와 네 뒤에 오는 후손들에게 하느님이 되어 주겠다.”
그 뒤로 유다인들에게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는 표현은 이 계약에 따라 하느님의 축복을 상속받는다는 의미였습니다. 위대한 선조인 아브라함도 하느님의 축복으로 장수하였지만 영원히 살지는 못하였습니다.
이런 유다인들에게 “내 말을 지키는 이는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않을 것이다.”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쉽게 다가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께서 마귀 들렸다고 하며, 더 이상 예수님께서 누구이신지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에 대한 논쟁에서도 질문이 등장합니다.
“당신은 누구로 자처하는 것이오?”
“아브라함을 보았다는 말이오?”
복음을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어렵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브라함보다 먼저 계셨습니다. 신학에서는 이것을 ‘그리스도의 선재’라고 표현합니다.
예수님께서 탄생 이전 한처음부터 하느님과 함께 계셨던 분이시라는 뜻입니다. 다르게 말한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언제나 계시는 분으로 영원하신 분이십니다. 요한 복음은 이런 방식으로 독자들이 예수님에 관한 복음서의 내용을 기억하게 합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조명연 마태오 신부
우리는 주님께 집중하고 있을까요?
몇 주 전, 잠에서 일어났는데 목과 어깨가 너무 아픈 것입니다. 잠을 잘못 잔 것 같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풀리겠지 했는데 점점 더 아픈 것입니다. 그다음 날 강의가 있기에 걱정이 되었습니다. 목을 조금만 움직여도 큰 아픔이 있어서 움직이기가 너무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강의에 대한 걱정 속에 강의가 있는 성당에 갔고, 걱정을 품고 강의 연단에 섰습니다. 그런데 신자들이 제 강의에 너무나 적극적으로 반응해 주셔서 아주 신나게 강의할 수 있었습니다.
90분 동안 쉬지 않고 강의를 한 뒤에 강복과 함께 마쳤습니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깜짝 놀랐습니다. 아팠던 목과 어깨의 통증이 사라진 것입니다. 조금도 움직이기 힘들었던 딱딱하게 굳은 목과 어깨가 완전히 풀린 것이지요.
이렇게 집중하면 새로운 결과를 가져옵니다. 그러나 우리는 불편한 마음을 가지고 집중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 집중이 불편한 마음을 해결할 수도 있는데도, 불편해서 집중할 수 없는 것으로 당연하게 여깁니다.
주님께도 집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주 어렸을 때, 저를 지켜주시는 부모님과 함께 있으면 편안한 마음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성인이 되면 이 보호가 필요 없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 편안한 마음을 대신 채워줄 사람을 찾아서 친구, 애인, 배우자 등을 만들고 있지 않습니까? 하지만 사람은 완벽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 안에서 편안함보다 상처를 얻어 불편함을 호소할 때가 많습니다.
무한한 사랑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주님께 집중할 수 있어야 합니다. 특히 그분의 사랑에 집중하면서 사랑받고 있음을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불편한 마음보다 편하고 기쁜 마음을 간직하면서 지금을 잘 살 수 있습니다.
예수님과 유다인들이 대화를 나눕니다.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유다인들은 예수님이 마귀들렸다는 말도 하고 또 돌을 던지려고 합니다. 예수님을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예수님께서 놀라운 기적과 영원한 생명에 대한 구원의 말씀을 하셔도 듣지 않습니다. 듣지 않으니 자연스럽게 집중할 수 없게 되겠지요.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내 말을 지키는 이는 영원한 죽음을 보지 않을 것이다.”(요한 8,51)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사람, 그만큼 주님께 집중하면서 그 안에서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사람만이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께 집중하고 있을까요? 주님이 아닌 세상에 집중하면서 주님께서 주시는 편안함을 느끼지 못했던 것이 아닐까요?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아무리 중대한 실수를 저질렀더라도 항상 또 다른 기회는 있기 마련이다. 우리가 실패라 부르는 것은 추락하는 것이 아니라 추락한 채로 있는 것이다.
