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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3/03/19 (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3. 3.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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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워하여라, 예루살렘아. 그를 사랑하는 이들아, 모두 모여라. 슬퍼하던 이들아,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위로의 젖을 먹고 기뻐 뛰리라.

하느님, 말씀이신 성자를 통하여 오묘하게 인류를 구원하셨으니 그리스도인들이 다가오는 파스카 축제를 열렬한 믿음과 정성으로 준비하게 하소서.

 

2023년 3월 19일 (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랜선으로 초대합니다!

2023년 3월 19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사순 제4주일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1독서
    (사무엘기 상권 16,1ㄱㄹㅁㅂ.6-7.10-13ㄴ)
    다윗이 이스라엘 임금으로 기름부음을 받다.

  • 제2독서
    (에페소서 5,8-14)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너를 비추어 주시리라.

  • 오늘 복음
    (요한 9,1-41)
    태어나면서부터 눈먼 사람이 가서 씻고 앞을 보게 되어 돌아왔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3년 3월 19일 (일) 평화방송 매일미사 명동성당 매일미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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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복음 (Gospel)
복음 (Gospel)

 

주님이 말씀하신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를 따르는 이는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복음
요한 9장 1-41절

 

태어나면서부터 눈먼 사람이 가서 씻고 앞을 보게 되어 돌아왔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길을 가시다가 태어나면서부터 눈먼 사람을 보셨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물었다. “스승님, 누가 죄를 지었기에 저이가 눈먼 사람으로 태어났습니까? 저 사람입니까, 그의 부모입니까?”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저 사람이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그 부모가 죄를 지은 것도 아니다. 하느님의 일이 저 사람에게서 드러나려고 그리된 것이다. 


나를 보내신 분의 일을 우리는 낮 동안에 해야 한다. 이제 밤이 올 터인데 그때에는 아무도 일하지 못한다. 


내가 이 세상에 있는 동안 나는 세상의 빛이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땅에 침을 뱉고 그것으로 진흙을 개어 그 사람의 눈에 바르신 다음, 


“실로암 못으로 가서 씻어라.” 하고 그에게 이르셨다. ‘실로암’은 ‘파견된 이’라고 번역되는 말이다. 그가 가서 씻고 앞을 보게 되어 돌아왔다. 


이웃 사람들이, 그리고 그가 전에 거지였던 것을 보아 온 이들이 말하였다. “저 사람은 앉아서 구걸하던 이가 아닌가?” 


어떤 이들은 “그 사람이오.”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아니오. 그와 닮은 사람이오.” 하였다. 그 사람은 “내가 바로 그 사람입니다.” 하고 말하였다. 

10 
그들이 “그러면 어떻게 눈을 뜨게 되었소?” 하고 묻자, 

11 
그 사람이 대답하였다. “예수님이라는 분이 진흙을 개어 내 눈에 바르신 다음, ‘실로암 못으로 가서 씻어라.’ 하고 나에게 이르셨습니다. 그래서 내가 가서 씻었더니 보게 되었습니다.” 

12 
그들이 “그 사람이 어디 있소?” 하고 물으니, 그가 “모르겠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13 
그들은 전에 눈이 멀었던 그 사람을 바리사이들에게 데리고 갔다. 

14 
그런데 예수님께서 진흙을 개어 그 사람의 눈을 뜨게 해 주신 날은 안식일이었다. 

15 
그래서 바리사이들도 그에게 어떻게 보게 되었는지 다시 물었다. 그는 “그분이 제 눈에 진흙을 붙여 주신 다음, 제가 씻었더니 보게 되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16 
바리사이들 가운데에서 몇몇은 “그는 안식일을 지키지 않으므로 하느님에게서 온 사람이 아니오.” 하고, 어떤 이들은 “죄인이 어떻게 그런 표징을 일으킬 수 있겠소?” 하여, 그들 사이에 논란이 일어났다. 

