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이 말씀하신다.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
시작이시며 마침이신 주 하느님, 오늘 새해 첫날을 기쁜 마음으로 주님께 봉헌하오니 온갖 은총과 복을 가득히 베푸시어 저희가 조상들을 기억하며 화목과 친교를 이루게 하시고 언제나 주님의 뜻을 따르며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게 하소서.
2023년 1월 22일 (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랜선으로 초대합니다!
2023년 1월 22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 설 -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1독서
(민수기 6,22-27)
이스라엘 자손들 위로 나의 이름을 부르면, 내가 그들에게 복을 내리겠다. - 제2독서
(야고보서 4,13-15)
여러분은 내일 일을 알지 못합니다. 여러분의 생명이 무엇입니까? - 오늘 복음
(루카 12,35-40)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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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묵상 바로가기
나날이 당신을 찬미하고 영영 세세 당신 이름을 찬양하나이다.
복음
루카 12,35-40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35
“너희는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 놓고 있어라.
36
혼인 잔치에서 돌아오는 주인이 도착하여 문을 두드리면 곧바로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처럼 되어라.
37
행복하여라, 주인이 와서 볼 때에 깨어 있는 종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 주인은 띠를 매고 그들을 식탁에 앉게 한 다음, 그들 곁으로 가서 시중을 들 것이다.
38
주인이 밤중에 오든 새벽에 오든 종들의 그러한 모습을 보게 되면, 그 종들은 행복하다!
39
이것을 명심하여라. 도둑이 몇 시에 올지 집주인이 알면, 자기 집을 뚫고 들어오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40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다.”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3년 1월 22일 (일)
손희송 베네딕토 주교 집전
📌 미사시작 00:22
📌 강론시작 12:56
명동성당 매일미사
2023년 1월 22일 (일)
조학문 바오로 신부 집전
📌 미사시작 09:13
📌 강론시작 18:14
팔로티회 매일미사
2023년 1월 22일 (일)
공동 집전
📌 미사시작 00:27
📌 강론시작 12:52
오늘의 말씀 묵상
매일미사
허규 베네딕토 신부
준비하고 있어라.
오늘 복음은 마치 하나의 비유를 말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두 비유가 결합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첫째 비유는 아주 단순합니다. 혼인 잔치에서 돌아오는 주인을 맞이할 수 있도록 준비하라는 내용입니다.
당시 혼인 잔치는 열흘 정도 이어지는 큰 축제였기에 그 사이 언제라도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이런 배경에서 볼 때 비유의 의미가 조금 더 명확해집니다.
“허리에 띠”를 매라는 말씀은 구약 성경에서 옷을 차려입는 것을 말할 때 쓰였으며, 띠를 매는 것은 무엇인가를 바로 할 수 있는 준비된 상태를 가리킵니다. 이 비유의 마지막에는 ‘행복하여라’라는 행복 선언이 반복됩니다. 주인을 맞이하려고 늘 준비하고 있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두 번째 비유는 도둑을 대상으로 삼습니다. 이 비유는 사람의 아들이 도둑과 같다고 말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비유의 핵심은 “준비하고 있어라.”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있습니다. 곧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에 대한 비유입니다. 집주인이 도둑에 맞서 자신의 소중한 것을 지키려고 준비하고 있는 것처럼 늘 깨어 있으라는 말씀입니다.
두 비유는 모두 종말을 배경으로 삼습니다. 종말은 생각지 못한 때에 옵니다. 그때가 언제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복음이 전하는 가르침은 ‘준비’입니다. 마치 언제 올지 모르는 주인을 기다리는 종처럼, 호시탐탐 빈 집을 노리는 도둑에 맞서는 집주인처럼 종말을 준비해야 합니다.
많은 경우에 종말은 우리를 두렵게 하는 표상들로 묘사되지만 오늘 비유는 다른 면을 알려 줍니다. 곧 종말은 주인이 종에게 봉사하는 것처럼 기쁨과 행복의 때이기도 합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조명연 마태오 신부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새해의 기쁨을 맘껏 누리시고, 주님의 사랑과 은총이 여러분 가정에 충만하시길 기도합니다.
