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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3/03/22 (수)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3. 3.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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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저의 기도가 당신께 다다르게 하소서. 은총의 때이옵니다. 하느님, 당신의 크신 자애로 제게 응답하소서. 당신은 참된 구원이시옵니다.

하느님, 의로운 이에게 상을 주시고 참회하는 죄인을 용서하시니 죄를 고백하는 저희를 자비로이 용서하소서.

 

2023년 3월 22일 (수)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랜선으로 초대합니다!

2023년 3월 22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사순 제4주간 수요일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1독서
    (이사야서 49,8-15)
    땅을 다시 일으키려고 내가 너를 백성을 위한 계약으로 삼았다.

  • 오늘 복음
    (요한 5,17-30)
    아버지께서 죽은 이들을 일으켜 다시 살리시는 것처럼 아들도 자기가 원하는 이들을 다시 살린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3년 3월 22일 (수) 평화방송 매일미사 명동성당 매일미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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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복음 (Gospel)
복음 (Gospel)

 

주님이 말씀하신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으리라.

 

 

복음
요한 5장 17-30절

 

아버지께서 죽은 이들을 일으켜 다시 살리시는 것처럼 아들도 자기가 원하는 이들을 다시 살린다.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유다인들에게, 

17 
“내 아버지께서 여태 일하고 계시니 나도 일하는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18 
이 때문에 유다인들은 더욱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였다. 그분께서 안식일을 어기실 뿐만 아니라, 하느님을 당신 아버지라고 하시면서 당신 자신을 하느님과 대등하게 만드셨기 때문이다. 

19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아버지께서 하시는 것을 보지 않고서 아들이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그분께서 하시는 것을 아들도 그대로 할 따름이다. 

20 
아버지께서는 아들을 사랑하시어 당신께서 하시는 모든 것을 아들에게 보여 주신다. 그리고 앞으로 그보다 더 큰 일들을 아들에게 보여 주시어, 너희를 놀라게 하실 것이다. 

21 
아버지께서 죽은 이들을 일으켜 다시 살리시는 것처럼, 아들도 자기가 원하는 이들을 다시 살린다. 

22 
아버지께서는 아무도 심판하지 않으시고, 심판하는 일을 모두 아들에게 넘기셨다. 

23 
모든 사람이 아버지를 공경하듯이 아들도 공경하게 하시려는 것이다. 아들을 공경하지 않는 자는 아들을 보내신 아버지도 공경하지 않는다.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내 말을 듣고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이는 영생을 얻고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는 이미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갔다. 

25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죽은 이들이 하느님 아들의 목소리를 듣고 또 그렇게 들은 이들이 살아날 때가 온다. 지금이 바로 그때다. 
26 
아버지께서 당신 안에 생명을 가지고 계신 것처럼, 아들도 그 안에 생명을 가지게 해 주셨기 때문이다. 

27 
아버지께서는 또 그가 사람의 아들이므로 심판을 하는 권한도 주셨다. 

28 
이 말에 놀라지 마라. 무덤 속에 있는 모든 사람이 그의 목소리를 듣는 때가 온다. 

29 
그들이 무덤에서 나와, 선을 행한 이들은 부활하여 생명을 얻고 악을 저지른 자들은 부활하여 심판을 받을 것이다. 

30
나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다. 나는 듣는 대로 심판할 따름이다. 그래서 내 심판은 올바르다. 내가 내 뜻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매일미사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3년 3월 22일 (수)
김정현 요셉 신부 집전

 

📌 미사시작 00:22

📌 강론시작 07:11

 

 

 

명동성당 매일미사

 

 

2023년 3월 22일 (수)
조인기 암브로시오 신부 집전

 

📌 미사시작 07:49

📌 강론시작 16:08

 

 

 

팔로티회 매일미사

 

홍천 팔로티회 매일미사

 

2023년 3월 22일 (수)
안동억 프란치스코 신부 집전

 

📌 미사시작 00:03

📌 강론시작 07:06

 

분당 팔로티회 매일미사

 

2023년 3월 22일 (수)
팔로티회 분당 성체조배 오후 3시
김지학 요셉 신부 집전 매일미사 오후 4시 시작합니다.

