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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3/03/23 (목)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3. 3.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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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을 찾는 마음은 기뻐하여라. 주님과 그 권능을 구하여라. 언제나 그 얼굴을 찾아라.

인자하신 주님, 주님의 종인 저희가 참회로 용서를 받고 착한 생활로 거룩하게 되어 주님의 계명을 언제나 성실히 따르며 깨끗한 마음으로 파스카 축제를 맞이하게 하소서.

 

2023년 3월 23일 (목)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랜선으로 초대합니다!

2023년 3월 23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사순 제4주간 목요일

 

 

오늘 성경 말씀 카드

나는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다. (요한 5,43)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1독서
    (탈출기 32,7-14)
    주님, 당신 백성에게 내리시려던 재앙을 거두어 주십시오.

  • 오늘 복음
    (요한 5,31-47)
    너희를 고소하는 이는 너희가 희망을 걸어 온 모세이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3년 3월 23일 (목) 평화방송 매일미사 명동성당 매일미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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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묵상 바로가기

 

 

매일미사 복음 (Gospel)
복음 (Gospel)

 

하느님은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네.

 

 

복음
요한 5장 31-47절

 

너희를 고소하는 이는 너희가 희망을 걸어 온 모세이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유다인들에게 말씀하셨다. 

31 
“내가 나 자신을 위하여 증언하면 내 증언은 유효하지 못하다. 

32 
그러나 나를 위하여 증언하시는 분이 따로 계시다. 나는 나를 위하여 증언하시는 그분의 증언이 유효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33 
너희가 요한에게 사람들을 보냈을 때에 그는 진리를 증언하였다. 

34 
나는 사람의 증언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이러한 말을 하는 것은 너희가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다. 

35 
요한은 타오르며 빛을 내는 등불이었다. 너희는 한때 그 빛 속에서 즐거움을 누리려고 하였다. 

36 
그러나 나에게는 요한의 증언보다 더 큰 증언이 있다. 아버지께서 나에게 완수하도록 맡기신 일들이다. 그래서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이 나를 위하여 증언한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다는 것이다. 

37 
그리고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도 나를 위하여 증언해 주셨다. 너희는 그분의 목소리를 들은 적이 한 번도 없고 그분의 모습을 본 적도 없다. 

38 
너희는 또 그분의 말씀이 너희 안에 머무르게 하지 않는다. 그분께서 보내신 이를 너희가 믿지 않기 때문이다. 

39 
너희는 성경에서 영원한 생명을 찾아 얻겠다는 생각으로 성경을 연구한다. 바로 그 성경이 나를 위하여 증언한다. 

40 
그런데도 너희는 나에게 와서 생명을 얻으려고 하지 않는다. 

41 
나는 사람들에게서 영광을 받지 않는다. 

42 
그리고 나는 너희에게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는 것을 안다. 

43 
나는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다. 그런데도 너희는 나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다른 이가 자기 이름으로 오면, 너희는 그를 받아들일 것이다. 

44 
자기들끼리 영광을 주고받으면서 한 분이신 하느님에게서 받는 영광은 추구하지 않으니, 너희가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느냐? 

45 
그러나 내가 너희를 아버지께 고소하리라고 생각하지는 마라. 너희를 고소하는 이는 너희가 희망을 걸어 온 모세이다. 

46 
너희가 모세를 믿었더라면 나를 믿었을 것이다. 그가 나에 관하여 성경에 기록하였기 때문이다. 

47 
그런데 너희가 그의 글을 믿지 않는다면 나의 말을 어떻게 믿겠느냐?”

 

 

매일미사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3년 3월 23일 (목)
신동원 요셉 신부 집전

 

📌 미사시작 00:22

📌 강론시작 08:01

 

 

 

명동성당 매일미사

 

 

2023년 3월 23일 (목)
김영우 스테파노 신부 집전

 

📌 미사시작 09:35

📌 강론시작 18:58

 

 

 

팔로티회 매일미사

홍천 팔로티회 매일미사

 

2023년 3월 23일 (목)
팔로티회 홍천
매일미사 오후 3시
안동억 프란치스코 신부 집전

 

📌 미사시작 00:18

📌 강론시작 06:56

 

분당 팔로티회 매일미사

 

2023년 3월 23일 (목)
팔로티회 분당
성체조배 오후 3시
매일미사 오후 4시
김지학 요셉 신부 집전

 

📌 성체조배 0:03:45

📌 미사시작 01:03:36

📌 강론시작 01:10:53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오늘의 말씀 묵상
매일미사
허규 베네딕토 신부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이 나를 위하여 증언한다.