17 
그리하여 그들이 눈이 멀었던 이에게 다시 물었다. “그가 당신 눈을 뜨게 해 주었는데, 당신은 그를 어떻게 생각하오?” 그러자 그가 대답하였다. “그분은 예언자이십니다.” 

18 
유다인들은 그가 눈이 멀었었는데 이제는 보게 되었다는 사실을 믿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앞을 볼 수 있게 된 그 사람의 부모를 불러, 

19 
그들에게 물었다. “이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눈이 멀었다는 당신네 아들이오? 그런데 지금은 어떻게 보게 되었소?” 

20 
그의 부모가 대답하였다. “이 아이가 우리 아들이라는 것과 태어날 때부터 눈이 멀었다는 것은 우리가 압니다. 

21 
그러나 지금 어떻게 해서 보게 되었는지는 모릅니다. 누가 그의 눈을 뜨게 해 주었는지도 우리는 모릅니다. 그에게 물어보십시오. 나이를 먹었으니 제 일은 스스로 이야기할 것입니다.” 

22 
그의 부모는 유다인들이 두려워 이렇게 말하였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메시아라고 고백하면 회당에서 내쫓기로 유다인들이 이미 합의하였기 때문이다. 

23 
그래서 그의 부모가 “나이를 먹었으니 그에게 물어보십시오.” 하고 말한 것이다. 

24 
그리하여 바리사이들은 눈이 멀었던 그 사람을 다시 불러,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시오. 우리는 그자가 죄인임을 알고 있소.” 하고 말하였다. 

25 
그 사람이 대답하였다. “그분이 죄인인지 아닌지 저는 모릅니다. 그러나 이 한 가지, 제가 눈이 멀었는데 이제는 보게 되었다는 것은 압니다.” 

26 
“그가 당신에게 무엇을 하였소? 그가 어떻게 해서 당신의 눈을 뜨게 하였소?” 하고 그들이 물으니, 

27 
그가 대답하였다. “제가 이미 여러분에게 말씀드렸는데 여러분은 들으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어째서 다시 들으려고 하십니까? 여러분도 그분의 제자가 되고 싶다는 말씀입니까?” 

28 
그러자 그들은 그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말하였다. “당신은 그자의 제자지만 우리는 모세의 제자요. 

29 
우리는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는 것을 아오. 그러나 그자가 어디에서 왔는지는 우리가 알지 못하오.” 

30 
그 사람이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그분이 제 눈을 뜨게 해 주셨는데 여러분은 그분이 어디에서 오셨는지 모르신다니, 그것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31 
하느님께서는 죄인들의 말을 들어 주지 않으신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그러나 누가 하느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뜻을 실천하면, 그 사람의 말은 들어 주십니다. 

32 
태어날 때부터 눈이 먼 사람의 눈을 누가 뜨게 해 주었다는 말을 일찍이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33 그분이 하느님에게서 오지 않으셨으면 아무것도 하실 수 없었을 것입니다.” 

34 
그러자 그들은 “당신은 완전히 죄 중에 태어났으면서 우리를 가르치려고 드는 것이오?” 하며, 그를 밖으로 내쫓아 버렸다. 

35 
그가 밖으로 내쫓겼다는 말을 들으신 예수님께서는 그를 만나시자, “너는 사람의 아들을 믿느냐?” 하고 물으셨다. 

36 
그 사람이 “선생님, 그분이 누구이십니까? 제가 그분을 믿을 수 있도록 말씀해 주십시오.” 하고 대답하자, 

37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너는 이미 그를 보았다. 너와 말하는 사람이 바로 그다.” 

38 
그는 “주님, 저는 믿습니다.” 하며 예수님께 경배하였다. 

39 
그때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나는 이 세상을 심판하러 왔다. 보지 못하는 이들은 보고, 보는 이들은 눈먼 자가 되게 하려는 것이다.” 
40 
예수님과 함께 있던 몇몇 바리사이가 이 말씀을 듣고 예수님께, “우리도 눈먼 자라는 말은 아니겠지요?” 하고 말하였다. 