 

📌 성체조배 0:00:33

📌 미사시작 1:00:11

📌 강론시작 1:07:42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오늘의 말씀 묵상
매일미사
허규 베네딕토 신부

 

예수님에 대한 두 가지 상반된 시각

 

“이 때문에 유다인들은 더욱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였다. 그분께서 안식일을 어기실 뿐만 아니라, 하느님을 당신 아버지라고 하시면서 당신 자신을 하느님과 대등하게 만드셨기 때문이다.” 

벳자타 못에서 병자를 치유하신 이야기에 이어지는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죽음을 예견합니다. 이미 유다인들은 예수님을 죽이려고 마음먹었고, 이 사건을 계기로 ‘더욱’ 죽이려고 합니다. 복음의 표현은 예수님께서 사형 선고를 받으실 때 공개적으로 제시되었던 죄목과 같습니다. 

“우리에게는 율법이 있소. 이 율법에 따르면 그자는 죽어 마땅하오. 자기가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자처하였기 때문이오”(요한 19,7).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에 대한 두 가지 상반된 시각을 볼 수 있습니다. 먼저, 복음이 전하는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눈먼 사람을 보게 하신 표징도 예수님께서 빛으로 세상에 오셨으며 하느님의 아드님으로서 이 세상에서 하느님의 뜻을 드러내는 사건입니다. 

같은 사건이지만 일부 유다인들의 시각에서 예수님은 신을 모독하고, 자신을 하느님과 같은 분으로 만든 죄인일 뿐입니다. 하나의 표징이지만 그 사건의 의미는 받아들이는 사람들에 따라 달라집니다. 

예수님을 빛으로 받아들이고 하느님의 아드님으로 믿는 이들에게 그분께서는 생명을 주시는 분이시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그분의 업적이 하느님에 대한 불경처럼 보입니다. 

요한 복음은 이렇게 상반된 시각을 제시하면서 독자들에게 결단하게 합니다. 복음을 듣는 사람은 어떤 시각으로 예수님을 바라보고 받아들일지 선택해야 합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조명연 마태오 신부

 

변화가 필요할 때

 

운전할 때 우리는 신호등을 잘 지켜야 합니다. 그렇다면 신호등의 색은 어떻게 될까요? ‘빨간색, 노란색, 초록색.’ 맞습니까? 아마 맞는다고 대답하실 것이고, 이 대답이 틀렸다고 하시는 분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틀렸다면서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노란색이 아니라 오렌지색이라는 것입니다. 같은 색 계열이니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 싶은데, 실제로는 전혀 다른 색입니다. 노란색은 레몬 빛을 띤 밝은색이지요. 그에 반해 실제 우리가 보는 신호등은 오렌지색에 더 가까운 짙은 노란색입니다. 그래서 주황색이라고 하는 것이 더 맞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어렸을 때부터 빨간색은 정지, 초록색은 진행(통과), 노란색은 신호 변경 예고로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노란색이 아닌데도 노란색이라고 배우다 보니, 노란색이 아닌데도 ‘노란색’이라고 말하게 됩니다. 
 
고정관념을 자기도 모르게 갖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 고정관념이 틀린 것도 모르게 합니다. 사람과의 관계 안에서도 고정관념으로 인해 남 탓, 또는 내 탓만을 외치게 됩니다. 어떻게 남 탓만일 수 있고, 또 내 탓만일 수 있겠습니까? 
 
카톡 문자를 보냈는데 ‘읽음’ 표시가 없거나, 읽은 것 같은데 답장이 없습니다. 그래서 상대방이 자기를 싫어한다고 단정 짓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정말일까요? 문자를 읽지 못하는 상황을 비롯한 답장하지 못할 이유는 너무나 많습니다. 
 
