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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3/03/12 (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3. 3.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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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발을 그물에서 빼내 주시리니, 제 눈은 언제나 주님을 바라보나이다. 저를 돌아보시어 자비를 베푸소서. 외롭고 가련한 몸이옵니다.

하느님, 온갖 은총과 자비를 베푸시어 저희가 단식과 기도와 자선으로 죄를 씻게 하셨으니 진심으로 뉘우치는 저희를 굽어보시고 죄에 짓눌려 있는 저희를 언제나 자비로이 일으켜 주소서.

 

2023년 3월 12일 (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랜선으로 초대합니다!

2023년 3월 12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사순 제3주일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1독서
    (탈출기 17,3-7)
    우리가 마실 물을 내놓으시오.

  • 제2독서
    (로마서 5,1-2.5-8)
    우리가 받은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부어졌습니다.

  • 오늘 복음
    (요한 4,5-42)
    솟아오르는 영원한 생명의 샘물.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3년 3월 12일 (일) 평화방송 매일미사 명동성당 매일미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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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복음 (Gospel)
복음 (Gospel)

 

주님, 당신은 참으로 세상의 구원자이시니 저에게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생명의 물을 주소서.

 

 

복음
요한 4장 5-42절

 

솟아오르는 영원한 생명의 샘물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야곱이 자기 아들 요셉에게 준 땅에서 가까운 시카르라는 사마리아의 한 고을에 이르셨다. 


그곳에는 야곱의 우물이 있었다. 길을 걷느라 지치신 예수님께서는 그 우물가에 앉으셨다. 때는 정오 무렵이었다. 


마침 사마리아 여자 하나가 물을 길으러 왔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나에게 마실 물을 좀 다오.” 하고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제자들은 먹을 것을 사러 고을에 가 있었다. 


사마리아 여자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선생님은 어떻게 유다 사람이시면서 사마리아 여자인 저에게 마실 물을 청하십니까?” 사실 유다인들은 사마리아인들과 상종하지 않았다. 

10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대답하셨다. “네가 하느님의 선물을 알고 또 ‘나에게 마실 물을 좀 다오.’ 하고 너에게 말하는 이가 누구인지 알았더라면, 오히려 네가 그에게 청하고 그는 너에게 생수를 주었을 것이다.” 

11 
그러자 그 여자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선생님, 두레박도 가지고 계시지 않고 우물도 깊은데, 어디에서 그 생수를 마련하시렵니까? 

12 
선생님이 저희 조상 야곱보다 더 훌륭한 분이시라는 말씀입니까? 그분께서 저희에게 이 우물을 주셨습니다. 그분은 물론 그분의 자녀들과 가축들도 이 우물물을 마셨습니다.” 

13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이르셨다. “이 물을 마시는 자는 누구나 다시 목마를 것이다. 

14 
그러나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안에서 물이 솟는 샘이 되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할 것이다.” 

15 
그러자 그 여자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선생님, 그 물을 저에게 주십시오. 그러면 제가 목마르지도 않고, 또 물을 길으러 이리 나오지 않아도 되겠습니다.” 

16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가서 네 남편을 불러 이리 함께 오너라.” 하고 말씀하셨다. 

17 
그 여자가 “저는 남편이 없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저는 남편이 없습니다.’ 한 것은 맞는 말이다. 

18 
너는 남편이 다섯이나 있었지만 지금 함께 사는 남자도 남편이 아니니, 너는 바른대로 말하였다.” 

19 
여자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선생님, 이제 보니 선생님은 예언자시군요. 

20 
저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선생님네는 예배를 드려야 하는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고 말합니다.” 

21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여인아, 내 말을 믿어라. 너희가 이 산도 아니고 예루살렘도 아닌 곳에서 아버지께 예배를 드릴 때가 온다. 

22 
너희는 알지도 못하는 분께 예배를 드리지만, 우리는 우리가 아는 분께 예배를 드린다. 구원은 유다인들에게서 오기 때문이다. 

23 
그러나 진실한 예배자들이 영과 진리 안에서 아버지께 예배를 드릴 때가 온다. 지금이 바로 그때다. 사실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예배를 드리는 이들을 찾으신다. 

24 
하느님은 영이시다. 그러므로 그분께 예배를 드리는 이는 영과 진리 안에서 예배를 드려야 한다.” 

25 
그 여자가 예수님께, “저는 그리스도라고도 하는 메시아께서 오신다는 것을 압니다. 그분께서 오시면 우리에게 모든 것을 알려 주시겠지요.” 하였다. 

