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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3/03/14 (화)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3. 3.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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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 당신이 응답해 주시니, 제가 당신께 부르짖나이다. 귀 기울여 제 말씀 들어 주소서. 주님, 당신 눈동자처럼 저를 보호하소서. 당신 날개 그늘에 저를 숨겨 주소서.

주님, 저희에게 풍성한 은총을 내리시어 저희가 이 거룩한 제사를 정성껏 거행하고 언제나 주님의 도움을 받게 하소서.

 

2023년 3월 14일 (화)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랜선으로 초대합니다!

2023년 3월 14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사순 제3주간 화요일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1독서
    (다니엘서 3,25.34-43)
    저희의 부서진 영혼과 겸손해진 정신을 받아 주소서.

  • 오늘 복음
    (마태오 18,21-35)
    너희가 저마다 자기 형제들을 용서하지 않으면 아버지께서도 너희를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3년 3월 14일 (화) 평화방송 매일미사 명동성당 매일미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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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복음 (Gospel)
복음 (Gospel)

 

주님이 말씀하신다. 나는 너그럽고 자비로우니 이제 마음을 다하여 나에게 돌아오너라.

 

 

복음
마태오 18장 21-35절

 

너희가 저마다 자기 형제들을 용서하지 않으면 아버지께서도 너희를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다.

 

21 
그때에 베드로가 예수님께 다가와,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22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 

23 
그러므로 하늘 나라는 자기 종들과 셈을 하려는 어떤 임금에게 비길 수 있다. 

24 
임금이 셈을 하기 시작하자 만 탈렌트를 빚진 사람 하나가 끌려왔다. 

25 
그런데 그가 빚을 갚을 길이 없으므로, 주인은 그 종에게 자신과 아내와 자식과 그 밖에 가진 것을 다 팔아서 갚으라고 명령하였다. 

26 
그러자 그 종이 엎드려 절하며, ‘제발 참아 주십시오. 제가 다 갚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27 
그 종의 주인은 가엾은 마음이 들어, 그를 놓아주고 부채도 탕감해 주었다. 

28 
그런데 그 종이 나가서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을 빚진 동료 하나를 만났다. 그러자 그를 붙들어 멱살을 잡고 ‘빚진 것을 갚아라.’ 하고 말하였다. 

29 
그의 동료는 엎드려서, ‘제발 참아 주게. 내가 갚겠네.’ 하고 청하였다. 

30 
그러나 그는 들어주려고 하지 않았다. 그리고 가서 그 동료가 빚진 것을 다 갚을 때까지 감옥에 가두었다. 

31 
동료들이 그렇게 벌어진 일을 보고 너무 안타까운 나머지, 주인에게 가서 그 일을 죄다 일렀다. 

32 
그러자 주인이 그 종을 불러들여 말하였다. ‘이 악한 종아, 네가 청하기에 나는 너에게 빚을 다 탕감해 주었다. 

33 
내가 너에게 자비를 베푼 것처럼 너도 네 동료에게 자비를 베풀었어야 하지 않느냐?’ 

34 
그러고 나서 화가 난 주인은 그를 고문 형리에게 넘겨 빚진 것을 다 갚게 하였다. 

35 
너희가 저마다 자기 형제를 마음으로부터 용서하지 않으면, 하늘의 내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그와 같이 하실 것이다.”.

 

 

매일미사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3년 3월 14일 (화)
최강 스테파노 신부 집전

 

📌 미사시작 00:22

📌 강론시작 07:39

 

 

 

명동성당 매일미사

 

 

2023년 3월 14일 (화)
김영우 스테파노 신부 집전

 

📌 미사시작 07:03

📌 강론시작 16:48

 

 

 

팔로티회 매일미사

 

홍천 팔로티회 매일미사

 

2023년 3월 14일 (화)
안동억 프란치스코 신부 집전

 

📌 미사시작 00:09

📌 강론시작 07:16

 

분당 팔로티회 매일미사

 

2023년 3월 14일 (화)
김지학 요셉 신부 집전

 

📌 성체조배 0:00:00

📌 미사시작 0:58:28

📌 강론시작 1:06:28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오늘의 말씀 묵상
매일미사
허규 베네딕토 신부

 

용서받는 것과 용서하는 것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이 질문의 바탕에는 당시 유다인들의 생각이 깔려 있는 듯합니다. 유다교에도 잘못한 형제를 용서하고 화해하는 것에 대한 가르침이 있습니다. 라삐들은 같은 죄를 세 번 용서하면 충분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이런 유다인들의 관습을 생각한다면 베드로 사도의 질문은 훨씬 더 관대합니다. 

“일곱 번까지 해야 합니까?” 

