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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3/03/16 (목)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3. 3.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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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이 말씀하신다. 나는 백성의 구원이다. 어떠한 환난 속에서도 부르짖으면 내가 들어 주고, 영원토록 그들의 주님이 되어 주리라.

주님, 존엄하신 주님께 간절히 비오니 구원의 축제가 다가올수록 저희가 더욱 큰 열정으로 파스카 신비를 준비하게 하소서.

 

2023년 3월 16일 (목)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랜선으로 초대합니다!

2023년 3월 16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사순 제3주간 목요일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1독서
    (예레미야서 7,23-28)
    이 민족은 주 그들의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않은 민족이다.

  • 오늘 복음
    (루카 11,14-23)
    내 편에 서지 않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3년 3월 16일 (목) 평화방송 매일미사 명동성당 매일미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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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묵상 바로가기

 

 

매일미사 복음 (Gospel)
복음 (Gospel)

 

주님이 말씀하신다. 나는 너그럽고 자비로우니 이제 마음을 다하여 나에게 돌아오너라.

 

 

복음
루카 11장 14-23절

 

내 편에 서지 않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다.

 

그때에 

14 
예수님께서 벙어리 마귀를 쫓아내셨는데, 마귀가 나가자 말을 못하는 이가 말을 하게 되었다. 그러자 군중이 놀라워하였다. 

15 
그러나 그들 가운데 몇 사람은, “저자는 마귀 우두머리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 하고 말하였다. 

16 
다른 사람들은 예수님을 시험하느라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표징을 그분께 요구하기도 하였다. 

17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느 나라든지 서로 갈라서면 망하고 집들도 무너진다. 

18 
사탄도 서로 갈라서면 그의 나라가 어떻게 버티어 내겠느냐? 그런데도 너희는 내가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고 말한다. 

19 
내가 만일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면, 너희의 아들들은 누구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는 말이냐? 그러니 바로 그들이 너희의 재판관이 될 것이다. 

20 
그러나 내가 하느님의 손가락으로 마귀들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 

21 
힘센 자가 완전히 무장하고 자기 저택을 지키면 그의 재산은 안전하다. 

22 
그러나 더 힘센 자가 덤벼들어 그를 이기면, 그자는 그가 의지하던 무장을 빼앗고 저희끼리 전리품을 나눈다. 

23 
내 편에 서지 않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고, 나와 함께 모아들이지 않는 자는 흩어 버리는 자다.”

 

 

매일미사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3년 3월 16일 (목)
최대환 세례자 요한 신부 집전

 

📌 미사시작 00:22

📌 강론시작 07:37

 

 

 

명동성당 매일미사

 

 

2023년 3월 16일 (목)
진슬기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 집전

 

📌 미사시작 05:59

📌 강론시작 15:21

 

 

 

팔로티회 매일미사

 

홍천 팔로티회 매일미사

 

2023년 3월 16일 (목)
안동억 프란치스코 신부 집전

 

📌 미사시작 00:35

📌 강론시작 06:55

 

분당 팔로티회 매일미사

 

2023년 3월 16일 (목)
김지학 요셉 신부 집전

 

📌 성체조배 0:03:46

📌 미사시작 1:03:20

📌 강론시작 1:10:30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오늘의 말씀 묵상
매일미사
허규 베네딕토 신부

 

선택은 우리의 몫

 

“저자는 마귀 우두머리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예수님의 행위를 비판합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벙어리 마귀를 쫓아내신 기적에 관한 것이지만, 그에 대한 반응은 마귀와 사탄에 대한 논쟁으로 이어집니다. 

기적에 관한 간략한 소개와는 다르게 예수님에 대한 여러 사람의 다양한 생각을 보여 주면서 신약 성경에서 말하는 하느님을 거스르는 세력을 언급합니다. 

베엘제불은 구약 성경에서 ‘바알 즈붑’이라고도 불립니다(2열왕 1,2 참조). 두 이름은 발음에서 다를 뿐 같은 의미를 가집니다. 열왕기 하권에서 바알 즈붑은 ‘에크론의 신’으로 표현됩니다. 우상과 관련된 베엘제불은 사탄의 다른 이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신약 성경에서 악의 세력의 우두머리를 일컬을 때 가장 자주 쓰이는 표현인 사탄은 하느님의 적대자나 반대자를 의미합니다. 그는 하느님의 뜻에 반하여 행동합니다. 