26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너와 말하고 있는 내가 바로 그 사람이다.” 

27 
바로 그때에 제자들이 돌아와 예수님께서 여자와 이야기하시는 것을 보고 놀랐다. 그러나 아무도 “무엇을 찾고 계십니까?”, 또는 “저 여자와 무슨 이야기를 하십니까?” 하고 묻지 않았다. 

28 
그 여자는 물동이를 버려두고 고을로 가서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29 
“제가 한 일을 모두 알아맞힌 사람이 있습니다. 와서 보십시오. 그분이 그리스도가 아니실까요?” 

30 
그리하여 그들이 고을에서 나와 예수님께 모여 왔다. 

31 
그러는 동안 제자들은 예수님께 “스승님, 잡수십시오.” 하고 권하였다. 

32 
그러나 예수님께서 “나에게는 너희가 모르는 먹을 양식이 있다.” 하시자, 

33 
제자들은 서로 “누가 스승님께 잡수실 것을 갖다 드리기라도 하였다는 말인가?” 하고 말하였다. 

34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 양식은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실천하고, 그분의 일을 완수하는 것이다. 

35 
너희는 ‘아직도 넉 달이 지나야 수확 때가 온다.’ 하고 말하지 않느냐? 자,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눈을 들어 저 밭들을 보아라. 곡식이 다 익어 수확 때가 되었다. 이미 

36 
수확하는 이가 삯을 받고, 영원한 생명에 들어갈 알곡을 거두어들이고 있다. 그리하여 씨 뿌리는 이도 수확하는 이와 함께 기뻐하게 되었다. 

37 
과연 ‘씨 뿌리는 이가 다르고 수확하는 이가 다르다.’는 말이 옳다. 

38 
나는 너희가 애쓰지 않은 것을 수확하라고 너희를 보냈다. 사실 수고는 다른 이들이 하였는데, 너희가 그 수고의 열매를 거두는 것이다.” 

39 
그 고을에 사는 많은 사마리아인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그 여자가 “저분은 제가 한 일을 모두 알아맞혔습니다.” 하고 증언하는 말을 하였기 때문이다. 

40 
이 사마리아인들이 예수님께 와서 자기들과 함께 머무르시기를 청하자, 그분께서는 거기에서 이틀을 머무르셨다. 

41 
그리하여 더 많은 사람이 그분의 말씀을 듣고 믿게 되었다. 

42 
그들이 그 여자에게 말하였다. “우리가 믿는 것은 이제 당신이 한 말 때문이 아니오. 우리가 직접 듣고 이분께서 참으로 세상의 구원자이심을 알게 되었소.”

 

 

매일미사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3년 3월 12일 (일)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집전

 

📌 미사시작 00:22

📌 강론시작 12:34

 

 

 

명동성당 매일미사

 

 

2023년 3월 12일 (일)
전두병 요아킴 신부 집전

 

📌 미사시작 07:36

📌 강론시작 18:11

 

 

 

팔로티회 매일미사

 

홍천 팔로티회 매일미사

 

2023년 3월 12일 (일)
안동억 프란치스코 신부 집전

 

📌 미사시작 00:06

📌 강론시작 08:22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오늘의 말씀 묵상
매일미사
허규 베네딕토 신부

 

믿음대로 실천하는 사람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과 나눈 대화는 두 가지 주제를 담고 있습니다. 하나는 생수를 주제로 하는 대화이고 다른 하나는 진실한 예배를 주제로 하는 대화입니다. 

생수를 주제로 하는 첫 장면에서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은 진정한 대화를 나누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영원한 생명을 주는 생수에 대하여 말씀하시지만, 여인은 현실적인 의미로만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대화에서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은 한 걸음 나아간 모습을 보여 줍니다. 진실한 예배에 대한 주제에서 예수님과 여인은 본격적으로 ‘대화’를 나눕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사마리아 여인이 이해하는 구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저는 그리스도라고도 하는 메시아께서 오신다는 것을 압니다.” 

예수님께서 대답하십니다. 

“너와 말하고 있는 내가 바로 그 사람이다.” 