 

예수님께서는 유다인들과 논쟁을 벌이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나 자신을 위하여 증언하면 내 증언은 유효하지 못하다.” 

율법에서 어떤 증언이 유효하려면 두 명 이상의 증인이 있어야 합니다. 

“증인 한 사람만으로는 그 증언이 성립되지 못하고, 증인 둘이나 셋의 증언이 있어야 유죄가 성립된다”(신명 19,15). 

유다인들이 예수님께 적용한 죄는 자신을 하느님으로 자처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예수님께서는 율법에 적합하게 논쟁을 이어가십니다. 여기서 강조되는 것은 예수님을 위하여 증언하는 증인의 수입니다. 

먼저, 요한은 복음서의 시작에서 예수님을 ‘세상에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으로 증언합니다. 그는 예수님을 위한 첫째 증인입니다. 두 번째는 조금 어렵게 들릴 수도 있지만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 그 자체입니다.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이 나를 위하여 증언한다.” 

예수님의 표징은 당신이 그리스도시라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고, 이 모든 일은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셨다는 증거입니다. 마지막은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볼 수 없는 분이시므로, 따라서 사람들은 예수님을 통하여 하느님을 알게 됩니다. 

세상을 구원하시고자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신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위한 마지막 증인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에 견주어도 당신께서 하신 일들이 정당하다고 강조하십니다. 

그런데도 복음은 여전히 예수님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일부 유다인들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그들은 어떤 경우에도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마치 제1독서에 나오는 “목이 뻣뻣한 백성”과 비슷합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조명연 마태오 신부

 

와인 맞추기 게임

 

어느 부부 모임에서 한 가지 게임이 진행되었습니다. 4종류의 와인이 있는데, 부부 중 한 명이 각 와인을 마셔본 뒤, 그 와인에 대한 시음기를 적습니다. 그리고 배우자가 이 시음기를 읽은 뒤에 와인을 마시면서 시음기에 맞는 와인을 맞추는 것입니다. 
 
첫 번째 부부는 와인 애호가 부부입니다. 남편이 시음기를 적는데 ‘미디엄바디, 오크, 아스디얼, 버터리, 허메이셔스’ 같은 전문적인 표현을 써가면서 작성했습니다. 그의 아내는 4개의 와인 중에서 몇 개를 맞췄을까요? 단 하나 맞췄다고 합니다. 두 번째 부부 차례입니다. 역시 남편이 시음기를 적는데, 영문학과 교수인 남편은 시적 표현을 쓰면서 작성했습니다. 결혼 기념일에 여행 갔던 계곡의 물줄기에 비유했고, 어려웠을 때 아내와 고통을 함께 나눌 때의 기쁨을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이 교수의 아내는 하나도 맞추지 못했습니다. 
 
마지막 부부의 차례가 되었습니다. 결과는 4종류의 와인을 모두 맞췄습니다. 어떻게 해서 다 맞췄을까요? 남편은 이렇게 시음기를 적었습니다. 
 
“가장 달다.”, “두 번째로 달다.”, “세 번째로 달다.”, “안 달다.” 
 
사람과의 소통이 잘 안된다는 사람이 있습니다. 소통이 잘 안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같은 생각을 공유할 수 있는 말을 해야 하는데, 자기 이야기만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이것도 이해해주지 못하냐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주님과의 소통은 잘 될까요? 
 
주님께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느님께서 나약하고 부족한 인간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왜일까요? 우리와 눈높이를 맞춰주신 것입니다. 우리와 진정으로 소통하기 위해 자신을 낮추셨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주님과 눈을 맞추지 않습니다. 자기 말만 계속 늘어놓습니다. 주님의 뜻에 맞게 살 수 없는 것이 분명합니다. 나의 이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잘 들어야 소통이 됩니다. 주님과도 또 이웃과도 잘 듣는 것이 너무나 중요합니다. 
 
2,000년 전, 인간의 육체를 취해서 이 땅에 오신 주님께서는 정말로 답답하셨을 것 같습니다. 도저히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어떻게든 소통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 주님을 반대하고 제거하는 데 더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누구보다 열심히 영원한 생명을 찾아 얻겠다는 생각으로 성경을 연구하고 있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주님이 바로 앞에 계시는데도 알아보지 못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지 않기 때문입니다. 
 