열린 마음이 필요합니다. 무조건 받아들이고 보는 것이 아니라, 성모님께서 보여주셨듯이 곰곰이 생각하며 마음에 담아두는 모습이 필요합니다. 그 순간에는 이해할 수 없어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하느님의 손길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어떤 사람도 100% 틀린 사람은 없다고 합니다. 이 점을 기억하며 새로운 모습을 바라볼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유다인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 안식일을 어기고, 하느님을 당신 아버지라고 말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참 하느님이심을 알았다면 어떠했을까요? 예수님께서 보여주셨던 많은 표징을 곰곰이 생각하며 마음에 담아두었다면 그럴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신원에 대해 말씀해주십니다. 그들이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기를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변화가 필요할 때입니다. 스스로 만드는 고정관념으로 하느님을 알아보지 못하는 불경에서 벗어나서, 삶 안에서 우리와 함께하는 하느님을 바라볼 수 있는 넓은 마음을 갖춰야 할 때입니다. 예수님을 빛으로 받아들이고 하느님의 아드님으로 믿는 이들에게 생명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진리로 나아가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위대함은 다른 사람보다 앞서가는 데 있지 않다. 참된 위대함은 자신의 과거보다 한 걸음 앞서 나가는 데 있다.

- 인도 속담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성령께서 내리시는 자리의 조건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내 아버지께서 여태 일하고 계시니 나도 일하는 것이다”라고 하시고 “아버지께서 하시는 것을 보지 않고서 아들이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라고도 하십니다. 그리고 이 순종을 통하여 “아버지께서 죽은 이들을 일으켜 다시 살리시는 것처럼, 아들도 자기가 원하는 이들을 다시 살린다”라고 하시듯이 생명을 살리는 능력을 받게 됨을 시사하십니다. 

생명을 살리는 능력은 ‘성령’이십니다. 성령은 생명이기도 하시고 선물이기도 하시고 능력이기도 하십니다. “아버지께서는 또 그가 사람의 아들이므로 심판을 하는 권한도 주셨다”라고 하실 때 예수님은 아버지께 순종하심으로써 성령을 받으셨음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성령은 순종하는 이에게 주어집니다. 

성령은 권능이기도 하고 능력이기도 하고 생명이기도 하며 의로움과 기쁨과 평화의 하느님 나라입니다. 모든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성령은 누구에게 주어질까요? 성령을 받기 위해 무언가를 하는 사람이 아닌 그저 최대한 죽으려는 사람에게 내립니다. 

솔로몬이 왕위를 계승하는 장면은 참으로 극적입니다. 사실 그의 형 ‘아도니야’가 누가 보더라도 왕위를 물려받아야 마땅했습니다. 그가 솔로몬의 어머니 밧 세바에게 “모후께서도 아시다시피 이 나라는 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온 이스라엘도 제가 임금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나라가 뒤집어져 아우의 것이 되었습니다. 그가 주님에게서 그것을 받았기 때문입니다”(1열왕 2,15)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아버지 다윗 왕의 허락도 없이 스스로 왕이 되려고 합니다. 그를 지지하는 세력도 많았습니다. 하느님께 제사를 지내고 모든 백성으로부터 왕으로 추대받았습니다. 

하지만 왕권을 주는 사람은 왕입니다. 다윗 왕은 그것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이에 솔로몬의 어머니 밧 세바는 이 모든 사실을 다윗 왕에게 알렸고 다윗 왕은 솔로몬에게 기름을 붓게 하고 자기 나귀를 태우고 왕좌에 앉게 했습니다. 

이렇게 되자 결과가 어땠을까요? 그동안 한마디도 안 하던 솔로몬은 자기 왕권을 노리던 모든 이들을 처단합니다. 솔로몬은 그전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오직 아버지의 명령만을 기다리고 있었음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러자 답답하게 아무것도 안 하는 아들이 안스러웠는지, 어머니 밧 세바가 다윗의 왕권을 자기 아들에게 오게 하였습니다. 밧 세바처럼 죽어있는 우리에게 하느님의 권능을 가져오게 하시는 분이 성령이십니다. 

교회 내에서도 어떤 자리를 얻기 위해 노력하는 신자들이 있습니다. 사제가 그것을 보지 못할 것 같지만 다 보입니다. 그러면 그러한 자리에 앉히려다가도 한 번 더 생각하게 됩니다. 성령을 통해 오는 은총은 가만히 있는 이의 것입니다. 

성령께서 내리시는 자리를 ‘제단’이라 합니다. 요즘 ‘제대’에 대한 공경이 매우 약해졌습니다. 아무 곳에서나 아무 상을 펴 놓고 미사를 거행합니다. 미사를 거행할 때 성령께서 빵과 포도주 안에 그리스도께서 잉태하게 하십니다. 그런데 성령께서는 아무 곳에나 내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죽음 위에 자기 죽음을 합친 사람에게만 내리십니다. 