사마리아 여인은 처음에 예수님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였습니다. 그에게 예수님께서는 여느 ‘유다 사람’일 뿐이었습니다. 생수에 대하여 나누는 어색한 대화는 예수님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사마리아 여인의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는 이어지는 대화 속에서 예수님을 ‘예언자’로 깨닫게 됩니다. 그때야 비로소 진정한 대화가 가능해지고,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고을 사람들에게 자신의 경험과 믿음을 증언합니다. 이렇게 하여 다른 사마리아인들도 예수님을 믿게 됩니다. 

예수님을 알아 가고 이해하며, 믿고 증언하는 것은 복음이 제시하는 믿음대로 실천하는 사람의 전형입니다. 오늘 복음은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는 사실과 함께 사마리아 여인의 모습을 통하여 믿음의 모범을 보여 줍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조명연 마태오 신부

 

지금의 판단이 결코 옳을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는 못생긴 사람을 오징어에 빗대어 말하기도 하고, 또 호박이나 메주에 빗대어서 말합니다.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일까 싶어서 찾아보니, 일본에서는 배꽃처럼 못생겼다고 말하고, 불가리아에서는 샐러드처럼 못생겼다고 말하더군요. 나라마다 못 생김의 기준으로 삼는 사물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그 사물의 입장에서는 억울할 것 같습니다. 자기 세계에서는 전혀 못생긴 것이 아니라, 지극히 정상이고 또 최고로 멋진 모습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보는 관점에 따라 잘 생기고, 못 생기고의 구분이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그 구분이 그렇게 의미 있는 것도 아닙니다. 결코 객관적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느 책을 보니, 요즘에 거북목 증상을 보이는 사람이 많다고 합니다. 스마트폰과 컴퓨터 모니터를 많이 보면서 거북목이 되어 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상태로 계속 나가다가는 거북목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표준이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인간은 계속 진화되는데, 진화의 방향이 거북목으로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몇백 년 후, 거북목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정상이고, 거북목 없는 사람이 비정상으로 비칠 수도 있습니다. 미의 기준이 이제껏 계속 바뀌었던 것을 생각하면, 전혀 불가능한 이야기가 아닐 것입니다. 
 
우리가 갖는 지금의 판단이 결코 옳을 수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변화되는 세상 속에서 미의 기준도 바뀌는 것처럼, 지금 맞다는 것도 어느 순간 당연히 틀렸다고 말할 것입니다. 따라서 섣부른 판단보다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한 번 더 생각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물가에 온 사마리아 여인과 대화를 나누십니다. 이 여인에게 물을 청하신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단순히 목이 마르셨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보다 온 세상 구원에 목이 마르셨다는 것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당시 유다인이 이방인 취급받았던 사마리아 사람에게 말을 건다는 것은 있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단 한 명의 예외 없는 구원에 목마르셨기 때문에 대화를 나누셨던 것입니다. 
 
여기서 예수님께서는 영원한 생명을 주는 생수에 대해 말씀하시지만, 사마리아 여인은 현실적인 의미로만 이해하고 있습니다. 동문서답하는 형식으로 대화가 잘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대화하십니다. 그 결과 진정한 예배에 대한 말을 나눌 때는 처음 생수에 관한 대화하는 다르게 일 보 전진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자기 판단을 내려놓고 주님의 뜻을 따르는 모습으로 변화되어, 이제 고을에 사는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도록 직접 증언할 정도가 된 것입니다. 그전에는 사람들과 마주치기 싫어서 아무도 없는 벌건 대낮에 우물가를 찾았던 여인인데 말이지요. 
 
주님의 뜻에 우리 모두 변화될 수 있어야 합니다. 자기 뜻만을 내세운다면 주님 뜻이 세상에 펼쳐지지 않습니다. 우리 구원에 목이 마르시는 주님의 갈증을 풀어 드릴 수 없습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인생은 자전거를 타는 것과 같다. 균형을 잡으려면 움직여야 한다.

- 알버트 아인슈타인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부모를 예배하지 않으면 온전한 부모가 될 수 없다.

 

김창옥 강사는 수많은 강의를 하며 기쁨과 공감을 주는 일을 했지만, 현실은 공허함과 우울증에 시달렸습니다. 결혼도 하고 자녀도 있었지만, 심지어 삶의 의미를 느끼지 못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생각하기도 하였습니다. 가톨릭 신자는 아니었지만, 어디라도 의지하고 싶은 마음에 한 노 수사님과 면담을 하였습니다. 