4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가 눈먼 사람이었으면 오히려 죄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너희가 ‘우리는 잘 본다.’ 하고 있으니, 너희 죄는 그대로 남아 있다.”

 

 

매일미사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3년 3월 19일 (일)
나광남 미카엘 신부 집전

 

📌 미사시작 00:22

📌 강론시작 14:29

 

 

 

명동성당 매일미사

 

 

2023년 3월 19일 (일)
진슬기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 집전

 

📌 미사시작 07:54

📌 강론시작 19:08

 

 

 

팔로티회 매일미사

 

홍천 팔로티회 매일미사

 

2023년 3월 19일 (일)
안동억 프란치스코 신부 집전

 

📌 미사시작 00:13

📌 강론시작 08:47

 

분당 팔로티회 매일미사

 

2023년 3월 19일 (일)
야렉 카미엔스키 신부 집전

 

📌 성체조배 0:02:00

📌 미사시작 0:58:08

📌 강론시작 1:28:52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오늘의 말씀 묵상
매일미사
허규 베네딕토 신부

 

죄만을 생각하고 죄를 찾는 눈에는 죄가 보일 뿐이다.

 

“여러분은 한때 어둠이었지만 지금은 주님 안에 있는 빛입니다. 빛의 자녀답게 살아가십시오.” 

제2독서인 에페소서의 이 말씀은 마치 복음서의 주제를 요약해 주는 것처럼 보입니다. 오늘 복음은 빛과 어둠의 이야기입니다. 

요한 복음에서 ‘빛’은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상징으로 사용된다는 점에서 빛과 어둠은 믿음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빛은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믿는 사람을, 반대로 어둠은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하고 빛이 없는 상태에, 곧 어둠에 머물러 있는 사람을 나타냅니다. 

오늘 복음은 태어나면서부터 눈먼 사람이 예수님을 알아 가는 과정을 보여 주는 동시에 애써 그의 증언을 받아들이지 않는 바리사이들의 모습을 묘사합니다. 그 중심에는 예수님께서 일으키신 표징과 그것을 통하여 드러나는 예수님의 신원이 있습니다. 

눈먼 사람은 빛을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만남으로 그는 빛을 선물받습니다. 그는 이제 어둠에서 빛으로 나아갑니다. 눈을 뜨게 된 사람과 대조되는 이는 바리사이들입니다. 그들은 볼 수 있는, 눈이 멀지 않은 이들이지만 빛을 거부합니다. 

다른 의미로 눈은 뜨고 있지만 진정한 빛을 보지 못합니다. 그들의 생각에 눈먼 것은 죄의 결과이고, 눈먼 사람은 죄인입니다. 바리사이들에게는 죄의 여부와 안식일에 지켜야 할 규정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안식일 규정을 어긴 예수님 또한 바리사이들의 눈에는 죄인일 뿐입니다. 죄만을 생각하고 죄를 찾는 눈에는 죄가 보일 뿐입니다. 빛을 생각하고 빛을 찾는 사람에게는 빛이 드러납니다. 그리고 “빛의 열매는 모든 선과 의로움과 진실입니다”(에페 5,9).

 

 

 

오늘의 말씀 묵상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조명연 마태오 신부

 

너 자신이 되라! 다른 사람은 이미 있으니까.

 

참가자에게 모두 똑같은 방식으로 조리한 소고기 패티를 제공했습니다. 단지 겉에 적혀 있는 라벨링 문구에 차이가 있을 뿐이었습니다. 참가자 절반이 받은 소고기 패티에는 ‘살코기 함량 75%’라고 적혀 있었고, 나머지 참가자가 받은 소고기 패티에는 ‘지방 함량 25%’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즉, 라벨링 문구만 다를 뿐 똑같은 소고기 패티였습니다. 그리고 이 라벨링 문구도 같이 보면 차이가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살코기 함량 75%라는 것은 곧 지방 함량 25%를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소고기 패티를 시식한 사람이 맛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했을까요? 
 