야곱은 베텔에서 바위 위에서 잠들었고 그 위로 사다리가 내려지며 하늘에서 천사들이 오르락내리락하였습니다. 야곱은 여기에서 그리스도의 죽음을 상징하고 그리스도의 죽음 위에 성령께서 내리시는 곳이 베텔, 곧 하느님 집이라는 뜻입니다. 

사제도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지만, 성령께서 오시도록 아버지께 순종하시어 성령의 자리를 마련하신 그리스도의 죽음의 역할도 간과되어서는 안 됩니다. 

사제가 없으면 미사가 되지 않습니다. 성령께서 오시지 않으십니다. 제단도 마찬가지로 여겨져야 합니다. 제단이 없으면 미사가 안 되는 것이 정상입니다. 제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고 그 위의 제물은 나의 죽음입니다. 

사도행전 5장 32절에는 “하느님께서 당신께 순종하는 이들에게 주신 성령”이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순종은 나의 뜻을 죽이고 하느님 뜻의 자리를 내어드림을 의미합니다. 솔로몬처럼, 죽은 사람처럼 가만히 있어야 합니다.

내 뜻으로 걱정하고 근심하는 우리는 모두 결국 내가 살아있으므로 성령께서 내리시지 않고 그래서 기분이 좋지 못하고 능력을 발휘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스도라는 제단에 우리 죽음을 결합합시다. 그 자리에만 성령께서 내리십니다. 그러면 우리도 성령의 사람이 되고 충만한 행복과 능력을 발휘하며 살게 됩니다. 살아 움직이는 제단에서는 미사를 거행할 수 없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프란치스코회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사랑 버릇

 

“내 아버지께서 여태 일하고 계시니 나도 일하는 것이다.”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아버지께서 여태 일하시니’라는 주님 말씀이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여태’라면 ‘지금에 이르기까지’, ‘Until now’라는 뜻이 있잖습니까? 

그러니까 천지창조 때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일하신다는 뜻이며, 그 일은 사랑의 창조를 계속하신다는 뜻이니 사랑을 멈추지, 중단하지, 포기하지 않으신다는 뜻이겠습니다. 

그래서 마음에 와닿은 것이고 정확하게 얘기하면 마음이 찔린 것입니다. 저는 어떤 때 사랑을 그만두고 싶고 포기하고 싶은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저의 사랑이 무시당할 때는 말할 것도 없고, 저의 사랑에 시큰둥하거나 크게 감사하지 않을 때도 사랑을 포기해버리고 싶고, 사랑이 열매를 맺지 못할 때도 굳이 이 사랑을 지속해야 하나 생각되곤 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그를 포기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의 포기 전에 내가 나의 사랑을 포기하는 것이지요. 샘으로 치면 샘이 말라 더 이상 흐르지 않게 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사랑받지 못하는 그가 손해가 아니라 사랑이 말라버리는 내가 손해라는 말입니다. 사랑을 포기해 버릇하면 한번 포기가 계속 포기가 되는 것입니다. 

제일 나쁜 버릇이 뭐겠습니까?,사랑을 포기하는 버릇이 아니겠습니까? 

빈대로 제일 좋은 버릇은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끙’하고 힘을 내 버릇하는 사랑의 버릇이겠지요. 

힘은 쓸수록 생기고 쓰지 않으면 약해지는 것처럼 사랑 또는 사랑의 힘도 할수록 사랑이 자라고, 포기해 버릇하면 사랑은 쇠퇴일로를 걷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사랑 버릇을 잘 들여야 하는데.버릇을 들일 때 오늘 주님처럼 잘 배워 들여야 합니다. 

주님도 당신 나름으로 하지 않고 아버지 하시는 것을 보고 배워서 하신답니다. 

“아버지께서 하시는 것을 보지 않고서 아들이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그분께서 하시는 것을 아들도 그대로 할 따름이다.” 

사랑의 버릇도 잘 들이려면 본래 잘 배워서 들여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몸소 보여주신 그 사랑을 배워서 버릇 들이면 됩니다. 

사랑할 때마다 특히 사랑을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주님께서 하시는 것을 우리도 그대로 따라 하면 됩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님의 오늘 말씀 묵상 업데이트 준비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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