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 이제 순결한 예물, 정결한 희생 제물인 용감한 동정녀가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리신 어린양을 따른다.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세상의 강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약한 이들을 선택하셨으니 복된 순교자 아녜스의 천상 탄일을 기념하며 저희가 한결같은 그의 믿음을 본받게 하소서.
2023년 1월 21일 (토) 성녀 아녜스 동정 순교자 기념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랜선으로 초대합니다!
2023년 1월 20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성녀 아녜스 동정 순교자 기념일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1독서
(히브리서 9,2-3.11-14)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피를 가지고 단 한 번 성소로 들어가셨습니다. - 오늘 복음
(마르코 3,20-21)
그들은 예수님께서 미쳤다고 생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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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저희 마음을 열어 주시어 당신 아드님 말씀에 귀 기울이게 하소서.
복음
마르코 3,20-21
그들은 예수님께서
미쳤다고 생각하였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20
집으로 가셨다. 그러자 군중이 다시 모여들어 예수님의 일행은 음식을 들 수조차 없었다.
21
그런데 예수님의 친척들이 소문을 듣고 그분을 붙잡으러 나섰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미쳤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3년 1월 21일 (토)
손경락 사도 요한 신부 집전
📌 미사시작 01:16
📌 강론시작 07:34
명동성당 매일미사
2023년 1월 21일 (토)
조인기 암브로시오 신부 집전
📌 미사시작 06:19
📌 강론시작 14:03
팔로티회 매일미사
2023년 1월 21일 (토)
김태광 아우구스티노 신부 집전
📌 미사시작 05:24
📌 강론시작 13:36
오늘의 말씀 묵상
매일미사
허규 베네딕토 신부
신앙인으로 살아간다는 것.
오늘 복음은 군중과 예수님의 친척들을 비교합니다. 집으로 돌아간 예수님과 제자들은 몰려드는 군중 때문에 제대로 쉴 수 없었습니다. 맥락을 보면 군중은 예수님을 보려고, 그분의 자비를 구하고 그분의 업적을 보려고 모여듭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병을 고치시고 악령을 쫓아내시며 기쁜 소식을 선포하십니다.
마르코 복음은 시작 부분부터 이러한 업적을 다양하게 보여 줍니다. 반면에 예수님의 친척들은 군중과는 달리 예수님께서 미치셨다고 생각하여 그분을 잡으러 옵니다.
같은 한 분이시지만 예수님에 대한 평가는 사뭇 다릅니다. 예수님의 업적을 보고 그분을 믿는 이들이 있는 반면에 바리사이나 율법 학자들처럼 예수님께서 하느님을 모독한다고 판단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고자 먼 곳에서 찾아오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예수님을 비난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자신들의 희망을 예수님께 두는 이들과는 다르게 친척들은 그분께서 미치셨다고 생각합니다. 집을 떠나 제자들과 함께 죄인과 세리들과 어울리며 당시 종교 지도자들과 갈등하는 예수님의 모습은 한편으로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지금도 이와 비슷할지 모릅니다. 같은 예수님을 믿지만 믿음의 모습은 서로 다를 수 있습니다. 믿음은 삶의 기준과도 같습니다. 신앙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복음을 삶의 중심으로 삼는 것입니다.
어떤 일에 대한 판단과 해석의 기준은 다양할 것입니다. 그 기준이 어떤 이들에게는 이기적인 마음에서 재물이나 명예를 추구하는 것일 수 있지만, 신앙인에게는 일상 안에서 하느님의 뜻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조명연 마태오 신부
예수님과 절대로 함께 할 수 없는 사람
신학생 때 등산을 좋아했습니다. 시간만 있으면 무조건 산에 갈 정도였습니다. 왜냐하면 정상에 오르는 것이 커다란 성취감으로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즉, 이 산을 정복했다는 성취감이었습니다. 그래서 산 정상에 오르는 맛에 지도를 펼쳐서 정상에 오른 산을 하나 하나 표시하기까지 했습니다. 이 산도 정복하고, 저 산도 정복하고…. 거의 이런 식이었습니다.