‘살코기 함량 75%’라고 적힌 요리를 맛본 사람이 ‘지방 함량 25%’라고 적힌 요리를 먹은 사람보다 고기 패티가 덜 기름지고 더 담백해서 맛과 품질 모두 좋다고 평가했습니다. 똑같은 소고기 패티인데도 말입니다. 
 
부정적 성향을 받아들이면 이렇게 올바른 판단을 하기 힘듭니다. 종종 물건을 사기 위해 인터넷 게시판에 적힌 상품평을 보곤 하는데, 부정적인 상품평을 보게 되면 이 물건을 사는데 망설이게 됩니다. 부정적 성향을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주님과 함께하는 삶에서 부정적 성향은 주님으로부터 더 멀어지게 만듭니다. 분명히 신앙생활을 통해 많은 힘을 얻는데도, 남이 하는 부정적 말에 자신의 신앙을 내려놓기도 합니다. 이런 말을 듣고서 자신은 신앙생활을 하지 않겠다고 하시는 분도 있지요. 
 
‘종교에 빠지면 가족을 돌보지 않는다, 종교에 빠지면 이상한 행동을 한다. 종교는 아편이다.’ 
 
긍정적 성향을 보여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 안에서 더 힘차게 기쁨의 삶을 살 수 있게 됩니다. 행복이 멀리에 있지 않음을 깨닫습니다. 
 
예수님께서 태어나면서부터 눈먼 사람을 보시고는 땅에 침을 뱉고 그것으로 진흙을 개어 그 사람의 눈에 바르신 다음 “실로암 못으로 가서 씻어라.”라고 이르십니다. 예수님 말씀을 따른 이 사람은 이제 앞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냥 실로암 못으로 가서 씻게 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아니 그냥 그 자리에서 말씀만으로 앞을 볼 수 있도록 하실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왜 땅에 침을 뱉고 그것으로 진흙을 개어 그 사람 눈에 바르셨을까요? 침은 은총을 나타냅니다. 즉, 주님의 은총으로 치유되었음을 깨닫게 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주님의 전지전능하신 힘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를 보지 못하는 유다인들입니다. 태생 소경이 앞을 보게 되었음에도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에게서 온 사람이 아니라면서 하느님의 은총을 거부합니다. 그 부정적인 생각이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주님의 사랑이라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향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을 증언하는 태생 소경처럼 우리도 세상에 용기 있게 주님을 증언할 수 있습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너 자신이 되라! 다른 사람은 이미 있으니까.

- 오스카 와일드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빛의 자녀가 되기 위한 첫 걸음은?

 

마더 데레사가 젊었을 때 어느 빈민굴을 방문하였습니다. 한 청년을 만났는데 그는 돼지우리 저리가라 할 만한 방에서 술독에 빠져 게으르게 살고 있었습니다. 방엔 등잔이 있었지만 청년은 등잔을 켜지 않고 낮에도 어둡게 지내고 있었습니다. 

마더 데레사가 등잔에 불을 켜자 청년은 화를 내며 불을 끕니다. 성녀는 지지 않고 다시 불을 켰고 청년은 다시 껐습니다. 그렇게 옥신각신 하다가 화가 난 청년은 등잔을 창문 밖으로 내던져 깨 버렸습니다. 성녀는 시장에 가서 새 등잔을 사서 돌아와서는 그 방에 불을 밝혀주고 수녀원으로 돌아왔습니다. 

10년 정도가 지나 우연찮게 한 젊은 수녀를 통해 그 청년의 소식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청년은 깨끗하게 정돈된 집에서 안정된 직장을 다니며 착실히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그 청년이 마더 데레사와 같은 옷을 입은 젊은 수녀를 보자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그 키 작은 수녀님께 전해 주십시오. 당신의 등불이 지금도 내 삶 안에서 빛나고 있다고.” 

