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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3/01/23 (월)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3. 1.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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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께 노래하여라, 새로운 노래. 주님께 노래하여라, 온 세상아. 존귀와 위엄이 그분 앞에 있고, 권능과 영화가 그분 성소에 있네.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저희를 자애로이 이끄시어 사랑하시는 성자의 이름으로 저희가 옳은 일에 힘쓰게 하소서.

 

2023년 1월 23일 (월)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랜선으로 초대합니다!

2023년 1월 23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연중 제3주간 월요일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1독서
    (히브리서 9,15.24-28)
    그리스도께서는 죄를 짊어지시려고 단 한 번 당신 자신을 바치셨습니다. 그리고 당신을 고대하는 이들에게 두 번째로 나타나실 것입니다.

  • 오늘 복음
    (마르코 3,22-30)
    사탄은 끝장이 난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3년 1월 23일 (월) 평화방송 매일미사 명동성당 매일미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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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묵상 바로가기

 

 

매일미사 복음 (Gospel)
복음 (Gospel)

 

우리 구원자 그리스도 예수님은 죽음을 없애시고 복음으로 생명을 환히 보여 주셨네.

 

 

복음
마르코 3,22-30

 

사탄은 끝장이 난다.

 

그때에 

22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율법 학자들이, “예수는 베엘제불이 들렸다.”고도 하고, “예수는 마귀 우두머리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고도 하였다. 

23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부르셔서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어떻게 사탄이 사탄을 쫓아낼 수 있느냐? 

24 
한 나라가 갈라서면 그 나라는 버티어 내지 못한다. 

25 
한 집안이 갈라서면 그 집안은 버티어 내지 못할 것이다. 

26 
사탄도 자신을 거슬러 일어나 갈라서면 버티어 내지 못하고 끝장이 난다. 

27 
먼저 힘센 자를 묶어 놓지 않고서는, 아무도 그 힘센 자의 집에 들어가 재물을 털 수 없다. 묶어 놓은 뒤에야 그 집을 털 수 있다. 

28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사람들이 짓는 모든 죄와 그들이 신성을 모독하는 어떠한 말도 용서받을 것이다. 

29 
그러나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영원히 용서를 받지 못하고 영원한 죄에 매이게 된다.” 

30 
이 말씀을 하신 것은 사람들이 “예수는 더러운 영이 들렸다.”고 말하였기 때문이다.

 

 

매일미사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3년 1월 23일 (월)
이창영 이레네오 신부 집전

 

📌 미사시작 00:22

📌 강론시작 07:21

 

 

 

명동성당 매일미사

 

 

2023년 1월 23일 (월)
조학문 바오로 신부 집전

 

📌 미사시작 09:18

📌 강론시작 18:11

 

 

 

팔로티회 매일미사

 

 

2023년 1월 23일 (월)
장화기 바오로 신부 집전

 

📌 미사시작 01:05

📌 강론시작 11:11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오늘의 말씀 묵상
매일미사
허규 베네딕토 신부

 

예수님의 일은 악의 힘을 무너뜨리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을 보고 일부의 사람들은 그분께 악령이 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이런 반응은 예수님의 업적이 일상 안에서 쉽게 일어날 수 없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놀라운 업적이지만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는 이들은 그것이 악의 힘에서 오는 것이라고 여깁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설명하십니다. 예수님의 일은 바로 악의 힘을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짓는 모든 죄와 그들이 신성을 모독하는 어떠한 말도 용서받을 것이다. 그러나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영원히 용서를 받지 못하고 영원한 죄에 매이게 된다.” 

이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많은 논쟁이 있습니다. 특히 사람들은 하느님의 자비를 실감하면서도 영원히 용서받지 못하는 죄가 무엇인지 궁금해합니다. 모든 죄와 신성을 모독하는 어떤 말도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한없는 하느님의 자비에 대한 표현이면서 우리에게 힘이 되는 말씀입니다. 성령을 모독하는 것은 오늘 복음의 28절과 관련되어 보입니다. 구원을 위한 하느님의 업적을, 모든 죄와 모독하는 말이 용서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거나 스스로 거부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탈출기에 나오는, 구약 성경에서 하느님의 특성을 잘 드러내는 다음 말씀을 떠올리게 합니다. 