복음서에 많이 언급되는 마귀는 사탄 아래 있는 세력입니다. 그러므로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는 것은 예수님 말씀처럼 논리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악의 세력에 반대되는 표현은 ‘하느님의 손가락’입니다. 하느님의 손가락은 이집트에 내린 하느님의 재앙을 말할 때 묘사되고(탈출 8,15 참조), 하느님의 업적을 상징합니다. 

하느님의 업적은 사탄과 마귀들의 일과 비교될 수 없습니다. 사탄의 힘은 우리에게 강해 보일 수 있습니다. 때로는 그 힘에 휘둘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업적은 그것보다 더 강합니다. 이제 선택은 우리의 몫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조명연 마태오 신부

 

자신이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고, 반대로 나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재미있는 실험 결과를 본 적이 있습니다. 우선 이 실험의 참가자는 모두 여성이었습니다. 먼저 이들에게 독해력 테스트를 가장한 읽기 지문을 나누어 준 뒤에 수학 문제를 풀게 했습니다. 첫 번째 집단에는 ‘남성과 여성이 수학 시험에서 동등하게 우수한 성적을 냈다’라는 내용의 지문을 읽게 했고, 두 번째 집단에는 ‘Y 염색체에서 발견되는 일부 유전자 때문에 남성이 여성보다 5% 포인트 더 높은 점수를 기록했다’라는 내용의 지문을 읽게 했습니다. 이제 수학 문제 테스트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잠깐 지문을 읽었을 뿐인데도 두 번째 그룹의 성적이 첫 번째 그룹보다 25%나 더 낮았습니다. 
 
여기에 세 번째 실험 집단도 있습니다. 이 집단도 두 번째 집단과 마찬가지로 남성이 여성보다 수학 시험에서 더 좋은 결과를 냈다는 지문을 읽게 했습니다. 다만 이 지문의 끝에는 ‘학창 시절 초기부터 이어진 교사들의 편향된 기대 때문’이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습니다. 이제 테스트 결과는 어떠했을까요? 두 번째 그룹보다 월등히 좋았고, 첫째 그룹과는 성적이 비슷했습니다. 
 
나쁜 결과를 가져온 것은 유전적 원인 때문이 아님을 보여주는 실험이었습니다. 자신이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고, 반대로 나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른 이의 말과 행동에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성장을 가져올 수 있는 생각으로 무장하는 지혜가 필요함을 깨닫게 됩니다. 
 
또 한 가지는 우리는 함께 살아간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자기만의 성장이 아닌 우리의 성장도 함께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의 성장을 위해 내 이웃에게 어떤 말과 행동을 하고 있었을까요? 성장할 수 있는 말과 행동, 즉 칭찬과 응원 그리고 지지 등의 긍정적인 모습으로 최고의 결과를 낼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벙어리 마귀를 쫓아내셨습니다. 그런데 몇몇 사람이 “저자는 마귀 우두머리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라고 말하면서 예수님의 기적을 폄하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하늘에서 내려오는 표징을 받아들이고 있지 않았습니다. 주님을 통한 구원의 길에 들어설 수 없는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그리고 자기들의 잘못된 생각에서 나오는 말을 통해서 남들도 주님 곁에 나아가지 못하게 했습니다. 
 
참 하느님이신 주님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습니까? 많은 이가 자신이 원하는 것을 다 들어주는 돈을 넣으면 물건이 나오는 자판기처럼 주님을 생각합니다. 그래서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불평불만을 하면서 주님이 잘못되었다고 말하고 있으며, 이런 잘못된 생각으로 다른 이들도 주님과 함께 못하게 합니다. 
 
주님 편에 서지 않는 자는 주님을 반대하는 자라고 하셨습니다. 주님 뜻을 마음에 담으면서 철저하게 따르는 사람만이 주님과 함께하며, 이웃들도 주님과 함께할 수 있도록 합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적당히 일하고 좀 더 느긋하게 쉬어라. 현명한 사람은 느긋하게 인생을 보냄으로써 진정한 행복을 누리는 것이다.

- 그라시안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예수님 편에 섰지만, 예수님의 적이 되는 사람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솔져보이’(2019)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에게 맞서 싸운 여섯 살 최연소 소련군 군인입니다. 진짜 군대에서 주는 훈장까지 받았습니다. 그는 보급지원 업무를 맡아 적의 매복을 찾아내고 편지와 보급품을 군인들에게 보급하며 사기를 끌어올렸습니다. 왜 여섯 살 소년이 전쟁에 그렇게 진심이었을까요?