오늘은 한 해의 첫날을 기리는 명절인 설날입니다. 설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새로 온 날이 낯설다는 의미에서 낯설다의 어근인 ‘설다’에서 온 것으로 본 시각과 한 해가 새롭게 개시되는 날을 의미하는 ‘선날’이 설날로 바뀌었다고 보는 시각이 대표적입니다. 낯선 설, 한 해가 새롭게 시작되는 ‘설’입니다. 이렇게 낯설고 새로운 날에 어떤 생각을 해야 할까요? 예전과 같은 부정적인 마음으로 힘든 날이 아닌, 긍정적인 마음으로 희망을 간직할 수 있는 멋진 날들을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무장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분명 어제와 다른 참 기쁨의 삶을 여러분의 것으로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이솝 우화에 나오는 여우와 신포도 이야기를 잘 아실 것입니다. 그 내용은 이렇지요. 여우가 길을 가다가 잘 익은 포도를 발견합니다. 이 먹음직스러운 포도를 먹으려고 폴짝폴짝 뛰어 보았지만 너무 높은 곳에 있어서 도저히 포도를 딸 수가 없었습니다. 한참의 노력 끝에 여우는 이렇게 말합니다.
“저 포도는 시어서 맛이 없을 거야.”
이렇게 생각을 바꾸고 나서 여우는 편안한 마음으로 자기 갈 길을 갈 수 있었습니다. 만약 여우가 생각을 바꾸지 않고 계속해서 포도를 얻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면 어떠했을까요? 그 노력으로 포도를 얻을 수 있다면 커다란 만족감을 얻게 되겠지만, 모든 노력으로도 얻지 못한다면 그 실망감은 대단히 클 것입니다. 그러나 생각을 바꾸다 보니 포도를 먹지 못했어도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통해 우리의 생각도 바꾸면 삶이 편안해진다는 교훈을 얻게 됩니다.
우리의 생각을 바꿀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좌절과 절망을 가져오는 생각은 안 됩니다. 또 불평과 원망을 가져오는 생각도 가져서는 안 됩니다. 지금의 어려움을 뒤로 할 수 있는 지혜, 미래의 희망을 바라볼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주님께서는 오늘 복음에서 주인이 왔을 때 깨어있는 종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다.”(루카 12,40)라고 명령하십니다. 준비한다는 것은 과거로 되돌아가는 삶이 아닙니다. 바로 미래의 삶인 주님과 함께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삶인 것입니다. 이를 위해 과거에 갇혀 있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미래를 바라보며 지금의 삶에 충실한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한 생각이 새해 복을 더 충만하게 받을 수 있게 할 것입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그 어떤 희망이든 자신이 품고 있는 희망을 믿고 인내하는 것이 바로 인간의 용기이다. 그러나 겁쟁이는 금세 절망에 빠져 쉽게 좌절해 버린다.
- 에우리피데스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우리가 준비하지 않는 이유 : 인생을 공짜라고 여기기에
오늘은 새해 설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새해를 시작하며 욤 키푸르라 해서 속죄 예식을 대대적으로 거행하였습니다. 한 해 축복받기 위한 준비를 먼저 하는 의미입니다. 우리도 새해 많은 축복을 받기 위해 먼저 깨어 준비하고 있으라는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한 해 시작부터 잠자고 준비되어 있지 못하면 한 해가 축복일 수 없습니다.
먼저 준비되지 않은 사람에게 인생이란 어떤 삶일까요? 그저 생존하는 삶입니다. 그러면 말년이 어떻게 될까요? 후회할 것이고 후회해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될 수 있습니다. 본래는 그러한 뜻은 아니라고 하나 조지 버나드 쇼 묘비에 새겨져 있다는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라는 말은 어쩌면 우리 모두의 간담을 서늘하게 합니다. 그리고 죽기 전에 얼마나 많은 후회가 있습니까? 우리는 왜 우물쭈물하게 될까요?
조폭 두목인 쓰촨성의 한룽그룹 류한 회장은 7조 원의 재산으로 전 세계 부자 순위 148위에 올랐습니다. 그러나 2014년 경쟁자 8명을 살해하는 등 11개의 죄목으로 조직원 4명과 함께 사형당했습니다. 집행관이 사형집행을 위해 그의 어깨를 잡자 49세의 그는 갑자기 펑펑 울면서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다시 한번 인생을 살 수 있다면 노점이나 작은 가게를 차리고 가족을 돌보면서 살고 싶다. 내 야망과 인생, 모든 게 잠깐인 것을, 그리 모질게 살지 않아도 되는 것을, 바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물처럼 그냥 흐르며 살아도 되는 것을, 악쓰고 소리 지르며 악착같이 살지 않아도 되는 것을, 말 한마디 참고 물 한 모금 먼저 건네주며 잘난 것만 재지 말고 못난 것도 보듬으면서 거울 속의 자신을 바라보듯이 서로 불쌍히 여기며 원망하고 미워하지 말고 용서하며 살 걸 그랬어. 세월의 흐름 속에서 모든 게 잠깐인 ‘삶’을 살아간다는 것을, 흐르는 물은 늘 그 자리에 있지 않다는 것을, 왜 나만 모르고 살았을꼬. 2015년 2월 사형을 기다리며.”