어느 날, 험한 산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상황에 놓였습니다. 날은 점점 어두워지는데 하산하는 길을 찾기가 힘든 상태였습니다. 여기에 비까지 쏟아집니다. 갑자기 산이 너무나도 커 보였습니다. 자연의 힘이 얼마나 큰지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고생하고 난 뒤, 산을 정복했다는 말을 쓰지 않습니다. 산은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산 정상에 다녀온 것뿐이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하긴 고양이가 내 머리 위에 올라갔다고 해서 사람을 정복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이 역시 정상에 갔다 온 것뿐이고 조금 더 알 수 있게 된 것뿐입니다.
교회에서 열심히 봉사하는 분이 많습니다. 그들의 열심을 보면서 커다란 존경심도 갖게 됩니다. 그런데 때로는 열심히 하시지만 정복자의 모습을 보이는 분이 있습니다.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처럼 행동하고, 자기 기준에 맞춰서 다른 이를 판단하고 단죄하는 것도 서슴지 않습니다.
사실 교회 안에서는 정복자가 있을 자리가 없습니다. 교회 한 가운데 주님께서 계시는데, 주님께서 먼저 가장 낮은 자의 모습으로 커다란 겸손을 보여주셨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주님을 알고 함께 하기 위해 우리 역시 겸손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판단하고 단죄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를 받아주면서 인정하고 지지하는 겸손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정복자의 모습을 보이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예수님의 친척이었습니다. 음식을 들 시간조차 없을 정도로 바쁘게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전하신 주님이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친척들이 예수님을 붙잡으러 오지요. 예수님께서 미쳤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구름같이 몰려드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붙잡으러 오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보다 예수님과 함께하기 위한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정작 예수님과 가까운 친척 관계라서 잘 안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은 미쳤다면서 활동 자체를 하지 못하게 합니다.
아마 친척들은 당시의 높은 지위라고 할 수 있는 종교 지도자들의 말만을 굳게 믿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많이 배웠고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그들이 허튼소리를 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기에 예수님께서 지금 제정신이 아니라고 판단한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잘 안다고 생각했던 그들은 실제로 몰라도 너무 몰랐습니다.
자기 모습을 생각해 보십시오. 가정 안에서, 교회 안에서, 또 사회 안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습니까? 정복자입니까? 아니면 겸손한 사람입니까? 정복자의 모습을 통해서는 예수님과 절대로 함께할 수 없습니다. 지금 당장 정복자의 모습을 가감하게 버리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내일의 일을 훌륭하게 하기 위한 최선의 준비는 바로 오늘 일을 훌륭하게 완수하는 것이다.
- 엘버트 허버드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예수님은 미치셨다는데 우리가 정상이란 소리를 듣는다면?
오늘의 말씀 묵상
프란치스코회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하느님께 미치려면
“예수님의 친척들이 소문을 듣고 그분을 붙잡으러 나섰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미쳤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오늘 복음은 예수께서 미쳤다는 소문을 들은 친척들이 예수님을 붙잡으러 온 짧은 얘기입니다. 그러니까 더 이상 미친 짓 하지 말고 고향에 돌아와,정상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고 친척들은 생각한 겁니다.
이 짧은 얘기를 묵상하면서 정상적인 삶이란 무엇이고, 정상을 벗어난 미친 것은 무엇인지 생각하게 되고, 거창하게는 인생이란 도대체 어떤 것인지 생각하게도 됩니다.
거창하게 생각하면 인생이란 안정이나 안주와의 싸움이고, 안정과 안주에서 벗어나 어딘가 도달하려고 끊임없이 싸우는 인생 같습니다.