수사님은 일을 잠시 쉬고 프랑스 시골에 있는 수도원에 가서 두 주 정도 피정을 하라고 권해주었습니다. 얼마나 절박했는지 김창옥 씨는 생전 처음으로 휴가를 내고 말도 안 통하는 수도원에 들어가서 피정하게 됩니다. 그러다 자기 내면에서 이러한 목소리를 듣고는 많이 울었다고 합니다.
 
“그래, 너 여기까지 잘 왔다!”

이 위로를 받고 어느 정도 다시 힘을 낼 수가 있었습니다. 김창옥 씨의 아버지는 김창옥 씨에게 능력 없고 창피한 분이었고 무섭고 닮기 싫은 분이었습니다. 그는 아버지를 존경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로 살아야 했고 또 아버지와는 다르게 열심히 살았습니다. 하지만 지쳐갔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예배하는 분에게 힘을 얻어 그분처럼 살아갑니다. 김창옥 씨는 예배할 대상이 없었던 거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한 사마리아 여인을 우물에서 만납니다. 그리고 그녀에게 물을 청합니다. 당신께 예배하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그녀는 여섯 남자와 살고 있었지만, 삶에 지쳐 물을 뜨러 온 상태였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생명의 물, 곧 영과 진리를 주실 분임을 밝히십니다. 여인은 이제 예수님의 가르침과 사랑으로 자신의 마을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됩니다. 이에 예수님도 양식을 먹은 것처럼 흡족해하십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 양식은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실천하고, 그분의 일을 완수하는 것이다.”(요한 4,34)

예수님도 아버지께 예배를 드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새로운 하느님 자녀를 탄생시키고 그렇게 흡족해하시는 장면입니다. 예배드리지 않는 인간은 삶에서 지칠 수밖에 없습니다. 

심순덕 시인은 어머니의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습니다. 31세에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그리움에 사무쳐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라는 시를 쓰게 되었습니다. 

시의 전반적인 내용은 이렇습니다. 엄마가 하루 종일 밭에서 죽어라 힘들게 일해도, 찬밥 한 덩이로 대충 부뚜막에 앉아 점심을 때워도, 한겨울 냇물에 맨손으로 빨래를 방망이질해도, 배부르다 생각 없다 식구들 다 먹이고 굶어도, 발뒤꿈치 다 해져 이불이 소리를 내도, 아버지가 화내고 자식들이 속을 썩여도 전혀 끄떡없는,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다는 내용입니다. 

외할머니 보고 싶다, 보고 싶다, 그것이 그냥 넋두리인 줄만 알았다는 것입니다. 어느 날 한밤중 자다 깨어 방구석에서 한없이 소리 죽여 울던 엄마를 본 후론, 아! 엄마는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특히 자신이 결혼하여 아이를 키우고 엄마가 액자 속 사진으로만 남았을 때, 엄마는 엄마는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심순덕 시인은 이 시를 쓸 때 힘이 들었을까요, 아니면 힘이 났을까요? 어머니를 생각하며 자신도 아이를 키우는 처지에서 힘은 내야겠다고 느꼈을 것입니다. 이것이 어머니를 예배하는 방식입니다. 그리고 어머니가 되는 방식입니다. 

심순덕 시인에게 어머니께서 보여준 모범과 가르침이 ‘진리’입니다. 그리고 자녀를 위해 흘린 땀과 눈물이 ‘영’, 곧 ‘은총’입니다. 영과 진리 안에서 예배하는 자는 또한 영과 진리로 누군가를 새로 태어나게 합니다. 누군가를 새로 태어나게 하는 것은 또한 나의 피 흘림인데 어머니를 예배하며 피 흘리면서도 힘을 냅니다. 

교회는 영과 진리 안에서 예배하는 자들의 모임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예배하게 함으로써 생기 있는 신앙인들을 만들어야 합니다. 한 중학교에서 도덕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부모님을 30일 동안 칭찬하고 일기를 써 오라고 숙제를 냈습니다.

처음엔 아이들도 쑥스럽고 부모도 쑥스러워했습니다. 서른 번의 칭찬이 끝나고 아이들은 “그냥 밥만 먹고 잠만 자는 곳이었는데, 요즘 집이 좋아요.”, “부모님을 칭찬하면서 나도 조금씩 변하는 것 같아요.”, “칭찬을 마친 내가 참 대견스러워요. 나도 참 괜찮은 사람 같아요”와 같은 반응을 보였습니다.