인간과의 소통도 잘 듣는 데서 시작합니다. 주님과의 소통도 잘 듣는 것에서 시작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 말과 행동을 하면서, 주님과의 진정한 소통을 기대한다는 것은 커다란 착각입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행복이란 하늘이 푸르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것만큼이나 단순하지 않을까?

- 요슈타인 가이더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님의 오늘 말씀 묵상 업데이트 준비중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프란치스코회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주님도 어쩔 수 없는

 

참으로 헷갈리는 오늘 요한복음입니다. 주님께는 인간의 증언이 필요하다는 것인지, 아닌지. 

오늘 주님께서는 당신이 아버지께서 보내신 분이라는 것에 관한 인간의 증언이 필요치 않다고 말씀하십니다. 

“나는 사람의 증언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이러한 말을 하는 것은 너희가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다.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이 나를 위하여 증언한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다는 것이다.” 

아버지께서 당신을 보내셨다는 것을, 인간이 증언하지 않아도 당신은 아무 아쉬움이 없다는 말씀이고, 증언이 필요한 것은 당신이 아니라 우리 인간이라는 말씀입니다. 

왜냐면 당신이 하느님이 보내신 분이라는 것을 우리가 모르고, 심판의 권한과 생사여탈권을 가진 분임을 모르면 우리가 죽고 알면 우리가 구원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고 그래서 주님께서도 “너희가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예를 들어 내가 명의인데 내가 명의라는 것을 환자가 모른다고 해서 나의 손해는 없고, 환자만 치유 받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치니 손해겠지요. 

그러니 환자라면 명의를 만나야 하고, 명의를 아는 사람의 증언이 필요합니다. 치유 받기 위해서는 명의와 증언이 필요한 것처럼, 구원받기 위해서는 주님과 증언이 필요하겠지요. 

그런데 당대 사람들은 그러지 않습니다. 그래서 당신 심정을 거듭 토로하십니다. 

“너희는 또 그분의 말씀이 너희 안에 머무르게 하지 않는다. 그분께서 보내신 이를 너희가 믿지 않기 때문이다. 너희는 나에게 와서 생명을 얻으려고 하지 않는다. 나는 너희에게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는 것을 안다. 너희는 나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명의한테는 생명을 얻으려고 하지만 당신한테는 생명을 얻으려고 하지 않는 것은 세상을 사랑하고 하느님을 사랑할 마음이 없기 때문이라는, 그래서 당신을 알려고도 받아들이지도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이럴 경우, 세례자 요한의 증언도 소용없고, 그들이 믿는 모세도 어쩔 수 없고 주님도 어쩔 수 없다. 그래서 이들에게 구원은 날아가고 심판이 들이닥칩니다. 

그들은 이런데 우리는 어떤지. 증언도 필요치 않고, 주님도 어쩔 수 없는 나는 아닌지.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나는 사람의 증언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고마운 봄비가 내립니다. 좀체 좁혀지지 않는 예수님과 우리의 거리입니다 욕심에 눈먼 우리들의 증언은 예수님의 편에 서지 않은 채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 체 예수님을 부인합니다. 

십자가의 길을 지나야만 믿게 되는 어리석은 우리들 삶입니다. 예수님을 만나면서 예수님을 찾고 있는 바꿀 수 없는 헛된 우리들 반복입니다 말구유의 예수님도 광야의 시간도 풍랑의 여정도 우리는 믿지 않습니다. 

믿음 없는 이곳에서 스스로 빛이 되시는 예수님의 빛입니다. 빛 앞에서도 욕심만 꾸역구역 밀어 넣을 뿐입니다. 살아 있는 생명의 시간이 정녕 무엇을 가리키는 지도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사람의 삶은 참으로 짧습니다. 우리를 영원케 하는 하느님이 우리에게 오셔도 좀체 좁혀지지 않는 우리들 교만입니다. 

사람보다 하느님께서 먼저 계셨습니다. 이 단순한 사실도 잊은 채 살아갑니다. 우리의 잘못된 증언이 흉기가 되고 십자가가 되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과 우리의 관계는 참으로 무엇이었는 지를 묻게 됩니다. 사랑의 빛이 쏟아지는 예수님의 삶 앞에서 우리의 헛된 증언보다 참된 감사가 더욱 바람직합니다. 

우리가 치러야 할 형량을 예수님께서 십자가로 사하여 주십니다. 십자가를 증언하는 것은 우리의 혀가 아니라 십자가뿐입니다. 영원히 우리 영혼에 선명히 맺힐 이름은 예수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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