“주님은, 자비하고 너그러운 하느님이다. 분노에 더디고, 자애와 진실이 충만하며, 천대에 이르기까지 자애를 베풀고, 죄악과 악행과 잘못을 용서한다. 그러나 벌하지 않은 채 내버려 두지 않고, 조상들의 죄악을, 아들 손자들을 거쳐, 삼 대 사 대까지 벌한다”(탈출 34,6-7).

 

 

오늘의 말씀 묵상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조명연 마태오 신부

 

옷을 입는 사람에 따라 옷의 가치가 바뀐다.

 

프랑스어로 헐렁한 옷이라는 뜻의 블루즈(Blouse)가 변형된 옷인 블라우스는 청순하고 우아한 느낌을 주는 아름다운 옷입니다. 그런데 이 블라우스를 남자인 제가 입는다면 어떨까요?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옷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렇다면 미니스커트는 어떨까요? 이는 블라우스보다도 더 보기 싫은 모습이겠지요. 이제 아름답고 화려한 파티용 드레스는 어떨까요? 분명히 그 자체는 아름답지만 제가 입는다면 도저히 봐 줄 수 없다고 할 것입니다. 
 
아무리 멋진 옷이라 할지라도 옷을 입는 사람에 따라 옷의 가치가 바뀐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사실을 생각하면서 주님과 우리의 관계를 묵상해 보았으면 합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고 직접 행동으로 보여주셨던 ‘사랑’의 가치는 세상의 어떤 것보다 높습니다. 그렇다면 그 가치를 더 높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주님 사랑을 받아들이는 나 자신이 합당한 자세를 갖춰야만 합니다. 욕심과 이기심을 가득 들고서는 오히려 주님 사랑이 끔찍하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주님의 사랑은 나의 모습에 따라 세상에서 환하게 또 아름답게 드러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나를 통해 주님 사랑을 드러내고 있었을까요? 나의 많은 죄로 인해 주님 사랑을 끔직해 보이는 것으로 만들어 하느님의 영광을 전혀 드러내지 못했던 것이 아닐까요? 
 
내가 받을 사랑만을 청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나’의 변화였습니다. 주님의 사랑은 늘 변함없이 내 곁에서 함께 해 주셨습니다. 문제는 이를 받아들이는 내가 그 사랑을 거룩하게 드러내지 못하게 했었던 것입니다. 
 
예루살렘에서 온 율법학자가 예수님을 향해 “베엘제불이 들렸다.”, “예수는 마귀 우두머리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단 한 번도 죄를 지은 적이 없었습니다. 온전히 사랑을 전해줘서 우리 모두를 구원으로 이끌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주님께서 보여주신 사랑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적의를 표현하면서 예수님을 제거하려는 마음만 키우고 있었지요. 그들 자체가 변하지 못하니, 주님 사랑이 그들 안에서 변질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이 짓는 모든 죄와 그들이 신성을 모독하는 어떠한 말도 용서받을 것이다. 그러나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영원히 용서를 받지 못하고 영원한 죄에 매이게 된다.”(루카 3,28.29) 
 
주님 사랑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이 곧 성령을 모독하는 영원히 용서받지 못할 죄에 매이게 된다는 것입니다. 주님 사랑을 끔찍한 것으로 변질시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 사랑이라는 가장 멋지고 아름다운 옷을 입고 세상에 아름답고 멋진 주님의 사랑을 전하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자신의 가치는 다른 어떤 누군가가 아닌, 바로 자신이 정하는 것이다.

- 엘리노어 루스벨트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성령을 모독하지 않으려면: 피 흘림엔 피 흘림으로

 

 

 

오늘의 말씀 묵상
프란치스코회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영적 식별을 원한다면? 

 

공생활 초기 예수님은 비정상적인 존재로 계속 의심받습니다. 친척들은 예수님을 미쳤다고 생각하고 잡으러 왔고, 이어서 어머니와 형제들도 예수님을 만나러 왔으며, 오늘은 드디어 율법 학자들이 예루살렘에서까지 와서는 악령 들렸다고 합니다. 