그는 엄마, 아빠를 독일군에게 죽임을 당하여 잃었습니다. 그를 구해주려던 이모도 독일군 총에 맞는 것을 보았습니다. 죽을 고비를 많이 넘기면서도 정글과 같은 숲속에서 살아남았습니다. 그러다 자기를 발견하고 아들로 삼아준 사람이 소련군 대위였습니다. 그는 새로운 아빠를 돕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였습니다. 그 일은 아이이기 때문에 할 수 있었던 독특하지만 큰 영향을 주는 것들이었습니다. 

이 아이가 전장에서 중립을 지킬 수 있을까요? 아니면 미적지근하게 도울 수 있을까요? 자신의 가족을 죽인 독일군과 자신을 아들로 맞아주고 사랑해주는 군대를 위해 어떻게 중립일 수 있을까요? 신앙도 전쟁과 같습니다. 예수님은 빛으로 오셨고 악은 어둠입니다. 그 어둠은 우리가 아는 많은 이들을 지옥으로 끌고 갔습니다. 미적지근한 신앙은 있을 수 없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벙어리 마귀를 쫓아내십니다. 그런데 군중 가운데 몇몇이 예수님께서 베엘제불의 힘으로 마귀를 쫓아냈다고 합니다. 그러자 사탄도 서로 갈라지면 망하게 된다고 하시며 빛과 어두움은 공존할 수 없음을 말씀하십니다. 악령을 쫓아낸다면 그것은 성령이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 중의 어떤 이들은 마치 악과 선이, 그리고 어둠과 빛이 섞여 있다고 믿는 이상한 혼합주의에 빠져있었습니다. 사실 요즘도 마찬가지입니다. 지옥과 악마에 대해 말하면 이상한 눈으로 쳐다봅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이러한 미적지근한 신앙의 방식을 이 한마디로 정리해주십니다. 

“내 편에 서지 않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고, 나와 함께 모아들이지 않는 자는 흩어 버리는 자다.”

반대한 적이 없어도 예수님과 함께하지 않으면 반대한 것이나 마찬가지이고 예수님을 방해한 적이 없어도 예수님의 일에 동참하지 않으면 방해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뜻입니다. 빛 안에 머물지 않으면 그것은 어둠 안에 머무는 것과 같습니다. 중립이나 미지근한 신앙은 없습니다. 

제가 축구를 좀 하는 편이었고 군대 신임 병 때 나름으로 열심히 뛴다고 뛰었는데 선임에게 야단을 맞았습니다. 저에게 기대한 만큼 제가 뛰어주지 않으니 다른 선임들도 기운이 빠지는 것이었습니다. 야단을 맞고는 죽기 살기로 뛰었습니다. 칭찬을 많이 받았습니다. 

전투에서 중립이나 미지근함이나 욕을 안 먹으려고만 하는 소극적인 군인은 오히려 해가 됩니다. 그래서 전진 명령이 떨어졌을 때 뛰지 않는 군인은 총살당할 수도 있습니다. 전쟁에서는 죽어라 싸우지 않으면 싸우지 않으면 적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정의와 선의 편에 섰다는 확실한 증거는 무엇일까요? 주님의 기도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주님의 양식은 영혼을 구하는 일입니다.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에게 복음을 전하고 당신의 양식이 바로 아버지의 뜻을 따름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영혼 구원에 힘쓰기 위해 은총과 진리의 양식을 청합니다. 이것이 기도입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오늘’입니다. 매일 청한다는 말입니다. 전쟁 중에 휴가가 어디 있겠으며 휴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선교를 위한 열정으로 매일 기도하지 않는다면 그것 자체가 이미 그리스도 밖에 있게 됨을 명심합시다. 매일 조금이라도 기도해야 하고 그 목적이 나와 이웃의 영혼 구원이어야 함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사역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는 신앙인은 오히려 그리스도의 힘과 교회의 의욕을 잃게 만드는 가장 큰 적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프란치스코회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네 앞에는 무엇이?

 

“그들은 순종하지도 귀를 기울이지도 않고, 제멋대로 사악한 마음을 따라 고집스럽게 걸었다. 그들은 앞이 아니라 뒤를 향하였다.” 