빛에는 창조의 힘이 있습니다. 빛은 자신의 어두운 면을 보게 만들어 변화의 필요성을 깨닫게 합니다. 태초에 하느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던 날 가장 먼저 ‘빛’을 창조하셨습니다(창세 1,3 참조). 그 빛을 통해 인간의 마음과 생각과 행실을 새롭게 창조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이 세상에 있는 동안 나는 세상의 빛이다”(요한 9,5)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빛이신 그리스도를 통해 하느님 자녀로 새로 태어납니다. 

하지만 세상은 위 청년처럼 빛을 싫어합니다. 자신들의 권리를 잃게 되기 때문입니다. 영화 ‘눈먼자들의 도시’(2008)는 ‘80억 인구가 눈이 멀고 혼자만 앞을 볼 수 있다면?’이란 물음으로 시작됩니다. 

여기에서 눈이 보임은 축복이 아니라 저주가 됩니다. 본래부터 앞을 볼 수 없었던 이들에게 눈먼이들은 착취를 당합니다. 혼자 눈이 보이는 이는 그들에게 표적이 되어 숨어서 그들과 저항할 세력을 모아야 했습니다. 본래 앞을 못 보았던 이들에게는 눈먼자들의 도시는 천국입니다. 그래서 빛을 거부합니다. 자신들이 차지한 권리를 잃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태생소경에게 눈을 만들어주십니다. 당연히 자신들 안에 빛이 있다고 믿었던 유다 지도자들은 그 눈을 뜬 소경을 배척합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지금 너희가 ‘우리는 잘 본다.’ 하고 있으니, 너희 죄는 그대로 남아 있다”(요한 9,41)라고 말씀하십니다. 

세상은 어둠을 더 사랑하여 빛을 보고도 눈을 감습니다. 이것이 원죄입니다. 어둠은 세상이 돈과 쾌락과 힘을 추구하도록 도와줍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그러한 삶이 지옥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혼자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당신을 받아들이는 이들과 함께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빛을 받아들인 이들을 세상에 파견합니다. 오늘 태생소경이 눈을 씻은 실로암은 그래서 세례로 파견받는다는 뜻을 지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도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마태 5,14)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그동안의 삶이 어둠이었음을 받아들이고 빛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요? 거짓의 두렁이를 벗어버려야 합니다. 아담과 하와는 죄를 짓고 부끄러움을 느끼고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이는 분명 행복한 감정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감정을 긍정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솔직함을 벗고 거짓의 두렁이를 만들어 입었습니다. 하느님 앞에 자신들이 어둠임을 인정하는 것보다 자기들 스스로 고통이 행복이라고 믿기로 한 것입니다. 

무언가 죄와 그로 인한 고통을 덮어버리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거짓말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어찌하여 너희는 내 이야기를 깨닫지 못하느냐? 너희가 내 말을 들을 줄 모르기 때문이다”(요한 8,43)라고 하시며, “너희는 너희 아비인 악마에게서 났고, 너희 아비의 욕망대로 하기를 원한다. 그는 처음부터 살인자로서, 진리 편에 서 본 적이 없다. 그 안에 진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가 거짓을 말할 때에는 본성에서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 그가 거짓말쟁이며 거짓의 아비기 때문이다”(요한 8,44)라고 하십니다. 

거짓말은 세속-육신-마귀가 행복이라고 덮어버리는 어둠입니다. 거짓에 사로잡혀 있으면 그 어둠에서 빠져나올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보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요한 1,47)라고 하시며 거짓이 없고 거짓말을 할 줄 모르는 사람을 찾으십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프란치스코회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한때 어둠

 

오늘 에페소서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형제 여러분, 여러분은 한때 어둠이었지만 지금은 주님 안에 있는 빛입니다. 빛의 자녀답게 살아가십시오.” 

그리고 복음에는 한때 어둠이었지만, 이제 지금은 빛의 자녀가 된 사람 태생 소경의 얘기가 나옵니다. 그래서 오늘 사순 제4주일에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이렇게 질문을 던집니다. 

나는 한때 어둠이었는가? 

한때 어둠이었다면 그것은 지금은 어둠이 아니라는 얘기이니 다시 그러면 나는 지금 어둠이 없는가? 빛인가? 