예수님께서는 그보다 더 큰 자비를 실천해야 한다고 가르치십니다. 오늘 복음은 신앙인의 윤리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예수님의 대답은 ‘일흔일곱 곱절’입니다(창세 4,24 참조). 어떤 학자들은 ‘일곱 번’을 ‘일흔 번’으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그 수가 얼마나 큰지를 떠나서 자신에게 잘못한 형제를 용서하는 데 제한을 두지 말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비유에 등장하는 두 종의 모습에서 예수님의 가장 큰 계명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마태 22,39).

이 비유에서 강조되는 것은 ‘용서받는’ 것과 ‘용서하는’ 것입니다. 만 탈렌트라는, 당시에는 상상조차 하기 힘든 엄청난 빚을 탕감받은 종이 자신에게 백 데나리온을 빚진 형제를 용서하지 못합니다. 의미로 본다면 본인은 엄청난 죄를 용서받았으면서도, 형제의 죄는 좀처럼 용서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말씀에서 중요한 점은 “내가 너에게 자비를 베푼 것처럼”입니다. 누군가의 잘못을 용서하는 것보다 용서받은 체험이 먼저입니다. 우리는 용서받은 모습 그대로 이웃의 잘못을 용서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가엾이 여기십니다. 이 마음을 본받아 우리도 다른 이들에게 자비를 실천해야 합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조명연 마태오 신부

 

모두 특별하기에 용서해야 해

 

몇 년 전에 결혼식 주례를 위해 예식장에서 겪었던 일이 생각납니다. 신랑 아버지의 간곡한 부탁으로 결혼식 주례를 서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결혼식의 주인공인 신랑 신부도 잘 모르고 또 하객들도 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저와 신랑 아버지의 친분만 있을 뿐이었지요. 신랑 아버지는 어떻게든 저를 챙겨주려고 하셨지만, 오시는 손님을 맞이하셔야 하니 굳이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말씀드린 뒤에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서 예식장 주변을 돌면서 묵주기도를 했습니다. 그리고 예식 시간에 맞춰서 들어가 주례를 선 뒤에 곧바로 집에 돌아왔습니다. 그래도 아쉽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당연히 이 결혼식의 주인공은 제가 아니라, 신랑 신부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단지 결혼식을 빛내기 위해 잠시 들린 엑스트라 중 한 명일 뿐입니다. 
 
만약 주인공인 신랑 신부에게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고, 저한테만 모든 관심이 쏠렸다면 어떠했을까요? 이 결혼식은 엉망이 되고 맙니다. 주인공은 항상 특별 대우를 받아야 합니다. 
 
어느 어르신과 대화를 나누다가 자신이 왕년에 얼마나 대단하셨는지를 이야기해 주십니다.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음을 말씀해주셨습니다. 한때 이런 분을 만나면, ‘꼰대처럼 말씀하시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만큼 자기 삶의 주인공으로 열심히 사셨다는 것입니다. 앞서도 말씀드렸듯이, 주인공은 특별 대우를 받아야 하고, 함부로 해서는 안 됩니다. 따라서 자기 삶의 주인공으로 열심히 사신 분을 무시하는 것은 큰 실례입니다. 
 
이렇게 따져보면 그 누구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됨을 깨닫습니다. 스스로 다른 이로부터 관심받고 싶고 존중받고 싶은 것처럼, 세상의 모든 사람은 자기 삶의 주인공으로 존중받아 마땅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늘 사람 편에 서셨고, 그들에게 당신 사랑을 가득 전해주셨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께 다가와,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해야 합니까?”라고 묻습니다. 성경에서 ‘7’이라는 숫자는 완전수를 의미합니다. 즉, 일곱 번 용서하면 완전한 용서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더 큰 용서를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라는 말씀을 전해주십니다. 
 
일흔일곱 번까지 용서하면 그 뒤에는 용서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아니라, 무조건 용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기 삶의 주인공으로 사는 사람을 존중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자기 삶의 주인공인 ‘나’만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다른 삶의 주인공을 소홀히 합니다. 주인공인 ‘나’를 불편하게 했다면서, 다른 삶의 주인공을 판단하고 단죄하기를 당연한 것처럼 합니다. 
 
우리는 모두 특별 대우를 받아야 하고, 함부로 대해서도 안 됩니다. 그것이 바로 ‘용서’라는 덕목으로 분명해집니다. 우리 모두 특별하기에 용서해야 합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노력이 적다면 얻는 것도 그만큼 적다. 인간의 재산은 그의 노고에 달렸다.

- 로버트 헤릭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유튜브 강론 업데이트 준비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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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삼용 요셉 신부님의 오늘 말씀 묵상 업데이트 준비중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프란치스코회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아무것도 없을 때

 

“그렇지만 저희의 부서진 영혼과 겸손해진 정신을 보시어 저희를 숫양과 황소의 번제물로, 수만 마리의 살진 양으로 받아 주소서.” 