주님께서 미쳤다고 오늘 친척들은 생각하는데 그런데 ‘미치다’의 한 뜻이 정신이 정상이 아니라는 뜻이고, 다른 한 뜻이 ‘도달하다’, ‘가 닿거나 이르다’는 뜻이며, 또 다른 뜻이 어디에 ‘몰입하다’, ‘빠지다’는 뜻이지요.
이것을 얼핏 보면 전혀 다른 뜻들 같은데 제가 생각하기에는 어떤 연관이 있는 것도 같습니다.
무엇이든 어떤 경지에 도달하려면 웬만큼 해서는 안 되고, 정상이 아닐 정도로 거기에 몰입해야만 되지요.
반대로 어디에 미치면 그 외에 다른 것은 할 수 없을 정도로 거기에 빠져(몰입하여) 헤어 나오지 못하게 되지요.
옛날 제가 소설에 미쳐 소설을 끄적이던 때가 있었는데 한번 그 소설 속으로 들어가면 마치 지금 젊은이들이 게임에 빠지면 거기서 빠져나오지 못하듯 저도 거기서 빠져나오지 못해 수도자로서의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었더랬지요.
그래서 하느님께 미치기 위해 소설을 포기했는데 이처럼 하느님께 미치기 위해서는 다시 말해서 하느님께 제대로 도달하기 위해서는 이 세상에서의 정상적이고 안정적인 삶에 안주하는 것은 포기해야만 할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정상적인 삶이라고 하면 때가 되면 결혼하고, 일정한 직업을 가지고 있고, 정상적으로 대인 관계를 유지하고, 역마살 낀 사람처럼 돌아다니지 않고 한곳에 정착하는 등의 고정 관념이 있지요.
이런 기준으로 볼 때 예수님은 정상적이지 않고, 성인들 특히 프란치스코와 같은 성인도 전혀 정상적이지 않았는데 이것이 다 하느님께 미쳤기 때문이고 하느님 나라에 생각이 꽂혔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서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다가 죽어 하느님 나라에 가기 위해서는 이 세상에서 정상적인 삶이라고 사람들이 생각하는 삶은 살 수 없었지요.
그러므로 성인들은 그리고 신앙인 중에서 열심이면 열심일수록 사람들이 정상적인 삶이라고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인생이란 정상이라든지 평범이라든지 안정이라든지 안주라든지 이런 것들은 얼마간 또는 많이 벗어나야지 하느님께 도달하고, 하느님 나라와 가까워지게 됨을 묵상케 하는 오늘 복음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그들은 예수님께서 미쳤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소중한 가족과 고향을 찾는 설 연휴가 시작되었습니다. 은총가득한 설 명절 되시길 기도드립니다. 소중한 관계 안에서 평화와 열정을 뒤엎는 것은 언제나 우리자신들입니다. 진실로 사랑하면 사랑하지 못 할 것이 없습니다.
사랑이란 받아들이기 싫은 그 부분까지 받아들이는 것이 사랑입니다. 예수님 마저 미쳤다고 결박하려 듭니다. 판단의 족쇄를 멈추어야 합니다. 천 갈래 만 갈래로 찢어지는 마음입니다. 기대에 부응하지 않아도 소중한 사람입니다. 따뜻한 지지와 응원이 필요한 우리들입니다.
있는 그대로의 민낯과 마주할 사랑을 청합니다. 사랑의 울림이 하느님 나라를 보여줍니다. 쓰다듬고 또 쓰다듬는 사랑이 서로의 길을 축복합니다. 서로의 길에서 하느님의 영광이 드러납니다. 가야만 하는 길이 있습니다.
휘어져 있는 우리마음을 바로잡아 주시는 하늘이 땅으로 내려오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다. 맑으신 사랑 안에 맑으신 성녀 아녜스 동정 순교자 기념일이 있습니다. 사랑을 더하고 보태는 은총 가득한 날 되십시오. 눈 높이를 낮추면 모든 것은 은총입니다. 주고받아야 할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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