인생이 숙제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부모에게 무언가 받으면 부모에게 숙제해야 하고 하느님께 무언가 받았으면 하느님께 숙제해야 합니다. 인생에 공짜는 없습니다.
피아니스트 김용배 씨의 자전적 고백입니다. 그는 조선일보의 일사일언 난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미국 유학 시절 실내악 수업 학기 말 실기 시험 때의 일이다. 한 학기 동안 충분히 호흡을 맞춘 우리 삼중주 팀은 나름대로 자신 있게 시험장에 들어갔다. 그런데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벌어졌다. 심사 교수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주임교수가 갑자기 피아노 옆으로 다가오더니 직접 악보를 넘겨주겠다는 것이 아닌가. 피아노계의 거장인 은사가 곁에 앉아 손수 악보를 넘겨 주신다니 황송하기도 하고 부담스러워 당황했지만 어쨌든 연주는 시작되었다. 한참 곡이 진행되고 있는데 지금까지 정확히 악보를 넘겨주던 그 노교수가 갑자기 악보를 넘겨야 하는 부분이 가까워져 오는데도 도무지 움직일 기미를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결국 내가 악보를 넘기기 위해 손을 건반에서 떼어야 했고 연주는 중단될 수밖에 없었다. 바로 그때 그 노 교수는 내 등을 가볍게 두드리면서 이렇게 말했다.
‘연주 도중에는 온갖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네. 피아니스트는 그런 상황에 대비해 넘기기 직전의 한두 줄, 그다음 장의 한두 줄은 꼭 외우고 있어야 돌발 상황에 부닥치더라도 당황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연주할 수 있는 것이야. 100% 준비는 항상 부족하다는 것을 명심하도록.’
우리는 왜 준비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단순합니다. 거저 받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거저 받으면 보답할 이유가 없습니다. 받은 것에 대한 보답이 준비입니다.
어느 현명한 왕이 현자들에게 세상의 진리를 담은 책을 만들라고 명하였습니다. 현자들은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12권의 책을 왕에게 가져왔습니다. 그러자 왕은 다시 한 권으로 줄이라고 했습니다. 현자들은 몇 달 뒤에 한 권의 책으로 요약해서 가져왔습니다.
왕은 그것도 많다며 한 문장으로 뽑아내라고 했습니다. 현자들이 진땀을 빼며 한 문장으로 뽑아 왕에게 바쳤습니다. 왕은 그들이 만든 문장을 보고 매우 기뻐했습니다.
“바로 이것이 내가 바라는, 여러분들이 바라는 ‘세기의 지혜’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이것을 배우면 그동안 고뇌하던 모든 문제가 곧 해결될 것입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현자들이 후세에 물려준 단 한 문장으로 된 세기의 지혜는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이 세상에 공짜는 없다.”
우리가 사기를 맞는 이유는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것에 예외가 있을 것이라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무언가 받는 것이 있다면 그 속에는 반드시 숙제가 담겨 있습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젖을 주고 키워도 제때 일어나 걷고 제때 말을 할 수 있고 또 제때 학교에 가기를 기대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하물며 우리가 이 세상에 존재하게 만든 분이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으셨겠습니까? 거저 받는 것을 있을 수 없습니다. 거저 생길 수 있는 것도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문제는 저절로 거저 받았다고 믿는 것입니다. 내가 거저 받을 자격이 있다고 믿는 것이 교만입니다. 이러한 교만이 우리를 우물쭈물 살게 합니다.
만약 누군가 모르는 사람이 다가와 여러분에게 그냥 쓰라고 1억 돈다발을 준다고 해 봅시다. 앞뒤 안 가리고 덥석 받을 분 손 들어보시기를 바랍니다. 손을 못 드는 분이 더 많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것이 공짜로 생기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인생은 공짜라고 생각합니다. 이미 받았으니 말입니다. 생명이 어떻게 저절로 생겨날까요? 그런 생명체는 하나도 없습니다.
내가 거저 받을 자격이 있다고 믿는 교만은 나를 막 살게 만듭니다. 결국 생존만 쫓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숙제를 제출해야 할 때가 되면 후회합니다. 우리가 인생을 헛살지 않기 위한 그 가장 좋은 방법이 ‘십일조’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는 모든 것이 공짜인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선악과를 바치라고 하시며 당신이 주셨다는 부담을 갖도록 하셨습니다. 이 부담이 없으면 인생을 헛살게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한 해 시작하며 십일조를 봉헌하려는 마음으로 시작한다면 어떨까요? 모든 것은 주님의 것이라는 믿음은 내가 받는 90%도 공짜가 아닌 의미 있는 무엇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한 해를, 우리 인생을 허비하지 않을 것입니다. 선악과는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고 하느님께서 마련해놓으신 가장 확실한 장치입니다.