또는 이렇게 자문할 수 있습니다. 

나는 어둠을 통과한 빛인가? 

복음을 보면 두 부류가 있습니다. 

어둠을 통과한 태생 소경과 바리사이를 비롯해 아직 어둠 가운데 있는 사람들. 

태생 소경은 자기 뜻이 아니지만, 어둠의 자식으로 태어났고, 뜻밖에도 어둠을 벗어날 수 있었고, 빛의 자녀로 태어났습니다. 뜻밖이란 자기 뜻이 아니란 말입니다.

소경이 된 것도, 자기 뜻이 아니고, 보게 된 것도, 자기 뜻이 아닌 은총입니다. 어둠도 누구의 죄나 탓이 아닌 은총이고, 다시 보게 된 것도 누구의 공로가 아닌 은총이라는 말입니다. 

바리사이는 태생 소경이 죄인이기에 그리된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당신은 완전히 죄 중에 태어났으면서”라고 모진 말을 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하느님의 일이 저 사람에게서 드러나려고 그리된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빛이신 하느님께는 어둠 또한 어둡지 않습니다. 그래서 시편 138편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어두움 그것마저 당신께는 어둡지 않아 밤 또한 낮과 같이 환히 밝으며 캄캄함도 당신께는 빛과 같으오리다.” 

소경은 한때 어둠이었지만, 주님과 만나며 빛 가운데 있게 되었고, 자신만 볼 수 있게 된 것이 아니라 이제 하느님의 빛이 되었습니다. 이 상태를 에페소서의 바오로는 “주님 안에 있는 빛”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은총으로 어둠을 통과해 볼 수 있게 되고, 더 나아가 세상을 비추는 주님 안의 빛이 되었지만 그 은총을 차버리고 곧 주님 밖으로 나가면 이내 어둠이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사순 제4주일에 이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나는 한때 어둠이었다. 

나는 주님 안에서만 빛이다. 

나는 바리사이들처럼 볼 수 있으니 소경이 아닌 것이 아니라 한때 어둠이었고 주님 안에 있지 않으면 언제고 다시 어둠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 사실도 알아야 합니다. 

이제는 세상의 빛이 되어야 한다. 

내가 어두워 세상도 어둡게 하지 말아야 한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너는 이미 그를 보았다. 너와 말하는 사람이 바로 그다.

 

세상의 빛이신 예수님께서는 보지못하는 시각장애인을 보게하시듯 새롭게 우리의 눈을 열어주십니다. 빛과 어둠이 공존하는 우리들 삶입니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더 어두운 우리의 내면입니다. 어둠은 끊임없이 우리를 편협한 자아에 가두고 닫히게 합니다. 삶다운 삶을 살고싶다면 먼저 우리의 어두운 면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매일매일 우리내면의 더러움과 어두움을 성찰하게 됩니다. 신앙은 예수님의 빛을 통하여 나와 너 우리를 다시 보는 것이며 다시 만나는 것입니다. 생동감있는 믿음의 소중함을 절실히 깨닫는 시간들입니다. 

세상으로부터 받은 상처를 치유하여 주시는 예수님의 손길이십니다. 차가운 우리의 냉혹함은 결코 마음을 되살릴 수 없습니다. 마음에게 필요한 것은 따뜻한 믿음입니다. 따뜻한 믿음이 예수님과 함께 어둠을 밝힙니다. 

예수님이라는 하느님 나라를 보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죄를 치유하시는 분이시며 우리의 닫힌 마음을 깨뜨리시는 분이십니다. 마음을 깨끗이 씻어 주시는 사랑에서 우리는 빛으로 나가게 됩니다. 주님의 빛은 땅과 하늘을 고루 비추며 있는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게 합니다. 

자신을 볼 수 있는 사람이 있는 그대로 이웃 형제들을 볼 수 있는 사람입니다. 빛이신 예수님과 함께 있는 그대로를 볼 수 있는 사람이 되게하여 주십시오! 우리의 참된 모습이 참된 사랑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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