- 메리 픽포드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님의 오늘 말씀 묵상 업데이트 준비중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프란치스코회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자폐가 아닌 관상을
“나를 보아라. 너와 맺는 내 계약은 이것이다. 나는 네가 매우 많은 자손을 낳아 여러 민족이 되게 하겠다.”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날을 보리라고 즐거워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보고 기뻐하였다.”
오늘 복음은 이스라엘 백성이 자기들 믿음의 아버지라고 믿는 아브라함이 주님께서 오실 때를 내다보며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기다렸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주님을 바로 눈앞에 두고 보면서도 정작 그 주님을 몰라본다는 주님 말씀입니다.
그것은 아브라함처럼 믿음의 눈을 가지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일까 오늘 창세기는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얘기하고, 계약을 맺는 아브라함에게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첫마디를 떼십니다.
“나를 보아라.”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당신을 보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이 말이 실은 인간을 보지 말고 당신을 보라는 것이고, 인간 중에서도 나이 먹은 자기를 보지 말고 당신을 보라는 말씀입니다.
인간을 보거나 특히 나이 먹은 자기를 보면 너에게서 많은 자손과 민족들이 나올 것이라고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을 도저히 믿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과 저는 하느님은 안 보고 자기를 보고, 그리고 자기를 보기에 아브라함처럼 멀리 내다보지 못합니다.
아브라함은 이천 년 뒤의 주님 오심을 내다보고 기뻐하고 즐거워하였는데 저는 주님을 보지 않고 내다봐야 고작 칠십 너머의 저를 보며 불안해합니다.
그럴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저만 보면 이 세상에서의 저밖에 볼 수 없는데 저는 이제 얼마 안 남았고, 그나마도 병들어 사람들에게 짐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지난주에 이미 말씀드린 대로 하느님 없이, 과거를 돌아보면 죄밖에 보이지 않고 미래를 내다보면 불안합니다.
그러니 이제 생각을 바꿔야겠습니다. 하느님을 보고 영원을 봐야겠습니다. 하느님 안에서 영원을 내다보고 기뻐하고 즐거워해야겠습니다.
그리고 이것도 깨달아야 합니다. 하느님 없이 자기 바라보기는,내성도 아니고 반성도 아닌 자폐일 뿐입니다.
반대로 하느님 앞에서 그리고 하느님 안에서 자기 바라보기는 내성이요 반성이고 더 나아가 하느님 관상이요 자기 관상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날을 보리라고 즐거워하였다.
진홍빛 진달래가 피어납니다. 봄 아닌 것이 없습니다. 치러야 할 삶의 본질에서 물러서지 않으시는 예수님의 확실한 정체성을 만납니다. 이미 와 계신 하느님을 알아 보지 못하는 우리들입니다. 하느님께로 향하는 마음이 없기에 우리는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참 생명의 해방을 가로막고 있는 것은 언제나 우리자신입니다. 우리 삶의 중심축이 더 이상 하느님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존재 자체로 가장 커다란 역할을 하십니다.
한정적인 시간을 살다간 아브라함까지 끌어안으시는 분이십니다. 모든 생존의 경계를 뛰어넘는 사랑을 보여주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현실 역사 속에 가두어 둘 수 없습니다.
가리움 없는 마음의 눈으로 구원의 역사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구원의 역사는 존재의 변화이며 우리의 삶과 우리 현실역사에 대한 새롭고도 기쁜 복음의 다채로운 관계성의 빛깔이며 향기입니다. 물 흐르는 듯 열린 마음이 주님의 날을 보는 즐거움이며 행복입니다.
진실한 뜻과 진실한 실천은 예수님의 정체성처럼 세상에서 가장 강력하고 가장 아름다운 힘이 됩니다.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예수님을 기쁘게 맞이하시는 기쁜 날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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