우리가 종임을 잊지 맙시다. 오늘 복음에서 깨어 있지 못했던 종들은 자신이 종인 줄 모르고 주인인 줄 착각했던 이들입니다. 봉헌하는 삶이 이렇게 중요합니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이 나의 것이 아니라고 느낄 때 우리는 부담을 느끼게 되고 삶의 의미를 찾고 그 숙제를 시작합니다. 그렇게 인생이 준비되는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프란치스코회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설 명절 <복 박>을 크게 마련하라 .
오늘 독서 민수기의 하느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아론과 아들들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축복하라고 말씀하시고, 말씀대로 축복하면 당신도 그들에게 복을 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그리고 설 명절에 우리는 전통적으로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고 인사합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아론과 아들들처럼 여러분에게 축복하며, 다시 말해서 여러분에게 복을 빌어드리며 두 가지 덕담을 하려고 합니다.
첫째는 여러분도 저도 축복하는 한 해가 되자는 덕담입니다. 이웃을 향한 우리 축복은 우리 행복의 조건이기 때문입니다. 축복 곧 복을 빌어주는 것은, 이웃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한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것은 남에게 복을 빌어줘야 복이 돌아오기 때문만이 아닙니다. 사실 남을 축복해야 남도 나를 축복해주니 복이 돌아오게 하기 위해서라도 축복해줘야 하겠지만 설사 복이 돌아오지 않을지라도 축복해주라는 말이고, 그것은 남이 아니라 나의 행복을 위해서라는 말입니다.
저주하는 사람보다는 축복해주는 사람이 행복하고, 무엇보다도 축복하는 사람에게 하느님께서 강복하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느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아론과 아들들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하면 당신도 그들에게 복을 내리시겠다고.
“그들이 이스라엘 자손들 위로 나의 이름을 부르면, 내가 그들에게 복을 내리겠다.”
주님께서 복음의 다른 곳에서 말씀하신 바 있듯이 주는 됫박과 받는 됫박은 같습니다. 주는 됫박 따로 있고 받는 됫박 따로 있지 않다는 말입니다.
같은 <복 박>으로 받기도 하고 주기도 하는 것이며 같은 <저주 박>으로 받기도 하고 주기도 하는 겁니다.
둘째 덕담은 복을 많이 받으시라는 것입니다. 사람들 가운데는 행복도 욕심부리지 말라는 사람이 있는데 저는 여러분이 복을 많이 받아 많이 행복하시라는 것입니다.
사실 이 정도로 행복하라는 말도 일리가 있습니다. 행복이란 만족인데 이 정도로 만족할 줄 알 때 행복할 수 있기 때문이고, 사실 행복한 줄 모르는 것이 불행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복을 많이 받으시라고 하는 것은 지금 받는 복이 부족하다며 욕심부리라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많이 주시는 복을 내가 부주의하여 흘려버리거나 나의 복 박이 작아서 넘쳐버리지 않게 하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앞서 얘기했듯이 여러분이 <복 박>을 키우시라는 뜻입니다. 욕심은 버리고 <복 박>은 키우라는 말입니다.
하느님께서 복을 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믿고, 하느님께서 주시는 복이 많고 넘친다는 것을 믿는다면 비 올 때 빗물을 받기 위해서 큰 양동이를 마련하듯이.
새 해 주님께서 주시는 복 많이 받아 올해도 행복한 여러분 되시길 빌며 세배 올립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하느님의 은총 속에서 새해를 맞이합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지를 다시 묻는 새해 첫날 새아침입니다. 살아야 할 생명의 시간은 참으로 큰 신비입니다. 보고 싶은 고향이 있고 보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걸어온 길이 마음의 신비였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어디만큼 왔는지를 성찰합니다. 가장 따뜻한 마음의 설날이길 기도드립니다. 삶의 속도가 너무도 빠릅니다. 준비 없는 인격은 언제나 허망합니다. 그 자리로 다시 돌아가는 우리들 삶입니다. 부모님에게서 자식으로 이어지듯 우리의 삶은 이렇게 지속되고 있습니다.
단순히 지속되는 것만이 아닌 가치있는 삶의 지속이길 기도드립니다. 깨어있음과 준비를 만나는 시간입니다.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져 버리는 한 줄기 연기일 따름인 우리들 삶이기에 하느님을 간절히 찾습니다. 하느님께 충실한 사람은 사랑에도 충실한 사람입니다.
희망은 하느님을 향하는 사람들의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하느님의 허락으로 이루어집니다. 간직해야 할 하느님의 가장 좋으신 사랑입니다. 2023년 신앙가족 모두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진심으로 기도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새해 인사를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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