지금의 우리로서는 어처구니없는 오해라고 할 수 있지만 그 당시로는 오해의 소지가 없지 않았고 특히 오늘 복음에서처럼 교회 기득권층에게는 더 많았을 겁니다. 

그러므로 오늘 복음을 보면서 율법 학자만 어처구니없는 인간들이라고 손가락질할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도 영적 식별을 잘해야 할 것입니다. 

내 안에는 어떤 영이 있는지, 나는 어떤 영에 이끌리고 있는지, 내가 지금 하는 것은 어떤 영에 이끌려 하는 것인지 등. 

북한 일이든 해외선교든 살아오는 동안 많은 일을 했고 어려움도 많았는데 사실 그 일의 어려움보다 더 큰 어려움은 이 일이 과연 하느님 일인지, 하느님께서 시작하게 하시고 하느님의 힘으로 하는 일인지 식별하는 것이었지요. 

그래서 이런 식별의 경험들을 통해 이제는 제 나름대로 기준을 가지고 있습니다. 

- 사랑으로 이 일을 하는지 아니면 성취욕 때문에 하는 것인지 

- 사람들의 유익을 위해 하는지 나의 만족을 위해 하는 것인지 

- 나의 비판이 시기 질투에서 비롯됐는지 정의에서 비롯됐는지 

- 나의 중재가 일치를 지향하고 일치를 낳는 것인지 그 반대인지 

 
그리고 모든 것을 이런 식으로 식별할 수 있겠지만 그렇게 소분류 하지 않고 대분류적으로 식별한다면 하는 것이 무엇이든 그것이 사랑이면 성령에 이끌리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성령이 아닌 것에 이끌리는 것이라고 단순화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단순화할 수 있지만 그러나 우리는 다시 이렇게 질문하게 되겠지요? ‘성령이 아닌 것’이란 도대체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그것들은 ‘육의 영’이거나 ‘더러운 영’이거나 ‘악령’일 것입니다. 늘 자기를 향하게 하는 ‘육의 영’이요, 늘 세상을 향하게 하는 ‘더러운 영’이며, 늘 하느님 나라와 하느님의 선들을 파괴하려는 ‘악령’입니다. 

이런 영들이 성령을 도외시하거나 무시하거나 오늘 주님께서 말씀하시듯 모독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저는 지금까지와 다른 성찰을 하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저는 늘 무엇을 하며 그것이 성령에 이끌리는 것인지 아닌지 그 점에 대해서 식별했는데 그렇다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성령에 이끌리는 것인가? 

게으름의 영,
무기력의 영,
무관심의 영, 

이런 영도 있는지 모르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사랑도 하지 않는, 그래서 무사안일하려는 영에 이끌리는 것은 아닌지?.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어떻게 사탄이 사탄을 쫓아낼 수 있느냐?

 

예수님을 사탄의 우두머리로 몰아갑니다. 입술을 떠난 말들은 다시 주워 담을 순 없습니다. 반복되는 어리석고 더러운 말장난을 멈추고 삼가해야 합니다. 어둠의 세력은 혀와 돈으로 우리를 더럽힙니다. 어찌하여 이 지경까지 왔는지를 묻게 됩니다. 

사탄을 쫓아내시는 하느님이 계십니다. 우리가 사는 곳에도 사탄이 있습니다. 벗어날 수 없는 믿음의 영역입니다. 사탄의 운명은 끝내 끝장이라는 것을 우리들에게 알려주십니다. 갈라서고 거스르고 돌아서는 분열의 관계를 치유하시는 주님이십니다. 어둠의 시간을 벗어나면 빛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이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삶이 중요합니다. 잘못된 간섭과 참견을 멈추어야 합니다. 잘못된 사랑을 몰아내시는 주님이십니다. 이 시대의 사탄을 쫓아내시는 주님의 사랑입니다. 마침내 사랑이 다시 온전한 우리로 바꾸어 줄 것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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