몇 년 전부터인지 모르지만, 저는 아자르야의 이 기도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점차 부서진 영혼과 겸손해진 정신의 아자르야처럼 되고 싶었습니다. 

저의 영혼과 정신이 아자르야처럼 부서지고 겸손해지면 얼마나 좋을까요? 물론 이전의 저는 결코, 이런 존재가 아니었고 아직도 이런 존재와는 거리가 먼 저이며, 또 이렇게 되는 것이 두렵습니다. 

이전의 저는 부서진 영혼이 아니라 부수는 영혼이었고, 겸손해진 정신이 아니라 교만하기가 하늘을 치달을 정도였습니다. 

내 영혼이 부서져야 한다고 생각지 않고 다른 사람 특히 불의를 저지르는 인간들이 부서져야 한다고 생각했고, 교만한 저인 줄 알면서도 그 교만을 꺾을 수 없다고 제가 교만한 줄 아는 것이 제가 할 수 있는 겸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제가 말로는 작은 형제라고 하면서 실제로는 결코 작지도 낮지도 않고 사람들 위에 군림했기 때문입니다. 어려서부터 중요한 책임을 많이 맡다 보니 그리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저를 보는 것이 너무도 괴로웠습니다. 작은 형제인 제가 이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인데, 그렇지만 생각뿐 부서진 영혼과 겸손해진 정신의 제가 되지 못했습니다. 

저 스스로 이렇게 되지 못하니 하느님께서 저를 부숴주십니다. 오늘 아자르야가 얘기하는 그대로입니다. 아자르야는 이스라엘의 지난날과 지금을 이렇게 얘기합니다. 

“주님, 저희는 저희의 죄 때문에 온 세상에서 가장 보잘것없는 백성이 되고 말았습니다. 지금 저희에게는 제후도 예언자도 지도자도 없고 번제물도 예물도 분향도 없으며 제물을 바쳐 자비를 얻을 곳도 없습니다.” 

죄 때문에, 있어야 할 것들 그러니까 백성을 다스릴 지도자, 바쳐야 할 제물, 제물을 바칠 성전이 하나도 없게 되었는데, 그것은 겉으로 보면 바빌론 임금의 침략으로 인한 것이지만, 신실한 신앙의 눈으로 보면 하느님께서 바빌론 임금을 통해 그렇게 하신 것이지요. 

그래서 아자르야와 청년들은 불가마 속에서 죽어가면서도 바빌론 임금 앞이 아니라 하느님 앞에서 하느님께 기도합니다. 아니 다른 번제물이 아니라 지금 불에 타서 죽을 자기들을 번제물로 봉헌합니다. 자기들 대신 바칠 번제물들이 없으니 자기들이 번제물이 되겠다는 것입니다. 

내게 아무것도 없고 아무도 없게 되었을 때 영혼과 정신이 부서지고 겸손해지고, 우리는 그것들 앞이 아니라 하느님 앞에 이렇게 온전히 또 진실하게 있게 됩니다. 

그리고 드릴 것이 아무것도 없으니 번제물이나 예물 대신 자기의 부서진 영혼과 겸손해진 정신을 바치는데 이것이 오히려 하느님께서 더 기꺼워하시는 번제물과 예물입니다. 

이제 갈수록 힘도 없어지고 건강도 잃게 되었을 때 저도 그리고 여러분도 오히려 더 하느님 앞에 온전히 있게 되길 빌어야겠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이 악한 종아, 네가 청하기에 나는 너에게 빚을 다 탕감해 주었다.

 

용서의 여행을 떠나는 우리들 삶입니다. 용서가 도착하는 곳은 언제나 용서의 하느님이십니다. 용서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십니다. 끝없이 용서하시는 하느님을 통해 용서가 절실한 우리자신을 보게 됩니다. 모든 생명에게 끝없이 사랑을 베푸시는 용서의 하느님이십니다. 

우리는 배반하고 하느님께서는 날마다 용서하십니다. 이와 같이 감당할 수 없는 많은 죄까지 용서하시는 분이십니다. 용서의 반성문을 써내려가는 사순입니다. 용서는 우리가 준비하는 부활의 가장 아름다운 영역입니다. 

다시 살아갈 수 있게 하시는 하느님의 끝없는 용서를 기억합니다. 하느님으로부터 시작되는 용서의 여행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용서의 은총 가득한 족보가 구원의 역사입니다. 나와 너의 구원은 용서를 청하고 용서를 베푸는 용서에 있음을 배웁니다. 

하느님을 벗어난 용서는 없습니다. 우리가 누군지를 알게 하는 일흔일곱 번의 용서가 있습니다. 용서는 하늘 나라를 맛보는 가장 아름다운 마음입니다. 하느님의 마음과 우리 마음이 같아지는 것이 용서입니다. 우리모두를 용서하는 용서의 가장 좋은 날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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