오늘 예레미야서의 주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앞이 아니라 뒤를 향하였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앞이 아니라 뒤를 향하였다는 것이 무슨 뜻이고, 앞은 어디고 뒤는 어딥니까? 

시간적으로 보면 앞은 미래고 뒤는 과거로 명확하지요. 그래서 시간적으로 앞을 향할 때 그것은 미래지향적이라고 말하고, 뒤를 향하면 과거지향적이라고 말하는데 그 뜻이 명확합니다. 

그런데 오늘 예레미야서가 뜻하는 앞과 뒤가 이것이겠습니까? 시간적인 앞과 뒤를 뜻하는 것이겠습니까? 

제 생각에 미래지향, 과거지향이라는 말이 있듯이 우리가 무엇을 지향하고 목표하느냐, 그것에 따라서 목표하는 것은 앞이고 목표와 반대되는 것은 뒤입니다. 

지금 이 정부는 일본 미국과의 동맹을 목표로 하면서 북한 중국과는 등을 지기로 명확히 하였고, 그 이유는 국익 때문이라고 명확히 했는데, 진짜 국익인지 모르지만, 이익을 위해 통일이라는 가치를 포기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민족 통일을 목표로 보면 앞이 아니라 뒤를 향하는 것이지요 통일 앞으로 갈 것인가, 통일을 등지고 갈 것인가? 통일로 갈 것인가, 반통일로 갈 것인가? 이 문제에서 명확하게 뒤와 반통일을 선택한 것입니다. 

다른 관점에서 보겠습니다. 우리의 목표가 행복이어야 한다는 관점입니다. 우리는 모두 행복 앞으로 가야 합니다. 행복이 우리 인생의 궁극 목적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행복이 목적이라고 하면서 어떤 때 보면 돈을 쫓습니다. 돈이 행복을 준다고 믿기 때문인데 실제로는 행복 앞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행복을 등지고 가는 겁니다. 

사랑 관점에서도 보겠습니다. 우리는 행복을 위해 사랑 앞으로 가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실제를 보면 사랑하겠다면서 ‘사랑 앞으로’가 아니라 ‘사랑 등지기’가 비일비재합니다. 거짓 사랑에 속거나 자기 사랑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신앙의 관점에서 보겠습니다. 하느님께선 인간이 행복하려면 당신을 사랑해야 하고, 사랑한다면 당신의 명령에 순명해야 한다고 하십니다. 

사실 하느님의 명령은 살라는 명령이고 행복하라는 명령인데 우리는 명령이 싫어서 명령에 등집니다. 자유를 더 사랑하여 불순명하는 겁니다. 

사랑과 자유가 대립하지 않고 조화를 이뤄야 하는데 우리의 사랑이 미성숙하고 자유는 더 미성숙하여 하느님을 사랑하지 않고 자유를 더 사랑하고 맙니다. 

어쨌거나 오늘 예레미야서는 우리에게 묻습니다. 

너는 어디를 향하고 있느냐? 

네 앞에는 무엇이 있느냐? 

너는 하느님 앞에 있느냐?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내 편에 서지 않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다.

 

사실 사람도 나라도 갈라서면 망하고 무너집니다. 일치를 향한 저항이 매우 거셉니다. 닦아주고 씻겨주어야 할 신앙의 정직한 관계입니다. 어둠을 먼저 보아야 빛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무너진 곳에서 다시 시작하시는 하느님 구원의 방식입니다. 하느님이 중심이 되지 않고서는 어떤 공동체도 선량한 공동체가 될 수 없습니다. 신앙의 대 전환점이 필요한 시간입니다. 

예수님의 삶을 통하여 우리의 삶을 비추어 보아야 합니다. 너무 많은 것을 욕심내어서는 예수님의 편에 설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반대하지 않는 사람은 예수님과 함께 모아들이는 사람입니다. 

먼저 우리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아는 것이 그 어떤 지식보다 참으로 중요합니다. 미움과 판단의 매듭을 끊고 십자가와 함께 예수님의 편에 서서 기도하는 뜨거운 사순의 마음이길 기도드립니다. 

빛은 어둠 속에서 더욱 빛나고 봄은 꽃샘추위에서 더욱 빛납니다. 우리는 어둠이 아니고 하느님을 닮은 빛입니다. 빛은 일치를 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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