[참조: ‘엄마가 울었다’, 지식채널 e, 유튜브]

이런 예배를 통해 아이들도 이제 부모가 될 준비가 된 것입니다. 부모를 영과 진리 안에서 예배하지 않는 자가 온전한 부모가 되는 일은 불가능합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프란치스코회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백 사람의 사랑을 합쳐도

 

오늘 탈출기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목말라 죽겠다고, 그러니 물을 달라고 모세에게 또다시 들이댑니다. 

들이대는 것만 놓고 생각하면 참 못된 족속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영적으로 바꿔 생각하면 목마른 것을 모세에게 호소하고 물을 달라고 하니 다행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물이 나올 수 없는 사막에서 자기 힘으로 우물을 파고 물을 구하려 하지 않고, 또는 다른 누구에게 물을 달라고 하지 않고 모세에게 달라고 하니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막은 물이 없는 곳이고, 사막에서는 목이 마르기 마련인데 우리 인생이 바로 사막의 인생입니다. 

우리 인생이 이런 줄 알고 그래서 목마를 때 모세에게 물을 청하면 다행인데 복음의 사마리아 여인은 목말라 하지 않고 예수님께 물을 청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니 복음의 사마리아 여인과 비교하여 모세의 백성들은 영적 양반이 아닙니까? 그러니 우리도 영적인 목마름이 있는 줄도 모르고 살아가거나 목마른데도 참거나 고상한 척하지 말고 모세의 백성처럼 들이대는 것이 낫습니다. 

오늘 사순 제3주일은 우리 인간은 목마른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고, 주님께 물을 달라고 청하면 하느님께서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물을 주신다는 것,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생수는 다른 누가 아닌 주님이 주신다는 것을 가르칩니다. 

그래서 하느님은 물을 달라는 백성 앞에서 모세에게 바위를 치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왜 바위입니까? 그 바위가 암반수이기 때문입니까? 

그것은 물이 나올 수 없는 바위에서도 물을 주시는 분이 하느님이라는 얘기를 하기 위함이지요. 

탈출기가 이것을 가르친다면 복음은 주님이 주시는 물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명의 물이라는 것을 가르칩니다. 

탈출기가 물을 주시는 분은 하느님이란 것을 가르친다면 복음은 하느님이 주시는 물은 야곱의 우물물과 다름을 가르칩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야곱의 물을 마셨기에 다섯 남자로도 갈증이 가시지 않았습니다. 다섯 남자의 사랑을 합쳐도 하느님 사랑보다 못하기 때문입니다. 아니 백 남자의 사랑을 합쳐도 하느님 사랑보다 못합니다. 

그리고 사랑의 갈증은 인간의 사랑으로 채울 수 없을 뿐 아니라 인간의 사랑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줄 수 없습니다. 

인간의 사랑은 사실 이 세상에서 연명케 하는 사랑이지 저세상까지 살 수 있게 하는 사랑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사랑만이 저세상을 사랑하게 하는 사랑이고, 그래서 우리를 영원히 살게 하는 사랑입니다. 

그러니 사순 제3주일에 이런 가르침을 받는 우리는 이 세상을 사랑하게 하는 사람의 사랑이 아니라 저세상을 사랑하게 하는 주님의 사랑을 갈망하는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목마름으로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생수를 주시는 예수님을 만납니다. 세상 쪽으로 기울수록 더욱 우리는 목마릅니다. 이렇듯 다른 것에 마음 빼앗기며 살았던 지난 시간을 반성합니다. 

생수이신 예수님께서 우리 쪽으로 몸소 오십니다. 우리의 목마름을 깨워주시고 채워주시는 분이십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에게 주실 수 있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생수입니다. 욕망보다 강한 말씀이 있고 사랑이 있습니다. 

미움과 욕심의 갈증을 깨뜨리며 십자가에서 생명의 물이 터져 나옵니다. 생명의 물은 사랑으로 흐릅니다. 생명의 물이 만들어가는 하느님 나라입니다. 생명의 물이 흐르는 곳에서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을 만납니다.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생수는 하느님과 우리의 관계입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생수이신 예수님을 필요로 합니다. 우리에게 오신 하느님을 더 사랑하는 것이 삶의 가장 아름다운 사랑의 우선순위입니다. 

사랑은 사랑이신 예수님을 만나고 맛들이는 집중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하느님을 향한 이웃을 향한 관심이며 함께하는 믿음입니다. 우리를 깊은 믿음으로 안내하시는 예수님을 만나고 사랑하는 사랑의 기쁜 주일되십시오. 생수이신 예수님을 만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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