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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3/01/25 (수)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3. 1.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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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누구를 믿는지 잘 알고 있으며, 내가 맡은 것을 의로운 심판관이 마지막 날까지 지켜 주시리라고 확신하노라.

하느님, 복된 바오로 사도를 통하여 온 세상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셨으니 오늘 그의 회심을 경축하는 저희가 그의 모범을 따라 진리의 증인이 되고 언제나 어디서나 복음을 전하게 하소서.

 

2023년 1월 25일 (수) 성 바오로 사도의 회심 축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랜선으로 초대합니다!

2023년 1월 25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성 바오로 사도의 회심 축일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1독서
    (사도행전 22,3-16)
    일어나 예수님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며 세례를 받고 죄를 용서받으십시오.

  • 오늘 복음
    (마르코 16,15-18)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복음을 선포하여라.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3년 1월 25일 (수) 평화방송 매일미사 명동성당 매일미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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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묵상 바로가기

 

 

매일미사 복음 (Gospel)
복음 (Gospel)

 

주님이 말씀하신다.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뽑아 세웠으니, 가서 열매를 맺어라. 너희 열매는 길이 남으리라.

 

 

복음
마르코 16,15-18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복음을 선포하여라.

 

그때에 예수님께서 열한 제자에게 나타나시어 

15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16 
믿고 세례를 받는 이는 구원을 받고 믿지 않는 자는 단죄를 받을 것이다. 

17 
믿는 이들에게는 이러한 표징들이 따를 것이다. 곧 내 이름으로 마귀들을 쫓아내고 새로운 언어들을 말하며, 

18 
손으로 뱀을 집어 들고 독을 마셔도 아무런 해도 입지 않으며, 또 병자들에게 손을 얹으면 병이 나을 것이다.”

 

 

매일미사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3년 1월 25일 (수)
김상태 사도 요한 신부 집전

 

📌 미사시작 01:17

📌 강론시작 10:13

 

 

 

명동성당 매일미사

 

 

2023년 1월 25일 (수)
심승우 마르티노 신부 집전

 

📌 미사시작 08:36

📌 강론시작 19:27

 

 

 

팔로티회 매일미사

 

 

2023년 1월 25일 (수)
안동억 프란치스코 신부 집전

 

📌 미사시작 00:13

📌 강론시작 10:02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오늘의 말씀 묵상
매일미사
허규 베네딕토 신부

 

예수님의 이름으로.

 

오늘은 바오로 사도의 회심 축일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초대 교회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인물입니다. 바오로는 그리스도교를 박해하던 인물이지만, 회심한 뒤에 그가 보여 주었던 열정은 온전히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것으로 옮아갑니다. 

그는 이스라엘을 넘어 시리아와 소아시아 지방뿐 아니라 유럽에도 복음을 선포합니다. 그가 남긴 많은 편지는 당시 교회의 상황을 보여 주며, 초대 교회의 신앙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실마리가 됩니다. 

그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하신 예수님의 사명을 가장 잘 실천한 사도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믿는 이들에게 표징이 따를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어지는 내용은 예수님의 활동을 생각하게 합니다. 이때 강조되는 것은 ‘예수님의 이름으로’입니다. 믿는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살아가며 그분의 이름을 선포하는 사람들입니다. 

여기에 열거된 기적들은 사도들의 활동을 통해서도 실현된 적이 있습니다. 사도들은 복음을 선포하며 마귀들을 쫓아내고(사도 8,7 참조), 성령 강림으로 새로운 언어를 말하며(2,4; 19,6 참조), 손으로 뱀을 잡거나(28,3-6 참조), 안수로써 병자를 고쳐 줍니다(28,8 참조).

복음은 믿는 이들 모두 이와 같은 특별한 능력을 가지게 된다고 알려 주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통하여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런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게 된다고 말합니다. 사도들의 선포와 활동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표징이 일어났던 것처럼, 표징은 지금도 교회의 선포와 활동을 통하여 지속될 수 있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조명연 마태오 신부

 

지금보다 더 행복해지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좋은 인간관계? 직장에서 좀 더 많은 권한과 자유? 더 나은 새 직장? 좀 더 자상한 배우자? 아기의 탄생? 회춘? 공부 잘하는 자녀? 질병이나 장애의 치유? 더 많은 시간?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알아내는 것? 등등…. 
 
대부분 이런 문제가 해결되면 행복해질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많은 연구자의 연구 결과는 이런 요소들로는 행복해질 수가 없다고 합니다. 우리가 행복해지길 바란다는 점에서 볼 때, 엉뚱한 곳에서 행복을 찾고 있다는 것입니다. 
 
펜실베니아 대학의 마틴 셀리그만 교수는 우울증 환자에게 행복감을 높이는 방법을 제시했습니다. 바로 그날 있었던 좋은 일 세 가지씩을 기억해서 적는 것이었습니다. 그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94%가 증세의 호전을 보인 것입니다. 그래서 행복을 찾는 첫 단계는 내가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에 시작하라고 말합니다. 그래야 좋은 일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즉, 일상의 삶 전체가 자기 행복의 소재가 될 수 있음을 굳게 믿고 열정을 키우는 것입니다. 
 
행복을 결정하는 요소로 유전적 요소, 환경적 요소, 의지적 활동을 뽑습니다. 이중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하는 것이 50%의 유전적 요소입니다. 그리고 의지적 활동이 40%, 환경적 요소가 10%라고 합니다. 이 중에서 유전적 요소와 환경적 요소인 60%는 바꿀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나머지 40%인 의지적 활동으로 나의 행복을 찾을 수 있을까요? 당연히 찾을 수 있습니다. 인간은 침팬지와 99% 유전자가 같지만 다른 1%의 유전자의 차이로 침팬지와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40%라면 충분히 행복해질 수 있는 비율임을 알 수 있습니다. 문제는 바꿀 수 없는 유전적 요소와 환경적 요소에 계속 매여 있다는 것입니다. 
 
의지적 활동을 열정적으로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진짜 행복을 일상 삶 안에서 찾을 수가 있습니다. 
 
오늘은 바오로 사도의 회심 축일입니다. 그는 초대 교회의 핵심적인 인물이지요. 처음에는 그리스도교를 박해했지만, 회심한 뒤에 열정적으로 주님을 세상에 선포하는 데 앞장섰습니다. 그래서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마르 16,15)의 주님 말씀을 가장 잘 실천하는 사도 중의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행복한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의 유전적 요소, 환경적 요소에 매여 있지 않고, 의지적 요소에 열중해서 주님을 굳게 믿고 따랐기에, 하느님 나라에서 큰 영광을 차지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이렇게 의지적 요소에 열중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오늘 우리가 기념하듯 진정한 회심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따라서 우리도 유전적 요소, 환경적 요소에 매이지 않고, 열정을 다해 자신의 의지를 세워야 합니다.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만족을 알면 세상이 넓어지고, 욕심을 부리면 우주도 좁아진다.

- 증국번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선교가 힘든 이유.

 

 

 

오늘의 말씀 묵상
프란치스코회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그리스도인이라는 신원 의식 

 

오늘 축일의 독서인 사도행전은 바오로 사도가 자기의 회심을 사람들에게 설명하는 일종의 연설인데 그 첫 마디가 이렇습니다. 

“나는 유다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바오로의 회심은 유다 사람에서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바뀐 것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이것을 저와 연결하여 성찰하니 

“나는 한국 사람입니다.”라고 하던 것에서 “나는 그리스도의 사람입니다.”로 바뀌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저는 제가 한국 사람이라는 것을 좋아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제가 지금 결혼한다면 한국 여자와 결혼하고, 아이들을 한국 사람으로 키우지 결코 다른 나라 사람으로 키우고 싶지 않습니다. 

이는 우리나라가 모든 면에서 참 좋은 나라이고, 다른 나라보다 좋은 나라이기 때문이 결코 아닙니다. 

우리나라는 여전히 많은 문제가 있고, 특히 정치하는 사람들을 보면 참 문제가 많습니다. 국민은 1류인데 정치인은 3류, 4류라는 생각이 큽니다. 

그런데도 제가 한국 사람이라는 것을 좋아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좋은 면에서는 저의 태생을 부정하거나 거부하지 않고 순종하기 때문이고, 나쁜 면에서는 제가 국수주의자 내지는 민족주의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점이 늘 마음에 걸립니다. 그래서 저는 한국인이라는 것을 넘어서 세계인이 되어야 한다고 늘 생각합니다. 

전에도 제가 안중근 의사에 대해서 얘기한 바 있지만, 제가 그분을 존경하고 자랑스러워하는 것은 그분이 민족주의자이고 가톨릭 신자여서가 아니라 그분의 사상과 신앙이 민족과 종교를 넘어서 보편적이기 때문이고, 보편적인 분이기에 말 그대로 진정한 가톨릭 신자이기 때문입니다. 

가톨릭이란 아시다시피 보편적이라는 뜻인데 가톨릭 신자 중에 저처럼 무늬만 가톨릭이지 실제로는 보편적이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런 저에 비해 안중근 의사는 참 가톨릭 신자이고 세계인입니다. 

그런데 오늘 바오로 사도의 회심과 연결하여 보면 한국 사람에서 세계인이 되는 것보다 한국 사람에서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는 것이 낫겠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자기가 유다 사람이라는 것을, 그리고 하느님을 열성으로 섬기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대단히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그것이 너무도 넘치고 확신에 차서 유다 정통에서 벗어났다고 생각되 그리스도인들을 열성으로 박해까지 한 사람이 아닙니까? 

그런 그가 이제는 ‘나는 유다 사람입니다.’라고 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사도인 나 바울로” 또는 “그리스도의 종인 나 바울로”라고 자기의 모든 서간에서 자기를 소개합니다. 

사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면 자기 나라와 민족을 뛰어넘는 세계인이 될 수밖에 없고, 다른 나라와 민족의 사람들도 차별은 물론 구별도 없이 그리스도인으로 그리고 형제로 초대할 것입니다. 

이것이 다른 성인의 회심은 기념하지 않고, 베드로 사도나 다른 사도의 회심은 기념하지 않고, 유독 바오로 사도의 회심을 특별히 축일로 지내는 의미일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애국자가 되지 말고 애교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더 정확히 얘기하면 애국자도 되어야겠지만, 그것을 넘어 그리스도와 가톨릭 교회를 진정 사랑하는 애교자가 되어야겠습니다. 

그리고 어제는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신원 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얘기했는데 오늘은 바오로 사도처럼 그리스도의 사람이라는 신원 의식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복음을 선포하여라.

 

회심은 그 자체로 뜨거운 눈물을 지닙니다. 잘못된 가치의 방향을 바로잡아 줍니다. 치열하게 빛과 어둠이 공존하는 곳에서 가장 중요한 주님을 만납니다. 회심을 통하여 새롭게 태어납니다. 살기 위해서는 죽어야 하는 회심의 역설입니다. 

새롭게 태어난다는 것은 새로운 관계로 나간다는 것입니다. 회심은 먼저 주님의 말씀을 듣는 데서 시작합니다. 어떻게 말씀을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집니다. 말씀이신 하느님께 우리 삶을 봉헌하는 것입니다. 

말씀이 만들어가는 참된 회심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되어갑니다. 불가능이 가능으로 바뀌는 희망의 빛을 보게 됩니다. 새롭게 다시 보게되는 것이 은총입니다. 사람이 주입시킨 하느님이 아닌 진짜 하느님을 성 바오로 사도는 만나게 됩니다. 

새롭게 만나는 부서짐의 은총입니다. 시간과 시간 사이 만남과 만남 사이에 회심이 있습니다. 회심을 통하여 사도로 세우시는 놀라우신 주님의 사랑이십니다. 일회용 회심이 아닌 하느님의 빛 안에서 더욱 뜨거워지는 회심의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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